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루베라 외전 (하)] 음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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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잠시 바뀌지만, 왕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한가지 전설이 있다.
왕도 엘케르도에 어둠의 손이 뻗어올 때에, 성령의 힘을 빌어 악마를 사냥하는 이가 나타나리라.
성자의 가호 교단에서는 이 전설이 지칭하는 이를 `용사`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이들은 보았다고 한다.
그림자가 꿈틀거리듯 어둠 속에서 나타난 악마를 멸하는.
거대한 순백의 망치를 휘두르며, 찬란한 달밤 아래 춤추듯 나타난 소녀의 모습을.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왕국의 역사 속에, 그 소녀는 몇 번이고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을, 왕국을, 그리고 왕도를.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지켜왔다고….
001
그리고 루베라는 그러한 전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앞의 소녀 [유폐 왕녀] 아멜리아의 모습을 본다.
머리 위에 나타난, 순수한 신성함을 나타내는 광륜.
백금색의 머리카락은, 찬란하게 빛나며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뒷골목 속에서도 반짝인다.
그리고, 전신을 감싸는 신성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의 금속 재질의 갑주.
엉덩이에서 종아리로 내려오는 부분에는 흰색의 허리 망토가, 격렬하게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펄럭이며.
양손으로 잡아 휘두르고 있는 거대한 망치의 끝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펼쳐져 있어.
그 끝에 닿는 것이 사악한 것이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농축된 강력한 신성마력으로 정화해 버린다.
실제로 그녀가 휘두른 망치에 당한 서큐버스는 타격부위에 마치 도장이라도 찍힌 듯 마법진을 띄우다가.
`앗, 아앗`같은 단말마만을 남긴 채, 지옥으로 송환되어 버렸다.
"무, 뭐야 저 꼬맹이!? 어째서 저렇게 강력한 성기사가…. 꺄악!"
그런 아멜리아의 활약에 한눈을 판 서큐버스를 루베라가 단숨에 베어버린다.
영혼에 데미지를 입지 않으면 육체의 손상을 쉽게 메꾸어 버리는 악마들에게 있어.
마검이나 성검이 가진 마력을 담은 일격은 그녀들의 약점과도 같았다.
덕분에, 고통에 몸부림치며 땅을 구르는 그녀를 루베라는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베어 넘겨.
그대로 그녀들의 본체가 거주하는 지옥의 만마전으로 송환시켜버리는 것이었다.
아멜리아의 활약으로 서큐버스들과의 싸움은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렸다.
그만큼, 그녀가 가진 신성마력은 악마에 대한 강력한 대항수단이었다.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습니다만…. 우선 질문은 이 악마에게 먼저 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처박힌 채 루베라의 발에 밟혀 몸부림치고 있는 서큐버스의 목에.
마검의 칼날을 가져간다.
그녀들은 악마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죽어도 지옥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지만.
그런데도 칼에 베인다면, 죽는 순간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루베라의 얼굴을 쓰고 있던 페도라에 의해 윗부분이 가려지며, 자연스럽게 그늘진 사이로 뻗어나오는 살기 어린 안광만이.
아래쪽에 깔린 서큐버스의 눈에 들어온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세요. 질문을 무시하거나, 거짓을 말한다고 판단하면 당신의 신체 부위를 하나씩 자르겠습니다."
"히, 익...!"
서큐버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어간다.
대부분의 서큐버스들은 이상성욕의 화신으로서 피학 애호 취향을 가지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녀들이라 하더라도, 신체를 잘려나가는 고통에 견디거나 거기에서 쾌감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아픈 건 아픈 거니까.
"잠시만요, 루베라."
그러자, 싸움을 마치고 변신을 해제하여 다시 로브를 뒤집어쓴 아멜리아가 루베라에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자비로운 얼굴이 되어 루베라에게 밟혀있는 서큐버스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악마라고 하더라도,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한 이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가하는 것은 선한 이가 취할 방법이 아닙니다."
루베라는 아멜리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을 하지만.
이내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작은 버전의 망치를 보며 입을 다문다.
"그러니까,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이걸로 한 번에 보내드릴게요."
"히익!"
서큐버스들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두려운 것은, 영혼에 직접 파고드는 신성마력이리라.
그 사실을 아멜리아가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루베라는 그녀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에서 다시 고개를 돌리며 서큐버스에게 묻는다.
