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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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원으로부터 찾아온 마수, 훔바바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의 씨앗이었다.
고대의 전쟁과 황금의 혜성의 강림으로 원초세계가 멸망하여 한 번 인류가 사라졌었지만, 별의 의지로 새로운 인류가 창조되어 두 번째 세계인 계승세계가 시작되었다.
계승세계의 인류 역시, 원초세계의 인류와 비슷한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새로운 별의 지배자로서 종을 번창시켰다.
다만, 계승세계와 원초세계의 다른 점이 있다면, 계승세계의 시점에서의 고대인들 즉, 원초세계의 인간들이 남긴 유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유물들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고대의 계승세계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왕국이 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당시의 인류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원초세계의 유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내, 거대한 유적 내부에 존재하는 원초세계의 연구소를 발견해냈다.
자신들의 건축기술로는 유적과 연구소를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인류였지만, 연구소 내부에는 원초세계의 인류가 남겨놓은 인공령이 존재했다.
인공령은 새로운 인류를 환영하며, 그들에게 원초세계의 지식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성검과 마검의 주조방법, 정령의 소환법, 오토마타의 제작법 등등….
왕은 자신들에게 지식을 베푸는 인공령을, 나라의 다른 어떤 신하들보다도 신임하기 시작했다.
인공령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왕국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며, 이상향을 이룩한 왕을 찬양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왕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바로, 별의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이미 황금기를 맞이한 자신의 왕국이 이대로 자원을 소모해 나가면 결국 자신들에게도 멸망이 찾아올 것이라는 점이었다.
인간을 풍요롭게 만든 원초세계의 기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별의 수명의 단축을 가속하고 있다는 것도 백성들에게는 알리지 못하는 비밀 중 하나였다.
왕은 인공령에게 가르침을 바랐다. 별의 자원이 고갈되더라도 인간의 세계가 계속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공령은 대답했다.
[이 세계를 포함하여, 세상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사이를 지나는 통로와도 같은 차원이 존재한다. 그 차원의 틈을 열어 다른 세계로부터 자원을 끌어오면 당신의 왕국과 이 세계는 영원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은 그들로부터 차원의 틈을 여는 방법을 배우고, 그 사이를 지날 수 있는 탐사용의 갑주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인공령이 요구한 재료는 하나같이 제조법이 기괴하고, 인간을 재료로 사용하는 것도 있을 정도로 모독적인 물건이었지만.
왕은 인공령을 의심하지 않고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명에 사로잡혀 검은 갑주를 주조했다.
그것이 바로, 완성형 이차원 탐사 전용 소체 [엔키두].
이차원의 틈에 축적된 오염된 마력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부와 바깥을 완전히 단절하는 하나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도록 수많은 혼을 집어삼킨 `소울이터 메탈`로 만들어진 외갑.
어떠한 가혹한 환경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적응할 수 있는 자가 수복 및 진화 능력.
성검과 마검을 참조하여, 탑승자와 감응하여 능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맞추어진 보조용 자율인격.
그리고 몸 전체를 변형하여 행하는 육탄전부터 원거리 전투까지 틈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탑재된 병기들.
남은 것은 이것을 이용하여 이차원의 틈으로 직접 발을 들여, 다른 차원을 발견한 뒤 세계의 연결을 이뤄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천만한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엔키두가 완성된 날 왕은 자신의 딸에게 왕위를 계승한 뒤 엔키두를 타고 이차원의 틈으로 사라졌다.
왕국에서 가장 강한 전사이기도 했던 왕이 세계를 위한 원정을 떠나 밝은 미래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고 왕국의 신하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허나, 그들에게는 가혹한 일이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존재할 리 없었다.
엔키두와 왕이 차원의 틈으로 들어가, 통로가 닫히자마자.
엔키두의 내부에 숨어들어 가 있던 인공령은 엔키두의 보조 인격을 집어삼키고 자신의 의지대로 엔키두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은 소울이터 메탈로 인해 만들어진 폐쇄된 세계의 내부에서, 엔키두를 움직이기 위한 인간 배터리로서 생명력과 마력을 계속해서 흡수당하며 서서히 말라 비틀어져 가며 죽어갈 뿐이었다.
처음부터 인공령의 목적은 자신들의 세계를 대체한 인류들의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이들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찾아내서 계승세계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인공령조차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원초세계의 멸망에서 육체는 스러졌지만, 정신만을 유지한 채 수많은 시간을 견뎌온 고대인이었으니까.
