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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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 엑스트라들이 엑스트라를 향한 성적인 묘사가 있어서 성인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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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또 한 번.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은빛 섬광과 붉은 일섬이 휘둘러질 때마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산적들은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모두 깔끔하게 한 방에 신체 일부분을 절단당하고, 급소를 꿰뚫려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허망한, 마치 지금 이곳에서 죽기 위해 태어나서 살아왔다는 듯 조용히 주검이 되어버린 산적들을 바라보며 유스테스는 침을 삼켰다.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람을 베는 데는 주저가 없구나."
유스테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떨리는 손으로 검을 허리춤에 되돌렸다.
그렇게 말하는 유스테스도 아까 전 자신의 손으로 산적을 살해한 것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모험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도적이나 강도 등을 상대하는 경우는 있었다.
상대는 관계없이 이쪽을 죽일 각오로 덤벼오고, 의뢰 등에서도 토벌 대상의 생사를 따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목숨을 앗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모험가 유스테스도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클레온과 이오나의 그것은 거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고, 또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뭐…. 모험가를 하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지."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다.
그의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검이 붉게 물든 것은 그 검이 원래 주인의 대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향해 휘둘러진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갈라테아와 같이 마력이 물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빼앗은 목숨의 수를 본다면 틀림없는 마검의 부류이다.
이오나 역시 자신의 검을 허리춤에 되돌리면서 유스테스를 돌아보았다.
"저도. 왕국의 기사였던 몸으로 여러가지 임무를 겪었으니까요…. 아버지의 영향도 적지 않지만."
유스테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의외였던 것은 이오나 본인의 검 실력.
이전, 레오나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을 때는 뒤편에서 보조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밖에 보지 못했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몸에 은빛의 갑주를 걸친 채, 왕국 기사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강철과 미스릴의 합금으로 만든 특제의 장검을 무리 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절제된 움직임은 얼핏 보면 왕국 검술과 비슷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무자비하면서도 야성적인 곡선형의 기술이 섞여 있어서 탈체크의 검술을 자신의 방식대로 어레인지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검술은 클레온과는 또 달랐는데, 클레온이 탈체크의 검술을 거의 완벽하게 따라 한다고 한다면, 이오나는 검술의 재현에 있어서 자신에게 부족한 근력을 기술로 매꾸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두 사람은 사람이나 마물이나 관계없이 `베어서 죽일 수 있는 곳을 확실하게 베어낸다`라는 점.
그 점에 있어서는 탈체크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다.
"사람을 베는 게 꺼려지시나요. 유스테스."
얼굴이 어두운 유스테스를 바라보며, 이오나가 조용히 물어왔다.
유스테스는 그 말을 듣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먹을 꽉 쥔다.
"그야…. 그다지 기분이 좋은 건 아니야. 아무리 악인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사람이니까."
"그 감각을 잊지 않는 게 좋아. 사람을 베는 데에 무감각해지면 인간의 목숨의 무거움을 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죽은 산적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는 쿠온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그녀에게서 퍼져나가는 옅은 신성한 마력의 파동이, 쓰러진 주검에 서려 있던 원한 어린 마력이 퍼져나가는 것을 정화한다.
이런 식으로 죽은 이들의 원혼을 정화하지 않으면, 그곳에 남은 영혼의 일부가 흑마력을 만들어 땅을 오염시키거나 마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어서 모험이나 전장에서도 성직자들의 수요는 끊이질 않는다.
클레온은 그녀의 신성 마력의 제어를 도와 혹시라도 산적들의 아지트 내에 있을지도 모르는 마도구의 반응을 막는 것이었다.
"말발굽 산에 있는 산적들은 때때로 산의 근처의 가도를 지나던 상단을 습격하여 사람들을 죽이거나 납치하고, 물건들을 뺏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만을 보면 이들은 포박되어 왕도로 이송되더라도 제대로 된 재판 없이 사형될 가능성이 커요."
이오나는 유스테스가 싸우는 데에 있어서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실제로 산적들은 일행을 상대할 때 `여자는 살려라!` `남자는 죽여라!` 같은 말을 하며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무기를 휘둘러왔다.