"아스타로테의 미친년들이 당신들을 이 세계로 부른 것이 맞습니까?"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겁을 먹은 서큐버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악마의 소환은 사교도들의 비술. 아스타로테가 사교도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네요."
아멜리아는 그렇게 대답하며 턱에 손을 올린 채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최근의 왕도의 주민들이 음몽을 꾸고 있는 것도, 당신들의 소행입니까?"
이어지는 루베라의 질문에,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서큐버스.
"소, 소환사들이 제시한 방법이야. `강림의 의식`을 위해서 마력을 끌어모아야 한다고…."
"강림의 의식?"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처음 듣는 단어에 의문을 표하는 루베라.
"...지금, 강림의 의식이라고 하셨나요?"
하지만 아멜리아 만큼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서큐버스에게 되묻는다.
서큐버스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인 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자, 루베라는 대신 아멜리아에게 물었다.
"강림의 의식이라는 것은 무엇이죠? 명칭만 들으면 말 그대로, 무언가를 불러내는 의식 같습니다만."
아멜리아는 루베라의 질문에 어두운 얼굴이 되며 대답한다.
"본래, 악마라는 것은 무언가를 매개체로 현실에 소환되어 소환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신 대가를 받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서큐버스들이라면 인간의 정기를, 그 외의 악마라면 제물의 살이나 뼈, 피를."
"그 점은 알고 있습니다. 악마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소환진과, 의식, 그리고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도."
"네. 강력한 악마일수록 현실에서는 힘을 쓰기 힘들어지므로, 그런 제약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더 큰 의식과 제물이 필요해지는 법이죠. 그리고 제 3계위 이상의 악마들…. 사람들이 흔히 `대악마`라고 불리는 존재들을 불러내기 위해선 특수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교단에서는 `강림의 의식`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루베라는 서큐버스를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즉, 아스타로테는 그 `대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서 서큐버스들을 불러들여, 왕도의 주민들이 밤새 꾸는 음몽을 통해 정기를 모으고 있다.
쾌락주의의 그녀들이 부르려는 악마 따위, 서큐버스들과 마찬가지로 음란한 일에 관련된 악마이겠지 소환되는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정기가 그들의 의식의 제물로써 쓰인다면….
"...흑마의 일족의 창관도 제물을 모으기 위해 쓰고 있다는 건가..."
입술을 세게 깨물며, 루베라는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성으로 그것을 붙들어, 실수로라도 서큐버스를 죽이지 않도록 가까스로 제어하는 것이 한계였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을 가진 일족만을 모아놓은 창관이 있을 것입니다. 어디에 있죠?"
루베라의 차가운 목소리에 서큐버스는 잠시 몸을 떨었다가, 답을 망설인다.
하지만 귀 옆에서 철그럭, 하는 검의 소리가 울리자 서큐버스는 울상이 되어 대답하는 것이다.
"모, 몰라... 흑마의 일족이 만들어내는 정기나 부의 감정은 의식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고…. 언니들이…."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 언니라는 여자들은 이 `발푸르기스` 안에 있는 거로 보면 되겠죠?"
"그건..."
다음 순간, 루베라가 검을 들어 그녀의 몸을 내려찍기 전.
아멜리아가 선수를 쳐, 그녀의 몸에 자신의 망치를 `콩`하고 내리치자.
서큐버스는 저항 없이 그 자리에서 소멸하였다.
루베라는 바리사다가 땅에 박히기 전에서야 검을 멈추고 아멜리아를 돌아본다.
"미안해요 루베라."
하지만 아멜리아는 루베라가 무엇이라 말하기 전에 먼저 사과하는 것이었다.
루베라 역시 잠시 멈추어 있다가 바리사다를 검집으로 되돌리며 발푸르기스를 향해 몸을 돌린다.
"...이 이상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겠죠. 제 칼을 더럽히기 전에 먼저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고급 창관 `발푸르기스`로 발을 옮기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아멜리아도.
그녀의 뒤를 따라 건물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002
발푸르기스의 내부는 특유의 어두침침하고 보는 이의 기분을 이상하게 하는 어스름한 조명 덕분에.
두 사람은 마치 미궁에 들어선 것만 같은 감각의 비틀림을 느낀 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내부에는 생각보다도 서큐버스의 수가 적어,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이동하며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면.
소리를 하나도 내지 않고서도 더욱 깊은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이 시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앙, 응...! 하아..."
