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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89화 (89/506)

〈 89화 〉 망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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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카데미의 새로운 하루가 찾아왔다.

솟아오르는 태양과도 같이 샘솟는 지식을 향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각양각색의 학생들은 수업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나날의 배움에 보람을 느끼는 자도 있으며.

진척되지 않는 자신의 학업에 의문이나 불안을 느끼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카데미. 대륙 최대의 `지식의 보고`.

그들의 손에 의해 풀리지 않는 난제는 없으며, 몇 세대가 걸린다 하더라도 반드시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21개의 학과는 서로 다른 학문을 연구하며, 새로운 지식인을 육성한다.

그리고 그것을 선도하는 것이 바로 각 학과의 수석들이다.

그들은 각 학과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재이며, 원로회에 의해 인정받은 학생들이다.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서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기는 것에 성공했기에, 타 학생들의 모범이 된다.

그들에게는 전용의 아카데미 내에서 거주할 수 있는 저택이 제공될 정도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이곳.

그런 저택지구에서도 한층 커다랗고 호화로운 저택이야말로.

아카데미 3대 학과 중 하나인 마법학과의 수석,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사는 저택이었다.

라일라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의 곁에는 검붉은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호문클루스가 눈을 감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잘 개어져 정돈된 옷가지가 놓여있었으며 라일라가 눈을 뜸과 동시에 호문클루스 역시 눈을 뜬다.

호문클루스의 눈에는 빛이 깃들어있지 않아, 마치 죽은 이의 눈과 같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라일라의 손에 만들어진 인공의 존재이기 때문일 뿐, 엄연히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일어나셨습니까, 마스터."

평소와 같이 얌전하고 예의 바른 말투로, 라일라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그녀.

호문클루스 `이니스`는 허리를 숙이며 자신의 창조주이자 주인에게 예를 갖춘다.

라일라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그녀에게 인사한다.

"좋은 아침 이니스. 사샤나 쿠온은?"

"사샤님도 쿠온님도, 이미 기상하셨습니다. 쿠온님께서 아침 식사를 거의 다 준비하셨다고 마스터를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사샤와 쿠온은 본래 라일라와 함께 모험하던 동료였지만, 도중 사샤의 몸에 생긴 이상을 조사하고 치료하기 위해.

그녀들과 함께 아카데미로 오게 된 것이다.

"물론 너도 도왔겠지?"

이니스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보는 라일라.

이니스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물론입니다. 저는 마스터에 의해 이 저택을 관리하도록 만들어진 호문클루스. 이 저택의 가사는 본래 제가 맡아야 할 의무입니다. 다만, 쿠온님께서는 조금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시겠다고 말씀하셔서."

"알고 있어. 쿠온은 착실하니까."

라일라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양팔을 들어 올리며 이니스의 앞에 선다.

그러면, 이니스는 익숙한 손길로 그녀의 탈의를 도우며, 자신이 준비한 복장으로 주인의 의복을 갈아입히는 것이었다.

"역시 편하네. 이니스가 있어서 다행이야."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순식간의 라일라의 환복이 끝나고, 그다음은 그녀의 머리를 빗질할 차례였다.

"오늘의 예정은 수석들의 회의에 참석한 뒤, 이전의 싸움에서 발생한 시가지의 피해에 대한 복구 예산의 선정인가…. 정말이지. 연구할 틈을 주지 않는다니까."

그 사이, 라일라는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수첩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일주일 전, 아카데미의 수석들은 집행과를 토벌하기 위해 그들의 아지트를 급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의 인물들이 지상으로 도주, 그들을 붙잡기 위해 시가지에서까지 전투를 벌였지만 아쉽게도 몇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수가 몇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무리하여 추적하는 것보다도.

지금은 싸움으로 일어난 일반 학생들에 대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재빠른 복구가 우선시 되는 상황이었다.

"뭐. 하지만 이 일도 끝이 나면 다음은 드디어 사샤의 몸을 되돌릴 방법을 찾을 연구를 해야지."

