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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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를 조금 빠르게 하기 위해 도중 설명이 길게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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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뻔한 아루루의 손을 잡은 검은 머리의 청년은 그녀가 다시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어깨를 붙잡았다.
"아, 감사... 합니다."
아루루는 어딘가 낯설지 않은 그 남성의 손길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모습을 보고 문득, 한 인물을 떠올렸다.
"...레오나씨?"
검은 머리, 검은 눈이라는 공통점에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녀에게도 눈앞의 남자에게도 실례일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나, 아루루가 가진 직감이 청년에게 레오나의 모습을 겹쳐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청년 클레온이 신묘한 표정을 지으면 아루루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사죄하는 것이었다.
"죄, 죄송해요! 아는 분이랑 닮아서…."
"아니, 너는 나쁘지 않아 아루루 트로메이아. 들어와, 널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 있으니까."
클레온이 아루루를 부축하여 라일라의 저택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아루루는 당황한 표정이 된다.
"어... 하지만 마음대로 들어가면…."
물론 이곳에 자신을 부르는 무언가를 찾으러 온 것이긴 하지만, 저택의 주인인 라일라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괜찮아. 라일라도 안에 있으니까, 허락은 그녀에게 받으면 돼."
결국, 자신을 안으로 들이려는 그의 손에 붙들린 채 저택의 안으로 들어오는 아루루.
현관에 서서 옆구리에 손을 올린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라일라 플레임워치와 눈을 마주친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라일라양, 저는"
"아 그래그래. 아루루 트로메이아. 나는 기억에 없지만, 이미 만난 사이라고 하더라고, 거기 있는 녀석이."
라일라는 손을 휘적휘적 저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아루루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라일라는 팔짱을 끼며 조금 불만인듯한 표정이 된다.
"정말 이런 녀석이 용사라는거야?"
"그래. 알베인보다 훨씬 훌륭한."
클레온의 대답에 라일라는 잠시 옛날 일이 생각났다는 듯이 열 받은 표정을 짓지만 이내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녀석보다 바보 같은 용사는 없... 하아. 알았어."
"네가 찾고 있는 건 지금 공방으로 옮겨놨어. 마력이 많은 곳에서 재생이 빨라지는 것 같더라고. 따라와."
휘릭, 하고 스커트 자락이 흩날리며 라일라가 등을 돌리면,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아루루와 클레온이 따라갔다.
라일라의 저택의 지하 공방은 여전히 이런 저러한 잡동사니로 가득했지만 정 가운데의 마력이 집중되는 마법진 위에는.
중력을 거스른 채 공중에 떠 있는 투명하면서도 푸른 빛을 띤 유리로 만들어진 검날의 아름다운 검이 떠 있었다.
다만, 그 검은 중간 부분부터 아래가 없어서 딱 보기에도 불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아론다이트."
자신이 어째서 그 성검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그 검이 `성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아루루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이 성검이 자신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성검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열렬히 부르짖고 있었으니까.
클레온이 부축하고 있던 손을 떼어내자 아루루는 어느샌가 자신을 덮치던 두통과 환청에서 벗어난 채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검의 손잡이를 붙잡은 순간, 강렬한 빛이 공방 전체에 퍼져나갔다.
검은 아루루의 손안에서 천천히 형태를 바꾸어 간다.
그 모습은 클레온도 익히 알고 있는 현상이었다.
사라져가는 빛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름다운 하늘색의 머리를 등까지 기르고, 순백색의 드레스를 걸친 귀족 영애와도 같은 여성이었다.
그것이 아론다이트의 또 하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눈에 띌 정도로 순백의 도기와도 같은 피부를 가진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면, 그녀의 손을 잡은 아루루와 눈을 마주친다.
"아루루... 드디어 당신과 다시 만났군요.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투명한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루루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기억과의 괴리에 어색함과 당황함을 가진 듯한 표정으로 눈앞의 성검의 화신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마검사 클레온. 당신 덕분에 저는 아루루와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나도 네 덕분에 검은 교전의 위치를 알 수 있었으니까."
아론다이트의 감사인사에 클레온이 적당히 대답하고 나면 라일라가 옆으로 끼어들듯이 이야기가 들어온다.
