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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26화 (126/506)

〈 126화 〉 주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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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지금 이 집에 몇 명이 같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방음 결계라도 치고 하던가…."

구시렁거리면서 눈앞의 계란 프라이를 나이프로 잘라내는 라일라의 눈 밑은 검은 그림자가 깊게 쳐진 상태였다.

"미안하다니까. 다음부터 조심할게. 자, 여기 커피."

"...흥."

클레온이 내미는 커피를 받아들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라일라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어젯밤에는 늦게까지 연구를 하다 겨우 잠이든 상황에서 루티와 클레온의 정사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그대로 잠을 설쳤다는 듯하다.

중간에라도 멈추러 들어오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방 안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격렬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깨기 전에 라일라가 방음 결계를 쳐 뒀다지만….

루티의 뭉툭하고 조그마한 뿔 중 한쪽이 어제보다 절반의 길이로 줄어들어 있는 것도 그렇고.

루티가 밥을 먹다가 말고 배를 문지르며 행복한 듯한 얼굴을 하는 쪽이 더 신경 쓰였다.

"어젯밤엔 즐거우셨군요."

페르디아는 조용히 루티를 향해 그렇게 말한다.

라일라의 희생(?) 덕분에 다른 이들은 딱히 잠을 설치지 않고 무사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기에.

피곤한 기색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제는 두 명인가…."

갈라테아는 클레온의 옆자리에 앉은 채 질투하는 얼굴로 클레온의 어깨에 자기 얼굴을 기대면서 이야기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 클레온은 움찔하면서 살짝 굳은 미소로 갈라테아를 내려본다.

"별로. 상관하지 않아. 나는 관대하니까. 거기에, 가장 먼저 임신했던 건 바로 나였고. 쌍둥이, 루티, 그리고 그 드래곤도 전부 나보다 밑이란 것만 기억해 둬."

목소리 자체는 그렇게 차갑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독점욕에 가까운 갈라테아의 집착이 클레온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있지~! 클레온! 태어난 아이한테는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알은 낳는 데에는 10개월 정도 걸리지만 태어나는 데는 10년 정도 걸리거든? 그때까지 불러줄 이름도 필요할 것 같은데…."

루티는 그런 갈라테아를 무시하며, 반대쪽에서 클레온의 팔에 매달리며 이야기해 온다.

자신의 언니가 클레온을 납치해 가서, 거기서 그녀와 몸을 섞고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화가 잔뜩 나 있던 그녀지만.

클레온의 설명으로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리고, 언니의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용의 반지의 능력을 사용해, 다시 한번 용의 형상으로 폭주한 클레온에 의해 무사히 배 안에 아기를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라일라, 사샤, 쿠온은 그런 루티를 바라보며 약간의 질투와 그리고 선망 어린 시선을 띄고 있었다.

페르디아만은 작게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역시 클레온 님이십니다. 드래곤은 인간과 비교하면 수정과 착상이 이루어질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만 클레온 님은 그런 난관마저 돌파하시는군요."

"아니... 그건..."

클레온은 페르디아의 말에 어디까지나 `용의 반지`의 덕분이라고 대답하려 하지만 그 전에 쿠온이 헛기침을 한다.

"저기…. 식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마, 맞아요!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는 교,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칼리번?"

"그렇네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형제가 많아질 것 같아서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것뿐일까요~"

어제 하루 동안 사샤와 지내면서 상당히 친해진 느낌이 든 두 사람이지만, 칼리번의 사고관은 여전히 인간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듯하여 사샤를 곤란하게 만든다.

덤으로 이 집에서 유일하게 외견상 사샤보다 어린 칼리번에게 만큼은 존칭하지 않는 사샤였다.

라일라는 그런 상황에 한숨만을 내쉬며 클레온을 바라본다.

"클레온 너…. 오늘은 아루루랑 데이트지?"

"... 약속을 잡아서 같이 다닐 뿐이야."

클레온이 멋쩍은 듯이 이야기하자 라일라는 이마에 핏줄이 돋아나며 지적한다.

