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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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와 클레온이 조심스럽게 숲의 안을 걸어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색의 잎사귀가 반짝거리던, 생명력 넘치던 숲에서.
어느샌가, 땅은 회갈색으로 변하고, 동물의 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소리는 들리지 않는 연보랏빛의 식물들만이 눈에 들어오는 광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력에 오염된 건가?"
클레온이 손을 뻗어, 길가에 나 있는 풀들을 만져본다. 느껴지는 감촉은 다른 평범한 식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색만 보면 시들시들하거나, 독을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우투의 결계로군. 거미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야."
클레온의 말에 대답한 것은 역시 루벤이었다.
"우투의 권속인 거미들은 태양 빛에 약하니까, 빛을 반사하지 않는 어두운 숲을 만들어내기 위한 거겠지."
"잘 알고 있는걸."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루벤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야, 클레온님보다야. 그녀와 나는 닮은 점이 많아서, 한창 전성기 때는 신자들 사이에서도 싸움이 끊이질 않았었지."
별의 촉각, 자연계의 정령으로 태어나, 동물의 모습을 빌려 신앙을 얻고. 한때는 대륙을 호령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신앙을 모았었다.
비슷한 시기에, 성향이 반대되는 신을 숭배하는 두 집단.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이긴 것은, 어느 쪽도 아니었지만."
신앙의 깃발을 걸고 일어난 전쟁의 도중, 인류에게 있어서 시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란의 시대에 구세주는 나타난다.
당시의 성자의 가호 교단이 딱 그 포지션이었다.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영역 다툼을 하는 신에 대한 반발심, 성자, 용사, 그리고 성녀라는 알기 쉬운 삼위일체의 신앙 대상.
시대는 서서히 인간이 신을 숭배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인간이 인간을 숭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결국, 전쟁의 결과는 쌍방 패배. 많은 수의 신자와 신앙을 잃은 루벤은 지금은 마랑의 숲이 된, 사샤의 고향 근처의 산으로 가 다시는 대륙으로 나오지 못했다.
"예전이 그립나요?"
루벤의 말을 듣던 사샤가, 자신의 의지로 끼어들어 루벤에게 묻는다.
"그립냐고? 쿠후후….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겠지. 사냥의 신으로써, 영역을 넓히는 것은 본능이니까. 나의 자랑스러웠던 발톱과 어금니는 그때 부러져 지금까지도 자라나지 못했느니라. 고작 산 하나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 사실이야."
루벤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 아니, 사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지어 보이며 클레온을 향해 돌아본다.
"하지만. 본체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분령인 나는 지금 이대로도 불만은 없느니라. 계집의 몸을 빌리면 그리운 곳들도 갈 수 있고. 무엇보다, 클레온님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녀가 평소에 보이는 장난기 섞인 웃음과 다른, 몸을 빌린 사샤처럼 순수한 미소를 보이는 것은 처음인 듯했다.
"그런가..."
클레온도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려 한 순간.
다시 한번,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뭉쳐진 거미줄의 덩어리가 사샤를 향해 날아왔다.
"마나 쇼크!"
클레온이 재빠르게 손을 휘둘러 영창한 마법을 쏘아내면, 허공에서 거미줄이 검은 마력의 번개와 부딪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물론 그것을 쏘아낸 것은 아까 전 마주쳤던 갈색 머리의 아라크네였다.
"...인간들. 어째서, 나의 말을 듣지 않지."
그녀는 원망스럽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클레온과 사샤를 바라보았다.
"여자... 너.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내 안의 우투님.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딱딱하게 끊어지는 말을 내뱉으며,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사샤는 몸을 움츠렸다.
[널 말하는 게 아니라, 나를 이야기 하는 거다. 계집.]
[그, 그렇군요. 가, 아니라, 결국 똑같잖아요…!?]
"기다려 아라크네. 우리는 너와 이야기하러 왔어. 인간들은 너를 사냥해서라도 이 숲에서 없앨 예정이야."
클레온이 아라크네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자 아라크네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다.
