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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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감싸고 있던 빛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낀 일행의 시야가 돌아오면, 눈앞에서 에메랄드 태블릿을 감싸고 있는 구가 다시 그 형태를 구성하여 석판을 감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빛은 사라지고, 환영도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일행은 한참을 입을 다문 채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힘겹게 입을 연 것은, 떨리는 손으로 자기 얼굴을 잡은 클레온이었다.
"잠깐... 방금 그 건... 그게 모두 과거에 있던 일이라는 건가…? 영문을 모를 단어나 상황이 너무 많아서 이해가"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머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
"그러리라 생각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추가로 설명하도록 하지."
"기다려! 그렇게 냉정하게…. 아니…. 너는 이 일을 원래부터 모두 알고 있던 당사자였지."
클레온은 듣는 이를 생각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가려는 그녀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클레온.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조금 침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정확한 진실을 알기 위해…. 솔직히 나도 전부를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라일라 역시 혼란스러워하는 클레온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우선은 그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방금 보여준 것은 연구소에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재현된 것이다. 마지막의 통신도, 연락이 완전히 끊기기 전의 것이다."
가감 없는 진실이라고. 머큐리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레시아와 릴리스에 관한 일.
그 뒤에 세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브, 아담. 그리고,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
그곳에서 드워프, 수인, 엘프와 같은 아인종은 물론이고.
릴림. 그리고 그녀와 쌍을 이루는 남성 개체가 만들어졌다는 것.
아키타입 B형. 릴리스의 유전자를 이용해 만들어진, 흑마력을 제어하는 능력에 탁월한 인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즉...
자신과 루베라와 같은 흑마의 일족.
"...하나 물어볼게. 머큐리. 마지막 쯤에 나왔던 `전생 인자`. 라는 건... 결국 뭐야?"
라일라는 지금까지의 연구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지식 덕분에 대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충격이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생인자는 당시에 연구 중이던 인간을 소생시키는 기술 중 하나이다."
"인간의…. 소생? 부활시킨다는 거야!?"
라일라의 경악한 표정에, 머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아니, 생명체의 소생은 고대는 물론 현대의 기술로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한 번 죽은 생명체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고, 영혼은 영맥을 타고 더 작은 개념적인 존재로 흩어져 사라진다.
그 일부가 재조합되어, 다시 새롭게 태아에 깃들게 되면 그것이 새로운 생명체의 영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전세라던가, 환생의 개념 자체는 존재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완전히 동일한 존재가 아녔다.
"전생 인자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육체가 사망하면 영혼이 분리되어도 영맥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가장 적합한 육체를 발견할 때까지 지상에 잔류해서. 본인의 영혼을 그대로 가지고 다음 육체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에요?"
쿠온은 눈앞에서 들려오는 신성모독적인 말에 말 모를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공포가 깃든 얼굴로 머큐리에게 질문했다.
성직자인 그녀에게 있어서, 인간의 섭리를 벗어난 기술의 존재는 그야말로 위협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의미의 기술이었지만, 가능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을 이어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야. 2호기가 목표로 했던 것은 그 개체가 가지고 있던 영혼적인 결함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전생을 거듭할수록 혼은 모루에 망치질 되는 영혼과도 같이 단련되고, 강해지기 때문이야."
"그럼…. 현재에도 어딘가에. 그 전생 인자를 물려받은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다."
아멜리아의 말에 머큐리가 긍정하면, 일행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고대인들의 기술은, 자신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계승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 그리고 아인족이 고대인의 기술 `아담`에 의해 재생된 인간들의 후손이라는 것.
흑마의 일족의 원래 존재 의의는 과도한 신성 마력을 가지고 성검을 제어하는 병기 `용사`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
각종 신화, 전설 등에 존재하는 각 인족의 창조 신화가 모두 거짓과 허영으로 바뀌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그 뒤에 레시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릴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건가?"
생각을 정리한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 사샤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레시아씨는 그 뒤에 원초 세계를 멸망시킨 `황금의 혜성`으로서 다시 나타난 거죠. 그렇다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카데미의 지하 미궁에서, 처음으로 검은 교전과 마주했을 때.
그들은 클레온과 자신들의 목적이 같다고 하면서, 레시아와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데미우르고스의 강림을 도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황금의 혜성, 레시아를 그 대적자로서 강림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그렇게 되면 황금의 혜성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세계는 다시 한번 원초 세계가 겪었던 멸망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황금의 혜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머큐리."