훗날, 검은 교전이라고 불리던 그는 이차원의 틈을 방랑하며, 그 역시 그곳의 오염된 마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계승세계의 인간들을 향한 방향성 빗나간 증오심과 별에 대한 원한만을 원동력 삼아 그것을 버텨냈다.
십수년이라는 세월을 견디며, 결국 그는 찾아냈다.
불과 유황. 힘과 폭력. 검은 마력과 악마의 세계.
인간들이 가진 헛된 망상과도 같은 신앙에서 따와, 그는 이차원에 `지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엔키두가 지옥을 관측한 순간, 지옥 역시 엔키두를 관측했다.
지옥의 다섯 군주가 엔키두에게 다가와 그 안에 있는 영혼이 가진 악의를 알아챘다.
마땅히 자신의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검고, 타락한 영혼이었다.
이미 왕은 그 안에서 미라 처럼 변해 말라 비틀어져 있었고, 지옥에 닿은 순간 목숨이 다해 안에서 먼지처럼 으스러져 사라졌다.
그 왕의 도망칠 수 없는 영혼을 불태워 에너지로 삼아, 엔키두는 자신의 몸을 지옥에 적응시키고 변화했다.
그것은 마치 `악마를 몸에 강림시키는 의식`과도 같았다.
검은 마력이 갑주를 휘감으면, 진흙과도 같은 표면으로 이루어진 검은 짐승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엔키두`였던 것은 동지가 된 악마들을 이끌고, 왕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섯의 거대한 악마.
사타나엘, 사마엘, 얄다바오트, 야훼, 샤클라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서는 최악 최고(古)의 대 마수.
훔바바가 차원의 틈을 열어젖히고 나타나, 세상을 지옥으로 바꾸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배웠던 거의 모든 지식을 잃어버릴 만큼 거대한 파멸을 맞이했다.
이상향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죽었고, 대부분이 악마의 노예가 되었다.
훔바바 검은 교전은 기뻐했다.
비록 별의 목숨이 다할 지더라도 거짓된 인간들이 사라진다면 자신의 목적은 완수한 것이리라.
남은 것은 이들에게 다가오는 멸망을 바라보는 것일 뿐.
하지만 별의 의지는 이전의 실패에서 이미 커다란 깨우침을 얻은 상태였다.
바깥에서 불러온 대적자, 황금의 혜성은 너무나도 큰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패했지만.
이미, 이 땅에는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인간들이 힘을 기르고 있었다.
성검의 용사들은 악마의 대적자로서 시련을 뛰어넘어, 힘을 가지고 별의 의지를 실천하여 악마를 봉인했다.
훔바바는 마지막에 쓰러졌으며, 마수에게서 검은 교전의 영혼을 뜯어낸 것은.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이차원의 틈으로 보낸 뒤 훌륭히 나라를 이끌었지만, 고대의 악의의 메아리에 의해 모든 것을 잃었던 소녀.
하지만 악마들의 지배에서도 살아남아 인간을 이끌던 왕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검을 손에 쥔 채 마수의 목을 친 그녀는 별의 의지로 선택된 `악마`의 대적자 중에서도 정점에 서는 존재였다.
왕녀는 모든 악마를 원래의 차원으로 추방한 뒤 마수에 깃들어있던 고대인의 영혼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강한 집념을 가진 영혼의 소멸에는 또 많은 희생이 필요했기에 그를 고대인의 무덤에 봉인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소울이터 메탈과 비슷하게, 영혼을 붙들어 둘 힘을 가진 석판을 만들어, 고대인의 영혼을 셋으로 나누어 각각 봉인했다.
세계는 악마가 지배하기 이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기술이 소실되었고 당연히 여기던 것들을 재현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인류는 원초세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
제대로 살아남아, 미래로 이어가는 길을 밟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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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UWAAAAAAOOOOO!!!!]
포효하는 짐승의 울부짖음이 자신을 가둔 결계의 안에서 울려 퍼졌다.
이차원의 틈에서 레일이라는 인간 배터리를 이용해 다시 한 번 완전해진 훔바바는 분노의 포효를 올렸다.
자신과 악마들만으로는 이전의 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그러므로 원초세계를 멸망시켰던 황금의 혜성을 다시 한 번 불러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안배한 모든 것들이 또다시 별의 의지가 준비한 대적자들에 의해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어째서냐, 별의 의지!! 세계의 조율자여! 어째서 너는 우리들의 세계는 쉽게 멸망으로 인도했으면서, 이 세계는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는 것이냐!!!]