뾰족한 송곳니가 입가에서 보이며, 거대한 거미의 다리가 분노한 듯 몸을 움츠러트린다.
"해볼 테면. 해보라고 해라. 나는. 이곳을 반드시. 지킨다. 인간들에게는. 지지 않아."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압은 확실히 일대의 마물이나 짐승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사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마력압에 압도된 듯이 자신도 모르게 활을 꼭 쥐는 것이었다.
"인간들과 싸우게 되면 점점 파견되는 병사나 모험가도 많아질 거야. 그렇게 되면 아무리 너라도 견뎌낼 수 없어."
클레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이야기하면 아라크네는 자신의 마력압에 굴하지 않는 클레온이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본다.
"...인간. 너는, 나의 위압을 견딜 수 있는 건가."
그런 강자들도 있는 건가. 하고, 아라크네는 묘하게 이해하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한다.
"그래도. 무의미하다. 인간들은. 이 숲의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곧. 이 숲에는. 우투님이 강림하신다."
"... 하?"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연 것은 루벤의 쪽이었다.
"이것은. 경고이다. 네가 나에게 힘을 행사하지 않고. 경고해 줬듯이. 숲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고. 인간들에게 전하라. 곧. 운명의 여신이. 자신의 영역을 되찾으러 갈 것이라고."
아라크네는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다시 한번, 어두운 숲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샤가 재빨리 사냥꾼의 각인을 사용하여 흔적을 쫓으려 하지만
"그, 그런…. 흔적도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다니."
"...그녀도 이 숲의 주인이라는 것이겠지. 그보다, 우투가 강림한다는 것은…."
클레온은 조금 전 그녀가 말했다는 것이 신경 쓰인 다는 듯이 사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사샤가 클레온을 향해 돌아보면, 루벤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귀가 축 아래로 내려간 것이 보였다.
"...루벤님?"
[... ...]
사샤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으며, 몸을 차지하려 하지 않는 루벤. 클레온이 그런 루벤을 이상하게 여겨 가까이 가려고 하면
"GIRGA GIGIGAGO"
땅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온 검은 덩어리가, 사샤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골렘처럼 변하여 나타났다.
검은색의 돌로 되어있는 몸통과 머리, 그리고 돌멩이가 붙어있는 것처럼 형성된 팔다리.
눈은 동그란 노란색으로, 마치 어둠 속에 떠 있는 달과 같았다.
표정은 눈만으로 이루어지니 얼핏 보면 멍청해 보이는 인상이면서 동시에 귀여운 면도 보이는 그런 작은 녀석들이었다.
"이, 이건...?"
나타난 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체. 그중 하나가 사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가까이 가서 그녀의 다리를 만지려 한 다음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클레온이 마검을 휘둘러 그것을 머리부터 내리쳐 박살 낸다.
"크, 클레온씨!?"
산산히 부숴져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그것을 바라보면, 클레온은 엄한 표정으로 사샤에게 대답했다.
"조심해, 사샤. 이것들은 땅의 `사정령(??)`이야."
흑마력에 오염된 자연계의 정령들. 아직 자연계와 연결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물로 변생할 확률이 높았다.
폭주하는 마물화 된 정령들은 내버려 두면 자연재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구성된 육체를 파괴해서 한 번 마력으로 되돌리고 정화되어 전생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사정령들은 눈앞에서 동족이 마력으로 환원된 것에 자극받은 것인지 귀에 거슬리는 딱딱거리는 소리와 정령어를 높게 울부짖으며 클레온과 사샤를 둘러싼다.
"흑마력에 오염된 건 아닌 게 아니었나?!"
"루벤님! 클레온씨가 질문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사샤의 몸속에서 루벤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도 갈라테아에 마력을 주입한다.
수는 많지만, 이들은 모두 하급이나 중급 같은 급도 붙지 않은 최소한의 육체를 유지하는 정령들.
범위 공격으로 밀어붙이면 쉽게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단번에 간다…!"
"네!"
001
"자. 이걸로 또 내 승리."
"큭... 끄아아악!"
