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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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로 뒤덮인 계곡의 길은 좁지만,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는 되었다.
하늘까지 치솟은 절벽의 사이로, 태양 빛이 내려오면 눈이 부실 정도로 주변에 빛을 반사하는 수정들.
아무리 보아도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런 것들이 자라난 식물이 건강하다는 사실에 일행은 놀라고 있었다.
"흠. 트리스 메기스토스에 관한 단서를 찾으러 왔다고? 왕국은 싫어하지만, 오렐리아의 딸과, 내 손녀의 지인들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지."
아루루가 억지로라도 건넨 오렐리아의 소개장을 훑어본 가브리엘이 일행을 이끌고 에메랄드 계곡 사이를 걸어가면서 묻는다.
울만큼 울었던 것인지, 아멜리아는 붉어진 눈을 손으로 비비면서도 자기 할머니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걸어가고 있었다.
아멜리아의 조모라는 그녀의 발언, 그리고 날개옷과 같이 하늘거리는 의복을 나풀거리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그녀의 그런 작태는 마치 인간을 벗어난 존재와도 같이 느껴진다.
그 때문에, 일행 중 누구도 섣불리 말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면 가브리엘은 몸을 빙글 돌려 뒤로 걸으면서 일행을 쭉 눈으로 한 번 훑더니.
이내, 일행의 리더라고 생각되는 클레온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그대. 흑마의 일족의 아이."
"... 클레온입니다."
"아, 그래. 클레온. 네가 너희들 중의 리더렸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지 말고 대답해보거라. 보아하니 동정도 아닐 텐데, 이런 늙은이의 몸을 보고 부끄러워서 입을 못 여는 것도 아니겠지?"
예의 바르고 조신한 아멜리아와 다르게, 가브리엘은 낄낄대거나, 표정을 휙휙 바꾸면서 이야기한다.
"... 정확하게는 트리스 메기스토스와 용사 레시아의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아! 레시아.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구나. 후후. 그녀도 이곳을 한 번 찾아왔었지. 한창 왕국과 제국 사이의 전쟁이 격해졌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30년도 더 전의 일이지. 착하고, 강인한 아이였단다. 가브리엘이 몰래 마을을 빠져나갔다가 제국 병사들에게 납치된 적이 있어서 말이다. 그 아이를 구출해 낸 레시아가 이 마을까지 가브리엘을 데려다주었단다."
옛날의 이야기를 마치 바로 전과 같이 상상하는 가브리엘.
30년 전의 일을 회상하는 가브리엘의 모습이 `10대 초반`이라는 것은 꽤 어색한 일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 표정 어디에도 거짓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클레온 역시, 그런 레시아의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간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지은 것이다.
가브리엘 역시, 자신의 대답에 클레온이 표정을 바꾸자 그것에 흥미가 동한 듯이 더욱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한다.
"너는 그녀의 무엇이냐? 아들은 아닌 것 같고. 제자? 아니면, 그저 그녀의 추종자인가?"
"... ..."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무어라 대답하려다가 목에서 막히는 것을 느꼈다.
클레온이 처음에 대답하려 한 것은 `가족`이라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자신 중심적인 단어 선택이 아닐까?
엘레시아에서 함께 지냈던 것은 사실. 그리고, 짧지만 가족 같은 시간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클레온에게나 그런 것일지 모른다. 레시아에게는 다르게 느껴졌을지도.
"... 레시아가, 제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지금 어떻게 되셨는지는 아시나요?"
"알고 있다. 절계 추방을 당했다고 들었어. 마침내 바보 같은 아들놈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의 일이었지."
"... ..."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녀의 딸이 사리엘, 즉 아멜리아의 어머니였다면.
반역을 일으킨 사리엘의 남동생은 가브리엘의 아들이다.
딸과 아들. 둘 다 왕국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왕국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소개장에는 `악마`들에게 정신을 지배당해 그런 일을 벌였다고 쓰여있지만. 악마의 세뇌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도 그 아이의 죄이겠지. 미안하네, 늙은이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이 이야기는 됐고."
가브리엘은 한숨을 내쉬면서 클레온을 똑바로 바라본다.
"저는, 그녀를 다시 이 세계에 되돌려 놓기 위해 행동하고 있습니다."
"은혜 갚기... 절계 추방당한 레시아를 찾기 위해, 트리스 메기스토스를 찾는다라….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들으면 전혀 엉뚱한 곳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꽤 여기저기서 그녀의 정보를 모은 것 같구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가브리엘의 말에 라일라의 눈도 커졌다.
"레시아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했겠다 아이야. 여기에 그러지 않은 인간은 없단다. 그녀가 있었기에 제국이 무너졌고, 왕국도 이 계곡도 멀쩡할 수 있었지."
