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화 〉452화-질풍과 호염
대련이 시작되고 10분.
캉! 카카카카캉!
노아는 내 기대에 충분히 대답할만한 전사였다.
좋아! 좋아! 좋다고!
민첩함과 약점을 노리려는 거침없는 움직임!
이래야 할 맛이 나지!
처음에는 단검하나로 시작한 노아는 지금은 두 자루를 꺼내고 있다.
그에 맞춰 처음에는 주먹만 휘두르던 나도 다리까지 써가며 노아의 상대를 하고 있다.
노아의 단검이 내 권갑과 부딪히면서 불꽃을 튀긴다.
"제법인데, 노아! 아주 신난다고!"
"그래? 라이파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 네!"
순간 노아의 다리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이며 속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스킬이구나!
하지만…… 그 정도야 대처할 수 있어!
단숨에 내 뒤를 돌아 공격하려는 노아의 움직임에 맞춰 권갑으로 노아의 단검을 막았다.
카아아앙!
"우와, 이것도 막네."
"그러는 너도……!"
부우우웅!
꽤 진심을 담아 휘두른 주먹을 노아는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하고있다.
지금까지 노아가 내 주먹이나 발을 맞은 횟수는 0이다.
"내 공격을 잘도 피하잖아!"
"더 빠르고 무서운 공격은 이미 아니까!"
순간 노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거 연격 오겠는데!
카카카카카캉!
예상대로 노아는 양손의 단검을 종횡무진으로 휘두르며 내 몸의 여러 부위를 향해 참격을 날렸다.
방금 건 조금 위험했어. 하지만…….
"빈틈이다!"
격한 연격으로 인해 노아에게 빈틈이 생겼고 나는 그 틈을 노려 마력순환을 최대로 올리고 단숨에 속도를 높여.
퍼어어어억!
"으갸아아악!"
노아의 몸통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아니, 순간 두 팔로 막았어.
정말 순발력 좋은데?
내 주먹을 맞은 노아는 뒤로 날아가고 떼구르르르 구르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아…… 팔 아파……."
노아는 내 주먹을 팔을 털털 털 듯이 흔들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하하! 내 주먹을 맞고 그 정도로 끝나다니 의외로 몸 튼튼하네, 노아!"
"뭐, 승격은 여러 번 했으니까. 이야, 근데 진짜 강하다."
"너도 강하다고, 노아."
"고마워."
"그럼 계속할까?"
"으음~ 아니, 그만둘래."
다시 자세를 잡지만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뭐야, 싱겁게."
"라이파랑 만나기 전에 니냐랑 잔뜩 했으니까솔직히 체력 없어. 그리고 그레이시아랑 니냐가 어떻게 싸우는지도 궁금하고."
"쳇, 그럼 다음에 또 한 번 겨루기다?"
"나야 환영이야."
나와 노아의 대련은 싱겁게 끝을 내렸다.
아아~ 많이 부족해.
나중에 그레이시아랑 대련이나 해야지.
"어이, 그레이시아! 네 차례야!"
◈-그레이시아SIDE
노아는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라이파를 상대로 좋은 대련을 벌였다.
물론 서로 더욱 진심을 낸다면 분명 둘다 상처를 입었을 거다.
하지만 양쪽이 서로 이건 실력확인을 위한 대련이라는 걸 숙지하고 있기에 부상을 입는 사람은 없었다.
"노아는 분명 20살이라고 했죠? 저 나이에 라이파와 저렇게 상대를 할 수 있다니…… 대단하군요."
"후훗, 노아는 노력가니까♪ 게다가 향상심도 높으니까 가르쳐 주면 쑥쑥 흡수해서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
"니냐 씨가 노아를 가르치신 겁니까?"
"응, 일단 노아랑은 제자와 스승 비슷한 관계야."
"최강이라는 던전 크래셔에게는 배우지 않는 겁니까?"
"으음~ 랜트는 원래 처음부터 너무 강한 타입이라~ 가르치는 건 익숙하지않거든. 그래도 우리 실력에 맞춰서 대련을 해주니까 그것만으로도 무척 도움이 돼."
니냐 씨가 던전 크래셔…… 랜트라는 남자에 대해얘기할 때는 무척이나 애정이 서린 눈빛을 하고 있다.
마치 어머님이 아버님과 대화하실 때의 그런……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느낌이다.
"……정말로 그를 사랑하시는군요."
"어머, 역시 엘프라서 이런 건 민감하나? 응, 난 랜트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그런데 치정…… 싸움 같은 건 벌어지지 않는 겁니까?"
"후훗,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우리는 모두 사이 좋아서 그런 걱정은 없어. 게다가 랜트는 우리 모두를 사랑해주니까 외로울 일도 없고."
"그러한…… 겁니까?"
