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6화 〉605화-해피 미팅!
랜트 님은 가만히 나를 쳐다보셨다.
분명 어이없으신 거겠지.
갑자기 뛰쳐나온데다가 저렇게 술과 안주까지 사 와주셨는데 이런 어리광을 부리다니.
나에게 실망하셔도 당연할 거다.
하지만 랜트 님은…….
"……알겠어요!"
술과 안주를 다시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으시고 태양과도 같은 눈부신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한바탕 해봐요!"
랜트 님은 실망한 기색도 없이 이런 내 어리광을 받아주셨다.
아아,랜트 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죄송합니다.
폐를 끼치겠습니다.
나와 랜트 님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상대는 랜트 님.
잔기술 같은 건 통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이건 대련이아니다.
그저 내 화풀이에 랜트 님이 어울려주실 뿐.
그러니 기교나 복잡한 공방전 같은 건 필요없다.
애초에 랜트 님에게 그런 게 통할 리 없다.
필요한 건 오로지 이 내 울적함을 풀어버릴 화끈한 행동뿐.
"하아아아아앗!"
최대한으로 온몸의 마력을 써 신체를 강화하며 들고 있는 검에 마력을 담는다.
"갑니다!"
콰아아아앙!
땅을 박차며 랜트 님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진심을 낸 일격.
자만은 아니지만 내 이 일격을 받아낼 상대는 매우 적을 것이다.
적어도 랜트 님의 연인이신 라이파 님, 그레이시아 님, 니냐 님, 노아 님은 지금 내 공격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베이고 만다.
그런 공격을 나는 랜트 님을 향해 휘둘렀다.
카아앙!
하지만 그런 내 검격은 랜트 님이 만들어내신 마력의 검에 의해 막혔다.
아니, 마력의 검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보통 마나웨폰으로 만든 검은 고유의 마력색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랜트 님이 들고 있는 검은 겉보기에는 흡사 진짜 검처럼 보인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 검 안에 담아진 막대한 마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짜 검하고 착각하게 될 정도다.
랜트 님은 내 검을 받아내면서 말씀하셨다.
"얼마든지 와주세요. 제가 렐리아 씨의 모든 걸 받아드릴게요."
이 말이 이런 상황이 아닌 연애적 상황일 때 나오는 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련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랜트SIDE
콰아아아아앙!!!
렐리아 씨의기분 풀이를 위한 대련으로부터 20분.
나는 렐리아 씨의 공격을 오로지 막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렐리아 씨가 전력을 다해 공격해 울적한 기분을 날리는 것이기에 내가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렐리아 씨는 그저 온 힘을 다해 마력을 담아 공격을 반복했다.
기교 같은 건 전혀 없는 무식한 휘두르기.
하지만 휘두르는 사람이 렐리아 씨기에 그 위력은어마어마했다.
확실하게 공격을 막았음에도 주변은 여파로 인해 나무가 뽑혀 날아가거나 주변 자갈이 다 날라가 흙이 다 드러났다.
처음 일격부터가 그랬기에 나는 바로 렐리아 씨와 내 주변에 장막을 만들어 여파가 더 이상 주변 환경을 파괴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렐리아 씨는 장막을 친 나에게 고맙다고 한마디하며 다시 검을 휘두르고.
그 검의 기세는 더욱 매서워지며 위력 또한 올라갔다.
렐리아 씨의 공격은 마왕이 내지른 주먹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공격의 위력을 따지자면 풀 엑셀러레이트를 쓰지 않은 상태의 야서왕의 공격보다 강한 위력이었다.
공격을 하는 중에 렐리아 씨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으아아아아아아앗!!!"
크게 고함을 지르며 그저 공격만을 했다.
그런 행동을 장장 20분 동안 계속했다.
"하아…… 하아……."
아무래도 20분 동안이나 그런 위력의 공격을 해내서 그런지 렐리아 씨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렐리아 씨는 검을 거두시더니 인벤토리에서 라이파 씨와 그레이시아 씨하고 대련할 때 보였던 활을 꺼냈다.
그리고 그때처럼 렐리아 씨는 화살을 꺼내지 않은 채 활시위만을 당겼고.
우우우우웅!
렐리아 씨의 손에서 마력이 고속으로 보이면서 하나의 화살을 만들어냈다.
그때 봤던 과정이라면 여기서 곧바로 활시위를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렐리아 씨는 활시위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마력을 화살에 담았다.
계속해서 모이는 마력.
