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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93화 (93/506)

〈 93화 〉 원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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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볕을 쏟아내는 태양이 지평선의 너머에서 천천히 위로 향한다.

기온은 아직 낮은 편으로, 이제부터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쯤의 이른 아침.

잎사귀에 맺힌 이슬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며, 촉촉하게 흙바닥을 적셔간다.

가로수의 그림자는 서서히 길어져 가며, 빛과 어둠의 경계를 나누기 시작한다.

아직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의 주택가의 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리는 클레온.

그리고, 그의 옆에서 클레온을 따라오는 사샤와 발을 맞추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클레온으로서는 여유가 있는 페이스였지만, 사샤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한 손으로 닦아낸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포니테일로 묶어낸 그녀의 노을빛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물론 달리기만으로 그녀가 이 정도로 지치거나 땀을 흘릴 일은 없고.

조깅 코스 내에 있는 공터에서 클레온과 행하는 근접전투의 훈련이 그녀가 느끼는 약간의 피로감의 근원이었다.

그녀가 클레온으로부터 근접전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카데미로 오고 난 직후의 일이었다.

사냥꾼의 각인으로 인해 나타난 변화 덕분에, 이전보다도 동물 같은 야성적이고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해진 사샤는 동족과의 결전에서 몸을 내던지는 각오로 휘둘렀던 단검의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사냥꾼의 주 무기는 활이나 석궁과도 같은 원거리 무기인 것이 보통이지만, 지형이 좁은 던전에서는 근접전을 강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그러므로 클레온 역시 사샤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며, 그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단검을 사용한 근접 전투술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었다.

훈련에 사용되는 것은 목제 단검으로, 휘둘러서 부딪혀도 좀 아프다 수준으로 끝나는 가벼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사샤의 허리춤에 걸려 있든 그것은, 중간이 부러져 날의 윗부분이 없는 상태였다.

훈련 중에 클레온이 힘 조절을 잘못하여 실수로 부러트린 것이었다.

적당히 봐주면서 할 생각은 없는 클레온이었고, 사샤 역시 훈련이라지만 클레온을 향해 전력을 다해서 달려들어 온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크다는 뜻이겠지.

신장이 머리 두세 개 차이가 나는 클레온을 향해 필사적으로 틈을 파고들거나 하는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받아 쳐내는 데에 힘을 좀 강하게 준 것이다.

"미안. 사샤, 단검은 내가 또 준비해 둘게."

클레온은 조용히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물론 단검 자체는 그렇게 특별한 물건도 아니고, 아카데미의 잡동사니 상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물건이었다.

다만, 자신이 준비해 온 이 단검을 받고 그녀가 눈에 띄게 기뻐하던 것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아... 헤헤. 괜찮아요. 클레온 씨. 훈련용의 단검이니까 부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사샤는 괜찮다는 듯이 멋쩍게 웃어 보이며 대답한다.

클레온이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 도리어 사샤 본인이 미안해하는 듯했다.

그녀의 머리 위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고양이과와 같은 짐승의 귀가 움찔거렸다.

이 짐승의 귀와 허리에 난 꼬리의 예상 밖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일까.

그녀의 감정이 이것들을 통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보이는 것이었다.

사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평소에는 최대한 꼬리나 귀를 얌전히 두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클레온을 비롯한 가족과도 같은 동료들의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인다.

그 뒤로는 별 볼 일 없는 소소한 화제. 아카데미의 생활에 관한 질문, 수업에서 배웠던 것 등.

산속의 부족에서 태어나, 거의 모든 인생을 사냥꾼으로서 보냈던 사샤이지만 학교생활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아.

클레온은 다행이라는 듯이 웃어 보인다.

긴 듯, 짧았던 조깅은 끝이 나고 두 사람은 슬슬 쿠온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라일라가 눈을 비비며 소파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시간이 된 저택의 안으로 들어간다.

"아. 우체통에 뭔가 와 있어요."

사샤는 빼먹지 않고 편지가 들어있는 우체통을 확인하더니 안에 도착해있던 편지 봉투를 꺼내 든다.

순백색의 편지 봉투에는 처음 보는 룬문자의 문장이 사용된 밀랍 봉인이 행해져 있었다.

보낸 사람의 이름도, 받는 사람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이런 종류의 편지는 대부분 이 저택의 주인인 라일라를 향해서 오게 되어 있었다.

클레온은 사샤로부터 편지 봉투를 받아들고는 저택의 안으로 들어가 곧장 거실 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예상대로 그곳에는 침대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으어어...`같은 언데드 마물의 목소리를 내며 수면을 향한 욕구와 싸우고 있는 라일라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는 또 뭘 하다가 늦게 잔 거야?"

