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그녀 (9월 3일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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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가 이어지는 길은, 어느샌가 벽의 재질이 바뀌면서 그 흔적을 지워간다. 녹슨 철제 울타리, 약품이나 오폐물에 찌들어있던 석재의 벽, 쓰레기에 파묻혀서 썩어가는 시체가 인간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것인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빠른 걸음을 걷는다. 뒷골목의 지하수도는 위쪽의 세계만큼이나 어둡고 더러움에 물들어 있어서, 이것이 정녕 왕국의 수도의 지하일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벽의 재질이 금속제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어느샌가 자신들이 걷는 통로가 지하 수도가 아닌, 왕국의 땅 밑에 잠들어있는 거대한 고대 유적의 통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독성의 악취도 사라졌으니, 그레이는 재빨리 방독면을 벗어 버린다. 그것을 보고, 아멜리아도 조심스럽게 얼굴에 쓰고 있던 새부리의 가면을 벗어버리는 것이었다.
"...후아..."
아무리 악취를 막아준다지만, 방독면을 10분 가까이 쓰고 있으면 조금은 답답하기 마련, 크게 숨을 내쉬면서 서늘한 감각이 그녀의 얼굴의 피부를 타고 흘렀다. 아멜리아는 벗은 가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로브의 후드를 꾹 뒤집어쓴 채 그레이에게 다가가 가면을 건넨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낮은 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레이는 그것을 바라보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올라갈 때는 또 저곳을 통과해야 하는 검다. 그때도 써야 하니까 가지고 있는 게 좋을검다."
확실히. 아멜리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품 안에 방독면을 챙겨 넣었다. 그러고는 빠른 발걸음으로 루베라가 있는 곳까지 뛰어와 그녀의 곁에 선다.
클레온과 루베라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도 그레이가 그녀의 정체를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듯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레이. 라고 했던가. 손재주가 좋은가 보군."
"감사함다. 어릴 적부터 혼자 살아서,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졌슴다."
그레이는 손가락을 주르륵 접었다 펴면서 이빨을 보이며 웃어 보였다. 혼자 살았다는 불우한 환경을 떠올린 것보다도, 손재주를 칭찬받은 것이 단순히 자랑스러운 듯했다. 다만, 그 손재주라면 탐정을 하는 것 보다 어딘가의 연금술사의 공방에라도 들어가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클레온은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람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것이니, 그 부분에 관해서는 따로 묻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도 궁금한 것이 있다면
"나에게 빚이 있다고 했었지."
"아 그렇슴다. 정확히는 라일라씨를 통한 빚임다만..."
그레이는 클레온의 말에 조금 멋쩍듯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클레온이 그레이에게 그것을 물어본 이유는, 별로 그레이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켜서 사과를 받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레이와 자신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
그레이는 클레온과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라일라씨가 저와 처음 만난 건, 그녀가 용사 알베인을 조사하고 있을 때 였슴다."
"... 알베인."
그레이의 말에서 예상 밖의 이름이 나오자, 클레온은 거기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일라가 그를 찾은 이유라는 것은 알베인을 아카데미로 데려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모으려던 것이겠지.
그리고, 라일라는 그레이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알베인을 데려올 작전을 짜, 엘레시아로 온 것이다.
"그렇군."
"화... 안내시는 검까?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그 뒤에 라일라씨가 뭘 하려고 했는지도 일단은 조사했슴다. 다만, 탐정으로서 의뢰받은 일 이상의 일을 하는 건..."
그레이는 힐끗힐끗, 클레온의 눈치를 살피면서 이야기한다. 그렇다는 것은 그 이후 클레온이 파티에서 추방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이겠지.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일행 모두에게 잘된 일이 된 것이지만, 당시의 클레온은 정말로 큰 절망을 느꼈었으니까.
하지만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레이가 말한 대로, 그레이는 라일라가 부탁한 일을 했을 뿐이었다. 비록 라일라를 도왔다지만 그레이에게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란 것을 클레온은 알고 있었다.
"너를 탓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저, 정말임까? 나중에 말 바꾸기 없는검다!"
