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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63화 (163/506)

〈 163화 〉 옥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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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이 다시 눈을 뜬 것은 정신을 잃었을 때부터 10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다시 각인으로 연결된 루베라가 자신의 체력과 마력을 흘려 넣어 회복을 가속해준 덕분에 몸은 정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 며칠,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 대가가 찾아온 것인가 피로감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무거운 상체를 일으키려 하면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각­

"... 조금 더 자고 있어도 됩니다. 플라로우스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준비할 것이 있다고 하였기에."

그리고 들려오는 낮으면서도 상냥한 목소리.

어느샌가 옷을 갈아입은 루베라가 자기 무릎 위에 클레온의 머리를 놓은 채 침대에 무릎을 꿇고 누워 있었다.

"...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까..."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자, 루베라는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손을 클레온의 이마 위에 올렸다.

"... 플라로우스가 말하길, 당신의 안에 있던 데미우르고스의 인자가, 악마의 저주와 반응해서 잠시 눈을 떴었다는 것 같습니다."

"베아트릭스에게 돌려주고 남은 게 있었던 건가…."

다음 순간, 클레온은 갑작스럽게 코를 꽉 잡는 느낌에 `읍`하고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그곳에는 루베라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로 클레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도 상당한 고생을 했다고 들었는데... 이곳에서도 상당히 헌신적이군요. 웬만한 용사들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만."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입을 다물었다.

루베라의 말대로, 클레온의 원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레시아의 흔적을 찾는 것.

그를 위해서 오렐리아를 비롯하여 아멜리아에게 협력하고 있지만, 협력자 중 누구보다도 자기 몸을 던져서 움직이고 있는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

"...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당신은 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당한 길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원한다면 모든 것을 힘으로 취하는 편한 길을 걸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쪽이 마검사에게는 더 어울리긴 하지."

루베라는 클레온의 쓴웃음을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클레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의외인걸.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늘 자신을 향해 매도해오는 루베라가 그런 이야기를 내뱉자, 클레온은 대답했다.

하지만 루베라는 그런 클레온의 말을 듣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한다.

"그야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런 짓을 하더라도, 버티지 못하는 건 당신 쪽일 테니까요."

"... ..."

"마검사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죠.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리고, 용사 레시아를 쫓는 이로써.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신이 되도록."

클레온은 늘 갈라테아가 자신에게 말하듯 `무른 인간`이라는 것을 되새김질한다.

"사람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더라도, 옆에 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힘이란 것은 사람을 쉽게 타락시키는 법이니까요."

"...칭찬하고 있는 건가?"

클레온의 오묘한 표정에 루베라는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걸쳐있는 귀 부분이 붉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네…. 제가 당신에게 마음을 허락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 루베라."

"제가 이야기하고 있으니 조용히."

이내, 루베라는 다시 클레온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얼굴은 여전히 붉은 채였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금 고민하는 듯 목소리가 제대로 목에서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그녀의 눈에 조금이지만 공포가 보였다. 클레온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클레온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클레온의 곁에 있으면서, 그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였다.

`아아. 그런가.`

클레온은 조금이지만 이해했다.

그녀는, 좀 전에 보았던 클레온의 악마와도 같은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어둠이 없다면 마검은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클레온이 완전한 `선인(?人)`이었다면 갈라테아는 나타나지 않았겠지.

클레온은 그저 자신 안의 모든 어두운 욕구를 억누르고 억눌러서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어둠은 힘이지만, 필요한 만큼 이상의 힘은 불화를 만들 뿐이다.

용서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분노의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배신도, 경멸도, 증오도 모두 모두 간직한 채로 뚜껑을 덮어놓았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치유되고, 불은 약해지겠지.

사랑하는 여자들에 대한 마음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의무감이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허나. 시간은 충분하지 않은 듯했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그 뚜껑을 열어버리면.

이성이라는 사슬을 끊어버리면, 어둠은 형태를 갖추고 클레온을 집어삼킨다.

자신의 안에 있는 데미우르고스의 인자와 반응하여, 자신을 악마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이 있을 때도 만약 그 힘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둠을 받아들이고 정도에서 벗어나 사도를 걷기 위해 진정한 마검사로서 거듭난다고 한다면.

