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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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드디어, 처음에 목표로 했던 물건인 석건을 가지고 저택으로 돌아온 클레온과 사샤의 미묘한 표정을 보고서는 라일라가 의문이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녀는 클레온이 석건을 가지고 오면 바로 메모리아 큐브를 분석할 생각으로 미리 공방에 나오는 영상을 추출할 수 있는 마도구들을 전부 세팅해 놓은 상태였으며.
옆에서 베아트릭스가 손에 스패너를 든 채로 마지막 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뷔토스의 창고에서 출발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야기 한 두 사람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서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거울 세계에서 겪었던 일이 플래시백 되어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에이 라일라. 두 사람이 나가서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계산해보면 오래 걸렸단 걸 알잖아?"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의구심을 가지는 라일라를 향해 베아가 기계 뒤에서 얼굴만을 내밀며 이야기한다.
볼에 거뭇한 기름이 묻어 있는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달라 신선했다.
"아~. 뭐, 둘이 어디 가서 무얼 하던 굳이 지적할 생각은 없지만. 처녀와 총각도 아닌데 왜 그래?"
"아니.. 뷔토스의 창고에는 이상한 유물들이 많다고 새삼 느꼈을 뿐이야…."
클레온의 그런 대답을 들은 사샤도 멋쩍은 듯이 웃으며 볼을 긁적인다.
"아무래도 좋지만. 가져온 석건 좀 보여줘 봐."
라일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뷔토스의 창고에서 대여해 온 고대 유물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석건`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특징 없는 낡은 돌 열쇠.
하지만 그 열쇠의 머리 부분에 나 있는 구멍에 묶여 있는 밧줄조차 하나의 마도구이며, 어떤 절삭력을 가진 물건을 사용하더라도 절대로 잘리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밧줄을 재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리고 역시,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이 도구의 진가가 되는 것은 열쇠 그 자체.
어떠한 `잠겨 있는 것`이라도 열 수 있는 개념, 사상적인 개방을 발생시키는 마도구.
고대인의 시대에서도 더욱 옛날인 말 그대로 신화의 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물건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크기가 줄어들며 정해진 사용량을 넘어서면 이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하는 데에는 신중이 필요했으며, 복제도 불가능하여서 아카데미에서도 이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건 12인의 원로회의 허락이 있는 사안이거나, 5명 이상의 학과 수석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었다.
여차여차 하여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한 결과, 감사의 뜻으로 5명의 수석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고, 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아카데미로 온 가장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메모리아 큐브를 열면 볼 수 있는 기록을, 이 마도구를 통해서 옮기고. 자세한 부분을 보려고 한다면 역시 이쪽의 영사용 마도구를 사용해야 해."
"메모리아 큐브에서 직접 보는 것은 불가능한 건가?"
"가능은 하지만, 한 번 열 때마다 석건을 다시 사용해야 하고…. 메모리아 큐브 자체에는 되감기나 빨리 감기 같은 기능이 없으니까. 원하는 부분을 찾기 위해서는 역시 기록용 마도구를 사용하는 게 맞겠지?"
라일라는 클레온의 의문에 시원스럽게 대답하면서 자신도 베아트릭스가 준비하던 영사 및 기록용 마도구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게 그 마도구인가요? 꽤 낡아 보이는데…."
사샤의 악의 없는 순수한 감상에 라일라가 윽…. 하고 침음성을 내뱉자 베아트릭스는 하하….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영사 마도구는 생각보다 가격이 세서…. 황급히 라일라의 본가에 있던 물건을 가지고 온 거에요."
"라일라의 본가인가. 이전에 기억을 봤을 때 분명"
클레온은 베아의 말에 잠시 이전, 알베인과의 사건 도중에 라일라의 기억을 엿보았을 때를 떠올린다.
그 기억 속에는 라일라의 본가가 있는 곳, 즉 그녀가 태어난 고향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왕도의 서쪽. 완전 촌구석 시골. 약초와 온천이 특산품인 마을. `헬리스`."
클레온이 무언가 말하기 전에 라일라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맞아.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라일라의 고향치고는 마법과는 별 상관이 없는 곳이었어."
그리고 클레온도 라일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라일라는 살짝 싫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야, 할아버지가 일부러 그런 곳을 고른 거니까. 말년에는 마법보다도 약초 정원을 가꾸고,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온천을 파고 다니는 걸 더 좋아하셨거든."
그녀의 기억속에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클레온의 머릿속에 재구성된다.
인자하면서도 엄숙한 노익장의 모습이었다.
본래 마법사라면 체력이 떨어져서 육체노동을 조금 꺼리는 것일 텐데, 그 사람이라면 지팡이도 물론 어울리겠지만 삽과 곡괭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도 어울릴 것만 같았다.
