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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02화 (102/506)

〈 102화 〉 쿠온 ­영원의 성녀­ (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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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수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일시적으로 천사화를 해제시키는 것에 성공한 쿠온의 현재의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계속해서 신성마력을 생산하려고 하는 쿠온내의 마력기관과, 흑마력영역을 발생시켜 넘쳐나는 마력을 흡수하고 마력의 포화상태를 방지하는 마력충.

이 둘이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어 그녀의 육체, 정신이 제 상태로 유지되도록 움직이고 있었다.

쿠온을 처음으로 안았던 그 날, 마력충을 살려두었던 것이 이렇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클레온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쿠온은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하면, 마력 과다 혹은 마력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클레온은 그녀를 방에서 안정을 취하게 한 뒤에 레일의 다음 동향에 대해서 베아트릭스와 논의하고 있었다.

오랜만의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클레온은 베아트릭스의 부탁대로 침대 위에 앉은 채, 대면좌위로 그녀에게 삽입한 상태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다.

"데미우르고스의 완전한 부활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검은 교전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느릿하게 그라인더 운동을 그리며, 질내에 받아들인 클레온의 물건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베아트릭스.

그때 마다 어깨를 조금씩 떨며, `후웃...♡`하고 달콤한 숨이 섞인 소리를 내뱉는다.

그녀 역시 영혼에 문제가 있는 상황으로, 여전히 클레온과 하루에 한 번씩은 몸을 섞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지만.

오늘은 사정이 사정인 만큼, 시간 절약을 위해 클레온과 연결된 채 사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서로의 몸을 꽉 끌어안은 채, 손에 들고 있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한 종이(이오나가 작성)를 바라보면 그들의 서브플랜에 대한 예측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된 검은 교전이 다시 한 번 세뇌를 이용하여 클레온들을 향해 나머지 학생들을 보내서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법.

뷔토스의 창고 내부에 있는 유물 중 위험한 물건들을 사용하는 방법.

혹은, 검은 교전 본인들이 직접 다른 육체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방법.

이오나는, 이것들 전부가 한꺼번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이야기를 해놓은 채, 라일라와 함께 아이온의 탑으로 향했다.

그들이 다시 움직일 때 까지는, 레일의 회복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 전에 어느 정도 대책을 논의하여 실행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에요. 정신개찬으로 인해서 전략적 우위에 서 있는 건, 결국 검은 교전이기 때문에…."

말의 중간중간, 끊기는 듯이 이야기 하는 것은 그때마다, 그녀의 깊은 곳에 클레온의 물건이 부딪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베아트릭스의 쪽이었다.

"그렇지만..."

베아트릭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잠시 몸을 떼어내 클레온의 얼굴을 본다.

"인간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악마의 힘을, 선배의 동료분들은 벌써 자력으로 두 분이나 벗어났어요."

사냥꾼의 각인에서 발현된 루벤의 힘으로 자주 자체를 지워버린 사샤.

그리고 천사화의 영향으로 몸 안에 있던 악마의 힘을 모두 정화해버린 쿠온.

베아트릭스가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클레온의 곁으로 돌아온 두 명의 동료들.

그녀 덕분에 라일라도 클레온에 관해서 의심을 어느 정도 풀고 힘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 두 사람이 특수한 경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이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간 중에서 클레온의 동료들이 그렇다는 것이 얼마나 희박한 확률일까.

"모든 것은 필연, 운명의 실타래는 풀어보면 한 가닥…."

"소피아의 말인가."

이전 들은 적이 있는 문장에 클레온이 반응하면 베아트릭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용사 레시아의 동료이자, 제국을 멸망시킨 4영웅 중 한 명인 대현자 소피아. 베아트릭스를 이차원의 틈에서 꺼내준 장본인.

"선배가 만난 모든 인연이, 결국 하나로 이어져 이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면. 소피아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 ..."

클레온은 베아트릭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베아트릭스도 그런 클레온의 인연 중 하나였다.

그녀와 만나지 못했더라면 클레온 역시 검은 교전의 술수에 의해 정신을 개찬 당해 그들의 계획대로 쿠온이 악마의 그릇으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서서히 빨라지는 베아트릭스의 움직임은, 그녀도 슬슬 절정의 한계에 가까워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선배... 만약,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나면... 저도, 선배의 곁에서... 라일라와 함께...!"

