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화 〉307화-레니 씨의 의뢰!
◈-레니SIDE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을 하고 벌써 8년이 지났다.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나 말고도 서류 일을 하는 직원들은 제대로 있지만 접수처에서 담당하는 건 거의 나 혼자 하고 있다.
물론 그건 지루한 일이지만 나에겐 딱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체력에 관해서도 한때 길드장님이 직접 던전에 안내해줘서 한 번 승격을 시켜준 적도 있기에 문제없다.
접수원은 이른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모험가 길드만이 아니라 도서관, 음식점, 식당.
대부분 접수원은 일정이상의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다.
길드장님은 내 성실함이 접수원으로 뽑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다음으로는 내 용모에 의한 거겠지.
"레니~ 이만 퇴근하지 그래?"
접수처 뒤에 있는 서류공간에서 다른 퀘스트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직장 동료인 메지나가 말을 걸어왔다.
"네, 이 서류만 끝내고 퇴근하겠습니다."
"정말~ 조금 쉬엄쉬엄해도 될 텐데. 레니는 언제나 성실하네."
"이게 제 일이니까요."
"정말……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레니는 변함없다니까. 좋아, 그럼 나도 조금만 더 힘내볼까."
그리고 30분 정도 일 처리를 한 다음 나는 모험가 길드를 나와 8년 전부터 묶고 있는 모험가 길드가 소유하고 있는 직원 숙사로 들어갔다.
몸을 씻고아래 속옷과 잠옷용 와이셔츠를 입고 조금 늦은 저녁을 먹은 다음 나는 침대에 몸을 눕히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메지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 왔을 때부터 변함없다라……."
나는 그 말을 틀리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좀 더 미숙하고 생각이 없고…… 각오도 없었다.
서류일도 제대로 처리하는 게 어려워서 매일 숙사로 들어오면 과거의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비슷한 유형인 폐기 처분해도 되는 서류들을 바라보며 더욱 빠르고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연습했던 나날이다.
그리고 연습한 성과가 다음 날 일에서 능숙해지면 스스로 기뻐하기도 했다.
그때는 아직 풋풋하고 스스로도 활발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낙천…… 적이었죠."
아직 신입 접수원인 나를 보고 칭찬해주는 모험가분들.
내가 신입인 것도 모르고 베테랑 접수원인 줄 알고 안심하고 말을 거는 초보 모험가분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나는 기뻤다.
접수원이 되고 싶었던 것도 어릴 적 모험가 길드에서 웃으며 다양한 모험가들과 대화하는 접수원이 멋지고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8년간 접수원을 하면서 다양한 모험가분들을 만났다.
그다지 깊은 인연은 없고 얼굴만 아는 사이인 모험가분들도 있기도 하며 니냐님 같은 골치를 썩이는 모험가분들도 있다.
그리고 가끔씩은…….
"랜트 님 같은 상냥하시고 무척이나 강하신 분도……."
랜트 님.
약 두 달 전 나타난 신성과도 같은 모험가분.
떠올려보면 처음 랜트 님이 방문하셨을 때는 실례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우람한 덩치와 그 단단해 보이는 근육에 다른 지역에서 플단에 모험가 등록을 하러 온 모험가인줄 만알았기에 설마 20살일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티키아님에게도 비슷한 반응을 해버렸네요……."
자신은 아직 미숙하다고 생각될 따름이다.
모험가는 대부분 거친 성격이 많다.
하지만 거칠다고 해도 심성이 나쁘신 분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래도 랜트 님 같은 부류는 소수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2달 만에 130년 만에 탄생하는 S랭크 모험가가 되시는 분은 아마 앞으로도 랜트 님밖에 없을 거다.
모험가가 된 첫날에 홉고블린을 해치우고 일주일도 안 돼서 B랭크의 범죄집단이던 초보 킬러들을 해치워 C랭크로 승급.
그리고 2달도 안 돼서 플단의 최고 전력인 A랭크 모험가들과 함께 범람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가장 큰 공적을 세워 S랭크로.
만약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자가 이 공적들을 들으면 3류 소설도 안 되는 망상으로 치부될 정도로 터무니없는 공적이다.
랜트 님은 매우 심성이 착하시고 친절하고 그리고…….
"여성 분들에게도 인기가 많으시죠."
저번에 여우의 쉼터의 여주인분과 그 따님분과 함께 오셨을 때도 그렇다.
랜트 님의 주위에는 여성분들이 많다.
물론 랜트 님은 이성으로서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다.
힘도, 재력도, 그리고 성격도 좋으신 분.
소문에 따르면 그 날 모인 모든 여성이 랜트 님의 여자라고 한다.
"아무래도 그건 거짓말이겠지요."
파티멤버 분들은 하렘에 들어갔을 거라곤 생각한다.
거기다 같은동향이신 멜리사님도…….
