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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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아 큐브의 해석이 끝난 뒤, 석건은 무사히 창고에 반환되었다.
열쇠를 반환하러 간 클레온은 창고의 경비에게 `앨리스`라는 여성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경비는 그런 인물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역시, 그때 창고에서 본 것은 거울이 만들어낸 것이었나.
같은 작은 납득을 자신의 안에서 마친 채, 클레온은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제 아카데미로 왔던 원래의 목적은 모두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메모리아 큐브의 해석도 마쳤고, 사샤의 저주는 루벤과의 공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제어할 수가 있으니 이 이상 짐승화가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쿠온에 관한 것이 문제였지만.
"저희로서는, 쿠온 양께 위해를 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셈입니다."
사건이 끝난 후, 아카데미로 직접 찾아온 교단 성직자의 일을 떠올린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찾아온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노인은, 스스로를 성자의 가호 교단의 고위 성직자라고 이야기하며.
쿠온이 교단을 피해 아카데미에 있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오해를 풀기 위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실상은, 그녀가 별의 의지로 천사로 각성한 것에 의해 교단에서도 그녀에 대한 취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 중이며.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쿠온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 교단의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에 더해, 현재 왕도에서는 많은 성직자의 힘이 필요하며 괜찮다면 자신들에게 힘을 빌려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치사하네…. 그런 말을 하면 쿠온이 거절할 리 없는데."
라일라는 혀를 차면서 교단의 수작질을 비난한다.
쿠온이 저택의 거실에서 교단의 방문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머지는 바로 위 층에서 도청 마법을 이용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신들이 없는 편이 교단의 솔직한 심정을 캐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의 행동이었지만.
쿠온에게 있어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이야기가 계속되어 안심하고 있던 순간, 그런 제안을 해 온 것에 멋대로 실망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 두 사람(클레온과 사샤)은 쿠온이 어떻게 대답하려는 지 귀를 기울인다.
쿠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이내 조용히 입을 열어 사제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미력하지만 제 힘이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에 응하는 것이 성직자로서 해야 할 도리겠죠."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 나오자 라일라는 살짝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물론 왕도의 시민 여러분들을 돕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저에게는 저의 동료들과 함께해야 할 일이 있어요. 어디까지나 그쪽을 우선시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이 조건입니다."
단호한 어투로 그렇게 대답하자, 교단의 사제는 잠시 눈을 두 세 번 깜박거린다.
그러고는 쿠온의 표정을 조금 살피다가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쿠온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겠지.
"...헤에. 쿠온도 꽤 하잖아."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말이야..."
클레온이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자, 라일라는 팔꿈치로 칼레온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놀려대는 것이었다.
그 뒤, 사제를 웃는 얼굴로 떠나보낸 일행은 다음 여행의 목적지를 왕도로 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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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카데미를 떠나기 전에 클레온과 일행은 아카데미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학원제에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클레온에게는 아루루와의 약속도 있었거니와, 사샤나 쿠온 역시 아카데미의 축제에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물론, 라일라는 `으에엑`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일행의 기대를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어쩔 수 없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아카데미의 축제는 꽤 본격적인 것으로, 각 과가 출품물을 정하여 다른 학생들이나 축제 중에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학업의 성과를 보이는 것이 기본이었다.
예를 들면, 마도구학과는 개발한 마도구들을 진열하여 실험하는 광경을 보여준다던가.
마법학과는 단상 결투라고 불리는 1:1의 모의 마법 대회를 여는데, 이것이 또 화려한지라 꽤 많은 관객이 모일 정도이다.
라일라는 한번도 나간 적이 없지만.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클레온이 임시 강사로서 소속되어 있는 `성학과` 역시 학원제에 무언가를 출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출품물에 관해서는 류드 부인은 최종적인 허가만을 하고 내용물은 학생들이 정하게 되어 있었는데.
대체 성학과의 학생들이 어떤 의견을 낼까 걱정되는 마음에 클레온 역시 여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라고 하면 예상대로일까….
"OO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은 어떨까요? 작년에도 꽤 반응이 좋았는데."
"작년에 했던 걸 올해 또 하는 건 너무 식상하지 않아? 나는 절대로 아카데미 100인 뽑기 대회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기간 내에 100명을 먼저 사정시킨 쪽이 이기는 거야."
