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35화 (135/506)

〈 135화 〉 솔직

* * *

000

트로메이아 공작가의 저택에는 오직 가문의 배틀 메이드들 만이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연무장이 존재한다.

아무리 격렬히 무기가 부딪치고, 몸이 움직이더라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바닥과 벽. 그리고 바깥으로 소음이 빠져나가지 않게 만드는 방음 결계.

이곳은 남성이 침범할 수 없는 금남의 영역이며, 그것은 저택의 주인이자 공작가의 당주인 퍼시스 트로메이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아내가 부탁­ 아니, 지시한 대로, 그런 공간을 만들어 제공했을 뿐.

오렐리아 트로메이아는 퍼시스와 결혼하기 전부터 그림자 속에서 왕도를 수호하는 고대의 일족의 후손으로서, 그 역사만을 따지자면 그녀의 가문은 트로메이아 가문보다도 긴 역사를 지닌 가계였다.

그녀 본인도 상당한 창 실력을 자랑하며. 계략, 책략, 지략에 능하고, 만약의 사태에서는 그녀 역시 선두에 서서 부대를 지휘할만한 역량을 가진 여걸이었다.

그러므로 퍼시스는 자신의 아내를 존중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빛과 그림자에서 각자 왕도를 지키기 위한 분투를 계속하기 위해 그녀가 사병을 만드는 것을 용인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병이야 말로 트로메이아 가문의 배틀 메이드들.

오직 트로메이아 부인의 명령만을 받아, 왕도를 수호하는 싸움에 몸을 던지는 그녀들은 출신, 종족을 막론하고 실력과 동시에 악에 물들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로 구성되어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늘거나 줄거나 하였지만, 지금의 수는 총 31명 + 마검 한 자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적인 시종이 행하는 청소나 세탁 같은 가사는 물론이고, 그에 더하여 자기 단련, 마을 순찰, 요원 경호, 때로는 어둠 속에서 처리해야만 하는 임무마저 행하는 꽤 격렬한 업무량을 자랑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시종들, 아니 병사들과 비교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액수를 보수로 받고 있으며 대부분이 전 모험가였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정해진 거처가 존재하고 나쁘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직업을 자의로 그만두는 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 자. 간다!"

연무장에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움직이는 것은 전신이 근육질에 2m를 훌쩍 넘은 장신의 여성.

몸 곳곳에는 비늘이 돋아나 있고, 눈은 황금색의 눈동자 속에 검은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있어서 마치 루티를 연상시키는 듯한 외견을 하고 있지만, 꼬리나 뿔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와는 또 다른 종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는 길게 돋아나 있었고, 몸의 피부는 살짝 붉은색을 띄었지만 흰색에 가까운 색이었으며, 몸 전체를 감싸는 특주 메이드 복을 아랑곳 하지 않고 격하게 움직일 때마다, 팔의 근육이, 치마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다리의 근육이 엿보일 정도로.

잘 단련된 남성과 비교해도 그들의 기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범프업 된 육체를 자랑하는 여성이었다.

머리카락의 색은 그런 그녀의 불타오르는 근육과는 조금 상반되는 민트색으로, 길게 내려가는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상태였다.

손에 든 것은, 마법이 깃든 창. 일명 `마창(??)`이라고 불리는 녀석이었지만 유사한 이름을 가진 마검과는 다르게 자아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그녀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물건도 아니었다.

흰색의 거대한 마상 랜스의 형태를 취한 그것은, 마치 표면에 금이 간 듯한 불안한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금 사이로 흉흉한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아 일반인이 쥐고 사용하는 데에는 꽤 애먹을 것 같다는 감상이 먼저 떠오른다.

그녀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그녀의 이름은 `노라`. 리자드맨과 엘프의 혼혈인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를 상대하고 있는 것은 흑발 흑안의 흰 피부를 지닌 여성. 키는 그녀보다 훨씬 작고, 몸의 굵기도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녀 역시 메이드복 아래 감추고 있는 몸은 상처와 함께 수없이 많은 단련을 거쳐 완성한 하나의 무인의 육체이다.

손에 든 아름다운 외날의 마검­ 바리사다를 잡아 쥔 채, 마치 해일과도 같이 몰아치는 노라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하면서 틈을 엿보지만.

거대한 몸집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재빠른 노라의 움직임에 혀를 차면서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왜곡. 루베라는 노라의­]

"아하하! 또 순간이동이야!? 그렇겐 안 돼!"

루베라와 몇 번째의 대련에서 그녀의 행동 패턴을 학습한 노라는, 루베라가 바리사다의 능력을 사용하려 하자 마창을 전방위로 휘둘렀다.

그러자, 마창의 잔상이 그 자리에 남으며 마치 노라의 주변은 고슴도치의 가시와도 같이 배치된 창의 환영으로 채워진다.

