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화 〉451화-질풍과 호염
"라이파……."
"왜? 이런 건 화끈하게 해야 한다고?"
"너무 소리가 커…… 귀가 아프잖아."
"아하하! 그건 미안하게 됐네!"
주변에서 모험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둘은 누구야?"
"왜 던전 크래셔를 찾는 거지?"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안 보이네?"
"휴일이라 그렇지. 게다가 오늘은 레니 씨도 휴일이잖아."
"아, 오늘이 그날인가? 어쩐지 뇌창과 그림자 고양이가 둘이서만 훈련장가더라."
"……여기엔 없는 것 같은데, 라이파?"
"뭐야? 헛걸음이야? 뭐, 길드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만나겠지."
그때였다.
"응? 누가 랜트 찾아?"
훈련장을 보이는 곳에서 검은 고양이 묘인족 도적 여성과 그 옆을 따라오는 분홍색 머리의 매우 선정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아마…… 엘프로 보이는 창술사 여성이 나왔다.
분명 던전 크래셔의 이름은 랜트.
그 이름이 입에 올라가는 것과 방금 말한 친근한 느낌으로 보아 그녀가 던전 크래셔의 관계자라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건 라이파도 마찬가지.
라이파는 씨익 웃으며검은 고양이 묘인족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어이, 거기 검은 고양이! 던전 크래셔가 어딨는지 알아?"
"랜트한테 무슨 볼일인데? 그보다 넌 누군데? 그 옷은…… 브리단에서 왔어?"
"아,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네. 그래! 네 말대로 난 브리단에서 온 라이파 티잔이다! 소문으로 자자한 던전 크래셔가 과연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서 왔지! 뭐, 겸사겸사 서방감도 찾고 말이야!"
"서방감?"
묘인족 여성 옆에 서 있던 창술사는 나를 한번 위아래로 훑어본 뒤 물었다.
"거기 있는 엘프 아가씨는 동행이야?"
"그래! 어이, 그레이시아! 너도 자기소개 한번 하라고!"
"하아…… 알았다."
가능하다면 좀 더 얌전한 방식이 좋았어.
하지만 이미 벌어진 건 어쩔 수없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 소개를 시작했다.
"나는 옆에 있는 라이파와 마찬가지로 브리단에서 온…… 그레이시아 로크라고 한다. 목적은 똑같이 던전 크래셔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궁금한 것과…… 서방님이 될 분을 찾기 위해서지."
"흐음~ 랜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건 알겠는데 서방감 찾기는 뭐야?"
"서방감 찾기는 서방감 찾기다. 나와 라이파는 자신의 서방님이 되실 강한 남성분을 찾고 있지. ……나이가 나이니 말이야. 결혼도 생각해야 된다."
"어, 어머 그래?"
"그건…… 크, 큰일이네."
""응?""
왠지 두 명의반응이 이상하다.
뭐라고 할까…… 당황과 살짝 동정이 섞인 듯한 반응이었다.
"……있지, 니냐. 렐리아 씨하고 같은 부류일까?"
"으음~ 렐리아 언니만큼 심각한 고민 수준은 아닌 것 같아 보여. 아마 그저 나이가 됐으니까 찾는 느낌 아닐까?"
"그치?"
"……무슨 문제가 있나?"
"응?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 그런데 나이가 나이라는데 둘은 몇 살인데?"
"우린 25살이지."
"그렇구나. 나보다 5살 많네. 그런데 25살이면결혼 서두를 수준인가?"
"당연하지 이 나이 지나면 완전 노처녀시기라고? 30세 넘으면 거의 가망 없고."
라이파의 말에 옆에 엘프로 보이는 여성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래? 30세 넘어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30살이 넘은 독신 여성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본의 아니게 상당히 실례된 말을 하게 됐다.
"어이, 그보다 너희는 누군지 소개해달라고."
"아, 그렇지! 나는 노아! 20살이고 이쪽은……."
"니냐라고 해~. 나이는 28세."
으음? 예상과 다르게 우리보다 살짝 연상일 뿐이었다.
그럼 방금 반응은 대체…….
아니, 그런 것보다 지금은 이곳에 온 목적을 우선시하자.
"노아, 니냐 씨, 우리는 말하다시피 던전 크래셔…… 랜트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또한 얼마나 강한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건방진 차가운 여자 설정은 남자에게만 하면 되는 라이파가 만든 설정이다.
딱히 여성들에게까지 그런 작위적인 태도를 할 필요는 없다.
노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손가락을 펼치면서 말했다.
