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121화-영감
미란다 씨를 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빈자리에 앉아 티나에게 물었다.
"저기, 티나. 오늘이 미란다 씨 차례란 건……."
티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랜트 씨가 엄마랑 장 보러 간 동안 모두와 모여서 상담했어요. 그래서 남은 날을 세보니 딱 오늘이어서…… 엄마가 차지하게 됐어요."
"하지만 미란다 씨도 일이……."
"엄마는 저보다 체력이 훨씬 많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저는 아직 모르지만…… 랜트 씨가 기절할 정도로 하지만 않으신다면야……."
……오늘 미란다 씨랑 할 때는 각별히 주의를 해야겠다.
"저녁을 먹으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랜트 씨도 이만 올라가서 쉬세요. 저는 엄마를 도우러 갈게요."
"응, 티나."
"아,목욕하시는 건 어떠세요? 사실 밤 당번을 정할 때 니냐 씨에 방에서 하려던 걸 목욕하면서 하는 얘기로 바뀌어서…… 지금 목욕물 데워져 있어요."
"그래? 그럼 목욕하러 갈게."
티나는 주방에 들어가고 나는 욕탕에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가죽갑옷과 쇠장갑을 인벤토리에 넣은 다음 옷을 다 벗고 나는 비누로 몸을 씻은 다음 욕탕에 들어갔다.
"후우……."
15분간의 짧은 목욕을 마치고 인벤토리에서 평상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는 계단을 올라가 4층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방의 4배나 되는 내 방.
정면에는 7인용의 커다란 침대와 옆에는 쓰레기통과 테이블과 등불이 있다.
"흐읍!"
나는 푹신푹신한 내 침대를 향해 다이빙했다.
탄성으로 인해살짝 위로 튕겼지만, 곧바로 온몸을 푹신한 침대의 감촉이 감쌌다.
커다란 침대를 보니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행동을 해냈다.
몸을 뒤집어 침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녁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그동안 뭘 하면 될까.
그래, 혼자 있으니 간단히 상딸이라고 하자.
전에 쓰기로 한 솔리신의 봉춤을 지금…… 아.
그때 미란다 씨와 장을 보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신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접신몽…….
이 스킬로 오늘 밤 아마 솔리신을 만나기 전까진 솔리신의 망상을 자제하기로 했다.
영감을 얻었을 때 스킬의 이름도 효과도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억제술을 얻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접신몽에도 발동조건이 있다.
그건 바로 잠에 드는 것.
이 스킬을 쓰자고 마음을 먹고 잠에 들면 스킬이 발동된다.
과연…… 솔리신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역시 좀 불안해진다.
이 스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까…….
그때 엘시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솔리신의 석상도 엘프족 성녀가 꿈에서 본 솔리신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거라고 했다.
엘시라면 내가가진 스킬에 관련된 이야기를 뭔가알지도 모른다.
침대에서 일어나 나는 방을 나갔다.
내 바로 옆방.
엘시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끼익
"네, 누구세요? 아, 랜트! 돌아오셨네요."
내가 방문을 두드리자 어제 산 평상복을 입은 엘시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법을 다 사용하지 않았죠! 힐 받으시러 온 거예요?"
엘시하고는 마력량을 늘리기 위해 그날 마력을 다 쓰지 않으면 내게 힐을 걸어준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응,그것도 있고…… 엘시하고도 얘기하고 싶어서."
"들어오세요."
엘시의 방에 들어갔다.
나는 엘시와 나란히 침대에 앉았다.
엘시가 내 팔뚝에 양손을 댔다.
"그럼 전 힐을 걸게요. 랜트, 어떤 얘기를 듣고 싶은 건가요? 힐!"
연녹색의 빛이 엘시의 손에서 나오며 팔뚝을 감쌌다.
"노아는 지금 뭐 해? 엘시한테 얘기 듣고 있던 게 아니었어?"
"노아는 밤 당번을 정하고 난 뒤에 방에서 자고 있어요. 니냐 씨도 자기 방에 계세요. 아, 그리고 오늘 밤 당번은……."
"응, 티나에게 들었어. 미란다 씨지?"
"네…… 이틀 전에는 저와 노아는 동시에 했고 티나도 그날에…… 그리고 미란다 씨도 어제 했으니까…… 순서를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 그것보다 랜트는 어떤 얘기를 듣고 싶으세요?"
밤 얘기에 관한 건 부끄러운지 엘시는 화제를 전환했다.
