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보고
* * *
000
클레온이 의복을 다시 입고 있으면, 머큐리의 안내를 받아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사샤, 놀리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는 아루루, 승자의 여유를 잃지 않는 라일라, 그리고 쿠온은 `우와아...`같은 얼굴이다.
아멜리아의 경우 어른들의 배려로 인해 귀와 눈을 막고 있던 덕분인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머리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뭐야... 할 말이 있다면 하라고."
클레온은 그런 일행을 바라보지만, 일행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면 클레온. 그대의 열람 권한의 재조정이 끝났으니 지금부터 개시(??)를 요구받은 정보에 대한 전달을 시작하겠다."
머큐리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방 안에 있는 기계의 계기판과 술식의 환영을 조작하기 시작하면….
지면, 천장, 벽을 타고 마력이 흐르며, 방의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구`. 지름이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키보다도 큰 크기다.
몇 개의 금속 원 테로 둘러싸인 재질 불명의 마도구인 `구`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이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 트리스 메기스토스가 만든 현자의 기록판."
마력을 주입받은 거대한 구는 무언가의 봉인구였다는 듯이 천천히 덜컹, 덜컹, 하고 열리면서 그 안에 감추고 있는 것을 드러낸다.
벌어진 틈 사이로 은은한 녹색의 빛이 흘러나오며, 구가 완전히 본체를 감싸고 있던 테와 비슷한 형태를 취하게 되자.
방의 중앙에는 중력을 무시하고 부유하는 에메랄드빛의 거대한 석판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구와 마찬가지로, 높이는 클레온의 키보다도 컸다.
그 표면은 무언가의 언어 아마 고대인의 언어이겠지.
양각과 음각을 거듭하며, 석판 전체에 빼곡히 고대인의 언어가 적혀 있었으며, 곳곳에는 마술적인 문양이나 도형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것이 양면에.
솜씨 좋은 보석가공사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빼곡히 글씨를 적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오나가 보면 입을 벌리고 놀랄만한 완성도라고, 클레온은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건"
"에메랄드 타블렛[녹주석의 비문]..."
그리고, 그 정체는 라일라의 입에서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 이것은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에메랄드 타블렛. 모든 레플리카의 원본이 되는 거대한 개념정보 저장기관이다."
머큐리는 라일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으로 거대한 석판을 가리켰다.
"말하자면 기록 장치. 라는 건가."
"그렇다. 마법적인 개념을 이용하여 단순하게 물리적인 기록이 아닌, 내부에 오직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소영역의 세계를 만들어 정보를 보관하는 것이 가능한 물건이다."
"굉장해...! 이게 원본이라면, 트리스 메기스토스가 개발한 거의 모든 마도구의 설계도나, 그가 발견해낸 마도적인 개념, 이론이 전부 들어가 있다는 거야!"
라일라가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면 아루루나 다른 이들도 그 정도의 의미는 알 수 있다는 듯이 `오오...`같은 목소리를 낸다.
"있지, 이거!"
"미안하지만, 대여 등은 하고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1급 열람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정보 개시를 요구했을 때. 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에메랄드 타블렛의 봉인은 해제된다."
라일라의 말에 머큐리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하고, 라일라는 `윽`하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이걸 읽을 수 없는데."
"이것은 물리적으로 읽어, 시각적인 수단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물건이 아니다. 클레온, 그대가 원하는 정보. `레시아`에 관련된 정보는 본 개체가 음성, 문서로 전달하기에는 그 양이 방대하다."
머큐리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방 중앙의 기계를 조작한다.
그러면, 타블렛의 일부 문자가 빛이 나기 시작하며, 방의 벽이나 바닥, 천장에 있는 금속 재질의 타일을 향해 빛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빛을 조사받은 타일은, 그것을 또 다른 타일로 반사하고.
그것이 차례대로, 타일에서 타일로 반사되는 것을 반복하면 타블렛에서 나온 빛이 이내 방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타블렛이 소유하고 있는 정보를 너희들의 눈에 직접 보여줄 수 있도록 `환영 마법`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환영으로 과거의 일을 보여준다는 건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준다면,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네."
아루루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이 재생되는 동안, 너희들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환영을 보는 것 외의 기능이 제한된다. 준비는 됐겠지?"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문다.
이 영상을 보면, 레시아가 원초 세계로 간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카데미에서 열었던 메모리아 큐브의 다음을 알 수 있다.
"...그래. 부탁해."
