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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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크네 아니, 아난시를 데리고 왕도로 돌아온 뒤, 지속성을 제외한 다른 영맥들이 흘러들어오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던 클레온은 낮에는 라일라나 다른 이들을 도와서 조사 활동, 밤에는 아멜리아와 루베라를 도와 뒷골목을 조사한다는 꽤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완전히 생활 방식이 망가져, 새벽에 돌아와서 잠깐 잠든 뒤, 점심이 되어서야 일어나는 불규칙한 생활을 보내던 찰나.
보다 못한 일행(특히 쿠온)의 만류로 하루 정도는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부탁받아 밤의 순찰을 하루 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만큼,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맥에 관해서는 오렐리아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어서 이미 모든 위치의 파악이 마쳐진 상태이고, 각지로 가서 영맥의 정화만 하면 되는 상태이다.
뒷골목은 이전에 카말라의 가게를 박살 낸 뒤에는 아스타로테도 행동을 조심해 하는 것인지 큰 위협 없이 순찰도 조사도 진행되고 있는 도중.
남성들의 정기를 착취하기 위한 가게를 몇 군데 발견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카말라의 가게에 비하면 크기가 너무 작아, 있어도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가게들 뿐이다.
물론 그런 가게들도 남김없이 박살을 내주고 있는 도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슈탈`, 그리고 `릴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였다.
"눈에 띄는 곳에서 일을 저질러 주는 편이, 이쪽으로선 상대하기 편하지만…."
클레온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손에는 라일라로부터 건네받은 시약이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주머니를 든 채 아침의 거리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무게가 꽤 됐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근력을 마법으로 강화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거뜬하다고 생각한다.
기분 탓인지, 처음 왕도에 왔던 일주일 정도 전보다도, 가게를 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나, 길을 걸어가는 시민들의 표정이 초췌해져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아니, 기분 탓은 아니겠지. 클레온을 비롯한 일행은 이제 음몽에 대한 대책을 마쳐 두어서 잠을 자도 문제가 없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마력과 생명력을 악마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고, 서큐버스들도 정기를 빼앗아 올 인간을 죽여선 말짱 도루묵이니 죽지 않을 정도로 양을 조절하고 있겠지만.
티끌도 쌓이면 태산이라고, 조금씩 그 영향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지맥을 전부 정화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며 클레온이 발을 멈춘 곳은.
아스타로테에 의해 여성이 되어버린 남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교단 소속이 아닌 수도원이었다.
아난시도 이곳에서, 수녀들을 도우며 지내고 있을 것이니 인사라도 해야겠지.
본래의 목적은, 그저 인사만을 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클레온은 조용히 수도원의 입구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그러자, 잠시 뒤, 상냥해 보이는 인상의 1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수녀가 문을 열어주며 클레온을 반갑게 맞이한다.
베일의 뒤에 잠깐 보이는 금발. 그리고, 푸른 눈. 귀족 출신의 아이인가.
"어서 오세요. 아루루님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클레온 님이시죠?"
교단 소속이 아닌 수도원이기에, 외부인이 접근하기 위해선 그 정도의 소개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트로메이아 가문에 시약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둔 덕분에 클레온은 무리 없이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내가 클레온인지 용케 알았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수녀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네. 아루루님과 아난시님께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키가 큰 남성분이시라고."
다른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에 클레온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천천히 수녀를 따라 현관에서 본관으로 통하는 통로를 걷는다.
통로는 정원과도 붙어 있어서,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틈틈이 심겨 있는 깔끔한 정원의 위에는 수녀의 견습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두 집단.
한쪽은, 여성스러운 복장을 하고, 조용히 차를 즐기거나 서로의 머리카락, 손톱 등을 봐주는 여성들의 집단.
다른 한쪽은, 그런 여성들을 힐끔힐끔 살펴보면서, 남성복을 몸에 걸친 채 어딘가 불만 있는 얼굴을 하는 여성들의 집단이었다.
"저들은…. 잘 지내고 있나?"
클레온이 그렇게 물어보면, 젊은 수녀도 정원쪽을 바라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저렇게 두 집단으로 나뉜 건, 이곳에 오시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어요. 처음에는, 남성복의 분들이 좀 더 많으셨지만, 지금은 여성복을 입으시는 분들이 더 많죠."
"... ..."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수도원은 비록 교단 소속이 아니었지만, 강력한 신성 마력이 깃들어 있는 장소였다.
