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루베라 외전 (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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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엘케르도`.
말 그대로 현재 대륙의 대부분을 실질적 지배하고 있는 왕국의 수도이며.
수십 년 전 제국과의 싸움에서 왕성의 턱밑까지 침략을 허용했던 과거를 반성하여.
현재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백색의 성벽으로 도시를 둘러싸, 견고한 방어를 보이는 최강의 요새로 탈바꿈하였다.
왕도에는 많은 수의 귀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출입에 대한 심사가 철저한 편으로.
거대한 평원 위에 세워진 8개의 관문에는 각각 검문소가 위치해서 불법으로 성벽 내로 진입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신분증` 혹은 `모험가 등록증`이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모험가는 길드의 소개장이 필요할 정도로, 왕도 내로 불안의 씨앗을 들이는 것에 대해 신경질적인 편이었다.
본래 귀족 가문의 시종이었던 루베라는 혼자서 검문소를 통과할 일이 없고 거의 모든 시간을 망할 도련님인 유스테스와 함께였기에.
신분증은 물론, 모험가 등록증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검문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낭패로군요."
루베라는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한 긴 줄을 바라보며 살짝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루티 시온스에게 왕성을 통과할 수 있도록 길드 소개장을 써달라고 하는 것이었다고, 후회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 오늘도 노숙이야?"
루베라의 옆에 서 있는 작은 시종복의 소녀, 그 정체는 루베라의 마검인 `바리사다`.
다른 사람 앞에서 부르기에는 조금 이상한 이름이기에, 평소에는 `리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바리사다도 본인(?)도, 그 이름이 썩 맘에 든 듯하였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아이 다운 외견에 맞는 성격 덕분에.
주변을 향한 호기심이 강하고 웬만한 일에는 불평불만을 표하지 않는 그녀이지만.
단 한 가지,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길 위에서 야영하고 밤을 지새우는 것.
즉, 노숙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었다.
쓴 약을 들이켠 아이처럼 얼굴이 뭉개진 바리사다가 루베라를 올려본다.
루베라 역시, 한 달이나 걸려 겨우 왕도에 도착했는데 소개장을 받기 위해 다시 엘레시아로 돌아가는 것은 귀찮았다.
"...어쩔 수 없죠 리사. 성벽을 뛰어넘읍시다. 왜곡으로 저를 `성벽의 안에 있다`라고 해주세요."
"응!? 하지만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고 왕도로 들어가는 건 범죄잖아?!"
"당신도 노숙은 하기 싫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 하지만~` 같은 목소리를 내는 바리사다를 데리고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성벽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 발을 내디딘 찰나.
검문을 위한 행렬의 옆으로 지나가는 호화로운 디자인의 마차가, 루베라와 바리사다의 옆을 지나간다.
딱 보아도 귀족이 탑승한 마차이니 일일이 줄을 서지 않더라도 검문을 통과할 수 있겠지.
루베라는 그런 마차를 조금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몸을 돌리려고 한다.
그때
"루베라?"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조금 전, 루베라와 바리사다를 지나간 마차가 멈춘 채, 그곳에서 내리는 여성의 모습을 보았다.
루베라는 그 여성과 눈을 마주치자 조금 놀란 얼굴이 된다.
그 여성은 딱 보아도 고귀한 신분의 여성으로 보였다.
귀족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인 `공작가`의 여주인.
절제된 화려함 속, 기능미를 추구한 복장은 그녀의 신분에 비해서는 조금 수수하게 느껴졌지만.
걸음걸이나 행동거지에서 느껴지는 감출 수 없는 기품이 그녀의 귀족다움을 강조한다.
정숙하게 뒤로 묶인 브레이디드 번의 금발. 그리고 미소를 띤 얼굴에 보이는 투명한 푸른 눈.
루베라는 스커트를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트로메이아 부인."
그녀야말로 왕도를 포함하여 광대한 왕국 영토의 방위를 담당하는 트로메이아 가문의 여주인이었다.
루베라가 어째서 그녀와 면식이 있는가 하면.