"응."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다.
나도 라이파처럼 무조건 일대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은 단계에서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태는 신기했다.
그런 고민을 하고있을 때 노아와 라이파의 대련이 끝났다.
"어이, 그레이시아! 네 차례야!"
"저희 차례가 됐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응, 잘 부탁해~."
나와 니냐 씨는 라이파와 노아가 섰던 훈련장의 중앙에서 서로를 마주 봤다.
나는 검을 허리춤에서 뽑고 니냐 씨는 창을 집고 자세를 잡는다.
"있지, 대련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뭐죠?"
"너도…… 남자들의 시선 좋아하는 타입이야?"
"……? 말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머, 천연이니? 그럼…… 어째서 그런 복장을 한 거야? 여자인 내가 봐도 꽤 대담하다고 생각해♪"
아, 그런 물음이었구나.
"……이건 마장에최적화된 복장입니다. 딱히 남성들의 시선을 모으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흐~음. 그래. 가슴도 나만큼 크고…… 노출도도 비슷하니까 같은 취미를 가질 줄 알았는데. 아쉽다~."
"……니냐 씨는 남성의 시선을 좋아하시는 겁니까?"
"후훗, 난 엘프랑 서큐버스의하프라서~ 그런 시선이 엄청 좋더라?"
"하프……."
엘프인 것 같았지만 설마 서큐버스와의 하프라니.
옷의 취미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건 실례라 일부러 무시했지만, 니냐 씨는 상당히…… 자극적인 복장을 하고 있다.
설마 그게 남성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서라니…….
무인으로서 그런 관점은 조금 좋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일부러 말하지는않는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인의 취미의 범주니까.
그러니 지금은이 대련에 집중하자.
숨을 가다듬고 정신을니냐 씨와의 대련에 집중한다.
"……."
니냐 씨도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단숨에 전사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빠른기세의 전환.
그것만으로도 눈앞의 니냐 씨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증거였다.
아아, 그녀는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됐다.
"흐읍!"
그리고 내가 먼저 니냐 씨를 향해 달려가며 대련은 시작됐다.
◈
니냐 씨와의 대련은 20분 동안 계속이어졌다.
현란한 창놀림은 몇 번이나 내 검을 튕겨냈으며.
중간중간에 오는 매서운 발차기에는 나도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
서로 진심을 내지 않고 하는 단순한 대련.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킬의 영역을 쓰지 않는다는 것뿐.
순수 육체만으로 하는 대련의 영역에서는 나와 니냐 씨도 서로 진심으로 상대를 하고 있다.
나의 공격을 유도하면서 페인트를 넣을 정도의 기교를 보이는 니냐 씨.
물론 나도 지금까지의 경험과 아버님에게 배운기술로 그러한 의도를 전부 깨부쉈다.
하지만 니냐 씨와의 결판은 좀처럼나지 않았다.
니냐 씨의 페인트를 전부 깨부수고 이쪽에서 맹공을 펼쳐도 오히려 니냐 씨는 그것이야말로 특기라는 듯이 아슬아슬한 간격에서 검과 창의 승부임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짧은 간격에서도 할 수 있다는 듯이 더욱 밀어 붙여왔다.
나도 라이파와의 대련으로 초근접 전투에는 익숙하기에 니냐 씨의 반격에 대처할 순 있었다.
그러한 상황이 이어지니 승부는좀처럼 나려고 하지 않았다.
"하아아압!"
"하아아앗!"
결국.
"어머, 무승부네."
나와 니냐 씨가 서로의 목에 창과 검을 겨누는 간격에서 멈추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검을 거둬 칼집에 수납하며 상쾌한 기분으로 나는 니냐 씨에게 말했다.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한 달간 치러온 대련 중에서는 가장 충실했다.
니냐 씨도 창을 거두며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후훗, 그런 거 치고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그레이시아는…… 아직 본격적으로 마력도 순환 안 시켰잖아?"
"……알고 있으셨군요."
"그런 방법을 쓸 수 있는 아주~ 강한 언니를 알고 있거든♪"
"그러는 니냐 씨야말로 마력을 이용한 신체강화는 하시지 않으셨군요."
"서로 쓰면…… 좀 위험하잖아?"
"동감입니다."
나도 니냐 씨도 아직 성장할 곳이 남아 있는 미숙한 자다.
순수한 육체의 대련이라면 몰라도 마력까지 한꺼번에 쓰면…… 대련이 즐겁고 흥분돼서 조절이 잘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만약 상대방이 압도적으로 강해…… 아무리 전력을 내더라도 손쉽게 제압할 수준이 아니라면 이 이상은 심하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이, 그레이시아. 부럽잖아. 그렇게 즐기고 말이야!"