"랜트라면 지금 레니 씨의 숙사하고, 여우의 쉼터하고, 도서관하고, 마법도시에 있어."
"후훗, 노아, 그렇게 말하면 헷갈리잖아?"
"하지만 진짜잖아."
"……여기에오기전에 한 모험가에게 던전 크래셔에 대한 정보는 조금 들었습니다. 늘어난다거나 하늘을 나다거나 하는 정보입니다만…… 아무래도 진짜 같군요."
"히히힛, 미리 알고 있었나 보네."
노아라는 여성의 반응.
그 반응과 방금 말한 상세한 정보를 보아 그녀는 던전 크래셔와…… 매우 친밀한 사이로 보였다.
물론 옆에 있는 엘프 여성 또한 말이다.
"실례지만…… 두 사람은 던전 크래셔와 어떤 관계시죠?"
내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한 건 노아였다.
"랜트하고? 히히힛, 우리는 랜트랑 사랑하는 사이지♡ 연인이야♡"
방긋 웃으며 말하는 노아.
그리고 옆에 있는 니냐 씨도…… 싱긋 웃으며 긍정하고 있었다.
설마했던 던전 크래셔 장본인보다 그들의 연인들을 먼저 조우하게됐다.
"뭐야…… 놈팽이의 연인들인가."
"라이파……!"
라이파는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다.
우리는 아직 던전 크래셔에 대해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라이파는 던전 크래셔의 연인들의 앞에서 그를 모욕하고 말았다.
"아."
라이파도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응?"
"놈팽이?"
순간 노아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적의를 띈 시선으로 라이파를 바라보았다.
"저기…… 방금 그거 무슨 말이야?"
방금까지의 밝고 활발한 느낌이 아닌 서늘한 목소리였다.
여기서는 곧바로 오해를…… 아니, 이쪽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 이쪽의 라이파는 기본적으로 일대일의 연애를 선호하는 순정적인 일면이 있어서…… 소문만 들은 던전 크래셔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이 있었습니다."
"어이, 그레이시아! 순정적인 면이라니! 원래 상식 아니냐!"
"넌 사과부터 해라, 라이파!"
내 호통에 라이파는 움찔거렸다.
"윽……."
라이파는 뻘쭘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노아와 니냐 씨를 향해 사과를 했다.
"미, 미안. 연인이 욕보이는 건 당연히…… 기분 안 좋겠지. 말만 들으면 여자를 8명이나 후리고 다니는 놈이라고 들어서…… 내 멋대로 나쁘게상상했어."
라이파의 사과에.
"……아아, 그런 거였구나."
다행히 노아는 적의를 담았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히히힛, 뭐~ 말만 들으면 랜트는 절조 없는 바람둥이지~."
"실상은 우릴 모두 사랑해주는 최고의 남자지만 말이야♡"
"그래그래!"
"내 쪽에서 다시 한번 벗인 라이파의 무례한 발언에 사과드립니다."
"괜찮아괜찮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었고 말이야~♪ 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뭔가요?"
"둘은 서방감을 찾고 있다고 했지?"
"네."
"브리단에서 플단까지는 꽤 거리가 있을 텐데…… 도중에 서방감이 될 만한 사람은 없었어?"
"애석하게도 저희의 기준에맞은 남성은 없었습니다."
"전부 우리보다 다 약했으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오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꽤 실력 있나 보네? 혹시 모험가 인식표 있어?"
"물론이지! 브리단에서는 A랭크 모험가야. 아, 저번에 본 던전 크래셔랑 같은 여관에서 묵는다는 전사 말에 따르면 우린 이곳 A랭크와도 비등하다고 하던데?"
"응? 여우의 쉼터에 묵는 전사……? 혹시 키잘인가? 요새안 보였는데."
"아아…… 아마 그런 이름이었어. 호위 의뢰 중이라고 하던데."
"그랬구나……."
"그 녀석하고 싸워서 이겨서 여러 가지 들었지. 던전 크래셔는 늘어난다든지 하늘을 나다든지 말이야. 그리고 여자가 8명이나 있다는 것도. 그 녀석도 8명이랑 사귀면서 깨가 쏟아진다고는 했는데…… 솔직히 믿기 힘들어."
"히히힛,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깨가 아니라 꿀이 흐를 정도로우리는 랜트랑 러브러브야~♡"
"으음…… 정말이야?"
"정말이고말고♡"
라이파가 노아와 대화하고 있을 때 니냐 씨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너도 브리단에서 A랭크 모험가야?"
"아, 네."
"별명이라든지 있어?"
"네, 저는 질풍 라이파는 호염입니다."