"그럼... 그대들의 의식을 타블렛 내의 소영역으로 이동시키겠다…. 부디 그 안에서, 너희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마지막으로 머큐리가 손을 움직여 술식을 완성하면, 클레온과 일행의 의식이 서서히 빛에 감싸여서 흐려져 간다.
정확히는,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가는 듯한 감각. 눈앞에 완전히 빛으로 감싸이면, 이내 그 앞에는 아까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
0015000
백의를 걸친 회색 머리의 남성은 서류 등으로 어질러진 책상 위에 커피로 보이는 검은 액체를 가득 담은 머그잔을 놓은 채 기계를 조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에메랄드 타블렛. 그 마도구의 조작 계기판으로 이어지는 책상 위에 액체를 올려놓는 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알면 놀라자빠질 만 하지만.
정작 제작자인 본인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아슬아슬하게 넘치지 않을 정도로 가득 담긴 컵을 적당히 올려놓은 뒤 서랍을 뒤진다.
서랍 역시 책상과 마찬가지로 거의 정리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목표로 하는 파란색 서류철을 찾아내 꺼내 드는 남성.
대학자 트리스 메기스토스.
연구자, 마도학자, 연금술사, 선생, 의사...
가지고 있는 직함은 수없이 많았지만, 후에는 그의 모든 지식과 업적을 통틀어 그저 `대학자`라고 불리게 되는 남성은.
사생활에서는 게으르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며, 머리는 더벅머리에, 사각 뿔테 안경을 쓴 채, 수염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그런 어디에나 있을 법한 30대 후반의 아저씨였다.
또, 왼손의 약지에는 특이한 형태이긴 하지만 반지를 끼고 있어서, 기혼자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여기 어딘가에 적어 끼어 뒀던 것 같은데…."
트리스는 그렇게 하며, 눈앞에 의자에 앉아있는 소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트리스의 앞에 앉은 것은, 검은 머리, 검은 눈을 가진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어린아이.
몸에는 머리나 눈의 색과 같은 검은 원피스를 걸친 채 양쪽 발을 얌전히 땅에 붙인 채로 기다린다.
나이는 10살 전후일까, 아직 성숙하지 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차분하고, 허둥지둥 움직이는 트리스 보다도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선생님. 그리고, 제가 기억하기로는 저번에 선생님이 보셨던 서류철은 그 파란색이 아니라, 옆의 녹색이었던 것 같아요."
"응? 아, 오오. 그랬지. 참. 하하, 릴리스는 역시 똑똑하구나."
트리스는 머쓱한 듯이 살며시 파란색의 서류철을 되돌리고, 대신 녹색의 서류철을 꺼내 들었다.
"역시 녹색이지…."
트리스는 그런 영문 모를 변명 같은 것을 중얼거리며, 서류철에서 종이를 한 장 뽑아 들며 자신도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래... 저번의 검사 결과로구나. 그 전의 검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신체에 커다란 문제는 없단다. 마력에 의한 변형도, 딱히 질병도 검사되지 않았어.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약간 섭취하는 영양분이 기울어져 있다는 부분이려나. 편식하면 레시아같은 어른이 되지 못할걸?"
"...괴, 굉장해요. 그저 저런 관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거기까지 알 수 있는 건가요?"
"이 세계에서는 그것이 평범한 기술이란다…. 말을 돌리지 말고. 제대로 야채, 고기를 균형 있게 섭취하렴."
릴리스는 자신의 술수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에 휙, 하고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지만 트리스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트리스씨, 이쪽도 끝났어요. 릴리스의 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그때, 문을 열면서 들어오는 것은 백금발의 여성.
허리에는 성스러운 황금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성검 `칼라드볼그`를 가진 채 편한 경장을 걸친 그녀는 클레온의 시대의 인물들이 보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차림이었지만.
트리스가 보면 꽤 구시대의 의복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에는 제대로 된 이유가 있었다.
레시아는 이 원초 세계와는 다른, 미래에서 건너온 존재이다.
미래에는 아무래도 자신들의 세계가 한 번 멸망한 뒤에 다시 인류가 번영하기 시작하여.
원초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중세`정도의 문명 레벨까지 회복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듯했다.
그것에 관해서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미래의 일을 아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그렇기에 트리스는 필요 이상의 것은 레시아에게 묻지 않은 채, 그녀에게 협력하고 있었다.
트리스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인류는 종으로서의 전성기를 지나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환경의 오염, 자원의 고갈, 종교, 민족, 이해의 불일치에 의한 이념적인 갈등.
전쟁이 언제 시작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화약고와 같은 상황이 대륙 전체에 퍼져 있었다.