클레온도 이오나도 그것에 얼굴을 찡그리며 곧바로 입을 다물게 해 주었지만.
쿠온은 기도가 끝나면 후, 하고 작게 숨을 내뱉은 뒤 기도에 집중하고 있어서 자기 손에 클레온의 손이 얹혀져 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가도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스테스는 묘한 공기가 흐르는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오나에게 시선을 돌려 조용히 대답한다.
"... 알고 있어. 미안. 신경 쓰게 했군."
"괜찮아요. 유스테스 당신은 아직 모험가가 된 지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오히려, 제가 생각하기에는 당신의 쪽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그런가? 당신도 클레온도 산적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적을 상대하면서 주저가 없지. 모험가나 기사로서는 그쪽이 정상인 게 아닌가?"
유스테스의 말에 클레온과 이오나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 하고 움직인 뒤 유스테스를 돌아본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인간으로서는 정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탈체크를 떠올려 봐. 그는 정상이었나?"
클레온이나 이오나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내온 인생.
그 인생보다 긴 시간을 검 한 자루로 살아오며 수많은 것을 베어온 탈체크.
그중에서 가장 많이 벤 것은 역시 인간이었고, 탈체크는 인간과 수라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살았던 인간이었다.
전투의 열기 속에서 광기에 가까운 흥분 상태에 빠지더라도, 인간의 생명이나 존엄을 짓밟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도 이성의 끈을 붙잡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검은 적을 베는 도구. 사람을 베었다면 어떤 포장을 하더라도 검사는 살인자. 그것을 거듭할수록 인간은 수라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인간을 수라의 길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베어낸 목숨을 짊어지는 것."
이오나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탈체크의 말이기도 했다.
검성이라는 이명을 받고 나서도 생사가 걸린 싸움에 몸을 던지는 것도, 어떤 상대라도 일격에 베어버리는 검술을 만들어낸 것도, 자신의 검에 의해 쓰러진, 쓰러질 자들을 위한 탈체크의 각오의 표현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베어온 것에 대한 업. 자신이 그것을 짊어지고, 상대방의 고통을 최대한으로 줄이려는 것이 탈체크가 검을 휘두르기 위해 잡은 신념이었다.
"부디. 당신도 앞으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계속 잡겠다면, 탈체크의 제자로서…. 아니, 한 명의 검사로서. 그의 말을 기억해 주세요."
이오나의 말에 유스테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의 인생, 유스테스는 자신이 정한 신념인 `귀족의 의무` `권위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책임`.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해 곤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돕는 `모험가`의 길을 선택했다.
설령 남자의 몸을 되찾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그의 길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서일까. 아까까지 두근거리던 심장의 고동도 서서히 정상으로 되돌아오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진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일지는 모르지만, 갑옷도 더욱 가벼워진 듯했다.
"...이야기가 길어져 버렸네요. 클레온,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요?"
이오나는 유스테스에게서 시선을 돌려 클레온을 바라본다.
"실이 가리키는 두 갈래로 나뉘어 있어. 한 명이 있는 쪽과 두 명이 있는 쪽. 한 명이 있는 쪽이 더 깊은 쪽에 있으니, 그쪽에 이 산적 단의 두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클레온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일행을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 둘의 생명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 그 주변에는 여러 인간의 반응이 느껴지고. 아마... 능욕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그 말에 쿠온은 숨을 들이 삼키며 놀란 표정을 했고, 이오나와 유스테스는 조금 굳은 얼굴이 되었다.
"... 클레온."
쿠온이 조용히 클레온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의 표정은 약간의 슬픔을 머금은 간절한 표정이었다.
클레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몸을 돌렸다.
"... 산적 녀석들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원치 않게 여자의 몸이 되어 그 상태로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물론이에요. 클레온.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이오나 역시 클레온의 말에 동의하듯, 주먹을 꽉 쥐면서 클레온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스테스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싸워나가는 인간이 잊어선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001
산적 굴의 아지트는 과거의 전쟁 때 제국군들이 기지로써 사용하기 위해 만든 곳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굴 내부는 꽤 체계적으로 이런저런 구획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붙잡은 포로를 구금하고 심문하기 위한 장소 역시 존재했다.
