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74화 (174/506)

〈 174화 〉 사형(??)

* * *

000

대륙 북부에 있는 극한의 땅에는 과거 설원 드워프들이 거대한 왕국을 건설하여 살았다고 한다.

원인 불명의 재해로 인해 그들의 나라는 멸망하고, 원래부터 가혹했던 대륙 북부의 기후는 더욱 위험해졌다.

그들이 이루었던 위대한 문명, 그리고 기술은 휘몰아치는 눈보라의 밑에 묻혀 버렸으며, 설원 드워프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자들의 정설이었다.

대륙과의 전쟁이 끝난 후, 기술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왕국에서는 그런 드워프들의 기술력을 조사하기 위해, 북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인원을 보내 빙하와 설산을 깎고, 밭을 갈며 삶의 터를 만들어간다. 드워프들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을 기다리며.

다만 평범한 사람은 살아가기 힘든 불모지의 땅이다. 혹독한 환경에서는 식물도 제대로 자라나지 않고, 동물들도 모습을 감춘 채 살아가니 우선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리고 다음은 거주하는 곳의 문제. 왕국의 기술자들이 저력을 다해 만들어낸, 마을 하나에 따뜻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가 있지만, 마력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기에 인력이 필요했다.

거대한 터빈을 돌려야 하는 것인데, 이것을 교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만 돌리더라도 탈진해서 쓰러질 것이다.

결국, 무엇을 하든지 사람의 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륙에서 아카데미와 함께 실세를 장악하고 있는 왕국이라고는 하더라도, 이전 제국인들이 살던 땅은 대부분이 마도 병기의 사용 후유증으로 사람이 다시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되었고.

그 외에는 아직 인간의 손으로 개척되지 않은, 인간의 손에 닿지 않는 땅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산업을 위해 인력을 쏟아부을 만큼, 그곳에 맹목적이지도 않았다.

자진해서 북쪽으로 가는 이들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애국심이 투철하거나, 드워프의 기술에 관심이 있는 괴짜들 정도.

그렇기에, 부족한 인력을 메꾸기 위해서 왕국이 선택한 것은 `강제 노역`이다.

일반인을 강제로 데려가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죄를 저질렀지만, 사형 정도의 죄질이 아니라면, 그들을 북부로 끌고 가서 일을 시키는 것이다.

왕국 병사들의 감시하에, 온종일 터빈을 돌리는 일을 번갈아 가면서 한다.

인공적인 화염 마력 발생장치의 옆에서는 바깥의 혹한은 거짓말도 같다는 듯, 사우나와 푹푹 찌는 다른 의미로 힘든 환경이다.

외출은 허락되지 않고, 시설이 부족한 감옥을 대신하는 숙소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

물론 평범한 잡범들이라도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중범죄자들. 즉, 이전의 왕국법이라면 사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노역을 위해서 사형이 선고되는 기준이 올려진 지금이라면 사형이 되지 않는 이들이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왕국 영토 내에서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를 협박하고, 난동을 부려 건물을 파괴하고, 무고한 이들을 상처 입히는 멍청이라던가.

그게 아니라면, 왕국이 금지한 약물을 복용하고, 몇 명이나 살해한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이지만, 누군가의 의도로 사형만은 면한 남자라던가.

물론 후자의 경우, 너무나도 죄질이 극악이고, 성질도 난폭했기 때문에 다른 죄수들과 같은 방에서는 생활할 수 없고, 더럽고 어두운 독방만이 허락되었다.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눈을 가린 채 늘 중얼중얼하는 청년.

키는 2m를 쉽게 넘었고, 기골이 장대하여 힘 하나는 좋아 보인다.

다만, 너덜너덜한 죄수복들의 아래에는 검은 문신들이 보인다.

"나는 클레온이다. 흑마의 일족. 탈체크의 제자... 나는..."

어둠 속에서 이성은 느껴지지 않는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던 그때.

창살의 밖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마치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공간을 열어젖히고 등장한 그녀는.

