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18화 (118/506)

〈 118화 〉 기록

* * *

000

저택의 지하 공방. 소피아가 떠나간 뒤에 일행의 소란스러운 식사도 마무리되었고.

그 뒤에는 메모리아 큐브의 영상을 해석하기 위해 클레온과 라일라가 지하로 내려와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그리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클레온을 배려한 것인지 다른 이들은 위쪽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른 이들도 알고 있었으니까.

"이 선을 여기에 연결해서…. 좋아. 이걸로 준비 끝이야. 남은 건 석건을 이용해서 메모리아 큐브를 열면 영상을 전부 기록해줄 거야."

라일라가 마지막 점검을 마친 뒤, 클레온으로부터 건네받았던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석건을 손에 든 채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라일라가 지정한 의자에 앉아 있던, 생각에 잠긴 클레온을 잠시 보더니, 그에게 가까이 가서 클레온의 손을 붙잡았다.

"좀더 밝은 얼굴을 하지 그래? 이걸 해독하려고 고생했던 게 겨우 결실을 본 거니까."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쓴웃음을 띤 그녀의 얼굴에서는 클레온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아... 그렇네. 미안."

그러면 클레온 역시 라일라의 말에 살짝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들어 메모리아 큐브가 놓여있는 책상 위를 바라본다.

저 큐브를 열면, 오랫동안 쫓아온 레시아의 흔적, 그 일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 비틀린 시공간을 헤매고 있었을 그녀.

그리고, 그 결말은 `황금의 혜성`이라 불리는 거대한 재앙이 되어 원초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를 찾아 구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면 클레온으로서는 거기에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부탁해 라일라. 큐브를 열어줘."

"알았어. 영사용 마도구가 영상을 처리하고 나면 곧바로 레시아가 있는 장면을 추출할 거야.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라일라의 설명에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 라일라가 책상의 앞으로 가 석건을 손에 들고 시동 단어를 영창한다.

"액세스[접속].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의 생각에서 나왔으니.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질지이다."

단순한 석회질의 열쇠로 여겨졌던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석건은, 라일라의 시동 단어가 끝나자 천천히 에메랄드빛을 내면서 빛나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에메랄드빛은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을 향해 에메랄드색의 빛을 조사(??)한다. 마치,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파악하려는 듯했다.

[당신은 모든 것의 영광을 얻는다. 그리고 모호함은 사라질 것이다.]

밝았던 빛이 사라지며, 기동을 마친 석건의 위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입체적인 문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메모리아 큐브를 향하여 석건을 가리키면, 허상으로 이루어진 열쇠 구멍이 그 큐브 위에 떠 올랐다.

아마 그것이, 큐브의 봉인을 유지하고 있는 보호술식이겠지.

키이잉­하고, 귀를 거슬리게 할 정도의 높은 마력 반응의 소리를 내면서 그 열쇠 구멍을 향해 석건을 집어넣고, 돌리면.

큐브의 보호술식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깨져나간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석건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확연하게, 방금 사용하기 전보다도 조금 작아진 것을 클레온과 라일라 양쪽 모두 알 수 있었다.

"영사 기록 마도구를 메모리아 큐브와 접속. 내용물을 추출... 기록 개시."

곧바로, 마도구에서 마력의 실이 뻗어와 보호술식이 사라진 큐브 안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추출하여, 기록을 위한 원판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에는 얼마나 걸리지?"

"100년치를 모두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원판은 2개 정도를 쓰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3분 정도야."

생각보다도 빠르게 기록이 끝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 클레온의 옆으로 라일라가 걸어와 자신의 의자를 끌어당기고 앉는다.

영사 마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라일라와 베아트릭스 정도이기 때문에, 둘 중 한 사람이 여기에 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라일라 본인으로서도 용사 레시아에 대한 흥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대체 어떤 여성이길래, 클레온을 이렇게까지 집착하게 하는가.

그녀에게도 정신 지배를 당했던 동안의 기억은 남아있다.

최종 결전에서 차원의 틈으로 들어가기 전에 클레온이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던 것도.

인간의 감정에 크고 작음이 있는 것은 라일라도 알고 있다.

아마, 자신과 쿠온, 사샤를 포함하여 어떤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레시아를 향한 클레온의 감정의 크기에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있지 클레온."

"응...?"

"레시아를 찾아서, 구해냈다고 치면. 클레온은 어떻게 할 거야? 그걸로 클레온의 모험은 끝인 거야?"

갑작스러운 라일라의 질문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레시아를 구해낸 뒤의 일.`

클레온이 모험가가 되기로 한 목적은 명성이나 금전, 그리고 지위 등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레시아를 찾기 위해서는 힘과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마검사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시아를 찾게 되면 자신의 모험가 생활은 끝이 날 것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클레온 본인도 `자신이 죽기 전에 레시아를 찾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죽을 때까지 그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조금씩이지만 그녀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클레온의 손에 들어온 메모리아 큐브도 그러하고, 검은 교전에게서 들은 그녀의 결말.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날에 그녀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의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라일라는 그런 클레온의 생각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는지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낮에 이야기 한 거 말이야."