평소 같으면 모 더 부끄러워하는 엘시의 모습을 보고 싶지만, 지금은 나도 엘시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엘시. 엘프족 성녀님이 꿈에서 본 솔리신의 모습을 본떠서 그 예배당에 있는 솔리신 석상이 만들어졌다고 했잖아."
"네. 정확히는 처음 만들어진 석상은 솔라리오에 있고 다른 곳에 있는 석상은 그 석상을 따라 만든 거예요. 아, 솔라리오라는 건 서쪽에 위치한 솔리신을 받드는 신성국가를 말하는 거예요."
"그렇구나. 그럼 있지…… 그 엘프족 성녀님 말고 솔리신의 모습을 꿈에서 본 사람은 있어?"
"엘프족 성녀님 말고요? 으음……."
엘시는 곰곰이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상 솔리신의 모습을 본 건 꿈에서 본 엘프족 신녀님 뿐이에요. 아, 힐!"
"그렇구나……."
"하지만 모습은 못 봐도 계시를 듣는 경우는 꽤 있어요. 당대의 성녀님들은 모두 솔리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해요."
"그래?"
"네! 계시를 듣는 횟수는 적지만 성녀님들은 꼭 한 번씩은 솔리신의 목소리를 들으셨어요."
"어떤 말을 했는데?"
"대부분은 마왕이 출현하거나 드래곤이 폭주해서 인류의 위기가 닥쳤을 때예요."
"드래곤?"
이 세상에는 드래곤이 있다는 거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주로 촌장님이 읽어주신 동화에 많이 나왔다.
엘시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네. 엘프보다도 오랜 세월을 살고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마법에 탁월한 생명체. 드래곤이에요."
"나도 동화로는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드래곤은 말도 해?"
"네. 드래곤은 사람의 언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요.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자유분방한 종족인 드래곤은 마족에게도 인류에게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요. 한 일설에 따르면 드래곤은 솔리신과 베인신의 실수라는 말이있어요."
"솔리신과 베인신의 실수?"
"네. 솔리신이 용사님을 만들어내시기 전에 드래곤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베인신이 드래곤을 위협으로 보고 손을 썼어요. 솔리신과 베인신의 힘이 합쳐진 드래곤은 두 신의 예상과 다르게 강한 힘을 가졌지만 두 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존재가 됐다는 설이에요."
"엘시는 그런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거야?"
"그…… 신전에는 도서관도 있어서…… 어릴 적에는 도서관에 자주 들러서 신화나 전설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렇구나……."
내 스킬에 관련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대신 드래곤에 대한 얘기는 들을 수 있었다.
"아, 힐이 멈췄네요, 힐!"
"있지, 엘시. 드래곤은 그렇게 위험했어?"
"네. 옛날에는 나라 하나가 멸망할 정도였다고 해요. 가장최근에 나타났던 건…… 약 2백 년 전에 나타난 포이즌 드래곤 칼리예요.
마족의 영토인 어비스와 에스칼의 영토의 경계에서 갑자기 나타난 칼리의 폭주로 인해 산 하나가 독으로 뒤덮인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때는 마왕도 없고 용사님도 나타나지 않아서…… 마족과 인간이 힘을 합쳐서 포이즌 드래곤을 쫓아낼 수 있었어요."
"해치우진 못했구나."
"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마족과 인류의 관계는 그나마 호전된 사건이기도 했어요. 아, 힐!"
역시 전설적인 존재가 아니면 드래곤 같은 강한 존재는 쓰러뜨리기 어려운가 보다.
그 후 엘시가 힐을 다 쓸 때까지 나는 엘시의 얘기를 들었다.
드래곤 얘기뿐만이 아닌 기사국가 브리단에 관한 전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줬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힐을 다 끝내고 이제는 싱글벙글 웃으며 전설에 대해 말하는 엘시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도중 방문이 열렸다.
"엘시~ 슬슬 노아도 깨워서 밥 먹으러…… 어머, 랜트 왔었어?"
방문을 연 건 수수한 평상복을 입은 니냐 씨였다.
"네. 엘시의 훈련도 도울 겸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훈련?"
"네. 힐의 숙달과 마력량을 늘리기 위해서요."
"아아, 그 훈련 말이지. 그러고 보니 그 훈련도 있었구나. 미안, 엘시. 나 전투 쪽이 메인이라 그 훈련에 대해 깜빡하고 있었어."
