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42화 (142/506)

〈 142화 〉 탐정

* * *

000

왕도에는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직종의 인물들이 거주하고 있다. 왕도는 대륙에서도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며,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여유`로 인해 일어나는 일자리들이 꽤 존재한다.

특히, 모험가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귀족들을 상대로, 각종 소일거리를 받아 하루하루를 해결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해결사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들 자신은, 스스로를 `탐정`이라고 칭하면서 왕도에서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면 하이에나 처럼 달려들어 한몫 챙기려고 하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부탁받아 모험가들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불륜의 조사라던가, 잃어버린 애완동물의 수색 등을 맡아서 하는 탐정들도 있다.

우중충한 분위기의 방. 마력등은 마력을 공급할 동력원의 잔량이 간당간당 한 것인지, 불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창문에 쳐진 커튼 덕분에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적은 덕분에, 그 점등과 소등이 더욱 정신 사납게 느껴진다.

벽지는 원래 흰색이었겠지만, 지금은 회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닥도, 천장도 언제 보수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낡아 빠진 공간.

서류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고, 바닥을 디딜 곳도 없이 책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이곳은 라일라의 방처럼 어수선하지만, 그녀의 방은 아니었다.

왕도에서도 뒷골목과 딱 달라붙어 있는 곳에 있는 빈민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건물에 있는 낡은 사무소.

피로 해소를 위한 포션병이 수북이 쌓여있는 책상의 앞에 있는 등받이 달린 의자에 몸을 걸친 채,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인물.

그 역시 이 왕도에서 탐정업을 하는 한 명이며, 이름을 `그레이`라고 한다.

라일라는 오랫동안 청소되지 않은 사무소에 얼굴을 찌푸리며,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레이. 일어나."

"으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서서히 눈을 뜨면서, 얼굴을 덮고 있던 모자를 치우면, 자신의 이름과 같이 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10대. 사샤와 비슷한 나이대인 어린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눈은 살짝 탁한 하늘색의 눈. 목소리도,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상대적으로 낮고 차분한 목소리, 아니 어느 쪽이냐고 하면 졸린 목소리였다.

그림자 속을 기어 다니는 쥐의 털색과 같은 머리카락을 꽁지머리로 묶고, 흰색의 셔츠에 멜빵바지를 입은 그레이는 라일라를 보자마자 눈을 비비더니 `오오~`하고 나른한 목소리를 내며 자세를 바로 한다.

"오랜만임다. 아카데미의 마법학과 수석. 라일라님. 이전에 뵀던 건 1년도 더 전이었죠? 엘레시아에서 활약 중인 용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일은 잘 되셨슴까?"

그레이의 사람을 속을 긁어내는 듯한 능글맞은 인사말에 라일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한다.

"...대답 안 해도 알고 있겠지."

"네에, 물론임다."

"그럼 묻지 마."

"그렇게 합죠."

라일라의 머리카락이 붉게 타오르는 것을 본 것인지, 그레이는 바로 꼬리를 내리며 그녀에게 순종한다.

일견 평범한 꼬맹이로 보이는 그레이는 왕도의 고아 출신으로, 빈민가에서 좀도둑 같은 일을 하고 있다가 왕국 경비대에 붙잡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관찰력과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경비대가 애를 먹고 있던 연속 절도범의 정체를 맞추면서 사면을 받고, 그 뒤로는 돈을 모아 낡았지만, 어엿한 사무소를 차린 탐정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비대의 일을 돕는 것은 그 이후로도 손에 꼽을 정도이고, 평소에는 정보상과 비슷한 일을 하거나 시답잖은 의뢰를 하며, 굶지 않을 정도로만 돈을 벌고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 그레이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레이가 어떤 수단으로 정보를 모으고 있는지 라일라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본 결과, 알베인에 대해서도 사전에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탐정의 실력은 진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슴까? 요즘같이 다니신다는 마검사분의 바람 조사?"

"그런거. 일일이 조사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자꾸 헛소리하면 이 사무소 채로 불태워버릴 거야."