"미안하지만, 그다지 여유롭게 있을 시간은 없어. 엔키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우리도 대비를 해 둬야 하니까."
"그녀의 말대로야. 네 힘으로 그녀의 기억을 되돌리는 건 가능한 건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아루루 역시 아론다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성검이라면, 아루루 본인은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본인 역시 용사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문득, 이곳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교사들이 학생들의 피난을 유도하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어지간한 일이 없다면 학생들에게 간섭하지 않는 교사들이 그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무언가 커다란 재앙이 닥치려 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루루. 당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데미우르고스의 인자를 강제적으로 벗겨내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커다란 고통을 동반할 겁니다."
자신의 주인을 걱정하는 듯, 아론다이트가 이야기한다.
그러자, 아루루는 고민하는 기색 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상관없어.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해 줘."
"...당신은 기억을 잃더라도 그 성격만큼은 바뀌지 않은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일라가 클레온의 소매를 붙잡더니 몸을 돌린다.
"우린 나가 있자. 타인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본다고 해서 좋을 거 없지?"
클레온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하 공방을 나서면, 라일라가 몸을 돌려 지하를 향해 방음의 마력 장벽을 펼친다.
"이걸로 남은 건 나 혼자인가."
조용히 장벽의 설치를 마친 라일라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클레온도 알 수 있었다.
기억을 되찾는 것. 클레온의 주변에서 이제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 혼자였다.
그러면서 클레온을 향해 돌아보더니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주저하지 않고 발꿈치를 올려 들어 클레온의 입술을 빼았으려했다.
클레온이 황급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막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뭐 하는 거야."
살짝 당황한 듯이 클레온이 이야기하면, 째려보듯이 눈을 살짝 흘기던 라일라가 얼굴을 떼어낸다.
"혹시라도 너랑 접촉을 하면 나도 기억이 돌아올까 했지."
"그렇게 쉽게 돌아올 기억이라면 진즉에 내가 되찾게 했을 거야……. 몸을 섞는 거로 베아트릭스로부터 받은 데미우르고스의 인자를 넘겨주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읏..."
라일라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클레온에게 안기는 모습을 상상한 것인지, 잠시 얼굴을 붉히지만 이내 고개를 털어내고 이야기한다.
"사샤도, 쿠온도. 이오나도 이니스도. 너와 내가 각별한 사이라고 말하고 있어. 뭐, 얼굴은 나쁘지 않고 실력도 있는 것 같지만. 잘 모르겠단 말이지."
"그런데 어째서 키스 같은 걸 하려 한 거야..."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몸을 돌려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이야기 한다, 손은 여전히 자신의 허리 뒤에 둔 채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그건..."
"그건 바로, 마스터가 파파를 볼 때마다 영문 모를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
다음 순간 클레온의 뒤쪽에서 얼굴을 내밀며 밝은 목소리를 내는 이니스.
그녀는 쿠온의 기억이 돌아온 시점에서 연기를 그만두고 본래의 성격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마스터는 파파에게 이것저것 전부 드러내 져서, 그 뒤에 몇 번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영혼으로 진득하게 이어져 있는 관계. 정신을 개찬 당하더라도 육체와 영혼은 여전히 파파에게 `폴 인 러브`상태라는 거야."
"... ... 그런 거야?"
클레온이 라일라에게 물어보지만, 라일라는 몸을 돌린 상태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돌아보지 않더라도 그 얼굴이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어, 마스터는 태어났을 때부터 새침데기니까 그런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겠지만. 파파와 마스터가 영혼으로 이어져 있듯이, 나도 마스터와 영혼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조용히!"
이니스가 신이 난 듯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라일라에 대해 폭로하려고 하자 라일라가 입을 열어 그녀에게 강제적인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니스의 입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금붕어처럼 뻐끔거릴 뿐 소리가 나지 않았다.
"... 라일라?"
