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상처
* * *
000
왕도의 이른 아침. 아침 새가 지저귀는 작은 소리가 창밖에서 흘러 들어오면, 클레온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어젯밤의 행위는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몸은 의복이 가지런히 입혀져 있었고, 갈라테아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옆에 얌전히 누워 잠들어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면 아직 시간은 새벽 5시 조금 전. 아무래도 조금 빨리 일어나 버린 것에 클레온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갈라테아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오고, 활동하기 편한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어젯밤, 뒷골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그는, 태평하게도 아침 조깅을 나갈 생각으로 자신의 방을 나서 사샤의 방으로 향한다. 문을 똑똑, 두드리면 대답이 없기에 아직 잠들어 있는가 하고 문을 살짝 열어보면. 사샤도 칼리번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사샤도 칼리번도 꽤 지친 기색으로 집에 돌아왔던 것을 떠올린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이 아카데미에서부터 사이가 좋아진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하며 방문을 닫고 오랜만에 혼자서라도. 라는 생각에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려고 하면.
"좋은 아침입니다. 클레온. 그 차림. 아침 운동이라도 나갈 생각이었나 보군요."
문 앞에는 눈을 반쯤 뜬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루베라의 모습이 있었다.
복장은 시종 복장이 아닌 사복. 머리에는 이전에 보았던 페도라가 얹혀져 있다.
"...어째서 이 시간에? 오는 건 낮이 아니었나?"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마침, 창문으로 들어갈까 현관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잘 나와주셨습니다."
아무래도 졸려서 판단력이 제대로 서지 않는 듯한 그녀를 클레온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 평범하게 현관문을 두드려 줘…. 그래서? 다른 이들도 깨우는 편이 좋나?"
그 대답에, 루베라는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손가락을 까딱까딱, 자신을 따라오라는 사인만을 보내는 것이었다.
"조금 따라와 주셨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 편이 좋으니. 저와 당신만 가도록 하죠."
"...유폐왕녀와 관련된 일인 건가."
루베라의 말에 그것을 눈치챈 클레온이 말한다. 이른 아침,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곧 그런 이야기겠지.
"하지만 왜 사복이야? 일할 때는 그 하녀 복인 거 아니었나?"
"그건... ...부인이나 부대의 다른 인간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저와 당신이 그녀를 찾아간다는 것은."
루베라의 말은 꽤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같은 부대나, 공작 부인에게도 비밀로 하고 유폐왕녀를 찾아간다. 즉, 두 사람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물론, 이 나라의 법도 어기는, 누군가에게 들키더라도 변명을 하는 것도, 비호를 받는 것도 불가능한 위험 행위이다.
"... 그래도 되는 건가?"
"원래는... 안됩니다. 그녀가 누군가와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신의 도움이 지금 바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루베라는 클레온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구한 적이 있었을까. 알고 지낸 기간을 그다지 길지 않지만 꽤 강렬한 수라장을 함께 겪은 두 사람이었고. 루베라의 강한 자존심과 특유의 가시돋힌 태도 덕분에 믿음직할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클레온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없었다.
잠시, 머릿속에 주점에서의 격렬한 밤이 스쳐 지나갔다.
클레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물론 루베라의 요청에 응하겠다는 의미였다.
두 사람은 서 있던 장소에서 발을 맞추어 앞으로 걸어 나간다. 이 정도 시간에는 보통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길거리에 나와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고. 상대적으로 얼굴이 팔려있는 루베라는 그런 이들이 있는 길을 피해서, 클레온이 따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조절하며 나아갔다.
역시, 원래 왕도에서 살고 있던 만큼, 이곳의 지리에는 빠삭한 그녀였다.
클레온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루베라는 입을 연다.
"어젯 밤. 유스테스가 뒷골목에서 서큐버스에게 습격당했습니다."
"...!? 그 녀석, 어째서 뒷골목에... 혼자 있던 건가?"