"그거…. 재작년에도 했다가 누구 씨가 손님에게 파이즈리를 해주겠다고 강요해서 경고 받았던 거 기억 안 나?"
"또 너냐 파이루..."
"아니, 루즈리에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넘어선 안 되는 선을 줄넘기하면서 뛰어넘더니, 그대로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리는 학생들의 발언에 클레온은 머리가 아파졌다.
모두들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는 것은 좋지만,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성학과 공중변소는?"
"몇 년 전에 진짜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기절 한 꼬마 손님이 계셔서 같은 기획은 통과 못 할걸요?"
크고 작은 사고도 끊이질 않은 듯했다.
"역시 우리 만으로는 제대로 의견이 안 나오는걸. 누님은 교수님이랑 있을 것이고…. 강사님은 어떠신가요?"
"... 나에게 아이디어를 물어보는 거야?"
자신에게 갑자기 바톤을 넘긴 데미스를 조금 원망하듯이 바라본 클레온은 고민하듯 입을 다문다.
클레온으로서는 혹시라도 사샤나 쿠온이 자신의 과로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되도록 건전한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나는 잘 모르지만…. 다른 과는 어떤데? 듣기로는 일일 찻집 같은 걸 경영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
"찻집…. 찻집인가요? 저희 과와는 이미지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은데…."
클레온의 대답에 데미스는 어렵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고민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루즈리가 손뼉을 치면서 알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 우리가 기억을 잃고 있던 동안에는 이상한…. 예의범절과? 같은 게 되어 있었잖아! 그걸 소재로 삼자는 이야기군요! 강사님!"
"오오! 그런가! 확실히, 그때의 우리는 다른 과에서도 꽤 선망받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어…. 그렇다면 꽤 본격적인 찻집에, 복장도 찾아오시는 손님들을 예의 바르게 모실 수 있도록…."
"시종 복장은 어떨까요? 여성은 메이드 복. 남성은 집사 복을 입는 거예요."
"겉으로는 평범한 찻집. 하지만, 뒤 메뉴를 부탁하면 다른 방으로 안내받아서…. 과연. 건전해 보이는 겉과, 퇴폐적인 뒤면. 그 사이에 있는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는 갭을 노리는 거로군!"
"역시 강사님이야! 아카데미의 영웅! 성학과의 자랑!"
자신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째선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는 학생들을 보며 클레온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아마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할 것이다.
역시 성학과의 인간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클레온이었다.
002
그렇게, 출품할 물건이 정해진 뒤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기본적으로 강사들은 안전에 관한 부분만 체크하고 학생들이 준비하는 물건에는 최대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성학과의 학생들 역시 클레온에게는 자신들에게 맡겨만 달라고, 강사님의 아이디어는 완벽하게 자신들이 형태로 하겠다면서 절대로 성학과의 건물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당부를 해둔 상태였다.
어디부터가 자신의 아이디어였을까 클레온은 고민을 해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은 채 5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축제의 첫날이 밝았다.
그 사이에 클레온이 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사건 이후로 틈만 나면 잠을 자는 성검 `칼리번`을 신경 쓰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 방에 가서 이름을 불러보아도 자고 있고.
점심에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고 있고.
저녁이면 당연히 밤이 되었다고 졸려서 자고 있고.
성검이니 인간과는 몸의 구조가 다른 것도 사실이겠지만 너무나도 이질적인 그 생활 방식에 클레온은 또다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그 녀석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으니까."
그런 클레온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갈라테아의 목소리.
"...역시 마검사인 나와 연결된 것이 문제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달라.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전의 주인, 알베인이지."
팔짱을 낀 채 설명하는 갈라테아의 말에 클레온은 다시 한번 시선을 문 너머로 돌린다.
"그녀가 아직 알베인의 성검이었을 때. 알베인은 자신을 용사답게 하는 긍정적인 감정 외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잊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칼리번에게 떠넘겼어. 열등감. 공포. 슬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있는 상태에서 한 번 기능을 정지했고.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껴안은 채 다시 기동을 한 상태에서 반은 인간이 되어 있으니. 여러모로 오류가 일어나서 그걸 `잠`을 통해 해결하려는 거겠지."
"...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건가?"
