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0화 〉549화-어비스
나는 제이슨 씨를 따라 밤거리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니노 씨가 밤거리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향해 뛰어오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제이슨 씨가 나에게 말했다.
"니노라면 음마의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다."
혹시…… 니노 씨랑 내가 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제이슨 씨는 네토라세가 아니라 남이 하는 걸 보고 흥분하는 성격인 걸까?
으음…… 제이슨 씨는 함께 범람을 이겨낸 동료다.
제이슨 씨가 원한다면 보여주는 것 정도라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음마의 낙원에 도착했다.
"꺄악~ 그랜드 섹스킹 님~~♡♡"
"어서 오세요~♡♡"
오늘도 음마의 낙원 서큐버스분들은 나를 보자 환호를 지르며 반겼다.
"소문대로 인기 넘치는군."
"아하하……."
제이슨 씨와 함께 평소에 니노 씨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는 니노 씨 말고도 의외의 인물이 2명 더 있었다.
"오, 왔냐,제이슨. 뭐야, 랜트도 있잖아."
"여, 랜트."
"어서 오세요, 랜트 님~♡♡♡"
"크라이그 씨, 아만다 씨."
방 안에 있었던 건 바로 제이슨 씨처럼 함께 범람에서 파티를 짰던 크라이그 씨와 아만다 씨였다.
설마 복수 플레이……!?
"저기 제이슨 씨, 저는 그렇다 쳐도 왜 크라이그 씨와 아만다씨까지……."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우선 앉아줘."
"아, 네."
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크라이그 씨가 팔짱을 끼며 제이슨 씨에게 말했다.
"그럼 말해보라고. 이유도 자세히 말하지 않고 나랑 아만다는 왜 부른 거야? 게다가랜트도 모르는 것 같은데."
"갑자기 부른 건 미안하다. 원래라면 설명을 하고 결정을 기다리겠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이렇게 됐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우선 난 너희가 신뢰가 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비밀도…… 제대로 지켜줄 인물이라고도 생각하지. 그러니…… 내 정체를 밝히겠다."
제이슨 씨는 자신의 얼굴을 두르고 있던 천을 풀었다.
천을 풀어 제이슨 씨의 얼굴이 드러났다.
검은 머리카락에 연보라색 피부, 그리고 노란 눈동자와살짝 뾰족한 귀.
그 특징을 보고 나는 한 종족을 떠올렸다.
"제이슨 너……."
"그래, 나는 마족이다."
제이슨 씨는 마족이었다.
아만다 씨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제이슨 씨에게 말했다.
"흐~응, 천으로 둘둘 말고 다니던 건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였어?"
"그래, 하지만……."
"하지만?"
"천으로 두루두루 만 스타일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고 있다."
"어, 그, 그래? 다행이네."
크라이그 씨와 아만다 씨와는 다르게 니노 씨는 제이슨 씨의 정체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니노 씨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나요?"
내 물음에 니노 씨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애초에 제이슨이 처음 플단에 왔을 때~ 플단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협조 요청받은 게 저거든요~."
"그녀는 서큐버스. 이른바 마족의 일종이다. 그때는 그닥 도움을 받지 못할 거라는 걸 염두했다만…… 그녀에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뭐~ 제이슨은 사고 칠 것 같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난 그 천 좀 벗고 다니면서 자유롭게 다녔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충고했는데 말을 안 듣는다니까요."
"아직 마족이 대놓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세상이다."
확실히 플단에서 제이슨 씨처럼 마족인 모험가를 본 적은 없었다.
제이슨 씨는 나와 크라이그 씨, 아만다 씨를 보며 물었다.
"랜트, 크라이그, 아만다. 너희는 내 정체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지?"
"어…… 솔직히 제이슨 씨 같은 마족을 본 건 처음이어서 그냥 제이슨 씨가 마족이구나라고 밖에 생각 안 들어요."
"랜트랑 동감."
"딱히 마족이어도 우리에게 피해끼친 것도 아니니까 딱히? 별생각 안 드는데."
우리의 대답에제이슨 씨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래, 그런 너희니 나는 부탁을 하고 싶었다."
"무슨 부탁인데?"
크라이그 씨의 물음에 제이슨 씨는 한번우리를 둘러본 다음 말했다.
"랜트, 크라이그, 아만다. 나와 함께 어비스에 와주길 바란다."
어비스.
예전에 엘시에게 들은 적이 있다.
북쪽에 있는 마족들의 나라의 이름이 분명 어비스였다.
