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187화 (187/506)

〈 187화 〉 청년

* * *

000

"카인!"

거친 남성의 목소리가 청년의 이름을 불렀다.

카인이 조용히 뒤를 돌아보면, 입꼬리가 올라간 비슷한 나이대의 귀족 도련님들이 모여서 카인을 보고 있었다.

비열한 미소, 손에 든 나무 몽둥이.

그들이 결코 카인을 좋은 목적으로 불러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주변의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제국의 사관학교, 본래는 제국 귀족들의 자제들이 제국군의 간부가 되기 위해 경험과 지식을 쌓는 이곳에 귀족의 지위는커녕 부모조차 없는 고아인 카인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카인이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후원자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선생을 잃고 다시 한번 진짜 `고아`가 된 카인이 복수심을 가지고, 그리고 당장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입대한 제국군의 지방 주둔군 사령관.

카인에게는 상사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호의에 의해 후원을 받아 사관학교에 오게 된 것이었다.

카인의 나이 17. 제국군에 입대한 지 2년, 사관학교에 온 지는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제국군에 입대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유니, 티아라, 리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사관학교로 오게 된 것은 그 혼자였다.

아는 이라고는 하나 없는 고독한 곳에서, 카인은 그다지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는 못했다.

카인은 자신을 불러세운 남학생들을 한심한 눈으로 잠시 바라보지만 이내 대답했다.

"네. 선배님."

"뭐냐 그 눈은…. 너,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 남학생 중에서도 리더격에 가까운 소년... `페티스`가 건들거리는 태도로 가까이 와, 몽둥이로 카인의 턱을 치켜올렸다.

"너는 이 페티스님의 소대의 가장 말단으로 들어온 거다. 그렇다면 그 위치를 영광으로 여기고 소대의 허드렛일을 모두 해놔야 하지 않겠어?"

페티스는 제국 내에서도 가장 유력가문인 `스테리어` 공작가의 장남으로, 그의 아버지인 스테리어가의 당주는 대대로 제국군의 총사령관을 맡은 인물이었다.

당연하지만, 사관학교에서도 그에게 큰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고 선생들까지도 그의 만행을 묵인하는 상황이다.

그의 말대로, 카인은 반년의 기초 훈련과정을 마치고 소대 배정에서 페티스의 소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훈련생의 배정은 소대장이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형태가 되는데, 굳이 평민 출신의 카인을 받아들인 데에 큰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이 `페티스`라는 인간이 힘과 지위에 취한 인간이고, 평민인 카인은 어떻게 하더라도 주변에서 딱히 뭐라 할 이 없는 딱 좋은 샌드백이었으니까.

흑마의 일족에 평민, 그리고 고아라는 고립되기 딱 좋은 삼박자를 갖춘 카인은 절호의 먹잇감이었다.

"페티스~ 빨리 방에 가자~ 응~?"

그리고, 그런 페티스의 등 뒤에 달라붙어 있는 화려한 머리카락 색의 여성.

물들인 것이 확실한 금발의 머리에, 눈꼬리가 올라간 붉은 눈.

아름답게 균형을 맞춘 이목구비에, 전신을 치장한 화려한 장신구.

허용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서 개조된 노출 심한 사관학교 제복에, 허리에는 사복검을 갖춘 그녀.

"미안 휴티. 이 녀석에게 선배로서 조금 지도를 하고 나서 말이야."

페티스의 약혼자인 휴티나 플레어리스는 마찬가지로 제국 공작가의 영애였다.

페티스 소대의 홍일점이며, 그녀 본인도 1급 마도사라는 강력한 마녀이자 검사였다.

순수한 실력만으로 보자면, 아마 페티스보다도 높을 것이다.

"후후, 카인. 페티스의 말은 잘 듣는 편이 좋을 거야. 아무리 네가, 언니의 총애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녀가 지칭하는 인물은 카인을 후원하고 있는 지방주둔군의 사령관.

