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성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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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아라크네는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동굴의 안에서 눈을 밝히며 굳게 막혀있는 벽을 바라본다.
평범한 거미였던 자신이, 지하에 묻혀있던 우투의 성물에 닿아 전생한 것은 불과 며칠 전.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와 같은 것에 이끌려, 땅을 파고, 또 파서 도달한 그곳에는 거미와 운명의 여신 우투가 조각된 작은 조각상이 있었다.
비록 크기도 작고, 다 헤어져서 낡아 빠진 조각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우투의 조각과도 같은 힘과 기억이 담겨져 있었다.
과거, 우투가 이 숲에 살던 거미들에게도 신앙을 받았으며, 아라크네에게 있어서는 조상과도 같은 거미들에게도 축복을 내렸었다는 것을.
그리고, 똑같이 우투를 신봉하는 인간들과도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마수와 인간 사이에 경계 없는 나라를 건설했던 것을.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시간에 종말을 가져온 것 역시 인간들이었다.
빛나는 검을 가진 검사가, 한때 우투의 신도였던 인간들을 이끌고 신전을 침범했다.
성물을 불태우고, 마수인 아라크네들을 살해하고, 대륙에 진정한 인간들의 시대를 가져오겠다며.
가짜 신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권속으로 전생하여 강력한 몸을 손에 넣은 아라크네이지만, 성물이 주는 지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만, 본능적으로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뿐.
그렇기에 성물을 가지고 자기 굴을 만들어, 미덕의 숲에 접근한 인간들을 쫓아내는 것을 반복하던 도중.
붉은 머리에 뿔을 가진 인간이 그녀를 찾아왔다.
갈색의 피부에, 꼬리까지 자라나 있는 그녀는 우투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인간들이나, 숲에 찾아오는 인간들과는 어딘가 다른 분위기의 인간이었다.
거기에, 몸에서 느껴지는 조금 꺼림칙한 감촉의 기운.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녀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게 되는 것이었다.
"이 성물에 특정한 의식을 취하면, 거미신 우투를 재림 시킬 수 있어."
그녀는 안경을 고쳐 올리며 그렇게 말하고, 아라크네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했다.
인간과 짐승의 혈액, 풍화된 정령석, 모독적인 마법진.
그리고 개미 하나 얼씬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다른 모든 것과 차단된 공간.
의식의 주문을 외운 뒤, 성물을 그 안에 봉인하고 며칠을 버티면 성물을 매개체로 우투가 재림한다는 것이었다.
아라크네는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딱히 거절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이대로 숲에 흘러 들어오는 인간들을 되 쫓아내는 것을 반복하더라도, 그들은 점점 다른 수단을 써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과거의 인간들이 자신의 신에게 그렇게 했듯이.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거미의 신, 숲의 여주인, 운명의 실을 자아내는 방직의 여신이 이 세계에 재림한다.
미덕의 숲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영원히 여신의 것이 될 것이다.
아라크네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001
"여기까지 와도 녀석에게는 들키지 않은 것 같네."
클레온은 한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소리 하나 나지 않는 것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정령들을 정리한 뒤, 아라크네가 있는 굴을 찾기 위해 숲의 안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으나, 아라크네가 펼쳐둔 감지 영역 덕분에 그들의 움직임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더 강하게 감지될 것이었다.
그래서 취한 방법은, 그런 감지조차도 벗어날 수 있는 클레온의 마법인 `어둠의 장막`을 몸에 펼치고 가는 것.
물론, 이것은 클레온과 그가 몸에 지닌 물건들에만 전개되기 때문에 사샤와 떨어져 있으면 걸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취한 방법이란 것이.
"저, 저기...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하나요?"
클레온의 몸에 매달리는 것.
사샤는 부끄럽다는 듯 붉어진 얼굴을 가린 채로, 클레온의 팔에 공주님 안기로 들려져 있었다.
"적어도 굴을 찾아낼 때까지. 루벤, 어때?"
"으음~ 반응은 가까이에 있는데. 흑마력의 근원지로 향하는 통로가 강제로 막혀있는 듯해."
부끄러운 반응을 보이다가, 루벤에게 몸을 건네 여유로운 표정을 짓다가.
