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22화 (122/506)

〈 122화 〉 감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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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열려있는 커튼 너머로, 아침의 햇살이 조금씩 비춰 들어오는 조용한 방.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클레온의 정신도 점점 각성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었지, 같은 애매한 기억을 더듬어가다 보면.

쌍둥이 자매와의 길었던 행위가 끝난 후, 약효가 미묘하게 남아있는 몸을 이끌고.

칼리번을 등에 업은 채 라일라의 저택으로 돌아와서….

쿠온이 신성학과의 답례로서 받아온 고급 와인을 일행끼리 다 같이 마시다가….

누군가가 찾아와서 거기에 마중 나갔다가­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어찌 됐든,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키기 위해 한쪽 팔을 침대에 올린 순간.

시트를 덮는 천의 부드러움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져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음냐..."

새액, 새액, 숨을 내쉬며 자는 분홍색 머리의 소녀­

머리에는 작은 뿔이 돋아나 있고, 엉덩이의 위에는 훌륭한 도마뱀의 꼬리가 자라나 있었다.

몸에 걸친 것은 아무리 보아도 클레온의 와이셔츠.

그 아래는 순백의 하의 속옷 밖에 걸치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곁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자기 손이 닿은 것은, 그런 그녀의 가슴 부분이라는 것을 클레온은 한 박자 늦게 알아챈다.

"... ..."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깨닫기 직전, 똑. 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

"클레온 님. 갈아입으실 옷과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조용하면서도 또박또박, 확실한 발음으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완벽하게 제정신을 차린 클레온의 눈이 크게 떠지면.

혹시라도 자신이 어제까지 겪었던 아카데미에서의 일은 꿈이 아닌지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우선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서 바깥을 바라보면, 다행히도 펼쳐진 것은 아카데미의 주택가.

그렇다는 것은­

"...클레온 님? 아직 주무시고 계시는가요?"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과 자신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드래고니안[용인].

"페르디아...? 루티?"

두 사람이 아카데미에 찾아와 있다는 것이었다.

001

"아하하~ 미안해. 갑자기 찾아와서 숙박이랑 식사까지~"

루티가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이야기하자, 집주인인 라일라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을 그냥 내쫓을 수도 없잖아. 이렇게 찾아온걸."

"감사합니다, 라일라 님."

페르디아의 인사에 라일라는 `응.`하고 짧게 대답한 뒤 고개를 끄덕인다.

간소한 아침 식사가 끝난 뒤, 칼리번의 부탁으로 사샤와 쿠온은 함께 아침 일찍부터 아카데미의 거리로 외출한 상태였다.

집에 남아서 티타임을 즐기는 것은 루티와 페르디아. 그리고 라일라와 클레온.

갈라테아는 최근에 버릇을 들인 아침의 거품 목욕을 즐기고 있을 것이고, 마치 시종 부리듯 이니스를 옆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참고로 이니스는 갈라테아를 `갈라테아 새엄마`라고 불렀다가 한 대 맞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루티는 자신의 찻잔의 티스푼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클레온을 바라본 채 웃고 있었다.

느껴지는 시선에 그녀와 눈을 마주친 클레온은 살짝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물어봐야 할 것을 질문하기로 한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자, 마치 루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한다.

"얼마 전에 보내준 편지에서 꽤 엄청난 일이 있었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누나로서 걱정이 되서 찾아왔다는 거지!"

"클레온 님께서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이옵니다."

루티의 대답에 페르디아가 덧붙이면서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그러고 보니 근황 보고를 겸해서 사건이 끝난 이후에 그녀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떠올렸다.

그 편지를 받자마자 이곳으로 찾아왔다고 해도 꽤 일찍 도착한 것이지만.

"길드 마스터의 업무는 괜찮은 거야?"

"문제없어! 일주일 치 서류를 모두 처리해서, 애들한테 맡겨놓고 왔거든.~"

루티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브이자를 그리며 대답하고, 그런 그녀를 보며 페르디아는 작게 손뼉을 치면서 `굉장하십니다 루티 님...`하고, 그녀를 칭찬한다.

뭐랄까, 안 보던 사이에 두 사람은 꽤 친분을 쌓은 느낌이 들었다.

클레온은 이어서, 페르디아에게 묻는다.

"페르디아도. 의원의 일은?"

