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3화 〉482화-로크가
◈-그레이시아SIDE
거짓말이다.
그럴 리가 없다.
아버님이.
그 누구보다도 기사다운 아버님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분명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서방님을 갖게 돼서 충격에 빠졌기에 하신 말씀일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나는 곧바로 아버님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아버님은 언제나 저녁 먹기 전까지 집무실에서 서류 정리를 하신다.
평소라면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그런 행동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콰아앙!
난폭하게 아버님의 집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아버님!"
"그레이시아……? 돌아왔구나."
"아버님……."
아버님은 평소와 다름없으셨다.
언제나처럼 냉정하고 침착한 내가 존경하는 기사이시다.
아버님은 손에 들고 계시던 펜을 놓으시고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어서 오거라, 그레이시아. 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문을 여는 건 올바르지 않구나."
평소와 같이 예의를 중시하는아버님의 꾸중.
그 꾸중을 듣고 나는 냉정해질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님을 한시라도 빨리 뵙고 싶어서그만……."
"……그랬었구나. 흐음, 네가 플단을 향해 떠난 지 석달이나 됐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실 2주 전에 너에게 편지를 보냈단다. 그런데 이렇게 온 걸 보니 이미 오고 있던 중이었나 보군."
아버님은 언제나처럼 밖에서 하는 의뢰를 마치고 오면 하시던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물으셨다.
"그래, 플단의 강자들은 많이 만나고 왔느냐."
"네, 아버님. 플단에는 수많은강자들이 있었습니다."
"네가 원하던 좋은 공부가 되었느냐."
"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서방님이 아니더라도 플단에는 많은 강자가 있었다.
설령 서방님과 지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강자들과의 조우는 있었다.
순속의 제이슨을 비롯하여 다른 플단의 A랭크 모험가들.
만약 대결을 벌일 때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들이 플단에 있었다.
물론…… 나는 이미 서방님의 암컷이 되어 그들과의 대결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잘 됐구나. 플단에 갔다면 던전에도 가봤느냐?"
"네, 확실히 던전의 마물은 다른 마물들보다 훨씬강했습니다."
"그러겠지. 나도 그 강함은 아주 잘 알고 있단다. 젊었을 적엔 그와인 경과 함께 던전에 간 적도 있으니까."
"아버님이…… 말씀이십니까?"
"그때는 수련을 하기 위해 들렀었단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강자들과의 만남에 나와 당시의 그와인 경도 많을 걸 배웠지. 그렇기에……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허락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번처럼 오랜 기간 외출하는 일은 삼갔으면 하는구나. 알렉스도 네가 없어 많이 외로워 했단다."
아버님은 평소와 다름이 없으셨다.
아버님과 대화할수록 어머님의 말씀과 다르게 아버님은 언제나 내가 존경하는 기사임이 틀림없었다.
"……아버님, 보고 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보고? 아아, 플단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구나. 그래, 어서 말해 보거라."
나는 밖에서 하는 의뢰를 마치면 항상 아버님에게 보고를 했다.
내가 해내는 성과를 들으실 때마다 아버님은 겉으로는 많이 미소를 짓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잘 해냈구나라며 나를 칭찬해주셨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님에게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성과이자 행복을 얻은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
"아버님, 저는…… 암컷이 됐습니다."
"뭐…… 라고? 그레이시아, 지금 무슨 말을……."
아버님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셨다.
갑작스러운 사실에 아무리 아버님이라도 당황한 것이겠지.
하지만 끝까지 들으시면 분명 아버님도 내가 암컷이 된 사실에 기뻐해 주실 거다.
"플단에서 제 서방님이 될분을 찾았습니다. 그……귀환이 늦어진 것도 서방님과 함께 지내느라 그런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이렇게 온 건 아버님에게 서방님을 소개시켜드리고 싶어서입니다."
"……."
아버님은 얼굴이 굳은 채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서방님이라…… 그래 그래 그래…… 너도 이제 암컷이될 나이긴 하지……. 그레이시아, 너의 서방님이라는 남자는 누구지?"