모이는 방대한 마력에 비해 바람도 불지 않은 정적 안에서 그저 렐리아 씨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그 마력량을 늘려간다.
마력이 화살에 담길수록 위력이 올라간다는 건 확연하게 느껴졌다.
직감이지만 지금형성된 화살의 위력은 풀 엑셀러레이트를 하고 나에게 공격한 야서왕의 공격에 필적한다.
즉 내 마나웨폰에 금이 가게 할 정도의 위력이란 소리다.
렐리아 씨는 가만히 나에게 화살을 겨누며 바라보다가 입을 움직이기시작했다.
"겨……."
"겨?"
"결혼하고 싶다아아아아아아아아앗!!!!"
심금이 울리는 처절한 영혼의 외침이 들렸다.
"읏……."
화살을 받기도 전에 그 외침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살이 쏘아졌다.
그레이시아 씨의 윈드 부스트보다도 몇 배는 빠른 속도의 화살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분명 금이 간 정도로 이걸 마나웨폰으로 쳐내도 막을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 공격은 렐리아 씨의 울분이 담긴 공격.
렐리아 씨의 맞선을 볼 자로서.
렐리아 씨의 달링이 되고 싶은 자로서.
이 공격만은 내 몸으로 직접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마나웨폰을 없애고.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양손으로 내 가슴팍에 닿으려 하고 있는 화살을 양손으로 손뼉을 치며 잡아냈다.
잡은 순간 화살 안에 담겨 있는 방대한 마력이 터져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으로 퍼지려고 했다.
완전히 화살이 폭발하기 전에 나는 화살을 잡은 손 주위로 작은 마력의 장막을 펼쳐다.
번쩍하고 눈부신 폭발의 빛이 장막 안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건 단 하나의 생채기도 남지 않은 장막 안에 들어 있는 내 손뿐이었다.
"……역시 랜트 님은 대단하시군요. 정말로 제 전력을 다 담아 쏜 공격이었습니다. 그걸 정말…… 간단히 막아내시는군요."
렐리아 씨는 체념한듯하면서도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렐리아 씨를 향해, 나는 다시 인벤토리에서 술과 안주를 꺼내며 말했다.
"마실까요."
"하하하, 네. 그럽시다. 오랜만에…… 술이 엄청 땡깁니다."
◈
자갈이 다날아가 흙만 남은 개울가 근처를 내 염동력으로 다시 자갈들을 모은 뒤 적당히 돗자리를 깔고 나는 렐리아 씨와 함께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덧없는 분위기를 풍기며 술을 한잔 들이킨 렐리아 씨.
"하하,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술이 조금 쓰네요."
나는 그런 렐리아 씨를 보고 정말로 감정을 풀어헤치려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랜트 니이이이이이이임! 으허어어어어어어엉!!!"
다섯 잔째 들이켰을 때 렐리아 씨는 평소 내가 봐왔던 모습으로 바로 변했다.
지금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꿀꺽꿀꺽꿀꺽! 와그작와그작."
내 손에서 술을 낚아채 병나발 채로 마시며 안주를 한 움큼 쥐며 입안에 집어넣고 있다.
"술이랑 안주가 너무 맛있어요오오오오오!!! 으허어어어엉!"
"잘됐네요. 더 있으니까 많이 드세요."
한 병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30병 정도는 사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히끅! 흐윽! 고맙습니다아아아! 으허어어엉! 꿀꺽꿀꺽! 랜트 니이이이임! 좀 들어주세요오오오오!"
"네, 얼마든지 들을게요. 말해보세요."
"그게…… 그게 말이죠오오오! 으아아아앙!!"
렐리아 씨는 연신 울면서 얘기를시작했다.
그 탈의 게임을 한 이후로 꽤 많이 나를 의식했다는 얘기.
3일 동안 나랑 연인들이랑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고 옆구리가 너무나도 시렸다는 얘기.
3일 동안 손 하나 안 대고 반응도 안 보여서 나하고는 전혀 가망 없다고 깨달은 얘기.
솔로 돌아간 후 나랑 마렌 대신관님이 섹스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던 얘기.
그리고 이 2주 동안 울적한 기분에 술도 제대로 안 넘어가고…….
그런 기분일 때, 또다시 실패할 게 뻔한 맞선 얘기를 마렌 대신관님이 꺼내려고 하자 감정이 주체를 못 하고 폭발한 얘기.
즉, 지금 이렇게 된 경위를 렐리아 씨는 계속 술을 마시고 안주를 씹고 울어가며 얘기했다.
