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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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아직 해가 머리 위쪽에 떠 있는 점심.
파라솔의 그림자 밑에서 컵안에 뭉쳐있던 얼음이 녹아내려.
갖추고 있던 형태를 무너뜨리면서 `딸그락`하는 소리가 울린다.
라일라의 말소리가 흐르는 동안, 클레온도 그녀도 자신의 컵에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이야기를 끝마친 라일라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는 잠시 텀을 둔 뒤에 입을 열어 클레온에게 말한다.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었지?"
자조와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녀와 아리아드네, 그리고 베아라는 소녀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았다.
이전, 라일라를 침실로 옮길 때 보았던 그림에 그려져 있던 소녀.
그녀야말로 분명 베아트릭스겠지.
라일라의 기억을 엿보았을 때 가장 깊숙한 곳에 잠겨있던 기억.
그것이야말로, 인간 라일라가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였다.
그 뒤로는 클레온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원로의 자리에 서기 위해 실적을 쌓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잠깐은 같은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동료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라일라에게 있어서는 그들 역시 베아트릭스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같은 목적을 가진 인간일 뿐.
그들이 자신을 친구라 불러도 부정은 하지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그런 것에 슬퍼하지도 않았던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타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라일라였기에 클레온과 대립하였고.
새로운 동료, 새로운 친구인 쿠온을 비롯한 파티원들을 속인 대가로
그에게 패배하고 쿠온의 자비로 살아남았다.
그것을 계기로 그녀가 바뀌게 된 것은, 어쩌면 쿠온과 함께 지내며
그녀에게서 베아트릭스라는 자신의 부정할 수 없는 유일한 빛이었던 존재의 그림자를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이야기 속의 베아라는 소녀는 자상하고 타인을 신경 쓰기 좋아하는 쿠온과 비슷했으니까.
그런 추측이 클레온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조금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입을 열어 라일라에게 이야기한다.
"아리아드네가 다시 나타났다면, 어쩌면 베아트릭스도"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클레온이 이야기 하려고 하자.
라일라는 슬픈 표정이 되며 고개를 젓는다.
"집행과가 이야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아리아드네의 현재 소유주는 집행과의 인물이야."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를 습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뻔 한 집행과에게 베아트릭스가 협력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에, 그녀가 살아있다 면의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베아가 살아있다면…. 내 앞에 나타났을 거야."
그 말에는 라일라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영원한 이별을 한 것이 아니라면.
여러 악행을 거듭한 자신에게 환멸을 느껴도 좋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자신에게 얼굴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아직 숨겨진 게 많았던 고대의 유물이야. 후에 다시 나타난 것을 집행과의 인간들이 회수해서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정체를 숨겨야 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아리아드네의 존재는 눈이 돌아갈 정도의 가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되찾아야겠지."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불명확한 것은 많다.
라일라의 이야기 속에는 몇 가지 퍼즐 조각이 빠져 있었다.
1. 아리아드네의 내부에 나타났던 미노타우르스는 어디서 온 것인가.
2. 집행과는 어째서 베아트릭스를 노린 것인가.
3. 라일라의 기억 속, 그 사건을 기점으로 그 뒤에는 그녀가 집행과에게 노려지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라일라가 그 사실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클레온으로서는 수석들에게 은혜를 입히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라일라에게는 그것보다도 커다란 운명이 얽혀 있었다.
"...응."
라일라는 결의한 표정으로 일어나며 수석들이 모여있을 아이온의 탑으로 향하려 한다.
그때
"클레온 강사."
클레온을 부르는 목소리.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녹색의 꽁지머리를 하는 청년 아니, 소년의 나잇대로 보이는 학생이 서 있었다.
눈은 날카로운 편이며,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등에 메고 있는 화살집이나, 활.
그리고 몸에 걸치고 있는 경갑.
전형적인 사냥꾼의 복식을 하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클레온이 조용히 물어보자 소년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트레이스다. 트레이스 올라리온."
"아, 궁술과의 수석."
라일라는 그 이름을 듣고 정체를 알아챘다는 듯이 이야기했고.
클레온은 `사샤가 있는 학과인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집행과의 아지트를 추적하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래. 아쉽게도 큰 성과는 없었지만."
그는 분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쥔다.
결국, 집행과의 꼬리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학과의 수석들이 각자의 실속만을 챙기려 할 때
혼자서라도 움직인 것은 분명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좀 있으면 수석들이 다시 회의하기 위해 아이온의 탑에 모이는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려고 하자, 트레이스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 들었다. 그 전에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나랑?"
