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실행(?行)
* * *
000
검게 불타는 하늘 아래, 펼쳐진 결계 안에서는 훔바바를 막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베아트릭스의 도움으로 인해 쿠온에게도 여유가 생긴 덕분에, 그녀가 쏘아낸 강력한 신성 마법이 훔바바의 진흙을 걷어내면,
클레온이 검을 휘둘러서 벌려진 틈 사이로 팔을 뻗어 레일을 붙잡으려 한 순간.
깨져나간 엔키두의 갑옷에서 음산한 `사기(死?)`가 퍼져나간다.
[멍청한 녀석...! 소울이터 메탈은 대량의 영혼을 흡수하여 제련된 금속이다…! 파괴하면 그 안에 들어있던 원혼들이 해방되게 되어있지…!]
"가지가지 하는군…!"
수십, 수백의 뭉쳐진 영혼들이 해방되며, 그 충격으로 인해 클레온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얀 안개 같은 영혼들은 훔바바의 진흙을 한번 통과하더니, 실체를 가지지 않는 그 몸을 이용하여 결계 바깥으로 빠져나가.
훔바바의 진흙을 육체 삼아 걸어 다니는 언데드 군세로 변화하는 것이었다.
그 형태는 마치 불에 타거나 산에 녹아내린 듯한 흉측한 인간의 모습으로, 수천 년을 엔키두의 안에 갇혀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그저 고대인의 악의에 노출되어온 망령들의 영혼 그 자체를 현현한 듯했다.
결계의 바깥에서는 갑작스러운 적의 등장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언데드라면 성직자들의 차례입니다! 모두! 신성마력을 아끼지 마세요!"
하지만 술자들을 보조하고 있던 신성학과의 수석이 외치자,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성직자들의 신성 마법이 발현된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 언데드들은 일반적인 언데드와는 달랐다.
"흐, 흑마력영역!? 이 언데드들이 발생시키고 있는건가!?"
지옥에서 담금질 된 엔키두에 오랫동안 들러붙어 있던 영혼들은 지옥의 악마의 마력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흑마력을 발산시켜 신성마력의 위력을 감소시킨다.
"큭...! 몸을 던져서라도 결계술사들을 지켜야 합니다!"
신성학과의 수석이 빠른 판단하에 그렇게 외치자, 성직자들은 다리를 떨면서도 그 자리에 바로 선다.
진군하는 죽음의 군세가 결계술사들 앞에 서 있는 성직자들을 향해 그 흉측한 몸을 휘두르려 하는 순간.
옆쪽에서 누군가가 날아들어, 강력한 위력을 지닌 발차기로 언데드를 그 자리에서 박살 내 버린다.
양손의 건틀릿에 박혀있는 오브에는 음의 마력과 양의 마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클레온은 그 발차기의 주인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데미스!"
성학과의 차석, 데미스.
"오랜만입니다. 강사님. 도우러 왔습니다."
데미스의 뒤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성학과의 학생들이 저마다 전투태세를 취한 채 언데드들을 가로막고 서 그들에게 자신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기억을... 되찾은건가?"
"네, 누님 덕분이죠."
데미스의 누나 즉, 본래 성학과의 수석이자 몇 안 되는 기억을 잃지 않은 인물.
그날 이후로는 계속해서 바깥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하는 듯했는데 설마
"성학과 학생 전원과 한 번씩 몸을 섞어, 우리 전원에게 인자를 옮겼습니다."
"여, 역시 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
즉, 최근에 일어나고 있던 습격사건의 범인은 리오메스였던 것이다.
성학과의 학생들은 인자를 옮겨 받고 난 뒤에도 우선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고.
"강사님! 저희가 도와드렸으니까 끝나면 한 번 해줘야 해요!"
"이번에야말로 저희 자매의 가슴으로 봉사해드릴 테니까요!"
"파이루! 루즈리! 제발 집중해!"
어수선하게 싸우면서도 생명력과 마력의 제어를 통한 기술을 이용하여 언데드들을 확실하게 제거해 나가는 학생들.
클레온은 리오메스에게 일말의 존경심까지 느끼며 탄성을 내뱉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훔바바를 돌아보았다.
괴물의 얼굴은 짜증과 혐오로 가득 차 자신을 방해하는 인간들을 가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언데드 무리들의 문제도 해결이다...! 남은건 네가 담아둔 영혼이 바닥날 때까지 이걸 반복해서, 안에 있는 레일을 끄집어내면 돼!"
