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23화 (123/506)

〈 123화 〉 용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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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혜성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이전에는 생명이 꽃피우고 문명이 발전했던 땅에는 오직 폐허와 황폐해진 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벗어날 수 없는 멸망의 도래. 재앙이 자신들을 뒤덮는다는 절망과 후회 속에서, 원초 세계의 인간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수만 년의 진화를 거듭해 겨우 `인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로서 나타난 이들은 자신들이 이 경지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했던 시간의 1할도 되지 않는 전성기를 누린 뒤 사라졌다.

조금 더. 전쟁이나 싸움. 시기와 질투. 폭력과 기만보다도 중요한 것을 알고 살았더라면. 그것들을 잊지 않았더라면.

같은 후회를 가진 채 망령이 된 영혼들은 윤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스로의 존재마저 기억에서 잊어버리며 각종 유적 등을 향해 숨어 들어갔다.

허나, 후회를 하는 것은 원초 세계의 고대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빛으로 된 날개를 가진 작은 소녀가 황폐해진 곳에 발을 들였다.

그녀가 한 발짝 걸을 때마다, 황야에는 다시 생명이 돌아오기 시작하며 풀들이, 꽃들이, 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는 정해진 이름이 없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이름을 붙이지 못하니까.

그저 단 하나의 목적.

자기 육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별의 생명체들이 번창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가꾸는 것.

어떤 이들은 그녀를 `신`이라고 부르고.

어떤 이들은 그녀를 `세계`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그녀를 `별의 의지`라고 불렀다.

이 별에 탄생한 자연계의 모든 것은, 그녀의 손에 의해 설계되었다.

동식물을 포함하여, 생명체가 아닌 것들을 포함한 모든 것.

돌도, 광석도, 산도, 바다도.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적막밖에 남지 않은 세계에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세계는 실패했다.

이 세계에 번창하여 별을 가꿀 일꾼과도 같은 위치로, 그리고 이 별을 대표할 수 있는 종족으로서 자신을 본떠 만든 존재들.

자신이 가진 두 개의 권능 중 `지혜의 권능`을 부여한 생명체.

하지만 인간들은, 그 권능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말았다.

이런 것을 바라고 그들을 만들고, 그들에게 힘을 준 것이 아니었는데.

거대한 천둥 벼락이 울린 순간, 별의 의지인 그녀마저도 긴 시간 정신을 잃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의 폭발.

별의 의지­ 소녀는 천년이 넘는 긴 시간을 들이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나 세계를 재생시키는 데에 힘쓰고 있었다.

다행히도, 처음 만들었을 때처럼 7일이라는 긴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마모된 기억 속에서 어떻게든 비슷하게라도 세계를 재현한 그녀는, 마지막으로 별의 운명을 미리 내다보았다.

시공간을 초월한 곳에서는, 또다시 자신을 닮은 종족이 나타나 별에 가득 차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한 번 `인간`이라는 종족을 창조한 탓에, 자기 육체. 그리고 재현된 모든 생명체도 인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녀가 스스로 인간을 만들지 않더라도, 인간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어쩌면 원숭이가 진화하는 것으로.

어쩌면, 흙에서 빚어지는 것으로.

어쩌면, 알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그것 자체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이 회수한 지혜의 권능을 다시 그들에게 건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스스로의 파멸로 나아간다.

다시 창조된 인간들에게도 그 업은 지워지지 않겠지.

같은 결말을 맞이하도록 방치할 수 없었다.

그녀는 별의 어머니로서 모든 생명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번의 세계에는 원초 세계에 없었던 새로운 생명을 끼워넣기로 하였다.

강인한 육체, 초월적인 마력. 그리고, 긴 수명.

거대한 날개로 하늘을 날고, 모든 것을 멸하는 숨을 내뿜을 수 있는 최강의 생명체.

용종. 드래곤이라고도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별의 의지는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두 권능과는 또 다른 권능인 `힘의 권능`을 맡겼다.

그리고, 자신의 대리자로서 세계의 관리자가 되어줄 것을 명했다.

세계에 멸망이 찾아오려고 한다면,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존재로서.

`대적자`와는 또 다른 세계의 제어장치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별의 의지는 용종에게도 인간과 같은 경계심을 품었다.

만약 이들이 권능의 힘을 오용하여 인간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이 별은 완벽하게 끝장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족끼리는 자손을 남길 수 없도록 만들었다.

