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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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플레임워치. 지금 도착했습니다."
사방이 새하얀 공간, 모나드의 관.
천막이 드리운 벽면의 너머로는 원로들의 실루엣이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라일라가 도착할 때까지 서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수군거리고 있었지만 이내 자신들의 호출에 응한 소녀의 도착에 일제히 이야기를 멈추고 시선을 라일라에게 보낸다.
마치 품평을 당하는 듯한 시선이,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기어 다니지만 라일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기계적인 태도로 그저 그곳에 서 있었다.
"라일라 플레임워치. 아그니 플레임워치의 손녀이자, 마법학과의 수석. 그리고, 한번은 우리를 실망하게 한 존재여."
원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울린다.
다른 이들은 모두 그의 보조라는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시선에는 라일라를 비웃는 듯한 태도가 섞여 있는 것을 라일라는 느낄 수 있었다.
아아. 1년 전, 이곳에 찾아왔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라일라는 천재 마법사, 재능있는 젊은이 같은 것이 아니라.
원로 그들과 길을 달리하고 시골로 잠적한, 말하자면 그들에게 있어서 `배신자`라고도 여겨질 수 있는 진홍의 마법사. 아그니 플레임워치의 덜돼 먹은 손녀딸인 것이다.
라일라가 처음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들이 얼마나 아그니를 비웃었을까.
보아라. 네가 본분을 잊었다 손가락질 한 우리들의 학원으로, 네 손녀가 찾아와 머리를 숙였다.
"... ..."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라일라는 천막 너머에 있는 인물을 바라본다.
1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하였다고 할 수 있겠지.
일전의 사건에 의해 학원의 깊숙한 곳에 존재한 어둠 중 하나인 검은 교전이 완전히 축출되면서, 그들과 서로를 이용하면서 견제하던 원로회에 있어서.
이제는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학원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현실이 도래한 것이다.
"검은 교전이 일으킨 재해를 해결하는 데에 적지 않은 활약을 했다고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치하하도록 하지. 그대가 원한다면, 다시 한번 차기 원로의 후보로서의 자리를 준비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라일라가 근본적으로 아카데미에 찾아온 이유.
매일같이 인간다운 시간의 사용이 힘들 정도로, 연구에 집착하던 것도.
그 과정에서 화염의 마법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성과를 낸 것도.
알베인이라는 어리석은 인간을 유혹하여 아카데미로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던 것도.
모두, 12 원로의 일원이 되어 그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조부를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손에 넣은 권력을 사용해 조부가 원하던 아카데미를 이루기 위해.
"다만. 조건이 있다."
대답을 하지 않는 라일라에게, 천막 너머의 원로들은 이야기한다.
"마검사 클레온... 그를 어떻게 해서든 이 아카데미에 붙들어 놓도록 해라. 수단, 방법은 묻지 않겠다. 그에게는 다른 마검사나 용사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라일라와 함께 검은 교전의 폭주를 막아낸 인물이자, 그 사건에서 가장 큰 공로자인 클레온.
그가 없었다면, 지금쯤 모나드의 관까지 고대인의 세뇌가 침범하여 원로들 역시 검은 교전과 레일의 꼭두각시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우리를 위해 일하는 존재가 된다면. 라일라. 너를 12 원로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마."
그것을 생각하면, 원로들의 요구는 너무나도 배은망덕하고 이기적인 욕망의 표출이었다.
원로들의 시선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라일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빛을 반사하며 정신을 심란하게 만드는 악의 가득한 구조의 건물의 중심에서.
라일라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돌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 보인다.
그것은, 황동색의 작은 원형 판으로 된 물건에 인물의 얼굴이 주가 된 물건.
"...제국 화폐인가."
원로의 대표가 그것을 알아보고 입을 연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제국의 화폐이다.
과거, 제국의 힘이 강대했던 시절에는 왕국의 은화, 아니 어쩌면 금화와 비슷한 가치를 지니고 있던 물건이었지만.