[그렇게 둘까 보냐!!]
클레온의 외침과 동시에 곧바로 돌진하면, 핵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벌려진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진흙이 그곳을 뒤덮는다.
"소용없어!"
하지만 이미 상처는 남겨두었다 쿠온의 신성 마법이 없더라도 이오나가 머금은 신성마력을 때러 넣으면 진흙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흩날리며.
다시 한 번 엔키두의 몸통에 이번에도 거대한 자상이 그어진다.
`카가가각!!`
칼날이 강철의 위를 지나가면 불꽃이 튀면서 그곳에 쌓여있던 망령들이 또다시 풀려난다.
흩뿌려진 진흙은 허공에서 가시와도 같은 형태로 바뀌며 클레온의 몸을 꿰뚫기 위한 창으로 변해 쇄도한다.
""플레임 버스트!!""
클레온과 라일라의 목소리가 겹쳐지면.
클레온의 몸을 중심으로 강력한 화염의 폭발이 겹쳐 일어나며 영혼 해방의 충격파를 상쇄시키고 아까같이 뒤로 물러나는 일 없이 클레온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어느샌가 라일라는 클레온의 몸 가까이로 다가와 그에게 팔을 겹친 채 화염의 마력을 발산하며 클레온을 노리고 달려드는 진흙들을 모두 공중에서 증발시켜 클레온을 보호한다.
"자! 빨리 그 미이라를 꺼내!"
"그래!"
클레온이 양손의 검을 빠르게 휘두른다.
얼핏 보면 규칙성 없는 난도질처럼 보이지만, 이오나의 능력으로 인해 탈체크의 검술이 완전하게 재현 가능한 클레온에게 있어서.
한 번 한 번의 검격이 그의 스승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단련의 성과와도 같은 필살의 일격이었다.
거듭하여 22번.
그때 마다 엔키두의 몸체에 금이 가면서, 영혼이 해방되어 나오지만.
마치 수호 정령과도 같이 클레온의 몸에 붙어있는 라일라가 계속해서 화염을 터뜨리며 그 충격파를 상쇄시켰다.
육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클레온만을 이 화염에서 제외하는 정도의 마력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순수한 정렬의 화염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빛나며 클레온과 손을 겹친다.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클레온이 들고 있던 붉은 검의 위로 화염이 달린다.
순식간에 뜨겁게 달구어진 붉게 녹슨 검은 스스로 붉어질 때까지 머금었던 피를 연료 삼아 라일라의 화염을 푸르게 바꾼다.
그 푸른 화염이 신호였다, 완전하게 이어진 두 사람의 의지가 영혼의 단계에서 마력의 통로를 열어젖힌다.
클레온과 라일라의 시야가 겹쳐진다. 노리는 곳은, 연격에 의해 약해진 엔키두의 가장 두꺼운 장갑 부분.
"클레온! 타이밍을 맞춰!"
라일라의 목소리에 클레온의 호흡이 순간 정지되며 시간이 느리게 가는 감각 속에서 라일라로부터 뻗어나온 화염의 마력이 엔키두에 도달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파득...!
하는 무언가가 으깨지는 듯한 소리에 겹쳐지듯, 푸른 화염을 머금은 붉은 검이 휘둘러졌다.
마력과 물리적인 충격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부딪힌 다음 순간.
공간이 비틀리는 듯한 일그러짐과 함께 푸른 불꽃과 붉은 불꽃이 동시에 폭발하며 소용돌이친다.
두껍게 남아있던 엔키두의 장갑은 그것으로 완전히 박살 나 버리고 만다.
엄청난 힘의 여파로 클레온도 라일라도 어안이 벙벙해져, 방금 것을 자신들이 했다는 사실을 잠시 파악하지 못하다가도.
눈앞에 레일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면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손을 뻗어 몸에 휘감겨 있는 와이어를 찢어내고, 한쪽 팔이 없는 그를 엔키두에서 끄집어내려고 한다.
"아~ 아~ 여기까지 도와줬는데. 투자할 대상을 잘못 골랐나 봐."
다음 순간, 허공에서 창을 휘두르며 클레온을 향해 떨어지는 붉은 머리의 악마. 이슈탈.