난리를 치실 거라는 그와인 경, 라이링 아주머니, 어머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아버님은 매우 침착하게 나에게 물으셨다.
역시 3분이 너무 지나친 해석을 하고 계신 거였다.
이대로면 아버님도 금방 서방님을 받아들여주시겠지.
"네! 제 서방님은 플단의 S랭크 모험가인 던전 크래셔 랜트라고 합니다!"
"랜트…… 그래…… 랜트……. 저번에 던전에서 일어난 범람을 막은 영웅이구나. 흐음, 흐음, 흐음, 그래…… 영웅 정도의 강함이면 네가 마음을……마음을 뺏길 수도…… 있…… 겠구나."
"네! 저뿐만이 아니라 라이파 또한 서방님의 암컷이 됐습니다."
"뭐? 그와인 경의 자녀까지도?"
나는 서방님의 위대함을더 뽐내기 위해 자신 있게 말했다.
"네, 그뿐만이 아니라 서방님은 달리 8명의 여성을 책임지시고 있는 위대한 수컷입니다!"
"호오…… 이미 8명이나 여자가 있었단 말이지……."
"오늘 브리단에 도착해 가장 먼저 티잔가로 가 그와인 경과 라이링 아주머니에게 미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와인 경에게 먼저? 그와인경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그레이시아."
"네! 그와인 경은 라이파가 암컷이 됐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분노하였습니다만 이윽고 서방님과 대련을 펼치셨습니다! 서방님은 그와인 경을 주먹 한 방에 패배하여 곧바로 서방님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와인 경이 한 방에?"
"네! 마장을 개방한 상태에서의 완벽한 패배였습니다. 아버님, 절 암컷으로 만드신 서방님은 그토록 강대하고 위대한 분이십니다."
"……빠득."
내 귀가 잘못된 것일까?
약하게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그래…… 그 정도로 강한 강자인가보구나.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지금은 같이 온 연인…… 지금은 저의 새 자매들과 라이파,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접대실에 있습니다."
"알았다,그레이시아."
아버님은 의자에 일어나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 플단의 영웅을 만나러 가자꾸나."
◈-랜트SIDE
그레이시아 씨가 나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레이시아 씨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냥 여기에 계셔주세요, 랜트 님."
네비아 어머님이 나를 말리셨다.
"하아…… 저도 불만이 쌓인 게 많아 결국 다 쏟아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애가 자기 아버지를 무척이나 존경하는 걸 알면서도…… 너무 섣불렀군요."
네비아 어머님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시며 말씀하셨다.
"그레이시아라면 이미 서방님의 집무실에 도착해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머지않아 다시 이 방으로 서방님을 모시고 오시겠죠. 랜트 님, 미리 말씀하겠습니다만 저는 그레이시아가 암컷이 됐다는 것에 찬성입니다.
그 아이도 암컷이 될 나이이기도 하고…… 몇 년이나 그아이를 봐왔습니다. 그레이시아가 랜트님과 있는 것이 행복해하고 있다는 건 바로 알겠더군요. 그 아이를……잘 부탁드립니다."
"네, 어머님."
"호호, 어머님이라 들으니 조금 생소하군요. 물론 저는 찬성인데…… 그 사람이 받아들일지가 골치 아프네요. 그레이시아가 관련되면 정말 유치해지는 사람이라……."
대체 갈프 아버님은 얼마나 딸바보인 것일까.
그때였다.
"서방님! 아버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미 열린 방문을 통해 그레이시아 씨와…… 한 명의 남성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이 사람이 갈프 아버님이다.
갈프 아버님은알렉스처럼 푸른 머리와 회색의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인상을 말하자면 그라파 아버님이 호쾌한 호걸이란 느낌이라면 갈프 아버님은 댄디한 중년이란 느낌이다.
철걱철걱
갈프 아버님은 완전히 갑옷까지 단단히 입은 중장비를 한 상태였다.
"……서방님?"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건 어머님도 똑같았다.
우선 나는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그대가…… 라이파를 암컷으로 삼은 던전 크래셔 랜트인가."
"네, 아버님."
"아버…… 님……."
내가 아버님이라 부르자 갈프아버님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셨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와 내 연인들을 둘러보았다.
