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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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가호 아래, 악마의 장막은 힘을 잃은 채로 숨죽이지만, 어둠의 달이 떠오르면 왕도에는 또다시 신비한 마력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일반인은 알아채지 못하는 아니, 알아채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술식에 의해 오염된 지맥의 일부분을 타고 저주가 흘러나간다. 그들은 또다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의 분출구를 꿈으로 돌리며, 살아가는 힘, 즉, 활력, 생명력을 악마들에게 흡수당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꽤나 교묘한 수법이었는데, 우선 흑마력에 대한 저항이 없는 일반적인 인간들은 저주에 당하여 음몽을 꾸고, 가지고 있는 힘을 빼앗기고 있더라도 그 사실을 아침에 일어나면 잊어버리게 된다. 어젯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 꿈이 자기 몸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도 대부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저 원인 모를 권태감과 피로만을 느낀 채 하루를 보내면서 피로의 출처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
그렇다면 어느 정도 항마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어떨까. 예를 들면, 성직자들이다. 성직자는 기본적으로 흑마력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덕분에 약한 저주라면 듣지 않는다. 이 저주가 교묘하다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다. 교단 소속의 성직자들이 이 저주의 대상이 된다면, 몸은 자연스럽게 저주를 막아내고 신성 마력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이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성직자가 저주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발동하는 일종의 반사작용이다.
그렇기에 성직자들은 음몽을 꾸지 않는다. 악마에 관한 일이라면 감지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그들이지만, 정작 저주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주아주 급이 낮은 성직자라면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채기에는 지식도 힘도 부족한 것이다. 고위의 성직자들은 애초에 저주가 자신에게 닿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정화해버린다.
이것이, 현재 교단이 악마들의 저주에 대해 눈치채고 있지 못한 이유이다. 악마가 저주를 퍼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지맥은 원래부터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물줄기에 잉크를 한 방울 섞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 그 잉크야말로 인간들을 먹이로 바꾸기 위한 저주의 물방울이라는 것을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이슈탈은 조용히, 수상한 보랏빛으로 발광하는 왕도의 미니어처가 전시된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낮에 있었던 카말라가 습격당한 사실을 알린 레이놀드. 아니, 레밀리아의 모습이 있었다. 가게에서 일하던 악마들의 대부분은 카말라의 목을 가지고 나올 때 처리했지만, 그는 아루루가 재전이 되어 자신의 앞에서 사라지자마자 이슈탈이 있는 아스타로테의 본거지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의 고용주는 카말라가 아닌, 이슈탈 본인이었으니까.
"그래... 카말라의 가게가. 저쪽도 클레온을 끌어들인 걸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단거네."
이슈탈은 레밀리아의 보고를 모두 들은 뒤 조용히 착용하고 있던 안경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미니어처에서 흐르는 마력광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주인이 관찰을 마치자 조금은 빛이 사그라들었다. 레밀리아는 이슈탈의 표정을 살피었지만, 그녀는 레밀리아의 예상과는 다르게 입가에 미소를 띤 채였다. 성격은 좀 그렇더라도 유능한 계약마와 그녀가 운영하면서 자금을 벌어들이던 가게를 잃었음에도, 그녀에게는 여유가 가득했다.
"괜찮으신 겁니까?"
레밀리아는 혹시라도, 그녀가 필요 이상의 분노를 느껴 감정의 표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하는 듯이 물어보았다. 인간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표현을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슈탈은 그런 부류의 인종은 아니었는지, `물론이야`라고 이야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카말라가 모으는 정기와 자금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보너스. 지배욕이 강한 카말라의 욕구를 해결해주기 위해 풀어둔 것에 불과하니까. 데리고 있던 인간들도, `결정`이 만들어질 확률이 적은 기준미달 뿐... 뭐. 너무 화려하게 한 벌을 받은 거지."
이슈탈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레밀리아의 표정은 절대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이것이, 이슈탈의 방심이라는 것을. 모험에서는 물론 전장에서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방심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레밀리아는 알고 있었다.
"카말라는 죽지 않고 그들에 의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렇네."
"...그녀가 저희에 관해 이것저것 말하지 않겠습니까?"
"말하지 않더라도 그쪽에는 솜씨 좋은 마법사가 있으니 억지로라도 정보를 빼내겠지."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인걸."
이슈탈이 레밀리아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레밀리아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아스타로테 내에서 릴림을 제외하면 이슈탈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원래 모험가로서 가지고 있는 지략이나, 경험을 이슈탈이 높게 사고 있다는 증거였다.
"비록 이 레밀리아. 당신과의 계약으로 몸은 여성으로 바뀌었고. 가지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윤리관도 버렸습니다. 허나 이슈탈님은 사태를 너무 낙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비록 카말라 그녀에게는 필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았고, 적당히 쓰다 버릴 패라는 역할이 있었지만. 죽지 않고 포로로 잡히면 그녀가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세인트 프린세스 측이 반격에 나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레밀리아의 말에 이슈탈은 `후후`하고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을까?"
