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그릇
* * *
000
참을성의 한계에 다다른 검은 교전이 그들의 제자, 레일에게 직접 신의 그릇을 탈취하기 위해 움직이라고 명한 것은 그 전날의 일이었다.
시가지에서 오토마타들의 전투가 발생하여 그 감시 영상을 확인하면, 마검사의 일행 중 하나였던 소녀가 데미우르고스의 정신지배에서 벗어나.
라일라 플레임워치의 저택에서 떠난 것으로, 저택에 상주하는 인원이 적어진 것을 호기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그들의 명령을 받는 레일의 입장에서는, 석판의 가운데에 서 있을 때는 그들에 대한 의심, 불평, 불만을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것이 머리에 떠오른 순간, 레일에게는 그들로부터 교정을 위한 체벌이 내려지기 때문이었다.
`신의 그릇`.
아카데미 내에는 침투하지 못한 성자의 가호 교단의 교리 중 하나로서, 용사, 성녀들과 같이 높은 신성마력 적합성을 가진 선택받은 인간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상은 고대인들이 풀어놓은 인간들을 향한 저주이자 축복 중 하나로서, 특정한 혈통에 새겨진 특정 인자에 대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성자의 가호 교단이 멋대로 해석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레일의 스승, 검은 교전은 그러한 현대인들을 향한 비꼼을 담아서, 그들이 사용하는 명칭 그대로 그들을 `신의 그릇`이라고 부른다.
성검의 힘을 담는 용사, 용사를 보조하기 위한 신성마력을 담는 성녀.
고대인들이 남긴 유산을 자기들 멋대로 해석하여 하나의 신앙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현대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조소였다.
성검이란 것이 결국에는 인간과의 전쟁에서 개인이 더욱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량 학살 파괴병기라는 것을 교단은 알고 있을까.
아니,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사실을 감추겠지.
이미 오랜 세월 신도들 사이에 뿌리박힌 성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신의 그릇이라는 것이 그 병기를 제어하기 위해 인체 실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전투 노예들의 후손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그들을 삼위일체의 수호자라며 떠받드는 교단으로서도 좋은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물며 검은 교전의 목적은 그 신의 그릇에 고대의 악마 데미우르고스의 인자를 담게 하여 폭주시키는 교단으로서 보자면 최악의 신성모독.
인간들 사이에서 구세주라 떠받들어지는 존재가 세계를 멸망으로 이끄는 방아쇠로 변한다니 최악의 아이러니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레일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던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검은 교전이 가장 처음 데미우르고스의 인자를 담을 그릇으로써 선택한 것은 `용사 아루루 트로메이아`였다.
단련되어있는 강인한 육체, 그리고 그에 걸맞은 용사로서의 높은 적성.
검은 교전들의 취향인 고결한 정신. 그것을 무너트려 악행의 정점에 서는 타락한 용사로 그녀를 떨어트리고 싶다는 것이 검은 교전의 원래 목표였다.
하지만 당신의 검은 교전에게는 육체가 없었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암약을 위한 수족이 필요했다.
거기서 주목한 것이, 아루루의 곁에 있는 또 하나의 그릇.
비록 그녀에 비하면 그릇으로서의 질은 너무나도 격하이고, 쉽게 망가질 것 같은 나약한 정신력을 가진 인간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들의 수족으로 부리기에는 형편이 좋았다.
나약한 정신의 벽을 뛰어넘어 그의 머릿속으로 환영과 환청을 보내면 레일이 그들에게 굴복하는 데에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레일이 본 환영의 안에는, 악마에 의해 지배당한 아루루가 세계를 파괴로 이끄는 광경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재생되었다.
하지만, 레일에게도 본인의 의지가 있었다.
아루루는 레일에게 있어서 가장 지켜야 할 인간이었고,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용사로 정의하고 그녀 자신의 욕망을 단절한 채 자기희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멈추기 위해.