용은 모두 암컷만 존재하고, 용종은 인간들 사이에서 드물게 태어나는 `감응`의 힘을 가진 인간과의 사이에서만 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별의 의지는 용들에게 별을 맡기는 것으로 새로운 창조를 마쳤다.

계승 세계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인간들과 용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용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서, 아직 종으로서는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인간을 이끌었다.

몇몇은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몇몇은 스스로 신이라고 불리는 위치에 서서.

어떤 이들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균형을 유지하기 쉬운 방법이라 했지만.

그런 용은 대부분, 동족들에게서도 배척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감응자를 발견하면 자신의 둥지로 데려와서 자손을 남기는 데 주력했다.

감응자가 된 인간은 용과 몸을 섞어도 아이를 만들 수 있고, 수명 역시 용에 가깝게 길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용처럼 강인한 육체를 가지는 것도 아니며, 무한한 마력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용이 아무리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용의 체력, 정력, 정신력을 견뎌낼 수 있는 인간은 감응자보다도 더 찾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감응자들은 그 수명을 모두 누리지 못하고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잡혀간 청년들이 죽어 나가는 것에, 용에 대한 존경심은 어느샌가 증오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간들과 대부분의 용의 관계가 단절된다.

기껏 데려온 감응자와의 교미에서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아무리 긴 시간을 사는 용들이라지만, 그 수는 점점 줄어만 갔다.

수명이 다 해 죽는 자는 거의 없었다.

감응자가 아닌 인간과 정을 나누다, 죽은 인간을 그리워하면서 앓다 죽은 자.

감응자를 데려와 인간과 몸을 섞다가 인간을 죽인 충격에 삶의 의지를 잃은 자.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의무를 잊은 채 악룡의 이름을 받아 살다 살해당한 자.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직 5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이 감응자라는 존재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된 이유이기도 했다.

용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가 끝난 지 천년.

이제, 용이라는 종족 자체가 끝이 나려 하고 있었다.

001

마치 이곳에만 세계의 종말이 재림한 듯한 느낌이었다.

상공을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질풍의 용과, 그런 용을 향해 뿔에서 강렬한 번개를 쏘아대는 뇌전의 용.

사상 초유의 민폐도를 자랑하는 자매의 싸움에 클레온은 식은땀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화날 대로 화난 두 용의 싸움에 끼는 것만큼 `자살`에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클레온 님. 무언가 방법이 있으신 건가요?"

페르디아가 그렇게 묻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뿔이야. 레티오스의 뿔을 조금 깎으면 돼."

"...뿔, 입니까?"

페르디아는 클레온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근거로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클레온은 단검을 꽉 쥐고, 이전 루티­ 루티오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레시아가 나를 이긴 방법?"

레시아는 분명 강했다.

악마를 뛰어넘어, 마신 그 자체라고 불리던 마검 황제를 자기 손으로 쓰러트린 것은 분명 레시아이다.

하지만, 레시아가 루티오스를 구출해내기 위해 그녀와 싸워 승리한 것은, 마검 황제와 싸우기 전.

아직 성검 칼라드볼그의 모든 힘을 각성하기 전의 일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때의 레시아는 아직 루티오스보다도 확연히 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레시아는 훌륭히 루티오스를 쓰러트려 악룡 `절멸의 폭풍`을 토벌하는 데에 성공했다.

동료들의 도움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강함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력차가 좁혀지는 상상을, 클레온은 쉽사리 할 수 없었다.

클레온의 질문에 루티오스는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눈을 잠시 감았다.

평소에는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지내던 그녀의 머리 위로, 작고 뭉툭한 뿔이 돋아났다.

그러고는, 자신의 검지를 가져가, 그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레시아는, 나의 뿔을 잘랐어."

"뿔...?"

아직 어린 시절의 클레온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클레온에게 방금 이야기를 들은 페르디아도 마찬가지였다.

"용의 뿔은 단순한 신체 기관이 아니야. 영혼과 마력이 담겨있는 `용을 용답게 하는 부분`이지. 용의 뿔을 꺾는 것이야말로, 용을 굴복시켰다는 증거야. 이들은 목보다도 이곳을 더욱 단단히 지키려 할 테니까."

"그런 곳에 상처를 입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용의 목을 치는 것보다도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만…."

페르디아는 클레온의 말에 냉정하게 그렇게 대답하지만, 클레온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빠르게 움직인다.