의외의 말에 클레온은 호기심이 동했다.
"미안하지만 라일라 플레임워치는 없이, 단둘이서."
"잠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설마 클레온이 흑마의 일족에 성학과의 강사라고 뭔가 하려는 건 아니겠지."
라일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이야기 하려고 하자, 트레이스는 고개를 젓는다.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 나는 귀족이다. 귀족으로서의 체면과 품위를 헤치는 일 따위, 할까 보냐."
전형적인 귀족이지만, 재밌는 녀석 같다. 라고, 클레온은 생각한다.
그러면 라일라의 어깨에 클레온이 손을 올린다.
"... 금방 와야 해."
고개를 돌려 클레온과 눈을 마주친 그녀는
트레이스가 원하는 대로 한발 먼저 아이온의 탑으로 향하기 위해 움직였다.
멀어져 가는 라일라를 잠시 눈으로 좇던 트레이스는 다시 클레온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와는 어떤 관계지?"
"듣지 못했나? 사샤 사나시아와 함께 나도 그녀와 모험을 했던 일행이야."
"동료, 라는 것인가."
트레이스의 질문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트레이스는 조금 복잡한 심경인 얼굴을 하지만.
금세 평상시와 같은 조금 거만한 무표정이 되어 이야기를 계속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클레온 강사,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게 미행 혹은 추적당하고 있다."
"...집행과의 녀석들이 아닌가?"
아카데미에서 자신을 습격해 온 전적이 있는 것은 그들뿐이었다.
트레이스는 턱에 손을 올린 채 이야기를 계속한다.
"아니, 집행과에게 습격받고 있을 때도. 당신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인물이 있었다."
"이쪽을 돕지도 않고, 집행과에게도 가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말에 클레온 역시 무언가 집히는 게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때때로 느껴지는 질투에 찬 시선.
하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면 클레온은 `응?`하고 잠시 무언가 위화감을 눈치챈다.
"잠깐, 어째서 나한테 미행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그, 그건…. 어, 어쩌다 보니. 다."
트레이스는 클레온의 지적에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을 돌렸다.
그는 어쩌면,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것일까?
"그래서, 그 인물은 어떤 인물인 거지?"
"...그것까지는 모른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뛰어나고 간헐적으로 출몰하는 듯했으니까 말이야."
"마법을 사용한 건가..."
은신류의 마법을 사용하면 일반적인 시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자신의 어둠의 장막과 비슷한 부류라면 고도의 마력시.
그야말로 라일라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그 모습을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있나?"
"조금 전까지는 있었던 것 같군."
클레온의 질문에 트레이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신출귀몰한 스토커까지 달라붙어 있다니, 머리가 아파져 온다.
"알려줘서 고맙다, 경계하도록 하지."
"무엇을, 같은 과의 학생의 보호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그녀가 슬퍼할 테니까."
트레이스는 조금,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이야기한다.
아아, 과연. 그런 것인가 라고 클레온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
"사샤 때문이었군. 나를 감시했던 건."
그 말에 트레이스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굳어 멈춰버렸다.
그러고는 당황한 듯한 말투가 되어 이야기한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군. 물론 사나시아 루펜볼프를 위해서 당신에게 신경을 쓴 것은 맞지만…."
말을 더듬으면서까지 당황한 모습을 보니, 정답이라고 클레온은 확신한다.
"마음이 있는 여자아이의 보호자가 `흑마의 일족`에 `성학과의 강사`라고 하니까 신경이 쓰였나 보지?"
살짝 놀리는 듯한 말투에 트레이스는 `큭...`하고 침음을 내뱉는다.
"...그래, 그 말대로. 하지만 내가 중요시 한 것은 물론 `집행과`의 추적이다."
하지만 허투루 귀족이라는 것은 아닐까 금세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그래서?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지?"
"...당신은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
본심을 들킨 것에 다시 한 번 당황한 듯한 트레이스이지만, 클레온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소년은 잠시 주변을 살피다, 헛기침을 한번 섞은 뒤 이야기 한다.
"사나시아 루펜볼프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줬으면 한다."
"...호오."
"그녀의 재능은 그냥 썩히기에는 너무 아깝다. 올라리온 가문의 지원이 있다면 그녀는 더욱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어."
클레온은 그 말에 입꼬리를 올리면서 대답한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그녀와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
"...그래."