"그레이시아의 말 대로 정말 여인들이 많군…… 게다가 그와인 경의 자녀까지……."
척!
"나도 그레이시아랑 사이좋게 서방의 암컷이야!"
라이파 씨가 씨익 웃으며엄지를 세웠다.
"……랜트 공."
"아, 네…… 아버님."
아버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대련을 한 수 부탁드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미소가 인자해도 내 감이 말하고 있다.
아버님은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다.
"물론이죠."
하지만 내가 이 대련을피하는 수단은 없다.
한다면 정면으로.
아버님의 분노를 다 받아내며 그레이시아 씨와의 관계를 인정받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저택 안에 있는 훈련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곧바로 나와 아버님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아버님!?"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아버님의 원념이 담긴 기합과 함께 그레이시아 씨의 당황이 섞인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어왔다.
◈-갈프SIDE
용서 못 한다. 용서 못 한다. 용서 못 한다. 용서 못 한다. 용서 못 한다. 용서 못 한다. 용서 못 한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감히! 감히! 감히이이이이!!!
내 귀여운 그레이시아에게 손을 대다니이이이이이이이!!!!
절대로 용서 못한다아아아아아아아!!!!
그레이시아는 내 소중한 딸이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내 소중한 딸이다.
그런 내 딸을 감히…… 감히!!
암컷으로 만들었다고!
반드시 죽여주마아아아아아아아!!!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시작과 동시에 내 모든 마력을 쏟아부으며 마장을 개방했다.
대대적으로 로크가에 전해져오는 전설의 마장.
아론다이트.
부탁이다, 나의 벗이여.
내 딸을 더럽힌 저 빌어먹을 자식을 처단할 힘을 빌려다오!
"아버님!?"
사랑스러운 나의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아, 걱정 마렴, 그레이시아.
내가 당장 이 빌어먹을 놈팽이의 목을 쳐내 흐트러진 너의 생각을 고쳐주도록 하마.
너는 암컷이 되지 않아도 된단다.
그저 평온하게 내 곁에만 있어다오.
네가 내 전속기사가 되어 옆에 있을자리도 다 마련해 놨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이 빌어먹을 플단의 악귀를 내가 처단해주마아아아아아아!!!!
부우우웅!
혼심의 힘을담아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내 일격을 악귀는 쉽사리 피해버리고 말았다.
역시 플단의 S랭크 악귀!
그라파를 한 방에 쓰러뜨린 강자!
쉽사리 쓰러뜨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너를 쓰러뜨리기 위해 나는 내 모든 힘을 쥐어짜겠다!
기합을 담아!
그레이시아를 위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일격, 일격 혼신의 힘을 담아.
기합을 외치더라도 움직임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는 악귀를 향해 내 검술의 오의를 펼쳤다.
하지만 악귀는 내 모든 오의를 피해낼 뿐만이 아니라.
"흐읍!"
주먹을 휘두르며 반격까지 해왔다.
하지만 이 정도는 피할 수 있다!
악귀의 공격을 피하고 나는다시 반격에 나선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나와 악귀의 치열한 공방.
내 공격을 피하면 악귀는 단숨에 반격해 오고 나 또한 악귀의 공격을피하며 공격을 자아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막상막하의 승부.
내 공격을 전부 피하며 공격을 해오다니.
엄청난 실력이다.
하지만 악귀는 아직도 여유로워 보인다.
알고 있다.
악귀는 나보다도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라파를 한 방에 쓰러뜨렸다는 얘기는 거짓이 아니겠지.
하지만 어째선지 악귀는 실력을 숨겨가며 나를 상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점을 이용할 뿐!
네놈이 방심한 틈을 타 반드시 목을 베어내 주마!
절대로…… 절대로 내 소중한 딸은 못 넘긴다!
아니…… 내 딸을 더럽힌 네놈만큼은절대로 용서 못 한다!
언제나 나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사랑스러운 그레이시아.
언제나 올곧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귀여운 그레이시아.
아아, 나의 딸아.
소중한 내 딸아.
반드시 너를 악귀로부터 구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