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39)

친구 엄마는 대학교수

 24

 “휴..”

 “....”

 “아주머니”

 “응.. 규복아, 끝났어?”

 “... 예”

 선혜가 모든 걸 다 받아주니 규복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한껏 땀을 쏟으며 열정을 불사른 뒤

 누워 있는 선혜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주는 규복.

 선혜가 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고맙다고 밝게 웃는다.

 아쉬운 마음조차 남지 않았던 두 번째의 진한 사정.

 제 아무리 젊은 육체라도 규복도 사람인 이상..

 풀썩, 선혜의 옆에 나란히 뻗어버린다.

 “후후, 애썼네, 우리 애기”

 “헤헤, 아주머니야말로요, 고생하셨어요”

 “내가 한게 뭐 있다고.. 니가 기분 좋았으면 된 거지, 호호.

 어때?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좋았니..?”

 “솔직히 말해도 되죠?”

 “응~”

 “네.. 아까는 넣자마자 별로 느끼지도 못하고 좀 허무했는데

 이번에는 아주머니 몸이 너무 기분 좋았지만, 노력해서 참아봤어요.

 그래도.. 좀 버텨본 것 같아서, 아주 좋았어요”

 “그랬구나, 잘했어..”

 선혜의 따듯한 손이 규복의 땀에 젖은 얼굴과 머리카락을 만져준다.

 언제나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선혜와 가벼운 입맞춤을 즐기는 규복.

 “쪽, 쪽.. 후훗”

 그런데 한참 분위기 좋은 이 시기,

 문득 규복은 선혜가 아까 자기 동생 이야기할 때 생뚱맞게 떠오르던 기억이 났다.

 그걸 갑자기 용기내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말이 없어?”

 “....”

 “응? 호호”

 “저, 아주머니..”

 “네~ 규복 씨~”

 “저, 지난 번에.. 아주머니, 우리 갈대숲 산책했던 날이요.

 병원에 모시고 갔던 날..”

 “아.. 응”

 꿀꺽, 규복이 마른 침을 삼킨다.

 “열이 엄청나서 많이 고생하셨죠.

 그때 저한테 그..

 부산에 일주일간 가셨었던 이야기 하다가 중간에 끊어졌잖아요..”

 “.....”

 예상치도 못한 규복의 질문.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있던 선혜의 얼굴이 순간 굳는다.

 “....

 그 이야기를 지금.. 왜?”

 “듣고 싶어요, 자세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는.. 너한테 일주일간 다녀왔단 말을 한 걸로 충분하다고 보는데..”

 선혜의 목소리 톤이 평소와 다르다.

 상당히 떨리고 있다.

 그녀로서는 동요하는 마음을 감추고 싶은지 몰라도

 규복은 선혜의 흔들리는 얼굴과 거친 호흡을 보고..

 ‘역시 뭔가 있구나’라고 확신한다.

 규복은 심호흡을 했다.

 계속 캐물어도 되려나.

 “저한테 그날.. 고열로 불덩이가 되신 날 분명히 그러셨어요.

 마구 미안하다고 우시면서요”

 “....”

 “아주머니께서.. 역겨운.. 뭔가가 있으셨다고요.

 제가 아무리 뭐냐고, 왜 그러세요, 물어봐도

 그 말만 하면서 막 우셨잖아요..”

 규복의 진지한 눈빛을 바라보는 선혜의 눈동자.

 이윽고 촉촉하게 젖은 물기가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으로부터 스르륵 배어나온다.

고요한 침묵이 흐른 뒤,

 규복은 선혜가 입을 열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말을,

 아무리 궁금해도.. 오늘처럼 분위기 좋은 날에..’

 별 생각없이 꺼낸 말에 선혜가 오래 침묵할 줄 몰랐다.

 규복은 후회가 마음에 가득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흑, 흑, 눈물을 쏟는 선혜.

