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02. 최면으로 시작하는 이세계생활.
* * *
카운터 누나의 제안을 거절한 채 우리는 퀘스트를 받기로 하였다.
“너는 어떤 퀘스트가 좋은 것 같냐?”
“........”
여전히 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이 없다.
흐음.. 그렇게까지 나랑 대화하기 싫다 이건가?
뭐 괜찮아. 나중에 여관에 가서 잔뜩 소리가 나게 해줄 테니까.
“그러면 일단 처음은 쉬운 거로 가야겠지.”
어차피 초기 자본금이 없는 이상 우리에겐 아무런 시작 무기조차 없었다.
그렇다는 건 마물을 잡는 퀘스트는 꿈도 못꾼다는 이야기.
여신의 능력치를 보면 무기가 없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지만, 도움을 줄 리 없었다.
거기에 내가 위험해지면 구해주긴커녕 잘됐다며 나를 버리고 가겠지.
그러니 그런 목숨에 지장이 갈 수도 있는 일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러면... 어디 보자, 대충 적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마을 퀘스트가..
“오. 여기 있네.”
꿀 사과 10개 모아오기.
1개당 2G.
식사가 5G, 숙박이 10G니까 딱 적당한 퀘스트였다.
그건 그렇고 고작 사과인데 이렇게까지 많이 쳐주나? 사과가 구하기 어려운 곳에 있거나 그런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진 채 나는 여신을 끌고 이 퀘스트를 해결하러 나섰다.
“어디 보자, 이쯤이면 대충 나올 때가 됐는데….”
퀘스트에서 받은 지도를 바라본 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있네.”
확실히 커다란 사과나무 하나가 자신의 위용을 뽐내며 우뚝 솟아있었다.
호오... 엄청 크긴 근데, 그런 만큼 너무 높은 곳에 사과가 달린 것 같은데?
대충 아파트로 따지자면 5층 건물 정도의 높이에 달린 것 같았다.
이러니까 의외로 보수가 짭짤했구나….
사과가 열린 곳을 발견한 나는 그런 소감을 가진 채 옆에 있는 여신에게 말하였다.
“저거 좀 따라.”
“.....하?”
이번 건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말을 하지 않던 컨셉을 버리고 내게 말한다.
“아니, 너 나보다 스텟 높잖아. 저런 거 따는 거 나보다 쉬울 거 아냐.”
“.........”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풍겨오는 분위기로 보아서 그런 것 같았다.
“부탁 좀 하면 안 될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최면어플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여신에게 말하였다.
“......”
여신에게 부탁하자 경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언의 욕을 한다.
하하..! 그렇게 노려봐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이미 스스로가 쓰레기인 걸 자각하는 자에게 그런 경멸의 눈빛은 0의 데미지다.
오히려 이걸 포상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레벨은 아니고..
아무튼, 이런 건 스텟이 높은 사람이 잘 따는 것이 낫지 내가 해봐야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후”
여신의 눈빛에도 전혀 굴하지 않은 채 능글맞게 미소를 짓자 한숨을 쉰다.
그래. 한숨을 쉬어도 어쩌겠어.
까라면 까라고.
그런 마인드를 가진 채 허리에 손을 올리자 여신은 그대로 사과나무에 달려가...
사과나무를 발로 찼다.
후두둑..
여신이 차버리자 사과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사과들.
저기 그대로 떨어지면 다 박살 나 버릴 텐데.
그런 내 걱정을 읽었는지 여신은 자신의 등에서 날개를 꺼내어 하나둘 떨어지는 사과를 아무런 손상 없이 예쁘게 받아내었다.
“호오…. 제대로 손상 없이 받아내네?”
“........그대로 떨어뜨려 버리면 벌이랍시고 또 이상한 짓을 할거잖아요?”
“오. 그런 방법도 있었군.”
“........”
솔직히 내가 시켜놓고 사과를 못 받았다고 벌 줄 생각까진 안 하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걱정했구나.
뭐, 아무튼 지레 겁먹고 완벽히 일해준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그럼. 가져가 보도록 하자고.”
여신이 받은 사과를 미리 가져온 바구니에 담으며 나는 사과의 개수를 하나씩 세보았다.
하나... 둘.. 셋.. 오! 30개!
하나당 2G라고 했으니 다 합치면 60G
대략 6일 치 숙박비, 12일 치 식사비다.
물론 식사와 숙박비를 전부 합쳐버리면 며칠 나오지 않겠지만.
어차피 그럴 땐 또 사과를 따러 오면 되는 것이다.
“그럼 돌아가 보도록 할까?”
“.......”
사과를 전부 챙긴 나는 여신에게 말하자 역시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따라온다.
“여기 꿀사과 30개입니다!”
“우왓. 꽤 높은 곳에 달려있어서 따기 어려웠을 텐데요.”
카운터 누나에게 꿀사과 30개를 건네며 호탕하게 말하자 놀란다.
“아. 저기 케이트가 다 도와줬죠.”
“아….”
옆에서 아무런 말이 없는 케이트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대로 납득해버린다.
역시.. 그 정도의 오버스펙이면 이 정도의 의뢰는 식은 죽 먹기겠지.
“그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사과 따기라....”
이런 일을 하기 아쉬운 인재라고 생각하는 듯 케이트를 바라보는 카운터 누나.
