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86화 (186/506)

〈 186화 〉 소년

* * *

000

"카인!"

제국령의 작은 마을이었던 오르페안스의 가까운 곳에는 망령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작은 숲이 있었다.

어두침침한 나무 그늘, 태양 빛을 전부 가려버릴 정도로 울창한 잎사귀.

흙은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변색하여 있었으며, 손을 닿으면 차가운 냉기가 바닥에서 올라온다.

아무리 보아도 생명체나 식물이 잘 자라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었는데, 그런데도 이렇게나 나무들이 크게 자라나는 것을.

망령이 자신을 스스로 감추기 위해, 나무를 자라나게 했다고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카인은 들은 적이 있었다.

카인은 12살의 소년이다. 기근에 부모를 잃고, 오르페안스로 오게 된 고아였다.

검은 머리, 검은 눈. 그리고 흰 피부.

`흑마의 일족`이라고 불리는 소수민족의 한 명이었으며, 태어났을 때부터 흑 마력을 다루는 힘. 그리고 `마검`이라 불리는 특별한 검을 가지고 있는 마검사이기도 했다.

아직 성장 도중이었지만 매일 같이 수행을 반복해서 조금씩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마을의 아이들 사이에서는 `큰형`과도 같은 위치의 소년이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카인은 고개를 돌린 뒤, 자신이 파고 있던 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책벌레 소녀, `티아라`였다.

푸른색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채, 소박한 옷을 입고 자신에게 뛰어오는 그녀를 보고 카인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티아.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긴 위험하니까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또 여기서 구멍을 파고 있던 거야?"

티아라는 질렸다는 듯 카인을 바라보며, 그의 등 뒤에 있는 커다란 구멍을 바라보고 있었다.

티아라는 최근, 카인의 이 기행에 대한 걱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하루의 일과 중 하나라는 듯이, 선생님 몰래 이 숲으로 와서 구멍을 파는 카인에게서는 일종의 집착마저 느껴졌다.

마음의 어둠이 머리에도 퍼진 것일까, 같은 조금 실례일지도 모르는 생각마저 하게 되지만, 다른 이들을 접하는 카인의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은 상태였다.

"뭐, 그렇지."

"`뭐, 그렇지`가 아니라…. 휴, 선생님이 카인을 찾고 있었어."

카인은 티아라의 말에 쭈욱, 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허리를 좌우로 비튼다.

"알았어. 마을로 돌아가자."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서 티아라와 함께 숲의 출구로 향하는 카인.

티아라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런 카인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간다.

"내가 카인 때문에라도 빨리 `텔레파시` 마법을 배워야겠어…."

"하하. 금방 배울 거야. 티아는 마법에 재능이 있으니까 말이야."

두 사람이 길을 따라 움직이면, 숲을 벗어나고. 또다시 조금 길을 따라 걸어가면 작고, 낡았지만, 생활감이 느껴지는 마을의 입구로 들어간다.

고아의 마을 오르페안스.

주민들의 구성원은 대부분이 어린아이들.

최근의 기근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면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전부 이 마을로 보내지게 되었다.

원래라면, 아이들만으로 의식주를 전부 해결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아들을 마을에서 내쫓은 이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부탁이니 조용히 죽어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기적인 욕망이었다.

"카인. 티아라. 돌아왔군요. 혹시 카인은 또 숲에 갔던 겁니까?"

카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쓴웃음을 짓는 남성은 이미 60을 넘긴 노인이었다.

이 오르페안스의 유일한 어른.

고아들로부터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남성은 본래 어딘가의 교수인가, 학자였다던가.

그가 없었더라면 어린 생명의 쓰레기통이 되어 버렸을 오르페안스의 선생이 되기 위해 찾아와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혼자서의 힘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기초적인 것을 가르친다.

재능이 있다면 무술을, 마법을 특별히 알려주기도 하였으며 마을의 아이들은 모두 `선생`을 존경하고 따랐다.

어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추방되어, 그들에 대한 불신감을 가진 이들도 `선생`은 예외였다.

