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56화 (156/506)

〈 156화 〉 생쥐

* * *

000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 클레온과 일행들이 뒷골목에서 유스테스를 구출하기 위해 행동하던 때와 같은 시간.

탐정 그레이는 라일라로부터 받았던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 왕국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레이가 눈으로 좇고 있는 것은, 방위대신 퍼시스 트로메이아의 남동생이자, 그레이의 조사 대상인 세토스 트로메이아.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변에 있는 왕국민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보인다. 세토스도 그것이 익숙한지 일일이 반응하지는 않고 대충 손을 들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인파를 헤쳐 나아가는 것이다.

"역시 굉장하군. 트로메이아의 위광은."

그레이에게서 남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주 조용하고, 기계적인 말투.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로 들리지 않을 크기의 목소리이지만, 그레이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 어깨에 올라타 있는 `그것`의 말에 대답한다.

"퍼시스경은 퍼시스경대로 용사라는 좀 굉장한 인물임다만... 세토스경도 만만치 않은 사람임다."

평소대로의 목소리. 그렇다면, 아까 나왔던 목소리는 누구에게서란 말인가?

`그것`은 쥐의 모습을 하는 기계장치였다. 눈은 유리, 몸은 황동. 등에는 태엽. 철선으로 되어있는 꼬리. 동력은 마력석. 성질을 보면 오토마타와 비슷하였지만, 아무리 보아도 전투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반란 진압인가.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세토스가 두각을 나타낸 사건이지."

"바로 그렇슴다. 세토스경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왕좌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을지도 모름다."

기계 쥐가 말한 대로, 세토스는 구국의 영웅 중 하나로 칭송받던 퍼시스의 너무나도 찬란한 빛에 가려진 비운의 귀족이었다.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비록 성검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형을 보조하여 전장을 뛰어다녔으며. 귀족치곤 드문 친 평민파의 일원으로서 의용대와의 협력 작전도 펼치는 등 다양한 활약을 했었지만. 의용대에는 팔라나티아라고 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그리고, 퍼시스와 팔라나티아를 뛰어넘을 정도로 거대한 업적을 세운 황금의 용사 `레시아`의 존재가 세토스의 인상을 약하게 만들었다.

인정받아야 할 것을 인정받지 못한 채, 그런 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게 된다면 조금은 억울한 마음을 가지게 될 법도 하지만. 세토스는 그저 국가의 중신인 형을 보조하며 숨은 공로자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퍼시스경이 병사를 이끌고, 제국의 잔당들이 모여 조직한 곳의 근거지를 치러 왕도를 비운 사이. 여왕의 남동생이 군사를 일으켜 왕을 인질로 잡으려 했을 때 그것을 막은 것이 바로 세토스였기 때문이다. 반란의 주모자와 오랜 지기의 친구였던 그는 반란군의 사령관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그와 접촉하여, 그 자리에서 그를 베어버린 뒤 미리 고용한 모험가들을 통해 반란을 진압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세토스 역시 형에 맞먹는 왕국의 수호자로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으며 명실상부 트로메이아 가문이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마법학과 수석씨는 그런 세토스경이 범죄자 용사 `알베인`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슴다. 과거의 연인에 대해선 꽤나 철저하게 흔적을 지운 것 같슴다만... 어떻게 생각함까, 헤르메스."

"그렇군. 내 계산에 따르면 용사 알베인과 세토스 트로메이아는 혈연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두 사람을 엮어서 조사하라고 할 필요가 없어."

기계 쥐­ 헤르메스는 그레이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고, 그레이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적절이 유지하면서, 세토스의 뒤를 따라가는 그레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탐정 그 자체였지만. 헤르메스는 그런 그레이의 어깨에서 한숨을 내쉰다.

"...이런 조사라면, 나에게 맡기면 돼. 너는, 사무소에서 내가 가지고 오는 보고를 기다리면 된다."

"탐정은 모름지기 자기 발로 뛰는 검다. 안락의자 탐정이 되기엔 너무 젊지 말임다."

"...네 몸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헤르메스의 말에 그레이는 베­하고 혀를 내밀다가, 세토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대신전. 역시 만나는 것은 교황인가…."