"조수를 해주는 아이가 부디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하여서….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의술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 이 기회에 혼자서도 의원을 맡는 경험을 맡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페르디아가 말하는 것은, 이전 그녀와 같이 암살자로서 길러지던 아이 중 한 명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선대의 죽음을 계기로 정식적으로 암살자의 길을 계승하는 것은 페르디아가 마지막이 되었지만.

남아있는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길로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클레온 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나?"

클레온은 페르디아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답했다. 그러자, 페르디아는 살며시 눈을 감은 채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이야기한다.

"네. 이전 알베인의 습격에서 다쳤던 아이들도 이제 모두 완치하여, 새내기 모험가로서 새 시작을 하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길드 사무소의 일을 도우며 스스로 생계를 세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클레온 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모두 어둠 속에 가라앉아 선대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채 살았을 것입니다."

"그건... 전부가 내 도움인 건 아니야."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조금 쑥스러운 듯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하지만, 페르디아는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언젠가, 저와 아이들이 클레온 님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흘러가려던 찰나, 페르디아의 표정이 조금 엄한 표정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클레온 님께서도 스스로 몸을 잘 가누셔야 합니다."

"그래 맞아! 어제는 깜짝 놀랐지. 현관문이 열렸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우리들 앞에서 고꾸라지듯 쓰러져서 기절해 버렸잖아?"

루티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클레온의 필름이 끊긴 순간의 일이었다.

"모두 허둥지둥해서 말이야. 라일라는 클레온의 가슴팍을 붙잡고 엉엉 울어댔었지. `클레온~ 죽지마~ 싫어~!`하면서 말이야."

"자, 잠깐! 루티! 뭘 말하고 있는거야! 나, 나는 그런 적 없어!"

라일라는 루티의 폭로에 얼굴을 새빨갛게 하면서 부정하지만, 그러고 보니 클레온도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있는다.

"여러분 모두 상당히 취해 계셨으니까요. 오직 사샤님만 멀쩡하셨습니다. 클레온 님께서 쓰러지신 이유는 몸에 남아있던 조합약의 성분과, 와인의 성분이 어우러져 일시적으로 몸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된 것이라고 봅니다."

클레온은 그 말에 움찔하고 어제의 일을 다시 한번 떠올리지만,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독제 대신에 내 피를 좀 먹이고 밤새 옆에서 붙어서 회복 주문을 걸어줬단 거지. 어때? 아침에 일어나니까 좀 괜찮았지?"

"아니, 숙취는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확실히 미약의 영향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느껴지던 두통은 확실히 숙취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루티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일 뿐이었다.

"어라…? 이상하다. 몸의 독을 전부 태워버렸을 텐데..."

"그렇다면, 역시 루티님의 혈액이 문제인 것이 아닐까요? 이종족의 혈액을 인간이 섭취하면 어떤 영향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이전 책에서 읽은적이 있습니다."

"용혈은 달라. 거의 순수한 마력 덩어리나 다름없으니까. 클레온의 정액보다 더한 수준의."

페르디아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비교 대상이 그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클레온은 조금 복잡한 심경이었다.

"인간과 용은 절대로 섞이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인간이 용혈을 섭취한다고 하더라도 마력,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나오지는 않을 거야."

"그렇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두통의 원인이 신경 쓰이는 걸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페르디아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클레온의 이마에 손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의료계의 스킬 중에는 촉진을 하는 것으로 대상의 건강 상태를 간략하게 파악하는 것이 있었다.

클레온이 어제, 칼리번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한 마력의 제어를 마력 없이 해낸다고 해야 할까.

맥박, 혈류, 근육의 상태 등을 순간적으로 모두 스캔하는 이 스킬은,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대상의 `약한 부분`.

즉, 급소를 찾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유용한 능력이다.

"음... 육체상의 문제는 없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로 건강하세요."

"페르디아가 그렇다면 괜찮은 거겠지. 실제로 지금은 머리도 안 아픈 상태니까."

클레온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이야기하고, 페르디아는 그런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오늘은 클레온이랑 함께 셋이서 축제를 즐기는 거로 결정이지?"

"뭐….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은 있어?"

클레온의 말에 루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물론! 성학과의 찻집이야!"

"안 돼."