하지만 묵고 있는 여관의 여주인분과 그 따님까지 하렘이라는 건 너무 과장된 이야기다.
고랭크 모험가분들 중에서 많은 여성 또는 많은 남성들과 사귀는 분들도 있다.
우리 플단의 A랭크 모험가들은 아직 그런 분이 없으시지만…… B랭크 모험가인 몇몇 모험가들은 여러 여자를 사귀고 계시는 분도 있다.
다른 지역의 고랭크 모험가.
예를 들어 생명과 창조를 관장하는 창조신. 솔리신을 섬기는 솔라리오의 모험가나 팔라딘은 사랑의 전파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성과 관계를 가진다고도 한다.
물론 문란한 관계가 아닌 상호의 동의를 얻어서 생기는 관계라고 한다.
분명 랜트 님도 그런 부류겠지.
강한 모험가일수록 성욕도 강하다고 한다.
아무리 심성이 착하시더라도 무척이나 강하신 랜트 님이라면 그만큼 성욕도 대단하겠지.
그 증거로 랜트 님은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뚫어져라 내 가슴을 쳐다봤었다.
물론 잠깐뿐이었지만 접수원을 하고 있어서 다른 모험가들의 시선에는 민감하고 다른 모험가들 분도 내 얼굴이나 가슴에 시선을 많이 줄 때가 많기에 강인한 랜트 님의 시선은 확실히 포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정한 날을 지날 때 노아님이나 엘시님이 랜트 님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아할 때 두분과도 사귀고 있는 건 명백하다.
거기다…… 니냐님하고도.
하아…… 그때 니냐님이 랜트 님에게 다가갔을 때는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설마 니냐님도 랜트 님의 하렘에 들어갈 줄은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파티로서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티키아님도 랜트 님의 파티에 들어갔다.
티키아님이 파티에 들어간 다음 날.
티키아님이 랜트 님에게 보내는 시선을 보아 아마 파티에 들어간 날 밤에 바로 관계를 가졌을 거라고 생각됐다.
의외로 랜트 님은 여성을 유혹하는 게 능숙한 걸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씩 랜트 님의 방긋 웃는 미소나 친절히 대해주시는 모습에는 강한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랜트 님은 이미 많은 여성과 하렘을 차리고 있으신 분.
그저 매일 보는 접수원인 나에게 성욕이라면 몰라도 일정이상의 호감은 담고 있지 않을 거다.
애초에 접수원으로서 특정 모험가분들과 너무 친밀한 관계가 되면 안 된다.
이건 모험가 길드 접수원에게 내려오는 교훈 중 하나다.
만에 하나 가지게 되다가 혹여…… 그 모험가분이 큰 변을 당하게 된다면 큰 상처를 입을 뿐이니까.
나도 과거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아주 잘 알고 있다.
물론 랜트 님이 변을 당하실만한 분은 아니지만…….
세상은 어찌 돌아갈지 모르는 법이다.
"교훈……."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한 과거의 일을.
내가…… 진심으로 웃는 일이 거의 없어질 때의 일을.
◈
그때의 나는 아직 접수원으로 일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었다.
서류 일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조금은 내 가슴이나 엉덩이나 얼굴을 향한 음흉한 시선에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진~짜 짜증 난다니까! 갑자기 잠시 얘기할 게 있다면서 불러서는 자기 남친한테 여우짓하지 말라고나 하고 말이야. 웃기지 않아?"
"그건 니냐님이 그런 복장을 하고 다녀서 그런 거 아닐까요?"
"난 남자의 시선이 좋으니까 이 복장을 하는 거야. 그냥 복장만 이럴 뿐 딱히 유혹하건 하진 않았는걸. 남자의 성욕이라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분하면 좀 더 자기가 대쉬해서 남친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만이잖아!"
"그래서…… 또 파티 해산하신 건가요?"
"그래! 아아 정말! 이젠 솔로야 솔로! 솔로로 남자들의 시선도 잔뜩 받고 다른 여자들의 음침한 말과도 안녕이야!"
"하지만 솔로는 힘들 겁니다. 적어도 한 명이라도 동료를 만드시는 게……."
"싫어. 이젠 파티는 질릴 대로 질렸어!"
그때는 니냐님이 2년 사이에 파티를 10번 이상 해산했었고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할 시기였다.
"그건 그렇고 레니~ 레니는 남자 안 만들어?"
"지금 제게 그럴 여유는 없습니다. 일하기도 바쁜걸요."
"조금은 숨 좀 돌리면 어때? 너무 일에만 치우치다간 남자 절대 안 생길걸? 레니는 몸매도 얼굴도 좋잖아? 대부분의 남자 모험가들이 나를 제외하면 레니의 가슴에 눈길이 가는 거 다 안다?"