그레이는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으로 `다행임다~!`하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조금 과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반응에 클레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안심할 일인가?"
그러면, 그레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그야 그렇슴다! 클레온 씨,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들었던 것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있으신데다가. 여성 편력도 도를 넘으셔서 엄~청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한검다."
"... ..."
그 목소리는 아멜리아와 루베라가 있는 곳까지 제대로 들렸는지, 루베라는 `풋`하고 코웃음을 흘렸고, 아멜리아는 `음...`하고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곤란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었슴다. 클레온씨는 상냥한 사람이었던검다."
"... ... 그런가?"
"그렇슴다! 그 라일라씨를 바꿔낸 사람이라는 조금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니까 훨씬 대하기 편한검다."
그레이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조금 실례인 그레이의 말에도 화낼 기력이 사라져서 쓴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아아! 그렇지! 라일라양의 이야기로 생각난 게 있슴다! 클레온씨의 일행분들 중에 쿠"
"클레온."
루베라의 부름에, 클레온은 시선을 돌린다.
어디까지나 어둠이 뻗어있는 듯한 통로의 가운데. 그것은 서 있었다. 아니, 서 있다고 하는 것은 조금 부족하겠지. 땅에 무언가를 질질 끌면서 클레온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천천히. 언제든지 도망쳐도 좋다는 듯한 경고를 보내면서 `그녀`는 다가오고 있었다.
키는 클레온보다도 머리 하나 큰 그녀가 옷에 걸친 것은 푸른색의 천으로 된 옷. 전체적으로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그녀의 몸매는 매우 육감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 색은 옷의 푸른색에 검은 물감을 탄 듯한 남색의 긴 머리. 얼굴에는 검은 가면을 쓰고, 눈의 부분은 붉은색의 보석으로 가려져 있다.
머리에 돋아난 뿔, 허리 위에서 자라난 훌륭한 꼬리. 양쪽 모두 검은색이며, 거기서부터 흘러나오는 검은 마력의 흐름은 실수로라도 그녀를 `용족`으로 착각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아멜리아도, 클레온도, 그리고 루베라도 잘 알고 있는 `악마`의 것이었다.
또각. 또각. 발걸음 소리가 울릴 때마다 일행에게 날아들어 오는 흑마력의 마력압이 전신의 피부 위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손에 들고 있는 `그것`이 어둠 속에서 기어 나와 전체적인 실루엣을 드러내면.
그것은 기다란 곤봉이었다. 창이라고 하기에는 날이 붙어있지 않았고, 장대라고 하기에는 끝부분이 뭉툭하여 메이스와 같이 부풀어 오른 녀석이었다. 색조는 흰색으로 금속 재질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의 마물의 뼈를 가공하여 만든 것일까.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가 그것을 문제없이 휘두를 수 있을 것이란 거고, 손쉽게 인간의 뼈를 박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 아니, 악마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걸. 강력한 흑마력은 물론이지만, 그와 동시에 원소 마력도 느껴져."
클레온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아멜리아는 놀란 듯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녀도 클레온과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이겠지.
"어쩌면, 이슈탈과 같은 반인반마일지도 몰라요."
"아마, 그렇겠지. 그녀의 기척에서는 악마와는 다른 것이 느껴져."
아멜리아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갈라테아를 뽑아 들어 아멜리아를 지키듯이 가로막고 섰다. 그것을 본 루베라도, 바리사다를 뽑아 클레온의 옆에 선다.
"클레온. 눈치챘나요."
"그래. 저 여자, 살의가 없군. 적의도…. 옅어."
`그녀`가 입가에 띄고 있는 것은 미소였다. 일부러 소리를 올리고, 느긋하게 다가와, 그들이 싸울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고 있다. 그녀의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다른 유적의 수호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침입 그 자체를 죄로 여기며 조건 없는 배제를 목적으로 하는 그들과 달리 `덤빌 테면 덤벼라.`라는 느낌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무시하고 옆으로 지나가려 한다면, 곧바로 곤봉이 휘둘러져 오겠지. 그녀의 주변 아니, 그녀가 서 있는 곳부터 뒤는 전부 그녀의 영역으로 느껴졌다. 그녀에게서 살의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지만 `강자에 대한 호승심`은 저릿저릿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클레온도, 루베라도 남들 못지않게 가지고 있는 그것이었다.