"으~~~~!! 그래 맞아! 그 바보가 말한 대로야! 인정하기 싫지만, 그때 이오나와 함께 있던 너를 봤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했다구! 가슴이 이상하게 뛰질 않나, 몸이 안쪽에서 뜨거워지질 않나...! 하지만 그런 거. 발정기의 짐승 같잖아! 처음 보는 남자에게 달려가서 안기고 싶다니…! 그러니까 애써 무시하려고 했어! 분명 네가 나한테 이상한 마법을 걸었거나, 네가 인큐버스 같은 몽마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쿠온한테 정화마법도 부탁해봤고! 그런데 전혀 나아지질 않는 거야!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뭔지 알아!? 점점 그런 느낌이 싫어지지 않는 거! 멍하니 있으면 네 얼굴이 떠올라서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진 상황이 오히려 기분이 좋다는 거야…!"
"... ..."
속사포같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내뱉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다문 클레온과 이니스.
"그래서 너랑 다시 만났을 때 물어봤지. 나와 네가 연인 관계였냐고. 너는 단박에 부정했지만 말이야! 동료이고, 친구이고, 가족과도 같은 관계에 , 몸은 섞었는데도 연인은 아니래! 그러면 뭔데!? 섹프야!? 가장 열 받는 건 말이야...! 네 그 `너에 대한 건 뭐든지 알고 있다!`라는 눈빛이야…! 기억에 없는데 마음대로 내 마음에 들어오려고 하지 마…! 나, 나는 쿠온이랑, 사샤랑,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사이로 지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나만 빼고 모두, 너에 대한 걸 기억해 내서 너에게 달라붙어 있어. 어째서 나만…. 두 사람이랑은 다르게 기억해내지 못하는 거야..."
"그건... 사샤도 쿠온도 상황이 특수한 것이지, 원래는 기억해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어떤 상황이더라도 소중한 사람에 대한 것을 잊어버린 다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구…!"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라일라의 분함과 슬픔과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모두 내뱉은 후폭풍과도 같은 눈물이었다.
소매로 겨우 눈물을 닦아내고, 라일라는 클레온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조금 충혈되어 붉게 물들어 있는 눈은 여전히 클레온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클레온의 바로 앞에 서서 그를 올려다본다.
"잘 들어 클레온. 나는 기억을 잃기 전의 나를 뛰어넘을 거야. 반드시 기억을 되찾기 전에 당신의 입에서 `사랑한다 라일라!`라는 말이 나오게 해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을 향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이니스가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클레온은 그 박력에 조금 짓눌린 채, 라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쉰다.
"...끝났나요?"
라일라의 방문이 `쾅!`하고 닫히자, 클레온의 뒤쪽에서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을 지켜보던 베아트릭스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미안하군, 이런 모습을 보여서."
"아니에요, 저도 라일라의 마음이 이해가 가니까요……. 선배가 겪었을 `고독`, `소외감`을 지금은 그녀가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녀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이 거짓된 것이라고 현실을 들이댄 것이다.
상황은 반대였지만 그녀가 느낄 심리는 클레온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라일라는"
"강하다구요? 알고 있어요. 라일라는 강한 아이란 걸. 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약한 소녀이기도 해요. 특히, 당신과 관련되면 말이죠. 평소에는 솔직하지 못하니까."
베아트릭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계를 들어본다.
"슬슬 시간이네요…. 이오나씨가 이야기했던 대로, 검은 교전이 다시 움직임을 보이면…."
"...그래."
클레온의 시선은,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는 갈라테아의 방으로 향한다.
그 결계는 안쪽에서 갈라테아가 열어젖히지 않으면 안 되는 종류의 결계였지만 바깥에서 불러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갈라테아."
자신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가족, 그리고 첫 번째 여성.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
그저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기다리며, 스승의 검을 허리에 찬다.
001
뷔토스의 창고에서 경비의 연락을 받은 라일라와 이오나가 검은 교전의 흔적을 살핀 것은 어제의 일.
마력시를 통해 주변을 살피면 강제적으로 공간을 찢고 그곳을 통과한 흔적이 확실히 남아있었다.
다만, 그 마력이 향한 곳이 같은 차원 내의 어딘가가 아니라, 이차원의 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 커다란 골렘이 통째로..."
신성학과의 수석은 조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엔키두가 전시되어 있던 곳을 둘러보았다.
물리적인 흔적은 정말로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추적할 수 없어."