"...낮에?"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이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낮이라고 한다면, 아까 사샤와 함께 지하 공방으로 와서 석건을 건네주었을 때인가.

"헬리스에 관한 거."

"아아. 그게 왜?"

라일라는 클레온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그, 노후에는 그런 마을에서 느긋이 여생을 보내는 것도 좋다고 했잖아. 혹시 모험이 끝나면…. 나랑 같이 헬리스로 가지 않을래?"

라일라의 머뭇거리는 말에, 클레온은 잠시 눈을 두 세 번 깜빡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건…. 네 고향으로 가서 살자…. 라는 건가?"

"큿...! 마, 맞아... 그런 의미야. 모, 모르는 곳에 가서 정착하는 것보다야,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는 마을에서 사는 게 낫잖아?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참아내며 목소리를 짜내지만, 역시 말수가 많아지는 라일라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걸."

"어!? 정말!?"

클레온의 호의적인 대답에 라일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로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에서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 아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지내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 그럼 말이야! 기왕 같은 곳에서 지내는 거, 같이 사는 건 어때? 우리 본가도 이 저택만큼 넓거든. 나 혼자 지내기엔 너무 넓으니까, 정착 자금도 덜고 말이야."

클레온과의 장래 계획이 머릿속에 촤르르륵 정리되며, 라일라가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그런가... 갈라테아와 칼리번도 있으니, 확실히 큰 집이 필요하겠지."

"아."

하지만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당연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듯이 머리를 감쌌다.

그래. 이 녀석은 마검사. 그리고,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검과 성검을 모두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즉, 이 녀석은 어디에 가더라도, 여자 둘을 늘 끼고 다닌다는 것.

단둘만의 마리아쥬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샤도…."

"사, 사샤도!?"

이 녀석, 혹시 나와 같이 산다는 사실에는, 무언가,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닐까?

"크, 클레온? 내가 말한 같이 살자는 이야기는 말이야…. 그, 그러니까. 남녀의 관계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그런…. 쉽게 말하자면 결­"

다음 순간, 영사기에서 푸시익­ 하고 마력에 의한 기동이 멈추며, 기록이 완료된 것을 의미하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 덕분에 하려던 말이 소리에 묻혀 지워져 버린 라일라가 뚱한 표정을 하며 몸을 돌려 영사기로 가까이 간다.

"어때? 찾을 수 있겠어?"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라일라는 몸을 돌려 이번에는 분석용의 마도구로 원판을 옮긴다.

"그건 네가 레시아를 잘 기억하고 있느냐에 달렸지. 자, 이리로 와서 여기에 손을 올려."

자신을 부르는 라일라에게 가까이 가자, 분석용의 마도구에는 손을 올리기 위한 수정구가 놓여져 있었다.

"여기에다가 손을 얹고, 레시아의 모습을 잘 떠올리는 거야. 알겠지? 그러면 분석기가 클레온의 정신에 있는 이미지를 잡아서, 기록 내에서 같은 모습을 한 인물이 있는지 찾아낼 테니까."

라일라의 지시대로 클레온이 수정구를 조작하기 시작하면, 분석용의 마도구가 빛을 내면서 클레온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원판에서 찾기 위한 기록을 정리해 낸다.

"큭…."

뇌를 직접 마력으로 조작당하는 감각에 약간의 현기증이 일지만, 이내 그것도 잠잠해지면서 마도구의 작동이 멈춘다.

그러면, 원판의 극히 일부분만이 빛을 내는 것이 클레온과 라일라의 눈에도 보였다.

전체로 치자면 두 개로 나뉜 원판에서도 1할도 되지 않은 아주 작은 영역.

아마 이 부분에 차원의 틈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시간대로 이동해 버린 레시아의 기록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걸로, 된 건가?"

"응. 그럼, 바로 재생하도록 할게…. 미리 말해두지만 클레온. 이게 어느 시대의 영상인지는 기록안에 힌트가 남아있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어. 그러니까…."

클레온은 라일라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커다란 단서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클레온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 라일라는 말을 멈추고 원판을 재생시킨다.

드디어, 기록 속의 용사와 대면할 때였다.

001

그곳은 사방이 돌로 막혀 있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어스름한 달빛만이 내리쬐는 동굴의 안이었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고립된 환경에는 조악한 침대와 책상, 그리고 고대인의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의 가구들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메모리아 큐브는 그 가구 중에서도 확연히 오래된 형식의 커다란 촛대와도 같은 것의 안에 있었으며.