"글쎄?"
클레온의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을 한 갈라테아는 클레온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 답은 이미 네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
"... ..."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볼에 살짝 키스한 뒤 몸을 돌려 거실로 내려간다.
클레온은 다시 한번 칼리번이 잠들어있는 방의 문고리를 잡고 헛기침을 한 뒤 문을 열었다.
"칼리번, 일어나 있어?"
그녀를 위해 마련된 작은 방에서도,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침대 위.
열어 젖혀진 커튼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해의 빛을 받으며, 그녀는 얌전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부스스한 금발, 그리고 반쯤 감긴 눈.
앳돼 보이는 인상에 어울리는, 순백의 원피스.
그리고, 등에서 돋아난 한 쌍의 새의 날개.
전신에서 빛을 반사하는 듯한 순백의 소녀는 바깥에서의 이야기 소리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클레온을 바라본다.
"후아아... 클레온씨.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도 깨우러 와주셨군요…."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인상을 준 그 소녀의 모습에 살짝 넋을 잃었던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녀가 있는 침대의 옆까지 다가왔다.
"그래. 벌써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좋은 점심이네요~ 금방 일어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느긋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그녀, 언제나 같으면 이대로 방을 나서서 그녀가 다시 잠들어 버리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결말이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외출할 거야. 나갈 준비를 해 줘."
"외출인가요~? 그러면…."
클레온의 말에 칼리번은 한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한껏 빛나며, 이윽고 아름다운 검의 모습으로 변한다.
[자~ 이걸로 같이 갈 수 있겠네요~]
"아니. 미안한데 인간의 모습으로 같이 갈 수 있을까?"
[... ...]
칼리번은 클레온의 부탁을 듣더니 잠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던 그녀는 이내 다시 한번 빛나면서 아까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만, 부스스했던 머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몸에 걸친 원피스의 곳곳에 장식이 추가되면서 허전했던 옷은 한 벌의 외출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쩔 수 없네요~ 새로운 주인님의 부탁이시니까. 특별이에요?"
"...그거 고마운걸."
졸린 듯한 눈을 살짝 크게 뜬 그녀의 눈은 예상대로 아름다운 사파이어색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클레온이 그런 그녀에게 가까이가 손을 내밀자, 칼리번은 그런 클레온의 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띠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를 데리고 저택을 나서는 모습을 옆에서 본다면 마치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로 보일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녀는 갈라테아의 안에서 그녀의 핵과 클레온의 마력을 통해 잉태된 존재.
갈라테아와 클레온의 딸이라고 해도 문제없겠지. 갈라테아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런데, 어디에 가는 건가요?"
"아카데미의 시가지야. 오늘부터 축제거든."
클레온의 말에 칼리번은 기쁜 듯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오오~ 인간의 축제인가요! 엘레시아에도 축제가 있었죠~"
"아아. 그렇지. 1년에 한 번 있는 기원제인가…."
클레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엘레시아에서 이루어지던 모험가들에 의한 축제이다.
각 해의 정 가운데의 날. 즉 한여름에 이루어지며, 다음의 기원제까지 1년 동안 모험의 안전을 비는 축제이다.
대부분은 상가의 사람들과 모험가 길드가 협력해서 이루어지고, 모험가들은 축제를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교하면, 아카데미의 축제 쪽이 훨씬 규모가 크지만."
"그건 기대되네요~ 그런데 어째서 저인가요? 갈라테아씨라던가, 쿠온씨라던가... 더 같이 가셔야 할 분이 계신 거 아닌가요?"
싱글싱글 웃으며 클레온을 향해 이야기 하는 칼리번이었지만, 그녀의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 너머에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클레온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알베인을 통해 인간에게 한 번 실망한 적이 있었다.
이전의 싸움에서야 클레온을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로부터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원인이겠지.
클레온은 그런 칼리번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한다.
"너에게도 아카데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흐음...?"
잘 모르겠다는 듯한 목소리를 올리는 칼리번.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그녀에게 주변을 둘러보며 이야기한다.
"아카데미를 구할 수 있던 건 모두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 모두에는 칼리번 너도 포함되어 있어. 비록 나는 용사가 아니라 마검사지만. 너도 네가 지켜낸 것들을 한번 보고 싶지 않아?"
