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0화 〉569화-마왕 재림
짧았던 마왕 재림 사건과 함께 강경파의 전쟁 추진 계획을 무산시키는 의뢰를 완벽하게 완수한 후 나는 같이 온 일행과 함께 바르바 전하의 사무실로 왔다.
강경파 마족들은 부리나케 회의장을 떠났고 온건파 마족은 식은땀을 흘리며 매마른 웃음을 짓고 회의장을 떠났다.
신화에서만 등장할 줄 알았던 마왕으로서 재림한 현 마왕님을 압도적으로 내가 이겨버려 내가 매~우 거북해서 그런 거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고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자신의 사무실로 와서 얘기를 나누자고 말을 건 바르바 전하는 다른 마족들보다는 역시 강단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바르바 전하는 사무실 의자에 앉은 후 잠시 한숨을 쉰 다음 나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군. 고맙네, 랜트 공."
"아니요, 저는 의뢰에 관련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제가 안 하면 정말로 큰일 날 것 같았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그대는 아바마마의 목숨을 끝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수단을 선택해주었지. 그것만으로도 내가 그대에게 감사하는 이유로는 충분해."
확실히 솔리 포스를 쓰지 않아도 베인 씨가 말한 것처럼 모든 문양을 보은 마왕을 쓰러뜨려도 사건은 해결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걸 사용하는 게 좋다.
만약에 정말로 내가 마왕을 그대로 죽여버렸다면 지금 이 자리는 더욱 암울한 분위기가 됐을 거다.
나에게 감사를 하던 바르바 전하는 미간을 좁히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미안하네."
그리고는 갑자기 나에게 사과를 했다.
"이번 의뢰 달성에 대한 보수를 어떡해야 할지……."
"응? 뭐야? 설마 보수를 못 주겠다는 거야?"
보수 얘기가 나오자 가장 먼저나선 건 크라이그 씨였다.
"나와 아만다야 그다지 한 게 없으니까 조금밖에 못 받아도 할 말은 없어. 하지만 랜트는 다르잖아?"
조금 진지한 어투로 말하는 크라이그 씨를 향해 제이슨 씨가 말했다.
"진정해라, 크라이그. 바르바 전하는 아직 말을 다 하지 않으셨다. 전하, 계속 말씀하시지요."
"고맙네, 제이슨. ……물론 랜트 공에게 보수를 주지 않는다는 그런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행위는 당연히 안 할 걸세. 다만 그렇기에 고민되는군. 나는 랜트 공이 이뤄주신 업적에 합당한 보수로 무엇을 줘야 할지 갈피도 안 잡히네."
바르바 전하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난 처음에 랜트 공이 힘을 보여주기라도 해서 어떻게든 문양 문제를 해결하고 아바마마가 기운을 차려주실 때까지 강경파들에게 경각심을 줘 시간을 벌 수 있는 걸 생각했었지.
허나 랜트 공은 강경파들에게서 완전히 전쟁을 일으킬 의욕을 꺾을 뿐만이 아니라 마왕으로 각성하신 아바마마를 진압해주었네. 이 업적을 대체 무엇으로 보상해야 하는지……."
말하자면 바르바 전하는 내가 한 일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단순한 금전의 보상으로만은 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난감하다는 거였다.
으음~ 그냥 돈으로 줘도 되는데.
아니, 그럴 경우 무리를 해서라도 바르바 전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던전에서 마물을 왕창 잡아서 파는 나날이니 돈은 넘칠 대로 넘쳐나는데 바르바 전하가 그렇게까지 하신다면 나로서는 난감하다.
그리고 모험가로서 의뢰를 달성하면 뭔가라도 보수를 받는 건 당연하다.
으음~ 어떡하지.
바르바 전하와 함께 나도 내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니노 씨가 깜찍하고 귀여운 느낌으로 웃으면서 짝하고 손뼉을 쳤다.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랜트 님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건 어때요?"
"소원……?"
"네! 어차피 돈이야 랜트 님이 가장~ 받아도 그다지 감흥 없는 거잖아요? 랜트 님은 이미 던전에서 마물 잡아다가 재료 팔기만 하면 엄청 돈 버니까요~ 그러니까 차라리 랜트 님의 소원을 들어주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확실히…… 그저 돈으로 지불하는 것보다 랜트 공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게 더 좋겠군. 랜트 공은 어떤가? 만약 돈을 원한다면 내가 쥐어짤 수 있는 한 최대한 쥐어짜 랜트 공이 흡족할만한 금액이 될 때까지 노력해보겠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아, 소원으로 해주세요. 돈은 딱히 됐으니까요. 저는 소원이면 되는데 아만다 씨와 크라이그 씨는 어떡하실래요?"