 누워 있는 시트 위로 그녀가 흘린 눈물 범벅이 된다.

 규복은 선혜가 울고 싶은 만큼 내버려두었다.

 측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따금 그의 하늘빛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가를 닦아준다.

 “....

 여러 번을 잊자고 마음속으로 노력했는데..

 이제 지나간 일이라고, 묻어두려 했는데 말이지”

 “....”

 “사연이 듣고 싶니?”

 “예?

 아뇨.. 꺼내기 힘드시면 말 안하셔도 상관 없어요..”

 “훗..”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규복의 눈이 빛난다.

 “그렇지만, 저는.. 이모님과 저 사이에 어떤 비밀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예 말을 안했으면 모르지만

 이건 중간에, 아주머니가 심하게 아프셔서 하다가 끊긴 대화잖아요”

 “....”

 “아주머니도 끊기기 전까지 저한테..

 꼭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다고 하셨어요”

 “... 그랬지..”

 선혜는, 그 말을 하는 규복의 눈가에도 촉촉이 젖은 눈물을 보았다.

 그 또한 그녀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있음을 깨닫는 그녀.

 규복이 준 손수건으로 빨갛게 부은 그의 눈가를 닦는다.

 “알겠어, 실컷 울고 나니까 좀 진정된다”

 “...”

 “네 말이 맞아, 그렇게 추한 몰골을 보였는데 매듭은 지어야지..

 꼭 듣고 싶다면 들려줄게.

 이야기가 좀 길어질 수도 있어, 괜찮아?”

 “네, 좋아요, 저는.. 아무리 길어도 듣고 싶어요”

 선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있잖아.

 오래전에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났어”

 선혜는 실컷 울었기 때문인지, 차분한 음색으로 입을 연다.

 -

 7년전의 기억.

 즉 선혜가 어린 규복, 강인과 여행을 떠났던 2년 후.

 10월의 선선한 가을 저녁.

 아산에서 지인을 만나고 천안을 거쳐 과천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맞으며

 기분이 좋아진 선혜가 콧노래를 부른다.

 -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있네..

 허스키한 음색과 따스한 아늑함이 우러나는 선혜의 목소리.

 故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며 서정적 여운에 젖는다.

 ‘여기도 골프장이 있구나.. 컨트리 클럽?’

 바깥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풍경에 빠진다.

 경사가 있는 샛길 언덕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좋게 드라이빙 하는 도중,

 매우 아름답게 주변 미관을 가꿔놓은 정취에 빠져

 뭔가에 홀린듯..

 컨트리 클럽의 비탈길을 올라간다.

 선혜는 지인들과의 회동이 아니면 골프를 거의 쳐본 적이 없다.

 그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해볼까’하는 순수한 호기심.

 그녀의 차가 스르륵- 미끄러지며 클럽의 입구를 향한다.

 - 회장님..

 - 아아, 괜찮다니까, 조금만 걷게 해줘.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웃으며 아스팔트 위를 지난다.

 수행원으로 보이는 수트 남들은 쩔쩔 매며 어쩔줄 모르고

 아랑곳 않고 걷던 그의 시야에,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아!!!’

 선혜는 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물체를 보고,

 피할 틈도 없이 놀라서 부딪쳤다.

 쿵-

 덜덜..

 틀림없이 사람을 친 것같다.

 차에서 내릴 엄두도 못내고, 겁에 질려 핸들에 머리를 박으며 떨고 있는 선혜.

 웅성- 웅성-

 바깥이 시끄럽다.

 탁-

 선혜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차에서 나오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닥에 드러누운 인파를 향해 다가간다.

 - 죄송합니다....

 - 당신 뭐야?

 - 이 아가씨가, 컨트리 클럽 입구에서는 절대 서행하는 거, 기본 상식도 몰라?

 - 뭐하는 여자야?

 선혜는 소스라치게 몸을 떨며, 눈물까지 흘린다.