그러므로,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혹은 치유는 못하더라도 저주가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소망이었던 듯했다.
"저주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신성 마력보다도 본인의 의지가 더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예 생활관도 따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니, 완전히 자신들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중에는 가족으로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이곳에서 수녀가 되시겠다는 분도 계시고요."
"... 큰일이로군."
"네... 물론, 저주가 해제될 수단이 마련될 때까지만이라도 생각을 보류해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드리지만. 남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분마저 나오시는 지경이라…."
수녀도 클레온도 한숨을 내쉬면서 발을 옮긴다.
`그러고 보니, 저들 중에 유스테스는 없었군.`
클레온은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봤던 유스테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입고 있던 노출 높은 버니 복에서, 그나마 사이즈가 비슷한 아루루의 옷을 빌려 입은 그는 기절한 채로 이곳에 옮겨왔다.
그 뒤로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던 터라, 혹시라도 그가 여성복을 입은 그룹에 껴있었다면 클레온은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장님께서는 이 방 안에 계세요. 인사를 마치시면, 또 안내해 드릴게요."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는 수녀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안내받은 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원장의 방은, 청결하면서도 커다란 창문이 달린 방으로, 바깥과 그 밝기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초로의 여성 이 수도원의 원장인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클레온을 맞이하며 인사를 해왔다.
"어서 오세요. 아루루 아가씨가 이야기하시던 대로 키가 훤칠하신 분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칭찬을 해오는 그녀에게 예를 표한 뒤, 라일라로부터 건네받은 주머니를 그녀의 앞에서 풀어, 흰색의 약을 한 병 꺼내 들었다.
"그것이…. 클레온 님의 일행분이 개발하신, 저주를 중화할 수 있는 약, 입니까."
"어디까지나 진행을 최대한 늦춰주는 약이라고 들었습니다. 효과가 있는 것이 확인된다면 이 약을 바탕으로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잠시, 살펴봐도 괜찮겠습니까?"
클레온은 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약이 들어있는 병을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서랍에 있던 감정용의 모노클을 한쪽 눈에 끼고 시약을 살펴본다.
클레온은 어째선지 자신이 긴장하게 되어 원장의 방에 있는 주변을 살피는 것이었다.
원래는 수녀들밖에 없는 수도원의 원장이 지내는 방임에도, 방의 장식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단연 벽에 장식되어있는 검은 전신 갑주와, 투구이다.
거의 칠흑에 가까운 색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은, 꽤 낡아 보였으며.
가슴에는 반쯤 지워진 왕국의 문장…. 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
허리춤에는 붉은색의 다 헤진 천이 둘려 있는 것이 보였다.
재질은 레어메탈의 부류일까, 미세하나마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디자인은 왕국 기사들이 주로 착용하는 흰색의 갑주에서 색을 검은색으로 칠한 뒤, 포션 벨트나, 단검을 두르기 위한 띠 등, 조금 더 실용적인 보조장비들을 달아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갑옷이 신경 쓰이십니까?"
클레온이 갑옷에 시선을 집중시킨 사이,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낡았지만 좋은 갑옷이군요. 여기저기에 수선한 흔적이 보입니다. 분명, 몇 번이고 주인을 지켜준 갑옷이겠죠."
"후후. 그건, 제 친구가 사용하던 갑옷이랍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성용의 갑옷이죠."
그래. 클레온이 마지막으로 신경 쓰던 것은, 그 갑주가 남성용이 아닌 여성용이라는 것이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당신도 그녀와는 인연이 있군요."
"...인연?"
원장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엷은 미소를 띠며 클레온이 되물어 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묵고 있는 장소... 팔라나티아의 관의 원래 주인. ...팔라나티아가, 저 갑주의 주인이었습니다. 그 아이와 저는 나이 차이가 20정도는 있었지만 말이죠."
그립다는 듯이 웃어 보이는 그녀는 이내, 그 갑옷에서 시선을 돌려 클레온에게 관찰하던 약을 돌려주었다.
"동료분의 실력이 상당히 좋으시네요. 재료 간의 불안정성도 거의 보이지 않고, 이 정도면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원내의 피해자분들께 사용하셔도 될 것 같네요."
`피해자`라는 것은 즉 서큐버스들의 피해자.
남성에서 여성이 된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여성이 몸을 일으켜, 약주머니를 받으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노인에게 이 무거운 것을 옮기도록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일이었다.
