소설리스트

15화 (15/39)

친구 엄마는 대학교수

 15

‘그래, 내가 운전을 해야 아주머니도 마음을 더 놓지’

 이미 시동은 켜져 있고

 선혜가 추워서 가볍게 히터를 틀어놓은 상태.

 라디오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참으로 감미롭다.

 출발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척을 하며,

 핸들을 손에 쥔 규복은 생각에 잠겨 있다.

 “아주머니, 비가 너무 심하게 내리니까요”

 “응..”

 “우리 지금 바로 출발하지 말고, 조금 있다가 가는 건 어떨까.. 싶어요”

 “왜? 난 괜찮은데..

 푸훗~ 그래서 내가 운전하겠다고 했자나~”

 “헷, 그건 안되구요.

 제 마음이 편치가 않아서..

 무조건 운전은 이 시간 후로 제가 한다니까요?

 그리고 아주머니.

 자~ 보세요, 이렇게 빗발이 무식하게 내리는데.. 아무리 아주머니가 운전의 프로페셔널이라고 쳐두요,

 지금 아예 앞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차를 몰겠어요.

 이래가지고 시야가 확보나 될까요?

 이건 잠깐이라도 쉬어가라는 계시인 거예요~”

 어디서 이런 (가증스러운) 말빨이 술술 나오는지 자신도 신기하다.

 사람이 작정하고 못된 짓을 하려다보니, 별..

 그런데 선혜도 가만히 그 말을 듣더니

 그럴듯하다 여기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니 말도 맞다~

 우리 규복이가 사리 분별을 잘 하는 애니까~

 후훗, 그럼 여기서 우리~

 배철수 아저씨 음악캠프라도 들으면서 좀 있다가~?”

 선혜의 말에 규복이 슬쩍 웃는다.

 “죄송한데.. 배철수 음악캠프는요..ㅋ

 저녁 6시부터인데요”

 “웅?

 음.. 예전엔 4시였던 걸로 기억을~

 후훗, 아무거나 틀어~

 팝송 듣자~~ 나 팝 듣고 싶어,

 이렇게 비가 오니까..”

 “하하, 그렇죠, 아무래도 감성이.. 잔잔하고 아늑한 팝송, 음~

 올드팝 같은게 듣고 싶어지는 날이요?”

 “얘가 센스가 넘치네~ 키득~”

 “제가 아주머니 맘을 잘 알죠, 하하..

 저도 팝송 좋아해요, 잠깐만요~”

 부스럭 부스럭, 뭔가 뒤지더니

 규복은 이 때를 위해 준비한 무언가를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다.

 여러 음악을 선곡해 담아온 USB.

 준비성이 좋은 규복의 모습을 보며

 선혜는

 “뭐야? 오~ 좋아, 얼른 들어보자!”하며 눈을 빛낸다.

 규복의 센스 있는 디제잉도 기대된다며.

 그가 음악을 틀자

 선혜는 조수석 시트를 뒤로 지잉-

 편안하게 눕히며 눈을 감는다.

 “그러다가 잠드시는 거 아니에요?”

 “아냐, 졸리지는 않아..

 그냥 다리가 아파서 글치, 히힛”

 “그래요.. 편안하게 누워 계세요.

 신발도 아예 좀 벗으시고요”

 “... 그럴까?

 그래도 너랑 같이 있는데, 부끄럽잖아”

 “에이~ 너무 그러지 말고요.

 친 아들이랑 같이 있으신데..”

 “키득, 너 말 잘한다,

 근데 친 아들이~ 엄마 자고 있는데..

 풋~~ 미안해, 규복아”

 “... 네?”

 “아냐, 자꾸 웃음이 나와서 미안..

 친 아들이 또 엄마 자고 있을 때, 입술이랑 가슴, 만지는 거 아냐~?”

 “......”

 “ㅋㅋㅋ~”

 선혜는 규복이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자

 좋아서 깔깔대며,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는다.

 그녀는.. 가끔 약간 어리숙한 규복이 난처하게 얼굴빛이 변하는 상황을 가끔씩 즐기는 듯하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도록 자기가 말해놓고 유쾌하게 웃어준다.

 수치스러움에 발갛게 물든 규복의 안색이.. 장난치고는 그녀도 수위가 높다고 생각했는지 눈물을 훔치며, 규복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아~ 미안해~ 규복아~ 너무 놀려서..”