라일라는 하루라도 빨리 동료인 그녀에게 안심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듯이 틈틈이 그녀 자신이 새운 가설을 빼곡히 적어놓은 노트의 표지를 두드린다.

"맞아. 저택의 그 열리지 않는 방, 조사해 봤어?"

라일라는 문득 떠올렸다는 듯이 이니스에게 물어본다.

사실 이 수석 전용 저택의 한 방에는 강력한 결계가 펼쳐져 있는 방이 하나 있어.

그 안으로는 주인인 라일라도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째선지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 반응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바쁜 자신을 대신해 이니스에게 조사를 맡긴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그 결계는 제 스펙으로는 해주가 불가능합니다."

"흐음... 그렇다면 내가 열어야 하나?"

라일라는 거기까지 생각한 뒤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역시 됐어. 셋이 살기에는 곤란할 정도로 방이 많은 저택인데, 하나쯤 안 열린다고 문제는 없겠지. 아마 내 전의 마법학과 수석이 무언가를 봉인해놓고 그대로 잊어버린 걸 수도 있고."

마법사들은 그런 경우가 종종 있거든. 라고 덧붙이며 치장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라일라.

"그럼, 내려갈까?"

이니스는 라일라의 말에 허리를 꾸벅 숙이며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라일라가 먼저 방을 나선 뒤­

이니스는 잠시 주인의 방을 돌아본 뒤 어딘가 쓸쓸한 표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자신의 주인을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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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내려왔구나. 이니스도 자리에 앉아."

식사의 준비를 마친 쿠온이 라일라에게 아침의 인사를 건네며 식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사샤는 살짝 졸린 눈이 되어 식탁의 앞에 앉아있지만, 이미 등교를 할 준비는 끝내놓은 상태인 듯했다.

이니스는 쿠온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마스터의 설계로, 저는 대기 중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으로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으니까요."

"그 이야기는 벌써 몇 번이고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사를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지?"

쿠온의 말에 이니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자신의 주인인 라일라를 돌아본다.

그러면, 라일라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4인용 식탁의 비어있는 한 자리를 가리키고는 그곳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니스는 그러면 역시나 표정을 바꾸지 않고 주인이 지정한 의자에 앉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네, 라일라가 이런 식기도 가지고 있자니."

쿠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보인 것은, 어딜 봐도 남성용의 식기였다.

라일라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며 `으음….`하고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거, 내가 산 건가?"

하고 의문을 표하는 라일라.

그런 라일라를 따라 쿠온 역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다.

"어머. 그러면 원래부터 이 저택에 딸려 있던 거야?"

"아니, 저택은 기본적으로 퇴거할 때 자신의 소지품은 가지고 나가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누구한테 선물 받았다던가? 아, 하지만 라일라는 남자랑 동거하는 것도 아닌데, 남성용 식기를 선물하는 것도 이상한가…."

턱을 괸 채 고민까지 하던 라일라지만, 이내 답을 내지 못하고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네. 하지만 인원 상으로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이니스, 저걸로 괜찮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마스터. 네. 저것으로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네 사람에 의해 시작된 식사시간.

따뜻한 온기가 담긴 쿠온의 요리의 향기에 사샤도 정신을 차리고 최근에는 부쩍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쿠온도 사샤도, 어린 동생이 새로운 만남을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듯한 감각에 뿌듯함과 조금의 쓸쓸함을 느끼면.

이것이 사람의 성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세 여자의 화제는 꽤 자주 바뀐다.

세 사람 모두 마음이 맞는 친구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관심 있는 분야도 별개이고 성격에도 차이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세 사람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오늘의 음식의 맛의 이야기로 바뀐다.

물론, 쿠온의 요리는 일반적인 가정식에 가까운 요리이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요리였다.

이것을 먹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영양과 맛, 양쪽 모두 챙기는.

그야말로 아내이자 어머니가 만들 것 같은 훌륭한 식사였다.

"아, 그렇지. 이니스 오늘은 장을 좀 봐줄 수 있어?"