"어비스? 망명이라도 하라는 거야?"
"아니, 함께 어비스에 가서…… 내 호위를 해줬으면 한다."
"호위? 너를? 딱히 호위가 없어도 너라면 충분하잖아."
"실력을 인정해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어비스에는 나 이상의 실력자들도 있다.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누구랑 싸우러 가는 거야?"
"상황에 따라서는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신뢰가 가는 너희에게 부탁하고 싶다. 특히 랜트…… 너는 꼭 따라와 줬으면 한다."
사실상 내가 플단의 최강이니 제이슨 씨가 나에게 부탁하는 건 이해가 갔다.
그런데 젠 씨는 왜 안 부른 것일까?
"의지해 주시는 건 기뻐요. 그런데 왜 젠 씨는 안 부르신 건가요?"
미샤 씨야 B랭크인 데다가 신관이니 마족의 나라에 데려가는 건 그럴 수도 있다.
"처음에는 부탁하려고 했지만 젠은 최근 바쁘다. 랜트, 네가 단골로 다니는 레스토랑에서 랜드 옥토퍼스 요리를 내놓으니 뒤지지 않겠다고 다른 A랭크 모험가들에게 유명 레스토랑들이 의뢰를 대량으로 내더군."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난 그놈들 징그러워서 안 받았지만."
"젠은 지금 열심히 랜드 옥토퍼스를 사냥하는 중이다. 전력으로는 여기 있는 3명만으로 충분하니 부르진 않았다."
의도치 않게 내가 젠 씨의 의뢰 거리를 늘린 모양이다.
"야, 전력이라서 걸리는 게 있는데 전력이라면 우리 없어도 랜트 한 명이면 충분하지 않아?"
"만일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인원수는 3명 정도 있는 게 낫지.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겠다. 니노."
"응~ 여기~!"
니노 씨가 제이슨 씨에게 뭔가를 건넸다.
나무로 된 테두리 안에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그래, 그것은 그림 극장이었다.
게다가 은근 그림이 귀여운 화풍이었다.
"우선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 마족은 베인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생명체다."
그림은 귀여운데 진중하고 핸섬한 제이슨 씨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었다.
제이슨 씨는 그림을 차근차근 넘기며 설명을 계속했다.
"마족은 솔리신이 만든 생명체를 죽이도록 영혼에 각인됐다고 했을 정도로 파괴 충동이 강했었지. 하지만 그것도 베인신의 가호를 받은 마왕이 있어야만 발동되는 거다.
마왕이 용사에게 쓰러진 후 파괴 충동이 없어졌지만, 다시 마왕이 나타나 다시 파괴 충동이 일어나는 과정을 마족과 다른종족들은 몇 번이나 겪어왔고…… 그 과정은 마족과 다른 종족들의 골은 커져만 갔다.
그래도 마지막 대의 마왕이 퇴치되고 신분상의 마왕이 통치를 시작한 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서큐버스를 필두로 다른 종족들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마족도 있다."
"예이~♪"
"마족에게도 다른 종족들과 화평을 맺자는 자들은 많다. 하지만 반대로마족의 본래의 삶은 투쟁이라며 강경하게 나가는 자들도 있지. 두 세력의 다툼은 이 수백 년간 계속 되어왔다. 세력의 밸런스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돼가는 나날이 지금도 이어졌지. 하지만 그 균형이 최근 깨지려고 하고 있다."
이야기는 분명 심각하게 넘어가고 있는데 그려진 그림이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그림 동화 같아서 위화감이 장난 아니다.
그런 걸 느낀 건 나뿐이 아닌지 아만다 씨가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야, 제이슨 도중에 말 끊어서 미안한데."
"뭐지, 질문이 있으면 얼마든지해라, 아만다."
"……그 그림 누가 그린 거야?"
"나다."
설마 했던 제이슨 씨가 직접 그린 그림.
우리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혼자서 이걸 그린 것이다.
"그, 그래? 귀여운 그림이네."
"고맙다. 나도 꽤나 좋은 그림이 그려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이슨 씨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설명을 계속하지. 균형이 깨지려는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브리단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브리단이요?"
"그래, 정확히는 캬멜에서 일어난 사건이지. 랜트, 너도 그 자리에 있어서 알겠지? 솔리신의 분령강림 말이다."
"아…… 네."
렐리아 씨 때도 그렇게 또 캬멜에 있었던 사건이 연관되어 있나 보다.
"혹시 솔리신의 분령이 강림해서 위기감이 조성되거나 그랬나요?"