클레온이 그렇게 묻자, 머큐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허공에 환영의 허상을 띄운다.
그곳에는 찬란한 빛으로 감싸인 채, 12장의 광휘의 날개를 갖춘 검을 가진 검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전, 쿠온이 변했던 천사와도 비슷한 생김새의 그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강력한 마력을 머금고 태양과도 같이 빛나는 황금의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클레온은 그녀가 들고 있는 검
8줄기로 뻗어나오는 칼날을 가진, 태양과 황금, 그리고 희망의 성검.
칼라드볼그를 보고 그것이 레시아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무자비한 징악의 실현자와 같은 갑옷 밑에는, 탈체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에스카와 함께 기도를 올리며, 소피아와 함께 유적을 모험하고, 루티와 함께 웃고 떠드는 자신의 구원자가 있다는 것을.
그런 영문 모를 녀석들에 의해 차원의 틈 따위에 던져지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저런 갑옷을 입고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성검을 휘두르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공포의 대상이라던가, 인류의 리셋 장치라던가. 고대인들로부터 원망받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갑옷 안에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클레온은 알지 못했다.
다만, 웃고 있을 리 없었다. 인간을 베며, 성을 파괴하고. 집을 불태우는 신성한 태양의 빛을 내뿜으면서.
그녀가, 웃고 있을 리 없었다.
"황금의 혜성은"
벅차오르는 레시아에 대한 클레온의 감상을 알 리 없는 머큐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 순간.
땅을 울리는 진동이, 지하 깊숙한 연구소에까지 울렸다.
"뭐지? 지진인가?"
"아니 계곡을 감싸고 있던 결계에 균열이 발생했다. 외부에서 무언가가, 강제적으로 안으로 진입했어…. 빠른 속도로 이 연구소의 위 수정 탑으로 향하고 있다."
머큐리의 설명에 클레온과 일행은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습격인가?"
"적어도 우호적인 존재는 아닌 것 같군…. 미안하지만, 지상을 부탁한다. 결계의 수복은 이곳에서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차원 도약으로 지상까지 단숨에 보내주겠다."
머큐리가 계기판을 조작하자, 일행의 발밑에 마법진이 펼쳐졌다.
라일라가 사용하는 차원 문의 마법과 비슷한 문양이었지만, 조금 더 빠르고 강력한 마력의 진동이 일행을 덮쳤다.
"잠깐! 아직 물어볼게"
클레온의 말은 전이의 충격에 휩싸여 삼켜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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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밝은 태양의 빛이 일행을 감싸면.
눈앞에는 검은 머리를 가진 서큐버스 소녀 `릴림`이 땅에 쓰러진 `가브리엘`의 등에 발을 올린 채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할머님!"
아멜리아가 그런 릴림의 행태에 분노하여 펜던트를 치켜들면, 거대한 신성 마력이 응집됨과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 광휘 섞인 갑옷이 출현했다.
손에는, 악마를 찍어 누르고, 불태우기 위한 정화의 망치.
그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의 일이어서, 누군가가 말리기도 전에 아멜리아가 앞으로 뛰쳐나가 망치를 휘두르면.
릴림은 손에 흑마력을 뭉쳐, 마치 짐승의 발톱과도 같은 덩어리가 그녀의 망치를 막아낸다.
검은 마력과 신성한 마력이 부딪히고, 비산하고, 반응하여 주변으로 터져 나간다.
"큭...!"
아멜리아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고향, 그리고 할머니가 있는 마을을 부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마력의 출력을 낮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대결 구도의 균형은 무너지고 아멜리아가 역으로 릴림의 흑마력에 밀리는 것이었다.
"아론다이트!"
그때, 푸른 수정의 검들이 릴림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릴림이 그것을 피하고자 몸을 비틀면, 그 틈을 타고 가까이 다가온 사샤가 단검을 휘두른다.
"... ..."
몸을 비틀어 균형이 무너진 상황. 시야는 그녀 자신의 옆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손은 아멜리아에게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샤!"
쿠온이 사샤의 이름을 외치면. 허공에서 나타난 또 다른 마력의 짐승이 사샤를 물어뜯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플레임 스파이크!"