쿠온은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문뜩 떠올렸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주인과 그 동료들의 이야기에는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식사하던 이니스는 쿠온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구매해야 할 물건의 리스트를 작성해 주시면, 제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나가기 전에 쓸 테니까 부탁할게."

쿠온이 미소를 지어 보이자, 라일라는 뿌듯한 얼굴이 되고 사샤도 웃어 보인다.

"이니스씨가 계셔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이니스씨는 저희에 비해 힘도 세시고, 쿠온씨 혼자서 장을 보러 다니셨을 때는 무거운 짐을 드실 수 없으셨잖아요?"

사샤가 말하자 쿠온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네 ...으음. 하지만 저번에 가계부를 작성할 때 보니까 이니스가 없을 때도 꽤 많은 양을 한 번에 구매했던 거 같은데…."

쿠온은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이야기 한다.

그러면 라일라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뭐, 배달을 받았거나 내가 같이 갔던 거 아니야? 살짝 비행마법을 걸면 무게 관계없이 가지고 올 수 있고."

"그랬었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이니스는 잠시 그 말을 듣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정말로 그랬을까요."

"이니스?"

"어쩌면, 쿠온님과 함께 장을 보러 가신 남성분이 있으셨을지도 모르겠는걸요."

갑작스러운 이니스의 말에, 식탁을 둘러싼 세 사람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시간이 멈춘듯한 정적의 직후, 웃음을 터뜨린 것은 라일라였다.

"아하하! 쿠온이 남자랑? 아~아~ 우리 쿠온이 벌써 시집갈 나이구나~“

"라일라! 이래 봬도 나는 라일라보다 한 살 위니까! 이니스, 걱정하지 마. 나는 교제하는 남성은 없으니까."

"쿠온씨는 매력적인 분이시니까, 분명 좋은 남성분이랑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같이 말하며, 이니스의 말을 농담 취급 하는 세 사람.

이니스는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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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낮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잠깐의 휴식을 겸한 쇼핑을 즐기는 학생들로 인해.

자유시장은 주말과도 같이 여전히 북적거리고 활기찬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양손에 쿠온과 라일라로부터 부탁받은 짐을 가득 들고, 사람들의 사이를 걷는 이니스의 존재는.

호문클루스라는 보기 드문 종족임과 동시에, 굉장히 정돈된 이목구비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것이었다.

이니스는 남녀를 불문한 그런 눈길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정을 바꿀 수 없으니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우선은 구매한 물건들의 정리정돈, 그 뒤에는 세탁과 청소.

쿠온님은 오후 수업이 늦게 끝난다고 하셨으니 사샤님과 마스터의 저녁 식사는 자신이 준비해야 한다.

인공생명체 특유의 분할사고 덕분에, 몸은 이곳에 있지만, 정신은 마치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듯.

조금 멍을 때리면서 걸어가던 찰나, 맞은 편에서 다가오는 여성을 피하지 못한 채 어깨를 부딪쳐 버린다.

"아아. 죄송합니다."

물론 자신이 멍을 때린 것이 잘못된 것이기에, 이니스는 먼저 사과의 말을 입에 담는다.

"아, 아니에요. 저도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금발의 벽안을 가진 평범해 보이는 소녀였다.

아마, 친구들과 함께 시장을 거닐던 것이겠지.

"정말이지, 앞을 좀 보고 걸으라니까. 아루루."

"미안, 미안. 아! 저쪽의 가게도 가보자, 세실!"

안경을 낀 소녀와 재잘거리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멀어져 가는 소녀를 바라보며.

이니스는 가슴의 지끈거림을 느끼는 것이었다.

어째선지 오늘은 평소보다 더한 울적함에, 이니스는 바깥 공기를 조금 더 느끼기 위해 조금 먼 길을 돌아 저택으로 향한다.

자유시장에서, 다른 학과 건물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의 앞을 지나간다.

가운데에 거대한 탑의 모양의 건물, 그리고 양쪽에 돔 형태의 실습동.