이전, 귀족들의 사교회에서 유스테스가 트로메이아 가문의 시종에게 찝쩍대고 있는 것을.
루베라가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멈추고 그 자리에 있던 트로메이아 부인에게 사죄한 것이었다.
그 행위가 트로메이아 부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그 이후로도 몇 번인가 그녀가 주최하는 다과회에 그녀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 휴즈 후작은 그다지 루베라가 그런 다과회에 참석해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탐탁해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연결 다리를 놓기 힘들었던 트로메이아 공작 가문과의 친목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몇 번인가 다과회에 참석시킨 것이었다.
물론 루베라도 그런 후작의 속내를 알고 있었기에 그가 전하라고 한 메시지나 선물 등은 모두 문제없이 잘 처분하였다.
트로메이아 부인은 마차에서 내려 루베라에게 가까이 오더니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한 쓴웃음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면서 안타깝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우드녹커 가문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모시던 이들이 그렇게 몰락하다니, 안타까운 일이군요."
"... 괜찮습니다. 휴즈 후작은 그런 결말을 맞아 마땅한 개자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루베라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무감각하게 대답하였다.
그 말에는 과장도, 거짓도 없었다.
그러면 그런 거침없는 말에 트로메이아 부인도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입을 가리면서 조신하게 웃어 보인다.
"위로의 말은 필요 없었나 보네요. 그가 어떤 악행을 벌였는지는 이미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된 것이군요? 이쪽의 소녀는?"
트로메이아 부인의 질문에 루베라는 바리사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덤덤히 대답하는 것이다.
"이쪽은 리사. 제 여동생입니다."
"루베라의 여동생…. 헌데 어째서 시종 복장을?"
"제가 가진 옷 중에 사이즈가 맞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요."
[우와, 안 사준 거면서]
[조용히]
속으로 불만을 표하는 리사지만, 겉으로는 싱글벙글 웃어 보이는 미소를 보인다.
"처음 뵙겠습니다 트로메이아 부인! 저는 리사라고 합니다! 언니와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지만 이번에 같이 살게 되었어요!"
"후후, 똑 부러진 아이로군요."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루베라의 눈은 그녀가 타고 있던 마차에 고정되어 있었다.
"트로메이아 부인, 갑작스럽지만 한가지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어머. 무엇인가요?"
정말로 갑작스러운 루베라의 말에 트로메이아 부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왕도로 들어가려 했는데 제가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없습니다. 괜찮다면, 마차에 동석해서 검문을 통과해도 괜찮을까요?"
일반적인 귀족도 아니고 왕국의 심장과도 같은 공작가문의 여주인에게 하는 부탁치고는 조금 무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트로메이아 부인의 눈빛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운 통찰력이 순간적으로 루베라의 몸을 훑었다.
"그 정도 부탁이야. 물론 괜찮아요. 자, 마차에 타 주세요."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띠며, 그녀를 마차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루베라는 허리를 꾸벅 숙여 그녀에게 감사를 표시한 뒤, 그녀의 마차에 올라탄다.
그러면 예상과는 달리.
마차의 안에는 이미 또 다른 인물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회갈색의 값싼 로브를 뒤집어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인물.
공작가의 마차에 타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은 존재였다.
루베라는 약간의 당황함을 느끼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우선 자리에 앉았다.
이 뒤에 바리사다가 자신의 옆에 앉게 되면 4인 석인 마차의 구조상.
자연스럽게 그 인물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었다.
문득, 마주 앉은 그녀로부터 향유의 냄새가 풍겨왔다.
아마 루베라는 꿈도 못 꿀 정도로 고급스러운 물건이겠지.
트로메이아 부인이 마저 마차에 탑승하면, 문이 닫히고 다시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마차에 타는 것은 실수였나? 같은 의문이 루베라의 안을 메아리치지만.
정작, 공작부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루베라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왕도에서 여동생과 둘이서 지내게 되는 건가요?"
"...네. 그렇게 되겠군요."
루베라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그렇게 대답한다.
"그렇다면 다시 일할 곳을 찾아야겠군요. 어딘가 정해둔 곳은 있나요?"