"아하. 흑마의 일족이 북부의 수용소에 있다는 소리에 찾아와 봤더니…. 이건…. 후후."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눈을 빛내며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머리에는 뿔, 엉덩이에는 꼬리.

"`블랙 메이커` 중독자라…. 쓸만하겠는데?"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청년도 고개를 들어 여자를 본다.

"악마..."

"이슈탈. 이야. 자칭 `클레온`씨."

"그, 그래... 나, 나는 클레온... 클레온이다."

"... 후후. 좋네. 적당한 느낌으로 이성과 영혼의 방벽이 무너져 내려있는 가여운 인간이라는 것은…. 보호 본능이 솟구치는걸."

이슈탈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혀로 입술을 핥아낸다.

"있지, `클레온`씨. 나와 거래하지 않을래? 당신을 이곳에서 자유롭게 하고…. `블랙 메이커`도 제공해 줄게. 대신에,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001

클레온과 일행이 두목의 방에 발을 디뎠을 때, 거구의 남성은 자신의 옥좌처럼 꾸며둔 거대한 의자에 몸을 걸치고 앉아 있었다.

다만, 이미 행위를 마친 것인지 그의 발밑에는 여자의 나체가 깔려 있었다.

"큭..."

그들이 두목과 눈을 마주친 것과 동시에 였을 것이다. 여성 생명의 불이 꺼져 사라진 것은.

축 처진 여자를 발로 굴리던 남자는 그대로 그녀의 몸을 차서 벽으로 날려버린다.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힘없이 떨어지는 여자의 몸은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

일행은 그런 남자의 극악무도한 행위에 분노를 느끼며 손을 꽉 쥔다.

그리고, 클레온은 깨닫는다. 남자가 걸치고 있는 갑주는 검은색이지만, 그 갑주 사이사이에 노출된 부분은 속 갑옷이 아닌 그의 피부라는 것을.

전부, 검은색이었다. 얼굴을 제외한 노출된 피부는. 전부 새까만 검은색.

"... 블랙 메이커의 부작용인가…."

클레온은 검을 잡은 채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붉은 안광이 빛나고 있는 그의 눈.

"... 붉은색. 역시, 흑마의 일족은 아니로군."

"너희는…. 뭐지? 어째서 이 아지트에 들어와 있는 거냐."

두목이라는 남자는 그들을 보고도 당황해하지 않으며, 조용히 옆에 박혀 있던 검은 대검을 쥐어 든다.

"내가 누군지 알고, 검을 잡고 내 앞에 당당하게 서는 건가?"

위압감 섞인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쿠온은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넣는다.

"그래. 들었다. `클레온`이라고 한다는군. 당신의 이름. 탈체크의 제자라고…. 자칭 흑마의 일족이라고 들었는데. 눈이 붉은 걸 보니 아닌 것 같은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검으로 일행을 가리켰다.

클레온 역시 검을 붙잡고 앞에 서면, 이오나는 잠시 그 남자를 살피다가도 놀란 듯이 숨을 삼키는 것이었다.

"... 아인?"

이오나가 `아인`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자, 클레온도, 클레온을 사칭하던 남자도 몸을 움찔거린다.

"아인, 이라고?"

"틀려. 나는…. 클레온이다."

남자는 아인이라는 이름을 듣자 괴로운 듯이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 아무래도 거짓말 중에 진실도 섞여 있었나 보군요. 탈체크…. 아버지의 제자라는 점은 말이죠."

"정말로, 아인인건가? 너..."

"닥쳐라! 나는, 나는 아인이 아니라 클레온이다! 너희는 대체 누구냔 말이다!"

남자는 분노하여 대검을 치켜들고 일행이 있는 쪽을 향해 돌진해 왔다.

"큭... 우선 이 녀석을 멈춰야겠군... 유스테스! 조금 뒤로 떨어져 있어!"

"그, 그래...!"

이오나도 클레온도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아인`이라는 인물을.

그들의 `사형`을 노려보며 검을 쥐는 것이었다.

­00?