"그것도 살짝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건이 일어난 뒤 며칠 뒤에 일어났다. 이걸 봐라."
제이슨 씨는 자신의 팔에 두른 천을 걷어냈다.
제이슨 씨의 팔뚝에는 검은 번개 문양이 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건……."
"이건 베인신의 심볼이기도 한 검은 번개다. 이 문양이 마왕의 피를 이은 마족에게 일제히 나타났다고 하더군."
"잠깐 그렇다는 건…… 제이슨 너, 마왕의 핏줄이라는 거야?"
"혈연상으로는 그렇다. 마왕도 생명체니 자식을 가지긴 했지. 하지만 나는 마왕의 혈연이라고 따지기에는 너무나도 옅은 피를 가지고 있어."
말하자면 제이슨 씨는 마왕의 직계가 아닌 사돈 팔촌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그런 나까지 이런 문양이 나타날 정도에다…… 현재의 직계 왕족은 더욱 진한 문양을 지니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또 다른 정보에 따르면 이 문양이 나타난 후로 성격이 포악해지거나 힘이 강해진 자들도 많다고 하더군. 성가신 건 가장 힘의 증폭이 나타난 건…… 강경파를 이끄는 제2왕자다."
"저희는 제이슨 씨와 함께 어비스에 가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나의 호위…… 정확히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제1왕자파의 호위와…… 만약의 전투사태가 일어났을 때 협력해줬으면 한다."
"기간은? 아무리 그래도 오랜 기간 떨어져 있을 수는 없잖아?"
"물론 숙지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금 어비스에서는 차기 왕을 정할 회의를 열려고 한다. 거기서 제1왕자도 제2왕자도 단판을 내려고 할 생각이다. 그때까지 어비스에서 나와 같이 행동해줬으면 한다."
"회의가 열리는 날짜는?"
"일주일 후다."
"……야, 여기서 어비스. 아니, 어비스의 수도는분명 벤디나였지? 거기까지 가려면 2주일은 족히 걸리는데 어쩌자는 거야?"
"알고 있다. 그렇기에…… 랜트에게 부탁을 하는 거다. 랜트라면 하루 안에 플단에서 벤디나까지 갈 수 있으니."
확실히 날아서 간다면야 방향만 알려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아~ 그러고 보니 랜트가 있었지."
아만다 씨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을 하더니 제이슨 씨에게 말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같이 가서 회의가 열리는 날까지 너랑 대기. 그리고 그 회의 담판이 벌어지는 날에 쌈판 일어나면 제1왕자를 보호하면서 같이 싸워달라 이거지?"
"정확해. 보수는 내가 제1왕자에게 두둑하게주도록 건의하겠다."
"나는 딱히 상관없어, 너는 어때 크라이그?"
"쌈판 일어나면 제이슨보다 강한 놈들하고 싸울 수도 있다는 거지? 재밌겠는걸? 야, 랜트! 넌 어때?"
"저도 괜찮아요. 솔직히 어비스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니까요. 아참, 제이슨이 소속하는 제1왕자파는 온건파인가요?"
"그래, 앞으로도 다른 종족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걸 원하시는 분이다. 내가 플단에 온 이유도…… 이곳의 문화에 대해 직접 체험하고 소식을 전하기위해서지. 지금은 순수히 이곳의 생활이 즐겁다는 이유가 더 크다."
그렇다면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럼 문제없어요. 제이슨 씨를 돕는 게 두루두루 세상 좋은 일이잖아요? 최선을 다해 협력할게요."
애초에 강경파라는 제2왕자가 실권을 지게 되면 세상이 혼란해질 게 눈에 뻔히 보였다.
그럴 바에야 어비스 관광도 하면서 제이슨 씨를 도와 조금 더 세상이 평화롭게되도록 도움을 주는 게 나도 좋은 법이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든든하군."
"야, 아만다. 어차피 랜트만 있으면 거의 걱정 없을 거 같으니까. 우리도어비스 관광 즐겨볼까?"
"일은 제대로 하자고, 내 사랑아. 뭐, 그래도 회의는 일주일 후에 열리는 거지? 그때까지는 좀 시간도 있을 거고…… 야, 제이슨 어비스에 뭐 재밌는 거 있냐?"
"예전에 비하면 다른 나라의 물건이나 문화도 많이 받아들여졌기에 심심하진 않을 거다."
이야기가 제이슨 씨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흐름으로 돼갈 무렵.
니노 씨가 방긋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있지있지~ 제이슨~."
"뭐지, 니노?"
"나도 따라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