"와아, 질풍과 호염이라…… 멋진 별명이네? 나는 뇌창의 니냐라고 해. 노아는 그림자 고양이라고 하고. 우린 둘 다 B랭크야."
B랭크.
다른 지역에 비교하면 A랭크 상당의 실력자다.
하지만 눈앞에 니냐 씨는…… 저번에 대련한 키잘이라는 전사보다는 강하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던전 크래셔와는 빨리 만나보고 싶지만…… 기사를 목표로 하는 몸으로서.
아니…… 한 명의 무인으로서 니냐 씨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흐음~♪"
그런 내 생각을 읽히기라도 한 걸까.
니냐 씨는 방긋 웃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있지, 둘 다 조만간은 플단에 있을 생각이지?"
"응? 뭐…… 한 달간 여행하면서 여기에 왔으니 적어도 일주일은 묵을 생각이야. 서방감도 찾아야 하니까."
"후훗, 그렇구나.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 번 대련해보는 건 어때? 나도 노아랑 마침 대련을 하는 도중이었고……."
니냐 씨가 나를 쳐다봤다.
"그쪽도 한 번 실력확인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오? 뭐야, 그레이시아 네가 웬일로 호전적이야?"
"아니, 나는 아직 아무 말도……."
"눈빛 보면 딱 알아. 몇 년을 같이 지내왔는데. 헤헷,나도 노아랑 한번 붙어보고 싶어. 내 실수긴 해도…… 나한테 보냈던 그 싸늘한 시선은 꽤 긴장될 정도로…… 강렬했으니까."
씨익하고 라이파가 이빨을 드러내며 매우 싸우고 싶어 할 때의 미소를 지었다.
저럴 때는 한 번 싸우지 않으면 성에 안 찬다는 걸 나는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다.
◈-라이파SIDE
내 섣부른 말로 인해 생긴 시선.
소중한 상대를 모욕당해 분노하는 시선.
선을 넘으면 목숨을 앗아갈기세로 노려보는 시선.
긍지 높은 전사의 시선을 나는 노아라는 고양이 묘인족 여자에게서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하지만 그 시선만은 순간 나를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나보다는 약해 보이지만…….
싸우면 무척 스릴 넘치고 신날 것 같다는예감이 팍하고 들었다.
노아는 몇 번 대화를 나눠봐도 나쁜 녀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모욕하는 자에겐 용서를 안 하지만 평소에는 활발한 대화하기 쉬운상대.
몇 번 밖에 대화를 안 나눴지만 그런 분위기는 잘 느껴졌다.
하지만 방금 시선 때문에 어떻게든 한번 대련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생겼다.
그럴 때.
마침 옆에 있던 니냐란 여자가 대련 신청을 해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레이시아도 옆에 있는 엘프?로 보이는 여성에게 강한 승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레이시아 녀석, 자기는 나랑 다르다고 말하면서 은근 자기가 더 승부욕이나 승패에 집착이 강하다는 건 모르고 있다니까.
너도 결국 강자를 앞에 두면 실력 확인해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 노아와 마주 보며 플단의 훈련장 중앙에 서 있다.
첫 대련은 나와 노아.
그다음에 그레이시아와 니냐다.
"이봐, 노아. 대련 끝나면 던전 크래셔 좀 소개시켜 줘."
"좋아~ 하지만 만나자마자 욕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
"알고 있어. 그때 발언은 나도 잘못한 건 알아. 던전 크래셔가 어떤 인물인지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할 거야."
"히힛, 그럼 나도 상관없어. 아, 하지만 랜트가 너무 멋져서반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 뭐~ 랜트가 좋다면야 나야 환영이지만."
"하하핫!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아무리 멋지고 강해도 난 올곧고 나만 바라보는 남자가 좋거든? 하렘남은 내 쪽에서 사양이야."
"그래~? 브리단 여자는 강한 남자면 다 좋은 거 아니야?"
"뭐, 그런 여자도 있지만 적어도 난 아니라는 소리야. 그건 그렇고…… 잡담은 이만하면 되잖아?"
자세를 잡고 대련을 준비한다.
"뭐, 그치?"
노아도 단검을 한 자루를 꺼내며 자세를 잡았다.
재빠른 발도와 안정적인 자세균형.
좋은 전사의 기본적 소양이다.
기초가 아주 잘 되어 있어.
"남은 한 자루는 안 꺼내?"
"우선 맛보기는 해야 하잖아?"
"하하하, 하긴 그편이 더 오래 즐길 수 있지. 그럼…… 시작이다!"
타악!
그리고 나와 노아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즐거운 대련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