클레온의 등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베아트릭스.

그녀의 가느다란 등을 클레온은 쓰다듬으며, 마치 안심시키려는 듯 상냥한 포옹과 함께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영혼은 깊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001

영혼의 안정화를 위해 잠시 잠이 든 베아트릭스를 침대에 눕힌 클레온은 몸을 일으켜 쿠온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간소한 방에 들어갈 때마다, 이전 그녀와 함께 찾았던 엘레시아의 신전을 떠올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물론 그런 추억과 함께 생각나는 것은 그녀와 함께 들어간 고해실에서의 행위도 함께였다.

클레온 본인은 신을 믿지 않지만, 분명 천벌 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라일라에 의해 기능을 회복하고 쿠온의 방에서 그녀를 지키던 이니스가 클레온의 방에 들어오면 고개를 돌린다.

분명 표정을 짓지 못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녀의 얼굴 주변이 밝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왔구나, 파파! 이야기는 끝났어?"

"응. 우선은 라일라와 이오나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려고, 사샤도 베아트릭스도, 지하 무덤에서 싸운 피로가 남아있으니까."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이니스의 옆에 앉아, 어느샌가 잠이 든 쿠온을 바라보았다.

쿠온 스스로는 몸 상태가 괜찮다고 이야기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력적인 면의 이야기로.

천사화가 육체에 정확하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이 저택의 누구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사샤에 빙의한 루벤이 이야기한 것 역시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일 뿐이었다.

그녀에게 깃든 별의 의지는 레일과 검은 교전이 파멸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가 사라진 뒤에 대적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끝마친 쿠온에게 남을 후유증에 대한 대책 역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됐다.

쿠온에게 필요한 것이 마력이라면, 자신이 그녀의 옆에 있어 주면 된다고 클레온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불현 머리를 스쳐 가지만.

지금은 그러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슬슬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갈게. 파파는 쿠온님의 곁에 있어 줘."

이니스는 자연스럽게 클레온의 볼에 입을 맞추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서는 이니스를 잠시 바라본 뒤, 쿠온에게 다시 시선을 돌려.

규칙적인 리듬으로 호흡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부디 그녀에게 이 이상의 불행한 일이 찾아오지 않기를, 자신은 믿지 않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002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클레온은 새하얀 순백의 공간의 안에 서 있었다.

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마치 이전에 방문한 모나드의 관과도 같은 경건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인 느낌.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펼쳐진 하얀 바닥뿐.

시야의 전체가 백색으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은 분명 이질적이었지만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를 향하여 발걸음을 내디딘다.

마치,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다른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는 듯이.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는 채, 얼마나 걸었을까.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 앞에, 얼굴을 가린 순백의 베일을 머리에 뒤집어쓴 여성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나무는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

쿠온의 기억 속, 본래 무녀였던 그녀의 어머니가,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아주 오래전부터 기도를 바치며 마을의 평안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를 올리던 신목이었다.

나무에 관해서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클레온이었지만. 그 나무는 조금 달랐다.

클레온의 기억 속에서는 의미 희미한 어머니의 기억.

하지만 자신을 향해 보이던 상냥한 미소와 따뜻한 목소리.

이 신목에서는 그러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스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여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 가까이 가면.

베일의 여성은 뒤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에 조금 놀란 듯이 몸을 돌려 클레온의 쪽을 바라보았다.

"...클레온?"

신기한 듯이, 혹은 조금 놀란 듯이 목소리를 울리는 그녀.

그녀의 목소리는 클레온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베일을 손으로 들추며 얼굴을 드러낸 것은 클레온이 생각한 대로, 쿠온이었다.

하지만 클레온이 알고 있는 본래의 쿠온보다도 조금 어른스러워져 있어, 마치 20대 중반까지 성장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놀라 경직되고 말았다.

"... 정말, 클레온이야?"

마치 클레온을 유령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그녀의 반응에 클레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환상인가. 아니면 꿈인가.

클레온은 그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까이 와 클레온의 얼굴에 쿠온의 손이 닿아, 마치 실체를 확인하는 듯한 느낌.

