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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14화 (114/506)

〈 114화 〉 거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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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지나가고 다시 솟아오른 태양이 밝게 내리쬐는 휴일의 아침.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등에 쥔 채 자신의 책상 앞에 앉은 아루루는 평일 중에 다른 학과의 수석들의 동의를 모아온 클레온의 서류에 자신의 사인을 추가한다.

깔끔한 필기체로 쓰이는 `아루루 트로메이아`라는 사인.

이 이름을 되찾기 위한 클레온들의 싸움에서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었다.

"이걸로 서류 작성은 완료. 뷔토스의 창고에 가서 이 파일을 보여주면 `석건`을 대여해 줄 거야."

아루루 본인도 그 싸움에선 멀쩡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아론다이트에 의해 강제적으로 기억을 되찾으면서 입은 내상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신에 붕대를 감아 미이라 같은 모습이 되었던 클레온만큼은 아니었겠지만.

클레온 역시 그 뒤 라일라와 베아트릭스 두 사람에게 3일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몸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아루루에게 들린 것은 라일라가 제조한 아루루의 치료약을 전달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녀 역시 왕국 최고 귀족 가문의 자제인 만큼, 주치의가 붙어있었지만.

이전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적지 않은 아카데미의 사람들을 우선시해달라는 아루루의 부탁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자기 주인이 아닌 일반 학생들을 치료하기 위해 저택을 비운 상태였다.

거기에, 일반적인 상처가 아닌 마력과 관련된 내상은 마법사인 라일라의 쪽이 더 해결책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대단한걸. 이 정도의 수의 수석들이 기꺼이 사인을 해줬다면 `석건`이 아니라 그 다른 유물도 빌릴 수 있을 거야."

"뷔토스의 창고에 있는 유물들의 위험성은 이전의 폭주 사건에서 잘 알았으니까…. 필요한 것만 빌릴 수 있다면 상관없어."

"후후. 욕심이 적구나 클레온."

그녀의 말을 적당히 흘리는 클레온을 보면서 아루루는 웃으면서 책상 위에 올려진 따뜻한 홍차를 들이킨다.

그러고는 후우, 하고 따스한 입김을 내뱉은 뒤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상세한 내용을 적은 편지를 아버님께 보내니까 바로 답변이 왔어."

클레온의 머릿속에 퍼시스 트로메이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전의 레스토랑에서 아루루에게 한 방 먹고 돌아간 그의 뒷모습은 영락없는 딸 바보였다.

"...퍼시스경은 뭐라고?"

"아카데미 원로회에 책임을 물게 하려 했지만, 어머님이 말리셔서 그만두겠다고…. 대신에, 다음에 클레온을 왕국 수도의 저택으로 데리고 오래. 다시 한번 뵙고 싶으시다나 봐. 어때?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그녀의 아버지는 과거 레시아와 함께 왕국을 구한 용사이다.

클레온으로서도 그에게 무례나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기에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고마워. 아버지도 기대하고 계실 거야. 아아,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클레온의 손에 직접 건넨다.

아카데미 수석 회의에서 작성된 서류로, 이것저것 일정에 관한 것들이 적혀져 있었다.

"최근 아카데미에 안 좋은 일이 계속되었었잖아? 그래서 시기가 좀 이르지만 학원제를 하자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총 3일 동안 진행되는데…. 수석들은 첫날이랑 이틀째는 각자의 과를 관리해야 해서 자유시간이 없거든."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는다.

임시 강사인 자신이 언제까지 이 아카데미에 머물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라일라에게서 학원제에 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아카데미 전체가 들썩일 정도의 커다란 축제라서 옛날에는 싫어했다는 말과 함께.

"그러니까... 3일 째에는 나랑 같이 지내줄 수 있을까?"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문득 생긴 의문에 그녀에게 질문한다.

"그건 상관없지만…. 축제까지는 아직 기간이 남았잖아?"

"조금 치사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먼저 예약하지 않으면 금방 클레온을 빼앗길 것만 같은걸. 축제에 관한 건 일반 학생들이나 라일라는 아직 모르고 있어."

"아아, 그 녀석. 요 며칠은 저택에 계속 있었으니 수석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은 건가."

"그편이 나로서는 이렇게 클레온을 몰래 선점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말이야."

아루루의 말에 클레온은 조금 부끄러운 듯이 볼을 긁적이고, 그 모습을 보며 아루루는 재미있다는 듯이 손을 입에 가져가 댄 채 웃어 보였다.

...사건 이전의 아루루와 다른 모습 없는, 그대로의 그녀였다.

"...아루루. 레일에 관한 건­"

"...응. 최대한 마음은 정리하려고 하고 있어…. 실은 아버님께서 보내오신 편지에, 레일의 아버님의 편지도 같이 있었지만…. 아직 열어보지 못했거든."