트리스같은 별종을 제외한다면 인간이 인간을 믿지 않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레시아와 같은 금발 벽안의 인간들은 예전부터 이 세계에서는 노예의 혈통이라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지상을 돌아다니는 레시아를 어딘가의 탈주한 노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인지.
그녀를 붙잡기 위해 경비대가 움직이거나 하던 것을 우연히 본 트리스가 그녀에게 흥미가 생겨 그녀를 구한 것을 계기로.
그녀가 숨어있는 동굴과 이 연구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그녀가 원래의 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녀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큰 문제는 없었어. 레시아, 너도 릴리스가 편식한다면 주의해."
"아, 하하. 네. 알겠어요."
육체적인 나이로 본다면, 40을 넘은 레시아가 30대 후반인 트리스보다도 어리다.
하지만, 레시아는 성검의 힘으로 육체가 전성기의 상태에서 더는 노화가 되지 않아, 20대 중반에서 멈추어 있었기에 외견만으로는 레시아 쪽이 더 어린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레시아는 트리스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꼬르르륵...`하고 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주인인 소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양손을 자신의 배에 가져간다.
"하하, 성장기니까. 괜찮단다, 건강하다는 증거야. 머큐리. 릴리스를 연구실 내의 식당으로 데려다주렴. 오늘의 점심은 오므라이스란다."
[알겠습니다. 릴리스, 저를 따라오세요.]
허공에서 나타난 빛의 무리가, 춤을 추듯이 움직이며 릴리스를 안내한다.
하지만 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도 레시아를 보는 것이었다.
"레시아는 나와 조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걱정하지 말렴, 금방 끝내고 따라가게 할 테니."
"응. 먼저 가 있어."
트리스와 레시아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릴리스도 고개를 끄덕이고 인공 정령인 머큐리를 따라 방을 나섰다.
그녀가 방에서 나간 뒤, 문이 자동으로 닫히면 트리스는 조금 전 보고 있던 녹색의 서류철을 다시 한번 살피며 `흐음...`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검사 결과가 나온거죠?"
"그래. 예상대로라고 한다면, 그렇겠지만. 이렇게 보면 역시 조금... 믿기 힘들군."
트리스는 난처하다는 듯이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며, 까끌까끌한 턱을 쓰다듬는다.
"이야기해 줘요."
"...그래."
레시아가 그렇게 독촉하듯이 이야기하면, 트리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류철을 책상 위에 던져놓으며 레시아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한다.
"릴리스는 네 딸이 맞다. 두 사람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
"유전자…. 이전에 설명을 들었던 대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신체 내의 무언가. 였죠."
레시아의 대답에 트리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많더라도 부족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인식해주면 될 것 같군. 물론, 사람의 유전자를 사용해 인간을 인공적으로 제작하는 기술…. `아담`을 내가 발명해내긴 했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릴리스는 그런 조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순수한 인간…. 즉. 네 배로 낳은 친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나의 아이..."
트리스의 대답에 레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배에 손을 올린 채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죠? 저는... 출산 경험은 커녕 남자와 몸을..."
"너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너는, 미래에서 차원의 틈에 내던져진 뒤, 차원의 틈을 방랑하다가 그녀와 만났다고 했지. 이차원의 틈이라는 것은 본래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어서, 미래의 인물이 과거로, 과거의 인물이 미래로 날아가는 일도 있어."
트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입을 다물어, 레시아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그렇다면... 릴리스는 미래에서 저처럼 차원의 틈으로 들어왔단 걸까요? 추방당해서?"
"그 부분은 본인만이 알겠지만….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자신의 이름 빼곤 아무것도…. 다만. 그녀가 이차원의 마력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 네 덕분이겠지. 네가 차원의 틈을 방랑하며 쌓은 저항력이 그녀에게도 이어진거야."
트리스의 대답에 레시아는 조용히 성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빛의 대성검. 칼라드볼그. 이 검으로 그녀는 수없이 많은 적과 장애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숙적이었던 마검 황제를 베었다.
하지만 차원의 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칼라드볼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자아까지 포기해 가면서 그녀에게 이차원의 마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맡겼다.
덕분에 그녀 본인도 무사할 수 있던 것이지만….
"하지만 금발 벽안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흑발 흑안의 소녀인가…. 그 부분이 조금 걸리는걸. `흑마의 일족`이라고 했던가?"
"네. 미래에서는 저런 특징을 가진 이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흑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다른 인간들에 비해서 뛰어나고…. 대부분이 제가 가진 성검과는 다른 `마검`이라 불리는 특수한 검을 가지고 있죠."