"그건….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네요~. 알베인은 저를 굉장한 무기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기에 싸움을 하거나 자랑할 때가 아니면 저를 검집에서 뽑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칼리번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그 눈 너머, 표정 속에서 그녀가 어떤 감정을 품는지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클레온 씨~ 그럼,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아. 물론이야. 오늘은 꽤 긴 시간을 걷게 될 것 같으니까. 각오해."
"후후. 저는 발이 아프면 등의 날개로 날면 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003
그 뒤로, 클레온과 칼리번은 아카데미의 시가지를 비롯하여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학과가 준비한 것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특히 칼리번이 관심을 보인 것은 자유 시장의 노점에서 판매하는 길거리 음식들이었는데.
"와~ 저것도 맛있겠네요! 이번엔 저기로 가 봐요."
"잠깐잠깐. 아직 아까 산 물건들이 이렇게나 남아있는데, 또 다른 걸 먹겠다는 거야?"
군것질용의 음식이라든지, 디저트 등이라든지. 관심이 가는 것을 모조리 사고는.
한입을 먹고 다음 것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인간이 아닌 성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별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클레온의 양손이 가득 찰 정도로 먹다 만 음식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게 봐줄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 있는 것들을 다 먹으면 배가 불러서 새로운 것의 맛을 조사할 수 없는걸요~?"
칼리번은 무엇이 잘못되었냐는 듯 웃으면서 클레온을 돌아본다.
그 순진무구한 미소와 말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한숨을 내쉰다.
말 그대로 날개를 이용해 살짝 뜬 상태에서 지치지도 않고 이동하는 그녀는 주변으로부터 시선을 모으기 일쑤였지만.
그녀 본인은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데리고 와서 다행인 걸까, 아니면 내가 실수한 걸까…."
그런 식으로 자조하듯이 이야기하는 클레온이지만, 그녀가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움직여 준다면 실수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뒤로도 몇 개 정도 가게를 더 옮겨 다니며 클레온은 물론이고 칼리번의 양손이 모두 꽉 찼을 때가 돼서야 그녀는 멈추었다.
"이 초콜릿이라는 것은 정말 맛있네요! 인간들은 늘 이런 좋은 걸 먹고 지내는 거군요…."
"아니, 늘은 아니지만…."
마치 현대로 시간여행 해온 고대인과 같은 말에, 클레온은 살짝 쓴웃음을 짓는다.
벤치에 앉은 채 그녀가 학생들이 만든 음식이 맛있다는 듯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 역시 데리고 온 것이 정답이라고 저절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쁘지 않네요. 응."
"맛이?"
중얼거리는 칼리번에게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칼리번은 특유의 초승달 미소를 지어 보이며 클레온을 돌아보았다.
"정말~. 진지한 이야기에요."
그녀는 투정을 부리듯이 이야기하고는 눈을 떠서 주변을 지나가는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이게, 제가 지켜낸 것. 당신과 함께 말이죠."
"...그래."
"이전에도 알베인의 무기로서, 모험 속에서 사람을 지켜낸 적은 많았어요. 그들이 알베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괜찮아요. 저는 결국 검. 사용하는 이의 의지에 따라 휘둘러질 뿐이니까요."
칼리번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알베인과 함께하던 시절. 비록 각성은 하지 못한 상태였더라 하더라도 그녀에게도 자아가, 인격이 깃들어 있었다. 성검도 마검도 모두 그러하다.
"하지만. 알베인은 그것을 오로지 자신의 힘이라고 생각했었죠. 당신이나 쿠온씨, 라일라씨와 같은 동료의 도움은 물론이고, 그가 부리는 힘 대부분이 성검인 저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아니, 인정하지 못한 채."
알베인은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손에 쥐어진 힘에 취해 있는 상태였다. 늘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클레온도, 어느샌가 클레온과 친해져 있던 쿠온도. 이 힘이 있다면 자신이 그들보다 위에서 그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검은 용사를 용사로 만드는 존재이다.
하지만, 알베인은 용사가 될 수 없었다.
그에게 성검은 어울리지 않은 것이었다.