"그럼 잘 있어라 클레온. 나는 스승님이랑 같이 왕도로 갈 테니까."

붉은 머리의 청년­ 아니, 아직 소년이었던 그는 본래 엘레시아의 학교에서 탈체크에게 검술 수업을 받는 인물이었다.

다만, 레시아가 없어진 뒤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왕도로 가게 된 탈체크의 뒤를 따라 엘레시아를 떠났다.

이름은 아인. 성은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모르니, 그들이 설령 성을 가진 귀족이었다고 하더라도 물려받지 못한 성이었을 것이다.

아인의 부모는 왕도에서 엘레시아로 오던 길목에 강도들의 습격을 받아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어머니는 어떻게든 죽기 전에 모험가들에게 구출되어 엘레시아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아이를 배고 있던 그녀는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를 낳고 사망.

당시 엘레시아 유일의 의원에서 지내던 노의사가 최대한 손을 써 보았지만, 아이를 살리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이었다.

아인은 엘레시아의 신전에 거두어져 자라났다.

엘레시아에서 고아가 드문 것은 아니다.

모험가의 도시인 만큼, 아이를 가진 모험가들이 의뢰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인간이 되는 일도 있다.

그런 아이들의 경우에는 모험가 길드에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성인이 될 때까지 보조해 주는 것이지만.

아인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모험가가 아닌 이름 모를 왕국의 누군가.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모험가 길드는 손을 뻗어줄 수 없었지만, 교단이라면 달랐다.

성직자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아인은 평범하지만 건강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탈체크와 만난 것은 그가 골목대장이 되었을 때쯤이었다.

레시아의 부탁으로 학교의 선생이 된 탈체크가 싫은 얼굴을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검술을 가르칠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열성적으로 검을 휘두르던 것이 그였다.

강해져서 다른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검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소년의 목표였다.

당시의 아인은 클레온과도 몇 번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으며, 클레온보다도 먼저 탈체크의 검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사형`이라고 부르라고 말하곤 했었다.

몇 년이 지나, 탈체크가 결국 엘레시아을 떠나게 되었을 때. 원래라면 그는 클레온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가 클레온의 거부로 비어버리자.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탈체크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그 자지를 차지한 것이었다.

탈체크는 처음에는 조금 고민하는 듯했지만, 끈질기게 아인이 부탁해 오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왕도로 향한 것이었다.

왕도로 간 탈체크는 아인에게 기사단의 훈련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물론이었고, 특별한 수행 장소라고 말하며 말발굽 산에도 데리고 들어갔다.

다만 탈체크는 레시아를 찾기 위해서 말없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 사이에 아인은 혼자서라도 수련을 거듭하며 한 명의 검사로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스승이 어느 날 여자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은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뒤로도, 아인 말고도 그 여자아이­ 스승의 양녀가 된 `이오나`라는 아이, 다른 제자들도 탈체크의 밑에서 검술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귀족의 자제들이었다. 하나 같이 멍청하고, 거만하며 사람의 노력을 바보 취급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들.

그들은 대부분 탈체크의 수련을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

아인은 어느샌가, 귀족들도 하지 못하는 검성의 수련을 견뎌낼 수 있는 자신이 어딘가 특별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유치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인은 난생처음 `벽`이라는 것을 느꼈다.

수련 도중이었던 아인과. 말발굽 산으로 숨어 들어온 도적 떼가 맞닥뜨린 덕에 그들과 맞서 싸우게 된 것이다.

개개인의 실력은 아인이 위였다지만 수가 많았다.

게다가 도중, 무언가 약같은 것을 사용하더니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강해진 것이었다.

결국 전신에 상처를 입은 채, 죽을 위기에 처해 있던 그때, 그들을 쫓아온 탈체크와 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나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

아인의 그런 망상과도 같은 생각은 서서히 커져만 같다.

모험가와 함께 할 때도 무리를 하게 되어 일을 망치거나, 멋대로 왕도 내에서 범죄자를 잡겠다고 검을 휘둘러 관계없는 인간을 다치게 했다.