라일라가 엄지를 깨물어 스스로 상처를 내면, 그것을 자신의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 있는 붉은색의 마석에 부착시킨다.
농후한 마력을 머금은 마석은 끊임없이 마력의 잔향을 찾아내며 주인에게 찾아야 할 대상이 있는 곳을 알리지만 그 방향은 변함없이 찢어진 공간 너머였다.
"... 엔키두는 자체적인 기능으로 이차원의 틈을 통과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엔키두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카데미에서도 전부 파악을 못 하고 있다고. 역시 아루루 당신, 누군가에게 무언가 듣고 온 거지?"
라일라의 의심하는 듯한 시선에 이오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결국에는 `이 이상 감추고 있을 필요는 없겠군요`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아카데미로 출발하기 전, 제게 이런저런 일에 대해 귀띔을 해준 분이 있습니다. 대현자, 소피아입니다."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뜨는 라일라.
백치의 대현자 소피아.
마법학계에서는 이단아라고 불리지만, 그녀의 실력과 지식이 없었더라면 용사 레시아는 제국을 쓰러트리는 싸움을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받는 최강의 마법사이자, 최고의 학자.
하지만 왕국에 귀화한 탈체크나, 성자의 가호 교단으로 간 용사 파티의 성직자와는 다르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나그네처럼 행적을 알리지 않고 떠돌아다니고 있으므로.
그녀가 나타났다고 하면, 늘 큰 화제가 되어 수많은 마법사가 그녀에게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오나는 그 고릴라 탈체크의 딸이었지. 인연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나."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확인하고 절 보려고 오셨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도저히 그럴만한 분으로는 보이지 않으시더군요."
이오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떠올리듯 턱에 검지를 올린 채 소피아와 나눈 이야기를 라일라에게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제가 아카데미로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클레온에 대해서도요. 그에게는 가까운 시일 내에 최대한 많은 힘과 지식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말이죠. 그때 저에게 해준 이야기가 `데미우르고스`와 `엔키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둘이 연관이 있다는 거야?"
라일라의 질문에 이오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엔키두`라는 것은 본래, 고대의 인간들이 이차원의 틈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힘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탐사용 갑주입니다. 이차원의 힘을 받아도 변형하지 않도록 그 당시의 기술을 모두 사용해서 만들어졌죠. 조사는 순조로운 듯 했습니다. 당시에도 희귀했던 이차원의 틈 너머의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리스크를 동반하는 힘의 탐닉은 언제나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엔키두는 이차원의 틈 속의 더욱 깊은 곳까지 나아가다가 결국 또 다른 차원에 닿았습니다. 엔키두를 매개체로 그 차원과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연결된 것이죠."
"또 다른 차원...?"
"네. 유황과 불, 그리고 흑마력의 세계인 악마들의 땅. 신학적인 면에서 보자면 `지옥`이라 불리는 차원입니다."
이오나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신성학과의 수석.
그도 그렇겠지, 이런 곳에서 자신들의 주적인 악마의 고향이 어떻게 그들이 사는 세계와 연결되었는지를 알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엔키두를 발견한 지옥의 다섯 군주는 그대로 우리들의 세계로 침략해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차원의 틈에서 넘어온 `신`이라 칭하며 인간들을 자신들의 에너지원으로 사육하고 지배하기 시작했죠. 그것이"
"데미우르고스... 다섯 대악마... 그럼, 엔키두의 조종사가 그들을 불러들여 온 장본인이란 거야?"
라일라의 질문에 이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중부터 엔키두는 인간의 지시를 무시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피아씨와 제 예상으로는 아무리 고대인의 기술력이라지만 이차원의 틈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엔키두 역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대체 이차원의 틈이란 건…. 그리고, 대현자는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은 거야?"
"그 질문은 저도 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라일라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이것으로 엔키두의 정체와 데미우르고스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지만, 이것이 어떻게 사태의 해결과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거야?"
"엔키두는 원래 `갑옷`입니다. 그렇기에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불완전`한 상태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안에 인간을 집어 넣어 완전한 상태가 되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이차원의 틈을 걷기 위해만들어진 모든 기능을 말이죠. 그 골렘이 어떻게 변화한다 하더라도. 악의에 의해 움직이는 완전해진 엔키두는 이 세계에 있어서 재앙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겁니다."