"왜!? 어째서! 클레온, 성학과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클레온의 단호한 거부에 루티가 징징대며 클레온에게 매달리지만, 클레온의 의지는 굳건했다.

"페르디아는?"

"저는... 클레온 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장소는 상관하지 않사옵니다."

"루티. 페르디아를 좀 본받아."

"나도 클레온이랑은 어디에 있어도 즐겁지만! 더 즐거운 곳에 가고 싶단 말이야.~!"

라일라는 그런 루티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루티는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이것이 정녕 수천 살을 살아온 드래곤의 모습이라는 것일까.

평소의 그녀를 알고 있는 길드의 모험가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게 수십 초를 클레온에게 매달려있는 루티.

다음 순간.

키잉­!

하는 소리가 클레온의 귀를 울린다.

아무런 전조 없이 찾아온 이명에 클레온이 몸을 움찔거리면서 귀를 막고.

그와 동시에 클레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던 루티도 움직임을 순간 멈춘다.

"...? 왜 그래? 클레온?"

갑작스럽게 귀를 막은 클레온을 바라보며 라일라가 이상하다는 듯 질문한다.

아무래도, 라일라에게는 방금 그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역시 두통이…."

"아, 아니. 괜찮아."

페르디아에게는 그렇게 대답하지만, 클레온의 시선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어느 한 방향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루티를 향한다.

그녀의 눈은 어느샌가 세로 동공으로 찢어진 채로 깜빡이지조차 않은 채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까까지의 어린아이같이 떼를 쓰던 그녀나, 길드 마스터로서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그녀가 아닌.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세계의 재앙. `드래곤`의 얼굴이었다.

"...미안. 클레온. 역시 찻집은 괜찮아. 대신, 다른 곳으로 가자."

"...? 그래. 잘 생각했어."

눈을 부릅뜨고 어느 한쪽을 바라본 채 말하는 루티의 기백에 조금 압도된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한다.

페르디아는 그런 두 사람을 보고 무언가 걸리는 듯했지만 우선은 그런 의심을 접어두도록 한 것이었다.

002

그 뒤의 루티는 잠시 한동안 그런 태도를 유지했지만, 이내 언제나 처럼의 그녀로 돌아왔다.

클레온도 페르디아도 그런 그녀의 변화에 내심 마음을 졸였지만, 우선은 그녀에게는 `맹약`의 효과로 인해 반격을 제외하면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있었기에 아카데미에서 그녀가 갑자기 날뛸 일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고는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세 사람이 함께 아카데미의 거리로 나가면, 축제의 둘째 날을 맞아 어제보다 더욱 많은 관광객이 아카데미를 찾은 상태로 사람들의 무리가 그곳을 꽉 채우고 있었다.

"굉장하네요... 엘레시아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거기는 출입하는 인구는 꽤 되지만 상주하는 인구는 적으니까. 축제가 되더라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들끓진 않지... 그렇지 루티?"

"... ..."

클레온이 루티에게 동의를 구하지만, 루티는 어느샌가 또다시 한 방향을 바라보며 아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티!"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클레온이 루티의 이름을 크게 부르자, 루티는 어깨를 움찔하면서 클레온을 올려다본다.

"아, 미... 미안. 클레온."

"...왜 그래? 그쪽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클레온의 말에 루티는 잠시 머뭇거리지만, 이내 머뭇거리면서도 입을 연다.

"아마... 우리를 찾아온 거야. 정확하게는…. 나겠지만. 같이 와 줘, 클레온."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손을 붙잡는 루티의 손은, 조금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클레온은 그런 루티의 이상한 상태를 직접 느끼고는 평범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둘의 옆에 있던 페르디아도 그런 루티를 가만히 둘 수 없었는지 그녀에게 묻는 것이었다.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지만... 말리진 않을게."

결국, 클레온과 페르디아는 루티가 이끄는 방향으로 인파를 헤치고 나아간다.

아카데미 전체에서 보자면,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원로회의 건물, 모나드의 관이 있는 아카데미의 중심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루티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중앙광장으로 나온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모나드의 관은 역시 거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루티의 시선은 모나드의 관의 지붕 위.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누구도 쉽사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그 건물의 꼭대기에 서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여성에게 향해있었다.

멀리에서 보더라도 그 존재감은 확연하게 느껴졌다.

흰색의 길게 길러진 머리카락. 붉은색의 눈.