"그걸 데이트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너는 아랫도리에 있는 거 잘라야 해…. 별로 네가 그녀랑 같이 다니는 걸 뭐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루티나 그 쌍둥이처럼 임신시켜 버리면…."

왕국 최고의 공작가 트로메이아의 영애의 혼전순결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시킨다?

그 순간, 클레온은 퍼시스경에 의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무, 물론. 조심할게…."

"그래. 그렇게 해 줘."

라일라는 머그컵에 남아있는 커피를 전부 들이켠 뒤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도 오늘은 낮에 외출하니까. 지금 조금이라도 자 둬야겠어…."

"외출?"

"그래. 하아... 귀찮아..."

라일라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아마,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면 잠들겠지.

"이니스. 뭔가 알아?"

"으음... 알고 있지만. 파파한테는 일단 비밀로 해둘게. 그편이 재밌을 테니까☆"

"...나쁜 아이군."

이니스는 그런 클레온의 말을 들으며 자기 주인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이동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창조주이자 마스터인 라일라에 관한 것을 제일로 생각할 줄 아는 호문클루스였다.

"클레온. 슬슬 준비해야 할 시간 아니야?"

쿠온이 시계를 보면서 그렇게 이야기하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따라갈 거야."

갈라테아 역시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검의 모습으로 바뀌어 클레온의 허리춤에 걸렸다.

어제, 그저께에 자신을 데리고 나가지 않은 것이 퍽 서운한 듯했다.

한동안 그녀가 칼리번의 건이나, 데미우르고스의 건으로 인해 함께 지내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모험가로서 바쁘게 지낼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비무장으로 바깥에 돌아다니는 상황이 많아졌다.

갈라테아는 그것이 적지 않게 불만인 듯. 빨리 아카데미를 떠나 위험과 모험이 도사리는 왕도로 떠나자고 매일 같이 클레온에게 매달리며 이야기한다.

이유 자체는 불순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이제 슬슬, 아카데미를 떠나야만 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중요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뿐.

클레온은 외출준비를 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쿠온은 그런 클레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무언가가 응어리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내며 훌훌 털어내고 아직 식탁 앞에 남은 사람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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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아이온의 탑의 앞에서였다.

아카데미 축제 기간 중의 아이온의 탑은 일반 방문객들에게 있어서도 중앙에 있는 모나드의 관이 있는 광장을 비롯한 집합 장소로 인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물론, 멀리서 보더라도 눈에 띌 정도로 높은 건물이면서, 종탑과 시계가 있어서 시간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평소에는 뷔토스의 창고를 경비하는 경비들이 탑의 입구 근처에도 배치되어 일반 학생들은 다가오기를 꺼리지만.

축제 중에는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경비들도 창고의 앞에만 배치되게 되어 있었다.

덕분에, 꽤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상황.

저마다 친구들과 가족과 연인들과 짝을 이룬 채로 서 있었다.

다만,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불순한 이들도 모인다는 것인데.

"거기 서 계신 분~"

종탑의 앞에서 가만히 아루루를 기다리던 클레온은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번쩍이는 금색­ 아니, 노란색에 가까운 머리카락에 살짝 탄 갈색 피부. 그리고 제복을 불법으로 개조하여 노출도를 높인 듯한 복장.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한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학생과 눈을 마주친다.

얼핏 보면 성학과의 학생으로 착각할 법했지만, 그녀와 같은 학생은 본 적이 없다.

"혹시, 여자친구 기다리는 중? 괜찮다면 저랑 같이 다니지 않을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노골적으로 가슴골을 보인다던가, 치마가 살짝 들추어져 속옷이 보일듯한 각도를 만드는 등.

아무리 봐도 클레온을 유혹하려 하는 듯했다.

"... ..."

클레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한다.

"미안하지만. 네 말대로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에에? 하지만 여기의 학생들 대부분 귀족이니 뭐니 해서 깐깐하잖아요? 저랑 다니면, 여자친구가 못 해주는 기분 좋은 일. 전부 해 줄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팔을 잡아 자기 가슴으로 끌어당기려는 여학생을 클레온은 정중하게 밀어내서 떨어졌다.