"... `결정`의 힘을 사용하여 대악마... 데미우르고스를 강림시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된 평화는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가 설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니."
레밀리아는 이슈탈에게서, 그녀와 계약했을 때 들었던 대로의 대답을 되돌려준다. 그러면 이슈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맞아, 하지만 이 세계에는 그런 것들을 방해하기 위한 `시스템`이 너무나도 많이 준비되어있어. 동굴에 처박혀 있는 날개 달린 도마뱀들. 별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종말 방지 장치인 `대적자`.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계산에 넣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엔 운명대로의 에필로그를 맞이하게 되지."
그 사실을, 이슈탈은 아카데미에서 있던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들은, 마검황제와 마찬가지로 별이 자아내는 틀의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 모든 것이, 그런 것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래 맞아. 레밀리아. 당신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몸도 영혼도 아깝지 않다고 이야기했지?"
레밀리아는 주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 붕괴`가 일어났을 때. 하늘이 불타고, 땅이 갈라지는 왕도의 위에 서서 악마의 힘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꼭 우리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001
하늘에 펼쳐진 구름 사이로 조금씩 그 모습을 보이는 새하얀 달. 그곳에서 쏟아지는 달빛. 별빛 하나 없는 검은 하늘에 보이는 유일한 빛은 그 녀석은,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보다도 더욱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마성`의 달이었다. 달이 자신을 내려다볼 때, 누군가가 달을 눈으로 삼아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불길한 마력. 클레온은 오랜만에 모험가로서의 복장을 갖춘 채 어두운 거리의 그림자 사이를 지나가며 뒷골목의 주점 `셰이스 시프터`로 향한다.
허리에는 각각 성검과 마검이 걸려 있었고, 몸에는 익숙한 검은 색조의 갑옷. 포션을 휴대할 수 있는 벨트와. 락픽이나 부싯돌과 같은 가벼운 소모품이 들어있는 파우치. 팔과 다리에는 투척용으로 만들어진 한번 쓰고 버리는 단검이 각각 한 자루씩 숨겨져 있다.
가게의 문이 열리며, 달려있던 종이 흔들리면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베라와 아멜리아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멜리아는 전신을 감싸는 값싼 로브를 뒤집어 쓴 채였고, 루베라는 사복도, 메이드복도 아닌, 이전 탈체크와 싸울 때 입고 있던 검은색의 몸에 딱 달라붙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어 이곳저곳의 라인이 드러나지만, 움직이기에는 두 복장에 비해서 훨씬 편하겠지. 일단은 중요한 부분에는 탈착형의 얇은 철판을 덧대, 방어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암살자의 검을 사용하는 그녀에게 있어 검과 검이 부딪히거나, 피격을 전제로 하는 싸움법 자체가 난센스였다.
"왔군요."
"...미안, 기다리게 했나?"
"아, 아뇨.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클레온의 질문에, 아멜리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낮에 보았던 가벼운 차림의 클레온과는 또 다른, 완전히 무장한 모험가로서의 클레온을 보고 조금 당황한 듯하였다. 거기에, 허리에 있는 마검과 성검 역시 그녀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겠지. 상식적으로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자루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런 아멜리아를 옆에 두고, 루베라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오나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보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고요. 그리고... 그 인간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그래. 지금은 트로메이아 가문에서 보호하고 있을 거야. 그 가게에 있던 다른 모험가들도 마찬가지로."
"...이전, 루베라와 함께 아스타로테가 거점으로 사용하던 창관에서, 서큐버스들이 부랑자로 보이는 남성을 여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설마, 마력원을 얻기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아멜리아의 말에 루베라 역시, 그 광경을 떠올렸다. 손님이었던 남성이 기절하자, 서큐버스들이 달려들어 신체를 변형시키는 그 강렬한 장면은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거추장스러운 기억을 떨쳐내듯 이마에 손을 올리며 루베라는 말한다.
"아직 치료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술식을 가지고 있는 이슈탈 본인을 잡아야 해결될 것 같아. 루베라가 붙잡은 악마에게서 정보를 추출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악마들은 마법을 `술식`으로 분해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사용한다는 것 같아서 말이야. 머릿속에 술식의 이미지가 잡혀있지 않다고 했어."
술식은 말하자면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자연계의 법칙을 분해하고 분석해서 만들어낸 마법의 설계도이다. 술식에는 마법이 발동되기 까지 마력이 흐르는 방식이나, 3차원 공간에서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한 좌표의 인식 등이 필요했고, 일반적으로 인간 마법사라면 이 술식의 이해도가 떨어지면 마법의 위력도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법사들은 자연스럽게 술식을 연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으며 마법사들 중에 연구자가 많은 것도 그것이 이유이다.