"뭔가. 2:1로 싸우는 건 내키질 않는걸..."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루베라는 그런 클레온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별로. 당신이 그런 남자의 자존심 같은 걸 내세우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말이야."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루베라보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 카말라가 이야기한, 이슈탈이 두려워하는 녀석이 저 여자라면,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 확인해 보고 싶지 않아?"
검을 쥔 클레온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것을 본 루베라가 클레온을 향해 질문한다.
"그건. 어느 쪽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저 여자? 아니면, 당신?"
"양쪽 다."
다음 순간, 클레온이 앞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발에 힘을 넣으면 푸른 머리의 여성은 크게 도약하여 클레온을 위에서부터 덮쳐왔다. 푸른색의 벼락과도 같았다. 그 거구를 가지고도 루베라와 같이 가볍게 움직이는 그녀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곤봉은 그대로 클레온의 머리를 깨부수려는 듯했다.
"큭...!"
클레온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것을 막아내는 것보다도, 몸을 굴려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찰나의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과 함께 클레온과 여성의 시선이 마주친다. 붉은 안광이 빛나는 가면의 너머. 그리고 입가에 띈 미소에서 그녀의 여유가 느껴졌다.
쾅!
곤봉이 지면에 처박히면, 깨져나간 바닥의 파편이 흩날려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루베라는 그것을 바리사다로 빠르게 쳐내, 아멜리아에게 날아가는 것을 막아내지만, 그레이는 `우와악`소리를 내며 허둥대며 피한다.
"그대. 꽤 하지 않는가. 대부분의 어중이떠중이 도굴꾼들은 방금 것으로 피죽이 되어, 유적의 양식이 되었는데."
여성 역시,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 클레온을 제외하면 공격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무기를 집어 들어 어깨에 걸치며 가까이 있는 루베라를 무시하고, 클레온의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예상대로, 자신의 키만 한 무거운 무기를 가볍게 휘두르는 그녀의 괴력은 아무리 클레온보다도 장신이라고는 하지만, 여성스러운 얇은 팔다리에서 나올만한 것은 아니었다.
마력으로 강화한 것인가, 종족적인 특징인가. 태산 같은 무게를 가진 일격, 질풍 같은 속도. 클레온은 그녀가 자신 외의 상대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은 점에 감사해야만 했다. 첫 기습으로 만약 자신을 노리지 않고 뒤쪽의 아멜리아나 그레이를 노렸다면 그쪽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쪽이야말로."
그렇기에 클레온은, 순수한 감탄의 의미를 담아 그렇게 대답한다. 이미 진즉에 자리에 일어서서 자세를 잡은 그였지만, 틈을 보이지 않고 서있는 클레온을 보고 마주한 그녀의 시선은 클레온의 호흡, 맥박, 그리고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찰한다. 달인끼리의 싸움에서 `틈`이라는 것은 즉, `합`의 시작을 의미하며 `합`은 곧 생사의 찰나로 이어진다.
"검은 머리. 검은 눈. 흰 피부. 그리고, 아름다운 검. 흑마의 일족의 마검사. 검의 끝이 흔들리지 않고, 단련을 거듭한 육체. 그대, 혹시 이름을 `클레온`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클레온에게 말을 걸어 틈을 만들려는 듯, 입을 연 그녀에게서 나온 말에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경직시킨다.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일까. 여성은 입꼬리를 올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입을 열어 웃음소리를 내었다.
"역시 그러한가! 하하! 그대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지. 나의 친구가 몇 번이나 입에 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올곧군. 심지가 똑바로 세워져 있어."
"... 나를 흔들 생각인가?"
"후후. 이 정도로 흔들릴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걸. 나만 그대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불공평하니. 내 쪽에서도 정체를 밝히는 것이 옳겠지. 나의 이름은 플라로우스. 메기도의 일족의 유일한 후예이며, 이 유적을 지키는 자. 그리고, `옥좌의 안내인`이다."