아루루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짓지만 어떻게든 털어내려고 하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래."

클레온은 그렇게 말한 뒤 슬슬 `석건`을 빌리러 창고에 가봐야겠다면서 아루루에게 인사를 하지만, 기왕 와줬으니 바깥까지 배웅한다면서 아루루도 뒤를 따라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저택의 마당으로 나가면, 사샤가 커다란 대형견 한 마리와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 들어올 때 본 아루루가 기르고 있는 녀석으로, 주인과 같이 황금색의 털이 멋들어지게 길러진 순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아! 클레온씨! 아루루씨!"

머리 위에 솟아난 짐승의 귀를 쫑긋, 움찔거리며 클레온과 아루루를 향해 돌아보는 사샤.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아루루의 개도 두 사람을 보며 `멍!`하고 목소리를 올렸다.

"고마워 사샤. 하울이랑 놀아줘서. 이 녀석 내가 없는 동안 엄청나게 외로워 한 것 같더라고."

"아니에요! 이 아이, 정말 똑똑하고 기운차네요…!"

"어릴 적부터 길렀으니까. 아버님께서는 사냥개를 기르고 싶어 하셨지만, 나는 이 아이가 더 좋더라고."

애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아루루를 보며 클레온은 조금 떨어진 채로 두 사람과 한 마리를 바라봤다.

클레온의 시선은 특히 사샤의 꼬리와 귀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국 아카데미의 안에서는 그녀의 저주를 푸는 방법은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안에 있는 루벤의 분신이 자아를 자각하여 사샤와 공생하는 것으로, 저주의 진행을 억제하고 더 강한 힘을 끌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일까.

...어쩌면 남은 생을 평생 저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사샤는­

"클레온씨…?"

클레온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사샤가 클레온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슬슬 가자 사샤, 라일라가 `석건`을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 그럼 잘 있어 하울. 또 보자!"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뒤를 따라오는 사샤의 꼬리는 기분 좋을 때의 하울과도 같이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001

"여기가, 뷔토스의 창고의 안이군요...! 굉장히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하네요."

폭주한 유물들에 의해 한때 엉망진창이 되었던 창고지만, 보관에 심혈을 기울인 물건들이 가득한 덕분에 아카데미에서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복구된 장소가 이 창고였다.

사샤가 단검으로 베어서 떨어트린 혼돈의 보석은 그 뒤에 얌전해져서 황금색의 궤 안에 봉인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라일라와 베아트릭스에 의해 결계 내부에 갇혀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마도서는 언제 날뛰었다는 듯 얌전히 전용의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사샤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가득한 곳에서 긴장한 듯이 고개를 둘러보고.

클레온은 그런 사샤의 앞에서 걸어가며 건네받은 지도에서 석건의 위치를 찾는다.

입구에서 만난 경비는 클레온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그를 알아보고는 덕분에 살았다면서 악수를 요청해 왔었다.

수석의 사인을 받은 파일을 보여주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쪽에서 석건을 찾을 수 있는 창고 내부의 구조도를 건네준 것이다.

"사샤. 너무 떨어지지 말도록 해. 그리고, 창고에 있는 물건들은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사샤를 걱정한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샤는 움찔하고 놀라서 조금 볼을 부풀리고는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어요…. 클레온 씨는 가끔 저를 너무 아이 취급한다니까요?"

물론, 호기심 넘치고 순수한 사샤를 위해서 한 말이지만 그녀에게는 클레온이 사샤를 애 취급 하는 것으로 느껴진 듯하다.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창고 안의 유물들은 대부분은 원래의 위치를 찾은 것 같지만, 이 구조도도 사건 이전의 것이라 어쩌면 조금 위치가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을 함께 건네받았다.

그래도, 그 경비의 말대로 유물들은 거의 모두 그림과 같은 위치에 존재하고 있었다.

단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창고 가운데에 있어야 할 검은 강철의 골렘­ 아니, 갑옷.

`엔키두`가 없다는 것.

사건이 종결된 후, 전면부가 완전히 파괴된 엔키두는 신성학과와 마도구학과, 그리고 마법학과에 의해 조각하나 남기지 않고 해체되었다.

마찬가지로 뷔토스의 창고의 내부에 있는 `불카누스의 용광로`라는 모든 것을 녹이는 용암이 들어있는 유물을 사용하여 녹인 결과.

재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고 새까만 물질로 변했다고 하던가.

마도구학과에서 탐내던 것을 신성학과의 수석이 막아 그대로 정화했다는 것을 쿠온에게 전해 들었었다.

"석건의 위치는 중앙에서 서쪽의 3번째 진열대..."