"괜찮아. 분노에 이성을 잃었어도 루티는 우리들의 편이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의도를 깨닫는다면 분명 거기에 반응할 거야. 문제는..."

"...어떻게 레티오스의 등에 올라타느냐. 이군요."

페르디아의 말에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페르디아 역시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음 순간, 루티와 레티오스의 입이 크게 벌려지는 것을 보았다.

"큭! 저 녀석들!?"

클레온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듯 소리를 지르며 손을 위로 뻗어 자신과 페르디아를 감싸는 마력의 방어막을 펼친다.

다음 순간, 휘몰아치는 원초의 마력이 두 용의 입에서 순수한 마법의 숨결로 화해 서로에게 날아간다.

뇌전의 브레스와, 질풍의 브레스.

그 둘은 공중에서 정면으로 부딪치며 사방으로 원소의 여파를 발산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들은 땅으로도 떨어지며 클레온과 페르디아가 있는 주변에도 흩날린다.

벼락이 떨어질 때마다 방어막을 지탱하는 클레온의 팔이 강한 충격에 떨려왔다.

"클레온 님…! 저는 스스로 피하겠습니다! 본인의 몸만을 지켜주세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페르디아가 소리를 높이지만 클레온은 `큭...`하는 소리를 낼 뿐 떨리는 팔과 다리로 땅에 선 채 방어막을 풀지 않는다.

"... ...!`

페르디아의 그런 외침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루티는 슬쩍 지상을 보더니 브레스의 분사를 멈추고 몸을 틀어 힘겨루기를 멈춘다.

"루티오스. 어리석은 내 동생아. 일족의 자랑이었던 네 강력한 브레스도 이제는 나에게 밀리고 있지 않으냐."

"시끄러워...! 아래쪽에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멈춘 것뿐이야!"

레티오스는 자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자 이동한 루티를 추격하듯 또다시 아음속의 비행을 시작했다.

"...하아..."

어떻게든 마력이 고갈되기 전에 두 브레스의 충돌이 멈춰준 덕분에 목숨을 건진 클레온이지만, 아까보다도 빨라진 공중전에 레티오스의 뿔을 노린다는 것은 몸에 불을 붙인 채 화약고에 들어가 폭발하지 않고 살아남기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 클레온 님. 알아냈습니다. 레티오스의 등 위로 올라갈 방법을."

"뭐?"

페르디아는 클레온을 부른다.

그녀가 알아챈 방법을 전달받자, 클레온 역시 눈을 크게 뜨며 이야기한다.

"... 제대로 미친 짓인걸."

"하지만,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이리라 생각됩니다."

잠시 침묵한 채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그리고­

"좋아. 하자."

002

"크윽...!"

번개로 지져진 부분의 비늘이 떨어져 나간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10년 만의 일일까.

이 몸으로 살던 시절이 더 길었음에도, 어째서일까. 용의 모습으로 하늘을 나는 것은 인간으로 다닐 때 보다도 더욱 힘이 든다.

그것은 아마, 지금의 그녀가 옛날과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바람의 원소를 느끼며 창공을 날아다닐 수 없는 죄지은 날개이기 때문이겠지.

그녀가 알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인간이었다.

그녀보다 3년 먼저 부화한 그녀의 언니 역시 아버지를 본 적 없다고 했었다.

드래곤의 알은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부화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인간은 용과의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슬픈 일이었지만 드문 일은 아니었다.

루티는 그 사실을 가슴에 묻고, 용으로서 긴 세월을 살아갔다.

마검 황제라고 스스로를 자칭하는 인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에 의해 인간들의 세계가 위협을 받기 시작하자, 루티는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고 동족들에게 주장했다.

하지만, 루티를 제외한, 레티를 포함한 네 마리의 용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세계.

별의 존속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이 나설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루티는 그런 동족들에게 반발하여 용의 세계에서 뛰쳐나와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제국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마검 황제의 힘은 루티오스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그가 가진 마검의 힘은 루티의 의지를 속박하고, 그 육체를 자기 뜻대로 지배했다.

악의 마룡 `절멸의 폭풍`이 탄생한 것은 그때였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던 유일한 용이, 수많은 인간을 죽이기 위한 전쟁 병기가 되었다.

지독할 정도로 얄궂은 아이러니에서도, 루티오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자신의 자아를 원망했다.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그런 자신을 쓰러트리고,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여, 목숨을 구해 준 인간. 레시아.