흉흉한 발톱과 저주의 어금니가 사샤에 닿기 직전, 뻗어 나온 화염의 가시들이 검은 마력의 짐승을 묶어 터뜨린다.
"클레온!"
"아멜리아! 떨어져!"
다음 순간, 클레온은 허리춤의 검을 뽑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 릴림의 뒤로 돌아간다.
여전히 허리가 뒤로 꺾여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정적.
무언가를 꿰뚫는 감촉이, 분명하게 클레온의 손으로 전해져왔다.
그것은, 너무나도 연약했고.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피인지 마력인지 모를 것이 마검을 타고 흘러 내려왔다.
두근, 두근. 꿰뚫린 곳에서 느껴지는 심장 박동이 대상의 생명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하...♡"
비릿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달콤하면서도, 매혹적이었지만, 동시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진다.
클레온의 갈라테아가, 릴림의 새하얀 배를 꿰뚫고 있었다.
위치는 음문이 새겨진 배꼽의 정 가운데.
노출이 적은 그녀의 의복에서 유일하게 노출된 부위.
깔끔하게. 중간에 존재하는 모든 장기를 관통해서이다.
그렇다면, 웃은 것은 누구인가.
어째서, 그녀가 웃고 있는 것인가.
"클레온... 님. 후후후..."
[클레온!]
다음 순간, 릴림은 관통상을 무시하고 발을 움직여 클레온에게 다가왔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그녀의 피가 갈라테아의 검신을 적신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다른 이들이 모두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이슈탈은... 때가 올 때까지 참으라고 했지만... 아아... 더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아..."
여전히, 뚝, 뚝. 끊기는 어조이지만, 어딘가 흥분이 섞인 채. 피를 흘리면서도 죽지 않는 릴리스가 클레온에게 다가오면
그녀는, 양팔을 뻗으며 클레온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것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은 클레온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거야, 그렇지요…. 당신과 저는. 처음부터. 이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당신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그 영혼에.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사명이었으니까."
릴리스는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말해온다.
"처음으로. 세상을 인식했을 때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제적으로 잠이 들더라도. 이 마음은 변함없이. 당신을 바라고. 찾으며. 가까이 가고 싶다고. 이어지고 싶다고. 1분. 1시간. 1일. 1달. 1년..."
다른 이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모하고 있었사옵니다…. 5천 년의 세월을. 오직, 당신만을…."
그녀의 피로부터 섞여 나온 고농도의 흑마력이 주변의 모든 것을 속박하고, 의식을 앗아간다.
다른 이들은 릴리스의 그러한 움직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몸의 제어를 자신들조차 모르는 사이에 빼앗긴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는, 너를"
"당신은...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영원에 가까운, 잠에 빠져있던 저를..."
릴림의 손이 천천히, 클레온의 팔을 타고 올라와, 그의 관자놀이에까지 닿았다.
"...지금이야 말로, 저와 다시 한번."
다음 순간.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번개와도 같은 것이 터져 나와 클레온의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영혼의 깊숙한 곳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근간에 깊게 새겨진 `인자`로부터.
클레온에게,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마검, 판도라...]
[너는 릴림...? 나, 어째서인지 네 이름을 알고 있어...]
[...그렇구나. 왕국에는... [아담]이...]
[녀석을 막기 위해선, 힘이 필요해…. 절대적인 힘이. 그를 위해서라면 나는]
[제국의 황제가]
["안 돼!!!"]
격류와도 같은 기억이 클레온의 머릿속을 뒤엎어가는 순간.
터져 나온 것은 소녀와 마검의 비명이다.
전신에서 신성한 마력을 쥐어 짜내, 흑마력의 속박을 벗어나 뛰쳐나가는 인영.
쿠온이 달려와, 클레온을 밀쳐 내 릴리스와 떨어트려 놓는다.
"... ..."
그녀의 머리 위에는, 불완전하게 노이즈를 일으키며 회전하는 황금색의 헤일로가.
등 뒤에는, 한 쌍이지만 약한 빛을 내뿜는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천사. 자아를. 유지한…?"
"하아... 하아... 큭... 아아...!"
머리에 충격을 입은 클레온을 끌어안은 채, 흘러넘치는 천사로서의 마력을 억제하며 고통을 참는 목소리를 높이는 쿠온.
"쿠, 온..."