사샤의 몸에 두 명의 인격이 살아 있다 보니, 마치 정서불안이라도 있는 듯한 그녀와의 대화에 클레온은 이제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가. 서두르지 않으면 해가 질 것 같은데."
이미 정오를 지나, 해가 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미덕의 숲에 들어온 두 사람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직은 밝은 빛을 내리쬐는 태양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다간 삽시간에 수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기 시작하며, 사샤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주황색의 하늘로 바뀌어 버릴 것이다.
밤의 숲이 밝을 때의 숲보다 위험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수가 태어날 정도로 마력 농도가 짙은 숲에서라면 그 위험도는 훨씬 상승한다.
달이 만들어낸 광기의 마력이 짐승들의 몸에 침투하면, 강자와의 격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나타난다.
클레온이 내뿜는 위압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에게 공격해서 불필요한 싸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어둠의 장막`을 사용하면 그런 싸움 역시 피할 수 있겠지만.
다른 것보다도 쿠온이 식사를 만들고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식사 시간 보다도 늦게 돌아가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었다.
"아. 클레온씨! 거기, 거미줄이 있어요!"
잠깐 다른 생각에 잠긴 채 앞으로 걸어가던 클레온에게, 사샤가 팔을 들어 클레온의 발치를 가리켰다.
확실히, 그곳에는 두 개의 작은 키의 나무 사이에, 복잡하게 엉킨 거미줄이 걸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정도는 괜찮아. 걸려서 넘어지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거미줄을 피하려 하지만, 문득 그 기묘한 형태의 거미줄이 신경 쓰인 다는 듯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발을 들어 거미줄을 슬쩍 밀어 보면, 간단하게 끊기는 일 없이 단단한 감촉을 느끼는 것이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인가."
마치 현악기의 현과 같이 팽팽하게 당겨진 고강도의 실.
주의하지 않고 강하게 부딪히면, 살갗을 베어내기에, 충분한 얇기와 단단함이었다.
"함정인가. 그 아라크네가 침입자들 격퇴용으로 만들어놓은 거겠지."
작은 나무들도, 자연스럽게 위장되어 있었지만, 조금 잘 살피면 날카로운 무언가로 가지치기 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쿠후후. 위험했구나 클레온님. 잘못하면 발목이 잘렸을지도 모르겠어."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마수는 마수라도 아라크네라는 건가."
클레온이 고개를 돌리면, 그곳으로부터 주변에 몇 개나 비슷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혼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면, 함정만큼 효율적인 건 없지. 게다가 다리를 공격하면 이동에 제약이 시키니까 진군도 저지할 수 있고."
클레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함정들의 위치를 전부 파악하고, 그것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함정이 만들어져 있는 길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 그렇구나. 함정이 있다는 건 이쪽에 지켜야 할 게 있다는 거겠죠?"
"그래. 이 길을 따라가면 녀석의 굴이 있을 거야."
클레온도 사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나아가려 한 다음 순간, 사샤의 꼬리가 움직여 클레온의 팔에 감겼다.
"잠깐. 클레온님. 반대쪽이다."
"...뭐?"
루벤의 말에 클레온이 대답하면 루벤의 시선이 빙글 돌아가며 땅에 설치된 함정의 길을 본다.
"역시, 우투 본인은 아니라지만, 그 일부가 깃들어있는 권속인가. 방어전에 관해선 태생적인 재능을 보이는구나."
"그보다, 반대라는 것은?"
클레온이 질문하자, 루벤은 조용히 옅은 미소를 보이며 클레온에게 대답한다.
"이 함정은 한 번이라도 발견되면, 그 뒤로는 효용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함정이니라. 한 번이라도 밟게 되면 같은 함정에 주의하는 건 당연하니까."
그러니. 이 함정이 효과를 가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첫 접촉뿐. 그 뒤로는 진로를 조금 방해하는 귀찮은 장식물에 불과하다.
그런 것을 여러 개 길에 배치해봤자, 그다지 큰 효과를 보일 리 없다.
허나, 함정을 두고 있다는 것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심리를 이용하여, 헛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진짜 길을 감추는 것이었다.
루벤의 설명에 클레온도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일리가 있어…. 하지만, 그 정도의 수를 읽을 수 있는 건가?"