데미우르고스의 힘을 사용하여, 인간의 정신을 개찬하여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면 그녀를 그 의무로서 해방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기에, 아루루를 대체할 신의 그릇을 찾아 검은 교전에 가져다 바쳐야 하는 것이 레일에게 있어서는 최우선의 일이었다.
거기서 먼저 눈독 들인 것이 `엘레시아`라 불리는 대륙 변경의 도시에 나타난 막 이름을 올린 어린 용사 `알베인`이었다.
용사에 대한 학술적인 지식욕에 가득 차 있는 12인의 원로회에 그에 대한 정보를 흘리면, 마치 미끼를 문 물고기와도 같이 그 즉시 행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그들의 지시를 받고 알베인을 포섭하여 아카데미로 데리고 오기 위해 일시적으로 아카데미를 떠났다.
하지만, 임무의 도중에 트러블이 발생했다.
파티를 추방당한 마검사가 파티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켜 그 과정에서 라일라가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레일은 당시 속이 뒤집히는 듯한 스트레스를 느꼈지만, 곧 새로운 손을 쓰기로 했다.
집행과의 차석, 힘에 취한 어리석은 마안술사이자, 베아트릭스의 친언니를 엘레시아로 보내 강제로라도 알베인을 데리고 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알베인은 썩어도 준치, 어리석더라도 성검의 용사.
그가 가진 황금의 성검이 가진 힘은, 각성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마안의 매료로부터 주인을 지킨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 역시 조금 번거롭지만, 알베인을 유혹하여 자신들을 곤란하게 한 마검사를 죽이는 것을 대가로 알베인을 아카데미로 데려오려 했다.
그녀 역시 어리석은 인물로, 힘과 지식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여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원래의 계획대로 아루루 트로메이아를 신의 그릇으로서 검은 교전에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레일은 그러한 절망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압박해오는 검은 교전에 대해 시간을 끄는 것에 한계를 느끼던 찰나.
자신을 엿먹이고 방해한 마검사를 대동한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아카데미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 `성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라일라와 클레온에 흥미를 느끼던 검은 교전이었지만, 레일은 `쿠온`을 아루루나 알베인을 대신할 신의 그릇으로써 사용하기 위해 암약했다.
그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녀를 지키는 그녀의 일행.
클레온, 라일라, 사샤를 그녀로부터 떼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오자 검은 교전은 레일에게 지체하지 말고 움직일 것을 명한 것이었다.
자신을 제자라 칭하는 그들 역시,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면 가차 없이 자신에게 그 칼날을 돌릴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던 레일은.
라일라 플레임워치의 저택 앞에 섰다.
001
라일라의 저택의 안에 있는 각자의 방은, 그 방을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그 내부의 분위기도 각자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었다.
라일라의 경우는 방을 잘 정리하지 않아 여기저기 흐트러진 물건에, 붉은색 기조의 화려한 방이었다고 하면.
사샤는 그녀의 소녀다운 감성이 잘 드러난 귀여운 장식이 눈에 띄는 방.
쿠온의 경우에는, 마치 작은 예배당과도 같은 경건함이 묻어나는 차분하고, 조용한 방이었다.
가지고 있는 물건도 외모를 꾸미는 데에는 조금 관심이 덜한 그녀답게, 화장대 같은 것은 없었고.
최소한의 옷가지가 들어가 있는 옷장에, 한사람이 눕기에는 조금 커다란 침대. 그리고 간소한 책상 정도가 그녀의 방의 가구 전부였다.
그리고 그 침대 위에는, 방의 주인인 쿠온이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조금 핼쑥한 표정이 되어 앉아있었다.
원인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닌, 최근에는 자신의 친여동생과도 같이 느껴지던 귀여운 사샤의 일탈이 원인….
이라고 하기에는, 그녀 본인에게도 어딘가 느끼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생필품의 잔량이라던가, 생활 전반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라일라와 다르게.
