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심문
* * *
000
어두운 감옥 속에 마력의 파동이 퍼져나가며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빛이 들어오는 것은 벽에 나 있는, 쇠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뿐.
밤이 되어 마력등이 켜지기 전까지 습하고 어두운 공간이 계속되면
죄를 짓고 이곳에 들어온, 한 성깔 하는 학생들조차 도.
자연스럽게 우울한 기분이 들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클레온을 비롯하여 집행과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법학과의 징벌방으로 들어온 네 사람 중, 리오메스를 제외한 세 사람은.
눈앞의 광경에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다가.
라일라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리오메스에게 외쳤다.
"가, 감도를 증폭시키는 마법!? 3000배라고 했어. 지금?! 3배도 아니고 30배도 아니고…."
"마법은 아니네요. 마력을 사용한 민간요법…. 의술에 가까울까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인간의 감도를 그렇게까지 높여 버리면, 숨을 쉬고 공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죽어 버린다고!"
라일라는 리오메스를 집행과의 여학생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면.
클레온이 그런 라일라의 손을 잡았다.
"크, 클레온? 어째서 말리는 거야?"
"잠깐. 무언가 이상해, 감도가 높아졌다면 무언가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잠시 발을 멈추어 리오메스가 건드린 여학생을 본다.
본인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 자신의 몸을 살피듯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아, 아무렇지도 않은데…?"
여학생이 말하자, 리오메스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서 살짝 뒤로 물러선다.
"뭐, 야…? 실패한 거야?"
라일라 역시 그런 여학생을 보면서 상황을 살피려고 한 다음 순간.
"티스…! 괘, 괜찮아?"
자신의 연인을 걱정하는 목소리로 집행과의 남학생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자.
"히이익…!?"
티스라고 불린 그 여학생은, 남학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비명 같은 소리를 울리며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뭘 한거야?"
클레온이 리오메스에게 묻자, 리오메스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이야기한다.
"말한 대로, 감도를 3000배로 했어요. 정확하게는 `정신 감응도`라는 것을 말이죠."
"...정신 감응도?"
처음 듣는 단어가 나오자, 클레온은 조용히 그 단어를 되풀이했다.
"자신을 위한 말을 들으면 기뻐지고, 반대로 비난을 들으면 슬퍼지고. 일종의 공감능력일까요. 상대방의 행동, 말, 표정 등이 자신에게 향할 때 그 감정을 읽어내는 정도에요."
"...그게 강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루루가 클레온에 이어 질문하자 라일라는 잠시 여학생의 상태를 보다가.
핫, 하고 얼굴을 새빨갛게 한다.
"서, 설마."
"역시 라일라양. 이것저것 파악하는 게 빠르시군요."
아루루와 클레온,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라일라를 바라보면.
라일라는 머뭇거리면서도 두 사람의 의문에 대답한다.
"그러니까…. 그, 연인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건, 일반적으로 기쁜 일이잖아? 가슴이 조금 따뜻해지거나, 하는 정도…. 그런데 그런 사소한 말에서 느끼는 기쁨이 3,000배가 됐다는 건…. 즉."
"맞아요! 사랑하는 이의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커다란 기쁨이 된다는 거죠! 그야말로 가버릴 정도로!"
"... ..."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리오메스.
아루루도, 클레온도 살짝 질린 얼굴이 되어 그녀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걸로 어떻게 정보를 캐낼 건데?"
라일라의 질문에 리오메스는 그저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서서히 더욱 큰 자극을 원하게 되고, 말이나 표정만으로는 도저히 부족해지겠죠? 그러면 결국 서로의 몸을 원하게 될 테고….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묶여있는 상태네요?"
터무니없는 악질이었다.
리오메스는 그런 클레온의 감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에는 같은 것을 남학생에게도 시술한다.
다시 한 번 마력의 진동이 울려 퍼지면.
이번에는 여학생 쪽에서 남학생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크윽...!"
남학생은 괴롭다는 듯 몸을 비튼다.
지금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행복해지는
그야말로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붙잡혀 있었다.
당장에라도 자신들을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 서로의 몸을 껴안고 싶었다.
"아름답지 않나요? 이 애절한 표정."
"진짜 나빴다…."
라일라는 클레온이 생각한 것과 같은 말을 입에 담지만.
리오메스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라일라에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심문의 가장 중요한 점은. 두 사람이 정말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제대로 된 애정이 없다면 아무리 감도를 증폭시키더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리오메스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린다.
아루루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크흑, 집행과의 일원으로서 위엄을 위해 평소에는 내색하려 하지 않았지만 역시 내 여자친구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게 아닐까…?"