"카인은 이미 충분히 혼자서 근처의 마물과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합니다. 하지만, 너무 방심하지는 말아주세요. 그 숲에는 저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네. 선생님."

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이는 카인.

그리고 자연스럽게 카인의 시선은 선생의 뒤에 숨어있는 작은 소년으로 향한다.

금발에 벽안을 가진 더벅머리의 소년은,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어딘가 고귀한 품위가 느껴졌다.

나이는 카인과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일까. 우물쭈물하는 듯한 인상이 느껴졌지만, 허리춤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검을 차고 있었다.

"선생님. 그 아이는?"

"오늘부터 저희의 가족이 된 `아벨`입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모두 인사를 마쳤어요. 카인, 그를 잘 부탁합니다."

?

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벨이라는 소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벨이라고 하는구나! 나는 `카인`이야. 잘 부탁해.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으, 응... 잘 부탁해. 카인."

조심스럽게, 하지만 카인의 손을 마주 잡는 아벨의 손은 또래 아이들의 손에 비해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대륙의 운명을 크게 바꾸게 될 만남이 될 것이라고,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001

아벨은 그 뒤 천천히 마을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아벨 본인도 조금 우유부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사람과 접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임하려 했다.

게다가, 이곳은 고아들의 마을. 선생을 중심으로 다른 아이들은 모두 가족과도 같은 관계였다.

카인과 동갑이었던 아벨은 박식했고, 약초나 먹을 수 있는 풀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카인. 이거 얼마나 파야 하는 거야?"

"으응­ 글쎄…. 조금 더 파면 될 것 같은데."

그런 아벨은 카인이 마을을 빠져나가면 그를 따라와 망령의 숲에서 구멍을 파는 소년을 돕고 있었다.

카인보다 박식한 아벨이지만 체력은 부족한 그였기에 금방 지쳐서 구멍을 기어 올라갔지만.

벌써 자신들의 키보다도 깊게 판 구멍을 계속해서 파고 들어가는 카인의 행동을, 솔직히 말하면 아벨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벨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구덩이의 바깥. 나무에 기대어져 있는 한 손 검 치고는 조금 큰 카인의 검을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마력의 반응,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 살펴보면 검은색의 검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카인의 이거... `마검`이라는 거지? 신기하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응. 그렇다고 해. 아직 내가 마력을 다루는 힘이 부족해서 제대로 쓰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카인은 구멍을 파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아벨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신기하다고 하면 네 검도 마찬가지잖아. `성검`이지? 그거."

"어, 어어…. 어떻게 알았어?"

아벨이 카인의 지적에 당황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카인은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냥. 내 검이랑 비슷했지만 정반대의 무언가가 느껴져서 말이야. 예전에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거든. 세상에는 나 같은 `마검사`랑, 성검을 다루는 `용사`가 있다고."

"용사..."

그 단어를 들은 아벨은 주먹을 꼭 쥐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용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 같은 겁쟁이에 빈약한 사람은…."

"뭐라는 거야. 겁쟁이도 아니고 빈약하지도 않잖아."

카인은 아벨의 말에 삽질을 멈추고 구덩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겁쟁이야.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배신하고, 이곳까지 도망쳐 왔으니까."

다음 순간, 구덩이를 박차고 튀어 올라온 카인이 아벨의 앞에 착지하면, 아벨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반응했다.

"그건 고향의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거야? 왕국 귀족 출신이지? 너."

"... ..."

카인의 말에 아벨이 두 눈을 깜빡인다.

"금발 벽안이라는 게 그렇다고 전에 티아라가 몰래 알려줬어. 그 애는 아는 게 많으니까 말이야. 뭐, 출신이 어떻든 간에 여기로 왔다는 건 어른들에게 배신당했다는 거니까."

아벨은 카인의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베르트 칼데아리스."

"엉?"

처음 듣는 문자열을 내뱉은 소년을 바라보며, 카인은 이상한 목소리를 내었다.

"알베르트. 그게 원래 내 이름. 칼데아리스는 성…. 나는, 왕국의 왕족이야."