"가지고 온 약이 무게가 꽤 되니, 제가 옮기죠."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친절하시군요. 그럼, 의약품을 보관하기 위한 전용의 방이 있습니다. 바깥의 아이가 안내해 줄 겁니다."
클레온이 약의 주머니를 챙겨 들고 원장의 방을 나서면, 아까 자신을 안내하던 수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약을 보관하는 방이 있다고 하는데"
"아~ 서관의 의무실 바로 옆이네요. 안내해 드릴게요."
클레온과 수녀는, 원장의 방으로 오던 길에 사용한 복도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곳 역시, 중간에는 정원과 비슷 한 곳과 연결되어 있으며, 사람들이
"응...?"
클레온은 아까처럼 사람들을 살피려다가, 눈에 띄는 여성을 발견하여 시선을 멈추었다.
남성복을 입고 있지만, 풍성한 머리카락을 어떻게든 묶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저건... 유스테스인가."
"그렇네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하는 터라, 클레온과 수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유스테스는 지친 기색으로 헥헥 거리면서도 눈앞에 있는 훈련용의 허수아비를 향해 목검을 계속해서 휘두르고 있었다.
"어째서 수도원에 훈련용의 장비들이…."
"병문안으로 오셨던 이오나님께서 두고 가신 거에요. 원래는 없었지만요."
"유스테스를 위해서인가…."
클레온은 이오나라면 그럴 법 하다고 이해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스테스는 목검을 계속 휘두르다가도, 악력이 다 떨어진 것인지, 검을 치켜올리다가 그것을 놓치고 만다.
"어, 어라... 검이…. 어디 갔지…."
자신이 검을 놓쳤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손을 내려다보는 유스테스.
그의 목검은 그의 손을 떠난 채 유스테스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가, 또다시 반대로 그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유스테스씨!"
그걸 본 수녀가 그에게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지친 유스테스가 그곳을 돌아봤을 때는 이미
다음 순간, `턱`하는 소리와 함께 목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잡혔다`겠지.
"얼마나 훈련에 힘을 쏟으면, 탈진하기 직전까지 휘두르기를 하고 있는 거야…."
자기 위에 그림자가 생겼다고 생각한 유스테스가 고개를 들면, 그곳에는 클레온이 쓴웃음을 지은 채 그가 놓친 목검을 붙잡고 있었다.
"어, 어느새!?"
수녀는, 조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 있던 클레온이 순식간에 몇 미터는 떨어져 있는 곳에 이동해 있자 놀란 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클, 클레온…."
유스테스는 호흡이 거칠어져 상기된 상태로 클레온을 올려다본다.
반쯤 눈이 풀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 아니, 그녀는 흐릿한 시야에서 클레온의 얼굴을 마주 본다.
칠흑 같은 머릿결에,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 싸움 속에서 단련된 몸과 남자다운 팔다리의 근육.
그리고 무엇보다,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걱정하는 듯이 바라보는 그의 표정.
`두근...`
"윽...!"
갑작스러운 심장의 아픔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양손을 왼쪽 가슴 위에 올린 채 고통스러워하자, 클레온은 그런 유스테스를 걱정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이, 이봐.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자, 잠깐! 괘, 괜찮으니까. 만지지 말아 줘."
클레온이 유스테스의 어깨를 잡으려 하자, 유스테스는 황급히 몸을 움츠리며 클레온에게 말한다.
"그, 그러냐. 괜찮다면 문제없다만…."
클레온도, 그런 유스테스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하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손길을 멈추는 것이었다.
"너와의 조우는, 심장에 안 좋은 것 같군…. 클레온."
"영문 모를 소리 하지 말라고…. 수련도 좋지만, 몸도 생각하면서 해."
"클레온씨! 유스테스씨! 괜찮으세요!?"
시약이 들어있는 주머니는 복도에 놔둔 채, 클레온과 유스테스에게 다가오는 수녀.
"아아, 문제없어. 리자."
"리자?"
"아! 제 이름이에요.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을 안 알려 드렸었네요."
데헷, 하고 자기 머리를 콩하고 박는 행위를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유스테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클레온이 여기에? 리자가 안내하고 있던 건가."
"네! 클레온씨가 여러분들을 위한 약을 가지고 오셨어요."
리자의 이야기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한다.
"그래. 저주의 진행을 약화할 수 있는 약이야. 그런데, 어째서 나한테 등을 돌린 채 앉아있는 거지 유스테스?"
"...시, 시끄러워. 나는 지금 몸이 이런 상태야. 땀에 젖어서 이것저것…. 비쳐 보인다고."