"그, 그것만큼은... 어휴. 성질도 급하셔라…."

라일라의 협박에 그레이는 실실 웃으면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굽신거렸다.

이, 특유의 바로 상대방에게 머리를 숙이는 태도는 라일라로서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건 그레이 나름의 처세술일 것이다.

"퍼시스 트로메이아의 남동생, 세토스 트로메이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싶어. 그에게 과거 연인이 있었다는데, 그 연인의 정체도."

"세토스님입니까? 또 고위 권력자분에 대한걸. 아시겠지만, 조사 대상이 높으신 분일수록 비용도 비싸집니다요?"

괜찮겠느냐는 듯한 그레이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한 바이다.

"그리고. 전 용사 알베인. 지금은 노동시설에 갇혀 있겠지만. 혹시라도 그 녀석에게 접촉하는 이상한 녀석이 있는지도."

"흐음... 냄새가 납니다요. 두 사람을 같이 조사를 시킨다는 건, 그 두 사람에게 무언가 연관성이 있다는 거겠습죠?"

"... ..."

그런 그레이의 말에 라일라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것을 이야기했다가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만. 오히려 그레이는 라일라의 그 반응을 보고 무언가를 확신한 듯한 미소를 띠었다.

"뭐. 알겠슴다. 자세한 건 묻지 않겠습니다요. 하지만. 세토스님에 대한 조사와는 별개로, 저도 지금 따로 조사하고 있는 게 있슴다. 어쩌면, 제 쪽에서 라일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슴다요."

"...나한테서? 너, 탐정인데 자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야?"

"아뇨, 아뇨! 아님다요! 물론 저는 탐정이지만, 마법에 관해서는 저보다 라일라님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슴까~. 도와주신다면, 저도 세토스님의 조사에 대한 비용은 깎아드릴 테니까 협력을 해주셨으면 하는검다요~"

그렇게 말하면 섭섭합니다요~ 하고, 비굴한 목소리를 내면서 라일라의 어깨를 주무르려고 하는 그레이를 한 손으로 밀어내며, 라일라는 다시 한번, 크게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대체 어떤 사건인데?"

"최근 들어, 왕도 모험가 길드 소속의 남성분들이 연속적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슴다. 연령대와 관계없이 말임다. 아마도 사건이 처음 발생한 건 한 달도 전의 일임다."

"남성 모험가들의 연속 실종 사건…. 뭔가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라일라의 질문에 그레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게. 모험가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연령, 결혼 여부, 종족, 출신. 모든 것이 무작위임다. 덕분에, 무언가 마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 아닌가 해서 저도 머리를 싸매고 있던 차 였슴다."

"그렇네…. 남자들만을 노린다고 한다면, 무언가 사상이나 의식의 준비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경비대는?"

"그게. 꽤나 골치 아프단 말임다. 저한테 조사를 부탁한 모험가 길드는 계속해서 모험가들이 실종되니까 제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고, 경비대는 경비대대로, 모험가들이 종적을 감추는 것이 하루 이틀이냐면서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이고, 제 생각에는 무언가 위에서 지시를 내린 것 같슴다만."

"경비대에 지시를 내릴 수 있다면, 군부... 귀족들이나 기사들이란 것이네. 뭐어. 모험가들을 싫어하는 편이니까, 이상하진 않지만."

그레이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린 라일라는 머릿속에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지만, 어느 쪽도 근거가 있는 편이어서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 짜증이 났다.

어쩌면, 이오나가 이야기했던 왕도 내의 서큐버스 소동과 무언가 연관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지만, 그레이를 뒷골목으로 보내는 건 조금 꺼려지는 일이었다.

"알겠어. 그럼, 이쪽은 나도 한 번 조사해 볼게."

"정말임까! 감사함다! 그럼, 저도 세토스님과 알베인에 대해 알아낸 게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 드리겠슴다!"

"그래. ...노파심에 말하는 거지만, 뒷골목엔 가까이 가지 마. 너도 탐정이라면, 최근 그곳의 세력 다툼이 심하단 건 알고 있겠지?"

