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51화나의 용사님 (52/818)



〈 52화 〉51화나의 용사님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머릿속에서 의문만이 떠올랐다.

어째서 랜트와 노아가 키스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가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랜트와 노아는…….

“후우……. 역시 랜트하고키스하면…… 몸이 금방 뜨거워진다. 히히히, 그럼 곧바로 하자, 랜트~.”

“오늘은 특히나 적극적이네, 노아?”

“어제처럼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이, 이번에야말로 내가 이길 거야.”

노아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어째서 옷을 벗는 거예요, 노아?

설마,이미 랜트랑…… 거기다 어제라니…….

“하으…… 하아…….”

가슴이 괴롭다.

숨이 가빠진다.

“으음, 랜트.”

“왜, 노아?”

“역시 어제처럼 랜트가벗겨주라. 왠지 그편이 더 좋아.”

“알았어, 노아.”

랜트가 노아에게 미소를 지었다.

나랑 얘기하고 있었을 때와는 다른 얼굴이다.

살짝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랜트의 손이 노아의 옷을 향해 뻗어갔다.

랜트의 손이 노아의 옷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다.

“윽!”

그다음부터는 도저히  수가없었다.

가슴이 아파서, 아파서, 너무나도 아파와서.

그리고…… 그 장면을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어서.

장면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황급히 문 앞에서 떠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우으으, 어째서 내가 목욕탕 청소를…… 어라, 엘시 씨?”

티나가 평소에 열리지 않던 문에서 나와  이름을 부른 것 같았다.

티나의 말에 응답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 여관에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 말 없이 나가서…… 티나가 혹시나  걱정해서 랜트의 방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랜트와 노아가 방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랜트와 노아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네,  그러세요, 티나…….”

간신히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참으며 대답했다.

“이 시간에 엘시 씨가 내려온 건 드물어서요.”

“그냥……  산책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세요?”

“티나~ 뭐하니~ 빨리 청소 도구 가져오렴~”

평소 쓰지 않던 방에서 미란다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엄마!”

티나가 미란다 씨의 말에 대답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티나가 주방에 들어간 걸 보고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목적지도 없이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달리는 게 지쳐서 멈췄을 때는 나는 공원에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자리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골랐지만, 가슴을 죄어오는 아픔은 없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언제부터…….”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대체 언제부터 랜트와 노아는 그런 관계가 된 걸까.

대체 언제부터…….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도 아파오는 가슴과 지끈거리는 머리로는 제대로 된 답을 낼 수 없었다.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아파오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 머리가 아파오는 걸까.

“흐윽, 흑, 훌쩍, 흐읏!”

어째서 이렇게나 눈물이 흐르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나 슬픈 걸까.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계속되는 의문.

하지만 이 의문만큼은 금방 답을 찾을  있었다.

랜트와 함께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랜트가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랜트가 내게 미소를 지으면 나도 기뻤다.

랜트의 모습을 어느샌가 눈으로 좇고 있었다.

그리고 랜트가 노아를 향해 나에게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짓는 순간.

가슴이 아팠다.

“아아, 저는…….”

그래, 나는…….

“랜트를 좋아했었던 거군요…….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예요.”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사랑이 깨져버리고 말아 마음이 아픈 거였다.

“랜트랑 노아는 그런 사이였어요…… 그런 것도 모르고 저는…….”

랜트를 좋아하니까 노아가 랜트에게 달라붙는 게 싫었던 것뿐이다

바보같이 랜트와 노아의 애정행각을 방해했을 뿐이었다.

“정말…… 바보 같네요. 저…… 아아,그렇구나…….”

신전에서 랜트가 다음에도 노아와 같이 오자는 말은 사랑하는 노아와 함께 솔리신에게 빌고 싶었던 거다.

내가 아닌 노아와 함께 솔리신에게 둘의 행복을 기도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겠죠…… 신성한 신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슴이 더욱 아파왔다.

“랜트…….”

나도 모르는 사이입에서 랜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랜트…….”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랜트…….”

나는 목숨이 구해진 순간부터.