유스테스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도,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한다.
"그, 그런가. 그건 생각 못 했네."
"어라, 하지만 전에는 다른 피해자분들한테는 평범하게"
"그, 그보다! 그런 약을 가지고 왔다면 나에게도 바로 하나 줄 수 있을까?`
황급히 리자의 말을 가로막으며, 유스테스가 이야기하자, 클레온과 리자의 시선이 한번 마주쳤다.
"별로 문제 될 건 없지만…. 말해두지만, 몸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아니야."
클레온의 말에 리자도 걱정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유스테스는 고개만 돌려 글썽거리는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됐으니까 줘. 지금이라도 저주가 더 심해질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유스테스를 바라보며, 클레온도 확연히 여성스러운 표정을 만들기 생각한 유스테스의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약주머니에서 약병을 하나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유스테스는 클레온이 건넨, 그 흰색의 점성 있는 약을 바라보며 표정을 찡그린다.
"...이거 설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마법약의 성질상, 여성성을 남성성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런 개념이 시약의 형태나 성질에도 나타난다나…."
"그거?"
리자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단 듯이 고개를 갸웃이고, 클레온은 헛기침하면서 유스테스가 약을 들이켜는 모습을 살핀다.
"...그, 그렇군. 확실히 조금 찐득하고 생긴 것도 그렇지만. 맛이나 향은 나쁘지 않아."
"헤에 그렇군요. 저도 이걸 마시면 더 여성스러운 몸이?"
"아니. 여자에게는 효과가 없으니까."
"힝."
실망한 듯한 리자를 옆에 두고, 클레온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유스테스가 비운 약병을 바라보았다.
"...후우. 어째선지, 약을 먹으니까 마음이 조금 진정된 것 같아."
"그러냐, 그렇다면 다행이고."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유스테스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목검과 허수아비를 바라본다.
"...단련, 하고 있던 거로군."
"그래. 성검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 게, 내가 살아남는 법이니까. 이런 몸이 되더라도 유사시를 대비해 단련해두지 않으면."
유스테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훌륭한 마음가짐이지만.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몸을 망가트리지 않을 정도로만 해 둬."
"...걱정해 주는 건가?"
"그야 물론. 너는 나와 이오나의 사제니까."
클레온의 말에, 유스테스에게서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과는 다른, 무언가 감정이 섞여 있는 숨소리였다.
"약을 가져다주고 바로 떠날 테니까. 여기서 작별이군. 그럼, 나중에 또 보자."
"...그, 그래... 클레온. 당신도, 조심해."
유스테스는 약을 먹었음에도 심장박동이 더욱 빨라진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몸을 움츠렸다.
클레온도 리자도, 그런 유스테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약이 들은 주머니를 챙긴 채 서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던 도중, 리자가 조용히 입을 연다.
"클레온님. 조금 전에 유스테스씨가 약을 마시고 난 뒤부터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신데…. 무언가 잘못됐나요?"
"... 별로, 그런 건…. 아니, 당신들은 그들을 관리하고 있으니까 알아둘 필요가 있는 건가."
클레온은 리자의 질문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망설이다가도 그녀의 의문에 답한다.
"이 약은…. 정신과 영혼의 여성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아직 남성에 가까운 인물에게는 지독한 쓴 냄새가 난다고 라일라가 이야기했어."
"헤에~ 그렇군요. 쓴 약이 몸에 좋다는 그런 건가요?"
"...그게 아니라. 반대로 말하면, 여성화가 많이 진행된 인간은 별문제 없이 마시거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거야."
"호오호오... ... 응? 아까 유스테스씨. 맛이 좋다고"
리자는 그렇게 대답하다가 문뜩 조금 전의 유스테스를 떠올리고는 놀란 얼굴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서는 이제 보이지 않지만, 유스테스가 있는 방향이었다.
"... 어쩌면 생각보다도. 위험한 상태일지 모르겠군. 유스테스 녀석."
"저, 저희가 무언가 해드릴 수 없는 걸까요?"
리자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녀석의 여성화가 빠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자기가 남자라고 계속 느낄 테니까."
"나, 남자다운 모습이군요. 예를 들면, 무거운 짐을 옮긴다던가…?"
클레온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리자에게 대답했다.