"바, 바보! 지금 그런 말을 하면…. 흐그읏...!"
그리고 집행과는 집행과대로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 이 상황을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클레온이 입을 열었다.
"너희. 그렇게 서로가 중요하다면 슬슬 집행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어때?"
"누, 누가…. 이런 협박에…."
남학생은 조금 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리오메스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시선이 제대로 집중되지 않는다.
자신이 봐야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연인뿐이라고.
몸이 정신에 지배당하여 마음대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리오메스는 나긋나긋, 조용하면서도 상냥한 말투로 두 사람의 사이에 서서 이야기 한다.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두 사람은 확실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것은 그것을 조금 솔직하게 만들어 드린 것뿐.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몸을 구속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풀어드릴 수 있는데 말이죠."
점점 달아올라 가는 두 사람의 몸.
미약 따위는 사용하지 않고 오직 커져만 가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 우리는 절대로 동료들을 팔지 않아…."
집행과의 여학생, 티스는 심호흡을 하면서 그렇게 대답하지만.
솔직히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이미 몸 전체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자신의 연인과 손을 마주 잡고 이 애절한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이 심문의 효과는 크답니다~. 거기에, 전혀 없는 감정을 자아낸 것도 아니니까요."
"뭐…. 라고…?"
"두 사람이 지금 서로의 몸을 원한다는 것은, 평소에도 그러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에요~"
"... ...!"
"아핫. 얼굴이 빨개졌네요. 풋풋해서 좋은걸요. 좀 더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게 어떨까요? 3000배에서 더욱 늘려드릴 수도 있는데."
선의에서 나온 고문이었다.
스킨십, 즉 `섹스`를 통해 인간의 마음 관계를 확인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리오메스에게 있어서.
그 결론까지 도달하는 데에 필요한 대화도, 아이 콘택트도.
섹스의 쾌감을 위한 준비 전희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빨리 짝 달라붙어 버릴 수 있게, 편안해 지자고요?"
"...무서워. 역시, 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
라일라는 그런 리오메스의 뒷모습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솔직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자백제나 미약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인간의 연애감정이라는 약점을 파고드는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몸에 남는 후유증도 없고 실제로 피해를 보는 인간도 없다면.
아직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루루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조금.
조금만 등을 밀면, 두 사람이 입을 열 것이다.
리오메스는 그렇게 판단하더니 이번에는 클레온에게 가까이 간다.
"클레온 강사님~ 이분들이 너무 입을 안 여니까 저 쓸쓸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클레온의 귓가에 속삭이면서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역시, 지금 입고 있는 수수한 옷으로는 알기 힘들었지만.
그 크기는 평소의 수업시간에서 보던 대로, 한 손으로는 도저히 잡힐만한 것이 아니었다.
...가, 아니라.
"무 무슨 짓거리야 이 음녀가!?"
클레온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반응한 라일라가 목소리를 높인다.
아루루는 눈을 크게 뜨며, `꿀꺽….`하고 그 장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앙... 생각했던 대로, 클레온 강사님의 손바닥, 굳은살이 가득해서…. 후훗♡ 제 젖소같이 커어다란 가슴의 기분 좋은 곳을 꾸욱 꾸욱 눌러대고 있어요…."
그런 라일라의 외침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클레온의 손을 써서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를 시작하는 리오메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대의 새소리 처럼 청아하고 맑으면서.
마치, 꿀과 같은 끈적거림이 느껴지는 음탕한 목소리로.
"두 분이 솔직해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까요…?"
마치, 움직이지 못하는 두 사람을 놀리듯 조금씩, 조금씩.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후각적으로.
그 자극을 높여가는 것이었다.
"그, 그만해…. 부탁이야, 이 이상…. 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남학생은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연인과 눈을 마주친 채, 입을 연다.
"미치지 않아요~ 인간의 정신은 그렇게까지 약하지 않으니까. 조금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남학생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는 리오메스는 여전히 웃음을 띤 채였다.
그리고.
먼저 무너진 것은 여학생의 쪽이었다.
"마, 말…. 할게요. 이, 이상 내 남자친구가 괴로워하는 건…. 보기 싫으니까…."
"티, 티스!? 나, 나는…. 큭…! 미안…!"
거의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이야기하는 여학생.
리오메스는 그러면 클레온에게서 떨어져서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고마워요, 제가 묻는 것에 대답해 주면 구속구를 풀어줄게요…."
마치 성모와도 같은 목소리로 속삭이면,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 ..."
클레온은 그 광경을 보다가 라일라와 아루루가 있는 감옥 바깥으로 걸어 나온다.