"아니요, 괜찮아요. 오늘은 랜트에게 힐을 전부 썼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니냐 씨는 밥을 같이 먹자고 엘시의 방에 찾아왔다.
밖의 창문을 쳐다보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시에게 말했다.
"엘시. 먼저 니냐 씨랑 내려가서 음식을 시켜줘. 노아는 내가 깨울게."
"네, 랜트. 가요, 니냐 씨."
"알았어,엘시."
엘시와 니냐 씨는 방을 나가 계단을 내려갔다.
나도 엘시의 방을 나가고 바로 옆에 있는 노아의 방에 들어갔다.
"음냐…… 으으음……."
평상복을 입은 채로 배를 드러낸 채 노아가 자고 있었다.
무척이나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노아에게 다가가 살며시 옷을 내려 배를 가린 다음 살짝 노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노아, 일어나."
"음냐…… 으음……? 랜…… 트?"
"밥 먹으러 가자."
"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노아는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빈 다음 기지개를 켰다.
"하아아아아암……. 역시 나도 모르게 피로가 쌓였나 봐. 코볼트랑 싸울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직 4층에 내려간 지 하루밖에안 됐잖아. 점점 익숙해질거야."
"히힛, 그러겠지? 아아, 일어났더니 배고프다. 빨리 밥 먹으러 가자!"
"응."
나와 노아는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서는 엘시와 니냐 씨가 자리를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잠시 기다리자 티나가 음식을 가져와 줬다.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우선 노아와 니냐 씨가학생과 선생처럼 오늘 노아의 움직임에 대한 개선점과 집중해야 할 점을 말한 후 엘시가 나에게 들려주었던 포이즌 드래곤에 관한 얘기를 했다.
포이즌 드래곤에 관한 이야기는 노아와 니냐 씨도 알고 있었다.
둘이 보충하기를 포이즌 드래곤을 내쫓았을 때 가장 공헌을 한 건 다름이 아닌 바로 플단의 모험가들이었다고 한다.
아직 마족에 관한 적의가 그리 거치지 않았을 때 나라의 의뢰를 받고 플단의 모험가들이 마족들과 힘을 합쳐 포이즌 드래곤을 내쫓았다고 한다.
그 후로 플단은 마족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플단에 서큐버스들이 많이 살 수 있게 된 건 이때부터라고 해. 다른 마족은 모습을 숨기며 모험가를 하거나 어비스에 있는 모험가 길드에서 플단을 통해 건네받은 의뢰를 수행해 보수를 받는 등 여러 가지 연계를 하고 있대.
이쪽에서는 어비스에서 얻을 수 없는 소재를, 어비스에서는 이쪽에선 얻을 수 없는 소재를 교환하면서 말이야."
역시 마왕이 나타나지않는 한 마족들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사고를 지니고 있는 것같다.
즉 마왕이 나타나면 마족들은 세뇌라도 걸린 듯이 사람들을 해치는 것일까?
마왕이 부활하면 예를 들어 이런 비극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마족과 인간이공존하는 평화로운 마을.
그 마을에는 마족 소년과 인간 소녀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왕의 부활로 인해 핏속에 새겨진 충동에 괴로워하는 남자아이.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할 때 살육 충동은 강렬한 성욕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마족들도 마찬가지!
언제나 가장 친한 이웃이자 소꿉친구에게 욕정을 품으며 짐승과도 같이 던지는 남자아이!
울부짖는 소녀의 목소리는 성욕에 의해 뒤덮이고 말고 평화로운 마을은 단숨에 마족과 인간의 난교의 현장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싸구려 AV 같은 설정이지만 싸구려도 싸구려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이유 설명 없이 그 상황을 즐기는 것도 딸딸을 하는 데에는 필요한 법이다.
◈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밥을 맛있게 먹은 후 나는 다시 침대에 다이빙을 하며 침대의 포근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결국 내 스킬에 관해서는 힌트를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밥도 맛있게 먹고 기분도 편안하다.
생각해보면 너무 고민할필요는 없지 않을까?
솔리신은 생명과 창조를 관장하는 여신님이다.
그런 여신님에게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에 관한 상상을 하는 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자.
내가다른 세계에서 전생을 했으니 호기심을 가져서 나에게 이런 스킬을 내린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솔리신을 만나는 게기대가 된다.
……하지만 솔리신에 대한 야한 상상은 오늘은 안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