"왕족! ...어쩐지 평범한 도련님 같지는 않더라니. 그럼, 왕궁에서 살았단 거야? 왕자라는 거지?"

카인은 눈을 빛내며 아벨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응. 맞아. 왕자는 나 혼자가 아니라, 위쪽에 한 명 더…. 형님이 계시지만."

"그럼. 그 녀석이 왕국의 다음 `왕`이라는 거군…? 근데 어째서 왕족이나 되는 녀석이 여기까지 온 거야?"

카인의 주저 없는 질문에 아벨은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왕성 내의 가신들은 대부분 형님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 해서…. 나 같이 왕위 계승권을 가진 인간이 한 명 더 있다는 것 자체가 눈엣가시였나 봐."

"... 어째서지? 그냥 있어도 네 형이 왕이 될 텐데."

아벨은 카인의 질문에 차분하게 답을 되돌려 주었다.

"혹시라도 나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쪽과도 싸워야 할 테니까. 나는, 별로 왕이 될 생각은 없지만."

"흐음... 잘 모르겠는걸."

"어, 어쨌든.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형님` 쪽의 사람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신분을 숨기고 여기로 온 거야."

아벨의 설명을 들은 카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알겠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러니까. 본명은 알베르트지만, 부르는 건 아벨이라고 계속 부르면 된다는 거군?"

"어­ 으, 응. 그렇긴 한데…. 그게 다야?"

"지금 들은 이야기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인걸."

카인의 반응은 아벨이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는지, 놀란 표정으로 질문한다.

"하지만... 나는 제국인도 아니고, 왕국인에... 고아도 아닌걸."

"뭔 상관이야. 너는 어른들을 피해서 이곳에 왔어. 그게 자의던, 자의가 아니던. 책벌레 티아라, 수녀가 되고 싶어 하는 유니, 사냥을 좋아하는 리사도 다를 게 없지. 마찬가지로 내 가족이야."

카인의 말에, 아벨은 고개를 든 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검은 눈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빛이 깃들어 있었다.

"카인... 고마워."

"왜 감사하는 거야. 그냥 당연한 걸 이야기 한 거라고. 자, 구멍이나 계속 파자."

카인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아벨도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고, 조심스럽게 그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002

그 뒤에도, 카인과 아벨은 거의 매일매일 숲의 뒤편으로 가서 구덩이를 팠다.

드디어 구덩이의 깊이가 카인의 키의 세 배 정도 되었을 때, 아벨은 지쳤다는 듯 엉덩방아를 찧는다.

"카인은 말이야. 왜 이 구덩이를 파는 거야?"

"응­ 보물이 있을 것 같아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카인이 그렇게 대답하면 구덩이의 바깥에서 사다리를 준비하고 있던 유니가 구덩이에 고개를 내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어!? 들은 적 없는데!? 그거 혹시 `신 님`의 계시 아니야? 부럽다~!"

"예전에 이야기했거든. `뭐야 그거~`하고 웃어버린 건 너잖아."

"그, 그랬나?"

밝은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긁적이는 밝은 인상의 기운찬 소녀는 `에헤헤`하고 웃어 보인다.

유니는 카인보다 한 살 아래이지만, 여자아이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였다.

따라서, 남자들 사이에서의 카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큰언니, 큰누나였으며.

나중에는 선생님과 같이 고아들을 보살필 수 있는 수도원을 세워, 그곳의 수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유니와 달리 아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가끔은 이상한 상상을 하거나 한다던데…. 괜찮아?"

"사춘기 특유의 망상 아니거든…? 그보다, 1년 동안 지금까지 안 물어보고 있던 게 더 대단하네."

카인의 말에 아벨이 어깨를 으쓱하면 갑자기 하늘에서 화살 꽂힌 거대한 까마귀의 사체가 푹, 하고 구덩이의 안. 카인과 아벨의 눈앞으로 떨어졌다.

평범한 까마귀가 아닌, 마물의 일종이었다.

"우와아악!?"

"뭐, 뭐야!?"