뒤쪽에서 들려오는 클레온의 목소리에 감겨있던 눈을 뜨는 라일라. 얼굴은 여전히 위를 향해 있으면 시야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클레온의 손이 출몰한다.

"아아…. 클레온, 사샤. 좋은 아침. 자기 직전에 떠오른 공식이 있어서 그걸 좀 증명하느라…."

클레온에 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받아 든 라일라는 한쪽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문장을 살핀다.

"너도 체력을 길러두는 게 좋지 않아? 같이 아침에 나갈래?"

"근접전투의 훈련도 하고 있잖아…? 거기에 움직일 땐 비행 마법이 편하고."

게으름뱅이 라일라의 대답에 클레온은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사샤는 그런 그녀가 근접전을 펼치는 모습을 상상한 것인지 주먹을 쥐며 이야기한다.

"라일라씨가 지팡이로 싸울 수 있게 되면 멋질 것 같아요!"

"아아…. 스태프를 휘둘러서 직접 싸우는 마법사들도 분명히 있지."

라일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하다가, 편지의 봉인을 뜯어버리며 내용을 확인한다.

표정은 여전히 졸린 채였지만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이며 그 내용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부 읽어내고.

다음 순간, 푸른 화염이 그녀의 손에서 솟아오르며 편지가 불타 버린다.

"...우왓!?"

사샤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지만 정작 클레온과 라일라는 재가 되어가는 종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있는다.

"괘, 괜찮은 건가요? 편지, 타고 있는데."

"내가 태운 거니까 괜찮아. 쓸데없는 편지였어."

라일라는 이제야 잠이 좀 깼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남은 재와 불타버린 편지 조각은 벽난로의 안으로 털어 넣는 것이었다.

"아아. 조깅에 따라가는 건 생각해 둘게. 쿠온의 요리가 맛있어서 나도 슬슬 몸무게를 걱정해야 할 거 같아."

라일라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사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정확히는, 그녀의 머리 위에 나 있는 짐승의 귀를 만지는 것이었다.

장난을 치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식으로 만져서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주기적으로 사샤의 귀와 꼬리를 만지는 것이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이었지만.

그러다가 문득, 라일라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사샤의 허리춤에 걸린 부러진 단검으로 향한다.

"어라. 이거 부숴졌네."

"아아. 내가 실수해서 말이야."

클레온이 대답하자 `흐응...`하고 라일라는 흥미롭다는 듯이 단검을 잠시 살핀다.

"그럼, 새로 하나 장만해야겠네?"

"그렇게 되겠지. 자유시장에라도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사샤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라일라는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더니.

"잠깐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클레온도 사샤도 서로를 바라보며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 지에 대해 짐작도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지만.

잠시 뒤, 라일라는 손에 기다란 상자를 든 채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케이스에는 특별한 장식도 되어 있지 않았고 느껴지는 마력도 그리 크지 않았다.

"기다렸지."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의 앞에서 케이스를 열어젖힌다.

그러자 그 안에는, 사샤가 전투나 훈련에 사용하던 것과 비슷한 길이의 단검이 한 자루, 푹신해 보이는 쿠션의 위에 놓여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새겨져 있는 조각이나 장식 등이 화려해서, 전투용이라기보다는 장식용, 치장용의 단검처럼 보인다.

"이거 사용해 줘."

라일라는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클레온은 잠시 굳은 얼굴이 되며 대답한다.

"이거, 진검이잖아?"

손잡이는 금색, 나비의 날개와도 같은 장식이 달려 있고 몸은 은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충분히 사람을 헤칠 수 있는 날카로움이었다.

그러자 라일라는 클레온의 반응이 예상대로라는 듯이 웃어 보이며 이야기한다.

"후후.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란 말씀. 이건 마도구야."

"마도구?"

라일라는 사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더이더니, 케이스에서 단검을 꺼내 든다.

그러더니, 그것을 전력을 다해서 자신의 다른 쪽 팔을 향해 내려치는 것이었다.

"라, 라일라씨!?`

그 모습을 보며 비명을 지르기 직전의 표정이 되는 사샤.

하지만, 라일라의 팔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고, 칼은 그녀의 팔에 부딪힌 채 멈춰 있었다.

"봤지? 진검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린이들이 다치지 않고 가지고 놀 수 있도록 개발된 마도구야. 사람이나 물건을 절대로 벨 수 없게 만들어져 있거든. 그러면서 강도는 제대로 금속 재질이라 쉽게 망가지지 않고. 훈련에는 딱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떻게 된 물건이야…."

클레온은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그 단검을 바라본다.

"예전에 마도구 학과에서 반강제로 받은 물건이야. 일을 좀 도와준 적이 있었거든. 물론 따로 보수는 받았지만. 최신 인기 상품이라면서…."

"상품명은?"