"헤헤, 물론임다. 그런 곳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처리당하는 건 너무 목숨이 아까운 겁니다."

그 대답을 들은 라일라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 벌써 돌아가시는 검까? 차라도 한 잔 내드렸어야 하는데…."

"됐어. 이 사무소에 있는 차가 얼마나 오래된 건지 알지도 모르는데…."

라일라는 그렇게 그레이에게 이야기 한 후, 배웅도 거절한 채 그레이의 사무소에서 나가버렸다.

그레이는 그런 라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책상 위에 놓았던 모자를 뒤집어쓴다.

"뒷골목이라... 거기에 뭔가 있는검까."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조사 장비들을 챙기고 발 빠르게 건물을 나서는 것이었다.

001

"즉. 누군가가 남성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납치 등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군."

식사를 마친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램파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덕분에 길드는 완전히 일손 부족이야. 지방의 모험가 길드에 지원 요청을 보내고는 있다만, 그것도 워낙 응해주는 곳이 적어서 말이야."

램파트의 대답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유스테스도, 그 지원 요청을 받고 엘레시아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것이겠지.

종적을 감춘 것은 비단 모험가뿐만이 아닌 듯 하여, 길드의 서류 업무를 맡고 있던 남성 직원들도 수가 적어졌다고 한다. 덕분에, 읽기 쓰기가 되는 유스테스는 왕도의 길드에 오자마자 밀려있던 서류 업무를 처리하는 쪽에 끌려 나간 것이다.

"클레온... 혹시, 이거."

"응. 이오나와 루베라가 안고 있는 안건과 관련이 있을 것 같네."

"뭐냐 너희들. 이번 사건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

램파트의 질문에, 클레온이 대답한 것은 뒷골목에 서큐버스들이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아멜리아에 관한 것은 국가급의 비밀이었기에 아무리 상대가 램파트라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램파트와 유스테스는 클레온의 이야기를 듣더니 조금 신중한 표정이 되어 목소리를 낮추었다.

"과연. 트로메이아 가문은 그런 식으로 왕도 내의 일도 조사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방위 대신의 가문이니 당연하다고 한다면 당연한 일이군."

"하지만. 교단이 그 일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조금 의문이 드는 일인데. ...아니, 지금의 교황이나 교단의 스탠스를 생각하면 알고 있다면 개입하는 것이 맞겠지. 아니면, 모른 척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저마다의 감상을 내뱉은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범인이 서큐버스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의문이 남는다. 서큐버스는 분명히 성가신 마물이지만, 왕도의 모험가들이라면 어느 정도 그 녀석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 거야. 성격은 이상하더라도 실력은 갖춘 녀석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램파트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수법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더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부분은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는 일에도 겹쳐져 있어. 어쩌면 서로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네가 도와준다면 우리야 고맙다만…. 너희들 대체 어디서 그렇게 귀족과 인연을 맺은 거야?"

램파트가 그렇게 질문하자, 쿠온은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말끝을 흐리면서도 대답했다.

"클레온이 여자랑 사이좋게 지내는 고수라서요…."

"뭐라고...? 흠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에도 용사 일행의 여성분들과도 사이가 좋았던 것 같기도…."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에 윽...하고 할 말이 없는 클레온이 입을 다물자, 두 사람은 그런 클레온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직 한 사람, 유스테스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지만.

"왕도에 다가오는 악마의 손길인가…."

002

모험가 길드를 나서 돌아오는 두 사람 램파트나 유스테스, 그리고 낮에 만났던 에스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던 도중.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익숙한 차림의 소녀­ 라일라의 모습을 확인한 쿠온이 손을 흔들었다.

"라일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움찔, 하고 몸을 움츠렸던 라일라는 그 정체가 쿠온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둘 다 아직 집에 안 돌아가고 있었구나. 신전에서의 행사는 어땠어?"

"무사히 끝났어. 에스카님도 만났고."

라일라의 질문에 쿠온이 그렇게 대답하자, 라일라는 잠시 클레온을 바라본다.

[이상한 일은 없었지?]