아루루도 고개를 끄덕인다. 왕국을 지키는 방패, 트로메이아 가문의 일원으로서 레시아의 공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절계에 추방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인물 중 너와 같이 레시아를 되돌리려 한 인간은 없단다. 그녀의 동료들이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왜 그런지 아느냐?"
"어째서죠?"
"사람이 죽더라도, 죽은 사람을 향한 마음은 시간에 의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단다. 하지만 절계 추방은 죽음보다도 악질이어서…. 차원의 틈으로 내던져진 대상과, 현세에 남아있는 인간들 사이에 이어진 `연(?)`을 끊어 버린단다. 그녀를 향한 감사, 동경, 소중한 마음..."
클레온 역시 그녀의 말에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 듯했다.
용사 레시아는, 교단에게 있어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신들의 교리에 가장 어울리는, 그야말로 궁극적인 용사였으니까.
한 시대의 전설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계를 구한 용사.
왕국민들 중에 그녀에 대해 모르는 인물은 없을 정도이고, 실제로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 중에도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그녀가 추방당했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는 인물들이 많았다.
그러지 못한 것은 클레온과 탈체크. 그리고 소피아와 에스카, 루티와도 같은 아주 가까이에 있던 가족과도 같은 동료들 뿐.
교단도, 왕국도. 그녀가 사라진 것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네게는 그 `연`이 남아있지. 차원의 벽 따위로는 사라지지 않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던 게로구나. 너는. 그리고, 그건 너에게서 시작되는, 일방통행적인 인연이 아니야."
가브리엘이 클레온을 가리키며 말하자 클레온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모르겠느냐? 연이라는 것은 서로 간을 위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거란다. 즉, 레시아도. 너희에 대해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 레시아가, 우리를."
자신도 모르게, 클레온은 주먹을 쥐었다.
그녀를 향한 감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자신들을 소중한 동료라고, 가족이라고 생각해 주고 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묻겠다, 클레온. 너는 그녀의 무엇이냐?"
"... 가족입니다. 그리고, 친구이면서…. 동료."
클레온이 아까와는 다르게, 자신 있게 대답하면. 가브리엘도 만족했다는 듯이 밝은 미소를 보이며 몸을 앞으로 돌렸다.
이내, 좁았던 길목도 끝이 나고,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을 강렬하게 반사하는 거대한 수정 탑이 보인다.
"어서오거라. `녹주석의 수곡`(에메랄드 밸리)의 마을 `트리시아`에. 너희들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된단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처음으로 이 수곡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그 광경보다도 더욱더 절경이었다.
마을이라고 불린 공간에는, 몇 개나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있었고, 그곳에는 사람의 몸보다도 커다란 에메랄드들이 자라나 있었다.
그것들을 깎아내고, 가공하여 사람의 집처럼 사용되고 있었으며, 수는 많지 않더라도 하나하나가 예술품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것의 정수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거대한 수정 탑`. 지면에서 하늘을 향해 자라난 그 거대한 탑은 신성 마력과 수속성의 마력을 영맥에서 끌어 올린 뒤, 가공하여 계곡 전체를 뒤덮는 결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후우와아아♡♡!!"
그것을 보고 교성 같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은,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라일라였다.
양손을 마주 잡은 채 그 거대한 마법적 구조물을 바라보는 그녀는, 마치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라일라..."
쿠온이 쓴웃음을 지으며 라일라의 이름을 부르지만 라일라는 이미 주변의 모든 것이 연구 대상 처럼 보이는 듯했다.
"후후, 저 아이는 학자인가 보구나. 마법사라면 이런 광경을 보고 놀랄 수 있지. 우선은 숙소로 가도록 하거라, 오른쪽의 길을 따라가면 손님용의 건물이 있으니."
"아, 네! 감사합니다. 가자 라일라, 일단 짐부터 풀고."
"자, 잠깐만~ 표면의 표본만이라도 지금~!"
"그 망치와 끌은 대체 어디서 꺼낸 거에요!? 그건 짐을 풀고 나서도 안된다니까요~!"
폭주하려는 라일라와, 그것을 말리면서 끌고 가는 쿠온과 사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아루루. 그리고, 머뭇거리면서도 그들을 따라가는 아멜리아.
클레온은 그 광경을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다가도, 주변을 둘러본다.
라일라의 커다란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진 탓인지, 마을의 다른 이들이 집의 창문 너머로 일행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집의 수가 적은 만큼 시선의 수도 많지 않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대부분 백금발에 금안. 아멜리아나 가브리엘과 같은 신체적인 특징이 보였다.
"그들이 신경 쓰이느냐?"
가브리엘은 발걸음을 멈춘 클레온에게 물어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시선은 일행을 훑다가도 클레온에게 멈추면 화들짝 놀란 듯 그를 힐끗힐끗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뇨. 정확하게는, 그들이 저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네요."