쿠온은 가사 전반에 손을 대고 있으므로 생활 환경에 대해선 저택의 주인인 라일라보다도 민감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쿠온은 어렴풋이, 이 저택에 자신들 외의 인간이 최근까지 거주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그 인물은 성인 남성일 것이다. 저택의 다른 주민들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어쩌면, 자신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서, 서로를 위해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친밀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챈 쿠온은 어떻게든 그 인물에 대해서 떠올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마치 사고에 안개가 낀 것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며, 답답한 마음과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다.
어떻게든 라일라와 사샤에게는 내색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지만, 사샤가 그렇게 저택을 떠나 한 남자를 따라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온 듯한 피곤함에 쿠온은 결국 몸 상태를 망가트리고 말았다.
거기에는 사샤에 대한 걱정은 물론이었지만, 사샤가 따라간 남성이야말로 자신들이 잊고 있는 `누군가`라는 것을 깨달은.
그리고 그에 대해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는 쿠온 자신의 존재가 그녀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몸의 상태는 괜찮으신지요."
쿠온의 간병을 위해 방으로 들어온 이니스의 질문에 쿠온은 조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의 상태는 하루를 지나며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겁고, 나른했다.
이것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냐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마력`에 관련된 기관들에서 조금씩이지만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자신에게 어떠한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몸의 주인인 자신에게 알리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
하지만 아카데미의 안에서, 그것도 마법학과 수석인 라일라의 저택에 대체 어떤 위험이 다가온다는 것일까.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은 채, 쿠온은 몸 상태가 나아지면 라일라와 함께 사샤를 찾아가, 그녀가 따라간 남자와 만나볼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문뜩, 쿠온의 시선이 이니스에게 향했다.
그녀는 라일라가 만들어낸 인공생명체, 즉 인간과는 다른 존재이다.
물론 인간과 다르다고 해서 자아를 지닌 그녀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생긴 그녀는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인간과는 몸의 구조가 다른 것이었다.
그렇기에, 쿠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어, 그녀에게 묻는다.
"이니스. 이전에 나와 함께 장을 보러 가는 남성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었지? 혹시, 사샤가 따라간 남자를 말하는 거야?"
"... ..."
쿠온의 질문에 이니스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그녀는 조금 놀란듯한 기색일지도 몰랐다.
"...그때는 이니스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니스는 이 저택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거 아니야?"
"그렇습니다. 쿠온님. 저는 여러분들이 잊어버린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니스의 대답에 쿠온은 놀란 얼굴이 되어 이니스의 손을 붙잡았다.
"어, 어째서 이야기해 주지 않은 거야?"
"이야기하더라도, 신뢰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라이드 높은 제 창조주. 마스터는 제가 오류를 일으켰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거기에 변한 것은 여러분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라일라라면 우리들 사이에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겠지만…."
쿠온은 이니스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한다.
"...아니, 미안. 역시. 사샤의 일이 없었다면 나도 쉽게 믿지 못했을 거야."
쿠온의 말에 이니스 역시 쿠온의 손을 마주 잡으며 대답했다.
"사샤님이 그분에 관한 것을 기억해 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들은 설명에 의하면 본래 인간은 이 기억의 조작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 그분의 설명이었으니까요."
"...그래..."
자신을 위로해주는 듯한 이니스의 말에 쿠온은 그 상냥함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이니스, 그 사람은"
쿠온이 그렇게 말하며, 이니스에게 다른 것을 물어보려 한순간.
저택 전체에 울리는 심상치 않은 경보음.
그리고, 저택을 감싸고 있던 결계가 깨져나가는 감각이 쿠온과 이니스에게도 전해져 왔다.
"침입자...!?"
쿠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니스는 그녀를 다시 침대 위에 앉힌다.
"쿠온님은 이곳에, 제가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마스터에 의해 제작된 하우스 키퍼 호문클루스."
다음 순간, 이니스의 손에 화염으로 이루어진 플랑베르주가 나타났다.
"이 저택에 거주하는 모든 분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저의 역할입니다."
002
치이이익
하는, 뜨겁게 달구어진 철판에 찬물이 닿았을 때 나는 듯한 증발음이 들려온다.