[쿠온! 마력을 억제하지 말고, 바깥으로 방출해!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움직일 수 있어!}
갈라테아의 목소리가 쿠온에게 닿자, 쿠온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억누르고 있던 마력을 바깥으로 방출한다.
강대한 천사의 마력이 계곡 전체를 휩쓸며, 이내 움직이지 못하던 다른 이들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큿..."
그뿐만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흑마력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릴림마저.
방출의 영향을 받아 비틀거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방해하는 거야. 그는. 나의, 황제. 나의, 반쪽. 나의, `용사님`인데..."
"클레온은 마검 황제가 아니야…! 클레온은 우리들의 소중한"
"시끄러워. 반쪽 천사. 옥좌주의 개."
다음 순간, 릴림의 꿰뚫린 상처가 마치 지옥의 입구와도 같이 열렸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안, 돼."
움직일 수 있게 된 아루루의 목소리가 떨리며 중얼거렸다.
튀어나온 것은, 릴림의 키보다도 더 장대한 검은 색의 대검.
"마검...!?"
라일라 역시 그것에 놀라 한다.
아니, 릴림 역시 흑마의 일족이라면 마검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출력이다.
사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햇빛이 보이던 계곡의 푸른 하늘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운다.
단순히,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주변의 기후를 바꾸어 버릴 정도로.
세계를 비틀 수 있는 흑마력을 지닌 마검.
"먹어 치워. 판도라."
대검이 노리는 것은, 신성 마력을 방출한 덕분에 탈진해 있던 쿠온이었다.
얼마 전, 아인이 자신을 노리던 상황을 쿠온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는, 클레온이 자신을 지켜줬었다.
지금, 자신이 여기서 비키면. 클레온이 위험하다.
그렇다면 나도
"하아아앗!!!"
쿠온이 클레온을 지키기 위해 몸을 웅크린 것과 동시에,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망치가 휘둘러져 왔다.
그것은, 그야말로 신성한 일격 그 자체였다.
릴림은 혀를 차면서도 대검으로 그것을 막아내고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땅 위에 제대로 섰다.
"그 대검은... 정말로 `판도라`인겁니까?"
"... 그 무식한 망치. 부딪혔을 때. 느꼈겠지. 이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자신의 소중한 사람. 빼앗겼다고. 이 아이, 늘 내 안에서 울고 있었어."
"... ..."
아멜리아는 손을 꽉 쥐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다리에 힘을 주며 앞으로 뛰쳐나간다.
어떻게 보아도 힘이 부족할 것 같은 가느다란 팔다리로, 자신의 키만 한 망치를 휘두르는 아멜리아.
그리고, 그녀와 대칭되면서도 마찬가지로. 강력하고 거대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릴림.
두 사람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자신의 무기를 전력을 다해 휘두르며 서로의 목숨을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공격만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릴림만이 아니었다.
뚫린 결계의 너머, 거대한 영맥의 마력의 기운을 느낀 것인지.
비행할 수 있는 마물들이 계곡을 뛰어넘어, 마을로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라일라씨! 아루루씨! 우선, 저 마물들을 어떻게든 해야 해요!"
사냥꾼의 각인으로 그것을 제일 먼저 확인한 사샤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면 라일라도 아루루도 무기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라일라의 몸은 화염으로 화하고. 아루루는 성검을 마치 하늘로 향하는 계단처럼 배치하여 위로 뛰어 올라간다.
"...아멜리아...!"
사샤가 그녀를 부르면, 아멜리아 역시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샤에게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마물들을 부탁드립니다…!"
아멜리아와 릴리스의 싸움은 그 기세가 너무나도 팽배해서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사샤는 아멜리아의 대답을 듣고, 결심을 한 얼굴을 하며 활을 하늘을 향해 올린다.
"괜찮다. 라. 굉장한. 자신감이네."
"당신은, 왕국을…. 제 동료를 위협하는 악마입니다! 제가, 당신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작은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아멜리아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외침을 들은 릴림은 조금 입을 다물더니, 이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하. 마음의 어둠. 제대로 싹을 피웠구나."
"큭... 하아아앗!"
그 사이, 갈라테아는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며 칼리번을 쿠온에게 건넨다.
"쿠온의 힘의 제어를 도와…! 나는, 클레온을 어떻게 해볼 테니까."