확실한 감촉이 볼에서 느껴지면 꿈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라고 클레온은 느낌과 동시에.

몸 전체를 따스하게 감싸는 감각과 함께 그녀가 자신에게 달려들듯 끌어안아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는 그렇게 변하지 않았지만, 한층 성숙해진 그녀의 신체가 클레온의 몸을 틈 없이 감싼다.

"클레온…! 정말로, 클레온이야…!"

눈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클레온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그녀를 보며 클레온은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그녀가 조금 진정할 때까지, 그 등을 쓸어내려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잠시 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쿠온이 손끝으로 자신의 눈을 닦아내면.

붉게 충혈된 얼굴로 클레온의 얼굴을 바라본다.

"미안, 클레온. 너무 갑작스러웠지."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도, 이곳은…."

쿠온은 베일의 너머로 쓴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어디까지나 이어진 백색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쿠온과 클레온, 그리고 그녀가 기도를 올리던 신목 뿐이었다.

"이곳은... 별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심상 세계. 별의 촉각 중 하나인 신목과 이어진 나의 꿈속…. 이라고 해야 할까."

쿠온의 말은 어딘가 초연한 듯, 클레온이 지금 알고 있는 쿠온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로 이어졌고 그 말의 내용도 지금의 클레온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힘든 것이었다.

"...너는, 내가 알고 있는 쿠온이 아닌 거로군."

"응, 맞아. 나는 클레온과의 여행을 끝마친 뒤 혼자서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의 무녀로 복귀한, 조금 미래의 쿠온이야. ...아하하, 자기 자신을 `미래의 나`라고 말하는 건 조금 이상한 기분이지만."

클레온의 말에 쿠온은 조금 쓸쓸한 듯한, 하지만 어딘가 그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 하지만. 클레온이 `내`가 있는 미래로 이어지는 세계의 클레온은 아닐 수도 있어. 나는 클레온의 입장에서 보자면, 있을 가능성의 세계선상에 있는 쿠온…. 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바로 그 뒤에, 클레온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아리송한 표정을 하며 이야기하는 쿠온.

클레온은 그 이야기를 듣고 이전, 소피아로부터 지나가듯이 들은 적이 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평행세계인가."

"응. 그런 느낌이야."

클레온의 대답에 쿠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쪽의 `나`에게 별의 의지와 관련이 있는 일이 일어나서 일시적으로 그녀를 통해 나와 클레온의 꿈이 연결된 거겠지."

"...어렵군."

쿠온이 이야기하는 것을 대충은 알겠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쿠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하하... 사실 나도 그래. 신목의 무녀가 된 뒤로 알게 된 것은 많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이해하는 건 별개의 영역이라고 라일라가 말했었으니까."

그 대답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런 것을 물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듯. 하지만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질문한다.

"라일라와는 연락을 하고 있는 건가?"

"응. 라일라도, 사샤도. 이오나씨도 루티씨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아. 다들 바쁘지만 말이야. 내가 가장 한가하려나? 하는 일은 시골의 촌장 같은 역할이고."

"그것도 훌륭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까의 반응과,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쿠온의 말에.

그녀가 알고 있는 `클레온`에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을 파악한 클레온은 이어지는 질문을 내뱉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러자, 쿠온은 그런 클레온의 반응을 보고 알겠다는 듯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역시, 신경 쓰이는 구나. 이 세계의 클레온이 어떻게 되었는지."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쿠온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는 조금 각오가 필요하다는 듯이 심호흡을 한다.

"원래라면 미래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른 세계의 인간에게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당신도 같은 선택을 할지 모르니까."

"같은 선택...?"

"...이 쪽 세계의 클레온은 `용사 레시아`의 흔적을 쫓기 위해 홀로 이차원의 틈으로 몸을 던진 뒤 돌아오지 않았어."

"... ...!"

쿠온의 그러한 이야기에 클레온은 숨을 삼켰다.

즉 이쪽 세계의 자신은 여행의 끝에 레시아를 쫓을 방법을 알아내었고 직접 그녀를 찾기 위해 이차원의 틈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혼자서 들어간 이유는 물론, 이런 위험한 일에 다른 이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뜻에서야. 우리도 함께하겠다는 생각에, 혼자서 가려는 그를 막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쳤지만, 그의 의지를 꺾는 것은 불가능했어."