 “아, 아니에요..”

 “킥~ 내가 가끔 악의 없이 이러니까.. 맘 넓은 네가 이해를 좀 해줘”

 부드럽게 눈웃음을 흘리며

 규복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스슥- 문지른다.

 그 선혜의 터치가 뭔가 은밀하게 여겨지는 규복.

 침을 꿀꺽 삼킨다.

 “없는 얘기도 아닌데요 뭐.. 제가 죄를 지었잖아요”

 “에이~ 야~ 그렇게 말하지마..

 내가 더 미안해지잖니”

 분위기가 뻘쭘해졌다.

 선혜가 아무리 웃음으로 어색함을 타파하려고 해도

 규복이 그녀의 몸을 몰래 만지고 입맞추었던 걸 떠올리니..

 일순 규복과 선혜 모두 얼굴이 빨개지고 만다.

 ....

 고요한 실내는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흐른다.

 후두둑, 후둑-

 강하게 차창을 강타하는 빗줄기 소리와 어울려..

 냇킹콜이 부른 maria elena가 차분한 선율과 잔잔하게 하모니 효과를 일으키는 느낌.

 그렇게 둘은 아늑한 분위기에 젖으며 음악을 즐겼다.

 선혜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익숙한지

 “음~ 음~” 조금씩 따라 부른다.

 규복이 틀어준 노래를 음미하며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는 모습.

 말 없이 음악을 들으며 부스럭,

 사온 빵과 우유를 먹고 마시는 두 사람.

 비록 잠시 떼우기 위해 사온 먹거리지만, 이 순간 참으로 귀하다.

 입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는 남녀.

 빨대로 콩우유를 “쭈룹~” 빨아들이며 선혜가 입을 연다.

 “근데 냇킹콜은 아주 옛날 가수인데..

 넌 어떻게 이 사람 노래를 아니? 신기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올드팝 거의 안듣지 않아..?”

 “아니에요,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예요.

 저는.. 글쎄요.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항상 집에서 팝송을 켜놓고 지내서, 그래서 늘..

 특히 올드팝에 노출된 환경이었어요.

 그러다보니니 자연스럽게 샹송이나 재즈, 블루스 같은 다양한 장르에 익숙했죠”

 “어쩜.. 그런줄은 몰랐어.

 어쩐지, 우리 규복이는 친절하고 애가 차분한 느낌이 있으면서..

 또 감수성이, 보통 사람들보다 상당히 탁월하다고 생각했거든”

 “헷.. 그런가요,

 아무래도, 듣는 음악이나~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는 거랑..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선혜는 규복의 수줍어하는 얼굴을 보며 미소짓는다.

 점점 더 규복에 대해 알아가고 싶고,

 이 아이와 깊은 유대감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조숙해, 확실히.

 어떨 때는 조금 애늙은 이 같아, 나보다도.

 머리도 좋고 영리하지, 감성도 충만하지..”

 “에이...”

 “진짜야, 너처럼 듣는 귀와 열린 마음까지 겸비하는 사람은..

 정말 흔하지 않아, 규복아, 게다가 너는..”

 “예..”

 “기본적으로 인성이 되어 있잖아, 아주 겸손한 아이야.

 사람은 누구나 대접 받고 싶어하고..

 은연중에 상대방이 나보다 부족해보이면, 금방이라도 깔보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

 “나는 너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부터,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어..

 늘 누군가를 배려하고, 친절하고, 겸손하려고 애써.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해, 규복아”

 후두둑- 투둑- 투둑-

 연이어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아까전의 격렬했던 기상변화에 비해서는

 조금이나마 빗줄기가 약해졌다.

 규복은 그렇잖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멜로디에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고, 센티멘털해지는 감성이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선혜의 솔직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진한 감동이 몰려와, 눈물을 주룩.. 흘린다.

 규복이 흘린 눈물은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부끄럽기도 하고 선혜가 건넨 말에 감동을 받아서이기도 했다.

 선혜는 규복이 우는 것을 보자,

 본인이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하고 놀란다.

 하얀색의 예쁜 무늬가 새겨진 손수건을 꺼내어

 조용히 흐느끼는 규복의 뺨을 자상하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규복의 얼굴에

 그녀의 손바닥을 가만히 포개어주고,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선혜의 손을 통해서 느껴지는 온기.