허나 악마는 다르다. 악마는 존재 자체가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었고, 육체도 물질계에 머물기 위한 임시의 것에 불과하다. 술식을 연구하지 않더라도, 호흡하듯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그들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술식의 존재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마법의 구조나, 해제 방법도 모르는 채 마구잡이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라일라에게도 무리라면, 역시 근원을 없앨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 ... 그래도 수확이 아예 없던 건 아니야. 붙잡은 악마가, 이슈탈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줬어. 특히,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넘겼지."
"...도움이 될만한 정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뒷골목의 지리가 정리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어느새 이런걸... 이라고 이야기하면, 붙잡은 악마 카말라의 사무실에서 슬쩍해 왔다고 대답한다.
"여, 역시 모험가들은 전리품을 챙기는 것이 확실하군요."
"아니, 이 남자가 조금 특이한 겁니다. ...그보다, 여기 X로 칠해진 곳이 신경 쓰이는 군요."
루베라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는, 확실히 최근에 붉은색의 X로 칠해진 곳이 있었다. 지도상에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는 뒷골목의 거리 위였지만. 클레온은 카말라에게서 뽑아낸 정보를 이야기한다.
"왕도의 지하에는 하수도가 있고, 그 더욱 밑으로 내려가면 발굴이 중단된 유적이 있어. 그렇지?"
"네. 원래는 수도를 공사할 때 발견되어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거대한 봉인이 존재한 탓에 지금으로선 손을 댈 수 없다고 판단되어 방치된 유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국과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 왕국 초창기의 일이니 상당히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지만요."
아멜리아의 대답에 클레온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지는 라일라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카말라는 그 뒤에 이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었다.
"이 지도의 표식이 있는 곳에는, 지하 수도를 통해 유적이 있는 곳까지 내려갈 수 있는 통로와 연결되어 있어. 이슈탈도 과거, 그 유적을 찾아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유적을 지키던 녀석과 싸워서 패배하고 도주했다는 것 같아. 그 뒤로는, 유적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고 해."
"...유적의 수호자. 라는 것일까요. 골렘이나, 가고일 같은."
아멜리아의 추측에,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어린 나이에 비해서 훌륭한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달랐다.
"카말라는 그 녀석을 칭할 때 `그 여자`라고 했어. 골렘이나 가고일에는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겠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인간. 이라는 것이로군요."
루베라는 클레온의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대인의 유적을 수호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인간이라고는 하기 어렵겠지만. 골렘이나 가고일에 비해서는 의사소통이 될 가능성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슈탈이 두려워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면, 아군으로 포섭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만약, 저희도 공격당한다면?"
루베라가 당연한 질문을 하면, 클레온은 대답한다.
"뭐, 그러면 아쉽지만, 포섭은 포기하고 돌아와야겠지만 말이야.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가 지키고 있다는 유적에는 이슈탈이 원하는 것이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도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데미우르고스 강림을 위한 대량의 마력원. 유적 내부에 그런 물건이 잠들어 있다는 것일까요?"
"...그럴지도."
클레온은 아멜리아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도를 정리해 다시 가방으로 되돌려 넣었다. 그것을 신호로 하듯, 루베라와 아멜리아도 앉아있던 의자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저 정처 없이 그녀들의 흔적을 찾으러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겠군요."
"붙잡은 악마는 아지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맹약 때문에 불지도 못하고, 정보도 꺼내질 못했으니까 말이야. 머리에 바늘이 꽂혀도 대답을 안 하더라고."
"머, 머리에 바늘...인가요? 혹시, 그런 고문법이 있는 걸까요…."
아멜리아는 클레온의 말에 끔찍한 광경이 머리에 떠오른 것인지 얼굴을 새파랗게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루베라는 클레온을 째릿하고 노려본다. 아무리 세인트 프린세스로서 악마와 싸우는 성전사라고는 하지만, 방금 그 발언은 조금 자극이 심했을지도 모른다고, 클레온은 반성하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다 같이 바를 나서 뒷골목을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낮의 일 때문에 서큐버스들이 예민해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괜한 소란을 일으키면 어제처럼 상위나 간부가 와서 탐색을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늘한 달밤의 공기를 헤치며 걸어가는 세 사람의 뒤편. 그림자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회색의 눈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002
악취가 풍겨오는 하수도의 통로. 지하 시설을 정비한 지 수십 년이 다 되어가기에, 여기저기 녹슨 철봉이나, 하수처리 시설에 쌓여있는 오폐물들 때문에 끊임없이 악취가 올라왔다. 왕도의 방대한 인구가 매일같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들이 그 원인이겠지만. 비교적 자주 관리되는 일반적인 곳의 하수도와는 다르게, 뒷골목은 왕국에서도 방치하고 있는 장소. 때문에, 유지보수에도 당연하지만, 차별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클레온과 루베라, 그리고 아멜리아는 각자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그 안을 나아간다. 물론, 본격적인 방호 장비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호흡기를 보호하더라도 악취는 어쩔 수 없었지만. 아멜리아는 벌써 얼굴이 어두우며 표정이 창백했다.