가문 내의 알력 다툼을 싫어하여 차기 당주의 지위를 동생에게 넘긴 채, 지방으로 내려간 그녀를, 휴티나는 어딘가 조금 꺼려하고 있는 듯했다.

"뭐. 그런 거다, 카인. 내일은 소대 주둔실의 점검이 있다는 거 알고 있겠지? 마지막으로 그곳을 청소한 게 언젠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문제가 없도록 청소해 놓으라고."

"... ..."

카인은 그의 말을 들은 뒤 잠시 페티스의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좋아. 알아 듣는 게 빨라서 좋네."

페티스는 그렇게 말하며 카인의 머리를 두드린 채, 그의 떨거지와 약혼녀를 데리고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카인이 그 모습을 눈으로 좇으면­

[베지 않는 거야?]

그의 귀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바보 같은 말 마. 그는 공작가의 장남이야. 저런 성격이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한 인간이고…. 무엇보다 평민인 내가 그를 상처입히면 연좌제로 줄줄이 죽어 나갈걸."

[흐응... 그럼. `또` 사고인 것 처럼 위장할 생각?]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목소리.

카인의 마검인 `판도라`의 목소리였다.

"... ..."

카인은 그 말에는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 무시한 채, 지시받은 소대의 주둔실로 향한다.

말이 소대의 주둔실이지, 이곳에서 작전 회의를 하거나 하는 것을 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용도 목적의 방. 그중에서도, 페티스나 그 수하들이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끌고 들어와 육체관계를 요구하는 장소로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때마다 카인에게는 주둔실의 밖에서 망을 보게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젠장... 냄새."

카인은 문을 열자마자 확 하고 올라오는 코가 썩을 것 같은 냄새에 얼굴을 찌푸린다.

방금까지 그들이 이곳을 사용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진 책상과 의자, 먼지가 쌓인 창문.

그리고 쓰레기통에는 사용하고 버려진 티슈, 피임구와 같은 이런저런 오물들.

"... ..."

카인은 그런 것들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한다.

기물들을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고, 어지럽혀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창문을 열고 바닥을 쓸고, 걸레질까지 빼먹지 않는다.

소대의 주둔실이 깨끗해진 것을 확인한 카인이 마지막으로 정리하려 한 것은, 청소하면서 나온 쓰레기들 그리고 한곳으로 빼 둔 코가 썩을 것 같은 페티스들의 찌꺼기였다.

[그건 안 버리는 거야?]

"쓸 곳이 있어. 나도 이런 걸 챙기고 싶지는 않지만."

카인이 그렇게 말하며 어떻게든 냄새를 막고 그 내용물을 들키지 않게 하려고 예비용 제복 망토를 보자기 삼아 그 안에 사용된 피임구들을 집어넣더니 얼음 마법을 이용하여 그 안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이걸로 됐겠지…."

[실수로라도 내 몸에 닿게 하지 말아줘. 거기서부터 썩을 것 같으니까.]

"알고 있어."

카인은 그렇게 말한 뒤, 주둔실을 뒤로 했다.

001

카인이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면, 얌전히 무릎을 꿇은 채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있던 릴림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녀와 만난 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녀의 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전혀 성장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주변에는 그녀를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이라는 것으로 속이고 겨우 함께 올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인은 그녀를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유니나 다른 아이들이 있는 지방의 주둔지에 두고 올 생각이었다.

아벨을 잃고, 성격이 조금 냉철해진 카인조차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집념을 내뿜으며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릴림. 뭐 하고 있었어?"

"어떻게 하면…. 카인 님께서…. 저를 안아주실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카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판도라를 놓자, 판도라 역시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며 릴림을 바라본다.

"그런 거 간단하잖아. 뇌쇄시켜버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판도라를 보며, 릴림은 잠시 고개를 갸웃한다.

"뇌쇄…. 매혹한다는 뜻이군요."

"그래, 예를 들면…."

판도라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걸치고 있던 드레스의 가슴 부분 천을 살짝 젖히자, 카인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봐. 쉽지?"

"... 카인님."