“아, 저랑 파티를 맺어주기로 해서…. 미안하게 됐지만, 아직은 어쩔 수 없죠.”
“네.”
조금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카운터누나에게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곤 보수 60G를 받았다.
“좋아. 그러면 얼른 밥 먹고 숙소부터 잡아볼까?”
“......”
환전을 받은 나는 케이트에게 말하며 마을의 술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후우~ 이세계지만 밥은 맛있는데?”
마을 술집을 찾은 우리는 각자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여 실컷 배를 채웠다.
여신은 그리 배고프지는 않았는지 적당히 수프로 끼니를 때웠다.
수프만 먹으면 배 안 고프려나.
조금 적게 먹는 여신의 모습에 약간 걱정되었지만, 괜히 내가 걱정해봤자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아저씨. 여기 더블배드 침실로 하나.”
배를 채운 우리는 숙소를 잡기 위해 여관으로 향했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여관 주인에게 더블배드를 주문하였다.
“....하, 하나?”
“응?”
내가 방 하나를 주문하자 같이 잘 줄은 몰랐다는 듯 여신이 당황하며 나에게 묻는다.
“당연한 거 아니야?”
“......히잇.”
나의 반응에 당황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이미 결제는 끝났다.
돈도 내가 들고 있으니 거부는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돈주머니를 여신에게 보여주며 키를 짤랑거렸다.
“으윽....”
내 행동에 여신 역시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의 반항은 없었다.
“으하~ 침대도 꽤나 푹신하네. 어떻게, 먼저 씻고 올래?”
“........”
“자꾸 그렇게 대답 안 할 거야? 나 서운해?”
“.......”
“뭐, 그래. 그러면 일단 먼저 씻고 와.”
내가 씻으러 간다면 여신 녀석이 도망갈지도 모른다.
어차피 도망가봤자 내 최면어플은 거리에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고 상관이야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도망가서 찾는 수고를 하는 건 귀찮은 것이다.
씻고 오면 그 반항적인 태도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씻으러 들어간 여신을 바라보며 최면어플을 만지작거렸다.
“......후우.”
“씻고 왔어?”
살짝 물기가 남은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오는 여신에게 나는 상냥하게 물어보았다.
“.........”
목욕을 막 끝내고 와서 기분이 좋았던 듯 살짝 홍조를 띄우며 미소를 짓고 있던 표정이 내 질문에 다시 굳어져 간다.
“왜 그렇게까지 나한테 반항적일까.”
“.........”
“너무 그렇게 나한테 대답 안 하면 내가 너무 서운할 텐데.”
“..........”
“뭐 됐어.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의 눈앞에 최면어플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깜짝 놀라며 이런 내 행동을 바라보는 여신.
하지만 여신이 걱정하는 만큼의 명령어는 입력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라’
어차피 계속해서 강압적으로 해봤자 마음의 문을 열 리 없었다.
일단은 대화부터 시작인 것이다.
“이 썩을 새끼….”
“워워. 명령어를 입력하자마자 바로 신랄하게 까이는구만.”
“뭐라고 입력한 거야?”
“솔직하게 말하라니까 존대도 사라진 건가? 뭐, 상관없어. 아무튼, 그냥 입력한 건 솔직하게 말해라. 이거 하나야.”
“솔직하게 말해?”
“그래. 이야기 좀 하자고.”
“너 같은 강간마랑 이야기할 건 없어.”
“너무 까칠하시네. 그래도 기분은 좋았잖아.”
“진짜로 강간마같은 발언이네. 단순히 기분이 좋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잖아. 어차피 어플로 기분좋게 만든 것 따위. 진짜로 기분 좋은 게 아니야.”
“흐음.. 내가 한 건 마지막에 클리 감도 10배밖에 없었는데 말이지. 거기에 나는 아직 삽입도 안 했다고. 강간마라고 하기엔 난 그저 대딸을 해줬을 뿐이야.”
“버러지 같은 년….”
“그래. 기왕 솔직해진 거 계속해서 욕해보자. 아무튼, 난 아직 널 강간하지 않았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대로 된 섹스를 해보려고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할 리가 없잖아!”
“그럼 내기를 한다면?”
“내기?”
“그래. 난 지금부터 이 최면어플에 손을 대지 않고, 너를 흥분시키도록 할게. 네가 절정 한다면 나의 승리. 네가 끝까지 버틴다면 너에게 걸린 이 최면을 풀고 넌 자유의 몸이 된다 어때?”
“자유의 몸이 되어봤자…. 마왕을 물리치지 않으면 여신계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그럼 내가 성실하게 마왕을 쓰러뜨리는 것까지 포함하도록 하자. 어때? 괜찮지 않아? 내 최면 능력은 도움이 될 텐데? 여신인 너마저 걸릴 정도면 마왕이나 사천왕 등등 녀석들을 최면에 걸어 제대로 싸우지 않고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치트능력이라고?”
“그건....”
“꽤나 괜찮은 제안이지 않아?”
“.......”
내 제안에 여신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 제안이 맞는 것일까 아닌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고민해봐야 답은 하나밖에 없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나의 지배하에 있어야 하는 건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알았어. 한 번 해보도록 할게.”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내 제안을 승낙하는 여신의 모습에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