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6화 〉565화-마왕 재림
마왕성 안에 있는 회의실을 향해 나는 일행들과 함께 바르바 전하의 뒤를 따라 걷고 있다.
우리 외에도 회의실을 향해 온건파 마족이나 강경파 마족들도 함께 걸어가고 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마족들의 팔뚝에는 전부 연하게 문양이 들어가 있는 걸 보아 지금 회의장으로 가는 마족은 모두 마왕의 피를 가진 마족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런 마족들 중 강경파 마족들 중심에서는 우르고스가 걸어가고 있다.
나는 자그맣게 옆에있는 제이슨 씨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제2왕자의 눈동자는 빨간색이네요."
"우르고스 님의 눈동자는 왕비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아하.
자그마한 의문이 풀릴 무렵.
우리는 회의장에 도착했다.
회의장에서는 기다란 책상과 함께 여러 의자가 주르륵 나열돼있었다.
강경파는 왼쪽 온건파는 오른쪽의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 봤다.
참고로 우리는 호위라는 입장이니 일단 서 있기로 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를 맡는 역할로 보이는 고령의 마족이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두 진영의 언쟁은 격렬해지고 1시간 이상 계속됐다.
정리해보자면 강경파의 의견은 이 팔의 문양은 베인신이 다시 파괴와 죽음을 퍼뜨리라는 의지!
베인 신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자신들은 이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는 주장.
한편으로 온건파는 지금의 평화를 깨뜨릴 수 없다.
애초에 옛날과 달리 지금 다른 종족들과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멸망하는 건 우리 마족이라는 입장이다.
"신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거냐!"
"애초에 문양만 나타났을 뿐. 베인신께서 직접 계시가 내려온 적은 없다."
"계시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신 거겠지! 네놈들도 알 텐데! 이 문양이 생긴 후로부터 끓어오르는 파괴의 충동! 넘쳐나는 힘을! 이것이 바로 베인신의 뜻이다!"
"이제야 겨우 다른 종족들과의 조화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파괴라고? 전쟁이라고? 수백 년간 겨우 쌓아온 선조들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셈이냐!"
"말을 돌리지 마라! 우리 마족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베인신의 뜻뿐! 다른 것은 전부 사사로운 일에 지나지 않아!"
언쟁은 주로 바르바 전하나 우르고스가 하는 게 아닌 측근으로 보이는 나이 들어 보이는 마족들이 주로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격이 불같다고 하는 우르고스가 크게 소리를 치며 시작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다르게 우르고스는 가만히 있기만 했다.
회의의 언쟁은 끊이질 않고 더욱 가열되어 험악한 분위기가 절정을 찍으려고 하고 있었다.
온건파도 강경파도 서로를 적의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노려보며 있는 상황.
머지않아 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때 바르바 전하가 손을 들자 순간 언쟁을 하던 마족들이 입을 닫았다.
"베인신의 뜻…… 그게 정말이라면 우리 마족은 따라야 할지도 모르지."
"오오!"
"저, 전하……!"
강경파 마족들은 기뻐하고 온건파 마족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성공을 해야만 하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이런 문양을 내려주신 베인신에 얼굴에 먹칠할 뿐이다. 안 그렇나?"
"하하하!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문양의 힘만 있다면 그 어떤 자라도 해치울 수 있을 겁니다! 저희에겐 베인신의 가호가 있으니!"
자신만만하게 불끈 주먹을 쥐고 소리를 높이는 마족을 향해 바르바 전하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물었다.
"그대는…… 그 말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흐음, 나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우르고스."
"윽……."
자신의 이름을 바르바 전하가 부르자 우르고스는 벌레라도 씹은 표정을 지었다.
"전하, 외람되오나 그 말은 무슨 뜻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말 그대로다. 나는 그대가 말하는 것처럼 문양을 가진 우리가 다른 종족들을 압도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군. 문양을 가진 건 마왕의 피를이은 우리뿐. 다른 자들은 그렇지 않지. 게다가…… 지금의 평화를 놔두고 과연 다른 자들이 순순히 따르겠다고 생각하는 건가?"
"백성들이라면 이해해줄 겁니다! 그들도 마족! 베인신을 위한 이 원대한 계획에 따라오는 건 틀림없습니다!"
두 손을 높이 들며 자신의 말에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는 그 모습은 전에 렐리아 씨와 함께 광신도 마을에서 본 광경과 비슷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군."