 홀로 울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 다가와 위로해주며

 그 마음의 적적함과 쓸쓸함을 헤아려주고..

 함께 울어주고 공감해주는 그 기쁨은..

 규복은 선혜로부터 그런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울지마...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아줌마도 백 퍼센트 알 수는 없어.

 이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나..

 이런 음악을 들려주신 어릴적 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아줌마가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규복아.

 그분들이 결코 부끄러워 하시지 않을 만큼 예쁘게, 착하고 성실하게,

 아들을 잘 키우셨다는 생각이 든다,

 넌 특히나 요즘에 보기 드문.. 멋진 아이야”

 위로해주고픈 마음에, 따듯하게 어깨와 뺨을 어루만져주며

 달콤한 목소리로 규복의 귀에 나긋하게 속삭이는 선혜.

 규복은 조용히 흐느낀다.

 선혜의 짐작대로, 그는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항상 말수가 적지만 자상했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로 마음이 무너져 내릴 타이밍이었지만

 그것을 용케, 잘 캐치한 선혜의 배려 넘치는 위로로..

 규복은 실로 크나큰 위안을 얻는다.

 “그만 울어, 응? 헷~

 잘생긴 얼굴에.. 우느라..

 쿡쿡, 눈물 자국 다 번져버리잖아~”

 “훌쩍.. 아니에요.. 아줌마, 고마워요..”

 “고맙기는..”

 어린 아이처럼 계속 울며 눈물 범벅이 된 규복을 보며 선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큰 아픔을 겪은 당사자만 하랴.

 하지만 그녀도 규복의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에..

 공감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으다보니,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헷.. 제 눈물을 닦아주시더니, 이제는 아주머니가 우시네요”

 “... 훌쩍, 응.. 그러네, 히힛, 나도 모르게..

 규복이 네 처지가 너무 안됐고, 나도.. 너무 속상한 거야, 규복아.

 응? 내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

 선혜도 울지 않으려 마음의 둑을 걸어잠그고 있었는데

 그 제방이 터져버렸다.

 위로해주던 사람과 위로받는 사람의 처지가 뒤바뀌어 버린다.

 이제는 규복이 울면서 애통해하는 선혜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물을 닦고 달래준다.

 “그만 우세요, 별 일도 아니고 괜히 저 때문에.. 저야 아파하면 그만인데..

 아주머니까지 울려버린 것 같잖아요”

 그러자 선혜도 어렵게 감정을 추스린다.

 이미 그녀가 꺼낸 순백의 손수건은 두 사람의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투둑, 투둑.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잠시 마음을 다스린 뒤, 선혜가 온화한 보이스로 다시 말한다.

 “근데 왜 아까부터 계속 한 곡만 나와?”

 “키득~ 그거야 한곡만 반복해놨으니까 그러죠~”

 “아아..”

 “좋잖아요, 느긋하게 좋은 곡 하나 오래오래 감상하기~”

 “쿡쿡, 진짜 애늙은이 같아”

 선혜는 규복의 짧은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이거, 마리아 엘레나는~

 어디더라, 장국영이 맘보춤 추는 영화 있지?

 거기서 흘러나오는 버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와~ 놀래라, 제가 이 다음에 틀줄 어떻게 아시고

 저도 이 두가지 밖에는 모르는데요,

 그거, 왕가위 감독이 만든 아비정전이란 영화예요”

 “아비정전~ 나 알아, 그 영화! 후후”

 “그 영화에 장국영도 나오고.. 시작할 때 애인 역으로 장만옥도 나오죠.

 또~ 누구더라?”

 “유가령하고.. 유덕화랑 양조위도 나오지, 아마? 후훗”

 “어..?”

 선혜는 눈물에 젖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예쁘게 웃는다.

 화장은 다소 번졌지만

 처음에 옅은 기초화장만 해서 파장이 크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규복은 선혜의 말을 경청한다.

 “왜 그렇게 보냐? 후후~

 그 영화 뿐만 아니라~ 왕가위 감독은..

 우리들 70년대, 80년대 세대한테는 아주 익숙한 사람이야.

 아무렴 내가 더 잘 알걸~

 예전엔 홍콩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많이 끌었잖니”

 규복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준다.

 “알아요, 아부지가 예전 중국영화를 엄청 좋아했어요.