카인과 아벨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이면, 구덩이의 바깥.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은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차가운 눈으로 구덩이의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 스컬 크로우가 보여서. 나도 모르게."

"리, 리사... 본능에 맡겨서 마물을 쏘지 말아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얼핏 보면 감정이 결여된 인형과도 같은 표정을 하는 리사이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 뿐인 여자아이이다.

하피와의 혼혈인 그녀의 머리에는 특별한 머리털이 돋아나 있어서, 그것을 통해 감정을 보여주며 아래로 축 처져 있는 머리카락을 보면 미안해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이 시체를 구덩이 바깥으로 꺼내자."

"응. 그렇네. 다른 곳에 묻어줘야지."

카인이 아벨의 말을 들으며 마물의 시체를 잡아들려고 하면, 지면에서 무언가, 검은 손 같은 것이 빠져나와 마물을 붙잡는 것이 보였다.

"우왓!?"

"카인!? 그 검은 손은..."

그림자와 같이 꿈틀거리는 손은 강한 힘으로 마물의 시체를 끌어당기더니, 이내 그것에 남아있던 뼈, 살, 피를 영양분처럼 흡수하기 시작했다.

"카인! 마물을 놓아!"

아벨이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성검을 뽑아 휘두르자, 검은 손들은 쉽게 잘려 나간다.

카인도 아벨의 말을 듣고 마물의 시체를 땅에 떨어트리면, 더 많은 손이 빠져나오더니 마물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킨다.

"우엑... 징그러워..."

소란을 듣고 구덩이 안을 바라보던 유니도, 그 모습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카인. 정말 아래에 무언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보물은 아닌 것 같아."

"...그런 것 같네. 젠장~ 여기까지 팠는데…."

아벨의 말에 카인도 고개를 끄덕이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었다.

그러므로 생각을 접고 유니에게 사다리를 내려달라고 하려 한 순간­

구구구구... 하고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 지진!?"

"카인! 빨리 올라와!"

유니가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를 올리고, 리사도 나무에서 뛰어 내려 유니를 도와 사다리를 붙잡았다.

"아벨! 먼저 올라가!"

카인은 그렇게 말하며 아벨을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하고, 자신도 유니가 내려준 사다리를 잡으려 한 순간­

몸이 비틀거리는 감각과 함께 지면이 꺼진다.

흙무더기가 미끄럼틀을 탄 것 같이 아래로 미끄러지며, 카인은 중력에 붙잡혀 중심을 잃고 사다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카인!"

아벨이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붙잡으려 하지만­

직전에서, 손이 스치며 카인은 그대로 뒤로 떨어져 버렸다.

"카인!!!"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카인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003

"큭... 아파...!"

흙무더기 위에서 정신을 차린 카인은,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흙이 쿠션의 역할을 해주면서, 그 흐름을 타고 내려온 덕분에 충격은 있을지언정 어딘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은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기계적인 강철의 벽과 바닥,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불빛은 은은한 마력 등에 의해 비추어지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자, 카인 자신이 이 공간으로 흘러들어올 때 통과한 구멍을 흙무더기가 틀어막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냐…. 여기는, 뭐지? 지하 던전...?"

아픈 몸을 이끌고 몸을 움직이려 할 때, 문득 손에 잡히는 것을 확인하여 고개를 내리면 그곳에는 어느샌가 그를 따라온 것인지.

검은 마검 `판도라`가 함께하고 있었다.

"너... 분명 구덩이 바깥에 있었을 텐데. 따라온 거야?"

은은한 검은 빛을 보이며 대답하는 듯한 자신의 파트너에, 카인은 일종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쨌든. 출구를 찾아야지. 여기서 굶어 죽는 건 싫다고…!"

카인이 그렇게 의지를 굳히며 발걸음을 내디디면 귓가에 울리는 이명과 함께 무언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방금 그 목소리…. 바깥에서 들리던…. 이 안에 있는 건가?"