실패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커져만 간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사춘기 특유의 자의식 과잉을, 실패를 경험하면서 벗어난다.

자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은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가. 언제나 특별한 인간 ­`영웅`은 비극적인 태생을 가지고, 시련에서 성장하며 마지막에는 칭송받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은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이 삶을 보상받느냐는 말인가.

그에게는 증명이 필요했다.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라는 증명이.

그렇기에 더욱 무모해지고, 탈체크의 지시를 무시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목표로 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아만 간다.

그런 아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신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선사한, 모든 비극의 시작인 도적 떼가 사용하던 `그 약`이었다.

기사단의 정보를 찾아낸 것은 그들은 단순한 도적 떼가 아니라 제국의 잔당들이었으며 말발굽 산에 남겨져 있던 제국 시절의 물건들을 회수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아인은 말발굽 산을 산산이 뒤지고 다녔고, 결국 제국이 사용하던 전선 기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안에 남아있던 `약물`­ 블랙 메이커도.

약을 챙긴 아인은 드디어 탈체크의 제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힘을 휘둘러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하려 했다.

그리고 사건은 발생했다.

남들 몰래 블랙 메이커를 사용하면서 몸에는 점점 검은 문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붉었던 머리카락의 끝에는 검은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약을 사용한 것에 대해 초조함만이 가속되어 가는 그때. 그래도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던 아인은 동료들과 함께 유적 탐사 의뢰를 나갔다.

아무도 답사한 적이 없는 유적이었기에 조심스러웠어야 했지만, 활약에 목말라 있던 아인은 약의 힘을 믿고 억지로라도 의뢰를 받아 일을 시작한 것이다.

오만의 결과는 참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유적의 수호자들은 하나같이 강력했고 결국 그를 제외한 동료들이 모두 쓰러졌을 때.

아인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서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약의 복용 중에 한 번 더 약을 사용하는 것을 저지른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가디언들은 처참하게 박살 나서 땅에 널브러져 있었고 자신이 한 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 붕괴한 주변의 풍경을 보며 힘에 도취해 웃음을 흘렸을 때.

자신의 발밑에 밟히는 무언가, 물컹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까까지 자신과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우고 있던 동료들이었다.

약의 부작용으로 완전히 폭주한 아인은 그 자리에서 가디언은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모두 살해한 것이었다.

아인이 무리하게 의뢰를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 도착한 모험가들, 그리고 노파심에 따라온 탈체크는.

머리카락마저 완전히 검게 변한 채 동료의 피가 묻은 대검을 들고 있는 아인을 제압했다.

"너... 그게 무슨 꼴이냐..."

탈체크는 전혀 웃지 못한 채 아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틀려... 나는, 특별한 인간인데…."

"멍청한 새끼가...! 네 모습을 봐라! 머리카락까지 까매져서…! 클레온의 흉내라도 내는 거냐!"

분노한 일갈이 들려오자, 아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며 멈추었다.

아인은 결국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재판받고 북부의 강제 노역형에 처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사형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왕국의 높은 인간들은 여차하면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탈체크의 제자`를 죽이는 것을 아까워한 것이다.

탈체크가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아인의 목을 베어내려 했지만, 제지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북부로 향하는 호송 마차에서, 아인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린다.

`...그래.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건, 역시 흑마의 일족 같은 죄 많은 녀석들 뿐... `아인`이 이런 일을 할 리 없어. `아인`은, 특별한 인간이니까…. 그럼... 나는 뭐지...? 나는 `아인`이 아니라...`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마차의 벽에 머리를 박자 강화된 근력 덕분에 마차의 벽을 뚫고 바깥으로 떨어진 아인은.

놀란 경비들이 달려와서 자신을 제압하려 할 때, 얼음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머리가 완전히 검게 변한 그 모습은 정말로 `흑마의 일족`이었다.

그리고, 아인은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로 했다.

자신은 아인이 아니다. 아인은 영웅이 될 특별한 인간이니. 이런 비참한 꼴을 하는 것은 `아인`이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흑마의 일족`은 단 한 명.