이른 아침부터 세토스의 저택 근처에 있었던 그레이는 그의 집을 찾은 신전의 신관병의 모습을 보았다. 무장은 해제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가슴팍에는 교황 직속의 신관병의 상징인 삼위일체의 문양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었다. 헤르메스를 이용하여 두 사람이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지 살피려 했지만, 그녀는 말 없이 한가지 두루마리를 그에게 건넸을 뿐이었다.

세토스는 두루마리의 내용을 확인한 뒤, 그것을 곧바로 벽난로에 집어 던져 태워버렸고, 곧장 나갈 채비를 하여 저택을 나섰다.

"잠깐, 여기서부턴 내가 혼자 가겠다."

헤르메스는 그렇게 말하며 그레이의 팔을 타고 손으로 내려온다. 그레이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헤르메스의 몸과 똑같은 황동색의 파충류스러운 외골격을 꺼내 들었다.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헤르메스의 몸뚱이에 붙어있던 원래의 외골격을 떼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하면. 헤르메스는 주변의 풍경에 녹아들듯이 모습을 감춘다.

[그럼. 다녀오지.]

그레이는 보이지 않는 파트너가 손에서 떨어지는 감촉을 느낀 뒤, 자신도 신전 근처의 골목으로 가서 정신을 집중한다. 그녀와 헤르메스 사이에 연결된 마력의 통로가 헤르메스가 보는 것, 듣는 것을 그레이에게 전달해준다.

헤르메스는 요리조리, 사람들의 발을 피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세토스가 교황의 사무실 앞에까지 가는 것을 확인한다. 사무실의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 방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헤르메스는 잠깐이지만 그를 위해 열려있던 타이밍에 맞추어 발을 움직여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한다.

교황­ 성모 에스카는 늘 그렇듯이 자비로운 표정으로 업무를 보는 책상의 앞에 앉아 세토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맑은 하늘과 같은 푸른색의 머리카락은 평소와는 다르게 묶어서 정리한 상태였고, 교황의 의복도 앉아서 일을 보기에는 조금 거추장스러운 로브를 벗어둔 채였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 그리고 감출 수 없는 신성 마력의 파동은 아무리 세토스, 그리고 기계 몸을 가진 헤르메스라고 하더라도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교황 예하. 이렇게 저를 불러주신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세토스는 어딘가 그녀가 조금 불편한 것인지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이었다.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어있는 이 나라에서, 교황이 아무리 성자의 가호 교단의 가장 위에 있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는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이기 때문에 세토스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왕마저도 입을 열 때 조심스러워하는 에스카를 상대로 빠르게 용건을 말하라고 하는 것은 세토스가 그녀에게 일말의 존경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째서 저에게 그렇게 불친절하신 걸까요. 같이 왕국의 평화를 위해 싸운 동료 아닌가요? 그리고 지금도 여러모로 협력을 하는 관계지 않습니까?"

에스카가 조금 슬프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세토스는 개의치 않고 대답한다.

"30년도 더 전의 일이지요. 지금은…. 협력은 하고 있지만, 서로 목적으로 하는 바가 다르지 않습니까."

"...후후. 뭐 좋습니다. 오늘은 세토스경이 기뻐할 만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이곳에 오시게 했습니다."

소피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은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이 조금 기분 나쁘게 느껴진 세토스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 여자가 이런 식의 표정을 보일 때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을 때라고,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세토스였다.

그런 세토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피아는 입을 연다.

"기뻐하세요. 당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소식입니다."

"... ... 무슨­"

세토스는 에스카의 말에, 자기 귀가 잠시 잘못되었냐는 듯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다음은 에스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피식 웃음을 흘린다. 하지만 에스카의 얼굴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며 서서히 얼굴이 굳어가는 것이었다.

"20년 정도 전에 당신이 관계를 정리한 변방 마을 출신의 무녀분... 세츠나씨, 였나요? 고향으로 돌아가 금발 벽안의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세츠나가...!?"

세토스는 자신도 모르게 에스카의 말에 반응하며 그녀의 이름을 되풀이하다가, `핫`하고 아차 하는 마음에 에스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에스카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지만,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런 세토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관찰하고 있었다.

이 여자­, 교황은 인간의 마음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보는 눈이 있다고 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 것이겠지.

세토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식은땀을 흘린 채 그녀에게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교황 예하. 설마, 저도 모르는 제 자식을 찾아주시다니."

"그렇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그 아드님은 만나기 힘든 상황에 있답니다."