"아뇨. 그레이라는 이름의 탐정과 함께 있었습니다만…. 무언가를 계획하고 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주먹을 쥐었다.
"... 나 때문인가. 최근 모험가 길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종 사건에 대해, 뒷골목의 서큐버스들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서..."
"역시 당신이었습니까. 그 바보에게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이... 하아.."
클레온의 말에 루베라는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는 발걸음이 느려진 클레온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내가 알고 있는 녀석 중에서도 특이한 녀석이야. 처음에 만났을 때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바보였지만.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성장을 했고. 그 녀석이 없었더라면 우리 모두 그날 절계수에게 죽었을 거야."
루베라에 관한 일과, 첫 인상 때문에 그런 인상이 덜하지만. 유스테스가 미스틸테인의 힘을 끌어내서 이차원의 틈을 강제로 닫지 못했다면 완전히 부활한 슈라드셀이 강림하여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그 주변 모두를 덮쳤을 것이다.
실력으로 본다면 아루루는 물론, 알베인 조차도 유스테스의 위일 수 있다. 하지만, 용사로서의 마음가짐만큼이라면, 성장한 유스테스는 알베인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용사였다.
"...그 녀석은 지금, 어떻게 돼 있지?"
"...모릅니다. 녀석들이 퇴각할 때 유스테스를 데리고 갔습니다."
루베라의 말에 클레온이 크게 당황한다.
"아니 잠깐. 그러면..."
"걱정하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살아 있습니다. 아까 말한 그레이라는 탐정이 발신기를 붙여 두어서,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저에게 빌려주었습니다."
루베라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작은 반지를 꺼내 든다.
"...편익의 반지?"
"레플리카입니다.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도가 상당해서 저도 놀랐습니다."
편익의 반지라면, 이전 유스테스와 루베라도 하나씩 가지고 있던 물건이었다. 한 쌍이 되는 두 개의 반지가, 서로가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고대의 유물.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물론 재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정도나 유지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원본이 되는 출토품의 반지는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유스테스가 가지고 있던 편익의 반지는 던전에 먹혀 버렸고, 루베라가 가지고 있던 것은 쌍이 되는 유스테스의 반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지금은 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숙소의 짐가방 어딘가에 처박아 둔 상태이다. 처분해서 비싼 값에 팔아 버렸으면 좋았으련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반지는 휴즈 후작이 회귀자들의 커넥션을 통해 불법으로 입수한 물건이기 때문에 타인의 손으로 넘길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 그레이라는 탐정... 뭐하는 인간인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단순한 탐정은 아닌 듯하군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에 대한 것 보다, 우선 왕녀의 문제를 해결한 뒤에 그 바보를 찾으러 가는 것입니다."
현대의 기술력으로 완전하게 재현할 수 없는 유물을 직접 만든다고 하는 그레이에 대한 의문이 커진 클레온이었지만. 루베라가 말한대로
"아니. 잠깐. 문제?"
"네. 문제입니다. 꽤 큰 문제죠…. 가서 직접 보여드리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루베라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몸을 돌려서 클레온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클레온은 쌓여있는 의문을 일단은 머릿속의 한구석으로 치워버린 채, 그녀를 말없이 따라가는 것이었다.
001
클레온과 루베라가 왕도의 비밀통로를 통해서 들어간 것은, 왕궁의 유폐탑. 즉, 아멜리아가 거주하는 작은 공간이었다. 이 비밀통로를 통과할 때는 아멜리아 본인의 허가가 있어야 하므로, 갑작스럽게 두 사람이 방에 나타나서 아멜리아가 깜짝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루베라가 클레온을 이끌고 온 것을 본 아멜리아는 그의 인상을 보고 움찔하고 조금 몸을 움츠렸을 뿐이었다. 만약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기라도 한다면 누군가가 듣고 방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을 테니까.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기분을 안정시키는 듯한 향유의 냄새가 클레온의 코를 간지럽혔다.