"그런 건 충분하니까."

생각한 그대로의 답변과 함께.

"뭐, 뭐야... 기껏 주변의 동정티나는 학생들과 다르게 꽤 테크닉 있어 보이길래 꼬셔봤더니…. 흥. 겉모습만 그렇고 역시 당신도 동정이지?"

여학생은 그런 클레온의 반응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 애초에, 그런 복장으로 이 주변을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제복의 개조도 허가된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 걸로 아는데…. 예를 들면, 가슴에 다는 아카데미의 배지라던가…."

"그런 촌스러운 거, 오늘 같은 휴일에 달고 다닐 리 없잖아…! 당신, 동정에 꼰대야?"

"하아..."

피곤한 여자에게 붙잡혔다고 생각한다.

[뭐야 이 여자…. 죽여버릴까.]

갑작스럽게 허리춤에서 들려오는 갈라테아의 목소리와 함께 흑마력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그녀와 함께 외출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당황한 클레온이 그 흑마력을 억누르며 갈라테아를 진정시키려 한다.

[진정해 갈라테아. 이 여자애는 그냥…. 조금 관심이 필요한 것뿐이야.]

[하지만 클레온한테 집적대는 걸 그냥 보고 있어 줘야 해?]

[모험가가 아니라 학생이야…. 적당히 환각 마법이라도 걸어서 돌려보내자.]

[흥...]

그런 식으로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클레온이 조용히 있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여학생이 클레온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하고­

[선 넘네.]

갈라테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미안한데. 혹시 내 약속 상대에게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갈라테아가 스스로 뽑혀서 휘둘러지기 직전, 들려오는 목소리.

"엣... 아루루 트로메이아...!?"

[칫...]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과 함께 당당한 목소리로 여학생을 제지한 것은,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나타난 아루루였다.

그녀는 입가에 띤 미소, 그리고 상대방을 꿰뚫는 듯한 푸른색의 눈동자를 여학생에게 보내고 있었다.

"야, 약속 상대란 게, 아루루였냐고... 큭..."

"맞아. 그쪽의 클레온 강사는 나와 오늘 종일 어울려 줄 약속을 해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그에게서 떨어져 줬으면 하는데."

이 이상 그에게 접근하거나,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드는 일이 있다면­ 같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은 그녀의 의도를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여학생은 그 보이지 않는 압력에 겁을 먹은 것인지 `팟`하고 클레온에게서 떨어져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도망가 버리는 것이었다.

"...방금 그 여학생…."

"아는 아이인가?"

아루루는 잠시 고민하는 듯 도망가는 여자아이를 바라보다가도, 클레온의 질문에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니. 내 착각일 거야. 그건 그렇고­"

아루루는 오랜만에 만난 클레온과의 인사가 예상치 못한 방해로 조금 늦어진 것에 헛기침하며 자세를 바로잡고.

"미안, 기다렸어?"

이전. 언젠가 나누었던 그때의 인사를 재현하듯 물어온다.

클레온은 잠시 그런 그녀의 미소와 함께 건네진 인사에. 역시 정해져 있는 듯한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아니. 나도 방금 왔다."

그런 인사를 나눈 뒤, 스스로도 퍽 웃겼는지, 아니면. 클레온이 기억해 준 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인지.

풋...하고 웃음을 터뜨린 아루루를 바라보며 클레온도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20분 전에 와 놓고...]

오직 갈라테아만이 불만인 듯 했지만.

"오늘은 그녀도 함께 구나. 갈라테아."

아루루는 클레온의 허리에 달린 검을 바라보면서 `호오...`하고 신경 쓰이는 듯한 눈치로 흥미롭게 클레온의 마검을 살펴보았다.

"검술과에 있으면 이런저런 명검을 보게 되지만. 그녀는 정말 아름다운 검이네. 검은색의 손잡이와 은빛의 칼날.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 같아."

[...그녀는 보는 눈이 있네. 귀에 걸려있는 성검도 나쁘지 않다고 전해줘.]