"아, 아니요…."
무엇일까, 자신을 탐색하는 듯한 공작부인의 질문.
이전에 몇 번 만났을 때도, 이렇게까지 질문 공세를 해온 적은 적었다.
"잘됐네요. 마침 저희 집에서 새롭게 시종을 구하고 있었는데 루베라가 지원해 준다면 간단한 면접만으로 채용해 드릴 수 있답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놀랍게도 루베라를 향한 스카우트 제의였다.
루베라는 생각한다, 그렇게 타이밍 좋게 공작가에서 시종을 구하고 있을 리 없다.
그녀의 목적은 자신을 그녀의 옆에 두는 것. 아마, 이전부터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것은 기회를 봐서 자신을 그녀의 인물로 하기 위함이었겠지.
루베라의 그것은 뜬구름 잡는 추측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그런 소문이, 귀족가의 시종들 사이에서 들려온 것이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여성 모험가나, 전력 불명의 무력을 가진 여성들이 차례대로 트로메이아 가문의 시종으로 채용되고 있다.
일간에서는 그 시종들이 공작부인의 사병대가 아니냐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다.
루베라는 또다시 귀족들이 부리는 검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채울 생각은 없었다.
거기에, 그녀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우선은 자신의 발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맥을 사용하여 채용되는 것은 다른 분들께도 죄송하고요."
"인맥도 훌륭한 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쩔 수 없죠.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그녀는 여전히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루베라에게 상냥한 말을 건넨다.
하지만 루베라는 그런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귀족 특유의 음험함에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차는 멈추지 않고 성문의 검문소를 통과했다.
이것이 공작 가문의 위광인가, 같은 생각을 하며 마차는 왕도 내부의 대로를 나아간다.
1달 만에 돌아온 왕도이지만, 여전히 엘레시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있으며.
상인, 병사, 모험가, 성직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인간군상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스카우트에 관한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별 실속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대화가 두 사람을 오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루베라의 앞에 있는 여성(얼굴도 몸도 로브로 가려져 있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와 향유에서 성별이 짐작됐다.)은 마치 투명인간이라는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루베라 역시 그녀에게 질문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와도 같이 느껴져, 실수로라도 시선을 보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아, 이곳이면 됩니다."
그러던 와중 루베라가 목적지로 하고 있던 여관의 앞을 마차가 지날 때, 루베라가 부인에게 이야기했다.
"어머, 여관에서 지낼 것인가요? 꽤 값이 나갈 텐데…."
"괜찮습니다. 이곳에 오는 길에 조금 벌이가 있었던 터라."
실제로, 루베라는 바리사다와 함께 도보로 왕도까지 이동하면서.
몇 번이고 자신들을 얕잡아보고 덤벼오는 산적이나 도적들을 퇴치하고, 그들의 현상금을 받아 생활해 왔다.
말 그대로 가만히 길을 걷는데도 돈이 굴러 들어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바리사다는 그런 겁 없이 덤벼오는 이들을 두고 전설에 나오는 `황금 고블린`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윽고 마차가 천천히 멈추면 문이 열리며 바리사다가 먼저 내린다.
그리고 뒤를 이어 루베라가 내리려던 찰나.
"루베라."
자신을 부르는 공작부인의 목소리에 의해 고개를 돌린다.
"이 마차에는 저와 당신, 그리고 당신의 여동생 셋 만 타고 있던 겁니다. 알겠죠?"
"... ..."
목소리의 톤은 여전히 상냥한 채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경고가 무겁게 느껴졌다.
루베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서 내린다. 땅으로 착지할 때 살짝 비뚤어진 페도라를 고쳐 쓰며 몸을 돌린 뒤, 다시 한 번 공작부인에게 인사를 했다.
마차는 조용히 문이 닫히며 그대로 전진한다.
"후아…. 무서운 분이시네."
"...왕국에서 왕실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여성입니다. 그에 합당한 카리스마가 필요한 법이겠죠. 그것보다도 우선 방을 잡고 씻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며, 짐가방을 들고 눈앞의 여관으로 발을 옮기는 것이었다.