앞도 뒤도, 위아래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움직이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카인은 그 목소리가 이끄는 방향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여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도중, 이곳이 던전이라면 마물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한기가 강하여, 숨을 쉴 때마다 흰색의 입김이 흘러나오는 것에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굶어 죽는 것 다음에는 얼어 죽는 걸 걱정해야 하는 건가...!?"

다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뚜렷해지고 이내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카인이 마지막 방의 문을 열어젖히면­

시설 전체를 뒤덮던 한기가 흘러나오는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는 듯.

천장이나 바닥이 얼어붙어 있어 고드름이 생겨 있었으며, 방의 가운데에는 거대한 반투명의 관 속에 여자아이가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상당히 오래된 시설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소녀의 몸에는 이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카인의 시선을 빼앗는 것은 그 여자아이의 외견.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 눈을 뜨지 않았기에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너는­ 릴림…? 나, 어째서인지 네 이름을 알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관으로 가까이 가 손을 가져다 댄다.

따가울 정도로 예리한 한기가 손을 덮치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 ..."

그때, 자신의 등 뒤에 걸려 있는 판도라가 강한 마력을 내뿜으며 반응했다.

"...그래. 이런 관 따위, 너와 나의 힘이라면­!"

소년이 마검을 뽑아 들자, 흉흉한 마력이 검에 휩싸인다. 검은 짐승과도 같은 형태를 띤 그것은 카인의 짧은 삶 중에서도 최고의 출력을 보이고 있었다.

"집어삼켜! 판도라!"

강하게 휘둘러지는 마검의 일격, 냉기를 뚫고 파고든 칼날은 그대로 소녀를 감싸고 있던 유리와 같은 그것을 깨버린다.

그와 동시에, 그 안에 엉켜있던 강력한 흑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에 퍼져 있던 한기를 집어 삼켜버린다.

그 후폭풍에 카인 본인도 뒤로 날아갈 뻔하지만 발을 강하게 디뎌 어떻게든 버텨낸 뒤.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 앞으로 쓰러지던 소녀의 몸을 바치는 것이었다.

"...으, 으..."

소녀­릴림은 입에서 천천히 목소리를 흘리며 눈을 뜬다.

예상했던 대로, 아름다운 검은 색 눈이었다.

"... 아..."

그리고, 카인과 눈을 마주친 뒤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자, 잠깐..."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는 카인. 하지만, 소녀는 상관하지 않고 얼굴을 파묻는다.

"드디어... 드디어 당신과 만났습니다. 나의 짝... 나의 반쪽…. 지금의 당신은, 어떤 이름인가요."

"내, 내 이름? 카인, 인데…. 이, 일단 떨어져 줘."

카인은 그렇게 말하며 달라붙는 소녀를 간신히 떨어트려 놓으면.

"...카인님. 릴림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가를 적시며 그렇게 말해 오는 릴림에게, 카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해하면서도 볼을 긁적이는 것이었다.

004

그 뒤, 릴림은 자신이 과거에 봉인된 흑마의 일족이며 카인과는 시대를 초월한 `반려`의 관계라던가.

운명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던가.

그런, 카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야기한 뒤 시설에 있는 전송 장치를 이용하여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 통로는 마을의 버려진 사당 안에 있는 원판이었다.

"굉장하네... 고대의 기술이구나. 이거."

"... ... 이곳이, 카인님이 사는 곳인가요?"

"그렇지. 벌써 해가 졌으니까 선생님이 걱정할 거야. 어서 가자. 너에 대해서도 소개해야 하니까."

카인은 그렇게 말한 뒤, 릴림의 손을 붙잡고 선생의 집으로 향한다.

훌쩍이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

카인의 목소리가 울리면, 아벨을 비롯한 친구들이 카인에게 달려왔다.

저마다 카인의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 사이로 선생이 뛰어와 그의 몸을 껴안는다.

"카인! 무사했군요…! 다행입니다 정말로…! 이제 구멍을 파는 것은 그만두세요!"

카인은 선생이 이렇게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 미안. 그보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카인의 말에, 선생은 몸을 떨어트리더니 옆에 서 있는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이 아이는 또 다른 흑마의 일족이군요?"