"예전에 비슷한 수로 당한 적이 있으니까 알고 있을 뿐이야…. 그게 아니면, 나의 혜안에 반했는가? 클레온님♡ 쿠후후♡"
그녀의 꼬리가 클레온의 코 근처를 간지럽히면 클레온은 조용히 그 꼬리를 붙잡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조금 더 하면 반할 것 같으니까, 감지랑 안내 부탁해."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귀를 쫑긋 새운 루벤은 밝게 웃어 보이더니 꼬리의 끝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알겠느니라. 방금 걸로 대충 굴이 어디 있는지는 위치를 알 것 같으니, 안내하마!"
그녀가 가리킨 방향은, 조금 전 클레온과 사샤가 나아가려 했던 방향의 반대 방향이었다.
장막에 가려진 채, 클레온과 사샤는 또 다른 함정에 주의하며 루벤의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002
결론대로 말하자면, 루벤의 말은 사실대로였다.
함정이 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 반대 방향으로 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각양각색의 함정들이 클레온과 사샤를 덮쳐왔으니 말이다.
구덩이 함정, 가시 함정, 건드리면 커다란 소리가 나는 함정….
"큭…. 웬만한 던전이나 유적을 탐사하는 것보다 귀찮은데…!"
클레온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건드리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 사샤와 함께 전집중을 다하여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다 왔느니라♪ 바람의 소리가 바뀌었어."
하지만 루벤은 사샤의 몸을 빌려 클레온에게 매달린 채 즐겁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클레온뿐이니, 클레온의 품에 안긴 채 재잘재잘 떠들기만 하는 루벤으로서는 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로, 빙글하고 움직인 사샤의 꼬리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면
그곳에는, 거대한 개미구멍과도 같이 지면에서 경사져서 내려가는 길이 만들어진 구멍이 보였다.
"... 굴이라고 해서, 곰이나 늑대들이 사는 그런 걸 상상했었는데."
"이 숲에는 그런 산이 없기도 하고…. 거미니까, 그런 곳에서 사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지.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를 결계로 막는 것이 좋겠구나. 클레온님."
클레온은 루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사샤와 시선을 마주친다.
사샤 역시, 클레온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다지는 것이었다.
이내, 클레온이 굴의 안쪽으로 발을 딛으면, 그 안은 확연하게 흑마력의 기운이 강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약한 생명체들을 오염시킬 수 있을 정도의 농도였지만, 클레온도 사샤도 몸을 마력으로 감싸 그것을 막아낸다.
어둠의 장막이 사라지면 곧바로 클레온이 손을 휘둘러, 굴의 입구에 출입을 차단하는 결계를 펼쳤다.
이야기를 듣지 않고 도망가는 그녀를 다시 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이걸로 그녀도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 거야…. 나와서 싸우려 할지, 아니면 이 안에 함정이 더 있을지."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 든다.
"매, 맵핑이라면 제가…."
"괜찮아. 사샤는 여기까지 오면서 귀나 눈을 혹사했으니까. 이 정도는 내가 해야지."
사샤가 그런 클레온에게 자신에게 일을 맡겨줄 것을 이야기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사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사양한다.
"흠, 하지만 클레온님.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까지 왔다면 일직선으로 흑마력의 반응이 강한 곳까지 가버리면 되는 거니까."
"...뭐?"
"계집. 몸을 내놓거라. 내가 길을 열어주지."
루벤이 그렇게 말하자 사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녀에게 육체의 제어권을 완전히 넘긴다.
그러자, 루벤은 이전 클레온과의 첫 정사에서 했던 것처럼, 그녀의 몸에 자신의 마력을 충분히 흘려 넣어 몸을 강화한다.
팔다리의 근육이나, 눈의 날카로움. 그리고, 몸 전체의 성장도.
"... 이쪽인가"
그녀는 손에 활과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을 든 채 주변을 둘러보다, 경사진 땅바닥을 바라보더니 그곳을 향해 활을 겨누고 시위를 건다.
"무엇을"
"물러나 있으시게, 클레온님. 조금 먼지가 일테니까."
루벤은 클레온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더니 눈을 부릅뜨며 마력과 근력을 끌어모아 거대한 마력의 화살을 만들어 발사하는 것이었다.