길게 이어진 복도의 고급스러운 장식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는 문들.
문 너머에서는 한창 손님을 상대하는 창관의 직원들이 입을 모아 내는 교성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소음에 발걸음을 숨긴 채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루베라는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짜증이 난다는 표정이었고.
아멜리아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당신에게는 조금 자극이 강한 것 같군요. 정 어렵다면 바깥에서 기다려도 괜찮습니다만."
루베라는 그런 아멜리아를 배려하는 듯, 놀리는 듯 이야기하지만.
아멜리아는 고개를 붕 붕 저으며 그녀에게 대답한다.
"아뇨! 괘, 괜찮습니다.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수치쯤이야."
그렇게 말하는 아멜리아를 잠시 돌아보았다가, 무언가 어려운 얼굴이 되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때.
바로 앞쪽의 문이 덜컹! 하고 열리는 것을 보고 루베라도 아멜리아도 곧바로 복도의 그림자 속에 숨는다.
숨을 죽인 채, 방에서 걸어 나오는 두 명의 여성.
놀랍게도 양쪽 모두 서큐버스였다.
`과연, 서큐버스를 직원으로 사용한다면 그야 고급창관이겠군요.`
루베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손거울을 사용하여 그림자 속에서 두 여성을 관찰한다.
"수고했어~ 얼마나 받았어?"
"으응 5번이려나. 약을 사용해도 이 정도면 별로네."
"내가 3번이었으니까 총 8번인가~ 확실히. 10번 정도는 내주지 않으면~"
돈이 아닌, 행위의 숫자로 이야기하는 서큐버스들의 회화.
그리고 그들은 사이좋게 각자 지금까지 상대한 남성의 팔과 다리를 붙잡은 채였다.
`...저게 손님…. 도저히 귀족으로는 보이지 않아. 오히려, 뒷골목을 떠도는 부랑자….`
루베라의 눈에 비친 남자는, 수염과 머리카락이 꾀죄죄하고, 몸은 얄상하게 말라 있었다.
창관에서 행위를 하기 전에 몸을 씼었을테니 불결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축 처진 몸에서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그다지 기분 좋지도 않았는데 추가 노동인가~ 지하까지 꼭 데려가야 할까?"
"으음…. 이미 기절해 있으니까 그냥 여기서 해버릴까?"
그녀들은 `그럴까? 해버릴까?` 같은 의미 불명의 말을 서로 주고받더니.
그중 하나의 손가락에 분홍색의 수상한 마력이 깃든다.
`...무엇을`
루베라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 광경을 잠시 구경하면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현상에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었다.
서큐버스가 손가락에 띄운 마력은 남자의 복부에 닿으며,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문양을 남긴다.
마치 하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연보라빛의 각인이 그의 몸에 새겨지면.
남자는 갑작스럽게 정신을 되찾은 듯 `컥, 카악...` 같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마치 육지 위로 올려진 생선처럼 몸부림친다.
그리고 나서는, 그 몸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었다.
거칠었던 피부는 마치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듯이 윤기를 되찾고.
얇게나마 남자다웠던 팔다리는 더욱 가늘어지면서.
수염이나 몸에 달린 근육, 그리고 남성기가 사라진다.
가슴에는 여성다운 부풀어 오른 유방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엉덩이가.
그리고 고간에는 대신 여성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은 완전히 여성 그것도 꽤 미인상의 얼굴이 되며.
머리카락은 길게 길어져, 허리에 닿을 정도의 길이로 늘어났다.
`남자를... 여자로?`
이전 클레온이 사용한 환영 마법이나 폴리모프의 응용과는 다르다.
저것은 말 그대로 남자를 여성으로 바꾸는 주술.
서큐버스가 저런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이거 볼 때마다 굉장하단 말이야. 인간이 이런 마법을 개발해 내다니."
"뭐어, 우리야 여자를 늘리는 것보다 남자가 많은 쪽이 좋으니까 사실 이런 마법이 필요하진 않지만…."
두 서큐버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완전히 여자로 바뀌어 버린 그 인간을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루베라는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의 뒤에 있던 아멜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군요."
"...네. 설마, 인간의 성별을 바꾸는 마법마저 사용하고 있다니…. 하지만 방금 그 마법이 발현되었을 때 건물 안의 누군가와 강하게 마력이 연결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멜리아는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서큐버스는 없는 듯했다.