동굴의 내부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그 동굴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책상의 앞에 앉아 있는 백금발의 여성이었다.

이곳저곳이 많이 헤져서 떨어져 나간 갑주를 몸에 걸치고, 너덜거리는 망토를 몸에 걸쳐 추위를 막은 그런 초라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허리를 바로 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적다가 메모리아 큐브로 가까이 온다.

"역시... 이거, 메모리아 큐브구나. 이전에 소피아가 이야기했던."

정면을 보이면, 그것은 영락없이 순진하고, 호기심 많아 보이는 소녀의 얼굴이었다.

백금발의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눈. 그리고, 하얀 피부.

클레온 속의 기억에 있는 것보다도 오히려 조금 어려진 듯한, 용사 레시아의 모습이다.

그런 그녀는 살짝 신기하다는 눈치로 손가락을 뻗어 메모리아 큐브를 톡 톡 건드려 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기록된다는 거? 으으…. 옷을 갈아입는 건 바깥에 나가서 해야겠네."

어딘가 조금 껄끄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 그녀는 허리를 펴고선 기지개를 핀다.

"아! 아니지, 이걸…. 이렇게 하면."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지신이 걸치고 있던 너덜거리는 망토를 메모리아 큐브에 씌워버린다.

그러자, 화면 전체가 갈색으로 바뀌면서, 그 얇은 천 너머로 어렴풋이 밖에 레시아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좋아. 이렇게 하면 안보이겠지? 후후. 사생활을 위해서니까요. 조금 참아줘요. 미래의 사람들."

002

영상은 그로부터 조금 건너 띄어진다.

레시아가 나오는 부분만을 검색해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천으로 가려진 레시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천이 벗겨지면,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이었던 레시아의 판금 갑옷은 어디로 갔는지.

활동하기 편한 경갑과, 허리에 검을 찬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해보니까, 일일이 일지를 쓰지 않아도 이걸 쓰면 기록이 가능하단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꼭 전달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이걸 통해서 남기려고 합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듯한 감각이 되어, 부끄럽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레시아.

그녀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영상의 시간대 역시 밤이었고, 달빛이 들어오는 것이 이 안을 비추는 불빛 전부였다.

"지금 이 시간대는 제가 알던 그 어떤 역사보다도 오래된 시간대에요. 소피아가 말했던 `원초 세계`일까요…. 다행인 건 아직 고대인들끼리의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구…."

레시아는 곰곰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공부는 그렇게까지 특기가 아니었던 그녀였지만, 소피아가 이야기해 주던 것은 자신의 힘인 성검에도 관련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했었다.

"차원의 틈을 헤매다가 어떻게든 발견한 구멍을 통해서 나와보니, 설마 수천 년 전의 세계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걸…."

이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날. 저를 차원의 틈으로 추방한 사람들이 어떤 분들이신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이 기록을 보신다면 죄송해요. 저, 아직 살아 있어요. 차원의 틈에서는 성검의 마력을 통해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습니다."

레시아는 마치 오래된 옛일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고대인의 세계에서는 저 같은 금발 벽안이 어째선지 노예의 상징이라는 것 같아서…. 이런 곳에 숨어서 지내고 있지만요…. 아하하..."

그러고는 자조하듯이 건조한 웃음을 내뱉은 뒤 한숨을 내쉰다.

"어떻게든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고는 메모리아 큐브를 잠시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하지만 괜찮아요. 유일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고대인의 연구자 분... 트리스라는 분이 계셔서 그분께서 차원의 틈을 다시 열 방법에 대해 조사해 주신다고 하셨어요."

이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레시아는 슬쩍 뒤를 돌아본다. 마치 그 너머에 누군가가 있는 듯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망토를 덮는 것이었다.

003

그 뒤로도 레시아의 며칠을 간격으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부분은 고대인과 만나서 쫓긴 이야기나, 고대의 마물들과 싸운 이야기. 그리고 친구가 된 고대인 연구자의 연구가 진척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진 1년 정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 그녀의 기록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것은.

그 기록이 마지막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망토를 걷어낸 그녀이지만, 얼굴에 거뭇한 진흙이 묻어 있고, 몸 전체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아... 하아..."

상처는 입고 있지 않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전투를 한 뒤의 느낌이었다.

바깥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마치 그녀의 뒤를 쫓는 듯했다.

"...제가 가진 성검을 들킨 바람에, 고대인들에게 쫓기는…. 상황이에요. 저를 도와주시던 연구자분도 붙잡히셔서…. 다행히, 차원의 틈을 열 수 있는 마도구를 받아오기는 했지만…. 큭…."

레시아는 슬픈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마검황제를 쓰러트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 용사. 하지만 용사이기에 사람을 향한 자비나 연민의 마음을 져버릴 수 없다.