귀찮게도 그 창은 모두 하나같이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날이 없는 창의 옆에 닿더라도 창이 가지고 있는 마력이 충격을 발산하여 창끝에 찔린 것 같은 위력을 낸다.

"칫..."

성가신 능력이다. 라고 루베라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노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베라는 마검에 마력을 대량으로 머금게 한 뒤, 거리를 벌리면서 재빠른 거합을 휘둘렀다.

그러자, 고농도의 마력은 칼날이 뽑힘과 동시에 물리력을 가진 하늘을 나는 참격이 되어 노라를 향해 날아갔다.

이전, 휴즈 후작의 목을 단번에 잘라냈던 그 검술이었다.

하지만, 노라는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였던 휴즈와는 다르게 이미 여러 번 수라장을 거치면서 경험을 쌓아온 무인이다. 그녀 역시 창에 정신을 집중하자, 주변에 퍼져있던 창의 환영이 일제히 날아가 루베라에게 쇄도한다.

그것에 루베라가 날린 참격이 지워지고, 루베라는 그 자리에서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다리를 멈추게 되었다.

"자! 이번에는 내 승리다!"

노라가 그렇게 외친 다음 순간.

[왜곡.]

`루베라`는 창의 환영에 휩싸여있다.

`노라`는 창의 환영에 휩싸여있다.

"어!? 꺄악!"

꽤 귀여운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이 휘두른 공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 쓰러지는 노라.

루베라는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며 바리사다를 검집으로 되돌린다.

"승자! 루베라!"

연무장의 구석에서 그렇게 외친 것은, 둘과 마찬가지로 메이드복을 걸치고 있는, 흰색의 머리를 가진 붉은 눈의 소녀. 사샤보다도 어린 외견이지만, 그녀야말로 이 배틀 메이드들의 리더이자 최고참인 `라비타`이다. 그녀 역시 무언가의 종족과 인간의 혼혈이라고 했던가. 덕분에 평생을 저 외견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루베라의 승리가 결정되자, 연무장에서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메이드들은 절반이 아쉬움의 탄식을, 그리고 절반이 즐거움의 환호성을 외쳤다.

"젠장~! 이번에는 노라가 이기는 쪽에 걸었는데!"

"지금까지 16승 15패인가. 거기에 2연승이네."

아무래도 루베라와 노라의 대련 결과를 두고 내기를 한 듯했다.

꽤 커다란 액수가 오고 가는 것이 보였다.

루베라는 그런 동료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의 전이로 인해 스스로의 공격에 당한 노라에게 다가간다.

"...노라. 괜찮나요."

"으, 으응... 역시 내 창. 좀 아프긴 하더라도 괜찮아…."

노라는 아야야... 하면서 몸을 일으키는데, 대련이라 위력을 조절해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입은 타박상이 서서히 재생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리자드맨의 피! 회복이 빨라서 다행이야"

목소리를 내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바리사다의 말에, 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다음에는 지지 않을 테니까!"

분명 분함은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루베라와의 다음 대련이 기대된다는 듯이 환하고 순수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바라보며, 루베라는 클레온의 일행이었던 사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응...?"

그때, 루베라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봉제 인형을 주워들었다. 그녀의 손보다도 작은 물건으로, 어딘가에 묶여있다가 떨어져 나온 듯한 흔적이 보였다.

형태는…. 무엇일까. 곰일까? 토끼일까. 잘 알 수 없지만, 귀여운 디자인의 물건이었기에 더더욱 이런 곳에 떨어져 있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노라는 루베라의 손에 들려있던 그것을 보더니 `앗`하고 목소리를 내 자신의 창을 바라본다.

"그, 그거..."

"노라의 것입니까. 창에 달아뒀던 것이군요?"

아무래도 그녀의 창에 끊어져 있는 리본의 끈이 달린 것을 보아, 그곳에 묶어 놓았던 것이 방금의 싸움으로 뜯겨져 나간 듯했다.

루베라는 그것을 보더니, 자신의 메이드복의 리본을 풀어, 그녀의 창에 인형을 달아주었다.

"좀 더 튼튼한 걸 쓰는 게 좋겠지만. 지금은 그걸로 묶어두세요."

"... ..."

루베라의 그런 행동에 두 눈을 반짝이면서 그녀를 바라보는 노라.

이내, 양팔을 활짝 벌리더니 루베라를 끌어안으면서 얼굴을 비벼댄다.

"루베라! 고마워! 역시 루베라는 내 친구야!"

"구구게겍..."

하지만, 노라의 품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루베라의 목소리가 아닌, 아까까지 심판을 보고 있던 라비타의 목소리였다.

노라가 자신을 껴안기 직전, 바리사다의 능력으로 그녀와 위치를 교환한 것이었다.