[그래. 그쪽은?]

[이쪽도, 아침에 말한 정보통에게 조사를 맡기고 온 참이야]

두 사람의 텔레파시가 빠른 사이에 이루어지고, 양쪽 모두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런 클레온과 라일라를 바라보던 쿠온이 볼을 부풀리는 것이었다.

"정말. 두 사람.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 뭐가?"

"텔레파시. 물론 나는 끼어들기 같은 건 못하지만, 눈치 못 챈다고 생각한 거야?"

그 말에, 라일라는 화들짝 놀라면서 손을 젓는다.

"아, 아냐 쿠온! 괜한 걱정을 하지 않게 하려던 것뿐이야! 별로 쿠온을 따돌리려 한 건 아니니까!"

"그, 그래. 맞아.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거에 대해 이야기한 것 뿐이야."

라일라의 구차한 변명에 클레온 역시 고개를 끄덕이자 쿠온은 두 사람을 잠시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베인에 관한 거지? 어제 저택에서 뵌 세토스님이 알베인의 아버지가 아닌가. 하는 거."

쿠온의 말에 두 사람은 양쪽 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럴 거라곤 생각했어. 아마,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 얼굴도 알베인이랑 닮았고. 무엇보다, 작은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알베인은 아루루와는 사촌지간이라는 거고. 공작가의 사생아. 라는 거네."

라일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클레온도 쿠온도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세토스님은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어."

"...그렇네. 만약 자신의 아이가 용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엘레시아가 아니라 왕도로 불러들였을 테니까."

만약 세토스가 자신의 아이가 살아 있고, 지금 강제 노동시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일행은 안 좋은 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쪽은 들키지 않도록 조심할 수밖에 없겠는걸."

라일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쿠온과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사샤들은 벌써 돌아와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작가의 일을 돕게 될 테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간 찰나.

"꺄악...!"

앞쪽에서 다가온 누군가와 부딪히고, 상대방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다.

조금 화려한 복장을 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매혹적인 화장과 몸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향수의 냄새가 그녀가 어떤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잘 알려주었다.

"미안. 내가 좀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손을 건네오자, 여성은 클레온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모험가분."

"... ..."

여성은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몸을 털었다가 클레온의 옷에 묻은, 그녀가 들고 있던 술병에서 튄 술에 의해 생긴 자국을 보더니 깜짝 놀라 하며 고개를 연거푸 숙여왔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옷이!"

"...아니. 괜찮아."

그렇게 이야기하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무언가 전단지 같은 것을 건네오는 그녀. 어딘가 매우 익숙해 보였다.

"저, 저는. 이런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은 현금이 없어서, 혹시 나중에라도 찾아오시면 변상을­"

"잠깐. 이 남자는 우리의 일행인데…. 우리가 보는 앞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클레온…? 설마, 그런 가게에 갈 생각은 아니겠지?"

뒤쪽에서 들려오는 라일라와 쿠온의 목소리. 클레온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머리가 붉게 타오르는 라일라와, 눈에서 빛이 없어진 쿠온이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기다려. 이 여자는­"

"그, 그러면!"

쿠온과 라일라에게 겁을 먹은 것인지 전단지를 쥐여주고 재빨리 도망치는 여성. 클레온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더더욱 라일라와 쿠온의 화를 돋군 듯했다.

"클­레­온­?"

"기다려. 라일라. 쿠온. 아까 길드에서 들었던 이야기…. 어쩌면 빠르게도 실마리를 잡은 것 같은걸."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라일라와 쿠온에게 전단지를 건네준다. 그녀들이 예상한 대로, 전단지는 업소­, 즉 창관을 광고하는 물건이었다.

그것도, 뒷골목에 있는 고급 창관.

"...설마."

"그 설마야. 꽤나 단순한 수법이지만…. 방금 그 여자, 너무나도 일련의 흐름이 익숙했잖아."

클레온의 말에 두 사람은 조금 냉정해져서, 그의 말대로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럼…. 역시 뒷골목을 조사해야겠네."