"그럼, 지체하지 말고 가도록 하죠."
루베라 역시 그런 아멜리아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인도를 따라 걸어간다.
이 음마의 소굴의 여주인은 대체 어떤 인간일지, 공포보다도 불안감이 앞서는 것이었다.
003
결국, 그 뒤로도 다른 서큐버스들과 마주치지 않은 채 창관의 가장 안쪽의 방에 도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거대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문의 앞에 선 두 사람은 안쪽에서 풍겨오는 미약 섞인 달콤한 향기와.
그에 못지않게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탁하고 진득한 마력의 흐름에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아는 마력의 농도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미리 펜던트를 사용하여 아까와도 같이 변신을 한다.
그러자, 다시 한 번 흰색 갑주에 몸을 감싼 성전사가 되어 망치를 손에 쥐는 것이었다.
"들어가죠. 서큐버스들이 말하던 `언니`라는 존재가 분명 이곳에 있을 겁니다."
루베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멜리아, 그녀는 자신이 든 망치를 문에 휘둘러 내리쳤다.
그러자
굉장한 소리를 내며 박살 나는 문의 너머로 보이는 것은 물담배를 피우며 소파에 앉은 채 서류를 훑어보고 있던.
붉은 머리를 가지고, 안경을 쓰고 있는 갈색 피부의 여성.
몸에 걸친 것은 러프한 와이셔츠에 푸른색의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
덕분에 몸의 라인이 크게 들어나, 그녀의 풍만한 몸매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귀는 사람과 비교하면 조금 뾰족하였고, 머리에는 조금 작지만, 뿔이 솟아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문이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물고 있던 담배를 크게 들이킨 뒤.
작게 미소를 지으며 눈만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다.
"안녕. 작은 아가씨들."
매혹적인 저음의 허스키 보이스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악마...? 설마, 아스타로테 전체가 서큐버스의 집단이었단 겁니까?"
루베라의 중얼거림에, 여성은 작게 박수를 친 뒤 두 팔을 벌렸다.
마치 두 사람을 환영하는 듯한 자세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악마가 아니야. 뭐, 절반은 악마지만."
"당신이 아스타로테의 보스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이번에는 아멜리아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에 손을 올린다.
"아스타로테의 큰 언니... 꼬마 아가씨의 말대로 이 조직의 리더를 맡은 `이슈탈`이라고 해. 바깥에서 싸우는 걸 조금 지켜보았어. 실력이 굉장하던데?"
자신을 소개한 이슈탈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한쪽 무릎에 다른 쪽의 발을 올린 채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동생들을 보내봤자 둘을 이길 수 없을 테니 일부러 이곳까지 오는 걸 방해하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음기 넘쳐나는 건물의 안을 걸어온 것은 대단한 일이야. `인간`의 범주 내에서라면 말이지."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쓴 뒤 소파에 등을 기대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여기까지 온 상으로, 두 사람 모두 하나씩이라면 질문에 대답해 줄게. 물론 거짓없이 말이야."
루베라와 아멜리아의 시선이 교차하고, 잠시 침묵이 흐른다.
먼저 입을 열고 질문을 하는 것은 루베라의 쪽이었다.
"흑마의 일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아. 아가씨는 동족을 찾으러 온 건가? 그녀들은 우리들의 비밀 아지트에 있어. 뭐라고 해야 할까... 흑마의 일족은 조금 특별하거든. 여러모로."
마치 놀리는 듯한 이슈탈의 질문에, 루베라는 마검 바리사다를 곧장 뽑아 그녀의 목을 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지만.
우선 아멜리아가 질문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발휘한다.
"당신은... 대체 무엇인가요. 음마이면서 인간과도 같은…. 두 가지의 존재가 섞여 있는…."
"말 그대로. 나는 서큐버스와 인간의 혼혈이야."
이슈탈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루베라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답을 부정한다.
"바보 같은 소리를. 서큐버스와 인간의 사이에서는 오직 서큐버스 밖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슈탈은 루베라의 단언에 `일반적이라면 그렇지`라고 하면서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혼혈로서 태어났는걸. 아버지도 어머니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걸까. 어쨌든, 그게 질문이야? 아니잖아?"
"...큭. 강림의 의식으로 대악마를 불러내서 대체 무얼 할 생각인 겁니까…."