클레온은, 루베라의 뒤쪽에 선 채로 눈앞의 가녀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유폐된 탑의 왕녀. 소문에 의하면 왕은 왕녀의 얼굴조차도 저주스럽게 여겨 철 가면을 씌워놓는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있지만. 다행히 그것은 단순한 소문인 듯 했다.
옅은 플라티나색의 머리가 풀어 헤쳐졌지만, 흔들리는 일 없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눈,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한 신념. 그리고 신에 의해 조각된 듯한 아름다운 얼굴.
몸에 걸친 것은, 실크제의 고급스러운 드레스. 목에는 은빛의 깃털 모양 펜던트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어딘가의 이야기에 나올 것만 같은 공주의 모습.
클레온은 자신이 루베라와 함께 비현실적인 세계로 넘어온 게 아닌가? 잠깐 착각하게 되지만, 이윽고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와 무릎, 그리고 허리를 숙인다.
"모험가 클레온이라고 합니다. 아멜리아 왕녀님."
"고개를 들어주세요, 클레온. 루베라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를 많이 도와주셨다고요."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고 협력한 것입니다. 저도 그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루베라는 살짝 낯간지러운 듯이 볼을 긁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멜리아는 클레온의 대답에 작게 미소 지으면서 클레온이 일어서는 것을 기다린 뒤 루베라에게 이야기한다.
"루베라. 정말로 이분이라면, 저의 상처를 치료하실 수 있는 건가요?"
"저의 경험상.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그렇습니다."
루베라와 아멜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클레온은, 자신이 이곳에 불려온 이유가 왕녀의 몸에 있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쿠온을 부르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됐을 것으로 생각하며 클레온이 입을 열려고 하자 루베라가 아멜리아에게 다가간다.
"아멜리아. 클레온에게 상처를."
"자, 잠깐만요…. 지, 직접 보여드려야 하나요?"
"그래야 그도 어떤 상태인지 알테니까요."
루베라가 아멜리아의 뒤쪽으로 돌아가 그녀의 드레스의 어깨끈을 잡아 내리려 하자, 아멜리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당황해한다.
클레온도 그런 루베라의 행위에 놀라면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어째서 당신도 고개를 돌리는 겁니까."
"너야말로, 무슨 짓이야. 나를 불경죄로 처형시키고 싶은 거냐고."
클레온이 식은땀을 흘리지만 루베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이 `훗`하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러고는 아멜리아에게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괜찮습니다. 아멜리아. 아멜리아의 몸은 누가 보더라도 부끄러운 곳 따윈 없는 훌륭한 몸이니까요."
"그,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니 물론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나, 남성분에게 역시 살을 내보인다는 것은…."
"기껏해야 어깨의 아랫부분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클레온도 필요 이상으로 여성의 나체를 본 몸이니 이제 와서 아멜리아의 몸을 보고 이상한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이. 쓸데없는 말을…."
클레온은 루베라의 말에 무언가 항의를 하려 하지만, 뒤쪽에서 스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 오기에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변태. 아멜리아가 옷을 벗는 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다니."
"아니….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루베라가 매도해 오자,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 대답을 하면. "됐으니까 돌아보세요"라는 루베라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아멜리아가 얼굴을 붉힌 채, 루베라에 의해 지탱된 드레스 사이로. 그녀의 어깨와 가슴의 이어지는 부분에 만들어진 보랏빛의 상처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몸에서 보석이 자라나고 있는 듯한 형태였다.
검은 딱지와도 같은 것에, 보랏빛의 수정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으며. 딱히 마력시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느껴지는 마력압이 그 저주의 크기를 여지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하얀 도기와도 같고, 흠집 하나 없는 어린 소녀의 몸에서 자라난 그것은, 너무나도 흉악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상처였다.
"이건... 대체."
"그 이슈탈이라는 붉은 머리의 하프 서큐버스의 꼬리가 낸 상처입니다. 어떤 형태의 저주가 깃들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종류는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통증이 느껴져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것 외에는…."