비단으로 된 흰색 로브를 뒤집어쓴 여성이, 결정적인 수를 내리면, 짐승과 섞인 외견을 가진 소녀가 괴성을 지르며 판을 뒤엎었다.
이걸로 벌써 서른 몇 번째.
수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수십의 인간의 목숨이 움직이는 판 위의 게임은 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합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비단옷을 입은 운명의 신 `우투`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의 의식이 닿지 않는, 정령계. 야생 신들의 영역 안에서 두 사람은 인간의 목숨을 `말`로 삼아 싸우고 있었다.
"어째서야~! 어째서 나는 너를 이기질 못하는 건데!"
짐승이 섞인 사냥과 침략의 신 루벤은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팔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생떼를 부린다.
우투는 그런 루벤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띨 뿐이었다.
전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인간들끼리의 충돌이었다.
루벤에게 바치는 공물이 서서히 부족해져 가자, 그의 신도들은 다른 나라에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고.
루벤에게 싸움에 축복을 내려 달라고 부탁하며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국경지대에서의 싸움은 전쟁과 사냥을 밥 먹듯이 하던 루벤들의 신도들의 승리였다.
루벤도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채 시작된 전쟁이었으나, 이기고 있으니 뭐 됐나 같은 생각으로 방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기거하는 곳으로 우투가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침략을 받은 자신들의 신도가 이대로 멸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한 그녀는 루벤의 자존심을 건드려 인간의 전쟁을 신들의 판상 유희로 바꾸어 버렸다. 거기에, 따로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맹약마저 걸고.
물론 루벤 역시 이 놀이에는 조예가 깊었기에 질 생각은 없었지만, 우투는 방어전에 있어서 루벤의 실력을 뛰어넘는 여신이었다.
"그야. 나는 지면 사라져 버릴 테니까."
우투는 가볍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령에서 승격된 신인 그녀들의 경우 신도들이 보내는 신앙이야말로 목숨이며 동시에 힘.
만약 우투의 신도들이 루벤의 신도들에 의해 패배하여 강제로 개종당하거나, 전멸이라도 해버린다면 우투는 사라질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네. 인간들도 쉬게 해주지 않으면."
"젠장...! 내일은 꼭 이길 테니까 각오해!"
"쿠후후... 기대되는걸. 하지만, 이 전쟁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너희들의 신도도 꽤나 끈질기구나. 이렇게나 패전을 거듭하면 패배를 인정할 만 한데."
우투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루벤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야 그렇지. 사냥은 사냥감과 사냥꾼의 끈기 대결이니까. 그 녀석들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냥을 멈추지 않을걸?"
우투는 그런 그녀의 대답에 조금 입을 다물었다가 몸을 돌렸다.
"이 싸움. 확실히 시작은 인간이었지만, 끝내는 것은 우리끼리만으로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
"뭐? 무슨 소리야?"
루벤이 잘 모르겠다는 듯이 물어보면 우투는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한다.
"신을위해 목숨을 바치는 인간들이라는 것이... 그냥. 조금 불쌍해서."
"...신도란 건 원래 그런 거잖아?"
우투의 대답에도 역시 모르겠다는 듯 루벤이 이야기하지만. 우투는 `그렇네...`라고 짧게 대답한 뒤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루벤은 그런 우투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쓰러져 있는 유희의 말들을 바라보고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002
"창천의 유성우!"
"체인 마나 쇼크!"
두 사람의 목소리가 교차하듯이 숲에 울려 퍼졌다.
원래라면 이런 물량으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기엔 라일라의 화염 마법만큼 효과가 뛰어난 것도 없었지만, 전장이 미덕의 숲이었기 때문에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화염 외의 마법을 사용하여 일소한다.
사샤도 더욱 발전한 활 솜씨로,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을 걸어 하늘로 쏘아 올린 한줄기에서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공격은 일대의 사정령들을 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먼지 하나 올라오지 않고, 공격들이 사정령들 사이를 휩쓸면 녀석들은 하나둘 육체를 무너뜨려, 순수한 마력으로 변하여 흩어져갔다.