그리고, 릴림 역시 입고 있던 옷의 가슴을 살짝 젖히지만, 카인은 그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 어째서일까요. 카인 님에게 이렇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처음입니다…."

"네 어린애 같은 몸으로는 무리인가 보네. 서큐버스같이 색기가 넘쳐나면 모를까."

판도라는 깔깔대면서 그런 릴림을 놀리고, 카인은 바보 같은 소리를 하지 말라면서 검은 보따리를 냉동마법이 걸려 있는 작은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그런 것보다. 릴림. 너도 온종일 이 방에 있는 게 지겹다면 언제든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도 돼. 여기에 있어 봤자, 좋은 이야기는 못 듣잖아."

카인은 자신이 받는 시선과 똑같은 것을 릴림이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에서 나가지 않는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였지만, 가끔이라도 카인과 함께 외출하는 날에는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카인은 그런 릴림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자신이 제국에서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사관학교 같은 곳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카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벨. 알베르트 칼데아리스. 그의 형제이자 친구였던 존재.

그런 그를 죽인 것은 `루시우스 칼데아리스`.

현재 왕국의 왕세자이자, 차기 국왕이 될 남자였다.

정확히는 루시우스가 암살자들을 고용하여 자기 친동생을 죽인 것이지만 다를 바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아벨의 복수를 완수한다.

그를 위해선, 더욱, 더더욱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만 했다.

"... 저는 카인님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5000년이나 떨어져 지냈으니까요."

"... 스케일이 너무 큰걸."

카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릴림이 늘 입에 담는 5000년이란 것이 정말인지, 아니면 일종의 과장 표현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자신의 곁에 남아주는 릴림에 대해 안심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카인은 조용히 인정하며 또 내일 하루를 위해 일찍 잠이 드는 것이었다.

002

그로부터, 며칠 시간이 흘렀다.

각 소대의 소대장들, 그리고 사관학교의 교사들이 모여 정기적인 회의를 하는 이날.

페티스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트롤들이 이렇게나 숲의 외각까지 나와 있는 것을 보고하지 않은 겁니까. 페티스."

대부분의 교사는 그에게 쓴소리하지 못하지만, 같은 가문의 인간이라면 달랐다.

페티스의 작은 아버지인 사관학교의 교사가 그를 추궁하면, 페티스는 변명다운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 그건..."

"분명 트롤의 숲은 당신들의 담당이었을 터입니다. 곧 번식기에 들어가서 흉포해질 터인데. 숲의 바깥까지 나와 있다간 인근의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인명피해라도 나는 사태가 되면, 페티스. 소대장인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크, 윽..."

결국, 쓴 약을 삼킨 듯한 괴로운 얼굴이 되고 나서 피가 날 것 같이 주먹을 쥐는 페티스.

"소대를 정비하고, 지금 당장 사태의 해결을 위해 출정하세요."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교사는 페티스에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회의가 끝난 직후, 페티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의 뛰어가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로 복도를 걷는다.

주변의 학생들, 교사들은 그런 페티스의 얼굴을 보더니, 그의 분노에서 도망치려는 듯,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렸고.

이내 그가 향한 것은, 자신의 소대 주둔실. 그리고, 그 앞에서 여전히 망을 보며 서 있는 카인을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어이, 너!!! 어떻게 된 거냐!"

"...무엇이 말입니까."

분노에 가득 차 목소리를 올리는 페티스에 비해, 냉정을 유지한 채 이야기하는 카인.

"어째서 보고하지 않은 거냐고! 트롤의 숲이 그렇게 돼 있다는 걸!"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카인의 대답을 들은 페티스는 그를 벽으로 밀어붙이더니 거의 코가 닿을 것만 같은 거리까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윽박지른다.

"시치미 떼지 마라! 트롤의 숲의 정찰은 네게 맡긴 임무였을 텐데!!"

"떠넘긴. 이겠죠. 본래는 4인 1조로 행해야 하는 정찰을 저에게…."