트레이스는 그 뒤에는 속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솔직하게 대답했다.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듯 생각에 잠겼다.
아카데미에 오면서 우려했던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의 동료에게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날파리들이 몰리는 것이었다.
라일라는 둘째치고, 사샤와 쿠온은 그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주변에서 눈에 띄니까.
쿠온이라면 평소에는 조금 느긋한 인상이지만 알베인과 헤어진 후에는 사리분별이 확실하므로 조금 걱정이 덜하지만.
사샤는 시골 출신의 순수한 소녀, 그렇기에 쿠온이나 라일라의 당부가 있다 하더라도 클레온이 마중을 나가는 것이었다.
트레이스는 자신이 우려했던 날파리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과는 다르다.
귀족답게 조금 오만한 인상이지만, 실력도 있고, 쉽게 솔직함을 드러낸다.
친구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클레온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 안 된다. 그녀는 내 것이야. 너한테는 주지 않아."
"...큭..."
웃음과는 정반대의 말이 나오자 트레이스는 다시 한 번 침음을 내뱉었다.
클레온 본인도 자신에게 이 정도의 독점욕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생각한 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조금 긴 침묵이 흘렀다.
트레이스는 잠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물어본다.
"...그것은 혹시 흔히 있다는 `내 딸은 너에게 주지 않는다.` 같은 부류의 발언인가?"
희망적 관측이 심한 소년이었다.
"달라. 그녀는 내 여자니까, 넘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로리콘...!"
"멋대로 말하라지. 너야말로 남의 여자를 빼앗으려 하는 건 귀족으로서 어떻지?"
"그, 그걸 말하면…."
트레이스는 아픈 곳을 찔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뭐, 너 개인을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사샤는 포기해라."
클레온의 말에 트레이스는 고개를 떨어트린다.
현실의 비정함(?)에 상당히 분한 듯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와 친해지려면 나에게 이야기할 필요 없잖아?"
"...나는 귀족 가문의 남자다. 여성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어긋나."
"뭐야 그건.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간 잡을 수 있는 인연도 놓친다."
클레온이 말하자 트레이스는 얼굴을 퍼뜩 들었다.
"클레온 강사도 그런 적이 있나?"
"나, 나...? 음..."
갑작스러운 질문에 클레온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어린 시절에 누군가를 좋아한 경험은 딱 한 번뿐이고.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일 뿐이었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동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제외하면, 클레온에게 있어서 실연이라는 경험은 없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따로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없었으니까.
"아니, 없군…."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솔직하게 대답한다.
트레이스는 그런 클레온을 잠시 바라보더니.
갑작스럽게, 허리를 숙여왔다.
"...클레온 강사, 아니, 스승님!"
"...스승님?"
갑작스러운 호칭 변경에 클레온이 당황하고 있으면.
성큼성큼 트레이스가 그에게 다가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지금까지 마음이 있는 여성이 자신에게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성은 다른 남자와 이어지기 일쑤…! 어쩌면 아버지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나시아정도로 순수한 소녀라면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마저 안된다면…!"
"그, 그러냐..."
속사포처럼 자신의 속내를 쏟아내는 트레이스를 보며 클레온은 당황해한다.
이 녀석, 그런 고민을 품고 있던 건가...
"클레온씨는 어째선지 볼 때마다 곁에 있는 여성이 바뀌어 있을 정도의 남녀관계의 프로페셔널…. 방금 그 말을 듣고 확신했습니다. 훌륭한 사냥꾼(남자)이 되려면 당신처럼 돼야 한다고!"
"갑자기 엄청나게 실례인데…?"
어딘가 자신을 모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말에 클레온은 잠시 의문을 표하지만.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소년에게 무언가 할 의욕은 들지 않았다.
"부탁합니다! 저에게 남녀관계의 비법을 전수해 주세요! 스승님!"
"... ..."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클레온은 분명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일반적인 연애에 대한 경험은 없는 인간이다.
속여서 몸을 섞거나, 필요 때문에 몸을 섞거나, 눈치채고 보니 그런 관계가 되어있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
"아 그, 뭐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는데."
"아뇨! 스승님이 여성을 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클레온은 그런 열정적인 트레이스를 보면서, 결국 제대로 쳐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며 아이온의 탑으로 한발 먼저 향하는 것이었다.
001
클레온과 트레이스가 탑을 올라 수석들의 회의실에 들어오면.
그곳에는 아까와 다르게, 한 명의 교사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나이는 50을 조금 넘었을까, 화려한 드레스에 귀족같이 말아 올린 흰머리를 하고.