그런 레시아가 남긴 작은 유산과도 같은 소년­ 청년­ 사랑하는 남성. 클레온.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따르게 둘까 보냐…! 클레온에게는 클레온의 해야 할 일이 있어…!`

루티는 그런 생각만을 머릿속에 반복하며 용의 껍질 속에 갇힌 채 눈앞의 동족­ 자신의 언니 레티오스와 힘을 부딪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장난스럽게 투덕거리던 수준의 싸움은 이미 예전에 뛰어넘었다.

정말로, 누구 하나가 죽지 않으면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클레온을 데려온 이유는, 만약 자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레티오스에게 큰 상처를 입혀두어, 클레온이 그녀를 쓰러트리는 것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일행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도록.

`클레온은 나와 길드의 모두를 지켜줬어... 이번에는 내가 클레온을 지킬 차례야...!`

자신과 같이, 제국에서 노예로서 지내던 이들을 모아 그 신분을 숨겨준 레시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시작한 모험가 길드.

만약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제국에 대해 심상치 않은 원한을 가지고 있던 왕국의 모두에 의해 살 곳을 잃게 되겠지.

그것으로 자신을 협박하던 알베인을 클레온이 막아준 덕분에 아직도 그들은 길드에서 지낼 수 있었다.

[티...]

`클레온...! 레시아...!`

[루티...]

`반드시, 너희들의 의지를...`

[루티!]

"...!"

머릿속을 꽉 채우던 생각을 지워버릴 정도로 머릿속에 크게 울리는 소리.

덕분에 루티의 몸이 순간적으로 정지하고 그 덕분에 피할 수 있던 전격을 어깨에 맞아버리고 만다.

[루티! 제발 대답해!]

[크, 클레온! 들려! 들리고 있어!]

각인을 통한 텔레파시로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 클레온에게 대답하며, 루티는 이어서 들어오는 레티오스의 추격을 회피해낸다.

간발의 차로 비늘이 또다시 찢겨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루티. 잘 들어. 우리가 레티오스를 막아볼게.]

[...뭐!? 무슨 소리야! 그런 짓을 하면 너희들이­]

[괜찮아, 방법은 있으니까. 날 믿어줘.]

슬쩍 루티의 시선이 지상의 클레온에게 향한다.

그곳에서 클레온은 페르디아와 함께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알았어. 어떻게 하면 돼?]

003

"마력의 흐름이 보이는군. 저 인간과 무언가 이야기를 한 건가?"

"도망치라고 한 거뿐이야…. 내가 전력을 낼 테니까…!"

루티오스는 그렇게 말하며 날개를 커다랗게 펴고, 다시 한번 입에 숨을 모은다.

"...또다시 브레스의 대결인가.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을."

그렇게 말하면서도 레티오스 역시, 가득 찬 마력 주머니에서 마력을 끄집어내 입가에 가지고 온다.

두 마리의 드래곤이 마력을 해방한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푸른색의 번개의 기둥과도 같은 레티오스의 브레스.

그리고, 붉은색의 피바람과도 같은 루티의 브레스.

강력한 힘의 파동이 충돌함과 동시에, 두 용이 상공에서 대치하며 서로의 브레스를 밀어내려고 한다.

파지지직!!

하는 스파크 따위는 장난으로 보일 정도였지만, 브레스의 충돌지점은 점점, 루티의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포기해라. 여동생아. 이 공격을 받으면 네 머리가 날아가 버릴 거다.]

[...아직... 아니야...!]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원소의 폭력.

땅이 깎여나가고, 나무에 번개가 작렬한다.

정말로 다시 한번 세계가 끝나려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때­

"페르디아!"

"네! 클레온 님!"

모습을 감춘 채 비행해 온 클레온과 페르디아가, 레티오스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비행능력이 없는 페르디아를 품에 안은 채, 비행마법과 어둠의 장막을 사용한 클레온이었다.

클레온이 외치자, 페르디아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며, 그 끝에 달려있던 창 촉이 레티오스의 등 뒤에 박혀 들어갔다.

살을 파고든 것이 아닌, 구부러진 끝을 이용하여 비늘 틈새에 끼워 넣은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레티에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클레온은 그 단단해진 머리카락을 밟고서 뛰어 올라간다. 비행마법을 하는 것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였다.

이윽고, 그녀의 머리 위에까지 도약한 클레온의 손에는 페르디아의 단검이 두 자루 모두 들려 있었다.