거북이가 기어가듯이 조금씩 조금씩, 돌아서 가는 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라고 하더라도 일직선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목적을 이루는 것은 얼마나 빨라질까.

"클레온.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지금의 길을 벗어나 원하는 것을 위해 상냥함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루베라가 다음 이야기를 하려 할 때 클레온은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상체를 일으키면 조금 놀라는 그녀였지만, 이내 클레온이 손을 잡자, 조금 망설이면서도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고마워. 루베라. 하지만, 그런 일은 하지 않아."

"... 그렇, 습니까. 그렇겠죠. 당신에게는, 레시아라는 빛을 쫓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으니까."

클레온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루베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레시아 만큼이나 모두가 소중해. 그런 모두를 배신하는 일 따윈 할 수 없어."

"...클레온."

"언젠가, 선택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몰라. 레시아를 쫓았던 다른 사람들처럼. 탈체크, 소피아처럼 말이야."

탈체크는 레시아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소피아는 다른 모든 것을 위해 레시아를 포기했다.

"나는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아. 약속했으니까."

쿠온­ 미래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탈체크와의 약속도, 소피아와의 약속도. 모두, 중요했다.

"나는. 나의 길을 버리지 않고 레시아와 다시 만나겠어.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을 그녀에게 소개하는 거야. 탈체크에게 훌륭한 딸이 생겼다고. 에스카씨가 교황이 되었다고. 나에게도 동료가, 가족이 생겼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클레온은 자신의 어둠에 다시 한번 뚜껑을 씌운다.

이것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니까.

굳이 고생하는 길을 고르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정말, 무른 사람..."

루베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클레온도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001

"로맨틱한 이야기는 거기까지인가?"

다음 순간, 플라로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두 사람의 낯간지러운 장면을 지켜보며 능글맞은 엷은 웃음을 띤 상태였다.

옷은 아까와 다르게 전부 제대로 차려입고 있었지만 눈에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제, 여러 가지 질문해도 되는 거겠지?"

"아아 물론. 대가는 충분히 받았으니까. 이 길잡이가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도록 하지."

플라로우스가 싱긋,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을 뒤덮고 있는 공간의 모습이 바뀌었다.

분명, 몸은 천막의 안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천막의 안쪽 천에 영사 마법을 통해 환영을 보여주듯이.

세 사람은 밤하늘 위에 떠 있었다.

남색의 도화지를 수놓는 커다란 달과, 반짝이는 별빛. 은하수가 이어지는 곳에 은빛의 물이 흐르는 듯했다.

"꽤나 아름다운 광경이 아닌가?"

플라로우스가 잘난 체 하듯이 이야기하면, 클레온도 루베라도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풍경이었기에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하지만, 갑자기 왜 이런 걸 보여주는 거지?"

"후후..."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이면, 주위를 감싼 광경은 서서히 변화한다. 위로, 위로 솟아오르는 듯 이동하는 그것은 잘 보면 하늘을 너머 그 위로 향하고 있었다.

"옥좌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하기 때문이지."

"...옥좌."

천막에 들어오기 전 이야기에서 나왔던 단어.

이슈탈은 옥좌의 찬탈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이 대륙에서 옥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왕국`의 옥좌.

그것을 탈취하기 위해 왕도에서 일을 벌이고 있고, 데미우르고스의 소환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화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겨우 인간의 왕국의 옥좌`를 차지하기 위해,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대악마를 강림시킨다?

고대인의 잔류 사념이었던 검은 교전은, 그것으로 황금의 혜성이라 불리었던 대재앙, 레시아를 불러내어 세계를 초기화하려 했다.

무언가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조금 눈이 부실지도 모르니 조심해."

플라로우스가 그렇게 이야기한 다음 순간, 세 사람의 눈앞에는, 완전히 새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 별­ 방금까지 그들이 있었던 곳에서 더욱 위로 올라가면, 뜨겁게 빛나는 태양과도 같은 대좌가 있었다.

복잡한 문양이 얽히고설켜, 면류관, 그리고 연꽃 등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조각 된 대리석과 같은 대좌의 위에는, 등 뒤의 빛의 날개를 가진, 전신에 금이 간 소녀의 석상이 있었다.