"그건 처음부터 상정했었지만. 이렇게 업소의 위치까지 특정되면 우리로선 하기 쉽지. ...아, 하지만 오늘은 무리야. 슬슬 클레온의 활동 한계 시간이 올 테니까."

라일라는 문득 떠올렸다는 듯이 클레온을 보면서 이야기한다.

"...활동 한계 시간?"

"응. 아침에 투여한 피로회복제말이야. 슬슬 집에 가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쓰러질걸?"

"너...!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건 아니겠지!?"

클레온은 갑작스러운 라일라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확실히, 갑작스럽게 몸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흐흥­ 어떨려나. 자. 빨리 집에 가자! 낮잠치고는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길바닥에서 쓰러지기 싫다면 말이야."

그런 클레온을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며 앞장서서 걸어가는 라일라. 그리고 클레온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쿠온.

클레온은 두통과 졸음기를 동시에 느끼며,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003

왕도에 어둠이 완전히 내리깔리면, 달빛이 비치는 뒷골목의 길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걷는 인영이 있었다.

로브와 후드를 뒤집어쓰고 정체를 숨기고 있었지만, 양쪽 허리춤에 걸린 검을 보아 일반인은 아니었고, 모험가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악마를 상대한다면, 성검의 힘이 있는 내가 움직이는 게 맞겠지."

청년, 유스테스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뒷골목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낮에 클레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사람들을 위협하는 악마가 있다면, 그것을 막는 것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유스테스도 깊은 곳까지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거기까지 자만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 ...하지만, 정말 어두운 곳인걸. 당장에라도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뭐가 나온다는 검까?"

그때,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린 목소리.

유스테스가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빵모자를 뒤집어쓴 회색 머리의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어린애? 어째서 지금 이 시간에 이런 곳에."

"그건 제가 할 말임다. 어째서 모험가씨가 이런 곳에…. 혹시, 창관이라도 찾고 있는 겁니까?"

"차, 창관이라니! 그런 파렴치한 곳을 갈 생각은 없­"

"목소리가 큼다. 그러다가 뒷골목을 순찰하는 이상한 녀석들에게 들키면 꼼짝없이 잡혀갈 검다. 아. 저는 그레이라고 함다. 탐정을 하고 있슴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유스테스의 행색을 조금 살피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서 본 얼굴이라 생각했더니. 우드녹커 가문의 장남인 유스테스님 아님까. 가문이 몰락하고 모험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너, 너에겐 관계없는 일이다. 그것보다, 탐정. 뒷골목에서 뭘 하고 있던 거지?"

"아마. 유스테스님이 조사하던것과 같은 목적임다. 모험가 길드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검다."

그레이가 그렇게 말하자, 유스테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그래서 뭔가 알아냈나?"

"뒷골목의 몇몇 창관이 최근 꽤 많은 직원을 고용했다는 것 정도임다. 이상한 일임다. 창관의 직원이 늘어날 정도로 많은 외부 인력이 유입되지도 않았는데 말임다."

"...그건 무슨­"

그레이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한 유스테스.

하지만 그때, 자신들을 비추고 있던 위쪽의 달빛이 무언가에 의해 가려졌다고 느낀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면­

"어머.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길래 그 아이인줄 알았더니... 다른 쪽이었네? 반쪽짜리 용사에, 귀여운 꼬맹이..."

매혹적인 의상에,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음마들의 무리. 그녀들은 마치 누군가를 찾아온 듯했지만, 예상 밖의 먹잇감에 입맛을 다시며 다가온다.

"... 큰일난 것 같슴다만..."

"큭... 미스틸 테인!"

유스테스가 성검을 뽑아들자, 그의 주변을 두 개의 마력 검이 춤추듯 나타나 음마들을 베어낸다. 상처를 입은 음마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금 그들로부터 물러서지만.

무리의 리더격으로 보이는 음마는 오히려 흥분되는 듯 미소를 띠며 유스테스를 조롱했다.

"어머. 반쪽짜리라도 성검의 힘을 쓰는 건 가능하구나."

"내가 길을 열마! 같이 빠져나가자!"