"응. `릴림`이라고 해. 숲의 지하에 있는 유적에 있었어."

"지하 유적? 그건…. 아니, 알겠습니다."

선생은 몸을 숙여 릴림과 눈을 마주친다. 카인 외의 인간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릴림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선생을 지켜본다.

`...지독하게 차가운 눈. 리사와는 다른 느낌의, 감정이 결핍된 아이.`

선생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내 웃음을 띠며 몸을 일으켰다.

"릴림. 당신은 카인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 같군요."

릴림이 입을 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 선생도 주변을 둘러보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오늘부터 릴림도 저희 마을의 가족입니다. 모두, 그녀에게도 상냥히 대해주세요."

이렇게, 카인의 작은 기행은 마을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005

릴림이 마을에 온 지 2년, 아벨이 온 지는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두운 밤, 달빛만이 고요하게 고아들의 마을을 비춘다.

스산한 죽음의 기운을 몰고 움직이는 바람을 타고, 그림자 속에 숨은 인영이 마을의 외곽을 밟았을 때.

선생은 곧바로 눈을 뜨며 아이들이 있는 숙소로 달려갔다.

"선생님...?"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을 뜬 카인은 선생이 자기 팔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다.

"잘 들으세요, 카인. 아이들을 데리고 릴림을 찾았던 시설로 가세요. 그곳이라면, 다른 이들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선생님은...?"

카인이 그렇게 질문하면 선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카인을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저는 여러분들이 그곳까지 가기 위한 시간을 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아카데미에서 일했던 몸. 암살자들에게 당하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며, 팔을 붙잡아오는 선생과 눈을 마주친 카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의 낡은 사당으로 향했다.

"선생님…. 괜찮겠지?"

유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티아가 그런 유니의 손을 붙잡아준다.

"선생님은 아카데미에서도 3대 학과인 검술 학과와 마법 학과의 공동 교수셨어. 쉽게 말하자면 엄청 강한 사람이라는 거야."

"릴림. 전이 마법을."

"네. 카인님."

릴림이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위해 마력을 움직인 다음 순간, 아벨이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발판의 바깥으로 이동한다.

"아벨!?"

"무슨 짓이야! 돌아와!"

"...미안. 카인."

아벨은 그렇게 말하며 전이 마법이 발동하여 만들어진 벽 너머로 카인을 바라본다.

"왕궁을 나설 때 건네받은 가호의 반지가 떨리고 있어…. 분명 나를 찾으러 온 왕국의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나를 찾으면 더는 이 마을을 신경 쓰지 않고 돌아갈 거야."

"무슨 소리야!?"

카인이 외치지만, 아벨은 몸을 돌린다.

"...작별이야. 카인…. 너와 형제로 지낼 수 있어서, 즐거웠어."

"아벨!!"

다음 순간, 카인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릴림과 처음 만났던 그 방으로 이동해 있는 자신들을 볼 수 있었다.

"큭...! 릴림 부탁해! 다시 한번 날 지상으로!"

"... 대량의 인원을 이동시킨 전이 마법 진에는 마력의 충전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30분은."

"30분이라니…. 그러면 아벨이…!"

아이들의 울음소리, 카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본다.

"...이곳에서 지상을 상황을 살필 방법은 없는 거야?"

티아라의 말에, 릴림은 주변의 기계를 살피더니 모두의 눈앞에 환영 마법이 펼쳐진다.

그것은 지상의 마을, 오르페안스를 비추고 있었다.

"선,생님...! 그런...!"

카인의 절망적인 목소리와 아이들의 비명. 몇몇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

그곳에는 한쪽 팔이 잘린 채 바닥에 쓰러진 선생.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남성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선생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데미의 대 교수도 세월의 힘은 어쩔 수 없었군요…. 그 무용, 그리고 마법. 훌륭했습니다. 당신은 적이지만 당신과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검은 옷의 리더로 보이는 인간이 그렇게 말한 뒤 부하에게 명령한다.