"후후. 그야 그렇겠지. 흑마의 일족이 이 마을에 발을 들이다니,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팔짱을 낀 채 `음.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가브리엘.
흑마의 일족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폐쇄된 마을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클레온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음?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더냐?"
"...무엇을 말이죠?"
"아 뭐. 됐다. 그 부분에 관해서도 나중에 말해줄 테니. 너도 어서 짐을 풀고 오거라. 이 할머니는 차라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더니 일행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클레온은 그런 가브리엘의 등 뒤를 잠시 눈으로 좇다가, 자신도 일행의 뒤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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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 일행에게 제공된 숙소는, 분명 수십 년은 사용되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청결하고, 준비된 가구들도 사람의 수에 비해 적지 않았다.
라일라는 한차례 모노클을 꺼내 들어 숙소를 쭉 살피더니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일행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건물도 목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바깥에 있는 다른 건물처럼 에메랄드로 만들어진 거야. 그 위에 색조를 바꾸는 마법이라던 가를 더한거고... 손님으로 인식된 인물에 맞추어서 가구를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아."
"편리하네요…. 마법은 만능인 건가요?"
아멜리아가 그렇게 물어보자 라일라는 고개를 젓는다.
"가구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이 저택의 수정에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보면 돼. 뭐. 이렇게까지나 자동화 돼 있다면 집을 관리하는 정령인 `브라우니`라도 깃들어 있는 것 같지만."
"브라우니라면 들은 적 있네. 저택에 소환하면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청소라던 지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정말이었구나."
아루루가 그렇게 대답하면 라일라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 집이 청결한 것도 그런 원리겠지. 모두, 이 집은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거니까. 상처입히지 않도록 조심해."
"...그럼, 여기는 수정의 뱃속...?"
사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모두의 입이 잠시 다물어졌다.
머릿속에 각자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스, 슬슬 할머님께 갈까요?"
조용해진 일행을 불러일으키듯 아멜리아가 입을 열면,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숙소를 나서 다시 한번 수정탑의 앞을 지나간다.
클레온이 보았던 대로, 숙소와는 반대 방향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 그곳에는 다른 건물에 비해서도 조금 더 커다란 주택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가브리엘과 비슷한 복장을 한 여성이 공손히 손을 모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내, 그녀가 일행과 시선을 마주치면, 천천히 걸어와 고개를 숙여왔다.
그녀 역시, 다른 마을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백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금색 눈의 여성이었지만.
가브리엘과는 다르게 신장이 크고, 성인 여성이라는 것을 외견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일행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공주님의 손님분들이시군요."
"...공주님?"
쿠온이 익숙하지 못한 칭호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물으면, 여성은 고개를 끄덕인다.
"듣지 못하신 건가요? 가브리엘님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신 분. 마을에서는 `공주`라는 지위로 불리고 계신답니다."
"아 뭔가 그런 분위기이긴 했지. 자유롭다곤 하지만 어딘가 위엄이 있달까…. 마을의 촌장 같은 사람이었구나."
라일라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쿠온이 쿡, 하고 팔꿈치로 그런 라일라의 옆구리를 찔렀다.
"후후, 그렇네요. 바깥의 일반적인 마을이라면 `촌장`이라는 직책이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클레온이 그렇게 물어보면, 그녀는 클레온을 보더니 잠시 `읏...`하고 소리를 내며 표정을 흐렸다.
하지만, 이윽고 아까와도 같이 미소를 지은 표정을 되찾더니 이어서 이야기한다.
"...소개가 늦어졌습니다. 저는 공주님의 보좌를 맡은 `지브릴`이라고 합니다."
"... ..."
클레온은 조금 전의 그녀의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살짝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지브릴도, 자신의 실수를 느꼈기에 그런 어색한 분위기에 무어라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지만.
"그럼, 지브릴씨. 가브리엘 님께 안내 부탁드려요."
재빠르게 아루루가 앞으로 나오며 그런 분위기를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아. 네, 네에. 들어오세요, 가브리엘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브릴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일행을 저택의 안으로 안내한다.
"... 고마워 아루루."
"뭘. 그건 그렇고 인기 많네! 클레온."
"... 놀리는 건 아니지?"
"후후. 어떠려나?"
아루루는 싱긋 웃어 보이면서 한발 앞서 저택의 안으로 들어간다.
클레온도, 그런 말괄량이 아가씨 같은 면을 보이는 아루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지만 이내 그녀의 뒤를 따라 가브리엘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저택의 가장 안쪽. 몇 개나 되는 겹문을 지나서 도달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방이었다.
방석에 앉은 채 차를 우려내고 있는 가브리엘.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몇 개나 되는 방석들이 놓여져 있었다.