혀를 살짝 내밀며, 입술을 핥아내면 그 눈은 똑바로 자신의 먹잇감인 클레온의 심장을 노리고 수직 낙하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등장, 그런 클레온은 엔키두의 동체에 반쯤 몸을 걸치고 있어서 공격을 피할 수 상태가 아니었다.
클레온 역시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지만 이미 코앞까지 창이 도달한 상황.
하지만.
"꺼져...! 두 번이나 당할 줄 알아...!?"
클레온의 몸에서 일어난 불꽃이 커다랗게 타오르며 떨어지던 악마를 그대로 삼켜버린다.
"뭐, 야!? 꺄악...!"
악마는 라일라의 반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비명을 내지르며 마력으로 화해 사라진다.
방금 것 역시 환영인 듯했다.
어딘가에서 이 싸움을 지켜보면서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겠지.
클레온은 눈을 크게 뜨면서 라일라를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이 말할 타이밍인가...?"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눈을 두 세 번 깜박거린다.
"하, 하아? 무슨 큭... 뒤는 내가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빨리해야 할 거나 해."
괜한 소리를 클레온에게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등에 자신의 등을 마주 댄다.
분명 화염으로 이루어진 몸인데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따스한 고동이 직접 전해져 온다.
클레온은 손을 뻗어 다시 레일을 묶고 있던 와이어를 완전히 풀어낸 뒤, 그의 몸을 잡아당긴다.
[GRYYYYWAAAAAAA!]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는 훔바바, 핵으로 삼고 있던 인간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급속도로 그 몸을 이루고 있던 진흙의 형체가 무너져간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네놈들의 세계 따위 가짜다! 기만이다! 우리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거짓된 세계다! 그런 가짜 인간인 너희가 어째서!!]
"네 모습을 봐라. 어디가 인간이라는 거냐."
클레온은 레일을 어깨에 들쳐 맨 채로 훔바바에게서 떨어져 나가며 이미 비틀려 버려 인간성을 잃어버린 적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자신의 세계를 되돌리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희생시키려 하는 것을 가만히 둘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고대인이 자신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아직 클레온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대로는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망친 네 녀석 만이라도…!]
훔바바는 아직 남아있는 진흙을 모두 끌어모으더니, 거대한 머리의 형태를 취하며 그대로 클레온을 삼키려 든다.
클레온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러 라일라의 불꽃과 함께 그것을 쳐내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움직인 것은 거의 미이라에 가까운 상태로 말라 비틀어진 레일의 손이었다.
그가 기절한 줄 알고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갑작스럽게 그가 움직이자, 라일라도 클레온도 당황하고 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손을 향해서 훔바바의 진흙에 붙어있던 무언가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클레온! 그 녀석, 손에!"
"소울 캡쳐...! 아직 가지고 있었나…!"
클레온이 재빠르게 레일의 손을 베어내려고 하지만 타이밍이 어긋난다, 레일은 오히려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클레온의 공격을 피해내더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쿨럭거리면서 기침을 하자, 입에서 자신이 흡수한 피와 섞인 진흙을 내뱉는 그 모습은 이미 인간을 벗어나 있었다.
말라 비틀어있던 몸도 어느 정도 돌아와 있었으며, 그 몸 곳곳에서 진흙이 부풀어 올랐다가 터져나간다.
"크...으..."
레일은 침음을 흘리며 눈을 부릅뜨고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에서 서서히 소멸해가는 진흙 훔바바의 잔해의 위에 선 채 클레온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하나의 눈에 세 개의 눈동자가 떠올라 있었다.
얼굴까지 차오른 진흙의 침식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포기해라, 레일. 그 녀석의 영혼을 흡수했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클레온은 검을 잡은 채 냉정한 얼굴로 레일을 향해 이야기한다.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 하하... 검은 교전의 진정한 힘은 마력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다. 클레온."
그 목소리는 레일 본인이었지만, 그것이 그의 자아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레일이 그렇게 말하면서 땅에 흩어져 사라져 가는 훔바바의 잔해를 집어 든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가며 아카데미의 사방으로 흩어져 간다.
클레온이 순간적으로 검을 휘둘러 레일의 남은 팔마저도 잘라버리지만, 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건 더는 인간의 피가 아니라 마수와 같은 진흙이었다.
"뭘 한 거지?!"
클레온이 다가가 레일의 멱살을 잡으면, 레일은 비릿한 웃음을 올린다.