평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점철되어 타인의 것을 빼앗는 것에 열중하는 삶을 보내는 산적들에게 이 기지의 가치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런데도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써먹는 것이 인간의 성질이다.
질척이는 물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던 방에는 흰색의 연기가 퍼져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마약으로 만들어낸 안개 같은 것인데, 본래는 약물 형태로 혈관에 직접 주입되는 것이 목적인 물건이었다.
물론 산적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이것을 제조하거나 손에 넣은 것은 아니고, 원래는 제국군들이 전투 전에 사용하던 `각성제`의 용도로 사용하던 물건 중, 사용하지 않은 재고가 그대로 기지에 남아 있던 것을 그들이 발견한 것이었다.
약의 이름은 `블랙 메이커`. 사용할수록 몸의 곳곳에 검은색의 문신이 생겨나며, 과다하게 사용한 인간은 머리카락을 포함한 전신이 검게 변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극약이었다.
다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하여서 제국의 일반병이 왕국의 엘리트 병사인 기사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신체 능력, 마력 적성을 증폭시키는 것은 물론 아픔에 대해서도 면역이 되고 지속 시간 동안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돌입해 무아지경으로 적들과 싸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것을 희석해서, 일종의 향료로써 사용하고 밀폐된 공간에 연기를 가득 채우면, 안에 있는 동안에는 몇 번이고 절정하더라도 행위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흥분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오랫동안 연기를 흡입하면 본래의 약이 가지고 있던 부작용이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이것이 주는 전능감, 그리고 붙잡힌 희생자들이 보이는 반응에 쾌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마치 사우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약에 중독되는 것이었다.
"크, 후, 헤에... 헤헤. 죽이는구먼 아주... 명기야 명기..."
산적 중 하나가, 행위를 마치고 다음 사람과 교대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것으로 몇 번 째였을까, 자신들을 동료라고 주장하며 굴러 들어온 미친 여자들은 약의 효과 때문에 강제적으로 발정하여 더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널브러져 다음 인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산에서 나가지 못하니까 여자 맛도 못 보던 차에…. 이런 년들이 알아서 굴러 들어와 주다니…."
"야! 너 방금 한 번 했잖아! 왜 또 하는데!"
"이 년이 안 놓아주니까 그렇지…!"
저급한 대화를 나누면서 그저 성욕을 위해 두 인간의 상태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인간들.
행위가 시작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이 다음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방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두목은 어디서 계속 이 약들을 구해 오는 거지? 어느새 재고가 채워져 있단 말이야..."
"그거야, 그거…. 왜 전에 찾아왔던 붉은 머리의 여자. 두목이랑 거래하러 찾아왔다고 했잖아."
"아~ 그 여자. 막내놈이 그 자리에서 달려들었다가 머리가 꿰뚫려서 죽었었지…."
"밖에서 망보는 녀석들은 안됐구먼. 녀석들이랑 교대할 때쯤엔 이년들 죽어있겠는데?"
"운이 없는 거지 뭐. 하하하!"
그렇게, 동료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쩌엉!
귀를 때리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안개가 흘러나가는 것을 막고 있던 감옥의 문이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나며 쓰러졌다.
여자들을 범하던 산적들은 그것에 무슨 소리인지, 흐릿한 안개의 시야 속에서 채 파악하지 못한 채.
붉은 섬광이 달려들어 자신들을 순식간에 베어 버리는 것을 인지하는 것조차 하지 못한 채.
알몸인 그대로, 추하게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것이었다.
"클레온! 괜찮아!?"
"그래, 괜찮아. 쿠온. 그대로 보조 마법으로 이 연기를 흡입하지 않게 막아 줘."
클레온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환풍구로 보이는 곳에 천을 쑤셔 넣어 막아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거칠게 그것들을 잡아당겨 연기가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큭…."
그리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두 명의 여성으로 향한다.
얻어맞아 멍이 든 자국. 이곳저곳을 더럽혀진 흔적.
이들에게서 아난시의 `실`이 느껴진다는 것은 원래는 두 사람 모두 산적 단의 동료였던 인간들이었다는 것이겠지.
눈에서 빛을 잃은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두 사람의 몸에 근처에 있던 모포를 덮어 씌운다.