"...먹어라!"

클레온이 단검 두 개를 교차하여 베어낸 것은, 레티오스의 한쪽 뿔이었다.

서걱­!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눈을 크게 뜬 레티오스가 그대로 몸을 멈추더니.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브레스가 줄어든다.

루티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자신 역시 브레스의 분사를 줄이고.

그와 동시에 레티는 지상으로 자유낙하를 하기 시작한다.

페르디아는 거기에 끌려가지 않도록 창을 뽑아내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 역시 아래로 떨어지고

그런 페르디아를 붙잡기 위해 클레온이 비행마법을 사용하여 그녀를 따라가 붙잡았다.

"...후우."

겨우 그녀를 붙잡는데에 성공한 다음 순간, 땅에서 쿠웅! 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서는 클레온과 페르디아, 루티가 함께 지상에 내려서면.

루티도 레티오스도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레티오스..."

루티의 온갖 감정이 섞여 있는 목소리가 들린 것인지.

레티오스는 쓰러졌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자신의 관자놀이에 돋아나 있던 뿔 중 왼쪽을 손으로 만졌다.

"... ..."

옆에 있는 이들 중 누가 보더라도, 거기에 금이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진정시키려면 이 방법밖에­"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레티오스는 완전히 일어섰다.

그러고는 클레온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집에 갈래."

"어?"

손가락을 튕겨,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클레온도 페르디아도 멍하니 그녀가 서 있던 곳을 지켜본다.

"뭐, 뭐였던 거야?"

"글...쎄요. 어쨌든, 클레온님에 대해서 포기해 주신 것 같아요."

페르디아의 말에 클레온도 멋쩍게 고개를 끄덕인다.

"... ..."

오직 루티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클레온."

그리고, 클레온의 이름을 부른다.

클레온은 루티의 부름에 그 쪽을 돌아보지만, 루티는 잠시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이야기 한다.

"아냐. 미안, 너무 이성을 잃고 싸웠었지?"

"...나를 지켜주려고 한 거잖아? 자. 돌아가자. 모처럼의 축젯날이니까."

클레온은 그런 루티에게 괜찮다는 듯 쓴웃음을 짓는다.

페르디아 역시 루티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역시, 난 너희들 인간이 좋아."

루티는 그렇게 이야기 하며, 두 사람의 손을 붙잡고 아카데미로 돌아가기 위해 마법을 펼쳤다.

004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루티와 페르디아와 함께 아카데미의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중간중간, 성학과로 가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빠르게 눈치챈 클레온이 제재를 가했지만.

페르디아도 엘레시아를 벗어나 큰 도시에 온 것은 처음인지라, 이곳저곳에 눈이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어두운 저녁이 되어서야, 저택으로 돌아오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오늘은 혼자서 잘게. 미안하지만, 몸이 좀 나른해서…."

방에 따라 들어오려고 하는 루티나 페르디아에게 양해를 구한 뒤, 클레온은 빠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느껴지던 두통도 다시 살살 느껴지는 듯했기에, 어쩌면 감기 같은 유행성 질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적막과 어둠이 클레온의 방에 다시 내리깔리면.

끼익­

하고,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클레온은 얕은 의식 속에서도 그 소리를 들었고 몸을 일으키려 한 순간.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재빠르게 정신을 각성시킨 클레온이 주변을 둘러보면.

그곳은, 어딘가의 동굴인 듯했다.

다만, 인간이 사용하는 가구류가 대량으로 준비된, 침실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일어났군. 클레온."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레티오스가 낮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다만, 뿔에 간 금이 조금 더 커져 있는 것이 보였다.

"... ... 포기한 거 아니었나?"

"강제로 널 데려가서 감응자로서의 임무를 시키는 것은…. 보류 중이다. 널 불러낸 건, 이 뿔 때문이야."

"... 뿔이, 어쨌는데?"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클레온에게 건넨다.

...끌이었다.

"끌?"

"용의 뿔을 깎아 자르기 위한 특수한 끌이다."

클레온은 그것을 받아들고, 잠시 끌과 레티오스를 번갈아 보았다.

레티오스는 그럼, 얼굴을 붉히면서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마치, 처녀가 첫날밤을 맞이하기 직전의 반응이었다.

"...그 끌로, 이 반쯤 부러진 뿔을 완전히 잘라 다오. 클레온."

"하아... 하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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