"닥쳐! 평민 떨거지 새끼 주제에!!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고를 안 한 건 네 책임이다!"

카인의 말을 끊어버리며 목소리를 고래고래 높이는 페티스를 지켜보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이 모여들지만­

카인은 그런 페티스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이 새끼가!"

"보고 했습니다. 분명히 저는."

드디어 주먹이 올라가려는 때, 카인이 대답하자 페티스는 마치 석화의 시선이라도 받은 듯이 멈췄다.

"...뭐?"

"말로 보고를 드리려고 하면 늘 여자들을 끼고 계셔서, 보고서로 올렸습니다. 분명, 소대장의 도장까지 찍으셨죠."

"... ..."

그 말에 페티스는 입을 다물더니 눈깔을 데굴데굴 굴리기 시작했다. 카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무언가 떠오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매일 같이 보고서라면서 짜증 나게 서류를 올리길래, 대충 도장을 찍었지.

"무언가 대책이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만…. 설마, 무계획이셨던 겁니까?"

"닥쳐!"

카인의 비웃는듯한 말에, 멈춰있던 주먹이 휘둘러지며 카인의 얼굴을 내리쳤다.

그 충격에 카인은 페티스와 떨어지며 쓰러지고, 주변 몇몇 학생들에게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올라왔다.

"젠장…. 젠장!"

"...설마, 제 책임으로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귀족 자제분께서, 평민 떨거지의 도움이 없으면 소대의 운영도 못 한다고…. 그렇게 위에 보고하실 생각이셨나 보군요."

비틀거리면서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는 곳을 손등으로 닦아내는 카인이 일어서려 하자, 페티스는 다시 한번 주먹을 치켜들었다.

"페티스!"

그때, 그를 불러 멈춰 세우는 목소리.

페티스가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휴티나가 화난 얼굴로 페티스와 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석한테 화풀이해도 아무것도 안 바뀌어. 지금은, 뭘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

"빌어먹을!"

역시 페티스보다도 실력만큼은 위인 휴티나가 페티스를 말리고, 페티스는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주둔실의 문을 발로 차며 안으로 들어간다.

"이 새끼들아! 지금 상황에서 떡칠 생각이 들어!? 당장 출정 준비해!"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휴티나는 한숨을 내쉰 채 카인에게 다가와 손수건을 던졌다.

"... ..."

"이번 건 페티스가 100% 나빠. 약혼자로서, 사과할게."

말없이 손수건을 받아 든 카인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휴티나에게 돌려주었다.

"100%는 아니겠죠. 원래는 당신이 그를 제어하는 것이 역할 아니었습니까? 그의 작은 아버님도, 그것을 바라고 당신을 같은 소대에 넣은 것 같습니다만."

"... ..."

그것을 하지 못한 네 책임도 없지 않다.

라고 말하는 카인을 휴티나가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인다.

"너. 언니한테도 그런 태도였어?"

"당신의 언니는 기본적으로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직무 태만도요."

"...그래. 미안해. 네 말대로야, 나한테도 책임이 있다는 건."

휴티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돌려받은 손수건으로 카인의 입가를 닦은 뒤 회복마법을 사용하여 상처를 치료한다.

그 뒤 카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둔실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저 여자, 생각보다도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은 있는 것 같은걸.]

"그래봤자, 페티스랑 떨거지들이 자신을 치켜세워주니까 거기에 취해있던 여자야. 동정의 여지 같은 건 없어."

카인 역시 그렇게 말하며 주둔실의 안으로 들어간다.

길길이 날뛰는 페티스가 자신들의 부하를 구타하고 있는 것은 차마 보고 있기 힘든 추한 광경이었다.

003

제국 사관학교에서 말을 타고 한 시간을 달리면, 울창한 자연의 힘이 대지를 지배하고 있는 어둑한 숲이 나타난다.

`트롤의 숲`.

식인귀 마물인 트롤들이 예로부터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트롤의 여왕이 생태계의 정점에 군림하고 있으며.