"이건..."

클레온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어째서일까. 그녀를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듯했다.

색이 칠해져 있지 않은 석상이었기에 전체적인 생김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긴 머리에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10대 중반 소녀의 모습을 한 그녀가 도저히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옥좌다."

플라로우스가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 이 대좌가…? 무엇의 비유이지?"

"비유가 아니야. 물론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영혼적인 이미지이지만. 그녀는 흔히 아는 이들에 의해 `별의 의지`라고 불리는 존재야."

별의 의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자. 원초 세계와 계승 세계를 걸쳐 별을 이끌어온 존재.

현존하는 모든 신들은 그녀의 촉각들인 정령이 신격을 부여받아 만들어진 존재들이며, 결국 그녀로 귀결된다.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대적자를 준비하고, 용종을 만들어낸 그야말로 진정한 `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옥좌라는 것은 세계의 섭리를 자아내는 자가 위치하는 곳. 별의 의지­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제4세계의 옥좌주(???)인네메아의 지위 그 자체를 이야기해."

"이슈탈이 노리는 것이 신의 자리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클레온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야기하면 플라로우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멍청한 이야기군요. 그녀는 인간이면서 악마인데. 이제는 신이 되려고 한다고요?"

루베라의 뾰족한 말이 플라로우스를 향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 맞아. 불가능할 것 같이 들리겠지만. 가능한 것이 이 세계의 오묘한 점이지."

플라로우스가 손가락을 다시 한번 튕긴 뒤 클레온을 가리키면, 주변은 다시 한번 검은 밤하늘로 바뀌었다.

"가능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 가능성 자체는 말이야. 세계에서 보자면 한낱 개미 한 마리와 별 차이가 없는 존재들인 우리가, 세계의 신이 될 방법은 한정되어 있지.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창조주가 만들어낸 섭리에 묶여 있으니까."

"... ..."

"어렵다는 얼굴을 하고 있구나. 알고 있어. 모두 추상적인 이야기이니까. 그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 신이 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야. 아까 보았던 대좌 위에 새 석상을 세우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플라로우스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한다.

"석상을 부순다."

"바로 그거야. 석상이라는 것은 별의 의지. 즉 이 세계 그 자체를 말해. 별의 의지가 자신의 의지로, 섭리로 만들어내 유지되고 있는 이 세계. 그것을 부수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로 세계를 물들이는 것이지. 아니면, 자신 외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던가."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검은 교전이 꺼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황금의 혜성으로 세계를 부수고 초기화한다. 그리고, 우리들(원초세계의 고대인들)의 세계를 덧칠한다.

"그런 거였나…!"

"역사상에는 같은 일을 해왔던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아. 원초세계의 인간들이 일으켰던 대전쟁도, 옥좌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지.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나, 옥좌주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네메아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플라로우스가 주먹을 쥐자, 펼쳐져 있던 환영이 수속되어간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거지?"

"우리들 메기도의 일족은 원초 세계에서 옥좌의 존재를 알아챈 이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일족이야. 그래서 옥좌의 안내인이라고 불렸지. 물론. 의지를 전한 고대인들의 원래 목적은 네메아의 시대를 자신들의 손으로 끝내고 우리 중에서 옥좌를 차지할 인간이 나오길 바랐던 것 같지만."

클레온의 질문에 답한 플라로우스는 어지러운 듯한 루베라와 클레온을 바라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클레온이 입을 연다.

"즉. 이슈탈의 목적은 데미우르고스를 불러내어 세계를 부수기 위한 힘으로 사용하고."

"자신이 새로운…. 별의 의지가 되는 것이란 거군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네. 왜 거기까지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이야기를 해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원."

플라로우스는 곤란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어째서 당신은 그녀와 떨어진 거죠?"

"그 애가 만드는 세계가, 지금의 세계보다 좋을 거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별로 나는 일족의 비원 같은 것엔 관심 없어. 이 세계는 이 세계대로 충분히 가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하거든."

루베라의 질문에 플라로우스가 답하자 클레온은 무언가를 퍼뜩 떠올린 듯이 이야기했다.