자신의 정체를 밝힌 그녀의 말을 들은 클레온이지만,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하나도 모르겠는데."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때론 진실을 아는 것 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편이 빠른 것이야."
다음 순간, 플라로우스가 순식간에 클레온을 향해 거리를 좁혀왔다. 아까와 같이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 일직선으로, 지면을 박차고 달려든 것이다. 저돌맹진의 돌격. 클레온은 분명히 그 사이로 `틈`을 보았지만, 그것을 찔러 넣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 틈이야말로,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무기가 자신에게 휘둘러지면, 그것을 받아치지 않고 몸을 틀어 피한다. 머리, 어깨, 허리, 고간. 그리고, 관절을 노리고 치고 들어오는 파괴의 회오리. 어지럽게 눈앞에서 춤추는 궤도에 검을 가져가면, 아무리 갈라테아와 칼리번이라고 하더라도, 힘에서 밀려버린다.
"마나 쇼크."
그렇기에, 회피에 집중하면서 견제하듯이 흐름을 끊어내기 위한 마법을 발한다. 검은 마력의 번개가 손에서 뻗어나가 플라로우스의 팔에 적중하면
[... ...]
거대한 올빼미의 형태를 한, 물질적인 형체 없는 무언가가 나타나 그녀의 몸을 보호했다. 기분 나쁜 형상.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녀 본인보다도 더욱 진한 지옥의 흑마력. 어지간한 잡졸 악마들보다도 더욱 강력한 상급의 악마이다.
"안드라스."
"악마...! 스스로도 반인반마이면서, 악마소환사인건가."
그것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플라로우스의 몸에서 올라오더니, 대량의 흑마력을 머금은 채로 깃털을 흩뿌렸다.
깃털 하나하나에 얽혀있는 마력의 흐름은 저주였다. 물리력을 가진 저주가 몸에 부딪히면 고통과 함께 오한이나 감각의 마비등, 좋지 않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겠지.
대량의 물량으로 퍼뜨려지는 깃털의 비를 완전히 피할 방법은 없었다. 클레온은 곧바로 회피에서 반격으로 자세를 전환하고 허리춤의 칼리번을 뽑아든다.
[하암... 세인트 블래스트]
자신의 손잡이에 클레온의 선이 얹힌 것으로 의식을 각성한 칼리번은, 주인을 향해 날아드는 모든 저주를 튕겨내기 위해 전방위를 향해 신성력을 폭발시켰다. 그것은 그저 저주를 지워내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나아가 플라로우스가 불러낸 악마의 몸 일부를 태우듯 지워낸다.
"아하. 성검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군."
플라로우스는 자신도 그 신성력에 충격을 받은 듯 소매로 노출된 얼굴을 가리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런데도 초조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허나. 그것은 명백한 틈이었다. 클레온은 곧바로 양손에 든 성검과 마검을 교차하듯이 휘두른다.
두 번의 검격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력의 궤적이 남을 정도였고, 한쪽 팔을 들어 무방비해져 있던 그녀로서는 그 검을 막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안드라스!"
하지만, 그녀는 과감하게도 자신이 불러낸 상급 악마를 통째로 방패 삼아 검과, 그 뒤를 따르는 마력의 충격을 막아낸다. 강력한 섬광과 함께 올빼미의 악마가 불꽃을 흩뿌리며 사라지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열을 띈 마력의 구체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지만
먼저 뛰어든 것은 클레온이었다. 전신을 검은 마력을 이용해 갑주처럼 두른 그는, 악마가 사라지고 남긴 빛의 사이를 꿰뚫고, 플라로우스에게 돌진한다. 플라로우스 역시 한 박자 늦게 자신의 무기를 휘둘러 클레온의 검을 막으면
`카가각!!!`
하고, 클레온의 두 검과, 그녀의 무기가 서로를 갉아낸다. 틈을 찾아 찔러넣은 공격인 만큼, 밀어붙이는 것은 클레온이었지만 단순한 힘의 대결로 구도가 넘어가게 되면 그녀의 반격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무슨 괴력이야…! 클레온!]