마치 아멜리아의 속내를 꿰고 있다는 듯한 이슈탈의 언행에, 아멜리아는 분함을 느끼면서도 다시 한 번 질문한다.
"간단해, 세상에 더욱 기분 좋은 일을 퍼뜨리는 거지. 제국이 사라져서 왕국의 인간들은 모두 재미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잖아? 자극과 스파이스가 필요한 시점이니까."
"너무나도 하찮아서 말이 나오지 않는 소악당의 목표로군요."
루베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구역질이 나는 입을 가리며 대답한다.
이슈탈은 그런 루베라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데미우르고스 인자`를 각성시키는 것. 이려나."
"읏!?"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아멜리아의 쪽이었다.
아멜리아는 마치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들었다는 표정이 되며 망치를 강하게 쥔다.
"어,째서. 당신이 그 명칭을."
"악마의 딸이니까. 악마에 관한 건 인간들보다도 잘 알아."
아멜리아는 루베라와 눈을 마주친다, 그 눈에는 이제 이 여성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의지만이 보였다.
루베라 역시 그런 아멜리아의 의지를 읽어내고 곧바로 마검의 능력을 사용하여 이슈탈의 허를 찌르는 일격을 가한다.
다음 순간, 루베라의 검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하고.
아멜리아의 망치가 여성의 몸을 짓누른다.
닿는 부분부터 신성마력에 의해 정화되어 소멸하는 덕분에 피가 튀어 오르지는 않았다.
[루베라! 조심해!]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바리사다의 경고에 루베라는 혀를 차면서 자신에게 날아드는 무언가를 쳐내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환영인가...!`
"이곳은 서큐버스의 소굴이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환상이 아니라고 어떻게 치부할 수 있지?"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나며 루베라의 심장 부분을 향해 쇄도하는 무언가.
첫 공격의 기척이 페인트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조금 늦어져, 치명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을 틀어막는 것은 아멜리아였다.
그녀는 루베라의 앞에 선 채 손으로 방어 마법을 펼쳐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러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마력의 쐐기는 그대로 방어 마법을 뚫고 들어와 아멜리아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얕은 상처이지만 확실한 선혈이 튀어 오른다.
"크, 윽...!"
"아멜리아!"
루베라는 크게 검을 휘둘러 자신들을 감싸는 환영의 연기를 걷어내고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이슈탈을 향해 달려든다.
이슈탈은 자신에게서 뻗어나온 창과 같은 꼬리를 아멜리아에게서 회수하려 하지만.
아멜리아는 고통을 참으며 그것을 붙잡고 이슈탈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다.
"하앗!"
루베라의 검이 이슈탈의 목을 베어내려고 한 다음 순간.
"슬립."
또 하나의 목소리가, 이슈탈의 뒤편에서 울렸다.
그러자, 아멜리아와 루베라는 동시에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졸음에 몸을 비틀거린다.
이슈탈의 뒤에 서 있는 것은, 아멜리아보다도 어려 보이는 외견을 한, 검은 머리의 검은 눈을 가진 서큐버스.
그녀는 무감정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너, 는..."
루베라는 그런 말을 하며 자리에 쓰러지고, 이윽고 아멜리아 역시 그 자리에 엎어지듯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멜리아의 몸에서 강력한 신성마력의 결계가 펼쳐지며 루베라와 그녀 자신을 감싼다.
이슈탈은 서늘한 감각에 휩싸였던 자신의 목 언저리를 쓰다듬었다가 루베라를 내려다본다
"이거…. 무승부로군. 꼬마 아가씨의 신성마력에 닿았다간 몸이 타버릴 거야."
"기다...려..."
"후후. 다음에 보자구, 아가씨."
손을 뻗어오는 루베라에게 작게 인사를 건네며, 자신을 도운 서큐버스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는 이슈탈.
이윽고, 루베라 역시 완전히 정신을 잃는 것이었다.
004
그 뒤, 루베라가 눈을 뜬 것은 처음 보는 천장의 아래서였다. 주변의 광경은 순백에 가까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방이었다.
"아, 루베라씨..."
그리고 옆쪽에서 들려오는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루베라가 재빠르게 상체를 일으키면 옆에는 아멜리아와
미소를 지은 채 앉아있는 트로메이아 공작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잘 잤나요. 루베라? 잠꼬대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더군요. 클레온...이라고..."