001
그날 밤은 오랜만에 침대에서 잔 덕분인지,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루베라는 한 소년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바리사다와 같이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징그러운 와이번도, 그림자와 함께 시야를 가리는 계곡의 절벽도 보이지 않는 탁 트인 하늘.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빛은, 그녀가 동경해 마지않던 자유로운 별들의 무리였다.
루베라는 별이 좋았다.
그들은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언젠가 그들과 같이, 자유로워 지고 싶다고 바라 마지않았다.
""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그녀에게 첫 번째 자유를 되찾아준 청년이 앉아 있었다.
어느샌가 그녀의 몸도 현재와 같은 어른의 몸이 되어 있었고, 두 사람의 손은 자연스럽게 닿아 있었다.
어째서일까, 평소에는 그에게 싫은 말만 하게 되는 자신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청년에게 조금 더 솔직하게 대할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분명 그런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지만 꿈속에서라면.
현실의 그에게는 닿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애교가 담긴 간드러진 목소리였다.
그리고 서서히 그와 붙잡은 손에 힘을 넣으며.
청년의 얼굴로 가까이
벌떡!
다음 순간, 루베라는 몸을 일으킨다.
아직, 새벽의 해도 수평선 위로 올라오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멍한 머리로 방금까지 있던 일이 꿈이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으응... 루베라...?"
분명 잘 때는 검의 형태였을 텐데, 어느샌가 인간 형태로 되돌아와 자신의 침대로 들어와 있는 바리사다.
잠꼬대와 같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점점 현실 감각을 되찾아가면.
루베라는 무언의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붉힌 채 머리를 붙잡는다.
`방금 그건 뭐야…!? 음몽!? 아무리 한 달 동안 안 만났다지만…! 안심하자마자…. 크윽…!`
속이 들끓는 듯 뒤집히는 한밤중의 수치와 고뇌를 느끼며.
루베라는 결국 잠을 설치는 것이었다.
002
왕도 엘케르도에도 `뒷골목`이라는 곳은 존재한다.
그것은 `엘레시아`에 위치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왕도의 쓰레기통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로.
일상에서 떨어져 나온, 각종 좋지 않은 것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어 서로의 이권을 파헤치는 위험구역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왕국의 병사들도. 귀족들도 이곳에는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다.
그 질은 엘레시아의 뒷골목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추악했고, 흉포했으며.
누군가가 이곳에 발을 잘못 들여서 목숨을 떨어트리더라도, 그건 그 녀석의 잘못이라고.
백이면 백, 그렇게 이야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뒷골목의 입구에는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고급스러운 주점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다만, 그 위치조건 상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며.
흥미 삼아 발을 들이더라도, 점장의 까다로운 취향에 맞지 않는 손님은 그대로 쫓겨나서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는.
장사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가게였다.
출입문에 달아놓은 작은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끼익 하고 문이 열린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24시간 내내 열려 있는 이 주점에는 카운터 앞에 늘 같은 여성이 서 있었다.
은색의 머리에 은색의 눈이라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게의 방문객을 바라본다.
"어머, 루베라. 왕도로 돌아왔구나."
그녀의 이름은 `스스`. 특이한 이름이지만 그녀의 종족은 같은 발음이 두 글자 반복되는 것으로 이름이 지어진다고 한 것을 루베라는 이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주점 `셰이프 시프터`는 루베라가 왕도에서 일하면서 찾아낸 뒷골목의 정보상과 같은 곳으로.
시간이 날 때 마다 이곳에 들러 흑마의 일족들이 일하고 있는 창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어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그 모습이군요…."
주점의 이름이 보이는 대로. `스스`는 셰이프 시프터, 즉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몸을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는 딸을 위하여 주점을 열었다고 하는데, 자신 외의 손님이 있는 건지, 루베라는 본적이 없었다.
스스는 스스대로, 루베라를 보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지만 루베라의 눈 밑에 보이는 눈그늘이 걱정된다는 듯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눈이 뜨이도록 톡 쏘는 거로 한 잔 줄까?"
"아니…. 괜찮습니다. 잠을 좀 설친 것 뿐이니까요."