"어쨌든. 저런 녀석이지만, 일단은 같은 스승을 가진 녀석이야.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 네. 저희들도, 있는 힘껏 피해자분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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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보관까지 도운 뒤 수도원을 나서려던 클레온은, 현관으로 통하던 복도를 다시 한번 걷는 도중 위쪽에서 느껴지는 시선과 기척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다음 순간, 천장 뒤의 그림자에서 눈을 반짝이며 그를 위에서부터 덮쳐 매달려오는 것.
"서방님!"
"아, 아난시…."
그러고 보니, 얼굴을 비추는 것을 깜박했다고 클레온은 생각하면서, 그녀가 자기 이마나 볼에 입맞춤해오는 것을 가만히 당해주는 것이었다.
"아, 아난시님. 천장에 숨어있는 건 다른 수녀들이 놀라니까 안된다고요!"
리자도, 그런 아난시를 보면서 불평을 이야기하지만 아난시는 웃으면서 며칠 만에 만난 클레온에게 달라붙을 뿐이었다.
"아난시. 이곳의 사람들이랑은 잘 지내달라니까."
"물론이에요. 아이들도 저를 얼마나 잘 따르는데요."
` ` 아이들은 겁이 없으니까….``
리자와 클레온은 같은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쉰다.
"어때. 이 수도원에서도 잘 지내고 있지?"
"네. 서방님이 말씀하신 대로 악마들이 가까이 오는지도 잘 망을 쳐서 확인하고 있어요."
클레온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아난시는 살며시 클레온에게 자기 머리를 내민다.
그러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머리에 클레온의 손이 올라가, 그녀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아난시에게 부탁한 것. 그것은, 수도원을 악마들로부터 지키도록 하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거미줄로, 수도원을 감싸서 누군가가 그곳에 닿으면 언제라도 알아챌 수 있게.
그리고, 신격을 얻어서 가지게 된 신성 마력이라면 악마들과도 대등, 아니 그 이상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딘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면, 그녀보다 적성이 있는 존재는 없겠지.
"사태가 끝날 때까지, 부탁할게. 그 뒤에는, 네 자유롭게 해도 되니까."
"자유롭게…! 그건 즉, 서방님과 같이 살 수 있다는 거죠!?"
"으, 으음…. 그때 까지, 네가 다른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다면 말이야."
클레온의 말에 아난시가 눈을 반짝이고, 리자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난시를 이곳에 데려다 놓을 때, 이미 오렐리아에게 부탁하여 수녀들에게는 설명을 마쳤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아닌, 다른 신격인데도 불구하고 아난시를 받아들여 준 것은 역시 마음씨 넓은 원장의 아량이라는 것이겠지.
"... 저, 꼭 서방님의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서방님께서도 절 잊지 말아 주세요."
"...물론이야."
인사하는 건 잊어버렸었지만. 같은 죄책감 서린 생각을 하면서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 뒤에는, 리자와 아난시의 배웅을 받으며 클레온은 수도원을 나섰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눈길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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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약을 먹으면 이 빌어먹을 여자 몸뚱이에서 돌아갈 수 있단 말이지?"
"그, 그렇다는 것 같았습니다. 형님!"
"젠장...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겁니까 형님. 우린 그저 두목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인데…."
"모른다. 하지만 두목도 분명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적당한 양을 챙겨서, 오늘 밤에라도 이곳을 뜨자."
"네, 형님!"
"드디어 이 지겨운 곳과도 이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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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사람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자신을 찾아온 이오나에 의해 그런 말을 전달받은 클레온은 들고 있던 물컵을 떨어트릴 뻔했다.
이오나는 사복이 아닌, 의뢰를 나가는 모험가와 같이 장비를 챙긴 상태였다.
"사라진 약은 일부고, 사라진 사람은 세 명이에요. 세 사람 모두, 신원 조회 협력을 거부했던 주의할 인물들이었습니다."
"...큰일이군. 피해자들의 존재가 일반인이나 교단에게 알려지게 되면…."
지금까지 잘 숨겨왔던 이런저런 사실이, 연쇄적으로 들통날 가능성도 있다.
"...그 걱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난시가 이야기하길, 붙여둔 실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는데. 밤사이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성문을 벗어나 왕도 동쪽의 `말발굽 산`으로 향했다는 것 같군요."
"말발굽 산... 라일라가 조사를 했었어. `풍`속성의 영맥이 흐르는 장소라고…. 그런데, 그곳에는 왜…."
이오나는 클레온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으으응...`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는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제 추측이지만. 그들은, 최근 말발굽 산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산적단의 일원이 아닌가 합니다."