"...괜찮습니까."
루베라는 그런 아멜리아가 걱정된다는 듯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어깨를 붙잡았다.
"괘, 괜찮아요. 루베라.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습니다."
루베라는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내 클레온을 바라보며 무언으로 `어떻게든 해봐라` 라는 표정을 짓는다.
루베라와 클레온 모두, 이런저런 수라장을 겪으면서 이런 환경에는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있었지만, 아멜리아에게도 그 정도의 내성을 바라는 것은 가혹한 것이겠지. 클레온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쿠온의 신성 마법 중에 있는 `정화`의 신성 마법을 사용하여 그녀의 주변에 있는 공기를 조금이나마 정화해본다.
확실히, 한순간 공기가 맑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무색하게 주변의 악취는 공기를 떠돌며 돌아다니고, 환기되지 않는 환경에서 한 부분만 정화해봤자, 금방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걸 정화 마법으로 해결하려면 지하수도 전부를 정화해야 하겠는걸."
"그런 게 가능합니까?"
루베라는 클레온의 말에 조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뜬다.
"아니, 나는 못 해. 쿠온이라면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이내 클레온의 말에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클레온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슴까?"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그들의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세 사람이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회색 머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얼굴에 괴상한 가면을 쓴 채 서 있었다. 마치 새 부리와도 같이 툭 튀어나와 있는 그 가면은, 눈에는 유리로 된 렌즈가 끼워져 있었고. 호흡할 때마다 `푸슈 코` 하고 특이한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냐."
클레온이 경계하면서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면, 루베라가 그를 막아선다.
"어제 보았던 그 탐정이군요."
"맞슴다! 기억력이 좋은 검다."
그레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러더니, 자신이 쓰고 있던 것과 비슷한 가면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클레온도, 그레이라면 유스테스를 구할 단서인 `편익의 반지의 레플리카`를 제공해 준 인물이었기에, 이내 조금 경계심을 풀며 가면을 내려다본다.
"제가 만든 방독마스크임다! 악취나 유독물질은 확실하게 막아줄테니, 그쪽의 여성분에게 쓰게 하는 검다."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저희를 미행한 겁니까?"
루베라가 당연한 의문을 제시하면, 그레이는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렇슴다. 저도 왕국의 시민으로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따라온검다."
"쓸데없는 짓을..."
루베라가 한숨을 내쉬면 아멜리아는 조용히 클레온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 의도를 파악한 클레온은 루베라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까. 함께 행동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진심입니까?"
루베라는 아멜리아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만큼은 피해야 할 일이었다.
"괜찮슴다! 그쪽 여자아이한테는 절대로 신경 쓰지 않을 테니! 그리고,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떠벌리지 않슴다. 탐정으로서의 신용도가 걸린 문제임다."
"... ...설마, 벌써 누군지 알아챈 건 아니겠지?"
클레온이 그렇게 물어보자 그레이는 휘파람을 불 뿐이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받은 가면을 아멜리아가 뒤집어쓰면, 그녀 역시 조금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지만, 눈에 띄게 호흡이 편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굉장해요...! 정말로 악취도, 답답한 것도 사라졌어요."
"헤헤, 잘된검다. 이걸로, 저도 함께 가도 되는검까?"
루베라와 클레온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이내, 루베라가 한숨을 내쉰다.
"...방해하지만 마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을 제대로 따라오도록."
"물론임다! 미행은 탐정의 특기인검다."
그레이는 가면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그 밑이 싱글벙글하고 있다는 것을 어째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방독면도 그렇고, 편익의 반지의 레플리카도 그렇고. 일반적인 탐정이 아니란 것은 확실했지만, 클레온은 그레이에게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아! 당신이 클레온씨임까."
"...나를 알고 있었나?"
"물론임다. 라일라 플레임워치양의 연인분이시지 않슴까?"
"... ..."
그레이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자 클레온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10달 뒤면 라일라의 애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꾹 담아둔 채였다.
"뭐. 저도 당신에게는 조금 빚을 진검다. 그걸 갚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할 테니, 잘 부탁함다."
"그, 그래..."
그레이가 손을 내밀면, 클레온은 그것을 붙잡아 악수를 한다. 손을 붙잡아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뭐 하고 있는 겁니까. 두고 가기 전에 따라오세요."
어느새 꽤 먼 거리를 걸어간 루베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그레이는 황급히 그녀 쪽으로 달려간다. 클레온은 그런 그레이의 뒷모습을 보며, 이슈탈이 `두려워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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