"저도 그 정돈 압니다. 모험가들은 피 많이 보는 직업이니 그만큼 성욕에 대한 충동도 크시겠죠. 그런 사항은 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머, 그럼 대달라고 하는 남자가 있으면 할 거야?"
"그것과는 별개입니다. 니냐님, 그 이상 성희롱은 그만둬주세요."
"성희롱이라니~ 단순히 궁금한 걸 물은 것뿐이잖아~ 그보다 평소에 자위는 제대로 하고 있어? 성욕도 너무 쌓이면 일에 지장을……."
"성희롱입니다."
"치이~."
"저기……."
"아, 미안미안 뒤에 사람 있었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일 잘해 레니~."
"네, 니냐님. 잘 가세요."
니냐님이 돌아가시고 그때의 내 앞에는 모험가가 된 지 석 달째가 되는 E급 모험가이신 덴저 님이 계셨다.
"레니씨! 오늘은 코볼트 잔뜩 잡았어요!무려 12마리나요!"
덴저 님은 플단에는 드물게 솔로로 활동하시는 모험가분이셨다.
덴저 님은 혼자 활동하셔도 충분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계셨고 다른 모험가들로부터도 재능 있는 신입이라는 인식이었다.
물론 나도 그런 덴저 님은 크게 될 모험가라는 인상을 품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1살 어린 덴저 님을.
나를 보면 해맑게 웃는 덴저 님을.
나는 동생이 있었다면 덴저 님 같았을까라고 생각했다.
"대단하십니다, 덴저 님. 다음에는 더욱 잡으실 수 있으시겠네요."
"물론이죠!"
그때의 나는 모험가분들의 성장을 내 성장처럼 기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의식적으로 모험가분들에게 더한 성장과 성과를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강했다.
동생 같아 보이는 덴저 님에게는 그 경향이 더 강했다.
"이야~ 하지만 조금 방심해버려서 팔에 상처를 입고 말았어요."
"괜찮으신가요?"
"아, 괜찮아요. 신전에서 치료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상당히 돈이 깨져서…… 에효, 치료비만큼 벌려면 며칠을 더 사냥해야 하는지."
"전 덴저 님이라면 좀 더 성장하셔서 치료비 정도는 금방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요?"
"네. 그러니 덴저씨는 너무 풀이 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덴저 님은 재능 넘치신 분이니까요."
"에헤헤헤, 고맙습니다, 레니씨!"
무책임한 말.
현실을 생각하지 않는 입에 발린 말이다.
원래라면 치료를 해도 팔이 완전히 회복됐는지 확인 기간을 가지라고 해야 했다.
다음 날 덴저 님은 평소처럼 모험가 길드로 와 길드에서 정기적으로 배포하는소재 수집 의뢰서를 가지고 왔다.
"레니씨! 여기 의뢰서요!"
"네. 코볼트의 무기 회수 의뢰 말씀이시죠?"
"네! 오늘은 더 분발해서 단번에 치료비만큼 벌 겁니다!"
이때 나는 무리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우선하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힘내주세요, 덴저 님! 오늘의 의욕적인 덴저 님이라면 더욱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무책임하게 덴저 님의 의욕을 더 불타오르게 만들고 말았다.
"네!"
덴저 님은 평소처럼 힘차게 모험가길드를 나갔다.
그리고 그 후.
내가 덴저 님의 그 모습을 보는 날은 오지 않았다.
점심이 지날 무렵.
평소에 돌아올 시간이 돼도 덴저 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니……."
그날 니냐님이 이상하게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왔다.
"어서 오세요, 니냐님. 무슨 일 있으셨나요?"
니냐님은 한 손에 검 한자루를 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검이었다.
"……덴저가 죽었어."
"네?"
순간 니냐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솔로 활동은 오늘부터니까. 혼자서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시험하기 위해 3층에서 사냥하고 있었어. 오늘은 좀 깊이 들어갔는데. 거기서……
덴저의 시체를 발견했어. 시체는…… 우선 내가 옮기다가 다른 모험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신전으로 옮겼어.
덴저는 아직 E급이라서 인식표도 없으니까…… 대신 여기 덴저가 갖고 있던 검을 대신 갖고 왔어."
니냐님이 한 손에 들고 있었던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검.
그것은 덴저 님의 검이었다.
"그…… 런……."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모험가들이 죽은 소식을 들은 건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모험가는 언제나 마물들과 싸우는 것이 일상이기에 언제나 죽을 위기에 도사려 있는 직업이나 다름없다.
B랭크 모험가라도 C랭크 모험가라도 종종 목숨을 잃으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때마다 애석해했다.
슬퍼했다.
하지만 이번 소식은 나에게 큰 충격을주었다.
-힘내주세요, 덴저 님! 오늘의 의욕적인 덴저 님이라면 더욱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어제 내가 덴저 님에게 한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