라비타는 숨이 막힌다는 듯 노라의 팔을 손으로 치지만, 노라는 감동에 젖어 눈앞의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였다.

루베라는 그런 노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땀이 흐른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연무장의 안에 준비된 탈의실로 향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음...읍!?"

"우, 오앗...! 루, 루베라! 버, 벌써 끝났구나…."

탈의실의 안에서 반라의 상태로 서로의 입을 훔치고 있던 또 다른 배틀 메이드들을 바라보며 짜게 식은 표정이 되었다.

처음 왔을 때는 확실히 당황했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자신이 오히려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이 메이드들이 사용하는 시설 대부분은 남성 금지의 영역이었지만, 부대 내 규율로 남성과의 교제가 금지된 것도 아닌데.

때때로 이런, 여성들끼리의 스킨십을 목격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공작부인도 이런 것까지는 터치를 하지 않는데, 업무의 강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눈앞에서 표정이 상기 된 채 입가를 닦아 내는 갈색 머리와 남색 머리의 두 사람.

루베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아뇨. 부디 신경 쓰지 마시길. 옷을 갈아입으려고 왔을 뿐이니까요."

"으, 으응. 미, 미안..."

그런 루베라의 말에 소녀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였다.

"그, 그러고 보니 내일이었지? 클레온...이라고 했던가? 부인께서 부르려고 하는 모험가분."

"몇 명이 그쪽에 가서 일하게 됐으니까. 아, 그, 그러고 보니 루베라는 거기 지원하지 않았네."

"그... 루베라는, 그쪽의 일도 있으니까."

"그랬지…."

"그러고 보니, 클레온 씨는 아루루님과도 사이가 좋다고 하는 것 같아."

"뭐? 정말? 그럼, 루베라랑 양다리야?"

"그리고 같이 다니는 일행도 전원 여성이라고…."

"으에엑! 그러면 대체 몇다리인거야. 루베라... 괜찮은거야?"

`마지막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일주일 전. 그 후에는 어째선지 답장을 보내려고 펜을 잡을 때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포기했지만. 역시 답장을 보내놓는 편이 좋았을까. 아니. 이오나도 함께 있었으니까 꼭 그럴 필요는 없었을지도. 하지만, 이오나가 돌아온 뒤에도 그쪽에서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는 것도 나빠. 마치, 내가 답장하지 않으면 편지를 보내지 않겠다는 것 같잖아. 뭐야 그거. 나만 기다리고 있는거야? 클레온은 나랑은 만나고 싶지 않는 거야? 마지막으로 직접 만난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그쪽은 그쪽 대로 열심히 여자와 만나고 몸을 섞고 있었겠지. 라일라에 쿠온에 사샤. 거기에 아루루라는 이 저택의 아가씨까지. 나는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여성과 기분 좋게 몸을 섞는 클레온의 얼굴이 늘 머릿속에 떠올라. 틀려. 이건 음마들이 왕도에 펼쳐놓은 저주 때문. 나의 의지가 아니야. 하지만, 밤에 꾸는 음몽은 아멜리아 왕녀의 힘으로 봉인되어 있을 터.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은 걸까. 밤마다 혼자서 위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지금 당장 클레온을 만나서 안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는 분명 이상해진 상태인 거야. 원래의 나라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털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래. 모든 것은 음마와 클레온 때문. 클레온도 남성 음마 비슷한 것이니까. 결국 악마가 나빠. 악마를 죽이자. 그러면 클레온에게도­`

"...루베라?"

옆에서 동료들이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루베라는, 따라 들어온 바리사다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루베라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인간형의 바리사다가 있었다.

"...바리사다. 괜찮습니다. 조금, 피곤할 뿐이에요."

"오늘은 빨리 숙소로 돌아가자. 그편이 좋겠어."

"그렇...네요. 오늘은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며 조금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옷을 갈아입은 채 탈의실을 나가는 루베라와 바리사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바깥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노라와 라비타였다.

001

클레온 일행이 안내받은 장소는, 공작가의 손님들을 맞이하여 식사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준비된 식당이었다.

역시 저택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인상을 주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손님들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 정도의 디자인이 되어 있었고.

기다란 식탁의 위에는 이미 각자의 자리가 준비된 상태였기에 시종들의 안내에 따라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식사의 예절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트로메이아 부인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어 보이면 앞에 늘어져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보며 눈이 팽팽 돌아가던 사샤는 움찔하고 반응하다가 멋쩍게 웃었다.

물론. 클레온도 그 부분에서는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요리가 나올 때까지 조금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우선은 다시 한번…. 아카데미의 사건에서 딸, 아루루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왕국에서 왕족 다음으로 가는 최고 귀족의 안주인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숙이자, 클레온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조금 곤란했었다.