클레온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창고의 통로를 걸어가면, 자신이 말한 진열대의 앞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 곳에 있는 것은 돌로 된 열쇠 따위가 아니라, 화려한 금색의 테두리와 보석으로 장식된 하나의 거울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석건은... 아니지."

클레온이 눈을 찌푸리자, 뒤에서 있던 사샤도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어 클레온과 함께 거울을 바라본다.

"굉장히 예쁘네요... 이것도 고대의 유물인 걸까요?"

"그건 루이스의 거울. 이라는 유물이에요."

갑작스럽게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아 클레온과 사샤가 몸을 돌리면.

그곳에는 바깥의 경비와 비슷한 아카데미의 특수 제복을 몸에 걸친 채, 머리 위에 푸른색의 리본을 단 금발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너도 창고의 경비인가?"

"네. 앨리스라고 해요. 클레온 강사님이시죠?"

역시나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그녀의 반응에 클레온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내 이름을 알고 있군."

"후후. 괜찮지 않나요? 유명세라는 것은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겠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야."

클레온의 말이 끝나자, 사샤가 거울을 가리키며 앨리스에게 물어본다.

"저건, 어떤 유물인가요?"

"거울의 세계를 내포하고 있는 유물이랍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기한 일을 경험할 수 있다던가…."

앨리스의 말에 사샤는 고개를 갸웃하고, 클레온은 조금 질린 듯한 표정을 한다.

"거울의 세계... 안쪽...? 또 이상한 물건이군. 미안하지만, 우리는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석건`을 찾고 있는데. 혹시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앨리스는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이 되면서 이야기한다.

"아아…. 그거라면. 저 거울이 집어삼켰답니다. 요전의 사건에서 말이죠."

"...뭐?"

앨리스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정신이 어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저 거울은 장난꾸러기라, 마음에 든 것을 종종 삼키곤 하거든요. 폭주의 영향으로 활발해져서 이것저것 삼켰을 때 석건도 같이 삼킨 모양이네요."

"...농담하는 건가?"

클레온의 질문에 앨리스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 표정은 그녀가 하는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면 뱉어내니까."

"얼마나 걸리지?"

"한 달 정도…?"

"하, 한 달이요!? 그럼, 그때까지 석건은 사용 못 한다는 건가요…?"

라일라가 놀라서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클레온 역시 한 달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오나에게서 들었던 왕국 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는 게 싫으시다면, 안쪽으로 들어가서 찾아오셔도 괜찮아요."

"거울의 세계라는 걸 말하는 건가…? 그런 게 정말로 있다고?"

앨리스의 말에 클레온이 질색하듯이 이야기하자 그녀는 그저 웃어볼 뿐이었다.

"하아…. 무언가 네 생각대로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악의도 없고, 거짓말은 하는 것 같지 않군."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거울에 손을 뻗는다.

그러자 놀랍게도 거울은 클레온이 몸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해지면서 유리는 마치 수면과도 같이 클레온의 손을 받아들인다.

"...정말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가."

클레온 본인도 살짝 놀란 얼굴이 되어 팔을 집어넣으면 한도 없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크, 클레온씨!?"

그 모습에 사샤가 놀라 목소리를 높이면 클레온은 고개를 돌려 사샤에게 이야기한다.

"잠깐 가서 찾아와 볼게. 사샤는 여기에 있어."

"잠깐만요!? 저도 같이 갈게요!"

사샤가 클레온의 아직 들어가지 않은 팔을 붙잡자, 클레온은 살짝 고민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안 돼. 안쪽이 위험한 곳이면 어떻게 해?"

"그러면 더더욱 같이 가야죠...! 이래뵈도 사냥꾼이니까요. 길이나 표적을 추적하는 건 제 특기에요."

그런데도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는 사샤. 클레온은 그녀의 굳은 의지가 담긴 눈을 보면서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도록."

"...정말이지, 너무 어린애 취급하신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사샤는 클레온의 손을 잡고 거울의 안쪽으로 함께 몸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앨리스는 두 사람이 완전히 거울의 안으로 들어가면.

거울의 앞에서 눈을 감은 채 콧노래를 부르면서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002

거울을 통과하면, 시야가 완전히 한 번 빛에 감싸였고.

몸의 균형 감각이 이상해지며 하늘에서 자유낙하를 하는 느낌에 휩싸인다.

쿠당탕!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먼저 안쪽으로 들어간 클레온이 아래에 엎어지고, 그 위로 조금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으으…. 아파라. 갑자기 추락이라니…."

어디선가 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쪽인가? 오른쪽인가?

무엇이 되었든 그녀가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클레온은 팔굽혀펴기의 자세로 위쪽에 있는 것을 들어 올리며 비키려 했다.

"자, 잠깐!? 와, 왓…! 클레온 씨!"