"저는 다른 성검을 모릅니다. 다른 용사도 몰라요. 하지만,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저희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어느샌가, 평소의 느긋한 말투에서 더욱 단정한 말투로 변한 칼리번이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고마워요. 클레온씨. 갈라테아씨와 함께, 저를 구해주셔서. 그리고, 제가 다른 이들을 구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인사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마음이 시원해졌나?"
"네~. 머릿속에 낀 안개가 조금 걷힌 느낌이네요~."
다시 평소와도 같은 말투로 돌아온 그녀지만, 이제 그녀가 지금까지와 같이 긴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일은 적어지겠지.
그녀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떨쳐내는 데에는 역시 그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클레온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돌아보고 싶은 곳 있어?"
"으음~ 그렇네요. 분명. 클레온씨는 아카데미에서 임시 강사를 하고 있는 거였죠?"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위기가 찾아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설마 하는 눈치로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칼리번이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클레온씨가 강사로 계신 과의 출품을 보고 싶어요!"
"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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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과의 건물.
결국 칼리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던 클레온은 그녀를 데리고 이곳에 와 있었다.
수업에 나갈 때도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가 종종 있는데, 고삐 풀린 그 녀석들이 대체 어떤 사단을 벌여놨을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건물에 가까이 가면 입구에서도 긴 줄이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늘어져 있는 줄의 가장 뒤쪽에는 깔끔한 검은색 정장 집사 복을 입은 데미스가 팻말을 든 채 서 있었다.
"지금 오신 손님께서는 이쪽에 서 주세요! 예상 대기 시간은 20분 정도입니다!"
"저기에 서는 건가 봐요! 클레온씨. 어서 가요!"
되도록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칼리번은 아랑곳하지 않고 클레온을 데리고 데미스가 있는 최후열로 간다.
"오. 강사님. 그리고 이쪽은…?"
"칼리번. 동료야."
"칼리번씨군요! 환영합니다. 꼬마 숙녀분. 멋진 금발과 벽안이네요."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금발벽안 페티쉬였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사님. 저는 어린아이는 보호 대상이지 그런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아아. 그러냐, 그건 다행이군…. 하지만 멋대로 마음을 읽는 건 그만둬."
리오메스만큼은 아니지만, 이 녀석도 상당한 괴짜에 이상한 녀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클레온은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에 대한 답을 해오는 데미스에게 이야기했다.
"...꽤 성황인 것 같군?"
"네. 정치학과의 수석분께서 잠시 들렸다가 소문을 내신 것 같아요. 완벽한 귀족의 접대가 가능한 찻집이 있다고…."
"그 녀석. 이런 곳에 관심이 있었나?"
데미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인다.
"아무리 그래도 뒤 메뉴에 대해서는 질색을 하셨지만요."
...뒤 메뉴.
아마, 이번 성학과의 출품에서 실질적으로는 그쪽이 본래의 목적이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클레온으로서는 그쪽을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칼리번이 신경을 쓰지 않도록 화제를 돌리는 것이 중요했다.
"차는 어떤 게 있지?"
"저와 누님의 고향에서 내려오는 전통 찻잎을 사용한 물건입니다. 향도 진하지 않고, 맛도 텁텁하지 않고 단 편이니 칼리번씨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을 거예요."
"오~ 그건 기대되네요!"
아무래도 인간의 먹을 것의 맛에 푹 빠진 듯한 칼리번이 눈을 반짝인다.
그 뒤로도, 데미스와 시답잖은 이야기(뒤 메뉴를 제외한 화제)를 나누다 보면 어느샌가 줄이 줄어들어 클레온이 입장할 수 있는 차례가 되어 있었다.
입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클레온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꽤 본격적으로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장식된 찻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아아. 강사님."
입구에서 클레온과 칼리번을 맞이한 것은, 푸른 머리를 한 갈래로 묶어내고, 단정한 메이드 복을 몸에 걸친 리오메스.
살갗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상태임에도, 기품 있는 작태와 찰랑이는 머릿결. 그리고 귀에 걸린 푸른 수정의 귀걸이가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요염하게 보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분과 같이 오셨네요. 혹시 이쪽 분도?"
"아, 아니. 칼리번은 그런 게 아니야."
떠보는 듯한 리오메스의 말에 조금 당황하여 대답하면, 예상했다는 듯이 리오메스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금연석 자리로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리오메스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곳은,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의 테이블.