특이한 형태라 생각하며 걷다 보면, 마침 그 건물의 학과의 학생들이 수업을 마쳤는지 일제히 건물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고 우아한 발걸음으로,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키며.

먼지 하나 몸에 묻지 않도록 조심하듯,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며 이동하는 것이었다.

"오늘 오후의 수업에는 교수님과 함께 왕실의 예절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가 있다는 것 같아요. 파이루 언니."

"그건 정말 기대되는구나 루즈리. 예절학과의 수업을 충실히 들으면, 분명 부모님들도 기뻐하실 거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사이좋게 대화하는 자매들을 바라보면.

규정된 아카데미의 제복보다도 훨씬 노출도를 줄이고, 거의 전신을 감싼 듯한 예복을 입은 두 사람이.

청초한 웃음을 보이며 길을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분명, 처음 보는 이들인데도, 그들에게서는 낯익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이니스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길을 걷는 발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사라져 간다.

어째서 이 아카데미는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일주일 전. 자신이 태어난 다음 날. 모든 것이 바뀐 싸움이 끝난 뒤.

아카데미 전체를 뒤덮는 빛이 있었다.

집에 있던 쿠온과 사샤가 그 빛의 영향을 받으며 쓰러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일라가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니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 채.

저택의 방 하나에 통째로 결계를 펼친 뒤, 쓰러졌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났을 때는, 그러한 기억마저 모두 잊어버린 채.

쿠온과 사샤와 마찬가지로 `그`의 존재를 까맣게 망각한 것이었다.

"...파파."

이니스의 입에서, 오늘 하루 나왔던 목소리 중 가장 하이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원래는 이것이 본래 그녀의 목소리이다.

무언가가 이상해져 버린 세계에서, 이니스는 우선 자신의 본성을 감추는 것으로 라일라의 곁에 있었지만.

모두들 그것이 정상이라는 듯 행동하는 것이었다.

이 아카데미에 `파파`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자신의 창조주가 정을 나누고, 사랑하여 마지않던 이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분명 평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영향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내부의 모든 인간.

이니스는 생각한다. 자신이 호문클루스이기에, 이상한 빛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일까.

모두가 이상해져 버렸다면, 자신도 이상해져 버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길가에 놓여 있는 도구함이 보였다.

"... ..."

이니스에게는 자신의 정수를 이루는 파파의 기억이 어렴풋이 이어져 남아 있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곤란한 일이 있으면, 학생들을 피해, 이 도구함 안으로 숨었었다.

이니스는 잠시 자신이 들고 있던 짐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 도구함의 안으로 들어가 본다.

단 하루.

이니스가 파파와 지낸 것은 단 하루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루도 채 되지 않겠지.

그럼에도 이니스에게 파파는 소중한 존재였다.

자신을 태어날 수 있도록 생명을 나누어 준 사람이며.

자신의 영혼의 근간에 새겨진 그에 대한 애정이나 마음은.

같이 지낸 시간의 길이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의 기억이 이어져 있으니까.

이 작은 도구함의 안에 남아있는 그의 기척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옅은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 있는 그녀 자신이 있을 뿐.

눈물이 흐르지 않는 몸에 슬픔만이 쌓여간다.

그 때­

"저쪽이다! 집행과의 잔당이 저쪽으로 갔어!"

도구함의 바깥에서 들려오는 고함.

이니스는 그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며, 소란이 지나갈 때까지 이 도구함에서 나가지 않으려 한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며.

`파파`의 추억을 가슴에 묻은 채 저택으로 돌아가려 한순간.

자신이 손이 아닌, 타인의 손에 의해 도구함이 열리는 것을 본다.

드르륵­ 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바깥에서 내리쬐는 빛이 안쪽으로 들어오면.

그 빛을 뒤로 한 채 그늘진 얼굴을 보이는 남성이 있었다.

"... ..."

서로 눈을 마주친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이 짧게 이어진다.

그리고.

"­파파?"

"하. 이니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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