"보, 보통 이런 상황에선 `내가 시간을 끌지, 도망가!` 아님까!?"

"아니, 나도 살고 봐야지!"

유스테스와 그레이는 그렇게 외치며,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 뛰어가려 한다.

"슬립."

나지막하게 울린, 작은 소녀의 목소리가 그들을 잠으로 이끌고 간 순간.

그들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었다.

004

클레온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잠이 들어 있었다. 이틀 치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 그 원인이었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조용한 멜로디의 자장가가.

다시 한번 그를 깊은 꿈의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서서히. 서서히. 정신은 진흙과도 같은 수면의 늪 속에 있음과 동시에.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듯한 감각.

이것이 꿈에 빠져드는 감각이라는 것을 눈치챈 클레온은 이오나와 루베라로부터 들었던 `음몽`의 존재를 떠올린다.

라일라가 결계를 쳐 두었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악마들의 흑마력에 좀 더 친화력이 있는 마검사들은 그런 결계와 관계없이 음몽의 영향을 받는 것일까.

다만 자각하고 있다면 문제없었다. 어떤 유혹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에 응하지 않으면 될 뿐.

클레온은 어느샌가, 어린 시절 보내던 엘레시아의 낡은 집. 그곳의 침실에 있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다만, 몸만은 어른의 몸으로. 작은 침대위에 걸터앉고 있다 보니,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이곳으로.

"클레온."

그때, 방의 바깥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클레온은 가슴이 두근. 하고 울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레,시아...?"

클레온이 그 목소리에 대답하자, 방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에 보이던 그녀의 갑주를 걸친 모습이 아닌. 가끔이지만 접할 수 있었던 평범한 사복 차림의 레시아.

이미 나이는 40을 넘었던 그녀이지만, 성검의 힘으로 노화가 더디게 진행되어 지금의 클레온과 비교하더라도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그녀는.

여전히, 백금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반짝이며 클레온에 눈에는 너무나도 눈부시게 보였다.

기억 속에서 열화되지 않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 레시아. 이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클레온의 영혼은 그 레시아에 닿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도 커져만 간다.

"클레온..."

물기를 띈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레시아.

레시아는­ 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온몸이, 이성이. 어리석은 영혼과 정신을 향해 소리 지른다.

상기된 피부로, 홍조를 띤 얼굴로. 얇은 옷 너머에 느껴지는 여성스러운 육체를 강조하는 듯, 팔을 움직이거나 몸을 꼬지 않는다.

클레온의 호흡이 거칠어져만 갔다.

지금 당장에라도 그녀를 끌어안고 싶었다. 느껴지는 것은 성욕이 아니라, 그리움. 그리고 자괴감뿐이었다.

조금씩, 떨리는 팔을 뻗어 레시아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서걱­! 하는 무언가가 강하게 베이는 소리와 함께.

레시아­ 그리고 그녀와 함께하던 그 풍경 자체가 베여져 나갔다.

마치 종이 속의 그림이 두 동강이 난 것처럼, 깔끔하게 찢긴 레시아의 모습.

클레온이 숨을 삼키자, 그가 있던 공간의 천장을 뚫고 손이 들어와 양옆으로 벌어 젖혔다.

그가 있던 방의 바깥은, 온통 새하얀 공간이었으며.

그곳에는, 거인처럼 커다란 갈라테아가 클레온을 연민의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갈라테아..."

클레온이 그렇게 자신의 검의 이름을 부른 순간.

눈을 뜨며, 자신의 옆에 앉은 채 클레온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는 갈라테아의 모습이 보였다.

"...미안. ...그리고, 고마워."

"... ..."

클레온의 눈가를 살며시 손가락으로 닦아낸 갈라테아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 걸쳐져 있던 좁은 면적의 천이 연기처럼 흩어져 가며, 가려져 있던 여성의 중요한 부분이 노출되었다.

"나는, 그녀의 대신 따위가 되고 싶지는 않아."

"...응."

클레온은 그런 갈라테아가 뻗어온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서로의 몸을 끌어안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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