칼리번이 부웅. 하고 빛을 내는 것으로 긍정의 신호를 보내면.
갈라테아는 심호흡을 하면서 클레온의 몸에 손을 얹었다.
"...클레온... 제발, 부탁이야…! 그런 것 따위에 먹히지 마...!"
전에 없을 정도로 약한 목소리를 내며, 갈라테아는 클레온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내, 그녀는 그 상태에서 한 자루의 검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 안에서 느껴지던 흑마력은 모두, 클레온의 안으로 이동한 채였다.
002
눈앞에서, 황금의 용사가 칠흑의 검사와 격렬하게 몇 번이나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칼라드볼그와 판도라.
각각, 성검과 마검의 정점에 있는 존재.
그리고 그것을 휘두르는 용사와 마검사. 아니, 누군가에게는 `마왕`이라고 불리는 세계의 적.
마검 황제.
용사의 일행들은 힘이 다하여,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황제의 신하들은 대부분 죽거나, 투항하였고. 루티오스라는 최후의 병기마저도 해방되어 자신의 군세를 덮치고 있었다.
왕국군도 제국군도 마지막 싸움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 넣어, 이제 이 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의 싸움의 결말이.
왕국과 제국의 싸움이 결말이 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째서 당신은, 그만한 힘이 있는데도…. 그것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데 쓰는 겁니까…!"
레시아가, 비통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마검 황제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빼앗고, 짓밟았다.
그만한 힘이 있는데도. 모두를 지키고, 보듬고, 격려할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욱 큰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정해진 법칙을 바꾸기 위해선…. 더더욱 큰 힘이! 그녀를 옥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영문을 모를 소리를...! 하아아앗!!"
"너야말로,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세계에 순종하는 거냐!"
"나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더는 우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위해서…!"
"오만이다…. 세계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런 세상은 도래하지 않아!"
두 사람의 문답에는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서로 힘을, 마력을 소모해 나가면서 두 사람의 사이에는 서서히, 마지막이 찾아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후의 `1합`이었다.
"집어삼켜라! 판도라!"
"칼라드볼그!!"
서로의 모든 것을 소모한 전력의 일격.
마력이 마력을 집어삼키고, 육체는 그것에 휘말려 멸해간다.
하지만. 그때 레시아의 뒤에는 동료의 환영이 보였다.
소피아가 마력을.
에스카가 치유를.
탈체크가 힘을.
레시아에게 보탠다.
최종 결전에 있어서, 두 사람이 꺼내든 힘과 비교하면 정말로 작은 한 방울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육체는 이미 한계에 도달하여, 더는 움직일 수 없어도.
끊어지지 않는 인연이, 그들의 의지를 불러일으켜.
칼라드볼그에 새로운 힘을.
그리고. 그것이 마검황제와 황금의 용사의 가장 큰 차이였다.
마검 황제의 갑옷이, 그 자리에서 쪼개지며 그의 몸은 신성 마력의 격류에 휩싸여 사라져간다.
"──"
그가 마지막에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 듯한 착각을 느꼈다.
판도라는 충격으로 멀리 날아가고.
목부터 아래를 잃은 마검 황제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하, 아...! 큭... 쿨럭...!"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레시아.
그녀는 땅을 기어가듯이 천천히 움직여,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마검 황제의 남아있는, 금이 간 투구에 손을 올렸다.
"...네 승리다. 용사. 너는, 네 세계를 지켰다. 이번에는."
투구는 서서히 금이 가며, 완전히 부숴져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얼굴을 드러냈다.
용사와 마왕.
시골의 소녀와 제국의 황제는.
그때 처음으로. 민얼굴로 서로를 마주했다.
"... ..."
검은 눈, 검은 머리. 흑마의 일족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그의 얼굴.
레시아는, 그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에 새겨 두었다.
그리고, 과도한 마력의 사용으로 인해 가루가 되어 사라져가는 그의 육체를 지켜본다.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제삼자의 눈으로.
클레온은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사라지기 직전 모습을 드러낸 마검 황제의 얼굴이 자신과 똑같은 것을 보고.
...이내, 고개를 돌린다.
어디까지나 펼쳐진 어둠 속에는 자신이 평소에 걸치는 것과는 다른, 화려하면서도 강인하고. 두껍고 거대한 검은 갑주를 입은 자신이.
차가운 표정으로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