루베라의 설명에 아멜리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강렬한 흑마력을 주변에 발산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가만히 방치해서는 안 되는 종류였다. 하지만, 아멜리아 본인이 타고난 엄청난 양의 순수한 신성마력이 저주의 확산을 막고,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녀 본인도, 이런 상처를 입은 적이 처음인데다가, 본인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겠지.
하지만, 외부의 인력을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큰 행위였다. 그녀가 유폐를 당한 존재만 아니었더라면. 같은 생각을 루베라도 몇 번이나 했을까.
클레온 역시 같은 생각을 하며 눈에 마력을 돌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야를 열어젖힌다.
"...이건... 씨앗?"
클레온이 마력시를 통해 저주를 분석해 내면, 그것이 왕녀의 몸에 침입한 무언가의 씨앗에서 자라나고 왕녀의 몸에 있는 신성 마력을 빨아들여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식물의 씨앗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념상 씨앗으로 분석되는 그것은 왕녀의 몸에 자라난 검은 수정의 핵과도 같이 그 안에서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녀석은 마력의 흐름을 타고 그녀의 심장에 있는 마력 생성 기관에도 연결되어 있어 허투루 적출하면 아멜리아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씨앗... 입니까?"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가 질문하자, 클레온은 그녀의 말을 재확인 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아멜리아 왕녀님의 상처에는 저주를 담은 씨앗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마, 몸 안을 파고들어 심장과 연결된 것이겠죠. 이게 전신으로 퍼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가만히 둘 수 없다는 사실만은 진심입니다. 신성 마력의 회복술이 들지 않은 이유를 알겠네요. 이 상처의 주변에 흑마력 영역이 펼쳐져 있으니, 신성 마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거기에, 핵인 수정은 그대로 몸 안에 있으니 일시적으로 효력을 약하게 만들 순 있어도 완벽하게 끄집어내 내려면...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꽤 큰 수술을."
"수술..."
아멜리아는 클레온의 말에 말끝을 흐렸다. 이 나라에도 의학이라는 것은 충분히 발달해 있다. 몸을 갈라내서 장기를 치료하는 수술은 추천되지는 않지만, 일단은 존재하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술이라면 역시 라일라와 같은 마법적 지식이 해박한 인물의 도움이 필요했다. 거기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성직자도. 그렇게 필요한 인물을 하나둘 열거하다 보면 끝이 없을 정도로 커다란 작업이 필요하단 사실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루베라에게 고개를 돌린다.
"...설마, 이걸 나한테 보인 이유는."
"그 설마입니다. 당신이 제 몸을 고쳤을 때처럼. 당신의 지배의 각인을 이용해서 왕녀님의 몸을 어떻게든 해주셨으면 하는 거죠."
루베라의 엄청난 폭탄 발언에 클레온이 얼굴에 손을 얹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아멜리아에게도, 설명은 해 두었습니다."
클레온의 시선이 아멜리아에게 향한다. 그녀가 루베라에게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열 살을 갓 넘은, 사샤보다도 몇 살이나 어린 소녀에게, 지배의 각인을 새긴다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행위인지 루베라는 알고 있는 걸까?
"할 수 없어. 그녀에게 지배의 각인을 새겨 넣는 건…."
"... ... 저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 상처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대가,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요."
아멜리아의 말에 클레온은 `그만.`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지금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그 몸에 평생 남을 상처를 새길 생각이야? 너는…. 너무 어려. 좀 더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게 좋아."
감정이 격해진 탓에, 높임말을 잊어버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아멜리아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쥐었다.
"잠깐. 무얼 착각하고 있는 겁니까. 클레온."
"... 지배의 각인을 새기라는 거잖아. 그러려면 그녀와 내가"
"미쳤습니까. 그거야말로 불경죄로 당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루베라는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는 얌전히 그녀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바리사다를 잡았다.