전쟁의 끝에 제국이 멸망하고, 지금은 그 잔당들조차 햇볕이 들지 못하는 곳에 숨어 사는 지금.
그 수가 많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기념품 수준의 가치까지 전락한 물건이었다.
"호의에는 감사드리지만. 저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제의는 이 제국 화폐와 같습니다."
"...뭐라고?"
라일라의 발언에 원로들이 저마다 수군댄다.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인가 생각하는 자,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
그리고, 그 의도를 알아채고 분노하는 자도 있었다.
"과거의 저에게 있어서라면,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었겠죠. 그 자리에서 승낙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언젠가의 저처럼."
하지만 라일라는 바뀌었다. 추락하고, 실패하고, 절망하여 깎여나간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자신과 마주하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으로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원로분들의 제안은, 저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원로의 자리? 그 정도의 제안으로 클레온을?"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던 라일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단가가 안 맞아. 바보 아냐?"
그리고 차리고 있던 최소한의 예의마저 집어던져 버리면서 분노를 드러냈다.
"할아버지가 당신들을 떠나 헬리스에 잠적한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아. 조금 냉정하게 분석하면 분명히 알 수 있었을 텐데. 나도 바보였지."
"계집... 발언을 조심해라.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아카데미 내의 모든 권리는 우리들의 지시 한 번에 없어질 수 있다."
원로들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 라일라를 바라보며, 원로의 대표 역시 맞불을 놓는다.
"오랜만에 만난 네 친구... 베아트릭스의 목숨이 걱정되지 않나 보지?"
"... ..."
그리고 예상대로, 이어지는 것은 협박이었다. 그것도, 라일라에게 있어서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린다.
이들은 인간의 마음의 취약한 부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장 추악한 지식인들이었다.
지식욕, 권력욕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가진 윤리관, 정해진 선을 주저 없이 넘어버릴 수 있는 자들.
여기 있는 녀석들 전원이, 그때 엘레시아를 찾아왔던 집행과의 마안술사 베아트릭스의 언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라일라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문 것을, 자신들의 협박에 겁을 먹은 것으로 생각한 것인지.
원로들 사이에서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능하고. 비겁하고. 지식인으로서의 긍지도 없고. 겁쟁이에. 욕심 많은 너희들 원로가…. 모든 것을 잃더라도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용기를 가진 베아트릭스를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라일라의 대답에, 원로들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모나드의 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결국은 검은 교전에게 겁을 먹고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이런 차원 격리 공간에 숨어지내면서. 얼굴을 비치지도 않고, 그저 가지고 있는 권력을 휘두를 줄밖에 모르는 당신들에게. 내가 다시 무릎을 꿇을 리도 없고."
명백한 비웃음 섞인 라일라의 목소리.
다음 순간, 원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입을 열어 격노를 담은 이름을 외친다.
"세파르!"
그러면, 모나드의 천장에 새겨진 전이 마법진에서 무언가가 나타나 라일라가 있는 공간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바깥에서 모나드의 관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물들을 틀어막는 `가디언 골렘`과 비슷한 물건이었지만.
그 출력이나 거대함은 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물건이었다.
"...네 발언의 책임을 지게 해주마. 라일라 플레임워치."
라일라는 자신의 몇 배의 크기를 지닌 골렘을 바라보며, 손을 휘두른다.
그러자, 화염의 구가 동시에 몇 개나 나타나며 빠른 속도로 골렘을 향해 날아가고.
세파르의 표면에 그 마법이 닿자마자 마법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파르는 너희들이 쓰러트린 엔키두를 바탕으로 개발된 대마력에 특화된 골렘이다... 네년같이 주제를 모르는 녀석들을 위해 준비했지."
"흐응..."
그러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원로의 말에도 라일라는 그다지 커다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골렘을 바라본다.
다음 순간, 골렘의 주먹이 라일라가 서 있는 지면을 강타하며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 일어났다.
라일라는 제대로 된 회피 운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골렘의 주먹과 바닥 사이에 끼어서 모습을 감췄다.