에스카는 돌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약간의 탄성, 한숨을 섞으며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세토스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이것은, 분명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여자가 자신에게 이것을 전달하는 것으로 자신을 장기 말로 쓰려고 한다는 것은 오랜 정치 생활을 겪은 그에게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호기심은 때때로 이성을 짓누른다.

"어째서입니까."

눈앞에 흔들리는 미끼 걸린 낚싯바늘에 입이 꿰인 아픈 감각과 함께, 세토스는 주먹을 쥐고 에스카에게 물었다.

그리고. 에스카는 흔들린 손맛에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세토스경은, 용사 알베인이라는 이름을 알고 계시는지요?"

"...? 알베인...? 아아, 몇 달 전 왕도로 호송되어 와서 재판받은 용사입니까. 용사임에도 불구하고 동료에게 위해를 가하고, 성검을 폭주시켜서 도시에 피해를 주었다는…."

세토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몇 달 전에 이루어진 재판의 결과를 떠올렸다. 재판 자체는 형식적인 것으로, 용사 알베인의 죄목은 너무나도 확실했기 때문에 강제 노역이 결정되었을 때도 별 감흥은 없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어째서 그녀의 입에서 그 알베인의 이름이 나오는가. 그것은, 무언가 이번 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설마."

"그 알베인이, 바로 당신의 혈육입니다. 어머니는 세츠나... 같은 마을 출신의 성직자, 쿠온과 함께 모험을 떠나 엘레시아에서 지냈다고 하더군요."

세토스의 머리에 얼마 전, 형의 저택에서 만났던 세츠나를 빼닮은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 ..."

세토스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답변이 몇 개라도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알베인이 자신의 자식이라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

그녀가 자신과 헤어진 뒤 다른 남자와 얻은 자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입에 담기도 전에 그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세츠나. 그녀를 내친 것은 분명 자신이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아까울 정도로, 헌신적인 여성이었다. 그래서, 더는 귀족의 세계에 그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 그녀와 절연하듯이 헤어진 것인데­

"...신이시여..."

세토스는 자신도 모르게 신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감쌌다. 에스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초승달 같은 눈과 입을 띄운 채 웃고 있을 뿐이었다. 빛이 쏟아지는 사무실의 창을 등진 채, 그늘진 얼굴에 보이는 표정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어째서, 나에게 이 사실을…."

"저는 교황으로서, 교단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뿐.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가족이 있다면 그것을 이어주는 것이야말로 신의 가르침 아니겠나요."

`형편 좋은 말을...`

세토스는 주먹을 꽉 쥐며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에스카를 바라본다.

"어떠신가요, 만나보실 마음이 생겼나요?"

"... 만약 알베인이 제 친아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왕국 법을 어기고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버린 여자는, 그를 혼자서 키웠겠지요."

"큭..."

에스카의 말에 세토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간신히 억누른 채 였다. 만약 검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뽑았을지도 모른다. 이 여자는, 자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고 있다.

세토스의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불길한 상상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왕국 방위 대신의 동생이, 사생아를 만들고 임신한 여성을 내쳤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남자아이는 용사가 되었지만 성검을 폭주시키고 지금은 강제 노역을 하고 있다. 그런 사실 자체가, 세토스에게 있어서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을 싫어하는 이 여자가 이것을 가지고 자신을 협박해 온다면­

"뭐. 이것을 전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에스카는 웃으면서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것으로, 방 안에 흐르던 긴장감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세토스는 그런 교황을 보며 잠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그녀는 여전히 이 사실을 쥐고 있는 것이었다.

세토스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숙여 에스카에게 예를 표한다.

"귀중한 소식,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황 예하."

"천만에요. 말했듯이, 가족의 평안을 바랐을 뿐입니다."

세토스는 몸을 돌려 교황의 사무실을 나선다. 에스카는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방문이 닫힌 순간­

"푸­"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하하하!! 세토스 트로메이아! 엄청난 얼굴이었지…! 당장이라도 나를 베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등받이에 등을 붙일 정도로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한참을 찢어지게 웃다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한차례 진정하는 듯했다.

"... 설마 그 벌레를 조사하다가, 이런 걸 알게 된다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어…. 이번만큼은 감사해야겠네, 쿠온양... 후후..."

세토스가 그녀를 싫어하듯, 그녀 역시 세토스를 싫어한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결코 씼을 수 없는 원한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세토스의 절망한 듯한 얼굴을 본 것으로 조금 기분이 풀린 에스카는 상냥한 목소리로 측근을 부른다.