 그러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사이로

 차에 치여 누운 당사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 괜찮아, 너무 다그치지들 말게, 아직 젊은 아가씨잖아.

 - 회장님, 허리 좀 어떠세요?

 - 글쎄.. 약간 삐긋한 정도.

 - 아, 안됩니다, 그대로 누워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사람을 시켜 들것을 가져오겠습니다.

 차분하게 사람들을 지휘하는 검정 수트 차림의 남자.

 겁에 질린 선혜를 힐끗, 잠깐 보고 회장에게 몸을 돌린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모르는 선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눈물을 흘리며 앞이 막막해질 뿐이다.

 회장님이라고 부르는걸 보니 지위가 꽤 있어보이는데..

 - 이봐요, 아가씨.

 - 네.. 넷?

 - 이쪽으로 오시죠, 저희 회장님이 얼굴 뵙자고 하십니다.

 - 아, 예예.. 갈게요.

 조금 전 그 수트입은 남자.

 단정한 헤어와 깔끔한 핏이 꽤 멋지다.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긴 하지만 선혜에게 나름 예를 갖춰준다.

 - 저..

 - 회장님, 모셔 왔습니다.

 회장이라 불린 초로의 신사가 선혜를 올려다본다.

 이미 앰뷸런스까지 불러, 그 위에 타고 있었다.

 선혜는 불안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 반가워요, 예쁜 아가씨네요.

 - .... 죄송합니다, 제가.. 골프장을 거의 다니지 않아서..

 이렇게, 입구에서 서행해야하는 줄도 모르고, 정말 몰라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치료비는 꼭, 얼마가 들든지 모두...

 남자는 웃으며 선혜의 말을 가로막는다.

 - 아니야, 탓하려고 부른게 아니에요, 걱정 안해도 됩니다, 허허.

 - ....

 - 이런데 잘 안 다니면 그럴 수도 있죠.

 아가씨야말로 어디 다친데 없나요?

 - 예? 예.. 저는 아주 멀쩡합니다.

 나이를 좀체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오십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다가도

 이목구비의 중후함과 여유로운 자태로 미루어 짐작할 때

 아마 60 정도 되었을 거라고 선혜는 추측한다.

 - 정말이에요, 제가 여간해서는 이렇게

 어두운 밤길을 빨리 다니는 편이 아닌데..

 - 괜찮다니까, 운전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있을 수 있죠.

 - 네.. 저, 부딪친 곳은 어떠신가요?

 - 아주 멀쩡하지는 않지? 허허~

 조금 욱신거리고 아프지만, 치료하면 금방 나을게요.

 - 예...

 남자는 선혜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며

 다정한 말투로 안쓰럽다는 듯이 그녀를 달랜다.

 - 이제 가야겠군,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 저.. 저, 회장님!

 - 음?

 선혜는 자기도 모르게, 앞선 남자들의 호칭대로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 이, 이거.. 제 명함입니다.

 보시고.. 아무 때나 편하실 때 부디 연락해주셨으면 해요.

 - ....

 선혜가 떨면서 두 손으로 건넨 명함.

 남자는 물끄러미 그걸 받아 보았다.

 그러더니 뒤에 서 있던 아까의 수행원에게 넘긴다.

 - 그래요. 연락할 일이 따로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씨 얼굴도 예쁜데, 내면까지 참 아름다운 분이군요.

 - 아니에요,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 내 나중에 따로 연락하리다.

 ... 가지.

 - 옙.

 수트남이 고개를 깎듯이 숙이며 앰뷸런스를 출발시켰다.

 선혜는 저절로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이면서

 그를 태운 차량이 멀어져 갈때까지 자세를 유지했다.

 -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고선혜..

 너 이렇게 덤벙거리는 성격, 정말 고쳐야지 안되겠니..?

 자기 자신을 꾸짖는 말투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중얼거리는 선혜.