"...흥... 어리석군.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 줄 착각한 어린 계집이..."
원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했지만, 라일라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하지만.
세파르의 주먹의 끝에서 일어난 화염이. 그대로 골렘의 전신으로 번져 나가며 표면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뭣...!? 세파르의 마력 방어가...!"
"마법으로 일어난 화염이라면 모를까, 자연현상에 가까운 화염에는 무력한 모양이네."
다음으로 들려온 라일라의 목소리. 어느샌가 화염의 화신과 같은 형상으로 바뀐 소녀가 세파르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그, 그 마법은. 아그니 플레임워치의...! 네가 어떻게 그 수준의 마법을!"
"... ... 당신들에게는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해."
라일라가 팔을 움직이자, 불타는 화염에 묶인 세파르가, 그 움직임에 따라 원로들이 있는 곳에 주먹을 휘두른다.
방금, 라일라를 덮쳤던 충격이 이번에는 그들을 향해 휘둘러진다.
폭발에 동반되는 듯한 굉음이 모나드의 관 안에서 울리고, 커튼은 불타고 원로들은 겁을 먹은 채 세파르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등을 보이는 것이 보였다.
"겨우 얼굴을 보였네. 예상했던 대로 추한 모습이지만."
커튼의 실루엣이 아닌 실제의 모습을 드러낸 원로의 대표는 깡마른 모습의 노인이었다.
죽은 라일라의 조부와 동 세대의 인물인 만큼 80을 넘은 나이일 테지만.
그런데도 그 노화의 상태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수명을 늘리려는 비술에 실패한 부작용이지? 그거."
"큭..."
"뭐. 죽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자기 목숨만큼 타인의 목숨도 소중히 여겼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다시 한번 세파르의 팔이 들어 올려진다. 노인은 마법을 준비하려 하지만 상대는 자신들의 모든 지식을 활용해 만들어진 대마법사용 결전 병기이다.
"기, 기다려라!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냐!?"
"아카데미에 당신들의 존재는 필요 없어. 당신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갈 거야. 새로운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겠지?"
"우, 우리는 지식의 수호자인 `정적의 냉기`와 계약을 나눈 존재들이다! 누구도 우리들의 권리를 파기할 수 없어!"
그 외침에 라일라는 한숨을 내쉰다. 다음 순간, 라일라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또 하나의 인물이 보였다.
분홍색의 머리에 날개와 뿔, 그리고 꼬리를 지닌
"설, 마"
다음 순간 세파르의 주먹이 노인을 내리쳤다.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눈을 감았던 노인은 예상했던 고통이 몸을 덮치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주변이 서리와 냉기에 휩싸인 동굴의 내부로 이동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먹에 전이 마법을 걸어서 날려 보낸 건가…? 빌어먹을 계집...! 하지만 덕분에 반격할 기회를 얻었"
다음 순간, 노인의 전신이 얼어붙어 두꺼운 얼음벽 내부에 가둬진다.
노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눈치채지도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다. 의식도,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이 정지되었다.
"루티오스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오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동굴의 어둠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사파이어의 머리색을 가진, 루티, 레티와는 다른 또 다른 드래고니안(용인).
지식의 수호자, 정적의 냉기라고 불리는 용 `아나티스`였다.
그녀는 수십 년 만에 본 노인의 모습을 잠시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몸을 돌린다.
`가장 순수하게 지식을 쫓는 이들을 위한 장소를 만들겠다.`
라는 약속하에 이루어진 그녀와의 계약은 이미 오래전에 깨져 있었다.
이 수정얼음의 감옥에서 영업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계약을 멋대로 깨버린 존재에 대한 그녀의 벌이었다.
001
모나드 관에서 아카데미를 송두리째 뒤흔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추호도 모른 채, 여느 다른 학생들 처럼 클레온과 아루루는 아카데미의 축제 3일째를 즐기고 있었다.