"강철을 뚫는 작달비"
이내, 거대한 늑대의 형상을 한 마력의 주포가 지면을 꿰뚫고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그것은 마치 굴삭기와도 같이 커다란 구멍을 만들며 전진, 또 전진하더니 커다란 공동이 있는 지하까지 일직선으로 길을 뚫어버린다.
"후우~"
루벤은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을 보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며 사샤에게 다시 몸을 돌려준다.
"으윽..."
하지만, 상상 이상의 출력을 보여준 거대한 기술 덕분에 그녀도 마력이 갑작스럽게 떨어진 것을 느끼며 몸을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너무 심하게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클레온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지하로 향해 뚫린 통로를 바라본다. 그 너머에는,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라크네가 보였다.
"...가자, 사샤!"
"네, 네에!"
클레온은 그런 사샤를 이끌고, 구멍을 뛰어내려 아라크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빠르게 추락하는 몸을 마력을 쿠션으로 하여 받아내고, 손을 휘둘러 광원 마법을 사용하면.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있던 아라크네가 클레온과 사샤를 노려본다.
"너희…. 어째서. 어떻게. 여기까지."
"이야기하러 왔다. 라고 아까 말 했잖아."
아라크네는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들이 만들어낸 구멍을 바라본다.
"이야기. 하는 녀석. 이런 일. 안 한다."
"...그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시간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고 싶었거든."
"... ..."
아라크네가 조용히 있으면, 클레온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어차피 더는 어디에 가지 못해. 이야기를 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알았다. 이야기가 끝나면. 너. 돌아간다."
"그래."
아라크네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클레온에게 대답하면 클레온도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단도 직"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마 아라크네. 우투의 권속이여. 그대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은 완전히 헛수고이니 그만두거라."
클레온은 흑마력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입을 연 것은 루벤이었다.
루벤의 그런 말을 듣고, 겨우 말문을 터준 아라크네가 루벤을 노려본다.
"...너..."
"이 몸은 루벤. 그대가 신봉하며 사랑하는 `우투`와는 적이었으며, 동시에 자매이고, 같은 패배자이니라."
"루벤... 우투님의 기억에. 있다. 침략자. 어린애. 그리고, 동생."
아라크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루벤은 동생이라는 호칭이 불만이라는 듯 `끄응`소리를 내지만 이내 말을 이어나간다.
"네 등 뒤의 막힌 공간에서 흑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게 느껴지는구나.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우투의 기운도. 성물에 무슨 짓을 하고 있구나. 네가 얻을 수 있을 만한 지식이 아니야. 대체 뭐지?"
루벤의 말에 아라크네는 몸을 움찔하고 반응하며 슬쩍 뒤를 바라본다. 클레온과 사샤가 보기에는 그저 흙과 돌로 막혀있는 벽이었지만, 루벤에게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했다.
"...루벤. 너는 어째서. 인간들의 편을 드는 거지. 우투님은 너를..."
"너야말로. 죽은 녀석을 되돌려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우투는 나와 달라. 그녀는, 그날. 용사에 의해 죽었다."
루벤은 다시 한번 아라크네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우투가, 용사에 의해 죽어?"
클레온도 그녀의 말이 신경 쓰인다는 듯이 반복하면 루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침략 신이었던 나와 다르게, 이미 그곳에 터를 내리고 신도들을 지키던 신이었다. 하지만, 성검의 용사가 나타나 그녀의 신도들을 빼았고, 영지의 성소를 불태운 뒤. 성검으로 그녀의 본체를 베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투는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루벤의 말에 아라크네는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성물에서 넘어온 옅은 기억 속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망칠 수 있었다. 용사가 나타난 이 땅은 원래 내 땅이 아니었으니까. 죽은 듯이 숨어 살 수 있는 곳까지 도망가면 됐다…. 하지만, 우투는 그러지 못했어. 그녀에게는, 도망칠 곳 따윈 없었다. 그녀의 영지가 바로 전장이었으니까."
스스로 `도망쳤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그녀의 프라이드를 짓밟는가.
루벤은 분한 듯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전에 없는 슬픈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아라크네는 루벤의 말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내 다시 루벤을 노려보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투님. 인간에 의해 쓰러졌다. 신도들을 남기고, 깊은 잠에 빠지신 거야."
"아니! ... 그녀는 죽었다."