그 근원지는 레일의 기계로 이루어진 팔에서였다.
라일라가 설치한 결계를 뚫기 위해, 강제적으로 출력을 올린 결과, 과열된 팔이 공기에 닿아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검은 마력의 침식이 어깨를 통해 목언저리까지 다가오지만, 레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자신의 침입이 저택 내부의 인간들에게도 전해졌으리라는 것.
쿠온이 도망치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의 신병을 확보해야만 했다.
다음 순간. 상공에서 느껴진 기척에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지 않았다면.
위에서 떨어져 내린 화염의 기둥 붉은 검에 의해 머리에서부터 꿰뚫렸을 것이라고, 레일은 생각한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종의 복장을 한 검붉은 머리의 무표정한 여성.
손에 든 것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염의 양손 검.
"호문클루스... 라일라의 도구인가."
이니스는 착지하자마자 레일을 향해 검 끝을 가리키며,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현재 저택에는 몸 상태가 좋지 못한 분이 계십니다. 죄송하지만 손님. 오늘은 돌아가 주시길."
"유창한 호문클루스로군 그래, 내가 네 마스터였다면 도구에게 말할 수 있는 기능은 넣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다음 순간, 이니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의 목을 노리기 위해 검을 휘둘러왔다.
빠르고, 정확하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불타는 검은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검을 상대하듯 물리적인 검을 사용하여 방어하려고 하더라도.
검에 마력이 둘러져 있지 않으면 그대로 검을 통과해서 상대방을 베어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거기에, 검도 검이었지만 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호문클루스 특유의 신체능력에서 나오는 위협적인 공격속도.
레일은 참으로 성가신 물건을 만들었다고 속으로 라일라를 욕하며, 다시 한 번 스승으로부터 하사받은 기계의 팔을 휘둘렀다.
신의 골렘이라 불리던 `엔키두`의 팔은 멋대로 레일의 몸에서부터 마력을 흡수하여 그것을 이용해 다양한 출력을 발휘한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마력을 흘러, 뜨거운 화염의 검을 잡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화염의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는 레일을 보며, 이니스는 황급히 검을 손에서 놓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 판단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화염의 검 따위, 그녀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일시적인 물건.
거리를 벌리고 재생성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염의 검을 타고 흘러들어온 검은 마력이 그대로 그녀의 손을 붙잡아 검에서 손을 떼어놓지 않는다.
검 자체를 소멸시키려 하더라도 마력의 제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큭...! 이건...!"
마력의 침투로 인해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찰나. 레일은 허리의 걸린 검을 뽑아 그대로 이니스의 복부를 꿰뚫었다.
"커흑...!"
호문클루스는 인간보다도 생명력이 뛰어난 존재. 복부를 꿰뚫린 정도로는 죽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큰 상처였고, 더군다나 몸을 타고 들어오는 검은 마력의 흐름이 그녀의 몸을 서서히 굳게 만든다.
"시시하군, 결국 도구는 도구인가."
레일이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 이니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의 몸 전신에 흐르는 라일라 플레임워치의 화염의 마법을, 꿰뚫린 자신의 배의 구멍으로 집중시킨다.
"...그럼, 그 도구한테 한 방 먹어볼래…!"
그와 동시에, 라일라 전매특허의 전방위 공격마법이 이니스의 몸에서 발동했다.
"플레임 버스트!!"
강력한 화염의 폭풍이 몰아치며, 저택의 입구 부분을 포함하며 검을 잡고 있던 레일을 휘감은 폭발이 일어난다.
거대한 충격으로 레일은 뒤로 날아가 버리고, 이니스는 모든 마력을 무리하게 쏟아부은 탓에,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진다.
레일의 검은 방금 그 폭발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것인지, 녹아버린 것인지.
더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황급하게 엔키두의 팔로 자신의 몸을 보호한 레일이었지만, 데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날아가 땅을 굴렀을 때 머리를 부딪친 것인지, 피가 흐른다.