갈라테아는 살짝 쑥스러운 눈치였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는 말투로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클레온이 그녀의 의사를 전달하자, 아루루의 귀에 달린 푸른 유리의 귀걸이가 스스로 흔들린 듯 했다.

"...아아. 미안. 만나자마자 검에 관한 이야기를…. 내 안 좋은 버릇이야."

아루루는 퍼뜩 방금의 대화가 `남녀의 관계`에서 나눌만한 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클레온에게 사과한다.

클레온 본인은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는 듯했지만.

그러면서도, 아루루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헛기침을 하고 클레온과 눈을 마주친다.

[옷.]

"아. 아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또 색다른 스타일인걸. 잘 어울려."

갈라테아의 조언에 클레온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치채고는 그녀의 복장을 잘 살핀다.

이전 보았던 흰색의 원피스나, 붉은 정장과는 또 다른 세련된 여성스러운 옷이었다.

위에 걸친 옷은 검은색의 오프숄더 블라우스. 어깨가 노출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까의 여학생과 같이 천박해 보이는 물건은 아니었다.

타인보다 볼륨감 있는 상체는 조금 타이트하게 조여져 있었으며, 가슴에 달린 작은 리본이 포인트였다.

그리고 가슴의 바로 아래, 배의 부분부터 시작되어 발목까지 내려오는 기장이 긴 롱스커트.

흰색의 기조에, 귀걸이와 같은 맑은 푸른색의 라인이 들어가 있다.

그 나이대의 평범한 소녀의 복장 같으면서도, 귀족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품을 유지한 그녀의 코디에.

의복에 관해서는 빈말로도 자세하다고 할 수 없는 클레온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순수하게 귀엽다거나 아름답다는 감상이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그,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오늘 클레온과 만난다고 하니까, 시종들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옷을 신경 써줘서 말이야... 하아.. 정말 다행이야."

아루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클레온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았다.

"그럼…. 슬슬 가 볼까? 돌아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꽤 바빠질 것 같은데."

"물론 괜찮아. 오늘은 네가 가고 싶다는 곳에 전부 어울려 줄게."

그녀 역시,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였다.

기억을 빼앗겨 인생을 뒤틀릴 뻔했으며,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밝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직 마음속에는 상처가 남아있을 터였다.

그런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다면.

클레온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녀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002

"하아…. 실패인가. 이런 저급한 미인계는 역시 안 통한다 이거지…."

붉은 머리의 여성은, 아이온의 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노점에서 차를 즐기며, 원시(??)의 마법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치는 여학생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면 걸려있던 마법은 해제되고 원래의 눈의 형태로 돌아온다.

"...그거 맛있어? 엄청나게 달아 보이는데."

그러고는 눈앞에서 열심히 아이스 코코아를 마시고 있는, 언제나 같이 다니는 흑발 흑안의 소녀에게 물어본다.

소녀는 잠시 붉은 머리의 여성과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컵을 다시 들이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이 마시면 금방 화장실 가야 하니까…. 라니. 악마는 그런 거 없나."

반인반마인 그녀와 다르게, 눈앞의 소녀는 완전히 악마로 전생하는 데에 성공한 성공작이었다.

여성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에 엎드린다.

"왕도쪽도 여기도. 마검사 때문에 애를 먹는다니…. 네 일족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 ..."

검은 머리의 소녀는 그때서야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애초에 관계없는 사람에게 유혹마를 빙의시킨 것이 실패…. 그분을 유혹하려 한다면, 그분과 관계있는 여성을 타겟으로 해야…."

"...그게 그렇게 쉽나…. 음…? 아니. 잠깐만.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지?"

붉은 머리의 여성은 다시 한숨을 내쉬려다가, 소녀의 말에 무언가를 떠올린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그렇다면 바로 준비할까! 고마워 릴림! 역시 너는 내 최고의 파트너야! 여기 코코아 한 잔 더 주세요!"

"... ..."

흑발의 소녀는 비워진 컵을 잠시 바라본다.

유리컵의 너머로 비치는 광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검은 마력으로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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