사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면, 그것이 저절로 옆으로 비켜지며 자기 몸이 가벼워진 느낌과 함께 클레온도 몸을 일으켰다.

주변의 경치는 마치 숲의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수풀과 나무로 가득했다.

한숨을 내쉬며 손을 터는 클레온.

문뜩,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원래의 자신의 손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작았다.

그리고, 눈높이도 낮고, 입고 있던 옷도 어린 시절 입고 있던 옷이다.

"...하아..."

원인이라면 짐작이 간다.

이 이상한 세계의 안으로 들어온 것이 원인이겠지. 어림잡아 10살 정도 어려진 것일까.

"사샤, 조심해. 아무래도 어려진 것 같­"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자신보다 무릎을 땅에 붙인 채 주저앉아 있는데도, 자신과 비슷한 키의 여성이 있었다.

머리카락은 타오르는 노을 색과 비슷한 오렌지색. 그리고 눈에 띄는 에메랄드색의 눈동자.

팔다리가 가늘면서도 쭉 뻗은 그 모습은 마치 요정­ 엘프들과도 같았다.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적당한 가슴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크기였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그녀의 머리 위와 엉덩이 부분에서 솟아나 있는 꼬리이다.

나이는 20대의 중반 정도로 보이며, 쾌활한 건강미와 함께 성인다운 매력을 함께 겸비한 미녀가 그곳에 있었다.

"... 사샤?"

"크, 클레온씨...!? 어, 어떻게 된 건가요!? 그 모습은!?"

목소리도 조금 어른스러워져 있지만, 방금까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의 목소리임이 틀림없었다.

마치 클레온의 나이를 사샤에게 빼았긴 듯한 모습이었다.

다행인 것은 사샤가 몸에 걸치고 있는 옷도, 나이와 성장한 몸에 맞게 커져 있었으며.

왕도에서 인정하는 가장 고위의 사냥꾼들이 걸친다는 `마스터 보우`의 칭호를 가진 모험가에게 지급되는 푸른 망토와 함께, 도시에서 지내던 시절 입고 있던 경갑에 이런저런 장식이나 부품이 추가되어서.

한 사람의 늠름한, 베테랑 모험가에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이 세계에 들어온 것 때문이겠지…."

"그, 그럼…. 제가 따라온 것 때문에? 죄, 죄송해요…!"

사샤가 창백한 표정이 되어 울상이 되지만 클레온은 팔을 뻗어 그런 사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라 이 세계가 이상한 탓이니까…."

"이상하다니 실례다거울!"

"그리고 이런 세계에는 꼭 이상한 어미를 붙인 마스코트 캐릭터가 있지..."

뒤쪽에서 들려오는 째진 목소리에 클레온이 몸을 돌리면.

그곳에는 바깥에서 이곳으로 들어올 때 사용한 `루이스의 거울`과 흡사한 형태를 한, 팔다리가 달리고, 유리 부분에 멋쟁이 수염이 달린 이상한 것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네가 이 세계의 관리인인가?"

"흥. 이야기가 통하는구나거울. 나는 주인님에 의해 창조된 이 거울의 관리인. `관리거울`이다 거울."

"...이름을 정말 대충 짓는구나."

클레온의 감상에 거울은 다시 한번 `흥`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저기, 관리거울씨? 저희는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석건을 찾으러 왔는데요. 혹시 아시나요?"

"석건? 아아. 그 돌 열쇠를 말하는거울? 확실히 얼마 전에 이 거울이 멋대로 움직였을 때 집어삼켜서 내가 가지고 있긴 한데…."

"그 여자가 말한 게 사실이었나 보군. 돌려다오."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하자, 관리거울은 이야기한다.

"물론 돌려주는 건 상관없지만. 너희들 이곳에서 어떻게 나갈 생각이냐거울?"

"...뭐라고? ...들어온 곳으로 나가면­"

"바보거울이네. 이 세계의 거울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거울.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나가기 위해선 나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거울."

그 거울의 말에 클레온은 두통을 느끼면서 이마를 짚는다.

"허, 허락해주지 않으실 건가요?"

사샤가 그렇게 물어보자 거울은 잠시 `흐음….`하고 무언가를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샤와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거울은 주인님의 조건에 따라 시련을 해결하지 못하면 나갈 수 없다거울. 나는 그 시련을 감독해서 사람을 통과시킬 수 있다거울."

"시련이 뭔데?"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거울이 자신에게 달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변의 숲과 같은 광경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침대가 있는 방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커다란 강철로 된 문만이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출입구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 위에 간판과도 같은 것이 붙어있었으며…. 혼자서 날아다니는 펜이 그 팻말에 아래의 문구를 적는다.

[두 사람이 마음을 통해서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 ..."

"... ..."

"이게 시련이다거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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