설마 그 3일이 렐리아 씨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줄 줄은 몰랐다.
렐리아 씨도 관광을 즐거워하신걸로 보였는데.
그리고 설마 아직도 내가 마렌 대신관님과 섹스를 했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아마 렐리아 씨가 폭발한 가장 큰 계기는 그거였다.
같은 독신 동맹인 줄알았던 마렌 대신관님이 나랑 했다고 착각한 렐리아 씨.
마치 관심 있던 남자가 친한 친구에게 빼앗긴 듯한그런 느낌일 것이다.
"믿었는데에에에에! 마렌 언니 믿었는데에에에!! 으허어어엉! 이젠 아무도 못 믿어! 다 미워! 으아아아앙!"
그리고 그 느낌을 렐리아 씨는 취하면서 내뱉고 있다.
우선 이 오해부터 풀도록 하자.
"렐리아 씨, 오해에요. 전 마렌 대신관님과 섹스하지 않았어요."
"흥! 안 믿어요! 그런 거짓말 전 전혀! 안 믿어요! 훌쩍! 히끅! 안 믿…… 안 믿…… 믿고 싶어어어어어엇! 으허어어어엉!!!"
"정말로 섹스 안 했어요. 믿어주세요."
"그럼 뭐 했는데요! 그 시간 동안 대체 뭐 했는데요오오옷! 얘기만 한다고 그렇게 오래 있을 리 없잖아요오오오옷!! 결국엔 거짓말이야아아앗, 으허어어어엉!!!"
어차피 그냥 안 했다고 하면 렐리아 씨는 안 믿을 거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말하자.
"어…… 일단 펠라치오 받고 제가 손으로 마렌 대신관님을 한 30분 이상은 애무로 가게 했어요."
"으허…… 으으응? 히끅! 페, 펠라? 애, 애무……?"
울기만 했던 렐리아 씨가 이쪽을 쳐다봤다.
"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나는 그때 있었던 일을 상세히 렐리아 씨에게 설명했다.
처음 마렌 대신관님이 오해하여 옷을 벗은 일은 물론 그 후 남성의 욕구도 있기에 자지 관찰 및 펠라치오를 받은 일.
그리고 내 애무 테크닉을 구사하여 마렌 대신관님을 가고가고 또 가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아아읏, 그, 그, 그, 그런 일을…… 대, 대신전 안에서……."
화아아아악
렐리아 씨는 술과는 별개의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홍당무가 되셨다.
귀엽다.
"네. 그러니까 섹스는 안 했어요. 마렌 대신관님은 여전히 처녀세요."
"그렇…… 구나. 마렌 언니 여전히 나랑 같은……."
그때 뚝하고 렐리아 씨가 말을 멈췄다.
"아니, 좋지않아! 나보다 결국 앞서갔잖아! 나 손으로밖에 안했는데! 마렌 언니는 빨기까지 하고! 거기다 랜트 님이 마구 가게 하고! 히이이이잉…… 역시 거짓말쟁이예요! 랜트 님 바보! 뭐가 섹스 안 했다는 거예요! 당당히 말해도 섹스만 안 했지 야한 짓 했잖아요! 으허어어어엉!"
뻐어어억! 뻐어어억! 뻐어어억!
렐리아 씨는 꽤 힘을 담아 내 가슴을 내리쳤다.
위력을 따지자면 오크의 두개골 정도는 간단히 함몰시킬 정도다.
물론 그런 공격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나이기에 렐리아 씨는 이런 강도로 하는 거겠지.
당연히 나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렐리아 씨의 말이 내 마음을 마구 찔러댔다.
"몰라! 다 몰라! 다 싫어! 맞선도 이젠 안 볼 거야! 다신 안 봐!으허어어어엉!"
"전 렐리아 씨가 이번 맞선 꼭 봐주시길 바라는데……."
"흐윽! 뭐, 뭐예요, 그 말은! 어차피 이런 귀찮은 여자…… 나이만 든 여자는 싫다는 거죠! 으허어어엉! 정 없으면 받아준다는 말 지키기 싫으니까…… 빨리 맞선이나 봐서 가버리라는 거잖아요! 너무해! 너무해! 랜트 님까지 날 매정하게 대해! 흐아아아아앙!!!"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렐리아 씨를 향해 여태껏 감췄던 비밀을 밝혔다.
"렐리아 씨의 다음 맞선 상대는 저니까요."
"……네?"
크게 울던 것을 뚝 그치고 렐리아 씨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