"오오. 미안하구나 얘들아. 혼자 살다 보니, 모두가 앉을만한 의자가 없어서. 방석으로 준비했단다. 바닥에 앉는 것은 문제없겠지?"
"이 집은 숙소처럼 가구를 만들 수 없는 건가요?"
라일라가 그렇게 질문하자 가브리엘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옛날에는 가능했지만, 이 수정 저택은 수명이 거의 다 돼가서 말이다. 그런 걸 하면 무너져버려."
`수정에도 수명이 있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는 일행들.
"수고했느니라 지브릴. 나중에 또 이야기하마."
"네..."
그리고, 이곳까지 일행을 안내한 지브릴을 물리게 하고, 가브리엘은 클레온에게 묻는다.
"어떻느냐? 지브릴을 본 소감은?"
"...갑자기? 그냥, 성실한 느낌의 여성분이라고밖에..."
클레온의 말에 가브리엘은 `흐음.`하고 목소리를 내더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건 우리 쪽의 결함인가…?"
"무슨 뜻이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나중에. 그보다도, 트리스 메기스토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지."
그녀가 무엇을 숨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보다는 이곳에 온 본래의 목적을 이루는 편이 중요했다.
"우선 말해두자면... 이 마을. 아니, 이 계곡 자체가 그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하겠구나."
"...지형 전체를 비틀어 버리고, 영맥의 영향이 지상에 나올 정도로 커다란 실험..."
라일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긴장한 듯 타액을 삼키며 아직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예상이 잘 안 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마을이 그의 실험장소였던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험장소는, 이 마을의 지하에 있지. 우리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곳이지만, 아마 너희들이 찾는 그의 흔적이라는 건, 그곳에서 찾아낼 수 있겠구나."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실험은 어떤 거였나요?"
라일라가 질문하면, `으음...`하고 소리를 낸 가브리엘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라는 말을 붙인 뒤 이어서 이야기했다.
"영맥과 신성 마력에 관련된 실험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구나."
다음으로 질문한 것은 사샤였다.
"지하에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죠?"
"마을의 중앙에 있는 수정탑. 그곳의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지금은 던전이 되어버린 고대의 연구소가 나온단다."
지하 던전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인 것은 클레온과 아루루이고, 한숨을 내쉰 것은 쿠온과 사샤였다.
"물론 위험하다면 위험한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는 것을 멈추진 않겠지."
"물론입니다."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면 가브리엘도 미소를 짓는다.
"그래.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선조들의 규율에 따라, 우리는 그 연구소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느니라. 그러니까, 가는 것은 너희들만이 되지만."
"...괜찮습니다."
그것 역시 예상했던 바라는 듯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뼈를 주우러 가는 것도 못 하느니라. 그래도 정말로 가겠느냐?"
"던전에서 살아남는 건 특기입니다."
그야, 다른 이들이 모두 전멸해도 그들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온 일도 있었을 정도니까.
"음! 그렇다면 이 이상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느니라! 가서 소중한 이를 되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도록!"
"... ...아니, 가벼워! 이쪽이 이런 말을 하기엔 뭐하지만….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올리는 가브리엘에게 라일라가 질문하면, 그녀는 물론이라는 듯이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야. 내가 여기서 어떤 위협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말하더라도. 그대들은 가는 것이지? 그렇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축복과 격려의 말뿐이니라. 그게 아니라면 또 질문이 있느냐?"
그녀의 말에 일행은 조용해졌다.
그녀가 말한 대로, 이미 하기로 정한 일이니 더는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무언가 위험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바였기에 싸울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 안에 어떤 진실이 있는지. 너희들의 눈으로 보고 오거라."
"... 가브리엘님은, 알고 계신 건가요?"
"글쎄...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너희들이 아는 사실보다도 많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진실이거나, 너희들이 원하는 답이라곤 할 수 없겠지."
다시 한번, 정론.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클레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을 신호로 하듯이, 다른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서면 가브리엘은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이 할미는 너희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파이라도 준비해 놓아야겠구나."
진실을 찾기 위해 걸어가는 젊은이들의 등을 지켜보다, 가브리엘은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말리더라도, 제국의 황제를 쓰러트리기 위해 가는 것이겠지?]
[물론이에요.]
[그 앞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고난의 연속일 것이야.]
[괜찮아요.]
[전장에서 살아남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일 거야.]
[특기에요.]
과거, 그런 문답을 주고받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딸아이를 구해준 보답으로, 제국도 침범할 수 없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뿌리친 소녀가.
영웅이 되기 전의 이야기.
"...클레온. 그대는 정말로. 그녀의..."
가브릴은 향수에 젖으며 조용히 옛날의 추억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떠올리게 해준 작은 인연에 감사를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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