이윽고, 연기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약의 기운도 더는 공기 중에 남아 있지 않게 되면, 나머지 일행들도 감옥의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설마, 약까지 사용하고 있을 줄이야…."
이오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연기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향로에 다가가, 그 옆에 쓰러져 있던 병을 집어 들었다.
"... ..."
"쿠온. 두 사람에게 치유 마법을."
"응!"
"윽..."
유스테스는 비록 모포로 덮여져 있다지만, 두 사람의 얼굴만으로도 이 안에서 얼마나 지독한 행위가 일어났다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쿠온이 두 사람에게 손을 뻗고, 신성 마력을 통한 치유력을 불러내면 서서히 서서히, 몸에 생겨 있던 멍이 사라지거나, 위태로웠던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한다.
"정신 안정화의 마법도 가능할까?"
"물론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알고 있지? 사람에 따라 회복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다른 거."
"물론이야….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해."
클레온의 말에 쿠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육체의 회복에 더해, 망가진 정신을 조금이라도 안정화하는 회복 주문을 추가하여 사용한다.
그러는 동안, 약병을 집어 든 이오나가 클레온에게 다가오면, 그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라벨에는 본 적이 있는 문양이 붙어 있었다.
"...아스타로테..."
"이들이 어째서 이 문양이 붙어 있는 약병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약의 정체는 `블랙 메이커`입니다."
이오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면 클레온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제국에서 만들었던 각성제 계열의 마약입니다. 다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제조법은 소실…. 만들 수 있을 만한 지식을 갖춘 인간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검투장에서도 사용되던 물건이어서, 아버지도 이것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조 시설과 제작자를 모두 없앴다고도 하셨어요."
"... 플라로우스의 말에 의하면, 이슈탈과 릴림은 제국 출신이야. 어쩌면, 그들이 제조법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클레온의 추측에 이오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측이라며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윽, 으으..."
그때 누워있던 두 여성 중에서도, 긴 머리를 가진 쪽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다.
"너, 너희들은..."
"... 우리가 누군지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라."
정신을 차린 여성을, 클레온이 노려보며 이야기하자, 그녀는 `히익!`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클레온... 그렇게 노려보면 겁먹어서 말을 제대로 못 할걸…?"
"...하지만 이 녀석들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원래는 산적이었던 녀석들이다…. 동정할 여지는 있더라도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어."
하지만, 여성은 다른 이유로 클레온에게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듯, 상체를 일으켜 벽 쪽으로 물러선다.
"거, 검은 머리. 너, 너... 흐, 흑마의 일족인가?"
"... 그렇다만."
"두, 두목이랑 같은 흑마의 일족…! 두목은 자기가 마지막 생존자라고 했는데…!"
그 말에, 클레온을 비롯한 모든 일행의 호흡이 잠시 멈출 정도의 전율이 감옥 안에 흘렀다.
클레온은 당장이라도 그 여성에게 달려들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우선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다.
"정말로 네 두목이 흑마의 일족인 건가? 산적왕이?"
"그, 그래. 정말이야. 검은 머리... 틀림없어."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쿠온의 안정화 마법 때문인지 술술 입에서 정보가 흘러나온다.
쿠온은 격양하여 손을 부들부들 떠는 클레온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 주었다.
그런 쿠온과 눈이 마주치면, 클레온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두목은 어떤 인간이냐. 이 약들은 어디서 난거지?"
"그, 그건... 약은 두목이 거래하고 있다는 붉은 여자가 가끔 가져다주는 거고…. 두목은 말 그대로 두목이야…."
클레온이 혀를 찬다, 역시 이 산적단은 이슈탈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산적왕의 정체는 지금까지 왕국의 정보기관에서도 얻지 못하는 정보였습니다. 설마, 흑마의 일족이라니. 또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성별이라던가 나이라던가…. 이름이라던가."
"두, 두목은 남자야. 그리고, 나이는 당신들이랑 비슷하거나 조금 위일게고... 이, 이름은 `클레온`이라고 했어."
다시 한번, 감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쿠온도, 이오나도, 유스테스도 놀란 얼굴에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으며 클레온을 바라본다.