 뭐~ 맨날 첩혈쌍웅, 영웅본색, 도신 같은거,

 그런 싸우는 영화만 계속 보던데.. 울 아부지요”

 “키득, 그러셨어, 아버지가?”

 “예~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요~?

 맨날 그런 영화만 틀어놓고 봐요, 시끄러워 죽겠어요..ㅋ”

 선혜는 빵긋 웃으며 규복의 말처럼 추억에 잠긴다.

 “후후, 대화가 좀 더 통하네.

 나는.. 아비정전에서 나온 장국영의 모습을 아주 좋아했어”

 “아..”

 “그냥 잘 생긴 것보다, 그.. 우수에 젖어 있는, 마음에 진한 사연이 있어뵈는 남자의, 가슴 아픈 한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가 있죠”

 “응,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런 특유의 감성은 쉽게 소화하기가 어렵지.

 또 양조위도, 그래서 또 좋아하고”

 규복은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선혜가 말하는 걸 듣고 있다.

 그런데 규복은 정작 별로 의식을 하지 않았는데,

 좋아하는 배우들을 예찬하던 선혜가 힐끗 규복의 눈치를 보며, 하던 이야기를 멈춘다.

 “너무 남자 배우 얘기만 하네, 나.

 주책이야. 너도..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이 썩 안 좋을 것 같은데”

 “왜요..

 제가 질투라도 느낄 것 같아서?

 피식~ 아니에요~ 저도 다 좋아하는 배우들인걸요”

 질투심을 느끼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규복은 내심 선혜가 눈빛을 초롱 초롱 빛내며 잘생긴 배우들의 이름을 언급하자, 약간 미묘한 감정은 들고 있었다.

 그런데 불편한 감정이 채 들기도 전에 선혜가 미안하다며 웃는다.

 그런 세심한 면이 좋다.

 연이어 규복은 선혜와 영화속 이야기들을 더 주고 받으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때로는 깔깔 웃으며, 또 감동에 젖기도 하며, 두 사람은 깊은 교감을 나눈다.

 “이 곡 참 좋다, 이거 제목 뭐야?”

 “perfidia, 페르피디아.

 이태리어예요, 뜻은 사랑의 배신”

 “와~ 그런 조사까지 다 했고?”

 “저두 좋아하니까요, 찾아봤죠.

 이것도 아비정전에 나오는 곡이에요”

 “움.. 뭔가 몽환적인 멜로디 같다..”

 규복은 슬그머니 웃는다.

 “유덕화가 나오는 장면에서 짧게 나온대요,

 우연히 듣고 좋아서 갖고 다녀요”

 “그러게, 익숙한 음악은 아닌 것 같아,

 근데 유덕화가 거기서 뭘 했지?”

 “장만옥을 짝사랑하는 경찰로 나오죠. 꼭 오늘처럼..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요”

 “아, 기억이~

 너 완전 영화광이네, 훗~”

 열대지방 특유의 느긋함, 그 가운데 펼쳐지는 아름다운 서정적 배경,

 때마침 비가 주룩 주룩 오는

 오늘의 분위기와 계절은 다를지라도 잘 맞는 것 같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그런데..

 지겹도록 영화와 음악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규복은 잊고 있던 선혜의 아름다운 옷 맵시에 시선이 갔다.

 감정도 추스렸겠다, 할 얘기도 어느 정도 떨어지고 나니..

 다시 선혜의 미모에 눈이 혹하는 것이다.

 선혜의 옅은 그레이의 타이트한 미니스커트.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사내의 성감을 돋구는데.

 그것도 모자라, 짙은 검정색 스타킹이 주는 아찔한 매력이-

 요염하기 그지 없는 선혜의 자태.

 남심에 불을 붙이는 고혹적인 미에 사로잡힌 나머지 눈이 뻘개진 규복.

 꼴딱, 여러번 침을 삼킨다.

 스타킹 중에서도 꽤 짙은 데니어라서

 은은한 광택이 희미한 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다.

 그 윤기가 감도는 스타킹의 표면이..

 만지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규복은 약간 대담하게 말하기로 한다.

 이미 여기에 오기 전부터,

 이번 여행이 아니면 더는 아줌마를 설득할 기회는 없다!

 .. 그렇게 단단한 마음의 결심을 하지 않았는가.

 “아주머니, 아까부터요.. 약간 누워계시는 자세가 보기에..