라일라의 흘겨보는 시선과 아루루의 조금 부끄러운 듯한 눈총이 따가웠다.
잠시 뒤, 리오메스가 개운한 얼굴을 하며 바깥으로 걸어 나오면.
그녀의 뒤쪽에서 우당탕 쿵탕 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지금은 무시하도록 하자.
"그래서…. 뭐라고 했어?"
"집행과의 아지트를 이야기해 줬어요. `아리아드네`라고 불리는 지하 미궁을 근거지로 삼고 있다고 하나 봐요."
라일라의 질문에 리오메스가 곤란하다는 듯 대답한다.
"아리아드네, 처음 듣는 이름인걸."
그녀의 말을 듣고, 아루루가 고개를 조금 갸웃거린다.
"아카데미에 없는 장소인 건가?"
클레온이 질문하면 아루루는 고개를 저었다.
"응. 들어 본 적 없어. 미궁이라면 던전인 걸까. 일단 수석의 모두에게 알리지 않으면…."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아루루는 순간 라일라와 눈을 마주친다.
라일라의 표정은 놀라움에 의해 눈을 크게 뜨고
조금 굳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왜 그래? 라일라."
"아, 아리아드네는…. 내가 알고 있어. 하, 하지만…."
사라졌을 텐데, 라고 말하는 그녀.
조금 불안증세를 보이는 라일라를 보며
클레온은 그녀를 데리고 우선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저 둘은 이대로 내버려둬도 되는 거야?"
"제 기술이 해제될 때까진 저 상태일 테니, 앞으로 한 시간은 저럴 거예요. 자연스럽게 힘이 빠져서 기절 할 테니까 간수분들께 말씀만 해놓죠."
리오메스의 대답에 아루루가 고개를 끄덕이고
네 사람은 어두 컴컴한 건물을 나서 알아낸 것을 정리하기로 했다.
001
"...아리아드네는 마법학과가 소유하고 있던 고대 유물 중 하나야."
파라솔이 펼쳐진 노점의 테이블.
라일라는 한 손에 차가운 차를 든 채 머리를 짚고 중얼거렸다.
"마법학과는 신고되지 않고 연구용으로 챙겨둔 유물을 몇 개인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아마도.
라는 말을 덧붙인다.
"유물의 효과는 단순해. 땅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그곳에 거대한 미궁을 만들어 줘. 거기에, 사용자는 내부의 구조를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물건이지."
"안에는 어떻게 돼 있지?"
"별거 없어. 그저 어디까지나 이어지는 통로와 막다른 길의 반복. 그리고 가끔 조금 넓은 방이 나오는 정도."
클레온의 질문에 라일라는 기억을 더듬듯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기 힘들 텐데."
아루루가 걱정거리를 입에 담자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도 않아. 대량의 벽과 통로를 생성해 내는 거니까 마력의 소모량도 엄청나거든.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땅속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사용해."
"...영맥 인가."
클레온의 추측에 이번에는 라일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맥이라는 것은 대륙 곳곳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다.
마력이 많은 곳은 자연스럽게 동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주어, 그 수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자원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 발전하기 쉬운 곳이 된다.
물론, 아카데미에도 영맥이 있다.
마도구 학과가 감시 수정 구슬을 설치하려는 것도, 그 영맥을 따라서였다.
다만, 아리아드네가 모두 펼쳐지기 위해선 지하에도 충분한 공간이 필요했고.
라일라가 아는 한, 아카데미 내부에 그런 장소는 한군데뿐이다.
"성학과에서 기숙사 구역으로 향하는 도중에 있는 넓은 공터."
"...거긴가.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에서 처음 습격받은 곳도 그 근처였지."
클레온은 대충 어디인지 짐작이 간다는 듯 이야기를 한다.
"그럼. 지체하지 않는 게 좋겠네. 수석들에게 알리고, 그 주변을 탐색하도록 하자."
아루루가 일어서자, 리오메스도 따라서 일어선다.
"...클레온은 라일라와 조금 천천히 와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두고 먼저 아이온의 탑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리오메스가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며 멀어져간다.
라일라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의 뒤를 바라보았다.
"괜히 신경 쓰게 만들었네."
"...반응이 이상했으니까."
클레온과 라일라의 눈이 마주치고 침묵이 흐른다.
라일라는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빈 옆자리를 톡톡. 하고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럼, 클레온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라일라의 옆자리에 앉는다.
라일라는 가까이 온 클레온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며, 조금 그리운 것을 떠올리듯.
"...아리아드네는, 내게 추억과 애증의 물건이야."
옛날 일의 이야기를 꺼내는 듯한 서두로, 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