어린 시절에 얼굴을 몇 번 마주하고, 같은 스승을 가진 것밖에 접점이 없었지만.

흑마의 일족이라고 하면, 그의 얼굴과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군…. 나는, 클레온이었던 건가…!"

002

비록 약물에 절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가 휘두르는 대검의 무게는 위협적이었다.

터질듯한 팔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속도의 일섬.

게다가 그는 탈체크의 수제자이기도 했다. 비록 그와는 마지막에 반목하였지만.

그에게서 검을 배운 시간만 따지자면, 이오나나 클레온보다도 긴 것이었다.

이오나가 땅바닥을 구르며 아인과 거리를 벌렸다.

검을 막아내려다가 힘에서 져서 뒤로 날아간 것이었다.

"이오나! 정면에서 받아내려 하지마!"

"알고 있어요...! 큭..."

분명 한 사람과 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클레온도 이오나도, 마치 두 사람, 아니 세 사람 이상과 동시에 싸우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대륙에 순수한 무력으로 괴물 같은 실력을 자랑하는 인간은 많았지만 `아인`은 약의 도핑 덕분에 원래라면 불가능한 몸놀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갈라테아가 없는 지금 마검의 힘을 끌고 오는 것은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를 제국의 잔류물을 자극해 쿠온과 유스테스를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도 있었다.

"죽어라... 더러운 동족...!"

클레온의 시선이 이오나를 걱정하기 위해 그쪽으로 잠깐 향했을 때, 아인은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곧바로 몸을 회전시켜, 클레온의 머리를 노리고 대검을 휘둘러온다.

이오나에게는 정면에서 받아내지 말라고 했지만, 클레온은 채 피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그것을 막아낸다.

"큭, 으으읏...!"

자신도 모르게 그 엄청난 힘에 소리를 올리면. 붉은 검과 검은 대검 사이에서 튀는 불꽃을 바라보며 전신에 힘을 주고 그것을 역으로 밀어내려 했다.

"동족... 같은 게 아니잖냐…!"

억울함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클레온과 남자가 대등하게 검을 부딪치고 있는 동안.

"수호자여! 괴력난신의 힘을 그대에게! `스트렝스`!"

그때, 쿠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붉은 기운이 클레온의 몸을 뒤덮었다.

근력 강화의 주문이 시전 되어, 한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과 함께 클레온이 반대로 아인의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앗!"

그것과 동시에, 다시 거리를 좁혀온 이오나가 상대적으로 방어가 허술한 갑옷의 관절 부위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쓰레기들이...!"

아인이 그렇게 외치면서 눈을 붉게 물들이자, 전신에서 마력압과 비슷한 것이 터지며 클레온과 이오나를 동시에 밀어낸다.

흑마력이 섞인 그것에 클레온도 이오나도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건…."

"블랙 메이커 덕분에 마력도 쓸 수 있게 된건가...?"

아인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약을 먹은 상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클레온. 제힘으로는 저 남자의 두꺼운 갑옷과 피부를 뚫을 수 없어요…. 제국군의 마도구가 신성 마력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오나와 클레온이 눈을 잠시 마주치면, 두 사람의 손이 겹친다.

이오나는 그 자리에서 성검으로 모습을 바꾸며 클레온의 손에 붙들린다. 붉은 보석이 장식된, 아름다운 검이었다.

"뭐냐... 그 모습은... 성검...? 용사인거냐, 너...? 너, 특별한 인간이란 거냐!!!?"

그리고 그 모습이 아인을 자극한 것인지, 그는 괴성을 내지르며 분노한다.

"불합리하게 화를 내는 것도 정도껏 하라고…. 이 자식!"

다음 순간 클레온의 몸이­ 실루엣이 마치 뱀과 같이 늘어지며 그 자리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해 뛰쳐나간다.

`저건... 루베라의...`

유스테스는 그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클레온의 그 모습은 영락없는 암살자의 움직임이었다.

