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39)

친구 엄마는 대학교수

 33

“잠깐만요, 오늘 아주머니하고 저, 여기 묵어요?”

 “어... 내가 미리 말 안했어?”

 “안했죠!”

 “아.. 미안, 한 줄 알고.. 히힛.

 내가 챙겨야할 일들이 많아서 그랬나봐~ 이해해줘”

 미안할 일은 전혀 아닌데..

 실실거리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규복.

 사랑하는 미녀와 하룻밤 더 동침할 수 있다는 망상에 젖어 있다.

 ‘그럼 이모랑 아주머니가 어차피 각방을 쓰니까,

 오늘도 잘하면 같이? 으흐~’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는 규복을 보며, 선혜도 피식 웃는다.

 “이리와, 킥~ 야한 생각 그만 하고?

 여기 돌아가면 있는 방 한번 들여다봐, 그리고 3층으로 올라오렴~”

 “예, 그럴게요”

 선혜는 먼저 나무로 이루어진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오른다.

 깔끔한 대리석 바닥과 벽이 모두 화이트 톤으로 통일되어 있다.

 계단에서 오른쪽으로는 큰 창문이 있고, 그 바깥은 예쁜 테라스와 테이블이 놓였다.

 바닥에 놓인 부드러운 촉감의 털슬리퍼를 신고

 선혜는 동생이 자고 있으리라 추측되는 방으로 향한다.

 ‘어디~ 우리 이쁜 잠꾸러기~ 호호’

 과연, 선혜가 아끼는 동생은 새근- 새근-

 대낮부터 깊은 잠에 곤하게 빠져 있다.

 선혜는 살짝 문만 열어보고, 다시 깨지 않도록 조용히 닫는다.

 이윽고 그 옆의 방으로 가서 본인의 물품들과 크로스백을 내려놓았다.

 후우~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킨다.

 오늘 사은회가 끝나는대로, 교수들끼리 식사와 다과회 모임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웃으며 죄송하다고.. 선약이 있어 먼저 빠지겠다고 고개를 굽신거리며

 일일이 변명하고 물러나느라 곤욕을 치렀다.

 특히 다른 이들보다 학과장 윤교수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환한 빛이 들어오는 창가쪽 벽면에 놓인 퀸 베드.

 시에나(sienna) 색상의 예쁜 벽에 수놓아진 작은 장식들을 바라본다.

 긴 다리를 침대 위로 쭉 뻗으며 다시 스트레칭을 한다.

 ‘아, 이대로 누우면 바로 잠들어버릴 것 같은데..’

 간다는 사람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교수들.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고선혜 교수의 성품에 대한 좋은 평가와 함께

 그녀와 친목을 다지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서..

 나오는 과정도 순탄치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친분 있는 교수들에게 하나씩 정성어린 카톡을 보낸다.

 선혜의 얼굴에 가벼운 수심과 함께, 잔잔한 미소가 띄워져 있다.

 타박- 타박-

 슬리퍼 차림의 규복이 복도를 따라 걸어오며,

 때마침 열어놓은 선혜의 침실 안을 갸웃거린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선혜가 웃음을 터뜨리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우와.. 침실 좋아요, 넓고 예뻐요..”

 “후훗, 아랫방이랑 비교하믄 구조가 달라?”

 “네, 아래 침실도 이쁜데 거기는 전부 파란색 도배라 좀..

 여기는 색도 뭔가 포근하고 침대가 더 커서 아늑한데요”

 “킥..”

 선혜는 규복의 설렘 가득한 그 표정이 좋다.

 어린 아이처럼 맑고 가식이 없어보이는, 순수한 눈빛.

 이런 꾸밈없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규복이야말로

 선혜에게는 어떤 보물보다도 더 값지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규복과 선혜는

 몇마디 소소한 말장난을 주고 받고 킥킥거리며 웃는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깨가 쏟아진다.

 그런데 재미나게 얘길 주고 받다가,

 규복이 선혜와 또 스킨쉽을 나누고픈 욕구가 동한지

 슬그머니, 바깥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 앉는다.

 키스하면 안되냐는 무언의 눈빛을 지으며.

 “안돼~ 너 정말 겁도 없구나.

 벌건 대낮에..

 은혜가 언제 깨서 올지도 모르고.. 문도 저렇게 열려 있잖니?”

 “그, 그럼 문을 닫고 하면 되잖아요?”

 “에고.. 너 이럴까봐 내가 걱정은 했다만

 규복이 너~ 여기 들어오기 전에 아주머니하고 틀림없이 약속했지!

 아무 때나 야한 행동,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다고.

 호호, 말 잘듣는 착한 아이로 있겠다고~ 약속한거 기억나지?”