칼리번과 마주 보고 앉으면,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오늘은 제가 주인님을…. 어라!? 강사님!"
"루즈리..."
그런 클레온에게 다가와 메뉴판을 건네는 것은 성학과의 말괄량이 쌍둥이. 그중에서도 여동생의 쪽인 루즈리였다.
상당한 볼륨의 가슴을 어떻게든 꾸겨 넣은 듯한 흉부는 의복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후후~. 역시 강사님도 신경 쓰이셨군요? 저희의 출품이."
"...그거야 그렇지만."
"헤헤♡ 아, 이쪽은 강사님의 따님이신가요?"
클레온의 대답에 쑥스럽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는, 칼리번에게 고개를 돌려 이야기한다.
"... ..."
"맞아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칼리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칼리번...?"
"틀리진 않았잖아요? 클레온 파파~"
"이니스에게서 배운 건가……? 뭐. 그녀의 말대로 그런 느낌의 관계야."
"헤에~ 머리카락 색을 보면 아루루씨가 어머니인가요? 하지만 등의 날개를 보니까 하피의 혼혈 같기도 하고~"
루즈리는 호기심이 동했는지 칼리번의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클레온의 헛기침이 아차차…. 하고 웃어 보이며 메뉴판을 건넸다.
"주문이 결정되시면 벨을 울려서 불러주세요!"
그렇게 기운차게 이야기한 뒤, 클레온의 귓가에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물론, 뒤 메뉴를 원하시면 조용히….♡"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 한 그녀를 살포시 밀어낸 뒤 클레온은 메뉴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005
내어진 차는 데미스가 말하던 대로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단맛이 느껴지는 훌륭한 차였다.
칼리번도 마음에 들었는지 `후우~`하고 앞에서 입김을 내시면서도 연신 차를 들이켜고 있었다.
"차를 마신 뒤엔 슬슬 저택으로 돌아갈까."
"그렇네요. 돌고 싶은 곳은 더 있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로 할까요. 내일은 사샤씨와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말하며 슬슬 일어날 채비를 하려는 그때.
"크, 클레온 강사님! 큰일이에요!"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파이루. 그녀 역시 메이드 복을 걸치고 있었기에 움직일 때마다 가슴의 천 부분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 도 없이 마치 급한 일이 있다는 듯 클레온의 앞에 멈춰 서는 그녀.
"재, 재고를 넣어둔 방에 어떻게 들어온 건지 마물이 있는 것 같아서…. 다른 분들은 지금 바깥의 손님들을 피난시키고 계시는데 루즈리가 안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어요!"
"뭐…? 어느 쪽이야? 바로 가지."
"저도 도울게요~"
클레온이 파이루를 따라가려고 하면, 앉아 있던 칼리번도 일어나서 모습을 검의 형태로 바꾸어 클레온의 허리춤에 걸린다.
"이쪽이에요!"
그리고, 다급히 파이루를 따라가면, 찻집을 운영하는 교실의 방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걸어가, 따로 마련된 상대적으로 작은 방의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재고를 넣어둔 방 같은 것이 아니라, 침실이었다.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
"후후후...♡"
"아하하...♡"
침대에서와 뒤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드디어. 기회를 잡았네요…. 클레온 강사님."
"지금까지 저희를 피해오셨지만. 오늘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아요…."
메이드 복을 입은 쌍둥이 자매가 앞뒤에서 클레온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잠깐... 너희들…. 설마."
그리고, 갑작스럽게 가팔라져 오는 클레온의 호흡.
동시에 그는 아랫도리가 뜨거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타, 탔구나…!"
"이제 와서 눈치채서도 늦으십니다! 얌전히 누워주세요! 해독해 드릴 테니까!"
"저희의 초절기교 젖가슴 봉사로"
[어라라…?]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 직전, 클레온의 허리춤에 있던 칼리번이 갑작스럽게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며 땅으로 떨어졌다.
"카, 칼리번?"
"언니!? 설마 양쪽에 탄 거야?!"
"하, 하지만. 어느 쪽에 탔는지 깜빡해서…."
당황해하는 세 사람과, 얼굴이 붉어진 채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지는 칼리번.
밀실의 공간, 미약을 먹은 네 사람….
아무 일도 없을 리 없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