온천과 약초 정원이라. 여정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은 모험가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크게 한탕을 하고 나면 모험가를 은퇴해서 살아가는 것이 꿈인 이들도 많았다.
클레온 역시, `평범한 삶`이라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모험가를 은퇴하고 나면, 시골로 내려가 소일거리를 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분명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걸. 그런 노년도."
그런 말을 중얼거리듯이 내뱉자, 옆에 있던 라일라나 베아트릭스가 반응한다.
""에?""
마치, 그런 노후는 클레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뭐야, 그 반응은."
"좋네요~! 저도 시골 출신이지만 살던 곳이 조금 특이해서요. 그런 느긋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마을에서도 지내보고 싶어요."
클레온이 두 사람에게 불만인 듯이 말하든 말든, 사샤는 클레온의 말에 공감하면서 눈을 반짝인다.
"...역시 사샤는 순수하구나. 좋아. 그러면 돈을 모아서 정착할 수 있는 곳을 좀 찾아볼까…."
클레온이 조금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며 사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하자, 당황한 라일라와 베아트릭스가 클레온에게 매달리듯 달라붙어 말려대는 것이었다.
"잠깐잠깐! 벌써 은퇴할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고!"
"마, 맞아요. 선배! 아직 저와의 모험은 시작도 안 한걸요!"
"모험가의 은퇴는 언제나 돌연히 찾아오는 법이지…."
"클레온~!"
"선배~!"
라일라와 베아트릭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클레온은 그저 `허허….`하고 웃을 뿐이었다.
"아, 그런데…. 라일라 씨가 돈으로 곤란해하다니 드문 일이네요…?"
그리고 사샤는 문득 떠올렸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라일라는 움찔하고 어깨를 움츠린다.
"아아. 그건 말이에요 사샤씨."
그 의문에 대해서 베아트릭스가 대답하려 하자, 라일라는 황급히 손을 뻗어 그녀의 입을 막는다.
"...뭐야, 설마 도박이라도 했어?"
"하, 하아!? 도박!? 그럴리 없잖아! 그저…. 조금, 예상외의 지출이 있었을 뿐이야. 이런 거, 연구를 조금 해서 논문을 발표하면 바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라구."
클레온의 질문에 라일라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뭐, 그녀의 말대로 지금 이 파티에서 가장 수입이 좋은 것은 라일라일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마도구의 아이디어 몇 개를 마도구학과에 넘기는 것으로 인세를 받아낼 수 있고, 연구하여 성과를 내면 아카데미에서도 장학금이 나온다.
그렇기에 그녀가 돈 문제를 꺼낸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지만 그 이유를 라일라 본인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어, 어쨌든. 나는 베아랑 이 마도구를 저녁까지 정비해 둘 테니까. 두 사람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어."
라일라는 이 이상 작업을 지체시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하면서 클레온과 사샤를 지하 공방에서 내보낸다.
클레온도 사샤도 서로를 잠시 바라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저택의 로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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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먹었습니다! 쿠온씨 이 스튜 정말 맛있었어요! 혹시 레시피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아하하... 물론이야. 레시피라고 할것도 없지만... 이따가 노트에 적어서 보여줄게."
그날의 저녁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잘 구워진 빵에, 쿠온 특제 스튜. 그리고 이오나가 탈체크를 위해 배운 고기 요리. 그녀가 말하길 탈체크는 늘 날고기를 먹으려고 해서 요리를 먹어 주는 것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을 정도여서 맛에 대한 평가를 받지 못하던 것이 한이라고 했지만.
그녀의 요리 역시 그저 고기에 간을 하여 구웠을 뿐인데도 클레온이나 사샤가 야영시에 하는 것들과는 다른 풍미가 느껴지는 맛이었다.
"라일라. 브로콜리랑 피망이 남아있잖아."
"윽. 그 정도는 괜찮잖아…."
그리고 클레온이 라일라의 접시를 가리키면서 지적하면 라일라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한다.
이 아가씨는... 깨끗하게 받은 음식을 비운 사샤와 비교하면 정말로 연상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아이 입맛에 편식쟁이다.
"이대로 가면 사샤가 널 앞질러서 키도 훨씬 커지고 어른스러워 지겠는걸…."
클레온은 거울 세계에서 보았던 사샤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크, 클레온씨…."
그리고 사샤 역시 클레온이 그 모습을 떠올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채소 같은 거 안 먹어도 몸은 커질 수 있어. 여차하면 성장용의 마법약을 만들어서 복용하면 되니까. 기왕 크게 만드는 거 쿠온 만큼 커질까?"