"아뇨. 저도 아카데미에서는 아루루­ 따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조금이나마 그에 대한 보답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만."

"겸손하시군요. 역시, 소문과는 다른 분이셨습니다."

클레온의 대답에 조금은 기쁜듯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는 오렐리아.

`소문`이라는 것에 대해 일말의 불안함을 느낀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어보고 만다.

"...소문, 인가요?"

"네. 이런저런 소문이 있더군요. 흑마의 일족의 마검사로서 수많은 여성과 몸을 섞고, 그 여성들을 지배하고 있다. 라던가. 곁에는 에메랄드빛 머리를 가진 매혹적인 악마가 따라다닌다던가. 그뿐만이 아니라 방해되는 존재들은 모두 베어버린다던가. 하는 소문까지도."

"크, 클레온 씨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오렐리아의 말에 사샤가 반박하자, 오렐리아는 싱긋 웃어 보이면서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앞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아루루가 그에게 이끌리는 일도 없었겠죠."

클레온은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어디선가 갈라테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라일라도 쿠온도 살짝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표정이 되지만 아루루만큼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소문이란 건 여러모로 과장되는 법이니까."

"거기에, 성검과 마검을 동시에 지닌 마검사라는 것은 역사상에서도 확인이 되지 않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여러모로 특별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군요."

성검과 마검이라는 이유로 무장이 허락되어 지금은 벽에 기대어져 있는 갈라테아와 칼리번.

두 사람은 식사가 필요하지 않고, 트로메이아 부인의 앞에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낼 생각도 없는 것인지 조용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저로서는, 당신과도 같은 사람이 딸의 짝이 되어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콜록. 콜록...!"

그 말을 듣고 물을 마시다가 기침을 하게 되는 쿠온.

어떻게든 사레를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지, 곁에 있던 시종 중 한 명이 다가와 쿠온을 도와주려 하는 것이었다.

"괜찮나요."

"네, 네에…. 괜찮아요. 루베라..."

쿠온을 도운 것은, 트로메이아 부인에 의해 자리에 불려 나온 루베라였다.

그녀는 쿠온의 등을 두들겨 주며 냅킨을 건넨다.

그러다가, 클레온과 눈이 맞으면 잠시 시선을 피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많은 여성과 인연을 맺은 것 같군요. 평소에는 흐트러짐 없는 루베라가 당신의 화제가 나올 때마다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으니까요."

마치 루베라를 놀리려는 듯, 장난기 어린 얼굴이 된 오렐리아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루베라는 살짝 몸을 움찔하지만 이내 눈을 감은 채 대답하는 것이었다.

"부인,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흐트러지지 않은, 동요하지 않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하자 오렐리아는 그녀를 슬쩍 바라보더니 여전히 웃은 채 대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사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당신이 클레온에게 쓰려다가 구겨서 버린 편지지만 30장이 넘는다고 하던데­"

순간, 식당 내부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끊어낸 것은 루베라의 지옥의 밑바닥에서 끌어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바...리...사...다..."

멀리서 도망가기 위해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 루베라가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지만, 오렐리아에 의해 제지되었다.

"자. 놀린 것은 사과할 테니까. 조금은 솔직해지는 게 어떤가요? 앞으로도 함께 힘을 합쳐야 할 사이인데."

루베라가 오렐리아를 돕고 있는 일과, 오렐리아가 클레온에게 부탁하려는 일은 아마 같은 종류이겠지.

클레온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잠시 루베라와 눈이 마주쳤다.

루베라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가, 이내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입을 닫는 것을 반복하다가.

겨우, 한 마디. 감정을 꾸미지 않은 단어를 이끌어내, 입에 담았다.

"편지... 답장 못해서. 미안합니다. 클레온."

"아, 아아. 아니야. 왕도에서 하는 일이 바쁘다고 들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

루베라는 그 뒤에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듯 갈등한다.

클레온 역시. 평소에는 매도하거나 자신을 놀리는 루베라가 그런 말을 꺼내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라일라를 비롯한 일행은 그 묘한 기류를 바라보며 역시 묘한 표정이 되는 것이었다.

"...아니. 잠시만요. 이럴 필요 있나요? 오늘 해야 하는 건 제 이야기가 아니라 아멜리아 왕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

"흐음. 보고 있기엔 재미있지만, 확실히 그렇네요. 루베라도 클레온과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고."

루베라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이야기하자, 오렐리아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표정을 바꾸어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했다.

"...아멜리아 왕녀라면. 그 유폐 왕녀를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라일라양.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아뇨...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째서 그분의 성함이?"

라일라의 질문에 오렐리아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지금부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왕도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여러분은 왕도의 빛나는 밤의 수호자. '세인트 프린세스'라는 전설에 대해 알고 계시는가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