인간의 2배에서 3배는 되는 트롤들은 그 몸 날림이 인간보다도 날렵하고, 근력 역시 인간의 수 배에 달하는 괴물같이 강한 인간형의 마물들이다.

또한, 지능 역시 인간에 근접할 정도였기 때문에 야만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멋모르고 숲에 들어오는 인간들을 사냥하며 때때로 인근의 마을까지 출몰하는 것이었다.

그 기원은 과거 마신을 따랐던 인간이 변한 모습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신체 구조도 인간과 비슷하였지만, 번식력과 진화의 빠름만큼은 인간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제국령의 안에, 이런 위험한 장소가 있다면 숲을 불태워서 트롤들을 몰아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트롤들은 인간이 재배할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을 숲 곳곳에서 재배하고 있었고, 그 식물들은 상대적으로 왕국에 비해 척박한 환경인 제국에서 상급 회복 약인 `엘릭서`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된다.

그래서 일종의 자연보호 구역과도 같이 지정된 트롤의 숲은 정기적으로 제국의 사관 학도들이 찾아와 트롤의 영역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파악하고 필요 이상 확장되었을 때 일시적으로 트롤들을 물리는 것이 가능한 결계석을 설치.

그것만으로도 트롤들의 활동 범위를 다시 축소 시키는 것이 가능했기에, 트롤과의 공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트롤의 숲을 눈앞에 두고 페티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느껴지는 마력의 농도가 심상치 않았다. 트롤들의 활동 범위는 이미 숲의 경계선 가까이 와 있었다.

"결계석을 가지고는 왔지만…. 어디에 트롤들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군."

숲속에서의 트롤은 거의 날아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상천외한 움직임을 벌였다.

제국 사관학교의 엘리트인 페티스나 휴티나라면 1:1로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나머지 두 명의 떨거지는 그러기엔 실력이 부족했고, 상대가 1:1로 덤벼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 어, 어떻게 하죠, 대장."

떨거지 중 하나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페티스는 잠시 숲을 노려보다가 뒤에서 조용히 짐을 실은 말을 끌고 온 카인을 돌아본다.

"어이. 네가 앞장서라. 조금 떨어져서 말이야."

"잠깐, 페티스..."

카인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페티스를 바라보고, 페티스의 이야기를 들은 휴티나가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페티스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이어서 이야기한다.

"트롤들은 교활해서 말이야. 혼자 있는 적을 우선으로 노린다고. 걱정하지 마라. 우리들이 뒤에서 죽지 않도록 해줄 테니. 네가 죽으면, 우리들도 위험하니까 말이야."

즉, 미끼가 되라는 것이었다.

"... ..."

"뭐냐, 싫단 거냐? 여기서 가장 말단인 너에게 어울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말에 카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들어 대답한다.

"지금은 트롤의 번식기가 가깝습니다. 트롤의 수컷들이 암컷에 겁먹어서 도망쳐 다니고 있죠. 트롤의 암컷들은 교미 후 수컷의 정기를 모두 흡수하고 살해하고, 잡아먹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는 더 많은, 더 강한 트롤을 낳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생물 시간의 흉내냐?"

페티스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이야기하지만, 카인은 이어서 이야기했다.

"트롤들은 후각으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수컷들은 수컷의 냄새를, 암컷들은 암컷의 냄새를 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냄새는 각 성별의 인간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합니다."

"...모두 학교의 수업에서 들은 내용이네. 그래서?"

휴티나도, 카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잘 모르겠다는 듯 이야기하자, 카인은 그대로 휴티나를 보면서 이야기한다.

"휴티나 양의 도움을 받으면, 저희들 모두 트롤을 피해서 숲을 이동할 수 있단 겁니다."

"잠…. 무슨 소리야!?"

휴티나도 경악하지만, 놀란 것은 페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 이새끼... 내 약혼자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만…. 페로몬을 내라는 겁니다. 땀이라든지, 체액에 섞여 있는 그것. 물론 그냥 흘리는 땀은 소용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성적으로 흥분한 상­"

다음 순간, 페토스가 카인에게 다가와 칼을 뽑아 들었다.