 그게 선혜와 그 남자와의 첫 만남이었다.

 -

 목이 말랐다.

 상세하게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를 푼 선혜는 주위를 두리번 거린 후,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의 물병으로 목을 축인다.

 “후~~ 시원하다, 너도 마실래?”

 “예.. 주세요”

 규복이 물을 마시는 사이에도

 선혜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그의 목울대만 바라본다.

 회장이라는 남자와 만나는 단계까지만 겨우 이야기했는데,

 아까 이야기한 그녀의 동생에게 급한 연락이 오느라 대화가 끊겨 있었다.

 그러고 나니, 머쓱해서 굳이 이야기를 더 꺼내기가 민망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그녀..

 일단 분위기를 전환하기로 한다.

 “이리 와, 우리 규복이~”

 “네..”

 두 연인은 침대에서 벗어나, 그 앞에 넓게 펼쳐진 바닥으로 자리를 옮긴다.

 검정색 쿠션에 하나씩 걸터 앉았다.

 가운데 있는 것은, 특이하게도 검정과 회색이 뒤섞인 대리석 테이블.

 그리고 두 사람의 발 아래는

 매끄러운 소프트 벨벳 재질의 검정색 카페트가 근사하게 깔려 있다.

 새들브라운(saddle brown, 안장갈색)의 정갈한 벽에

 세심한 하얀빛 격자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모습.

 그 벽의 약간 윗부분에 대형 tv가 붙박이로 자리한다.

 이제까지 사랑을 나누던 하얀색 퀸 베드에서 내려온 두 사람.

 선혜는 방 안의 배치가 마음에 드는지

 여기저기 살피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의자도 편해, 좋아, 히힛”

 “...”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아, 아니에요, 헷”

 규복은 선혜의 말을 듣고서야

 너무 긴장했구나.. 하고 얼굴의 근육을 풀었다.

 “너 배 안고프니?”

 “아.. 실은 좀 전부터 꼬르륵 거렸어요”

 “그치? 나도 너하고 얘기하다가 이제야 생각났어.

 우리 오늘~ 저녁 내내 차에서 빵이랑 우유만 먹고, 밥은 안 먹었잖아”

 그러자 규복은 선혜 말대로 정말 배가 고픈 눈치다.

 “근데 여기 아주머니, 아무리 시설이 좋다해도 모텔이라..

 아마 룸서비스는 안될 거예요”

 “아, 그렇구나. 그럼 어쩐다..

 여기 팸플릿 보니까 레스토랑도 아침만 하는 것 같고..

 우리 뭐, 치킨이라도 시켜먹을까?”

 “네! 좋아요 ㅋㅋ”

 역시 마음이 잘 맞는다.

 전화로 시킨 뒤, 선혜가 방긋- 웃으며 규복을 향한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 할아버지라는 분한테 연락을 받았다는 데까지요”

 “움 그래~ 거기까지 얘기했으면 앞부분은 다 한거야”

 “네..?”

 선혜가 눈을 가볍게 깜빡인다.

 “미안, 내 말 뜻은.. 이런 하기 힘든 이야기에 한해서..

 너한테 이렇게 입을 떼는 것만으로 한숨은 돌렸다는 말이지”

 “... 그렇군요..”

 “아무래도 모든 이야기를 다 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그래도 조금 더 듣고 싶은데, 저는”

 “해주는 건 어렵지 않아, 단지..

 나도 기억을 자세히 끌어내야 하고, 지금 배도 고프고,

 또.. 오늘 같이 우리 둘한테 의미가 깊은 날,

 언제까지 우울하고, 달갑지 않을 지도 모르는..

 그런 대화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순 없잖아?”

 “그 정도로 뒷 이야기가 어둡나요..?”

 “어둡지는 않고.. 음, 어떻게 말해야 하면 좋을까”

 이쯤되자 눈치가 없던 규복도 미안한 얼굴.