그녀가 일반인을 향해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판사판이지만, 차원의 틈을 열려고 해요. 그러니까, 이 기록이 마지막, 기록입니다."

레시아는 잠시 바깥을 바라보다가 메모리아 큐브를 바라보며 슬픈 얼굴을 한다.

"...혹시라도, 이 기록을 본 사람이 제 동료... 소피아, 탈체크, 에스카, 루티..."

그리고 머뭇거리며, 한 사람의 이름을 덧붙인다.

"...클레온."

"...이라면, 나는, 괜찮으니까. 부탁이야. 나를­"

마치 레시아는 메모리아 큐브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동료의 얼굴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한, 찢어질 듯한 가슴을 움켜쥔 채 이야기한다.

"찾­"

[뚫었다! 성검은 이 안에 있어!]

다음 순간, 바깥에서 들려오는 고함. 레시아의 성검을 빼앗기 위해 모여든 고대인들의 집단이었다.

레시아는 아랫입술을 꽉 물면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메모리아 큐브의 시야에는 지금까지 레시아에 의해 감추어져 있던 또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비추는 것이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어린 소녀.

레시아는 그녀에게 황급히 손을 뻗으며 품에서 마도구를 꺼내 사용한다.

"읏...! 가자, 릴리스!"

"응..."

그렇게, 차원의 틈을 열고 뛰어든 그녀와 교차하듯이, 바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고대인들.

그들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혀를 차며 레시아의 흔적을 쫓는 것으로 기록이 마무리된다.

004

"... ..."

라일라는 기록을 다 재생하고 난 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잘 몰랐다.

이 기록, 자체는 그렇게 가치 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초세계의 어떤 시점으로 레시아가 이동했는지도 몰랐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런 것으로 어떻게 그녀를 쫓으란 건가.

라일라가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클레온을 돌아보면, 그의 반응은 라일라가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레시아를 향해 칼을 들이민 고대인에 대한 분노는 물론이었지만.

그보다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그 여자아이…."

"아, 응. 흑마의 일족…. 이었지?"

아무래도, 클레온은 그 여자아이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본적이 있어."

"...뭐?"

그리고 클레온의 입에서 이어지는 말에 라일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바로 얼마 전에 말이야. 우리를 방해했던 그 붉은 머리의 악마가 데리고 있던 소녀 서큐버스."

"...아!"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도 떠올렸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확실히, 클레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와 얼굴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물론, 날개나 꼬리와 같은 악마적인 특징은 없었지만.

"뭐야 그럼...? 시간순이 어떻게 된거지? 기록 속의 여자애와 그 서큐버스가 같은 인물... 아니, 적어도 연관 있는 인물이라는 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왕도에 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늘었는걸. 그녀에게 물어야 할 게 생겼으니까."

라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물론, 지금 있는 적은 단서를 쫓는다면 그것이 확실히 올바른 판단이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리고. 레시아를 도왔다는 고대의 연구자. 트리스라는 사람인데. 라일라는 들어본 적 없어?"

그런 라일라의 사고를 가로막듯, 클레온이 다음 이야기로 주제를 넘기자, 라일라는 잠시 고민을 하듯 생각하다가 눈을 번쩍 떴다.

"트리스...? 맞아! 트리스! 트리스 메기스토스! 우리가 쓴 석건을 만든 사람! 고대의 연구자 중에서도 가장 천재라고 기록되어있는 인간이야! 현대에서는 흔한 이름이라 잊고 있었지만, 고대인에 차원의 틈을 열 수 있는 연구가 가능한 건 그 사람 본인 정도일 거야...!"

"...그의 기록을 살피면 레시아에 관한 것을 더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인지 아닌지 모를 여자아이를 찾는 것보다야 그쪽의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하아…. 다행이야.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어서…."

클레온은 진이 빠졌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앞으로 구부린다.

그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은 라일라는 눈을 두세 번 깜빡이며 그의 등을 쓸어 내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손뼉으로 내리쳤다.

"이제 겨우 입구를 빠져나온 정도야. 앞으로도 도와줄 테니까, 나만 믿으라고."

"... 고마워, 라일라..."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고대의 연구자, 트리스의 기록.

그리고, 흑마의 일족 서큐버스 소녀.

이 두 사람에게서 레시아의 정보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선 역시 왕도로 갈 필요가 있었다.

트리스 메기스토스는 현재의 왕도가 있는 지역에서 연구하던 인물.

그리고, 소녀 역시 왕도에서 날뛰는 중인 붉은 머리의 악마가 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클레온은 잠시 영사기 너머에 비춘 광경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천천히, 조금씩이지만 그녀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부탁이야 나를 찾­`

머릿속에 영상의 일부가 스치고 지나간다.

그 뒤의 말이 어떤 것이었을지, 클레온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당신을..."

그의 의지는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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