클레온은 잠시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주먹을 꽉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기랄."
"그리고, 탈체크의 제자라고도…."
이오나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가 차가운 얼굴이 되어 산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화를 삭이는 듯, 눈을 감았다 뜬 뒤 클레온을 돌아본다.
"흑마의 일족에, 클레온에, 탈체크의 제자라... 클레온. 짐작 가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
클레온의 말에 이오나도 조금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이 둘은 어떻게 하지?"
"... 너희들. 수도원에서 훔친 약은 어쨌지?"
클레온이 여성에게 질문하자, 그녀는 꿀꺽 침을 삼키면서 대답한다.
"그, 그 약이라면 다른 녀석들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서 버려버렸어…."
`이상한 냄새...?`
그녀의 말에 유스테스는 잠시 위화감을 느끼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버린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남자들이 악마들에 의해 여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절대로 왕국 내에서 알려져선 안 돼. 수도원으로 얌전히 돌아가 준다면,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주마."
"수, 수도원으로…!? 하, 하지만…."
그런 지겨운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클레온의 안광이 그녀를 꿰뚫었다.
"수도원으로 돌아갈지. 입막음을 위해 여기서 죽을지. 정해라."
"크, 클레온..."
쿠온은 클레온에게서 느껴지는 커다란 분노에 살짝 위축된다.
"아, 알겠어…. 수도원으로 돌아가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게…."
"좋아. 그걸로 됐어…. 그러고 보니 너희들, 신원조회에도 비협조적이었다고 했더군. 이름은 뭐지?"
"기, 기시드. 이쪽은 샘이야."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이오나를 돌아보자, 그녀는 이미 수첩을 꺼내든 상태에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 도중이었다.
"기시드. 샘….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네요. 노만이라는 인간과 셋이서 좀도둑을 벌이는 잡범이었는데 현상수배가 걸린 뒤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더니. 산적단에 들어와 있었군요…. 저주가 풀리면 체포되어 형량을 지내야 할 겁니다."
"그, 그런..."
"살아남는 데에 불만이 있나?"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기시드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클레온은 그런 기시드를 잠시 노려보다가,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하나의 실이 붙어 있는 인물 역시 서서히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그곳에 이들이 이야기하던 `클레온`이 있는 것이겠지.
"...그럼.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너희들의 두목을 만나고 오지."
"그, 그만둬! 두목은 그 검성 탈체크의 제자라서 엄청난 검사라고! 당신들이 죽으면, 우리는 도망치지 못한단 말이야!"
"... ..."
클레온과 이오나. 두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 기시드를 향해 떨어졌다.
"그거 안됐군. 나도, 그녀도. 부디, 그 `탈체크의 제자`님과 검을 부딪쳐 보고 싶어서 말이야."
"대체 어디의 누가, 아버지의 이름을 팔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유스테스는 두 사람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마력압을 통해, 두 사람의 분노가 진짜라는 사실을 느낀다.
그리고, 두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 역시 `탈체크`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두목이라는 인간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클레온과 일행은 기시드를 뒤로하고 감옥을 나섰다.
"클레온. 괜찮아?"
쿠온이 조심스럽게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참기 힘드네…. 그래도, 아직 괜찮아."
"... 힘들면 말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그렇지 않아."
"... ..."
자신을 낮추는 쿠온의 말을, 클레온은 재빠르게 부정한다.
"쿠온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넘어선 안 되는 선이라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고마워. 쿠온."
"... 응."
클레온의 손과 쿠온의 손이 겹친다.
자신을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클레온의 말이, 쿠온의 가슴을 뛰게 했다.
"...읏..."
그리고 또 한 사람.
유스테스 역시 주먹을 쥐며 두 사람의 겹친 손을 바라본다.
"...유스테스?"
빌어먹을 심장박동이 다시 빨라진다. 그러나, 아까만큼은 아니었다.
조금, 괴롭기는 하지만.
"으, 으응.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야."
"...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이오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서 떨어져 클레온에게 다가간다.
"...유스테스의 저주가 진행되는 건, 아무래도 클레온의 행동과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조심할게."
클레온과 이오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발을 옮겨 두목의 방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칭 `동문` `동족` 그리고 `동명`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