"그 이상 말한다면 그대로 네 혀를 잘라주마."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하시죠. 참고로, 아까 대장님이 말씀하셨던 미끼 작전은, 트롤의 뛰어난 후각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카인이 물러서지 않으려 하자, 페티스가 검을 휘두르려 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런 페티스의 검을 사슬과도 같은 칼날이 날아 들어와 막는다.

휴티나의 사복검이었다.

"휴티나!?"

"...알겠어. 그게 유일한 방법이란 거겠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흥분할 정도로 변태는 아니야."

"...이것을."

카인이 그렇게 말하며 넘긴 것은, 흥분제­ 미약의 일종이었다.

그것 자체는, 페티스도 다른 이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여학생들을 주둔실에 끌어들였을 때, 거부하려 든다면 억지로라도 행위를 하기 위해 준비해 둔 물건이었으니까.

"...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던 거야?"

휴티나가 카인을 바라보며 묻지만, 카인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필요해서 준비했다. 그뿐입니다."

"어, 어이 휴티나. 그거, 마실 필요 없어. 일단 한 번 학교로 돌아가서 적당한 계집을 데리고 돌아오면­"

다음 순간, 휴티나는 페티스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미약을 들이킨다.

"... 큿..."

즉발성의 미약은 효과가 뛰어났는지, 휴티나는 몸을 웅크리며 곧바로 얼굴이 붉어졌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낮게 하면서도 몸을 가누기 힘든 것인지 비틀거리는 것을 페티스가 달려가 붙잡는다.

"어, 어이! 휴티나! 괜찮냐!?"

"괜...찮아... 이거, 이렇게 셀 줄 몰랐네…."

페티스는 그런 약혼자의 모습을 보더니 침을 꿀꺽 삼키지만, 이내 그런 휴티나를 바라보는 떨거지 둘에게 고개를 돌리라고 소리를 지른다.

"...너... 내 약혼자에게 이런 꼴을 하게 했겠다. 돌아가면 두고 보자...!"

그리곤 분노에 찬 눈으로 카인을 보며 협박한다.

지금 바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건, 이 안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휴티나가 약을 먹고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한 명의 힘이라도 더 필요하단 것이겠지.

혹시나 하는 일이 있게 된다면.

"얼른 결계석을 설치하고 돌아간다! 휴티나의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페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화를 내고는 휴티나를 이끌고 숲의 안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흐응.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라는 거네.]

"...말했잖아. 필요해서 준비했다고."

판도라의 말을 가볍게 넘기며 카인은 페티스의 뒤를 따라 숲으로 향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004

제대로 걷지 못하는 휴티나를 페티스가 업은 채로 숲의 외곽을 돌며 결계석을 설치해간다.

예상대로 외각 주변에까지 트롤의 밭이 보일 정도였으며, 희귀한 식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다.

다만, 미약의 효과로 암컷 페로몬을 주변에 흩뿌리는 휴티나 덕분에 수컷 트롤들은 자신의 몸보신을 위해, 암컷 트롤들은 사냥 영역이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마지막 장소에까지 결계석의 설치를 마친다면, 무사히 사관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

페티스는 사관학교로 돌아가면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카인을 대충 귀족 희롱 죄 같은 것을 씌워 처벌할 생각에 머릿속이 가득했다.

"...잠깐."

마지막 결계석의 설치 중, 주변의 망을 보던 카인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일행이 그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또 뭐가?"

카인은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일행을 돌아보면서 이야기했다.

"잠시, 앞을 보고 오겠습니다."

"어, 어이! 저 자식...!"

"놔둬. 저러다 트롤에게 걸리면 자기 혼자 죽는 거지."

"... ..."

휴티나만이 카인을 잠시 걱정된다는 듯 바라보지만, 이내 약효 때문에 몸이 근질거리는 것 때문에 다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속옷이 이미 축축해져 있는 상태.

빨리 돌아가서,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고 싶다.