그리고, 몸에 걸친 것은 검은색의 바지와, 남색의 겉옷. 그리고 적갈색의 망토. 남성 귀족의 복장이었지만, 얼굴이나 몸의 조형은 분명히 여성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몸에서 자라난 인간에게는 없는 기관.

훌륭하게 관자놀이에서 솟아나 위로 향하는 한 쌍의 검은 뿔과 허리에서 자라나 있는 파충류의 꼬리.

주변의 다른 이들은 아무도 그 여성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이 언제나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루티는 그 여성을 보며 클레온의 손을 꽉 쥔다.

"...클레온 님? 루티 님? 저곳에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까?"

페르디아는 루티와 클레온의 시선이 향해있는 곳을 살피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 ..."

아무래도, 그 여성이 보이는 것은 루티와 클레온뿐인 것 같았다.

"루티, 저건­"

"저건, 이라니. 너무하네. 인간."

갑작스럽게 자신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조금 전 까지 모나드의 관 지붕에 있던 그녀는 거의 공간을 뛰어넘은 것과 다름없는 속도로 클레온의 옆에 다가와 있었다.

황급히 몸을 젖히며 뒤로 물러서려는 클레온, 하지만 그녀는 클레온의 손목을 덥석 붙잡더니, 그 손가락을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클레온 님!"

그때가 돼서야 여성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페르디아가 황급히 클레온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보다도 빠르게, 여성의 입이 움직였다.

콰득!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날카로운 이빨이 클레온의 피부를 파고든다.

아무리 단련되어 있다고 하지만 손가락과 같은 부분을 칼로 도려내진 듯한 고통이 엄습하면 클레온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살갗이 찢기고, 피가 흘러나온다.

그런 여성을 향해 루티의 흉기와도 같이 날카로운 바람의 마법이 휘몰아친다.

여성은 그것을 보더니, 재미가 없다는 듯 뒤로 두 세 걸음 물러나며, 입가에 흐른 클레온의 피를 손가락으로 훑어낸다.

"아아... 역시. 섞여있군."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반쯤 뜬 눈으로 클레온과 루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하지 마. 여긴, 인간들이 너무 많아."

루티는 클레온의 손가락에 치유마법을 걸어주며, 주변의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바라본다.

"...흐음. 절멸의 폭풍이라고 불리던 네가. 그런 것을 신경 쓰다니..."

"너...!!!!! 내 앞에서 다시 한번 그 이름으로 날 부르면...!!!"

루티의 몸에서 살기가 폭발적으로 솟아오른다.

바로 옆에서 클레온을 부축하던 페르디아는 그런 그녀의 살기에 압도되어 살짝 호흡이 정지될 뻔하지만.

눈앞에 여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손가락을 튕긴 다음 순간.

네 사람은 방금까지 있던 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

넓은 초원 같은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초원의 위에서, 여성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루티에게 이야기한다.

"루티오스. 네 처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감응자가 있다면 우리에게 데리고 올 것. 그것이 네 맹약 중 하나였을 터다."

"...레티. 그는 감응자가 아니야. 감응자가 각성하기 위해선 뿔을 부러뜨려야만 해."

루티는 그녀를 노려보면서 이야기한다.

"클레온님께는 손을 대지 못합니다..."

페르디아는 단검을 꺼내든 채 루티와 클레온의 앞에 서서 자세를 잡고 레티라고 불린 여성을 노려보지만.

그녀 역시, 레티와 자신의 실력의 차이를 직접 겨루어 보지 않더라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눈 앞의 여성은 루티와도 같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이자, 원초의 마법의 지배자.

`용종`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떨리는 다리를 땅에 붙인 채 뒤로 물러서려 하지 않는 그 가상한 모습을.

루티는 페르디아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안 돼, 페르디아. 그녀에게 무기를 향하는 건, 곧 용을 적대시한다는 뜻이야."

"그녀의 말한대로다, 인간. 이번 한 번만큼은 자비를 보이지. 무지는 죄가 아니니까."

루티의 말에 페르디아는 하지만­ 하고 클레온을 돌아보지만.

클레온 역시 여기서는 루티의 말을 따르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개를 젓는다.

페르디아는 분하다는 듯, 단검을 허리춤에 되돌리고 클레온의 옆으로 가서 선다.