내 물음에 아만다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아니, 우리야…… 크라이그 말대로 별것 한 거 없잖아? 진짜 거의 관광만 하다가 모험가 길드에서 신나게 대련한 것뿐이고."
"아니, 그렇지는 않아. 자네들이 랜트 공과 함께 모험가 길드에서 대련을 해준 덕분에 자존심이 강한 강경파들은 몰라도 일반 마족 모험가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바르바 전하는 싱긋 웃으시면서 우리를 바라봤다.
"플단의 모험가가 강하다는 건 물론 알고 있지만…… 실제 그 강함을 체험하는 건 엄연히 다르지. 인간 족의 강함은 그로부터 꽤나 소식이 퍼져서 그나마 정보력이 있는 강경파들에게 강한 경각심을 주었어."
"하지만 랜트가 나서서 다 해결했으니까 우리가 한 건 뭔 성과를 이룬 것도 아니잖아."
"결과적으론 그러겠지. 하지만 그대들의 덕분에 일부 강경파들에게 경각심을 줬던 건 엄연한 사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그대들이 보수를 받을 이유는 충분하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우리야 보수를 받을 수 있으니 좋지. 아, 우리 소원 같은 건 상관없으니까 처음 줄려고 했던 돈으로 주라고. 너도 좋지, 아만다."
"그래."
"알겠네. 그럼 나중에 제이슨을 통해 건네도록 하지. 자, 그럼…… 랜트 공."
크라이그 씨와 아만다 씨와의 대화를 끝낸 바르바 전하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의 소원인 무엇인가? 뭐든 말해보게. 내가 이뤄줄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 어떻게서든 이뤄주지."
소원.
솔직히 갑자기 막상 소원을 말하라고 해도 딱 좋은 게 떠오르지 않았다.
으음, 뭐가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띠링! 하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마왕 바엘SIDE
눈을 떴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아바마마!"
"폐하!"
"깨어나셨군요, 아바마마."
나의 아들인 바르바와 우르고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내가 사랑하는 여성, 나의 아내 살리아의 얼굴이었다.
"바르바, 우르고스, 살리아…… 여긴……."
"여긴 아바마마의 침실이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몸이라……."
나는 손을 들어 이제는 없는 베인신의 문양이 새겨졌던 팔을 보았다.
"음?"
그리고 나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베인신의 문양이 없어진 후.
나는 다시 내 몸이 원래대로…….
문양의 고통에 시달려 초췌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치는 팔은 문양을 흡수했을 때의 그 건장한 몸 그대로였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어째서 몸이 그대로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랜트 공이 아버님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때. 아버님의 비대해진 뿔은 작아지셨지만, 몸은 그대로셨습니다."
"문양이 없어져 쇠약해질 거라고 생각했건만……."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힘은 여느 때보다도 힘을 담을 수 있었다.
"오히려 건강해졌구나……."
"아, 아바마마. 기억은 다 있는 거야?"
기억…….
그래, 난 모두 기억하고 있다.
문양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기억도.
문양의 유혹에 굴복해 정신이 이상해졌을 때의 기억도.
"그래, 다 있다. 우르고스, 때려서 미안하구나."
"괘, 괜찮아, 아바마마! 그 정도야 난 끄떡 없다고! 누구 아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르고스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과장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이러한 모습은 예전부터 변하지 않았다.
우르고스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바르바, 그 뒤로는…… 어찌 되었느냐."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바마마. 우선……."
바르바의 말에 따르면 그 뒤 문양의 힘으로 마왕으로서 재림한 나를 압도적으로 쓰러뜨린 그 인간족 모험가의 모습을 보고 강경파의 마족들은 완전하게 전쟁을 할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확실히 그렇게 압도적으로 마왕으로서 재림한 나를 그렇게나 압도적으로 쓰러트렸으니 당연하겠지.
"우르고스도 그리 생각하느냐."
"아니, 뭐…… 응. 그 녀석이 적이 되면 진짜 벤디나 몰락한다고 딱 느껴지더라."
"그렇구나. 바르바, 그럼 랜트 공과 그 동료는 어딨지? 왕으로서그들에게 무엇이라도 보답으로 하사하고 싶구나."
"죄송합니다만, 아바마마. 그들은 이미 벤디나를 떠났습니다."