라이파와 노아가 나와 니냐 씨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이따가 나랑 대련이야!"
"하아…… 플단에 오자마자 대련을 했잖아. 조금은 몸을 쉬어."
"그러니까 이따가 하자고 했잖아."
"아하하, 미안해, 라이파. 부족하게 해서."
"응? 아니, 사과할 건 없다고, 노아! 만약 미안하다며 좀 더 실력 키워서 나랑 대련하자고 대련!"
"……으음, 니냐보다 대련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네. 그보다 서방감 먼저 찾아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긴 모험가의 도시 플단이잖아? 일주일 정도 어느 정도 좋아 보이는 남자에게 대련 걸다 보면 걸리겠지!"
"그런 식으로 신랑을 정해도 되는 거야?"
"물론 성격도 볼 거야. 세면 다 되는 거 아니니까. 실력 좋고 성격도 괜찮다면야 나머진 내가 보필하면 그만이니까."
"오오, 의외로 순종적이네?"
"강한 서방에겐 순종적으로 따르라는 게 어머니의 가르침이니까."
"이게 브리단식 문화구나……."
라이파와 노아의 대화를 듣고 니냐 씨가 싱긋 웃으며나에게 물었다.
"그레이시아도 라이파랑 같은생각이야?"
"서방님이 되실 분을 찾는 건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브리단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제 서방님이 되실 분이면 강한 분이 좋지요."
"흐음~."
뭔가…… 니냐 님이 나를 보는 눈빛이 물건을 감정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니냐 씨, 노아."
훈련장의 바깥에서 니냐 씨와 노아를 부르는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니 건장한 덩치와 키를 가지고 있는 녹색 머리카락에푸른색 눈을 가진 근육질의 남성이 있었다.
노아가 그 남성을 보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랜트!"
랜트…….
그렇다면 저 남자가 던전 크래셔……?
키잘이란 모험가의 말로도 들었지만, 덩치에 비해 온순한 얼굴을……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다.
저런 인상의 남자가…… 이 플단의 최강의 S랭크 모험가.
"오호라…… 저 녀석이……."
라이파는 벌써부터 호전적인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니냐 씨는 노아와 함께 던전 크래셔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머, 오늘은 모험가 길드는 안 오는거 아니었어?"
"그게…… 미란다 씨랑 같이 가게에 있는데 리그 씨가 와서 훈련장에서 노아랑 니냐 씨가 처음 보는 모험가하고 대련하고 있다고 해서요. 궁금해서 분신으로 왔어요."
"그랬어? 하지만 대련은 이미 끝났어."
"그래요?"
"응! 아, 랜트, 이리 와!저기 있는 두 사람이야!"
노아가 남자의 손을 끌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랜트! 이쪽은 라이파하고 그레이시아! 랜트를 만나러 브리단에서 왔대!"
"브리단에서?"
"난 라이파 티잔! 네가 바로 그 유명한 던전 크래셔구나! 덩치는 좋은데…… 생각보다 뭔가 더 순한데?"
"그레이시아 로크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랜트라고 합니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던전 크래셔…… 아니, 랜트.
최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태도에는 거만함 같은 건 없었다.
"두 사람은 랜트도 보러 오고 신랑감 찾으러 플단에 왔대!"
"신랑감을 찾으러?"
갑작스러운 설명에 랜트는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은 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봐이봐, 그런 설명은 다 나중으로 미루자고! 어이, 던전 크래셔!"
"아, 별명은 기니까 랜트라고 부르셔도 돼요."
"그럼 랜트! 나랑 대련하자고 대련! 네가 얼마나 강한지 나한테 보여줘!"
"라이파, 아무리 장본인이 나타났다고해도 너무 성급해."
"하지만 너랑 다르게 난 부족하다고! 모처럼 이렇게 랜트가 나타났잖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대련을……."
꼬르르르륵
그때 라이파의 배에서 크게 배고프다는 배의 신호가 들렸다.
순간 정적에 휩싸이고.
라이파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아랑 대련한 게 생각보다 충실했나?"
"히히힛, 라이파의 기분은 안 찼지만 배는 충분히 움직였다고 생각했나 보네."
라이파…… 방금 그건 벗으로서 부끄럽다.
"저기…… 대련이라면 얼마든지 해드릴게요. 그전에 식사부터 하시는 건 어떠세요?"
"오? 정말이야? 무르기 없기다? 야, 그레이시아, 밥 먹자!"
그렇게 말하며 라이파는 먼저 모험가 길드 안으로 걸어갔다.
너무 자유분방해, 라이파.
"하아…… 미안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랜트에게 사과했다.
"하하하, 아니에요. 움직이면 배고픈 건 당연하잖아요."
상냥하게 웃으며 대응하는 랜트.
키잘이라는 모험가 말대로 그는선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