"뭐…… 라고요?"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했네. 그저 자만에 빠져 그대는 현실을 보지 못 하는 것 같군. 아니, 그대만이 아닌 강경파인 그대들 대부분이 말이야. 하지만…… 우르고스는 그나마 나은 것 같군."
쾅!
우르고스가 책상을 크게 치며 바르바 전하를 노려봤다.
"어이, 형님. 그만 말해."
"하하하, 미안하다. 너에겐 아픈 기억이겠군."
바르바 전하는 끼익하고 의자에서일어나 나에게 다가와서는 살짝 툭하고 내 등을 두드렸다.
"다들 소문 정도는 들어본 적은 있겠지? 이 자는 내호위로 잠시 이 벤디나에 찾아와준 플단의 모험가 랜트. 그것도 그 플단의 S랭크 모험가. 던전의 범람은 막은 영웅이지."
"플단의…… 영웅?"
"저자가 최근 모험가 길드를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자인가?"
"하지만 S랭크라고 해도 결국에는 인간…… 우리 마족 상대로 잘 싸운다고 해도 그렇게까진 강하지……."
강경파의 마족들은 나를 향해경계의 시선을 보내면서도 말하는 걸 보면 나를 이길 수 있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반응에 바르바 전하는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웃기는군! 그대들은 벤디나 안에서만 생활해서 이제는 사건의 거대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흐려진 건가?"
"바르바 전하?"
"아무리 전하라도 방금말은 철회해주십시오."
"철회? 철회라고? 내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나? 범람이다…… 바로 던전의 범람이란 말일세. 세계의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범람을 막은 주역이 바로 여기에 있다!단 일주일 만에! 세계의 재앙을 막은 영웅이 있단 말일세!
그런 영웅이 이렇게 버젓이 있음에도 전쟁을 벌이면 이길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으니 내가 웃지 않고 배기겠나? 안 그러냐, 우르고스! 너도 그의 강함은 아주 잘 알고 있겠지?"
"크윽…… 그래, 확실히 그 녀석은 강해. 내가 속수무책으로 바로 당해버렸으니까."
"우르고스 님이?"
"그게 정말입니까!"
"뭐야? 그런 것도 몰랐던 거냐? 우르고스, 자신의 곁에 둘 자는 적어도 정보력에 뛰어난 자들을 둘 것을 형으로서 충고하마."
"헹, 괜한 참견이야. 확실히 그 녀석은 강해.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싸움이고 전쟁이야. 게다가 우리에겐 이 문양의 힘이 있어."
"그 문양의 힘을 가지고도 처참히 진 게 바로 너지 않느냐, 우르고스."
"아니…… 그건 문양의 힘이 아직 약하기 때문이야. 문양이 한 곳으로 모인다면야…… 이길 승산은 충분히 있어!"
"문양을 모은다고?"
우르고스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가만히 회의날 만을 기다린 게 아니라고, 형님. 내 나름대로 나도 조사를 해서 알아낸 사실이 있지…… 그건 바로 문양을 가진 자들은 서로의 문양을 양도하거나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 문양을 모으면 모을수록 힘은 더욱 강해지고 마족에 대한 지배력도 강해지지."
그건 베인 씨에게 한 번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무리 호위라는 입장이라고 해도 인간인 내가 있는 앞에서 나불나불 설명해도 되는 걸까?
너무 당연하게 숨기지도 않고 털어놓기에 조금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 분명 문양을 전부 모으면 그마족은 진정한 마왕으로 각성하는 게 틀림없어! 그렇게 된다면 저 녀석도 분명 이길 수 있을 거다!"
그 전에 내가 제압하는 건 생각하지도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닌지 크라이그 씨나 아만다 씨, 그리고 니노 씨도 우르고스를 이상한 놈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걸 이용한다면 지금 병상에 있는 아바마마도 금세 나아지겠지! 바로 내가 아마바바의 문양을 흡수하면 그만이니까!"
"역시나 우르고스님!"
"훌륭한 계획입니다!"
"우르고스 님이야말로 차기 마왕에 어울립니다!"
떵떵 말하는 우르고스를 향해 강경파 마족들은 눈을 빛내며 우르고스를 찬양했다.
그런 강경파 마족들을 보고 잠깐 한숨을 쉰 바르바 전하는 머리에손을 대며 우르고스를 불렀다.
"우르고스."
"뭐야, 형님!"