"...대적자는, `세계`가 아니라 `옥좌`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인 건가."

"스스로 거기까지 결론에 도달하다니, 대단한걸? 뭐.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옳다고` 판단되는 것의 정반대의 일을 하는 것이, 이 세계를 부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 대적자들은 그런 이들을 향해 나타나니까 `선한 존재`로 보일 뿐이고…. 대표적인 대적자인 황금의 혜성은 그 출력이 너무나도 높아서 별의 의지로서도 다루기 힘든 듯하지만."

클레온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즉. 레시아는 별의 의지 때문에 세계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세계에서 추방되었던 그녀가,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그런가. 그녀는 원래 `마검황제`의 대적자였어. 그렇다는 건, 마검황제도­"

"오오. 맞아. 정답이야. 그도 옥좌를 노리고 전쟁을 일으킨 인물이야."

"머리가 아프네요. 악마의 다음은…. 신입니까."

"만약 이슈탈이 데미우르고스를 소환하는 데에 성공하면…. 정말로 옥좌를 찬탈할 수 있는 건가? 결국, 대적자가 나타날 텐데."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자 플라로우스는 이전에 보이지 않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메아는 말이야. 약해져 있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되지 않지만. 그걸 두 번이나 했으니까 말이야. 거기에, 툭하면 세계를 파괴하려는 녀석들 때문에 대적자들을 만들고. 그때마다 힘을 소모하지."

"창조주의 힘도 무한하지 않다는 건가요."

"그래 맞아. 설령 이슈탈이 실패하더라도, 그녀는 이미 한계에 가까워. 그러니. 네메아에게는 조금이라도 힘을 아껴주지 않으면 곤란한걸."

"그러니, 그녀를 막기 위해, 이별하고. 그녀와 적대하고 있는 거군."

클레온의 말에 플라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슈탈의 목적은 알겠어…. 왜 우리가 그녀를 막아야 하는지도."

"그래. 대가로서는 충분했지? 이건 세계의 근원에 이어지는 비밀이니까."

"한 가지 더."

플라로우스가 환영을 지워갈 때, 클레온이 그녀를 불러 멈추었다.

"대적자가 된 인간을, 해방하고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은?"

"... ..."

플라로우스는 조용히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고 플라로우스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온. 너는 상냥한 사람이니까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 그러니까, 말해줄게."

플라로우스가 다시 한번, 대좌의 환영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까는 보이지 않던, `네메아`의 뒤편.

그곳에는, 네메아와 이어져 있는 `갑주를 입고 성검을 치켜든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누구인지, 클레온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석상을 부수면 돼."

002

클레온과 루베라, 플라로우스가 천막의 바깥으로 나오자 갈라테아는 자기 무릎에 아멜리아를 눕힌 채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그레이도 하품을 하며 조용히 앉아 있다.

"드디어 나왔네. 너무 오래 걸렸어."

갈라테아가 그렇게 말하며, 아멜리아를 조용히 루베라에게 맡긴 뒤, 클레온에게 다가가 볼에 입을 맞추었다.

"미안. 생각보다 길어져서."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갈라테아의 손을 잡았고, 동시에 갈라테아는 검의 모습으로 돌아가 허리춤에 수납된다.

"칼리번."

칼리번도, 이름을 불리자 자는 모습 그대로 검의 모습이 되어 클레온을 향해 천천히 날아왔다.

[안에서 했던 이야기. 나에게도 전해져 왔어.]

[그런가….]

[... ...]

"...그녀는 제가 업고 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클레온, 당신도 꼭 쉬어요."

"그래."

"오늘의 탐색은 그냥저냥이었슴다. 전반부는 재밌었는데, 후반부는…."

그레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루베라는 조금 짜증이 난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당신은 알아서 돌아가세요."

"그, 그런~ 너무함다..."

일행은 천천히 발을 디디며 플라로우스에게서 멀어져 간다.

그녀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유적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영혼과 육체를 묵었기 때문이었다.

"클레온."

플라로우스가 클레온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눈에는 여유도, 장난스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진지한 얼굴로,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슈탈을... 잘 부탁해."

"...그래."

많은 말을 삼키며, 그에게 부탁을 남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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