피와도 같은 붉은 진흙이 눈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짐승의 모습에, 주변에 결계를 펼치고 있던 술자들은 몸의 안쪽에서 솟아오르는 공포와 함께 정신의 집중이 흔들린다.
"큭...!"
마법사들이 몸을 휘청거리자, 결계 역시 그 두꺼움이 서서히 사라져 간다.
증오의 포효와 함께 뿜어져 나온 엄청난 농도의 마력이 그들의 몸은 물론이고 정신마저 짓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대에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마수가 다시 한 번 이 세계에 강림했다는 사실 자체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훔바바가 발걸음을 내딛자, 그곳은 곧바로 어둠에 잠식되어 버리며, 유황불이 땅바닥에서 솟아오른다.
그 존재 자체가 주변의 세계를 침식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무, 무리야... 이런 괴물, 쓰러트릴 수 있을 리 없어."
그 모습을 보고 완전히 의지가 꺾인 마법사가 지팡이를 놓으려 한다.
이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13명의 술자중 단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결계는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그렇게 돼서는 안됐다.
지팡이를 놓으려는 손과 뒤에서 술사의 어깨를 신성학과의 수석이 붙잡아 마력을 불어넣는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신성마법의 일종이었지만, 마법사가 잃었던 평정심을 되찾는 데에는 충분했다.
"악마는 당신들의 마음을 먼저 꺾으려 할 겁니다. 견뎌야 합니다. 그들이, 악마를 막아낼 때까지."
수석은 그렇게 말하며, 결계 안에서 펼쳐진 차원의 문을 통과하여 나타난 네 명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의 마법사. 녹색 머리의 성직자. 주황색 머리의 사냥꾼.
그리고 한 손에 붉은 검을, 다른 손에 흰색의 성검을 든 검은 머리의 마검사.
클레온과 그 일행이었다.
"그, 그러고 보니. 네 명이 이렇게 한 자리에서 같이 싸우는 건 처음이 아닌가요?"
사샤가 활을 쥔 채 이야기 하자 쿠온도 클레온도 `그러고 보니...`라고 대답한다.
[다섯입니다]
이오나는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이 이야기 하고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가증스러운 계승세계의 대적자... 별의 의지의 꼭두각시들...!]
겁도 없이 자신의 앞에서 결계를 너머와 모습을 드러낸 이들을 본 훔바바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다음 순간, 그 몸의 진흙이 마치 채찍처럼 뻗어져 오며 그들을 붙잡으려고 달려 들어왔다.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뱀과 같이 허공에서 비틀리며 수십, 수백으로 갈라져 쏟아져 왔다.
곧바로 네 사람은 서 있던 자리에서 흩어지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진흙의 촉수를 쳐내기 시작한다.
마력의 화살이 촉수와 부딪히고, 신성 마력이 폭발하면 쿠온을 노리던 진흙은 그 자리에서 터져나간다.
화염의 벽이 라일라를 보호하고, 클레온이 검을 휘두르면 수많은 줄기가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결계를 뚫지 못하고 있는 걸 봐서, 힘이 완전한 건 아니야. 역시 핵인 생체 배터리를 끄집어내서 이 형태를 무너트릴 필요가 있어."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며, 화염의 벽에서 비행마법을 사용하여 튀어나와 거대한 화염구를 만들어 촉수를 만들어내는 다리 부분을 향해 작렬시킨다.
그러자 큰 폭발이 일어나더니 다리 부분의 진흙이 증발하여 잠시 그 부분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지만.
진흙은 금세 재생하여 몸의 균형을 잃기 전에 복구하고 마는 것이었다.
"치잇, 이런 재생 괴인 타입의 마물이 제일 성가시단 말이지…."
라일라가 혀를 차며 더욱 고도를 높여 위력이 더 높은 마법을 사용한다.
"프로메테우스 게이트!"
허공에 나타난 붉은 색의 마법진이 수많은 화염의 창을 내뿜어 훔바바를 갈기갈기 찢으려 한다.
하지만 불길한 새의 형상을 한 머리가 라일라를 향하며, 그 주둥아리를 벌린다.
화염의 창이 주둥아리 안으로도 들어가지만 마치 그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한 그 모습.
그리고 라일라는 전신을 엄습하는 섬뜩한 느낌에 재빨리 고도를 낮추어 그 눈과 입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비키면.
입안에 압축된, 엄청난 양의 마력의 덩어리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포효와 함께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마력의 주포를 발사했다.