"흑마력인가... 너와는 마치 대칭을 이루는 듯하군…."
트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복잡한 심경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레시아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너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마. 반대로 생각하면, 릴리스는 네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잖아. 지금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흑마의 일족`을 남편으로 맞이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미래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자신을 격려하는 트리스의 말에 레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트리스 씨."
"무얼. 이쪽도 여러모로 연구가 벽에 가로막혀있던 상태였는데. 너희들이 나타나 주면서 그런 벽도 점점 없어져 가고 있어. 이 해후는 분명 신의 인도일 거다."
트리스는 학자 같지 않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미래에서의 방문자라는, 흥미가 멈추지 않는 대상과의 조우가 분명, 이 세계에 있어서도 멋진 결과를 끌어내 줄 것이라고 트리스는 믿고 싶었다.
002 5000
"큭... 하아...!"
릴리스와 레시아가 추격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다시 한번 차원의 틈을 열어젖히고 도망친 지 2년.
그녀들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아 구속되어 여러 고문을 당했던 트리스는 지금까지 인류를 대상으로 공헌한 것을 참작 받아 2년 만에 겨우 풀려나 자신의 연구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이에 트리스의 아내도, 자식도 자택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그 조치도 풀릴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트리스는 조금이라도 빨리 두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그 전에 해야 할만한 일이 있었다.
2년 가까이 방치되어 먼지가 쌓여있던 기계를 털어내고 이름을 부른다.
"...머큐리!"
[...성문(??)을 확인.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빛무리가 나타나며, 가동이 멈춰있던 연구소에 마력이 되돌아왔다.
"그래... 몸에 칩이 심어지고, 여기저기 고문을 당하긴 했지만 이렇게 멀쩡히 돌아왔지…."
[그것은 `멀쩡히`라는 상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알겠습니다. 명령을.]
트리스는 떨리는 팔로 자신들을 체포한 녀석들이 휩쓸고 간 책상 등을 살피다가 이야기한다.
"성검에 대한 자료는?"
[죄송합니다…. 회수되었습니다.]
"젠장...!"
그들이 레시아를 노린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노예와 같은 외견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성검의 힘을 눈치챈 인간들이,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전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강한 병기로서 그 힘을 사용하기 위해.
[그리고, 레시아의 유전자 데이터의 일부도.]
"녀석들은 내가 개발한 `아담`을 가지고 있어. 그 유전자를 이용해 성검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간을 만들려는 거겠지…."
트리스는 주먹을 꽉 쥔 채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얻은 모든 것이, 전쟁, 싸움에 이용되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그것으로 인해 세계에 커다란 재앙이 불어닥칠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지 않으면.
트리스는 천천히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들을 눈으로 훑다가 고개를 숙였다.
"아담의 프로토타입 `이브`는 아직 남아있겠지."
[네. 2기가…. 그들은 아담이 있으면 결함품인 이브는 필요 없다고 하며 회수하지 않았습니다.]
머큐리의 대답을 들은 트리스는 힘들게 움직이면서, 이브를 사용하기 위한 식을 계산해 나가기 시작했다.
"양쪽 모두 가동을 준비해줘. 이쪽도, 그 녀석들이 성검의 힘을 악용하여 세계에 위기를 불러온다고 하면 거기에 맞는 대응책을 생각해야 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브는 그것을 통해 만든 인간의 어딘가에 결함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건 개발자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다시 아담을 만들 설비도, 시간도 부족해. 녀석들은 이미…. 쿨럭...!"
그때, 그가 입을 가리면서 기침을 하자, 손에 피가 묻어나왔다. 검붉은 피.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몸은 아니었다.
[대상의 각혈을 확인. ...피의 색에서 심각한 육체적 이상을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할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하아... 하하. 이것저것 말하라고 싸구려 약을 잔뜩 들이켠 부작용이지…. 미안하지만, 치료할 시간은 없다. 이브를 여기에서 사용하면, 또 녀석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겠군."
트리스는 잠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기계로 가서 차원 도약의 수치를 입력한다.
"`이브`의 사용에는 `집합 영맥`[엘레멘탈 크로스]의 힘이 필요하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곳을 제외한 두 곳에 내가 임시로 설치한 연구소가 있지."
[좌표를 확인했습니다.]
"이브를 그곳으로 옮겨서 내가 입력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제조를 개시해다오. 하나는 여성 개체. 하나는 남성 개체…. 두 연구소가 거리가 꽤 되지만, 효율적으로 자손을 남기고 종을 존속하기 위해선 남녀의 개체가 필요해."