 “그러기는.. 했는데요”

 규복의 혈기왕성한 눈매가 수그러진다.

 선혜가 신신당부한 말들을 기억하며

 금새 얌전한 송아지처럼 눈동자를 굴린다.

 그 순종적인 모습이 또 귀여워,

 선혜는 킥- 웃음을 흘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조금만 잘게, 아침부터 계속 움직이느라 살짝 졸리네.

 아래 1층 내려가면 복아, 과자랑 빵이나 커피, 쥬스같은 먹거리 많이 있어”

 “어.. 봤어요, 있는 음식들 그냥 먹어도 돼요?”

 “그럼~ 다 우리 껀데 마음껏 먹어도 되지, 호호,

 먹고, 1층에 홈시어터 있는 방도 있으니까”

 “예, 이미 다 둘러봤죠, 이쁘게 잘 해놨더라구요..”

 “응~ 거기 가서 영화나 티비 보고 좀 놀아, 킥~

 알았쥐?”

 “네~ 그렇게 할게요, 헷, 이모는 그럼 쉬세요”

 끼이익..

 고급스러운 벌리우드 컬러의 오동나무 문을 닫아준다.

 타닥- 타박-

 1층으로 내려와, 주방으로 향한다.

 매우 깔끔하고 정결한 주방의 위생상태에 감탄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같다는 생각.

 선혜가 알려준대로 출출하니 쿠키와 음료를 집어든다.

 오물 오물~

 입에 씹히는 것마다 달콤하고 향긋하다.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식감이 좋다.

 대충 입을 만족시킨 후, 내부 인테리어의 아기자기함에 푹 빠지며

 옆방의 홈 시어터룸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세개의 소파와 여러개의 예쁜 색 쿠션들이 놓여 있다.

 “어이구야, 이런데는 추가적으로 요금을 지불해야할 것 같은데..

 너무 좋다..”

 노트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검색 후 보고 싶던 영화를 틀어본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혼자 덩그러니 방에 갇혀 있으려니 갑갑하다.

 선혜가 역시 보고 싶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샤워라도 할까..’ 싶어

 각 층마다 설치되어 있는 욕실에 가려고 나왔다.

 그런데..

 “어?”

 “....??”

 얼음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으며 멈춰서는 규복.

 사람 키의 두배정도 되는 거리에,

 낯선 여성이 그를 쳐다보고 서있다.

 두 사람 모두 당황해서, 바닥에 붙박힌듯 움직이지 않는다.

 규복을 바라보는 난처한 얼굴의 여인도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소년은 ‘누구지?’하는 생경함에 얼어붙었다.

 키가 큰 글래머 체형의 여자.

 다크레드의 짙은 체리빛,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에

 크림슨(진홍색) 컬러의 시원한 반팔 니트.

 얇은 재질 덕분인지

 그녀의 볼륨감 넘치는 탄탄한 바스트가 돋보인다.

 큰 키에 풍염한 허벅지의 탄력이 눈을 사로잡는다.

 적당하게 살이 오른 꿀벅지와

 깨끗한 무릎 아래로 가지런히 뻗은 종아리.

 꿀꺽-

 황망한 가운데서도, 본능적으로

 여인의 스타일 좋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

 탐스럽게 솟아오른 엉덩이에 눈이 빨개지는 규복.

 “저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런데 규복은..

 아!

 또 통제가 안되는 음탕한 눈길이 본능에 충실했다는 생각에,

 소년은 얼굴이 붉게 물든다.

 “죄송합니다!”

 “아, 저..”

 스슥, 슥-

 슬리퍼를 질질 끌며, 어쩔줄 모르다가 크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정작 그녀는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그 자리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다시 나왔던 방으로 도망친다.

 후다닥- 탁-

 ‘하아.. 하아..

 누구지, 저 여자는?

 아무리 봐도.. 티비에서 본 진은혜씨 얼굴은 아닌데..’

 규복의 생각도 맞다.

 아마 이 집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여배우 진은혜라고 여겼다면 조금이라도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도망친 자신을 위로하며 한숨을 쉰다.

 도통 낯선 얼굴인데..

 틀림없이 선혜 아주머니는 이 집에 따로 있을 사람은 없다고..

 그럼 가정부인가?

 ‘다리 엄청 이뻤지, 몸매도 쭉쭉빵빵하고.

 얼굴도 짱 귀여워~~

 음.. 일하는 여자가 스타일이 저렇게 좋으면 나이는..

 .... 아냐, 혹시..

 저 여자가 진짜 은혜 이모 아닌가?’