"베라스톨."

"...네, 예하."

그림자와 같이, 그녀를 호위하는 갑주의 성전사가 그녀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유일하게, 이 사무실 바깥에서도, 사무실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생쥐가 있어."

"... 생쥐, 입니까?"

베라스톨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자, 에스카는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입을 열어­

"대신전 바깥, 동쪽 골목의 쌓여있는 상자 뒤. 회색 머리카락의 소년이야."

[그레이! 도망쳐라!]

다음 순간, 벼락과도 같은 창이 날아와 투명했던 헤르메스의 몸을 꿰뚫었다. 파직! 하는 스파크를 올린 헤르메스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까맣게 타버리고 만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죽이지 않아도 좋아. 다만, 교황의 사생활을 엿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줬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001

브레스톨은 전이 마법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교황이 이야기한 장소로 이동한다. 육중한 갑주를 입은 그녀이지만, 특기로 하는 무영창의 전이 마법은 어떤 방향에서 적이 나타나더라도 교황을 지킬 수 있으며, 또 어떤 교황의 적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전이한 곳은 동쪽의 골목길. 벼락과도 같이 지상으로 떨어지면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날려 버린다. 머리에 뒤집어쓴 헬름의 틈 너머에서 광기 서린 안광을 내비치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곳에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골목길의 출구 부분.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본 그녀가 다시 한번 전이 마법으로 그 머리카락의 주인을 따라잡아 머리카락을 붙잡으면­

"꺄, 악...!"

소녀가, 비명의 소리를 올렸다.

그녀가 붙잡은 것은 회색­이 아닌, 은색에 가까운 머리카락이었고. 그 주인 역시 소년이 아닌, 소녀였다. 몸에 걸친 것은 원피스. 목에는 은제의 펜던트. 아무리 봐도 귀족 집안의 자제 같은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신을 붙잡은 전신 갑주의 성전사를 돌아본다.

"무, 무슨 짓인가요…!"

"... ..."

베라스톨의 안광은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이내 손을 놓고 허리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신전에 숨어들어온 쥐새끼를 잡으려다가."

"제가 쥐새끼로 보인다는 건가요!? 당신, 교황 예하 직속의 성전사 분이시죠!?"

단단히 화가 난 듯한 소녀의 목소리에, 베라스톨은 헬름을 벗으며 더욱 깊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핑크빛의 머리가 찰랑거리며 중력을 타고 내려오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죄송, 합니다."

"... 됐습니다. 이 일은 아버님께도 말씀드려 공식으로 항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녀는 그런 베라스톨을 신전의 앞에 둔 채로 도도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베라스톨은 주인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절망감.

그리고 동시에, 그렇다면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을 수 있다는 흥분과 함께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002

"... ... 하아...!"

그레이는 베라스톨에게서 한참을 떨어진 뒤, 뒷골목으로 들어가 조용히 펜던트에 달린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전신에 마력이 훑어 지나가면서 은색의 머리카락은 다시 회색으로. 원피스는 멜빵 바지로 변한다.

"위, 험했슴다... 설마, 전이해오다니…."

"아아. 나도, 설마 광학미채가 들킬 줄 몰랐다. 역시, 교황은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이군."

교황에 의해 파괴되었던 헤르메스도, 육체가 파괴되기 직전에 예비용 육체인 펜던트의 보석으로 정신을 전송시켜둔 덕분에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교황, 생각보다도 위험한 인물이었슴다. 그리고 세토스경에 관한 건 예상대로, 려나..."

그레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사무소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 나간다. 펜던트는 반짝이며 그레이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말은 더 있었다. 지금도, 협력하고 있다고 했었지.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지만…. 그런 것을 묻어둘 정도로 중요한 일이란 건가?"

"...그것도 우리가 조사해야 하는 검까?"

"그래. 세토스에게서는 미약하게나마 `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 안 좋은 일에 연관된 것은 분명해."

"...어째서 아는 검까?"

"나는 그런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지. 자. 작업실로 돌아가자. 망가진 육체를 보충하고 조사를 준비해야 하니까."

헤르메스의 말에 그레이는 `으헤에` 같이, 질린 듯한 목소리를 내며 길거리를 걸어간다.

`차라리 안락의자 탐정으로 전직할까?`

같은, 형편 좋은 생각을 하면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