"벤디나를 떠났다고? 벌써 말이더냐?"
"아바마마. 그때부터 3일은 지났어."
"뭐라고? 3일이나?"
그때 내 손을 살리아가 언제나 부드러운 따스한 손으로 내 손을 쥐었다.
"전혀 깨어날 기색을 안 보이셔서 걱정하였습니다, 폐하."
살리아의 눈가에 작은 눈망울이 생겨났다.
"오오, 살리아……."
사랑하는 아내에게 눈물이 나오게 하다니.
곧바로 손을 뻗어 나의 아내의 눈물을 닦았다.
"미안하오, 심려를 끼쳤구려."
"아닙니다. 폐하가 이렇게 눈을 뜨는 것만으로 모두 보답 받았습니다."
내 손을 볼에 대며 미소 짓는 나의 아내의 모습은 얼마나 세월이 지나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아쉽도다, 만약 랜트 공과 일행들이 아직 벤디나에 있었다면 내 직접 보답을 하고 싶었건만……."
"아바마마, 그에 관해 할 얘기가 있습니다. 랜트 공은 사건이 종결된 후. 제가 건 의뢰의 보답으로 소원을 말했습니다."
"오오, 소원 말이더냐. 우리의 은인의 소원이라면 뭐든지 들어줘야겠지. 우리는 그에게 큰 은혜를 받았으니. 그래, 바르바. 랜트 공의 소원은 무엇이더냐."
"그것은 바로 좀 더 활발한 어비스와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입니다."
"어비스와 다른 나라들의 교류?"
"네. 좀 더 개방적으로 무역과 교류를 랜트 공은 원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긴급 시의 정보전달을 위해 국경선 부근만이 아닌 어비스의 모든 모험가 길드 지부에 다른 나라의 모험가 길드처럼 통신용 마도구를 설치를 원했습니다."
"정녕…… 그것뿐이더냐?"
"네, 랜트 공은 그것만을 원했습니다. 저도 그에게 재차 되물었습니다만, 번복은 없었습니다. 랜트 공의 말로는 자신은 이미 충분히 이 벤디나에서 즐길 건 다 즐겨서 딱히 원하는 게 없다고 하더군요.
소원을 들어준다면 좀 더 이 대륙에 있는 나라들이 좀 더 대화를 나눌 기회가 늘어나면 좋겠다 하더군요."
"허, 허허……."
그 부탁은 자신의 이득보다 남을더욱 위하는 그야말로 위인이나 영웅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플단의 S랭크 모험가…… 던전 크래셔 랜트……."
과연 재앙을 막아내고 문양에 잠식되어 마왕이 된 나를 압도한 실력에 걸맞은 인품을 가진 자였다.
"다음에 오면 내가 직접 그를 대접하고 싶군. 평화를 지켜 낸 영웅과 이번에는 제정신으로."
"제이슨을 통해 랜트 공에게 전해두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마, 바르바. 그리고 우르고스."
"어, 으, 응! 아바마마!"
"미안하지만 네 형과 함께 방을 나가줄 수 있겠느냐. 잠시 너희 어미와 둘만 있고 싶구나."
"알았어! 가자고, 형님!"
"그래,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의 시간을 방해할 순 없지."
바르바와 우르고스가 나간 후 나는 살리아의 향해 미소지었다.
"살리아."
"네, 폐하."
그리고 일어난 순간 이 건강한 몸 때문인지 아니면 솔리신의 기운을 쬐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 내 몸을 맴돌고 있는 이 강한 욕구에 몸을 맡기며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말했다.
"사랑하오."
"저도 사랑한답니다, 폐하."
"……바르바와 우르고스에게 형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네? 폐하 그, 그게 무슨…… 무, 물론 폐하가 원하신다면 저는 언제든지…… 허, 허나 지금은 이제 막 깨어나셨습니다. 그런 건 나중에……."
붉은 꽃처럼 사랑스럽게 얼굴을 붉힌 살리아의 손을 내 가슴에 가져갔다.
"아……."
"난 지금 매우 건강하오. 그리고 이 건강한 몸으로 오랜만에…… 당신을 맛보고 사랑을 속사이고 싶소이다."
"폐, 폐하……♡"
아아, 베인신이여.
우리의 어미여.
죄송합니다.
지금의 저는 파괴와 죽음보다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생산적인 일이 더욱 마음에 듭니다.
바르바가 차기 마왕이 되는 건 거의 결정 난 거나 마찬가지니…….
5명 정도 더 형제가 생겨도 이젠 문제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