몸의 전면부에 맨살을 노출한 부분에서 화상을 입지 않은 부분은 드물 정도였다.
"큭...! 호문클루스 주제에...!"
레일이 몸을 비틀면서 일으키고 엔키두의 팔을 뻗어 마력분사를 사용하여 이니스를 완전히 마무리 지으려는 찰나
"이니스! 괜찮아!?"
폭발음을 들은 쿠온이 저택에서 뛰어나와, 쓰러져 있는 이니스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팔을 뻗고 있는 레일.
쿠온과 레일의 눈이 동시에 마주친 순간, 레일의 조준은 그녀를 향한다.
하지만 쿠온의 눈은 레일의 눈동자 너머 더욱 깊고 어두운 곳에 있는 악마 데미우르고스를 보았다.
다음 순간, 레일은 깨닫는다.
자신과 자신의 스승이,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관찰에서, 쿠온은 언제나 클레온과 라일라라는 강력한 모험가 두 사람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존재로.
그녀는 두 사람을 뒤에서 보조하는 인물일 뿐이라고.
물론, 그것은 쿠온 그녀가 본래 싸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것도 있었지만.
그녀의 본분은 성직자이며,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라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직자의 일은 또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악마의 퇴치`이다.
악마들은 신성마력에 의해 강력한 피해를 입으며, 그들의 영혼을 정화하고 지옥으로 돌려보내지 않도록 소멸시킬 수 있는 것도 강력한 신성마력뿐이다.
알베인이 함께였던 원래의 파티에서, 쿠온의 역할은 물론 다른 이들의 보조이기도 했지만 `악마`의 토벌을 위해 평상시에도 신성마력을 아껴놓는 것이었다.
신의 골렘, 엔키두에 의한 마력 침식에 더해, 몸 전체가 악마에 의해 절여져 있는 것과 다름없는 레일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봄과 동시에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신성마력의 폭발적인 증폭을 확인하고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신성마력의 증폭은 이질적이었다.
다른 성직자들에 비해서도 쿠온의 변화는 상식의 궤를 벗어나 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검은 교전과 레일이 잊고 있던 가능성.
어째서, 거악이 나타났을 때 강림하는 대적자가 하나뿐이라고 착각하던 것이었을까.
데미우르고스가 강림하게 되면 그 뒤에 황금의 혜성을 대적자로서 불러들인다.
그 계획 자체에 의문점은 있더라도 모순은 없다고 레일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데미우르고스라는 악이 나타나기 이전에.
검은 교전과 레일은 인간의 세계를 위협하는 악으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검은 교전의 대적자는 `클레온`과 `베아트릭스`일 것이라고 레일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신에게 안배된 대적자는
다음 순간, 쿠온에게 내리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성마력의 기둥.
마치 신의 기적과도 같은 현상이 눈앞에서 펼쳐지며, 쿠온의 머리에 빛무리가 모여들어 천사의 상징인 광륜으로 변화한다.
레일이 그 모습에 잠시 넋을 잃은 사이, 쿠온은 마치 이니스와도 같이 감정 없는 얼굴이 되어 레일에게 손을 뻗는다.
그러자, 그녀의 몸의 뒤에서 날개와도 같이 나타난 8장의 빛의 창이.
동시에 레일의 날아와 몸을 꿰뚫는 것이었다.
"크윽!?"
물리적인 상처는 나지 않았다. 그 신성마력의 창은 레일의 몸으로 파고들어 몸속에 존재하는 흑마력을 태우며 레일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정화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육체의 부하는 신경 쓰지 않는 완벽히 기계적인 정화작업.
대적자로서 각성한 쿠온은 레일을 `악마의 씨앗`정도로밖에 보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레일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신성마력의 창을 엔키두의 팔로 건들면, 그것을 파괴할 수는 있었지만.
몸에 남은 데미지는 지울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차원문이 열리며 다른 이들이 라일라의 저택에 도래한다.
"...쿠온!?"
그녀를 부르는 당황한 목소리는, 클레온의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