"!? ...잘못 들으신 겁니다."
루베라는 순간 얼굴을 붉게 하였지만,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공작부인과 눈을 마주치면서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왕녀님의 곁에서 그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공작부인은 루베라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공작부인, 당신은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던 겁니까?"
"물론입니다. 트로메이아 가문에 시집을 오기 전, 저의 본가는 대대로 `세인트 프린세스`의 보좌를 위해 힘쓰는 어둠 속의 일족이었으니까요."
세인트 프린세스.
아멜리아가 변신하여 성스러운 힘을 휘두르는 왕도의 전설속에 존재하는 퇴마의 전사.
공작부인이 말하길, 자신이 실력 있는 여성들을 모아 사병을 꾸리는 것도 그런 왕녀를 그림자 속에서 보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스타로테는?"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창관에 아무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두 사람이 무사했던 건 왕녀님의 결계 덕분이었죠."
루베라는 분하다는 얼굴이 되어 주먹을 꽉 쥐었다.
결국, 다른 흑마의 일족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자신을 잠재웠던 그 소녀 음마...
생각을 정리하던 루베라를 보며, 공작부인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루베라. 당신이 이 일에 대해 알게 된 이상, 저희에게 협력해 주셔야겠습니다."
"유폐 왕녀에 대한 비밀인가요……. ... 아멜리아도 아스타로테의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돕겠습니다. 저도 그녀들에게서 알아내야 할 것이 많으니까요."
루베라의 대답에 아멜리아는 얼굴을 환하게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요. 루베라! 함께 힘내도록 해요, 왕도의 평화를 위해!"
손을 붙잡아 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루베라는 쓴웃음을 짓는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검을 휘두르고 그녀들과 싸우는 것이었지만, 아멜리아는 그런 루베라라고 하더라도 함께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듯 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저희 저택으로 돌아가도록 하죠."
트로메이아 공작부인은 잘 됐다는 듯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고는 별실의 벽에 있는 버튼을 눌러, 비밀의 통로를 열어젖히는 것이었다.
"아아…. 과연. 이 통로로 바깥으로 나왔던 거군요."
루베라의 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문득, 그녀의 어깨 쪽에 감겨있는 붕대가 눈에 띄었다.
"...괜찮은 겁니까? 상처는."
"아! 네, 물론이에요. 그렇게 깊은 상처도 아니었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베라의 말에 아멜리아는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이윽고, 루베라와 공작부인이 그 방을 빠져나가자 아멜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의 상처 부근을 손으로 감쌌다.
지끈거리는 고통과 함께, 옅은 빛을 내는 연분홍의 마력 문양이.
붕대의 밑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005
"이번 일은 저희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더군요."
트로메이아 공작가로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 공작부인이 입을 열었다. 루베라가 그녀의 얼굴을 보자.
공작부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스타로테와 엮여있는 귀족 가문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휴즈 후작이 사라진 지금, 뒷골목의 패권을 쥐기 위해 그녀들과 접촉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군요."
"... 악마와 싸우는 정의로운 일은, 아멜리아에게 맡기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과의 싸움에서 그녀의 손을 빌리는 것은."
루베라의 말에 공작부인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기에, 당신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루베라. 당신은, 사람을 베는 데에 주저함이 없으니까요. 저나, 제 수하의 사병들처럼."
"... ..."
루베라는 그녀에게 자신이 필요하고, 그녀 스스로 힘을 모으던 이유에 대해 깨달았다.
아멜리아의 싸움의 뒤편에는 트로메이아 공작부인의 또 다른 싸움이 있던 것이었다.
세인트 프린세스에게는 강요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추악하고 더러운 싸움이.
"... ... 시간 외 노동의 수당은 모두 청구하겠습니다.
"어머, 저희 가문 만큼 시종들의 급여가 높은 곳은 없답니다."
루베라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본다.
결국, 그녀는 그녀가 싫어해 마지않던 귀족의 시종으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나은 주인의 밑이었지만.
그런데도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아멜리아라는 소녀에 대해 일말의 동정을 느껴서겠지.
정말로, 누군가에게 물들어 버린 것만 같았다.
문득, 아까 전 공작부인의 농담과도 같은 말을 떠올린다.
지금쯤 아카데미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채 즐거운 학원생활을 보내고 있을 그.
"...빨리 만날 수 없으려나."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흘러가는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