“랜…… 트…….”

랜트를 처음 본 순간부터.

“흐윽, 훌쩍 랜트…….”

나를 구해준 용사님에게.

“훌쩍, 하으, 흐윽, 랜트…….”

랜트에게 사랑에 빠진거였다.

하지만.

랜트는 나의 용사님이 아니었다.

“허으, 훌쩍 후윽……”

크게 울고 싶었다.

있는 힘껏 슬픔을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이 너무 아파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소리조차 지를 수 없이 가만히 숨을 죽이며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랜트는 상냥하다.

나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분명 랜트는 상냥한 멋진 사람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착각을 하고 말았던 거다.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랜트가.

내가 사랑하고 있는 랜트가.

똑같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무의식중에.

자기 멋대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 상냥함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였고.

랜트가 고른 사람은 내가 아닌 노아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나는 노아처럼 적극적이지 않았다.

노아처럼…… 직접 나서서 랜트에게 호의를 나타내지 않았다.

분명 랜트도 노아같이 자신에게 호감을 나타내는 여성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저 부끄러워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을 랜트가 좋아할 리 없었다.

멋대로 랜트를 생각한다고 하면서 랜트의 제안을 거절한 나 같은여자를…… 랜트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가슴이 더 죄어왔다.

어째서 나는 착각을 하며 스스로 나아가지 못한 걸까.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용사님의 성녀님이…… 용사님에게 선택받지 못한 나는…… 랜트에게 있어서 그냥 평범한 동료일 뿐이다.

랜트의 사랑을…… 나로선 받을 수 없다.

나는 용사님의 성녀가 될  없었다.

“흐윽, 훌쩍.”

뚝뚝 눈물이 떨어져 땅을 적셨다.



공원에서 눈물을 흘린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벤치에 앉아 여전히 한심하게 울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눈물을 흘리니 조금은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훌쩍 ……돌아가야겠죠.”

이대로 계속 밖에 있어봤자 아무런 해결도 안 된다.

아니, 애초에 해결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 혼자 착각해서 사실을 알고  혼자 슬퍼했을 뿐이다.

“내일부터…… 어떤 얼굴로 랜트를 보면 될까요…… 어떤 얼굴로 노아를…….”

노아는 소중한 동료다.

하지만 과연 지금  노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마는 걸까.

노아는 그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이루어냈을 뿐이다.

그런 노아를 내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너무나도 제멋대로이다.

그리고 나는 노아를 미워하고 싶지도 싫어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노아를 본 순간 그러한 감정이 들고 만다면……

그리고 나를 골라주지 않았다고 해서 랜트를 미워하게 되는 경우까지 온다면……

정말로 나는추악해져 버린 나를 용서하지 못할 거다.

그런 마음이 들고 말아버리면 분명 앞으로 같이 파티를 해내 갈 수 없을 거다.

같이 있는 게 괴롭고 슬프고 미칠  같아서…… 분명 나는 추악해질 대로 추악해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가 스스로…… 파티에서 빠지자.

나는 랜트도 노아도 좋아한다.

제멋대로인 질투와 시기로 둘을 미워하고 싶지도 상처입히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음? 이거 이런 야밤에 같은 동포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때 공원으로  남자가 들어왔다.

남성용의 견습이 아닌 정식 신관복.

같은 솔리신을 섬기는 신관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최대한 눈물을 흘리느라 부어오른 눈가를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 저는…… 그,  산책을 하느라…….”

“아아, 그러시군요. 산책. 네, 좋지요. 산책을 하면서 건강을 챙기는 습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막무가내로 나와버렸다.

거짓말을 하고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네…….”

“하지만 이런 시기에 밤 산책은 삼가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최근에는 초보 킬러란 무서운 자들이 있다고 하니까요. 동포와 같은 견습 신관은 노려질 수도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 거,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후후, 아닙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요. 같은 솔리신을 숭배하는 동포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하아아암…….”

신관님은 무척이나 졸려 보이셨다.

“저기…….”

“응? 뭔가요?”

“무척이나 졸려 보이시는데…… 신관님은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나요?”