"루시우스님의 명령대로, 알베르트 왕자를 찾아라."

"그럴 필요는 없어."

그때, 남자의 말을 가로막듯이 들리는 목소리.

"아벨…!"

카인이 이름을 부른 대로, 그곳에는 성검을 손에 쥔 채 검은 옷의 남성과 대치하는 아벨­ 알베르트가 있었다.

"...알베르트 왕자. 이 자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졌습니다. 그런데도 저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지?"

"내가 살아있는 한, 형님은 몇 번이고 이곳을…. 나를 노리겠지. 나는, 내가 살겠다고 가족을 위협에 빠트리는 일은 할 수 없어."

남자의 말에 대답하는 알베르트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성검으로 남자를 가리킨다.

남자는 알베르트의 말에 내심 놀란 것인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무기를 바로잡는다.

"과연. 위에 서는 자로서의 책무입니까."

"틀려…. 가족애야."

"...훌륭합니다. 허나, 어리석은 것에는 변함이 없군요."

다음 순간, 검은 남자의 몸이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어서, 그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알베르트의 바로 뒤였다.

"... ..."

알베르트는 그 시점까지도 살아있었다.

아니, 그 자신이 살아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목에서 피를 뿜으며 앞으로 고꾸라졌을 때 겨우 자기 죽음을 깨달았다.

쏟아지는 피가 성검에 흩뿌려지자 성검은 폭주하려 하지만­

"성검의 핵을 준비해 와서 다행이로군."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핵이 성검의 폭주를 잠재우더니, 그대로 성검은 조각난다.

"...아, 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인의 눈에 검은 마력이 몰려 들어 갔다.

절망.

가족­ 형제와도 같은 이를 눈앞에서 무력하게 살해당했다는 깊은 절망이, 분노가 그의 몸을 뒤덮고 그가 지니고 있던 마검 `판도라`의 깊은 잠을 깨운다.

"...! 모두, 카인 님으로부터 떨어지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야!?"

"설마... 이게, 서적에 있던 마검의 각성...!?"

"카인...!"

`카인 형!` `카인 오빠!`

가족의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사이에 형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카인을 더욱 깊은 절망으로 빠트렸다.

`내가…. 내가 약하니까…! 선생님도…! 아벨도…!`

[그래…. 이건 네 약함이 원인이야. 바보 같은 카인.]

그런 카인의 생각을 긍정하듯,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매혹적인 목소리.

물들어가는 시야 속에, `그것`은 서 있었다.

옅은 갈색의 피부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청록색의 머릿결을 가진.

그 본성과 다르게 자애로 가득한 눈을 가진 여성.

눈의 색은 아름답게 빛나는 바이올렛.

동공의 안에는 완전함을 상징하는 검은 육망성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전신에,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채 노출도는 보이지 않는 귀족의 영애 같은 복장.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 존재는 가까이 다가와 카인의 이마를 검지로 가리켰다.

"판, 도라..."

"분노하고 절망하고, 그 영혼의 그릇을 검은 탁류가 채웠을 때. 나는 그대에게 힘을 부여하노라."

"네가 강했더라면 도망칠 필요는 없었다."

"네가 강했더라면 은인이 죽을 일은 없었다."

"네가 강했더라면 형제가 죽을 일도 없었다."

"카인. 그대의 운명은 패도의 길에 있으니…. 지금이야 말로, 나의 힘을 받아들여라."

"그렇게 한다면…. 네가 지키려고 했던 모든 것을 지킬 수 있게 될 테니...!"

여인의 목소리가 한 글자, 한 글자 흘러나올 때마다 카인의 몸을 뒤덮는 흑마력의 양은 증폭되어갔다.

"릴림! 어떻게 해 봐!"

"...아뇨. 이걸로 된 겁니다. 카인 님께는 힘이 필요하니까요."

유니의 말에 릴림이 대답하면, 나머지들은 입을 다문다.

"───!!!"

분노에 가득 찬 소년의 외침이 지하에 울려 퍼진다.

대륙을 집어삼킬 검은 짐승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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