"대체 어떻게 되길래..."
신성학과의 의문에 대답하듯 이오나는 이야기한다.
"엔키두가 기동을 멈추기 전, 데미우르고스와 함께 인간계에 돌아왔을 때 그 형상은 악마와도 같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의 의미를 담아 그 형체를 `훔바바`라고 불렀죠."
라일라 역시 `훔바바`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여러 역사의 기록에서도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마수이며, 그 힘은 나라 하나를 가볍게 멸망시킬 정도였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그 정체가 엔키두라는 사실, 그리고 엔키두가 지금 다시 한 번 훔바바로 변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에 라일라의 머리가 아파왔다.
"...훔바바 전설에 의하면, 괴물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검을 가진 검사에 의해 퇴치되었다고 들었어."
"소피아씨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검이라고 한다면 제가 알기로는 하나뿐입니다. 트로메이아 가문이 가지고 있는 성검, `아론다이트`."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검.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부러지더라도 힘을 더하며 계속해서 재생하는 검이다.
결과적으로는 손잡이가 남더라도 되살아나니, 일반적인 부러지지 않는 검과는 이미지가 다르더라도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다는 조건에는 부합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로메이아 가문에는 지금 용사가 없습니다."
신성학과의 수석은 이야기한다.
선대 트로메이아의 용사는 이미 용사의 자리를 은퇴하여 성검의 힘을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늙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오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성검의 주인은 건재하다는 것을.
다만 그녀 본인과 주변의 인물들이 잊고 있을 뿐.
"...그들을 따라 차원의 틈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럴 바에는, 엔키두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준비를 마쳐야 해요."
이오나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제안에 따라 아론다이트를 재생시키고 그 성검의 주인을 불러들이도록 한 것이었다.
002
아루루가 지하 공방에 들어간 지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이오나가 예견한 시간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고, 저택의 지붕에서 아카데미의 시가지를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던 클레온은 멀리 보이는 아이온의 탑의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울리는 종은 13번.
정확히 정오로부터 한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 순간.
불길하게 여겨질 정도로 구름 한 점 없던 푸른 하늘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더니, 그 사이에서 유리창과 같이 무언가가 공간을 찢고 튀어나왔다.
그것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찾아온 재앙이었다.
쩌저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날카로운 발톱은 그대로 자신이 몸을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차원의 틈을 잡아 찢어 열었다.
나타난 것은, 불길한 새의 머리를 하고, 박쥐와 같은 날개를 가지고, 날카로운 발톱과 손톱을 지닌 채, 뱀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악마의 형상이었다.
이전에 상대한 절계수만큼은 아니더라도 인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크기.
이차원의 마력을 전신에 두른 채, 농도 높은 마력이 진흙같이 흐르는 몸을 가진 채.
공중에서 마치, 산도를 통과하여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그것이 떨어진 곳은 아카데미의 시가지.
다행스럽게도 이미 학생들의 피난이 끝난 지역이었고, 훔바바의 착지와 동시에 그 근처에서 대기 하고 있던 인원들이 조금이라도 마수를 틀어막기 위해 두꺼운 결계를 펼친다.
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리라.
클레온이 검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라일라가 내려온다.
"결국, 와버렸네, 가자. 아루루가 준비될 때까지 우리가 시간을 끌어야 해."
"그래."
훔바바를 쓰러트리고, 레일이 가지고 있는 데미우르고스의 인자를 되찾는다.
그것으로 일련의 사태가 해결되고 아카데미에도 진정으로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올 것이다.
클레온으로서도 길었던 싸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타도해야 할 적을 노려본다.
그 악마이자 마수이자, 고대인이 현대애 남긴 원한의 메아리. 그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훔바바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향한 증오를 담은 포효를 내뿜으며.
그것만으로도 결계 안의 땅을 가르고, 불꽃이 치솟아 오르게 하였다.
그야말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고대의 마수 그 자체였다.
한 발짝 내디딘 순간, 곧바로 사지로 몸을 옮기는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