"... ..."

이어지는 이야기 역시, 만약에 같은 상황이었다면 자신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을 함께한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에 우리는 각자의 장소로 흩어졌어. 그를 찾기 위해 계속 여행을 한다는 길도 있었지만, 가장 많이 울었던 라일라가 `클레온이 이 세계로 돌아왔을 때, 세계가 엉망이 되어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했거든."

"... 그녀다운 대답인걸."

자신도, 그쪽이 더 마음이 놓일 것이다.

이차원의 틈과 같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에 바보 같은 자신을 따라올 이유는 전혀 없었다.

클레온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면 그런 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쿠온의 손이 닿았다.

"그런 슬픈 표정을 하지 말아줘. 클레온. 이차원의 틈으로 떠난 `그`도, `당신`도 같은 클레온이지만. 같은 존재인 것은 아니니까."

"... 잘 모르겠어. 나는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클레온의 말에 쿠온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그야, 근본적인 면에서는 가치관이라든지, 성격은 같을 수 있지만. 우리가 경험한 것과 당신이 이제부터 경험하게 될 것은 분명 작지 않은 차이가 있을 거야. 세계가 분기한다는 것은, 그런 뜻이니까."

그리고 몸을 돌려 신목을 바라본다.

"마치,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말이야."

"... ..."

클레온은 그런 쿠온의 손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 결과는 다를 수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도 자신들의 일이라고, 눈앞의 그녀는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신목과 그 앞에 선 쿠온이 일렁인다.

"...꿈이 끝나가네. 아마, 현실에서 당신을 불러들이고 있는 거겠지."

쿠온은 상냥하면서도 슬픈듯한 미소를 지으며, 신목에 손을 뻗어 작은 가지를 꺾어 클레온에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가볍게 발꿈치를 들어 올리며, 클레온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겹치고.

마치 인사였다는 듯이 금세 몸을 떨어트리며 그의 손에 꺾은 가지를 건넨다.

"...안녕. 클레온.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을게요."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서서히 흐릿해지더니, 이내 클레온 본인의 시야가 불이 꺼진 방에 떨어진 듯 어둠 속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003

"...클레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키는 클레온.

목소리의 주인은 방금까지 이야기하고 있던 그녀의 목소리였지만, 그 쿠온보다는 10년 정도 어린, 클레온이 잘 알고 있는 쿠온의 목소리였다.

"다행이야, 죽은 듯이 자고 있어서 무언가 잘못된 줄 알았어."

쿠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창문 바깥을 바라본다.

이미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둠이 바깥에 깔렸었다.

"식사 시간에 깨울까 했지만, 뭔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미안한듯한 쿠온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고마워……. 조금 늦게 일어나서 다행이야."

클레온은 꿈에서 만났던 그녀의 모습을 눈앞의 쿠온과 겹치며 주먹을 쥐었다.

그때, 자신의 손안에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에 손을 내려보면.

그곳에는 꿈속에서 그녀에게 받았던 신목의 가지가 쥐어져 있었다.

"...어라, 클레온. 그런 걸 쥐고 자고 있던 거야?"

클레온은 잠시 그 가지와 쿠온을 번갈아 보더니, 그것을 손에 쥔 채로 몸을 일으켜 그대로 쿠온의 몸을 끌어안았다.

"꺄,악... 클,레온...?"

갑작스러운 클레온의 포옹이 쿠온은 잠시 놀란 듯 소리를 울렸지만 이내, 불안함을 느끼는 듯한 그의 등에 손을 얹은 채.

살며시 쓰다듬으며 그의 어깨에 턱을 얹어, 귀와 귀가 부딪힐 듯한 거리에서 호흡을 공유한다.

"미안... 쿠온. 나는..."

"으응, 괜찮아. 클레온은 나의 용사님인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클레온을 믿어."

잠시 두 사람의 말이 이어지지 않은 기분 좋은 침묵이 계속됐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서로에게 전해져 갈 때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의 품에서 떨어지면.

클레온과 쿠온의 입이 다시 한 번 겹쳐졌다.

꿈속에서 느꼈던 감촉과는 다른.

이별이 아닌, 인연의 지속을 느끼는 입맞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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