몸에는 살집이 퉁퉁하게 붙어있는 여성이었다.
다른 수석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딘가 불신에 차 있었지만.
그래도 수석과 교사의 관계.
직접 입 밖에 내놓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낸 클레온과 트레이스를 향해, 여성 교사가 몸을 돌린다.
"으음? 당신은…? 궁술학과의 수석인 트레이스와…. 흑마의 일족?"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클레온이 무언가 말하려 하자.
그 전에 아루루가 먼저 입을 연다.
"그가 바로 클레온 강사입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고 계시죠?"
"아아…. 그 성학과의…. 흥."
여성 교사는 클레온이 가당치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아루루의 옆에 앉아있던 라일라가 사람을 죽일듯한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또 그 옆에 있던 리오메스가 라일라를 진정시키듯 다리를 붙잡아 앉히는 것이었다.
"갑자기 끼어들었으면 적어도 회의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요."
"...죄송합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상관이었기에, 클레온은 일단은 그녀의 말에 맞추어 준다.
트레이스는 조용히 클레온에게만 들릴 크기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녀는 노움 부인. 12원로 직속의 대리인이고, 수석회의 동향을 그들에게 보고하는 인물입니다."
...즉, 수석들이 자신들에게 반발을 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감시자 역할이라는 것이다.
다른 수석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도 이해가 됐다.
"그래서, 원로분들께서 원하시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아루루의 말에 노움 부인은 클레온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집행과가 소지하고 있는 대단히 위험한 유물…. `데미우르고스`를 회수하라는 것입니다."
노움 부인이 그렇게 말하자, 수석들은 모두 그 명칭에 대해 짐작이 가지 않는 듯하였다.
"데미우르고스가 무엇입니까?"
아루루가 그런 수석들의 의문을 대신하여 질문하자, 노움 부인은 대답한다.
"데미우르고스의 정체에 대해서는 저도 전달받은 바가 없습니다. 원로분들께서는 정체를 아는 것만으로도 금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다 같이 얼굴을 찌푸리는 학생들과 클레온.
정체를 알려주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회수해 오라는 것이지?
"데미우르고스를 소지하고 있는 것은 집행과의 현재 수석입니다. 그녀를 반드시 생포해 오세요."
"... ... 사망자를 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마치, 수석 외의 집행과의 학생들에 관해서는 어떻게 돼도 좋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아루루는 조금 분노한 듯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말이죠."
그런 아루루의 의지를 마치 깔보고 무시하는 듯한 노움 부인의 말투.
그녀는 수석들의 편이 아니다.
원로회의 수족이며, 수석들과는 표면적인 협력관계일 뿐.
노움 부인에게는 지도자, 교사로서의 위엄이나 책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윗사람으로서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전형적인 아이들을 싫어하는 어른.
클레온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루루는 더는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전에 그녀에게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들의 아지트에는 내일에라도 돌입할 예정입니다. 노움 부인께서는 그 전에 교사분들께 이야기를 해서 그 주변에 일반 학생들이 지나다니지 않도록 해 주세요."
아무리 수석들이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집행과라면 전투는 피할 수 없다.
준비시간으로 하루를 잡는 것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아지트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잡을 수 없는 곳에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회의는 이걸로 끝?"
라일라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먼저 가볼게. 걱정하지 않아도 작전에는 제대로 참여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루루와 눈을 마주치더니 클레온의 손을 잡고 탑을 나서는 것이었다.
발걸음을 서두르는 라일라에게, 클레온이 묻는다.
"...무슨 일이야?"
"노움 부인은 원로회와 이어져 있고. 원로회는 집행과와 이어져 있어. 이제 와서 그들을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잘라내려는 게 분명해."
원로회의 힘으로도 그 뒤에는 노출된 집행과를 커버해 줄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것이겠지.
"하지만 원로회라도 전부를 잘라내려 하지는 않을거야. 지금까지 그들을 잘만 이용해 왔으니, 아직 이용가치가 남아있는 이들만을 추려서 남겨놓겠지"
"과연. 그래서 그들에게 알리지 않는 패를 준비해 두려는 거군?"
클레온의 대답에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저런 결계석이나, 마도구를 준비해야 해... 내가 마법을 보여주면 클레온은 지배의 각인으로 그걸 복제해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 미안하지만, 어울려 줘."
"...물론이야."
작전까지 남은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집행과와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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