어제와 그저께, 이미 축제의 이곳저곳을 돌아본 클레온이었지만 여전히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아카데미의 규모의 거대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클레온! 저쪽의 점술 학과에서 오늘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점을 봐준다는 것 같아!"
클레온보다 몇 걸음 앞에서 즐거운 듯 걸어가는 아루루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꽤 즐거운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학원 축제의 준비가 시작되면서, 어제까지 일주일 정도를 사적인 시간을 보낼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낸 것에 대한 반동일까.
오늘은 조금 자신에게 솔직해진 채, 말괄량이 귀족 영애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그녀를 따라, 점술과의 거대 천막으로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어머, 아루루님, 클레온님!"
천막의 입구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채, 눈을 가리는 가면을 쓴 여학생이 아루루와 클레온을 알아보고는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클레온으로서는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며칠 전의 사건으로 유명해진 탓에 평범하게 길을 걷다가도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다.
"두 분이 오셨다는 건…. 데이트인가요!? 오늘은 연애운을 보러 오셨나요!?"
여학생은 두 사람의 방문에 제멋대로 흥분하더니, 옆에 있던 같은 과의 학생과 함께 `꺄악!`같은 비명을 내지른다.
"아직 고민"
"응. 맞아. 안내해 줄 수 있을까?"
클레온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그것을 틀어막듯이 아루루는 두 여학생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내를 부탁한다.
"잠깐…. 그래도 되는 거야?"
공작가의 영애가 모험가 출신의 강사와 연애운을 보러 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여러모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법이지만.
"뭐가? 후후. 괜찮잖아, 연애운 정도는. 나도 클레온이랑 더 친하게 지내고 싶고."
아루루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여학생들을 따라, 거대한 천막 안에 펼쳐진 또 다른 작은 천막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클레온도 그 뒤를 따라가려 하지만
"클레온 강사님은 이쪽이세요!"
먼저 들어간 아루루를 안내하던 여학생이, 클레온에게는 바로 옆의 천막으로 안내한다.
"...같은 천막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원래 저희 연애점은 남녀가 따로따로 보는 게 룰이거든요."
애초에 이런 점 같은 것에는 거의 무지한 편인 클레온은,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그녀들의 안내에 따라 또 다른 천막을 향한다.
아루루는 살짝 어두운 천막에 긴장한 채, 뒤에서 들어오지 않는 클레온이 서 있을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파트너분은 옆쪽의 천막으로 안내해드렸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자신을 멈춰 세우는 목소리에 그쪽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바깥에서 자신들을 안내한 것과 마찬가지로, 로브와 가면을 착용한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붉은 머리가 로브의 틈새로 흔들리며, 갈색의 피부에서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자, 이쪽에 앉으시길."
그렇게 이야기하며 책상을 가운데에 두고 여학생과 아루루가 마주 앉는다.
"기본적인 연애운부터, 상대방과 어떻게 하면 관계가 진전될 수 있을까 하는 상담까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물어보세요."
그녀의 손이 움직이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카드들이 좌르륵 펼쳐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한 뭉치로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점술에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진실한 마음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나 타인에게 거짓된 마음을 보이면, 결과 역시 거짓되게 나오니까요."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설명하는 붉은 머리의 여성. 아루루는 그런 그녀의 언행에서 약간의 신뢰감을 가지지만 무엇을 먼저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눈치였다.
"상대방은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 그런 남성이 혹시라도 떠나버리지 않을까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윽... 아하하... 그 말대로긴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걱정하지 않는달까…."
자기 생각을 마치 꿰뚫어 보는 듯한 여학생의 말에, 아루루는 정곡을 찔린 곳이 아프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상대를 유혹할 수 있을까…. 같은 것은 어떨까요?"
"...그런 것도 점으로 알 수 있나요?"
그런 아루루의 의문을 시원하게 답해주겠다는 듯, 여성은 그녀의 손을 살짝 붙잡으며 이야기한다.
"물론입니다. 저를 전적으로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가면 밑의 눈을 반짝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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