이내, 사방에서 울리던 기괴한 정령어의 소리가 잠잠해진 것을 느낀 클레온이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풀었다.
"이걸로 끝인가...?"
"... ...네. 그런 것 같아요. 조금 전과 같은 기척은 더는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사샤가 귀를 두 세 번 쫑긋거리며 정신을 집중하여 주변의 확인을 마치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안심할 수 있었다.
"...어째서, 흑마력이 없는 곳에서 사정령이 나타난 거지?"
"혹시 어쩌면, 숲의 더 깊은 곳에 오염된 곳이 있는 게 아닐까요?"
클레온은 사샤의 말에, 아라크네가 사라졌던 방향을 바라본다.
지금 두 사람이 서 있는 이곳에서는, 흑마력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아라크네도 알아챘을 거야."
"...그, 그렇죠. 그럼 대체..."
"그것도 포함해서, 루벤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루"
클레온이 다시 한번 루벤에게 말을 걸려고 한 다음 순간, 땅이 흔들렸다고 생각하면 그 아래에서 무언가 거대한 손 같은 것이 튀어나와 사샤의 발목을 붙잡았다.
"꺄악!?"
"사샤!"
바위로 이루어진 손가락 같은 그것을 향해 갈라테아를 휘두르려고 하면, 자신의 발밑에서도 그것과 같은 것이 나타난 것을 확인한 클레온이 혀를 차며 일단 거리를 벌렸다.
땅을 마치 수면과 같이 통과해서, 그 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손에는 사샤를 붙잡은 채.
검은 바위. 그리고, 진흙. 거대한 골렘의 상반신과 같은 그것은 아까 쓰러트린 사정령과 같이 검은 몸체를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슬라임과 같은 끈적끈적한 질감의 육체를 한 소녀가 그 바위들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점.
"땅의 사정령의... 상급 정령인가!"
클레온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상급 정령의 모습이 소녀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
사정령들은 급이 높아질수록 흑마력에 강하게 오염된 것이며, 어떤 것을 주체로 흑마력을 흡수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취한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악마들의 흑마력에 오염된다면 그들과 같이 흉악한 형태를 띠게 되고.
마검등이 가진 흑마력에 오염되면 검의 형태를 취한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것은 어떤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잘 보면, 소녀의 머리에는 작은 뿔이, 등에는 박쥐의 날개가. 그리고 엉덩이 쪽에서는 화살촉의 꼬리 끝을 가진 꼬리가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복부에 보이는 문양.
"서큐버스...!"
그녀가 영향을 받은 것은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음마의 그것이었다.
왕도뿐만이 아니라, 이 숲에도 그 녀석들의 손길이.
"사샤!"
다음 순간, 클레온이 본 것은, 자신의 액체로 되어있는 육체 안으로 사샤를 밀어 넣는 정령의 모습이었다.
사샤의 근력으로는 바위들을 밀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여 탈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 정령이 사샤를 흡수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형태의 정령에게 있어서 가장 약한 약점이 되는 부분은 핵이었고, 이 녀석의 핵은 두말할 것 없이 서큐버스의 형태를 한 그 부분이었다.
즉, 이 녀석은 사샤를 자신의 안에 집어넣는 것으로 그녀를 인질로 잡고 약점을 보완하려 한 것이었다.
순수한 자연계의 정령은 불가능한 인간이나 악마가 할만한 발상이었다.
"갈라테아...!"
클레온의 눈이 분노로 크게 띄어졌다.
파트너의 이름을 부르면, 그로부터 흘러나온 흑마력이 서서히 클레온의 몸을 뒤덮어간다.
"감히, 내 앞에서. 내 동료를 인질로 삼아...!"
이내 흉악한 검은 갑주의 형태로 변한 그것이 전신으로 퍼지면, 갈라테아의 검신에도 남은 흑마력이 잔류하면서 갈라테아는 대검처럼 그 검신이 거대해졌다.