 선혜의 손목을 붙잡으며 만류한다.

 “그래요, 그럼..

 아주머니 마음이 편하실 때, 내일이라도 다시 해주시면 되죠”

 “그래, 상황을 봐서 시간이 나면 더 이야기해줄게, 고마워”

 선혜는 규복의 배려에 안도하는 얼굴.

 후... 한숨을 쉰다.

 규복은 선혜의 사연을 더 듣고 싶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더 이상 아무것도 캐묻지 말자, 마음먹는다.

치킨이 금방 왔다.

 두 사람은 사이다와 치킨을 허겁지겁 먹으며 배를 채운다.

 얼마나 시장했을까?

 오늘 하루, 짧은 시간 사이에 벌어졌던 수많은 여정들.

 이만큼 먹지 않고 견딘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선혜와 규복은 빛의 속도로 치킨을 먹어치운 뒤,

 시원한 음료로 입가심을 하며 포만감에 젖는다.

“휴~~ 살 것 같다, 그취?”

 “그러게요.. 쿡쿡”

 “호호, 먹어야 힘이 나지”

 “맞아요, 든든하게 잘 먹어야~

 앞으로 시간 동안 또.. 에너지도 힘껏 발산할 수 있고요, 흐흐..”

 그러자 규복의 응큼한 시선을 눈치채고 선혜가 키득, 웃는다.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찰싹 두드리는 손.

 “몰라~ 나 이제 피곤해서 씻고 잘래”

 “에~ 아직.. 겨우 열두시 조금 넘었는데요?”

 “얘 좀 봐~

 무서운 애다, 자정을 넘겼는데 겨우래”

 “헤헤.. 평소 같으면 잘 시간이 맞지만..

 우리 오늘 하루는, 엠티 같이 여행온 날이잖아요”

 잘 먹여놨더니 또 이 녀석의 말발이 터질 기세.

 선혜는 규복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터뜨린다.

 “엠티?”

 “네~ 그러니까.. 에..

 저하고 아주머니는 오늘~ 둘만의 미루고 미루던 여행을 드디어 온 거예요”

 “칫.. 갖다 붙이기도 참 잘해, 호호”

 선혜는 자상한 미소로 규복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부러 규복의 머리를 만지기 위해,

 멀리 거리가 떨어진 소파에서 일어나 건너편 그를 향해 허리를 구부린다.

 규복도 선혜의 만져주는 손길이 매우 기분 좋았다.

 “열두시 삼십분.

 그래 좋아, 오늘 그래도 막간을 이용해서 잤으니까”

 “네~ 이제 세 번째 라운드를 시작할 시간이고요”

 “쿡쿡, 3 라운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에.. 그게~ 저하고 아주머니가..

 침대에서 두 번 했으니까요, 헤헷, 라운드 쓰리!”

 “킥, 뭐래..”

 “아주머니, 왠지 아까보다 훨씬 많이 웃으시는 것 같은데요?”

 “아, 그래?”

 선혜는 규복이 해준 말 그대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잠깐 망설이더니

 규복을 향해 다시 허리를 숙이고 그의 입에 “쪽” 뽀뽀한다.

 “네 말이 맞아.

 나 아까 여기 들어오고 나서부터~

 계속 마음이 불안 불안해서, 많이 경직되어 있었나봐.

 우리 남편 때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그래서..

 근데, 한번 크게 울고 나니까 긴장도 풀리고

 조금 회복이 된 것 같아”

 “음.. 듣고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웅~ 후후, 그래서 고맙게 생각해.

 우리 규복이가 이해심도 많고 잘 배려해주는 아이라서.. 참 좋다”

 “민망하게.. 헤헷, 이모님도 참..”

 선혜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규복의 뺨을 사삭- 쓰다듬었다.

 규복도 선혜의 따스한 손길에 얼굴을 붉히며

 언제나의 버릇처럼 자기 뒷통수를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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