이오나에 저장된 루베라의 검술이 재현된다.

비록 이오나의 검의 모습은 바리사다 보다 짧았지만, 그 부분은 클레온이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바람 연못...!"

미끄러지듯이 아인의 품으로 파고든 클레온의 검이 가로로 휘둘러졌다.

클레온의 움직임이 갑작스럽게 변화한 것에, 아인은 눈쌀을 찌푸리면서 대검으로 클레온의 검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성검 슈발리에와 검은 대검이 부딪힌 순간.

슈발리에에게서 마력으로 된 칼날이 튀어나와 검을 통과하고 아인의 뱃가죽을 베어낸다.

[됐다...!]

"아니 얕아...!"

이오나가 해냈다는 듯이 외치지만,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 그가 고통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른 손을 뻗어 자기 몸을 붙잡으려는 것을 보았다.

"쿠온!"

"아, 응! 빛이 있으라! 플래시!"

클레온의 말을 신호로, 쿠온이 손을 뻗자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빛의 구가 아인의 눈앞까지 날아와서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터져 나갔다.

유스테스도 미리 이야기를 들어둔 대로 눈을 손으로 가렸기에 그 빛에 눈이 머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크으아아악! 망할 것들이!!"

아인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휘적 거리지만, 이미 클레온은 그 자리에 없었다.

다시 한번 몸을 숙이고 이번에는 그의 뒤로 돌아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빙글, 하고 몸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잔상을 남기는 일섬히 휘둘러진다.

[하늘 기둥!]

클레온의 대신, 이오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 뒤가 베어지며 크게 피가 뿜어져 나왔다.

"───!!!"

단어가 되지 않는 비명을, 남자가 질렀다.

쿠온도 유스테스도 방금의 일격으로 클레온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클레온만큼은 달랐다. 손에서 느껴진 감각.

부족하다­!

"젠장, 또 얕아…! 어떻게 된 거야 이 녀석의 몸...!"

몸의 강도가 높아, 급소까지 베어내지 못하고 상처를 입히는 데에 멎은 것이었다.

플래시에 의한 실명이 끝나면 남자는 재빨리 대검을 휘두른다.

"젠장...!"

아직 공중에 있던 상황이었던 클레온은 재빠르게 슈발리에의 검신에서 마력을 발산해 그것을 추진력으로 일격을 피해낸다.

"이리저리 잘도 움직이면서…. 이 탈체크의 제자인 나에게 검으로 상처를…!"

"미안하지만 그건 우리도라서 말이야…. 오히려 아인. 네가 우리보다 탈체크의 검을 더 잘 못 쓰는 것 같은데?"

[동감이에요.]

"닥쳐!!!"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있었다.

물론­ 블랙 메이커였다.

"상비하고 있는 거냐고!"

클레온이 재빨리 다가가 그것을 부수려 하지만, 한 번 거리를 벌렸던 클레온이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그저 손에 쥐고 있는 상태에서 유리병을 깨서.

약을 상처로 흡수하는 것보다 빠를 리 없었다.

이윽고.

아인의 얼굴까지 검은 것이 퍼져나간다.

눈만큼은 여전히 붉은색이었으며.

전신의 검은색에서 흑마력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기분 탓일까, 그의 이마에 무언가 뭉툭한 것이 한 쌍,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것은.

"■■■■■■──!!"

고막을 터뜨릴 것만 같은 고함이 울려 퍼졌다.

"2라운드라는 거냐..."

[쿠온과 유스테스를 도망치게 하는 게­]

아인이었던 것에서 꼬리 같은 게 튀어나와 입구의 천장을 공격하면.

입구가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젠장."

[...우리들이 쓰러트릴 수밖에 없겠군요.]

클레온과 이오나가, 한때 사형이었던 존재를 바라본다.

그에게 동정도 자비도 느끼지 않는 것은 역시 자신들이 이상해서일까.

아니면, 저 남자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없어서일까.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서 그를 죽이는 것이, 탈체크에게도, 자신들에게도. 그리고 아인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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