[입력을 확인…. 이건, 릴리스의 유전 정보군요.]
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멀쩡히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능한 모든 것을 마쳐놓기 위해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성검의 힘은 신성 마력. 그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흑마력`이야. 릴리스가 가지고 있는 흑마력의 적성을 이용하면 분명, 그들과 싸울 수 있는 인간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를 `아키타입 B형`으로 명명. 초기 개체명의 입력을 부탁드립니다.]
빠르게 움직이던 트리스의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
"여성형 개체는 `릴림`. 남성형의 개체는 `[자료 열화로 인해 확인 불가]`다."
[입력받았습니다. `이브`의 차원 도약까지 666초. 카운트를 개시합니다. 충격에 주의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 연구소의 권한을 너에게 모두 넘겨두마. 혹시라도 나중에 이곳으로…. 우리가 창조한 이들이 찾아온다면. 그들에게는 열람 권한 2등급을 부여해서 정보를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고 진실을 원한다면. 그들의 열람 권한을 조정해도 괜찮다."
트리스가 힘겹게 목소리를 이어나가면, 머큐리는 잠시 침묵한 뒤 다시 대답했다.
[해당 명령을 인식. 연구소의 권한을 양도받았습니다.]
"... ..."
다음 순간
털썩, 하고 무언가 무거운 것이 땅으로 쓰러지는 소리.
모든 값이 입력된 것과 동시의 일이었다.
[...대상의 생명 활동 정지를 확인.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트리스 메기스토스.]
003 5000
[제조 기록.]
[보고. 이브 1호기. 개체명 `릴림`의 제조를 완료.]
[지상에서의 EMP. 영맥의 마력 폭주 등, 예상 이상의 트러블이 상당히 많았기에, 제조 예정 일시로부터 30년 이상 경과...]
[현재 지상에서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이 남아있지 않기에. 해당 개체를 동면. 동면 해제 예정 9, 9, 9, 9, 9, 9, 년. 이후. 이후. 이후.]
[...심각한 에러를 확인. 본 개체는 더는 정상적으로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가 소멸을 선택하겠다.]
...
[보고. 이브 2호기. 개체명 [정보 말소]의 제조를 완료.]
[1호기의 보고와 마찬가지로. 제작 예정의 일시로부터 약, [계산 불가] 경과]
[지상에 인류의 출현을 확인.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가 판단으로 가동 중인 [아담]이 인류를 재생시킨 것으로 확인된다. 인류 생존 조건을 만족했기에 해당 개체를 지상으로 내보낸다.]
[해당 개체의 불안정성을 확인. 마검의 주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휩쓸려 폭주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해결 불가한 문제로 판단하여. 해당 개체에 `전생`인자를 주입.]
[해당 인자를 가진 2호기 최초의 개체는. 이후, 육체적으로 사망할 때마다 다음 전생 인자를 물려받은 존재로 `전생`하며. 그때마다 상기 문제를 조금씩 개선해나갈 예정.]
[해당 개체가 전생할 때마다. 본 개체가 그것을 기록하겠다.]
...
[보고. 이브 3호기. 이것은 머큐리에 의해 독자적으로 제작되었다.]
[다양한 능력을 갖춘 아인종의 제작 실험이 진행되었다. C타입의 수인. D타입의 드워프. E타입의 엘프…. 모두, 훌륭한 성과였지만 이브 특유의 `결함`을 해결하는 것에는 실패를 거듭했다.]
[... 타입 S의 제작에 B형의 유전자를 유용한 것으로. 결함을 어느 정도 수정…. 해당 대상은 A타입과 마찬가지로 신성 마력에 강력한 호응성을 보이는 인류 개체로 확인.]
[대상을 지상으로 보내, 이 연구 시설을 수호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
[보고. 이브 2호기…. [정보 말소]의 결함은 상상 이상의 비극을 발생시켰다. 전생 도중에 무언가 에러가 발생한 것인가….]
[이것은 나의 안일함이다. 따라서, 통신이 단절된 머큐리의 명령이 없지만, 사전에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생산을 개시하겠다.]
[머큐리의 지휘 계통을 벗어남에 따라. 나는 자신을 재정의한다.]
[본 개체는 지금 이 시각부터. `헤르메스`이다.]
[헤르메스가 소유한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제조를 개시한다. 예상 제조 기간5년.]
... ... ...
[보고. 아담 재정의 재정의 재정의…. 재정의 실패.]
[빌어먹을. 너희들이 만들어낸 가짜 인간들의 완성도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은 모두 소멸할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