"DX(디럭스) 나비의 단검­티타니아"

"거창하네."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단검을 사샤에게 건네준다.

사샤는 눈을 반짝이면서 단검을 요리조리 살피다가, 손잡이의 아랫부분에 달려 있던 작은 보석 형태의 단추를 누른다.

[나비의 단검­티타니아! 요정의 단검이 정령의 숲을 수호한다!]

갑작스럽게 단검에서 흘러나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움찔, 하고 놀라는 것이었다.

"이건..."

"뭔가, 유명한 소설에 나온 단검의 레플리카라는 것 같아서. 거기서 나온 대사를 몇 개 수록해놨다고 했던가. 참 쓸데없지?"

하지만 사샤는 신기하다는 듯이 아래에 달린 버튼을 몇 번 누르면 그때 마다 다른 대사가 나오는 것이었다.

"뭐. 본인은 마음에 든 것 같지만."

"감사합니다. 라일라 씨! 소중하게 쓸게요!"

"사샤~! 좀 도와줄래?"

그때, 주방에서 들려오는 쿠온의 목소리.

사샤는 기운차게 대답하며 그쪽으로 뛰어간다.

"... ..."

"... 신의 이름으로 이것을 주조하나니, 그대들에게 죄가 없음이라."

클레온이 그런 사샤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문장이었다.

"아까 그 편지에 쓰여 있던 거야. 그건 원로회가 나에게 보낸 거고."

"무언가의 암구호인가?"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라일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공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환영을 띄운다.

보이는 것은 `흰색의 거대한 건물`.

"이게 모나드의 관. 12원로회가 머무는 곳이야. 입구에는 수호 골렘들이 있어서 허락되지 않은 방문객들을 막고 있어."

"... 여기에, 12석의 원로들이..."

아카데미의 실질적인 지배자이며, 이곳의 부패와 어둠에 가장 깊게 연관된 권력자들.

"이것저것 정리되면 자신들을 찾아오라는 것 같아. 방금 그 암구호를 말하면 들여보내 주겠다고."

"...과연. 하지만, 어째서 나에게 그 암구호를 알려주는 거야?"

클레온이 라일라에게 묻자,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올린다.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 클레온이 원로회를 찾을 일이 생긴다면. 그때 이 암구호를 써 줘."

"...무슨 일. 이라는 건?"

의미심장한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은 살짝 굳은 얼굴이 되어 묻는다.

"무슨 일이란 건 무슨 일이야. 신변의 이상이라든지. 내가 행방불명 된다든지."

"그런 일은 없을거야."

"그러길 바라야지."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클레온의 허리에 팔을 감아 안겨 온다.

"...클레온을 믿을게."

"... ..."

클레온을 포함한 엘레시아의 모험가 일당이 아카데미로 이주해 온 지 두 주 정도가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001

"우리들의 호출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정분을 나눈 남자에게 비밀을 누설하는가."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강렬한 빛에 의해 눈이 아파질 것만 같은 모나드의 관 내부.

12석의 원로들은 서로서로 라일라에 대한 분노나, 실망. 그리고 클레온의 말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클레온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노인네들이 조금 진정하기를 기다려 준다.

권력과 힘으로 덩치를 불렸지만, 이들의 본질은 아카데미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인들.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나, 의문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는 일단 파헤치고 보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자 습관이었다.

이윽고 하나둘, 조용해지며 클레온은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한 24개의 눈동자에서 날아드는 시선을 느낀다.

대표 격으로 보이는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공간에 울렸다.

"우리를 그토록 증오하고 멸시하면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흑마의 마검사."

"어떤 장소에 관해서 묻고 싶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오래 있는 당신들이라면 알고 있겠지."

클레온의 말에 원로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중얼거리고 이어서 다시 한번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째서 우리가 네 질문에 답해주리라 생각하는가?"

그 목소리에는 클레온을 깔보는 듯한 태도와 함께, 그를 원망하는 듯한 감정도 섞여 있었다.

네 녀석만 없었더라면­

이라는 문장이 목 끝까지 차올라 있겠지.

라고, 클레온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나와 내 동료들이, 검은 교전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클레온의 대답에 원로들은 한꺼번에 입을 다물어버린다.

`검은 교전`.

일주일 전, 이 아카데미에 펼쳐진 데미우르고스의 영역 내에서 많은 것이 변하였다.

하지만, 이 모나드의 관은 조금 이야기가 달라서.

이 모나드의 관 내부는 바깥과는 아예 단절된 것 과 마찬가지인 하나의 독립되고, 고립된 공간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은 아카데미의 `바깥`과도 같은 취급이라는 뜻이었다.