라일라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휘적거리면서 대답하자, 사샤는 그런 라일라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 그런게 가능한 건가요!? 치사해요!"
"발육이 더딘 사람의 고민은 굉장히 옛날부터 있던 거니까~ 그런 쪽은 이미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있다구."
"하지만, 그런 물약은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고 하던데요. 특히 성장계의 마법은 저주 같은 거라 마력이 많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통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라일라의 이야기를 들은 이오나가 옆에서 그렇게 지적해오자, 라일라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 그렇구나..."
그리고 사샤가 다행이라는 듯 목소리를 내자, 라일라가 버럭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자, 잠깐! 뭘 다행이라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거야! 저, 절대로 사샤한테만큼은 안 지니까!"
"죄 죄송해요~!"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저녁 식사.
이오니와 베아트릭스가 함께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렇게 떠들썩한 자리가 되었다.
클레온은 조용히 그 사이에서 식후의 차를 마시며 안심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후우... 맛있었다... 오랜만에 이런 따뜻한 집밥을 먹은 것 같아."
옆에 이 여자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돌아간 거 아니었어?"
클레온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소피아에게 이야기한다.
그 때의 문답에서 클레온의 대답을 듣고 `미래에서 기다린다...`같은 말을 하면서 사라지는 연출까지 해 놓고.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 저녁까지 얻어먹고 있는 그녀의 뻔뻔함은 클레온이 도저히 흉내낼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아하하~ 그럴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클레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어서 말이야. 뭐, 결국 다른 사람이 한 음식을 먹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았어."
"미안하게 됐네. 나는 이제 요리는 거의 안 해서…."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소피아는 마치 클레온을 놀리는 듯이 대답한다.
"뭐야 클레온. 언제부터 그렇게 가부장적인 남자가 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녀가 없어지고, 너희들이 하나 둘 그 도시를 떠나면서 나도 누군가를 위해 만들 필요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안하게 됐을 뿐이지. 쿠온들이랑 이렇게 지내게 된 이후로는 내가 하는 것 보다 쿠온이 하는 편이 모두 만족스러워 하니까."
그런 클레온의 대답에 소피아는 턱을 괴면서 곁눈질로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가 했던 말 모두가 하나 둘 도시를 떠나갔다.라는 것이 걸리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을 직접 내비치지는 않겠다는 듯, 소피아는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흐응. 그래도 가끔은 도와주는 거겠지?"
"그거야... 재료의 손질 정도는..."
"훌륭하네. 뭐어, 빈말로도? 클레온이 하는 요리가 이 쿠온이라는 아가씨의 요리보다 맛있지는 않으니까? 클레온이 요리를 하는 것 보다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말을 하는 소피아에게 겨우 시선을 돌린 클레온. 소피아가 입꼬리를 올린 채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나를 놀리기 위해 돌아온 거야?"
"아니, 사과를 하려고."
클레온이 그렇게 묻자, 소피아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그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릴적 부터 그랬다. 클레온은 소피아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 전투 중에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백치의 대현자.
소피아는 보통 그런 이명으로 불린다.
백치라는 것은 현자, 즉 `현명한 자`라는 이름과는 정 반대의 뜻으로, 지능이 낮거나 정신이 박약한 이를 이야기 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이 단어 만큼 소피아를 잘 나타내는 단어는 따로 없으리라.
그 단어가 이야기 하듯, 소피아의 머리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녀가 대현자로서 각성하기 위해서 바친 가장 소중한 것이, 그녀의 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탈체크에게 들었던 바에 따르면 레시아가 적의 독에 닿아서 죽어가고 있을 때, 그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현자로서의 지식과 능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 아직 대현자 후보, 즉 견습의 현자였던 소피아는 친구를 살리기 위해 현자의 샘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칠 필요가 있었다.
수많은 지식이 들어있던 그녀의 명석한 두뇌야말로, 그녀에게 있어선 가진 것 중에서 가치가 높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대현자로서의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망가진 뇌에는 장애가 남아있었다.
부족한 부분을 생명적인 유지를 위해 마력을 통해 메꾸어 두었지만, 지식적인 부분을 제외한 일부 감정의 표현장애, 그리고 주기적인 기억의 손실이었다.
대현자가 되면서 성격은 꽤 유쾌해진 듯 하지만, 덕분에 감정을 읽기 어려워졌고 3일전에 만난 인간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런 그녀도 목으로 넘길 때마다 안에 있는 것을 전부 개워낼 정도로 독한 약을 주기적으로 먹으면서.