"잊었습니까. 제 마검의 힘은 왜곡. 사상을 비틀어, 무엇이든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 설마."
루베라는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제 몸에 있는 지배의 각인을, 바리사다의 왜곡을 이용해서 그녀의 몸에 옮기는 겁니다. 물론, 그 정도의 사상을 왜곡하려면 필요한 마력이 많으니 역시 당신의 도움이 더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각인의 이동.
루베라가 말하는 것은 분명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 난이도나, 필요한 마력량에 대해서는 둘째치고서라도.
왕녀의 몸을 치유하고 나면, 다시 루베라의 몸으로 각인을 옮기면 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치료가 완전히 되지 않으면 지배의 각인을 그대로 정착시켜야 할지도 몰라."
"그 부분에 관해서도 이미 설명해 두었습니다. 아멜리아도 수긍한 일입니다."
클레온이 아멜리아를 바라보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의 각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역시 루베라에게서 설명을 들었겠지. 그것은 일종의 복속 계약. 지배의 각인이 새겨진 자는 클레온의 의지에 따라서 어떨 때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 강제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루베라에 대한 믿음. 그리고 루베라가 믿는 클레온에 대한 믿음이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로 이런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눈빛일까.
그녀가 왕도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싸움을 계속해왔는지 클레온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리라 각오를 새긴 인물의 그것을 무시하는 일을, 클레온은 더는 할 수 없었다.
"...알았어. 최대한 노력해 볼게…. 아니, 보겠습니다."
인제야 자신의 언동을 고치는 클레온. 아멜리아는 그 모습을 보더니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편하신 대로 이야기하셔도 되요. 저는 분명 왕족입니다만, 왕족의 지위는 가장 밑.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왕족으로서의 취급도 받지 못하는 존재니까요."
"... 나는 결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아멜리아. 너는 어떤 다른 왕족과 비교하더라도 분명 훌륭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도 편한 대로 하지."
아멜리아는 클레온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층 가벼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네. 그편이 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좋네요."
"자. 그럼 바로 마력을 받겠습니다. 클레온."
그런 클레온과 아멜리아의 사이에 루베라가 끼어 들어온다. 어느샌가 그녀의 손에는 대용량 포션의 빈 병이 쥐어져 있었다.
"... ..."
잠시, 루베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클레온. 그리고는 순식간에 굳은 표정이 된다.
"잠깐. 설마, 여기서?"
"그렇습니다. 왔다 갔다 하는 건 귀찮고…. 아. 아멜리아는 저쪽을 보고 계세요. 5분…. 아니, 10분이면 끝납니다."
루베라는 손가락을 몇 번 구부리더니 그렇게 이야기하고, 클레온은 그 말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에 있는 아멜리아를 보며 말을 삼켰다.
정작, 아멜리아 본인은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잘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무, 무엇을 하려는 건가요? 제 방에서…."
"마력 포션을 만드는 겁니다. 후후."
루베라는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몸을 커다란 침대 위로 넘어트린다.
10살의 아이가 자기에는 너무나도 큰 침대였기에, 클레온과 루베라가 위에 올라타더라도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심이냐...! 루베라...! 누군가에게 들키면"
"그 자리에서 전원 참수형 결정이네요…. 생존본능이 마구 샘솟지 않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삽입은 하지 않을 테니까. 대신 여러 부위를 써서 이 병이 3개 정도 가득 찰 때까지 내주셔야겠습니다."
눈을 빛내며 혀를 날름거리는 루베라. 조용한 목소리지만, 아멜리아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클레온과 그런 일을 한다는 것에 그녀는 명백한 흥분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 변태 메이드가...!"
"제가 이렇게 된 건 당신 때문입니다. 제 잘못은 아닌 듯 하네요."
"저기~! 제 침대에서 대체 뭘 하시려는 건가요~!!?"
아멜리아는 그런 루베라와 클레온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소리를 올린다.
클레온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제발 누군가가 이 방의 가까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