이것 역시 라일라로부터 어느 정도 설명을 들은 클레온이었기에, 이들이 데미우르고스의 세뇌에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모나드의 관 바깥으로 나가면 예외 없이 세뇌의 영향권 내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눈을 똑바로 뜬 채, 제정신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아카데미가 검은 교전이 원하는 대로 뒤틀리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데미우르고스의 인자인가..."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린다. 여전히 다른 원로들은 침묵한 채였다.

"나와 내 동료들만이 세뇌에서 원래의 기억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말고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다는 거지?"

"... ... 오만하군. 역시 흑마의 일족의 혈통은 어쩔 수 없나."

클레온과 노인 사이에서 침묵이 흐른다.

반사되어 전신으로 내리쬐는 빛에 의해, 클레온은 조금씩 기온이 높아지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원로회의 쪽이었다.

"어떤 장소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냐."

노인의 목소리에 클레온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아루루에게서 전달받은 것을 원로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검은 공간,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의 빛이 나타나는 석판이 있는 곳.

그 말을 모두 들은 원로들은 조금씩 웅성대더니 이내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베일 너머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마법인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이쪽에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눈에 띄게 당황해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전해져 왔다.

"어디에서 그것을…."

"그런 건 관계없겠지. 알고 있으면 대답해라."

"큭... 건방진 녀석..."

좋을대로 말하라는 듯한 클레온의 태도에 노인은 침음성을 내지만 이윽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카타콤이다."

카타콤­ 지하무덤. 고대인들의 무덤으로도 일컬어지는 용어로, 아카데미에서는 카타콤을 발견하는 것 = 현존하는 기술의 혁신의 시작이라는 공립이 성립될 정도이다.

고대인의 시체와 함께 매장된 수많은 고대 유물들이 있을 테니, 그러한 인식을 받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그런 인식 자체가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시선이라고, 이전에 대현자 소피아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을 클레온은 떠올린다.

"아카데미의 지하에 카타콤이 있는 건가."

"정확히는 카타콤의 위에 아카데미가 있는 것이지."

거기서부터, 원로회의 노인은 클레온에게 아카데미의 카타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본래 아카데미라는 것은 12명의 학자에 의해 이 지역 일대의 지하에서 발견된 카타콤과 고대 유물에 대한 소유권을.

당시 이 땅의 근처까지 국경을 뻗어왔던 왕국과 제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설립된 학술기관이었다.

그것에 살을 붙여 지금과도 같이 거대한 학원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세 석판`이 있는 곳은 일명 저주받은 방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12명의 학자 중 3명의 학자가 그곳에 발을 들였다가 의문의 힘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원인으로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고 클레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곳에 검은 교전이 있다는 건가…. 저주받은 방의 정확한 위치는?"

"... ... 그 전에 우리의 질문에 하나 대답해다오."

클레온의 재촉에 원로회의 노인은 그에게 질문한다.

"네놈은 이길 수 있다는 것인가? 검은 교전에게. 물론 네놈들만이 검은 교전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했다. 분한 일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문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클레온이 데미우르고스의 인자로 세뇌에 면역이라고 하더라도 검은 교전이 가진 힘은 미지수이며, 레일은 충분히 강한 존재였다.

클레온들마저 패배한다면, 그대로 인자를 모두 그들에게 빼앗겨 완벽한 새계 개찬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클레온은 잠시 침묵하다가 원로회의 노인에게 대답한다.

"물론 이길 수 있다. 현실을 바꾸지 못하여, 현실 그 자체를 자신의 정원으로 만들어 버린 녀석에게 우리는 지지 않아. 세계를 바꾸려고 하는 존재들이라면 이미 엄청난 녀석을 쓰러트렸으니까."

"...절계수인가."

물론 거기에는 라일라의 활약이 있었고, 특수한 조건이 많이 겹친 상태였다.

하지만, 클레온은 자신한다.

이미 그는, 레일이 어떤 마음으로 이 세계를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에게 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베일의 너머로 노인과 클레온의 시선이 마주친다.

조금의 침묵이 이어진 뒤 노인은 입을 열어 클레온에게 `카타콤의 저주받은 방`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큭... 하하, 크하하하!!`

그리고, 대답을 들은 클레온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올리는 것이었다.

002

"으으... 설마 준비물을 잊어버리다니…."

한낮의 아무도 없는 라일라의 저택.

이니스는 지금쯤 라일라의 지시로 그녀를 따라 마법 학과의 수업에 동행해 있을 것이다.

사샤는 수업의 도중에 실습시간에 필요한 물건을 저택에 놓고 간 탓에, 서둘러서 그것을 챙기러 집으로 잠시 되돌아온 상태였다.

자신의 방의 장비 등을 넣어두는 상자를 열심히 뒤적거리다가, 별다른 장식 없는 케이스를 발견한다.

"어…. 이거?`

사샤는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그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있던 물건을 꺼내 든다.

화려한 장식의 단검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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