 조금 전 본 여자의 훈훈한 미모를 머릿속으로 즐기며

 얼굴이 익은 감자처럼 늘어져 있는 규복.

 갑자기 생각이 확 깨우쳐지자,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고 또 벌떡 일어난다.

 “화장이 짙다고.. 안한 얼굴은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고..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했던 것 기억도 나는데..

 어.. 그럼 정말로 저 사람이..?”

 갑자기 고뇌에 빠지는 얼굴.

 스슥~ 스슥~

 오줌마려운 강아지처럼 그 방안을 왔다갔다 누비느라 정신이 없다.

 끼익..

 두리번~ 사방을 살펴본 후,

 일단 아까 선혜가 말해준, 자기 몫의 침실로 부리나케 달린다.

 탁-

 휴..

 넓찍한 방 구조,

 스카이블루와 터콰이즈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색으로 덮인 가구들.

 싱글 사이즈의 베드지만 몸을 눕히기에 좁지는 않다.

 풀썩~

 편안하게 잠기는 쿠션감에 규복의 눈도 금방, 스르르 감긴다.

 선혜와 은혜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해후를 나누며

 2층의 넓은 거실에 마주 앉자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자주 얼굴을 보고픈 사이지만

 서로의 바쁜 스케줄 탓에 두 자매는 의욕만 넘치지, 요즘 얼굴을 통 보지 못했다.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듯..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참, 언니..

 나 아까 언니 잘 때, 밑에 층에서 남자애를 봤는데..

 걔가 언니가 말한.. 강인이 친구야?”

 “어? 벌써 만났니?..

 응, 맞아..

 여기 양양 가까운데 걔네 삼촌 댁이 있어서.. 오는 길에 같이 만났지..”

 선혜는 자연스럽게 웃는 척했지만, 등에 살짝 한줄기 땀이 흐른다.

 “그으래~?

 보통 그렇게.. 친한 이모 조카 사이면 여행도 같이 붙어다니고.. 그러나?”

 “그, 그럼.. 얘는.. 호호,

 쟤는 하물며, 우리 연구실 조교로 일하는 애야..”

 “....”

 은혜의 쏘아보는 시선이 어째 날카롭다.

 수상한 사이 아니냐고 캐묻는 것 같아서,

 선혜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화기애애하다가 급 어색해진다.

 그런데 은혜는 언니를 미심쩍은 표정으로 보다가

 다시 활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호호, 알아, 잠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우리 언니가 어떤 사람인데~

 자기 관리 아주~ 철저하고 깔끔한 사람이잖아,

 옛날 나처럼.. 도가 넘칠 정도로 자유분방했던 동생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

 “얼굴 왜 그래~ 비꼬는 거 아니야~ 쿡~

 신기해서 그러지, 언니가 누굴 데리고 다닌다니까..”

 “살다보면 가끔 예외가 생길 때가 있지.. 호호”

 선혜가 무안하게 웃으며 동생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착하고 순수한 아이야, 잠깐 오가는 길에 데리고 온 것뿐이니까

 너무 이상한 생각 안했으면 좋겠다”

 “쿡쿡, 알아, 나~ 언니를 믿으니까, 그냥.. 특이한 경우라 물어본거야.

 언니 배 안고파? 내가 스테이크 좀 구워줄까”

 “별로.. 살짝 고프긴 한데 규복이 인나면 물어보고”

 “아, 이름이 규복이야?

 나이는 몇살?”

 “스물 하나, 니가 올해 36 맞지?”

 “응~”

 “누나 동생하면 되겠다, 쿡쿡”

 “하~ 뭐래..

 아, 언니!

 맞아.. 내 정신 좀 봐”

 “왜 그러니?”

 은혜는 활짝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진다.

 급하게 언니의 팔을 꼬옥 붙잡고

 자기가 쓰는 침실로 데리고 간다.

 탁-

 둘은 하얀색의 퀸 베드 위에 걸터 앉았다.

 “이따가는 규복이라는 애가 깨면 얘길 못 할 수도 있으니까”

 “... 응”

 “언니, 제니랑 연락 요즘 하고 있어?”

 “제니랑? 아니, 서로 바빠서..

 적어도 이번주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자기 딸인데 어쩜~

 얘가 오히려 나한테 어저께 카톡 보내서 묻더라,

 엄마가 통 연락을 안한다고, 키득~”

 “웃기는 애야, 걔는~

 내가 연락할때는 귀찮다고 잠수타놓고..”

 갑자기 선혜의 딸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이름.

 “지난주 금요일에..

 강인이 면회하러 다녀왔대”

 “.... 그래?”

 “응~ 자기 혼자서 가기 좀 그래서 아는 대학 남자선배랑 같이 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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