"...산적? "
"네. 산적왕을 자칭하는 리더가 이끄는 단체로. 왕국 병사나 모험가들의 토벌을 몇 번이고 피해서 살아남고 있다고 하더군요."
클레온은 그 말에 다시 한번 들고 있던 물컵을 놓칠 뻔 한다.
모험가들이야 실력에 차이가 있으니, 누가 의뢰를 받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왕국의 병사 중에서도 왕도에서 토벌 임무를 수행할 정도라면 상당한 숙련도를 지닌 이들일 것이다.
그런 그들의 수색망을 피해서 몇 달이나 살아남고 있다니, 가히 `산적왕`을 자칭할만한 리더가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클레온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면,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붙잡으러 가야겠군. 놔뒀다가 어디에 정보가 흘러나갈지 모르니까…. 거기에, 영맥의 정화도 필요하니."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려고 온 거예요."
이오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클레온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알았어."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인 뒤 준비를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려 하면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쿠온이 후다닥 뛰어나와 그녀도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며 외치는 것이었다.
"나, 나도 갈게! 잠깐만 준비하는 거 기다려 줘!"
클레온도 이오나도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오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묘하게 의욕적이네요. 쿠온양, 무언가 있었나요?"
"영맥의 정화는 성직자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돕고 싶다는 것 같아."
"그렇군요... 쿠온양 한테 미안한걸요…."
"어째서?"
이오나가 묘한 이야기를 하면, 클레온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한다.
이오나는, 그런 클레온의 반응을 보면서 `쿠온양의 심정이 이해됩니다.`라고 작게 이야기한 뒤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002
"너, 너희들! 이거 놔! 우리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거냐!?"
"뭐라는 거야 이 년들은!"
어둡고, 조잡한 산굴의 가장 깊숙한 곳.
딱 보아도 험상궂은 산적들이, 세 여자의 팔을 거칠게 잡고 끌며 들어왔다.
"...시끄럽군. 무슨 일이지?"
방의 옥좌처럼 보이는 거대한 의자에 몸을 걸친 채 앉아있던, 검은 머리의 남성은 부하들이 자신의 앞에서 소란을 부리자, 슬며시 눈을 뜨며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부하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굳히며, 끌고 온 여자들을 두목인 그의 눈앞에 무릎 꿇리는 것이었다.
"... 이 녀석들이, 저희 산적단의 일원이었다면서 아지트로 들어오길래 붙잡았습니다."
"... 이 여자들이?"
두목은 눈을 빛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반인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키가, 천장에 닿을 듯했다.
그리고는, 검은 대검을 집어 든 채, 여자들의 앞에 선다.
"너희들…. 이름을 말해봐라."
"두, 두목. 저희입니다! `노만` `기시드` `샘`입니다!"
그녀들의 이름을 들은 두목은 잠시 멈칫하더니, 비릿한 웃음을 띠며 손을 벌렸다.
"... ... 아아. `그녀`에게 보낸 녀석들이로군. 용케 살아와서 돌아왔군그래."
그러고는, 그들 중 지도자 격인 `노만`에게 손을 뻗는 것이었다.
남자 시절의 험악한 외모는 전부 사라지고, 지금 거기에 있는 것은 붉은기가 섞인 갈색 머리의 미녀였지만.
자신을 부하로 받아줄 때와 같은 손길에 `노만`이 감동하며 그 손을 잡은 순간.
두목은 그녀의 팔을 잡아끌더니, 다른 손으로 순식간에 그녀가 입고 있던 의복을 찢어버렸다.
"두, 두목!?"
"이거 봐라. 꽤 재밌는 몸이 되지 않았느냐. 안 그래도 부하 녀석들이 여자 맛을 못 봐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상급의 녀석들이 알아서 굴러들어왔군."
히익, 하는 소리가, 기시드와 샘에게서 흘러나왔다.
"이 녀석은 지금 내가 데리고 즐겨야겠다. 둘은 끌고 가라."
"네!"
살려달라고 외치며 끌려가는 기시드와 샘.
두목은 노만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쥔 채 그와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
"너는 운이 좋아. 이 산적왕이자 탈체크의 제자. 그리고, 살아남은 유일한 흑마의 일족인…."
그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반짝인다.
"클레온의 성욕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두, 두목! 기다려 주세요! 저, 저는 원래 남자라고요! 두목! 아, 아아... 아아아아!"
말발굽 산의 아지트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광기와 폭력이 지배하는 장소에 어울리는 참담한 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