자신의 동료들과 관련된 일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으며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지금까지도 레시아와 그들의 여행, 그리고 클레온에 관한 것을 잊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가 아직도 그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 ..."
"클레온. 우리들은... 실패했어. 탈체크는 죽어버렸고. 나도 이제 더 이상 이차원의 틈을 걷기 힘들어. 에스카는... 그 애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지. 결국, 그녀의 동료였던 우리 세 사람은 모두 그녀를 되찾는 데에 실패해 버린거야."
"... 소피아."
클레온은 그녀를 불러세우듯이 조용히 이야기하지만, 소피아는 그것에 여의찮고 말을 이어간다.
"응. 그러니까. 클레온도 혹시라도 그만 두고 싶으면 그만두어도 돼. ...이미 그녀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았지?"
"... ..."
"...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
그녀가 하는 말은 다른 이들이 하는 것보다도 그 무게가 달랐다.
이전 그녀는 클레온에게 선택의 때가 찾아온다고 이야기했다. 석건의 준비가 끝난 지금, 그때는 바로 코앞까지 닥쳐와 있었다. 그런 그녀가 클레온에게 다시 한 번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분명, 클레온이 레시아의 뒤를 쫓는 일을 선택하면 일어날 일이 클레온에게 있어서 가혹한 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눈앞에 있는 동료 모두와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 평화롭고도 즐거운 식탁을 둘러싼 광경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함께 도로를 가볍게 뛰는 일상도.
다과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평화도.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밤도.
지금의 모든 가치 있는 것을 버리고, 찾을 수 있을지 모를 레시아를 찾으러 가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로 클레온에게 있어서 옳은 일인걸까.
클레온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평행세계의 쿠온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거울 세계에서 본 어르인 된 사샤의 모습을, 현실에서는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베아트릭스라는 친구를 잃었다고 여겼던 라일라에게 비슷한 경험을 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엘레시아에서 자신들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루티, 페르디아. 탈체크와의 추억을 공유하는 이오나. 몇 남지 않은 동족 루베라.
서로의 닮은 점을 찾고, 용사와 마검사라는 상반된 입장을 뛰어넘어 친구, 연인이 된 아루루.
같이 보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의 레시아에 대한 집착이 이들 모두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렇다 하더라도 클레온에게는 레시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복잡하지 않은, 단 하나의 심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구원을 바랬을 때. 레시아가 나를 구해줬어."
그래.
별을 보는 탑에서 죽음에 처할 운명이었던 소년은 혜성처럼 떨어진 황금의 용사에 의해 구원받았다.
삶도, 가르침도, 희망도, 사랑도 그녀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그날.
그녀가 차원의 틈으로 추방되었던 날.
탈체크는 자신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몰래라도 뒤를 밟아서 따라간 그곳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태로,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굳어있는 탈체크와.
차원의 틈으로 몸이 절반 집어 삼켜진 레시아의 모습이 있었다.
골목길의 속에서 크게 뜬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클레온이 공포로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할 때.
레시아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레시아는 클레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클레온을 붙잡으려는 듯이.
그것이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뜻의 제스쳐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녀가 `도움을 바라는 듯` 했었다.
그렇기에 골목을 뛰쳐나갔고, 정신을 차렸을 땐 그 자리에는 탈체크와 클레온밖에 남지 않았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몰랐지만,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레시아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난 그에 응할거야."
"...응. 그럴거라 생각했어."
소피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이동한다.
이전의 헤어짐에서 그녀가 보였던 슬픈 얼굴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녀에게 있어서 표정 따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클레온은 잘 알고 있었다.
느껴야 하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어딘가, 홀가분하면서도 안심한 듯한 목소리.
대현자의 말은 언제나 진실만을 담는다.
"가 볼게 클레온. 네 여정에 레시아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신을 믿지 않는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이의 이름을 빌어 클레온을 축복한다.
찾아왔을 때와 같이 조용한 바람처럼, 소피아는 저택의 문을 열고 나섰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뒤를 잠시 바라보다 모두가 기다리는 식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어째서 소피아가 다시 한 번 클레온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야, 소피아 역시 클레온과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정말로, 자신들을 대신해서 그녀를 구해내줄 수 있을 것인지.
자신들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기는 클레온에게.
그의 입으로, 레시아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받고 싶었다. 안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희망을 떠넘기는 듯한 죄책감에 사과하고 싶었다.
허나 클레온은 알고 있었다.
탈체크도, 소피아도, 에스카도.
그들을 막는 장애물이 없었다면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령 레시아를 찾는 것이 세계의 모든 것을 적으로 되돌리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결과, 자신마저 세계에서 추방되는 일이 생길지라도.
레시아의 황금색 희망을 되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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