루베라는 허리춤의 바리사다를 건 채로 가게 안으로 들어와 카운터 앞에 놓인 자리에 앉는다.
"휴즈 우드녹커가 죽으면서, 가문이 몰락했습니다. 당연히, 그가 지원하고 있던 뒷골목의 사업에도 커다란 영향이 있었겠죠."
루베라는 담담하게 스스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스스는 그런 루베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물이 들어있는 컵을 그녀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뒷골목은 어제도 시체가 수십 구 매장됐어. 휴즈 후작의 지원을 받아서 뒷골목의 가장 위에 있던 조직이 한 달 사이에 조직원의 9할을 잃고 이제는 쫓기는 신세야."
"이권 분쟁은 어느 때나 추하군요. 타인의 불행 위에 성립하는 사업으로 번 돈으로 얻은 지위이니, 동정하지는 않습니다."
루베라의 대답에 스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허리 위에 손을 올린다.
"뭐, 그 덕분에 루베라가 알고 싶어 하던 `흑마의 일족`이 일하고 있는 창관에 대한 정보도 내 귀까지 흘러오게 되었지만 말이야."
루베라는 예상했다는 듯이 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흑마의 일족의 창관은 확실하게 뒷골목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녀가 단 하루지만 그 창관에서 일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린 나이에 어른들 사이에서 치이며 지내던 그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뒷골목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며 겉으로는 어떤 가게인지 전혀 알 수 없도록 꾸며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한 달 사이에 오너도 바뀌었다는 것 같아. 아마 원래의 오너는 휴즈 후작의 입김이 닿았던 인물일 테니 죽거나, 유괴당했거나. 어느 쪽이겠지."
"새로운 오너는...?"
루베라의 질문에, 스스는 가슴의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그곳에는, 기하학적인 역오망성과 원, 그리고 하트를 닮은 문양이 그려진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뒷골목은 거의 이 녀석들의 세력권이라고 생각하면 돼."
"처음 보는 문양입니다."
"아스타로테…. 쾌락주의를 신봉하는 미친년들이야. 나한테도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 물론, 나는 중립인 입장이니까 그 자리에서 거절했지만."
루베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문양을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 이름만큼은 이전에도 뒷골목의 조사를 할 때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녀가 흑마의 일족이 있는 창관을 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당시의 그녀들은 아직 세력이 작고, 거의 사이비 종교 수준의 점조직의 형태로 몇몇 업소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최근 들어, 뒷골목의 심부는 분위기가 많이 이상해. 뭐라고 해야 할까…. 전과 비교하면 여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해야 할까…."
"감사합니다. 한 번 조사해 보죠."
루베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스스는 그런 루베라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조심해. 필요하다면, 내가 언제든지 은신처를 제공해 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스스.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시 한 번, 문에 걸려있던 작은 종이 울리며 문이 열리고 닫힌다.
가게를 빠져나온 뒤 벽에 몸을 기댄 채,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루베라.
[괜찮아? 루베라.]
[괜찮습니다. 세력 싸움으로 오너가 바뀌는 것은 예상했던 바입니다.]
바리사다의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에 심호흡한다.
다음 순간 코를 간지럽히는 향유의 향기가 코를 스치고 지나간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면, 뒷골목의 안쪽으로 향하는 길 위를 거침없이 나아가는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이 보였다.
종종걸음으로 나아가더니, 갈림길에서 방향을 꺾어 루베라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저건..."
루베라는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
공작부인이 자신에게 엄포할 정도로 감추려고 한 그녀의 존재.
아마, 평범한 지위의 인물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무엇보다, 무장 하나 하지 않은 것 같은 맨몸으로 이 안으로 나아가기에는.
뒷골목은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었다.
루베라는 아스타로테에 대한 조사와 그녀를 쫓아가 데리고 나오는 것.
두 생각을 천칭 위에 건다.
"...큭…. 클레온에게 전염됐나…."
그러고는 검은 페도라를 눌러 쓴 채, 바리사다를 꽉 쥐고.
로브의 여성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에는 약간의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