그것은 엄청난 질량을 이용해 마법진을 통째로 찢어버리며 마법을 지워버리는 것은 물론, 순간적이지만 그를 가두고 있던 결계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뭐, 뭐야 방금 그거. 브레스? 이 녀석, 용종도 아닌데"
라일라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고, 바깥에 있던 모든 이들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숨을 삼킨다.
만약, 저것이 방금과 같이 하늘을 향해서가 아니라 지금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술사들이 있는 방향을 향한다면
아니, 그보다도 사람들이 피난해 있는 곳을 향한다면
누구도 어렵지 않게 최악의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라일라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하고 흐른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고도가 낮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하면, 이 싸움은 위치 선정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리게 된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하하..."
건조한 웃음이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이전에도 이런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낀 채 싸운 적이 있었을까.
짓눌릴 것만 같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사샤나 쿠온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
사샤는 마력의 화살을 이용하여 쿠온을 노리는 수많은 공격을 쳐내기 위해 각인을 최대한 활성화 시키고 있었고.
쿠온은 사샤의 도움 아래에서 계속해서 주변을 정화하여 다른 이들이 이차원의 틈의 마력에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함과 동시에, 보조마법으로 클레온에게 힘을 보태고 있었다.
클레온은 쿠온의 도움을 받아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마력의 흐름이 약한 부분을 찾아내 성검을 휘둘러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훔바바에게 틈을 만들어내려 한다.
쿠온과 사샤의 눈에서는 라일라 자신과 같은 중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가 아무리 거대하고 강력하고, 공포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이더라도.
두 사람에게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믿을 수 있는 아군이 붙어있기 때문이었다.
"... ..."
라일라는 그들의 마음의 버팀목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기억이 애매한 절계수와의 싸움에서 자신이 망설임 없이 용언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순간, 클레온은 상공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 반응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라일라가 자신의 주변 여덟 방향에 마법진을 펼친 채 무언가를 영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용언마법과는 다르다, 그것은 루티의 비늘이라는 촉매가 있어야만 사용 가능한 한정적인 마법이다.
그 마력 반응을 느낀 것은 비단 클레온뿐만이 아니었는지, 훔바바 역시 고개를 들어 라일라의 쪽을 바라본다.
다시 한 번 주둥아리가 벌려지면 그 입에 모여든 마력이 형태를 갖추어 브레스로 화하려 하지만.
이번의 라일라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마법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클레온!"
쿠온의 외침에 클레온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해 올라가며 마수의 턱을 아래서 위로 올려 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도의 수정은 충분하지 않아서 라일라는 여전히 브레스의 범위 내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들의 존재증명. 화염의 비술을 간직한 이들의 눈. 우리들은 감시자. 우리들은 파괴의 화염. 우리들은 재생의 불씨."
"라일라! 피해!"
클레인의 외침이 무심하게, 검은 마력의 분사가 그대로 라일라의 몸을 덮쳤다.
모두의 눈이 크게 띄어질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는 그대로 훔바바의 브레스의 안으로 사라졌으니까.
그녀가 들고 있던 지팡이만이 땅으로 떨어졌다.
클레온을 비롯한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그 상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수의 입꼬리는 올라가며, 비릿한 웃음을 지은 채 이야기한다.
[먼저 하나로군…. 저급한 마법으로 나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던 계집….]
"멋대로 죽이지 말아줄래?"
다음 순간, 허공에 다시 한 번 라일라의 목소리가 울렸다.
화륵, 하고 불이 붙는 소리와 함께 마치 화염 마법이 발동했을 때 처럼 붉은 화염이 저절로 피어올라 그 크기를 크게 만들었다.
"마도, 플레임워치."
이윽고. 그 화염은 인간의 형태로 변하고.
그곳에는 전신을 화염으로 바꾼 채 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마법사`가 문자 그대로 불타는 눈으로 훔바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일라...인건가?"
"그럼 누구겠어."
클레온의 중얼거림에 라일라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어 보인다.
"...처음 보는 마법인데."
"그야 그렇겠지. 원래는 멋대로 쓰면 안 되는 마법이지만…. 널 믿으니까 쓴 거야."
라일라는 클레온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손을 휘두른다.
그러자 무영창의 상태에서 그녀가 평소에 사용하던 마법보다도 수 배 강력한 화염이 일어나며 훔바바의 표면을 불태웠다.
[GRUAAAAAAA!]
"전력전개로 널 불태울 거야. 내 나약함과 함께 말이야."
라일라는 차가운 목소리로 추악한 마수를 내려다본다.
그 모습은 `화염의 화신`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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