어째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스스로도 잘 몰랐었다.

그저 나에게 친절을 베풀며 걱정해주신 신관님이 걱정돼서였을지도 몰랐다.

“아아, 저 말입니까…… 사실 저도 이런 밤에 돌아다니기는 싫었습니다만…… 동료의 부탁이 있어서 말입니다. 잠시 옮길 물건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옮길 물건이요?”

“네. 제 동료는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뭐, 저도 방향성은 다르지만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가끔씩 그의 취미에 협력하여 함께 즐기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독특한 취미를 즐기려면 독특한 물건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최근에는 그다지  취미도 즐기지 못할 것 같아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즐기고 싶다고 떼를 쓰더군요. 하하하하, 정말 곤란한 친구입니다.”

“네…… 그러시군요.”

이런 공원 근처에서 찾는 물건이란 무엇일까.

여우의 쉼터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역시 랜트와 노아의 얼굴을 보는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일까 시간 끌기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걱정해주신 신관님을 잠시 도와드리고 싶었다.

“혹시 괜찮다면 저도…… 물건을 찾는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조금이라도 마음을 더 정리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물건은 찾았으니까요.”

“그러세요?”

신관님은 자상하신 미소를띠시며 끄덕이셨다.

“네. 마침 제 눈앞에 이렇게 나타났으니까요.”

“네?”

신관님은 대체 무슨말씀을 하시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내 뒤에 찾는 물건이 있었던 걸까?

뒤를 돌아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물건은 없었다.

신관님이 웃음을 터트리셨다.

“하하하하, 당신의 뒤에는 없답니다. 으음, 이름이…….”

“아, 엘시라고 해요.”

“아아, 그렇습니까.”

신관님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기소개를 하셨다.

“저는 가비다라고 합니다. 엘시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 뒤에는 제가 찾는 물건은 없습니다. 그도 그럴 듯이…….”

가비다 신관님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셨다.

“제가 찾는 물건은 당신이니까요.”

“네?”

가비다 신관님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

“정확히는…… 당신 같이 이런 야밤에 어슬렁거리는 연약하고 순진해 보이는 초보 모험가입니다. 이야~ 정말 다행이군요. 당신이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엘시 씨 같은 어여쁜 사람이라면 저희들도 정말 재밌게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 그게 무슨…….”

“정말 최근에는 곤란해졌답니다. 모험가 길드에서 이상한 마도구를 만들어내고 말이죠.

그래서 이번만 즐기고 나면 당분간은 다른 방법을 고안해내며 잠적을 해야 했는데……

이번에 엘시 씨 같은 정말 딱 즐기기 좋은 분이 나타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마도구.
물건.
취미.

머릿속에서 3개의 단어와 가비다 신관님의 말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초보 킬러…….”

“후후훗, 과연 당신은범해질 때 어떤 소리를낼지 정말 기대되는군요.”

가비다 신관님의 입가가초승달처럼 쪼개지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히읏!”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

분명 여기서 잡히면…… 영영 랜트하고도 노아하고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가비다 신관님에게서 등을 돌릴 때.

“아아, 참고로…….”

“으읍!”

누군가가 헝겊으로 내 입을 막았다.

“저는 혼자서 돌아다니진 않았답니다. 저는 방심을 유도하고…… 포획하는 담당은 따로 있죠. 어떤가요? 볼프 씨. 엘시 씨는 참 아름답지 않나요?”

“그래, 예술적인 화살받이가 되겠어. 목소리도 들어보니 비명도 참 예쁠 것 같고 말이야.”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갔다.

“후후후, 볼프 씨도 분명 만족하실 것 같군요.”

“하아아암…… 그럼 빨리 데리고 갑시다. 빨리 옮겨서 한숨 자고 싶군요.”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나도 마찬가지야. 정말이지,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볼프는 제멋대로야. 지금쯤 아지트에서 혼자 자고 있을걸?”

랜트…… 노아……

“어쩔 수 없죠, 우리 중에서는 그가 제일 강하니까요.”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한 채 내 의식은 그대로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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