오직 그 생각밖에 남지 않은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기에.

갑작스러운 카인의 일탈을 지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카인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표였다.

다음 순간, 남자들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 끈적거리는 액체가 떨어졌다.

흰색의 냄새 나는 그것은, 후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페티스와 떨거지들의 머리, 어깨를 적셨다.

"뭐, 뭐야 이거!?"

"우우욱...!"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속을 게우는 떨거지와 불쾌감에 표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페티스.

"대, 대장…. 이거…. 정액, 인가?"

"정액? 누구…."

다음 순간, 땅을 울리는 진동이 울려 퍼졌다.

"뭐..."

점점, 가까워지는 진동 소리. 그것이 발소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일행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트롤, 트롤이다! 암컷 트롤이야! 이 냄새를 맡고 온 거야!"

떨거지들은 그것을 눈치채더니 우왕좌왕하면서 도망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머, 멍청이들아! 흩어지지 마!"

하지만, 그것은 이미 늦었다는 듯, 숲을 헤치고 나타난 거대한 여자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오더니 도망치려던 남학생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 아아악! 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남학생의 몸이 이빨에 의해 짓이겨지면서 마치 육포와도 같이 뜯겨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히,히이익!"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다른 남학생은 자리에 주저앉아 실례를 해버리는 것이었다.

"씨발...! 씨발!"

페티스는 검을 뽑아 들고 트롤을 향해 달려들려고 발을 내디뎠지만.

다음 순간, 또 한 마리의 암컷 트롤이 숲에서 나타나, 자리에 주저앉은 남학생을 잡아 드는 것을 보고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검을 떨어트리고, 뒷걸음질 치며 견뎌낼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돌린다.

"자, 잠깐... 페티스!"

그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

나무에 기댄 채, 미약의 효과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휴티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데리고 간다면, 가뜩이나 숲 안에서 도망칠 확률이 적은 자신은 확실하게 붙잡히고 말 것이다.

페티스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한 번 그녀를 돌아보았던 페티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만다.

"페티스...?"

"미, 미안. 휴티나. 미안…. 정말 미안... 나, 나라도 살아야지…. 나는, 공작가의 장남인데…."

휴티나의 얼굴이 다시 한번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이런 몸 상태가 되었는데.

그런 나를, 버리고 간다고?

"이, 이건 다 그 녀석 때문이야. 더러운 흑마의 일족 평민 녀석이…. 자리를 비우니까…!"

그렇게 말하는 페티스의 말에 휴티나는 비틀거리면서도 그를 따라가려 하지만 약효는 그것마저 방해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을 원망하라고! 알았지!"

"기, 기다려, 페티스!"

간절하게 부르는 목소리마저 내친 채, 페티스가 출구 방향으로 몸을 꺾어 뛰어가려는 다음 순간­

그의 몸이 절반. 위에서부터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입이, 그를 머리부터 집어삼킨 것이다.

"──"

눈앞에서 약혼자가 고깃덩어리로 변하는 모습에, 휴티나는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모님이 정해준 관계였지만, 그에게서 이런저런 떠받듦을 받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귀족들의 결혼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지. 라고 생각하며 그를­

"아아아아아아!!!"

거기까지 생각한 휴티나의 사고는 무너졌다.

아무리 생각을 냉정하게 하려 하더라도 불가능했다.

그녀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고, 주변에는 세 마리의 죽음이 각자의 먹잇감을 뜯어먹고 있었다.

시야가 잡히지 않은 곳에서라면 모를까,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암컷 트롤이라고 속일 수도 없었다.

끝났다. 모든 것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런 판단도 하지 못한 채 아이처럼 우는 목소리가 숲에 울리는 순간.

"집어삼켜라! 판도라!"

하늘에서, 검은 짐승과도 같은 흑마력의 격류가 번개처럼 떨어지며.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트롤을 베어냈다.

몸이 반으로 갈라진 트롤은 그 자리에서 피를 뿜으며 즉사하며, 위장에서 페티스였던 고깃덩어리들을 흘리며 자리에 쓰러졌다.