[마력을 한계 없이 쏟아 부을 테니까~ 날아가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렇기에, 갈라테아와 칼리번은 각자 클레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다. 심장이 있는 듯, 맥박 하는 두 검이 검자루에서부터 마력을 끌어올려 날 전체를 덮는다.
그것을 본 플라로우스 역시, 자기 몸에서 무기를 향해 대량의 흑마력을 집어넣으며 곤봉 전체가 검게 물들었다.
흑마력과 흑마력. 그리고 신성마력이 부딪히면서 서서히 마력압이 강해진다. 두 사람은 먼저 자세가 무너지는 쪽이 이 압력에 휘말려 뒤로 날아가 그대로 패배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멋진걸, 이 정도로 성검과 마검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마력 소모가 크니까, 빨리 끝내지."
다음 순간, 클레온이 팽팽하게 이어지던 마력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양손의 검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그 행동에는 아무리 플라로우스라고 하더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곤봉과 힘겨루기 중이었던 두 검은 떨어지지 않았다. 마검과 성검. 의지를 가진 검이기에, 주인의 손에서 떨어지더라도 어느 정도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줄기의 빛이 번개같이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졌다. 두 검에서 손을 뗀 클레온은, 챙겨두었던 단검을 뽑아 들어 그대로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어 휘두른 것이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에 금이 갔다.
"큭... 얕았나...!"
클레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팽팽하게 유지되던 마력압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퉁겨지듯이 날아가고
"우,왓...!"
"큭...!"
플라로우스와 클레온이 함께 벽에 처박히는 것이었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다. 거체의 여성과 장신의 남성이 동시에, 강한 힘으로 처박힌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클레온은 플라로우스라는 쿠션을 끼고 있었기에 딱딱한 벽보다도 먼저, 천옷 아래 숨겨진 그녀의 부드러운 몸의 감촉을 느꼈다.
"...읏...!"
그녀의 목소리에 클레온이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들면, 그곳에는 깨져나간 가면 아래 숨겨져 있던, 붉은 눈을 드러낸 채. 자신이 매달려 얼굴을 붉힌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자, 잠깐... 미안한데, 이건 진도가 너무 빠른데..."
그러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하면...
"...손이 빠르군요. 클레온."
차가운 날붙이의 감각이 목 뒤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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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탈인가... 그녀는 아직도 그런 일을."
클레온은 자신의 추행(?)을 겨우 용서 받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플라로우스에게 이슈탈의 이름을 꺼냈다.
플라로우스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는 처음에는 놀란듯, 그 뒤에는 조금 슬픈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면은 이미 부숴졌기에, 대충 옷의 천을 찢어내어 눈을 가리는 안대로 대신 사용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눈을 가리는 것은 당연한 행위라는 듯 하며. 눈을 보인 대상에게는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고 하던가.
다만, 그녀의 실력을 본루베라는 그녀를 경계하여 아멜리아를 뒤로 숨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슈탈을 막기 위해 당신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하하. 과연, 그런 건가."
플라로우스는 마른 웃음을 흘리더니, 클레온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 손에는 그 가녀린 손가락에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악력이 있었다.
"나는 반인반마야. 과거에는 그녀와 동료였지."
그 말이 끝나면, 루베라가 바리사다를 뽑아 플라로우스를 겨누었다.
"걱정하지 마. 지금은 제대로 적대 중이니까. 그러니까 그 귀여운 칼 좀 내려놓으라고."
[나보고 귀엽대! 루베라!]
"조용히."
바리사다의 헛소리에 루베라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루베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검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 좋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대답해 줄게. 다만, 대가가 필요하지만 말이야."
플라로우스의 말에, 클레온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반인반마라고 하지만, 악마는 악마. 그들이 대가로 요구한다고 하면, 대체로 영혼이다.
"... 대가는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받도록 할까. 나도 너에게서는 강한 운명을 느끼고 있거든. 우선, 자리를 좀 옮기자고..."
플라로우스는 클레온의 시선을 느끼더니 입꼬리를 올리면서 천천히 입을 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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