 많이 불편한 것 같으신데요.. 다리도 잘 못 뻗으시고”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닌데.. 후훗, 걱정해줘서 고마워.

 착해라~ 내가 키가 너무 커서.. 킥킥”

 꿀꺽.

 “그래서 있잖아요, 아주머니 다리를 저한테, 제 쪽으로.. 그냥 뻗으셔도 괜찮은데요”

 “어?”

 “아, 아니, 그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 다리를 그냥,

 편하게 뻗으시면 좋겠다고요.. 헤헤”

 “흐음~?”

 선혜는 규복을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들여다본다.

 마치 규복이 갖고 있는 응큼한 꿍꿍이를 간파하는 눈치다.

 규복은 규복대로, 또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진 채 선혜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다.

 그런데 선혜는

 빤히~ 규복의 얼굴을 장난스레 보더니

 곧 피식, 웃으면서, 놀랍게 규복의 권유대로

 그의 허벅지 위쪽을 향해 그녀의 발을 뻗는게 아닌가.

 ‘헉!?’

 규복은 그 정도까진 솔직히 기대를 안했다.

 선혜가 다리가 워낙 기니까..

 편하게 기대라는 의미로, 하체를 운전석 방향으로 틀라고 권했는데.

 이렇게 선혜가.. 감사한 포즈를 취해줄 줄은 몰랐다.

 ‘뭐야, 이거 레알.. 와, 이거 진짜야??’

 놀라서 얼떨떨하다.

 선혜는 규복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짧은 회색 미니스커트를 살짝 들추며..

 약간 이래도 되나.. 뜸을 들이면서도

 이내 허벅지 위로 쑤욱~

 그녀의 쭉 뻗은 종아리를 걸치는 것이었다.

 잠깐, 이러면 바로 발기하는데, 잠깐만욧, 아줌마!

 오히려 다급해진 쪽은 규복이다.

 선혜에게 팽팽해진 육봉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슬 아슬..

 그녀가 웃으면서 뻗는 예쁜 발을,

 되도록 자신의 사타구니를 스치지 않도록 몸을 막 뒤튼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어?”

 “예? 아니.. 그런건 아닌데요..”

 “자꾸 몸을 뒤척거리니까..

 많이 불편하면 다리 다시 내릴게, 미안해”

 “안돼요, 안돼요, 그냥 있으셔도 돼요!”

 “웅?”

 선혜는 규복이 어쩔줄 모르며, 그녀의 다리에 손을 대고 만지자

 갑자기 흠칫, 놀라 다리에 진동을 느낀다.

 이상하게 규복이 손을 대자마자 선혜는 아찔한 전율마저 맛보았다.

 “아, 알았어, 난 너한테 미안해서..

 그럼 그대로 기대고 있을게, 후훗, 고마워..”

 “예 고마운 건 제쪽.. 아니, 제가 더 감사하죠..

 에? 나 뭔 소리래.. 그냥, 아주머니는 편하게 계셔도 돼요,

 그래야 제가 맘이 편해지거든요, 헤, 헤헷..”

 식은땀을 흘리는 규복.

 부디 선혜가 섹시하게 쭉 뻗은 그녀의 각선미를 그대로 뒀으면 싶다.

 그의 몸 위에서 절대 치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담아, 선혜에게 애써 담담한 척 호소한다.

 “킥... 알았어~ 나도 이렇게 하니까 아주 편한데?

 끙차~ 기지개도 킬 수 있고~

 내 차가 그러고보니 옆으로 차체 폭이 꽤 넓구나~”

 “예예, 헤헤헤.. 그대로 쭉 피세요~”

 “호호, 고마워”

 선혜의 가느다란 발목과

 고운 발가락과 발등의 세심한 흐물거리는 모습,

 그리고 복사뼈의 생김새도 왠지 요사스럽게 느껴진다.

 꿀꺽..

 선혜의 발을 예전부터 아주 좋아한 나머지,

 기회가 된다면 쪽쪽 소리내어 구석구석 핥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았던 규복.

 지금 그 빨고 싶었던 예쁜 발이 눈 앞에...

 자기의 속마음을 들킬까봐, 규복은 상당히 떨리면서도, 애써 태연하게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이런 식으로 화제를 돌리는 척을 하며 시동을 켠다.

 선혜도 끄덕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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