[RKEEIEE!!]

동족이 살해당한 것에 괴상한 비명을 내지른 트롤들이 동시에 흑마력을 내뿜는 인물을 붙잡으려 하면.

그는 몸을 회전시키더니, 검은 칼날의 폭풍을 만들어 그대로 트롤 두 마리를 동시에 짓이겨버린다.

이번에는 트롤들이 육편이 되었다.

"카, 인..."

검은 회오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마 이 상황을 만들었으리라 의심되는 인물.

카인은 대검을 등에 얹은 채 휴티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어깨에 들쳐 얹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숲을 질주해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필요한 일을 했다. 아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

"필요한... 일…. 어째서, 나를 살린 거야..."

그녀는 서서히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카인을 향해 질문했다.

"쓸모가 있으니까."

005

"... 알겠습니다. 심한 고생을 했군요. 그리고, 페티스의 지금까지의 만행에 대한 보고서 역시, 잘 읽었습니다…. 그는, 귀족이면서 귀족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거듭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 본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음 날, 사관학교로 돌아와 보고서를 제출한 카인은 군법회의에 처하게 될 뻔했지만 페티스의 작은아버지가 카인의 상황을 참작해 주어 그것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본가의 당주­ 페티스의 부모가 거기에 반발할 수 있었지만 같은 공작가에서 그것을 막아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휴티나양. 그대가 말한 것이 사실이겠죠?"

"네. 페티스는... 트롤에게 습격당했던 저를 버리고 도망치려다 죽었습니다. 그것을 구해준 것은, 카인입니다. 그에게는 실력도, 상황판단 능력도. 전략을 만들어내는 힘도 있어요. 페티스보다 훨씬, 소대장에 어울리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약혼자였던 그 녀석에게 실망이 컸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다른 교사들과도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한 뒤, 카인과 휴티나는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걸로 된 거겠지. 카인."

"물론입니다. 감사할 따름이에요. 휴티나님."

"...휴티나로 괜찮아. 어차피 이 각인이 있으면, 나는 네 소유라는 거지."

카인은 휴티나가 자기 목 근처를 보여주는 것을 본다.

그곳에는, `지배의 각인`이라고 불리는 최정상급의 복종의 마력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트롤의 숲을 벗어난 그 날 밤, 미약의 효력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카인에게 있어도 예상 밖이었다.

아무래도 그 약은 중화해서 사용하는 것이 원래 사용법이었다는 듯, 떨어지지 않는 체온, 그리고 땀이 심하게 나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카인은.

그녀의 몸에서 약효를 제거하기 위해…. 행위까지 다다른 것이다.

이것을 새긴 것은, 그녀로 두 번째였다.

"...각인을 통해, 언니의 존재가 느껴져. 너­"

"쌍방합의. 였습니다."

"... 흥. 이걸로 플레어리스의 영애는 두 사람 다, 네 지배를 받는단 거네. 대체, 목적이 뭐야?"

카인은 그녀의 말에 사관학교의 벽에 걸려있는 제국­ 황제의 문장을 본다.

"... ..."

"설마­"

"하하, 설마."

카인은 그렇게 말한 뒤 휴티나와 헤어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지배는 기분 좋지? 카인. 네 힘이 늘어난다는 느낌을 곱씹을 수 있으니까.]

"...그래. 하지만, 부족해. 조금 더. 큰 힘이 필요해. 왕국의 옥좌. 거기까지 내 검을 닿게 하기 위해선, 이거론 부족해."

카인의 눈은 검은 어둠으로 불타올랐다.

칠흑의 눈 속의 불꽃은 복수심과 야망을 잡아먹고 타오르고 있었다.

이내, 그것은 그 본인마저 불태우겠지.

이제, 페티스 소대는 없다. 카인 소대가 새로 창설될 뿐.

최초로 평민이 소대장을 맡는 소대가, 이후 제국 사관학교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보이며 소대장은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것은.

제국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제국의 마지막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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