그것을 위험하게 여긴 것일까, 사정령은 바위로 만들어진 손을 집어 들어 클레온을 향해 뻗더니, 손가락의 끝에서 바위의 파편들을 마치 포탄처럼 연사한다.
하지만 그 포탄들은 클레온의 갑주에 닿기 직전, 갑주에서 발생한 강력한 마력압에 의해 분쇄되어 버린다.
마력압이 발생할 때마다, 그의 주변에 검은색의 마력들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것은, 마치 촉수와도 같았다.
[이거, 마력 소모 심하니까. 빨리 끝내.]
갈라테아가 조용히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곧바로 직선으로 사정령을 향해 달려간다.
검의 마력을 분사하여 추진력으로 전환하면 전광석화의 속도에 도달하여 사정령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앞에 닿아 있었다.
다음 순간.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클레온의 대검이 휘둘러졌다.
사정령조차도 자신이 베였는지, 베이지 않았는지 의심되는 순간.
금이 가면서 갈라진 것은, 그녀가 조종하던 거대한 바위의 육체였다.
"GI,GIGI?!"
검으로는 절대로 베이지 않을 것이라 자랑하던 강도를 가진 바위가 부서지면, 그녀가 당황하지만.
클레온은 곧바로 손을 뻗어, 물컹한 육체 속에 잠겨있는 사샤의 손을 붙잡고, 강제로 잡아당긴다.
그 힘이 강한 탓에, 원래라면 끌려 나오지 않을 사샤의 몸이 사정령의 본체와 분리되었다.
드러난 것은, 복부의 문양 뒤에 숨겨져 있는 딱딱한 정령의 핵이었다.
"Ah..."
탄성을 내뱉어 자신의 운명을 확인한 사정령은, 다음 순간 자기 복부를 꿰뚫어 몸의 핵을 손의 악력으로 박살 내는 클레온을 바라보다가.
다른 사정령들과 마찬가지로 마력의 안개로 화해 사라지는 것이었다.
"콜록... 케흑...!"
사샤는 막혀있던 호흡을 되찾으며 클레온의 품에서 거칠게 심호흡을 했다. 갇혀 있던 시간을 짧았지만, 강제로 호흡을 방해당한 것이다.
느꼈던 공포는 분명히 적지 않을 터였다.
클레온은 전신에 걸쳐져 있던 마력의 갑주를 풀어내고 그런 사샤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아... 하아..."
"괜찮아. 사샤. 이제 안심해도 돼. 무사하니까."
클레온의 말에 사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클레온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네, 네... 괘, 괜찮아요. 저야말로, 더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죄송해요."
[미안하군. 조금 생각을 하느라.]
"루, 루벤님."
이번에는, 사샤와 클레온 두 사람 모두에게 들려오는 텔레파시였다.
[우투의 강림이라는 헛소리를 들어서 말이야. 조금 사고가 정지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사정령인가.]
"그래. 네 감지 능력으로는 무언가 알 수 있을 것 같나?"
클레온의 말에 루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서 이야기해 나갔다.
[... ... 조금 전 녀석이 튀어나오면서 흔적을 남긴 덕분에. 지하에 무언가가 있다. 흑마력의 오염은 거기에서 오고 있어. 어쩐지. 지상에는 별 이상이 안 느껴지는 것도 그게 원인이었군.]
클레온과 사샤의 시선이 동시에 땅바닥을 향한다.
"지하인가….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하나?"
[아니, 아라크네의 굴이 있을 거다. 보통 지하로 향하니, 그녀가 무언가 알고 있을 거야.]
결국. 아라크네를 쫓아가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사샤. 괜찮겠어?"
"네. 아직, 더 갈 수 있어요. 가게 해주세요."
클레온은 사샤의 말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계집.]
[저, 잠깐이지만 의식을 잃었을 때 루벤님의 기억을 봤어요.]
[...그런가.]
사샤가, 루벤이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접혀져 있던 그녀의 짐승 귀가 펼쳐지며 꼬리가 흔들렸다.
"가자. 클레온님. 바보 같은 거미 녀석에게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