"글쎄...? 무엇일까…. 하하….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가 되어 봐라 마검사...!"
다음 순간, 레일의 몸이 폭발적으로 터져나간다. 전신의 진흙을 가시와도 같이 만들어 클레온의 몸을 남김없이 꿰뚫으려고 하는 필살의 일격.
재빠르게 몸을 마력으로 감싸 보호하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가까웠다.
덮쳐올 고통을 예상하고 클레온의 근육이 긴장한 다음 순간.
"크리스탈 베일."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십개의 수정의 검. 그리고 그것은, 클레온과 레일의 사이를 갈라내면서, 벽이 되어 가시들로부터 클레온의 몸을 지킨다.
레일은 몸이 절단되는 듯한 고통에 뒤쪽으로 몸을 굴리려 하지만, 그의 주변을 또다시 푸른 성검의 무리가 감싸며, 마치 감옥과도 같이 둘러싼다.
"미안, 클레온. 너무 오래 걸렸지."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클레온도 레일도 움직임이 멈추었다.
당당하면서도 슬픈 목소리, 다정함과 냉정함을 함께 갖춘 그 목소리는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곳에는, 검술과의 수석으로서 제복을 갖춰 입고 허리춤에 푸른 유리검을 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아루루..."
클레온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아루루는 슬픈 표정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완전히 적을 향한 눈빛을 띄우며 레일을 바라보았다.
"레일 글리오폰드. 그대는 왕국 아니, 이 세계의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세계의 적이다."
"... ..."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그대를 베어 죄를 정화하겠다."
아루루가 거기까지 말하면 레일은 잘려나간 팔에서 진흙으로 팔을 재생해, 손 대신에 칼날이 달린 양팔을 휘둘러 클레온을 떼어냈다.
"모두, 손을 대지 말아줘……. 저 진흙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선, 아론다이트의 힘이 필수인 것 같으니까. 그리고... 마무리를 짓게 해줘."
아루루의 말에 모두 침묵했다.
사실, 레일에 대한 분노는 여기 있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도저히 레일을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루루가 누구보다도 무거운 마음으로 그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은 없었다.
"아루루... 아무리 너라고 해도 날 막을 순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도 거만해졌네! 레일. 이미 너밖에 남지 않았어."
하지만 레일은 입가에 띈 웃음과 눈의 증오를 거두지 않은 채 킥킥 댄다.
다음 순간, 다급히 달려오는 아카데미 학생들의 이야기에 모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보, 보고 드립니다! 대량의 오토마타들이 나타나서 학생들을 습격 중입니다!"
"뷔토스의 창고 내부에 있던 유물 중 몇 개가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일...!!"
아루루의 얼굴이 구겨지며 손에 들고 있던 아론다이트를 휘둘러 레일에게 달려든다.
"당신이 내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나 역시 스승과 마찬가지로 이런 거짓된 세계는 필요 없다…! 하하하! 부서져라! 산산조각나라!"
아루루의 검을 양팔로 받아내며 미친 듯이 웃어 재끼는 레일.
그런 레일을 클레온은 바라보고 일행에게 이야기한다.
"우선 오토마타와 폭주 중인 유물들을 멈추는 게 중요하겠군. 여기는 아루루에게 맡기자."
"자, 잠깐만요 클레온씨! 마수가 떨어진 이차원의 틈이 아직 안 닫히고 있는데…. 요..."
사샤가 고개를 들어 각인 발동한 눈으로 그 틈 너머를 바라보자, 창백한 표정이 되어 이야기한다.
"무언가가, 넘어오려고 하고 있어요…! 거대한 뱀 같은 무언가가…!"
"세계를 삼키는 뱀이다! 이 세계에 도착하면 재생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말 거다!"
"라일라! 차원의 틈을 닫을 방법은!?"
클레온이 재빠르게 대응책을 생각하여 이야기하면, 라일라는 그 너머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두운 얼굴을 하며 이야기한다.
"안 돼, 여기서 닫더라도 반대편에서 열어버릴 거야. 정말로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어…."
"그, 그러면 또 아까 같은 괴물이랑 싸워야 하는 거야?"
쿠온의 말에 클레온도 라일라도 잠시 입을 다문다.
이윽고, 클레온이 고개를 저으며 이차원의 틈을 바라본다.
클레온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어젯밤 꾸었던 쿠온이 나오던 꿈이었다.