클레온은 완치된 손가락을 잡은 채 레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넌 누구지?"

"나의 이름은 레티오스. 거기 있는 바보 같은 여동생, 루티오스의 손위 자매이자, 다섯 드래곤의 일각. 인간이여. 너는 마검사 클레온이 맞겠지? 저주받은 흑마의 일족의 몇 안 되는 생존자. 용사 몰락자. 절계수 벌목자. 고대마수의 토벌자."

"...듣지 못한 칭호를 그렇게 거창히 붙여주다니. 영광이로군. 너희들 드래곤이 나에게 붙인 별명 같은 건가?"

자신에 대해서 아는 듯이 이야기하는 레티오스에게 클레온이 대답하자, 레티오스는 무심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들은 인간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에게 이름이 기억되고, 칭호로서 불린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 잘못되지 않은 생각이다."

루티는 클레온을 조금 걱정하는 듯이 바라보지만, 레티오스는 아까와도 같이 갑작스럽게 달려들 기색은 없는 듯했다.

"그래서, 어째서 나와 루티를 찾아온 거지?"

"반응을 느껴서이다. 감응자의 반응을."

"...감응자?"

들어본 적 없는 단어에 클레온이 의문을 표하자 레티오스는 루티를 바라보았다.

"...감응자라는 건, 인간 중에서도 아주 희귀하게…. 용과 짝을 이루는 것이 가능한 인간을 말하는 거야."

"짝을 이뤄…? 연인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건가?"

루티의 설명에 클레온이 질문하자, 레티오스가 대신 설명한다.

"...멍청한 몇몇 드래곤들이 유희 중에 인간을 파트너로 삼는 예는 있지만. 그들의 결말은 대부분 불행하다. 그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만들어지지 않고, 수명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지."

"... ..."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클레온의 뇌리에는 이전 루티와의 정사가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감응자는 달라. 드래곤들과 교미를 하면 아이를 만들 수 있고,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서 드래곤들과 같이 긴 수명을 누릴 수 있어."

루티는 그렇게 대답하며 클레온을 바라본다. 아마 루티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내가 그 감응자라는 건가?"

"그렇다."

"아니야."

그리고, 레티오스와 루티의 상반된 대답.

레티오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뭐 하는 짓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루티를 바라보면, 루티 역시 레티오스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클레온은…. 반쯤은 감응자지만, 완전한 감응자는 아니야. 우리 드래곤을 임신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드래곤과 같은 수명을 누리는 건 불가능해."

"그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미묘한 설명인걸."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레티오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한다.

"루티오스의 마력에 어릴 적부터 닿아와서 반쯤만 재능이 각성한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역시 루티오스. 너는 우리에게 이 인간에 대해 전달했을 필요가 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클레온에게는 용의 종마가 된다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많아!"

"용의…. 종마?"

페르디아가 신경 쓰이는 단어를 알아채 입에 담지만, 레티오스는 짜증이 나는 듯이 이야기한다.

"너는 동족이 멸종해도 좋다는 것이냐…?"

"세계의 관리자를 자칭하면서도 인간의 일을 방치하는 드래곤들 따위, 멸족해버려도 상관없어...!"

"진심으로 어리석구나, 동생아. 그러니까 네가 마검 황제를..."

두 사람의 마력이 부풀어 오르며 격돌한다.

스파크가 튀고, 거친 바람이 불고, 번개가 내리친다.

감정이 격양될수록 인외의 부분이 서서히 커지며, 두 사람의 몸은 어느샌가 점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루티! 진정해!"

"클레온은…. 내가 지킬 테니까!"

루티를 말리는 클레온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루티.

그것과 레티오스가 아름다운 적안의 백룡으로 변하는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초원으로 이동한 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클레온님, 지시를!"

페르디아는 클레온에게 자신의 단검을 한 자루 건네주며 이야기하고, 클레온은 하늘을 향해 비상한 두 드래곤을 올려다본다.

"...우선, 이 녀석들을 진정시켜야 해! 아무리 초원이라지만, 용끼리 부딪친다면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버릴 거다!"

이윽고, 레티오스의 번개의 숨결과 루티의 폭풍과도 같은 바람의 마법이 격돌하며.

멸망을 부르는 힘을 가진 두 마리의 거룡끼리의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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