"아바마마의 건강을 생각하는 건 정말 기특하고 형으로서…… 같은 가족으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하지만 네 행동에는 정말 동정이 갈 정도로 머리가 아파오는구나."
"어엉? 내 행동이 뭐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이길지 어떨지는 지금은 놔둔다고 해도…… 그런 말을 지금 랜트나 그 동료들이 있는 곳에서 떵떵 말하는 건 매우 섣부르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너를 제압하거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데 말이다."
"아……."
""아…….""
바르바 전하의 말에 우르고스와 강경파 마족들은 끼기긱하고 나를 바라봤다.
그런 광경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크라이그 씨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지금 만담 보고 있는 거냐?"
"푸훕, 마족의 왕족이나 귀족이 직접 만담을 보여주다니 우리 엄청 대접받고 있네."
"으윽……."
빠득 하고 우르고스와 강경파 마족들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강경파 마족들은 우리를 향해 경계가 아닌 적의의 시선을 보냈고 각자 무기에 손을 대고 있었다.
사태 파악이 됐는지 우리가 먼저 자신들을 제압하기 전에 없애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나도 조그마한 계기가 있으면 곧바로 우리를 향해 뛰어들려고 하는 강경파 마족들을 염동력으로 단숨에 제압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끼이이이익…….
회의장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이곳에 있었군."
안으로 들어온 것은 한 쌍의 마족이었다.
노중년으로 보이는 연보라색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회색 머리의 마족이었다.
그 마족을 보자마자 회의장에 있는 모든 마족들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아, 아바마마……."
"아바마마! 일어나도괜찮은 거야!?"
아바마마.
그 말은 즉 지금 들어오고 있는 마족은 마족의 왕.
즉 병상에 누워있다고 들었던 마왕이었다.
여태껏 누워있었다는 건 사실인지 마왕의 얼굴은 꽤 초췌해 보였다.
"지금 뭣들하고 있는 거지?"
"아바마마!"
우르고스는 단숨에 마왕을 향해 뛰어가 마왕의 두 어깨를 잡고 물었다.
"몸은 괜찮은 거야?"
"그래, 깨달음을 얻으니 한층 나아지더구나. 그래서 지금 뭘 하고 있던 게냐, 우르고스."
"아바마마가 쓰러져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회의하고 있었어. 그래, 아바마마! 이건 기회라고! 이 문양은 베인신이 우리에게 파괴를 벌이라는 뜻이야! 우리는 파괴를 일삼아야 한다고! 그게 마족이잖아!"
우르고스는 팔을 활짝 벌리며 말을 이어갔다.
"아바마마! 게다가 난 지금껏 아바마마를 힘들게 했던 문양의 해결법도 찾아냈어! 나에게 문양을 넘겨줘 아바마마! 그럼 내가 직접 마족들을 이끌고 베인신의 뜻을 이루겠어! 아바마마는 형님처럼 평화를 주장했었지만 그건 베인신의 계시가 없었을 때 얘기잖아?"
우르고스는 자신의 팔뚝에 생긴 문양을 마왕에게 보였다.
"하지만 이 문양이야말로 베인신의 가호이자 계시잖아! 그렇지 않아, 아바마마!"
마왕을 향해 열변하는 우르고스를 향해 바르바 전하가 언성을 높였다.
"우르고스!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나신 아바마마의 속을 더 썩일 셈이냐!"
"속을 썩이다니! 난 오히려 아바마마의 속을 편하게 하려던 것뿐이야!"
바르바 전하와 우르고스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때 마왕이 왼손으로 우르고스의 팔을 잡고 입을 열었다.
"우르고스. 네 말은 잘 들었다. 그래, 네가 베인신의 뜻을 실행하려고 한다니…… 정말로 기특하구나."
"응? 아바마마! 드디어 내 뜻을 이해해주는구나!"
"아, 아바마마?"
"하지만……."
퍼어어어어억!
"커헉!"
"아바마마!?"
""폐하!?""
마왕은 오른손으로 우르고스의 복부를 가격했다.
"아바…… 마마……."
쿠웅! 하고 우르고스가 무릎을꿇자 마왕은 우르고스를 내려다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베인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건 나다, 우르고스. 문양을…… 넘겨라!"
우우우우우웅!
우르고스의 팔을 잡은 마왕의 팔이 불길한 기운을 내며 빛나는 순간.
"끄아아아아아악!!!!"
우르고스의 비명이 회의장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