"아니, 방법은 있어."
"클레온 너..."
라일라는 클레온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그를 바라본다.
"누군가가 이차원의 틈으로 들어가서 그 뱀이라는 녀석이 입구를 열지 못하도록 틀어막으면 돼."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잡고 있던 이오나를 놓았다.
이오나는 갑작스럽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클레온의 손목을 잡는다.
"잠깐만요 클레온!? 설마, 당신이 하려는 건 아니겠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해요!"
"맞아 클레온…! 여기서 다 같이 상대하면 돼…!"
쿠온과 이오나의 필사적인 설득, 아무 말 없이 자신에게 달려와 허리를 붙잡는 사샤.
"그 뱀이 넘어오려는 것도, 아마 훔바바가 출현하면서 좌표가 발생했기 때문일 거야. 알베인과의 싸움이 절계수를 불러온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러니까, 이 세계에 그런 존재들을 들어오게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위험을 불러오는 행위야."
"그,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배 혼자 가는 건"
"이런 바보 같은 일에 너희를 끌고 갈 수 없잖아. 너희가 이 세계에 남아 줘야, 나도 너희의 각인을 따라서 돌아올 수 있지. 라일라, 모두를 부탁할게."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클레온의 말을 납득할 수 없다, 자신도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절실히 느껴졌다.
"현명하네. 그게 가장 좋은 판단이야."
하지만 라일라만은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이차원의 틈 같은,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곳으로 이 인원이 전부 들어가는 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중에서 가장 강한 한 사람이 희생한다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라일라…! 아직 기억이 안 돌아왔다고...!"
"그런 거 아니야……. 기억이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똑같았을 거야. 나는 이 녀석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으니까."
라일라는 쿠온의 말을 가로막으며 클레온을 노려봤다.
"반드시 돌아와. 안 돌아오면 태워버릴 거야."
검지로 클레온의 가슴을 누르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은 그 눈빛만으로도 정말로 클레온을 불태울 것만 같았다.
"...그래. 금방 돌아올게."
그러면, 라일라의 검지 끝에서 화염의 마력이 클레온의 몸을 감싸 막처럼 덧씌워진다.
"이걸로 마력의 오염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거야. 그리 긴 시간 유지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안으로 들어가면 이오나와 함께 차원의 틈을 닫아줘."
클레온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는 라일라.
아루루와 전투를 벌이고 있던 레일은 그런 클레온의 모습을 보더니 그 작태를 비웃는다.
"무의미다…! 엔키두 같은 장비도 없이 이차원의 틈으로 들어가서…. 몇 분 버티지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겠지…!"
다음 순간 레일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그를 날려버린다.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면 폭발한 부위에서 진흙이 흘러나오며 녀석이 비명을 내질렀다.
귀신같은 얼굴을 한 라일라가 손가락을 뻗어 레일의 몸 중 한 부위를 그대로 터뜨린 것이다.
"...라일라."
"왜."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를 조용히 부르더니 여전히 순수한 화염의 형태를 띤 라일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고마워……. 네가 있어 줘서 다행이야. 이 말은 예전에도 했지."
"몰라. 그런 거. 빨리 저 녀석이 쓰러져 줘야 기억을 되찾을 텐데 말이야."
"사랑한다."
그렇게 말을 남긴 클레온은 비행 마법을 통해 이차원의 틈으로 들어간다.
"...뭐야, 그거. 그런 식으로 말하고 가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라일라는 주먹을 꽉 쥐더니 손을 뻗어 이오나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바타 마법이 해제되며, 물리적인 육체를 되찾은 라일라가 클레온이 사라진 이차원의 틈을 향해서 이오나를 휘둘렀다.
거대한 신성마력의 참격이 그대로 차원의 틈에 작렬하더니 하늘에 난 구멍은 그대로 메꾸어져 사라졌다.
어디에도 클레온이 사라진 차원의 틈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라일라..."
눈물을 흘린 채 고개를 떨군 라일라를 보며 쿠온이 이야기한다.
할 수 있다면 자신도 따라가고 싶었다, 그를 혼자서 보내는 일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클레온이 자신에게 모두를 부탁한다고 해줬다.
그가 알고 있던 자신이 들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라일라는 비행 마법으로 아카데미의 상공으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한다.
"클레온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를 전부 정리해두자!"
눈물은 증발하여 사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