루벤은 아라크네의 말을 부정했다.
"성검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결코 접촉할 수 없는 신의 핵이 되는 부분. 즉, `신핵`을 공격할 힘이 말이야. 용사는 우투의 신핵을 베어, 그녀를 완전히 이 세상에서 소멸시켰다. 흩어진 파편만이 여러 성물에 깃드는 것이 최선…. 우투라는 신은, 그날 세계에서 사라졌다."
"... ..."
루벤의 말에 아라크네는 눈을 크게 뜨더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신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막대한 신앙이 모여, 비슷한 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투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결코 이전의 우투가 아니다. 하물며, 흑마력이 섞인 성물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신이, 어떤 악신이 될 지. 상상조차도 하기 싫군."
"...흑마력...?"
루벤의 말에 아라크네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 모습에 루벤은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런가, 흑마력이란 개념을 모르는 군. ...뭐, 아무래도 좋아. 그 성물을 파괴하고, 너를 우투의 주박에서 해방 시켜주마."
루벤이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뜨면, 몸의 주도권은 사샤에게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사샤는 루벤이 조금 전 했던 것처럼 활에 마력의 화살을 걸어 아라크네를 조준한다.
"... ..."
아라크네는 조용히 사샤를 노려볼 뿐이었다.
이윽고, 시위를 잡고 있던 손이 놓이면, 그녀의 손에서 빠른 속도로 발사된 화살이 아라크네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라크네는 그것을 보더니, 여유롭게 몸을 틀어 피해내지만, 마력 화살은 그대로 그녀의 뒤에 있던 벽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균열이, 그녀의 뒤편에 있던 만들어진 벽을 무너트린다.
"그, 그런...!"
아라크네는 당황하여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는.
루벤이 예상하던 것처럼, 거미 모양을 한 우투의 성물에 대량의 흑마력이 흡수되어, 지금 당장이라도 무언가가 태어날 것처럼 팽창해 있는 것이 보였다.
"큭... 무슨 농도야…. 밀폐공간 안에서 이렇게나 농축되다니…!"
클레온은 흘러나오는 흑마력에 당황하지만, 이내 검을 뽑고 성물을 노려다 본다.
"성물이... 변해있어…!"
아라크네가 놀랐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성물에 나 있는 눈과 그녀의 눈이 마주친 순간.
아라크네가 가지고 있던 성물에 대한 신앙, 존경심이 흑마력과, 그 안에 남아있는 우투의 파편과 반응한다.
이윽고, 성물이 하늘로 떠오르며 무언가가 일어났다.
[나의 피. 나의 몸. 나의 껍질에 의해 이루어진 삼천세계의 섭리 안에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신격을 가지고 나는 나를 창조하노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일행 심지어 아라크네마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몸을 움츠려 트리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어둠이 있으라.]
다음 순간, 성물을 핵으로 하여 새로운 마신이 태어났다.
흉악하고, 녹아내리는 몸을 가진 거대한 거미가, 성물을 중심으로 육체를 구성한다.
그 속도는 사샤의 화살이 내려쳐지는 속도보다도 훨씬 빨라서, 8개의 다리, 흉악한 송곳니를 가진 몸을 구축해내는 것이었다.
[GRRRRRAAAAA!]
이내, 그녀가 울부짖었다.
그것은, 우투가 아니었다.
우투의 형상, 혼을 베껴 만들어진 단순한 마신 일뿐.
루벤은 혀를 차지만, 사샤는 주먹을 꽉 쥐어 전투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클레온님. 흑마력의 근원은 저 마신의 핵인 성물이다. 그리고…. 지맥에도 흑마력이 연결되어 있어."
"지맥에…? 이곳의 지맥은 왕도의 지맥과도 연결될 텐데…. 우선, 저걸 막는 게 우선이겠군."
클레온도 갈라테아를 뽑아 들어, 사샤의 앞에서 그녀를 지키듯이 섰다.
"우투...님..."
아라크네는 마신이 되어버린 성물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을 부릅뜨며, 실을 뽑아내 거짓된 우투와 대치한다.
"...우투. 내가 네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루벤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샤의 시위를 잡는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간다 계집. 이번에는 네 의지로 네 몸을 움직여, `신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네!"
그것이, 우투를 위한 안식의 기원이기도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